[파이낸셜뉴스] 화승인더스트리 경영진이 최근 소액주주 연합인 HSIS와 만나 2028년 이후 화승엔터프라이즈와 합병 등 지배구조 개편 논의를 검토할 수 있다고 언급해 눈길을 끈다. 3월 3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현석호 화승인더스트리 부회장은 지난 25일 주주총회 직후 소액주주연합인 HSIS와 만나 향후 회사의 성장 방안에 대한 담화를 진행했다. 화승인더스트리 소액주주연합은 소액주주 단일 대주주 플랫폼인 HSIS를 운영중이기도 하다. 이들은 현재 화승인더 지분을 1.5% 정도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화승인더스트리의 영업실적은 작년부터 엄청 좋아지고 있으며 추가증설을 고려할 정도로 제2의 성장기에 돌입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HSIS는 경영진과 힘을 합쳐 회사 성장을 위해 합병에 대한 논의를 2028년도 이후에 시작하고 지금부터 3년동안 회사의 성장울 위해 힘을 합칠 것을 제안했다. 여기에 인더의 기업가치를 정상화 시키기 위해 매년 단계별로 자사주 매입소각도 제안했다. HSIS 관계자는 “화승엔터프라이즈도 매년 2000억이 넘는 EBITDA로 차입금을 갚고 CB물량을 콜옵션을 사용해서 최대한 줄이며 자체적으로 청출된 영업현금으로 미래 성장을 위한 추가 증설을 한 다음에 인더, 엔터 두회사가 완전히 정상적인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는 시점인 2028년도에 합병을 포함한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논의를 하자는 내용을 전했다”라며 “이에 대해 현석호 부회장은 자사주는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변했고 2028년 이후에 합병을 포함한 여러가지 방안을 논의 할 수 있으며, 그때 주주에게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결정하자고 언급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측이 올해부터 이에 대한 약속을 지키면 HSIS는 사측의 친구가 되어 모인 지분을 경영권 방어를 위해 백기사로 나설 것”이라면서 “만약 사측이 검토만 한다고 해놓고 구체적인 조치가 없으면 사측에 대해 본격적인 소액주주 권리찾기 행동을 할 것이다. 이를 위해 HSIS는 주주행동주의에 관한 중대한 발표를 할 예정”이라고 부연했다. 한편 HSIS는 소액주주들의 주식을 모아 의결권을 법인인 HSIS 주식회사에 위임해 단일 대주주로서의 지위를 확보, 최대주주와 동등한 위치에서 소액주주들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해 세운 특수목적을 가진 법인이다. HSIS는 이미 법원의 허가를 받아 설립 등기증을 발부받고 특허까지 출원 중이다. 즉 의결권 위임에 따라 단일 대주주로서의 지위를 행사하는 합법적인 전문 의결권 대리행사 특수목적법인(SPC)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국내 펀드 1세대이자 미래에셋그룹 창업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손동식 전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도 HSIS에 주요 주주로 전격 참여했다. 손 전 사장은 지난 달 초 일신상의 사유로 미래에셋운용 CEO직에서 사의를 표명한 이후 현재 고문으로 물러 난 상태다. HSIS는 지난 2월 26일 첫 행동주의 타깃 기업으로 화승인더스트리를 겨냥하고 1차 주주서한을 배포했다. 이들이 주장하는 요구사항은 크게 △실적 증가에 따른 배당확대 △기존 자사주 보유물량 전량 소각 △올해부터 2027년까지 3년간 매년 최소 5%에서 10%대의 자사주 매입 소각 등이 꼽힌다. kakim@fnnews.com 김경아 기자
2025-03-31 10:21:41소액주주의 의결권을 모아 대주주 지위를 행사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이 국내 처음으로 등장했다. 법인이 개인투자자들로부터 위탁받은 주식으로 일정부분 지분을 확보해 권리를 행사한다는 점에서 기존과 차별된다. 최근 주주 권리를 강화하는 상법 개정안이 활발히 논의 중인 가운데 주주행동주의가 한 단계 진화 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전직 대형 증권사 임원 출신들이 주도해 ㈜HSIS를 설립했다. HSIS는 소액주주들의 주식을 모아 의결권을 법인인 HSIS 주식회사에 위임해 단일 대주주로서의 지위를 확보, 최대주주와 동등한 위치에서 소액주주들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해 세운 법인이다. 이날 김영수 HSIS 공동대표는 "그간 소액주주들의 합산주식 수가 최대주주보다 많음에도 불구하고 상법상 1인 지배주주의 권리를 이용해 경영권을 장악한 사례가 빈번했다"며 "기업들이 물적분할, 이중 지배구조 등 1인 지배주주의 이익에만 부합하는 의사결정으로 1인 대주주의 이익만 추구했다. 실질적인 회사의 주인인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침해 중인 대기업들을 저지하고자 HSIS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이어 "HSIS는 기존 소액주주 행동주의 방식과 완전히 다른 차원의 개념으로 접근하기 위해 설립한 의결권 행사 전문 SPC이다. 위임장을 받아 진행한 기존 소액주주 행동주의 틀을 깼다"며 "각각의 소액주주들이 임치계약서를 작성하고 HSIS 증권계좌에 주식만 이체하면 HSIS 자체가 단일 대주주로서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HSIS는 이미 법원의 허가를 받아 설립 등기증을 발부받고 특허까지 출원 중이다. 의결권 위임에 따라 단일 대주주로서의 지위를 행사하는 합법적인 전문 의결권 대리행사 SPC이다. 김 공동대표는 "경영지배 구조가 바람직하지 못한 기업들에 바로미터가 되고 싶다"며 "또한 반대의 경우인 최고경영자(CEO)가 경영을 잘하는데 대주주 지분이 낮다면 우호 백기사로도 소액주주들의 지분을 모으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국내 펀드 1세대이자 미래에셋그룹 창업공신으로 꼽히는 손동식 전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도 HSIS에 주요주주로 전격 참여했다. 한편 HSIS는 지난 26일 첫 행동주의 타깃기업을 화승인더스트리로 정하고 1차 주주서한을 전달했다. 이들이 주장하는 요구사항은 크게 △실적 증가에 따른 배당 확대 △기존 자사주 보유물량 전량 소각 △올해부터 2027년까지 3년간 매년 최소 5%에서 10%대의 자사주 매입 소각 등이다. kakim@fnnews.com 김경아 기자
2025-02-27 18:24:21[파이낸셜뉴스] 소액주주가 단일 대주주로 힘을 모아 대주주로서의 지위를 행사할 수 있는 소액주주 의결권 전문 행사 SPC(특수목적법인)이 등장해 이목을 모은다. 최근 주주 권리를 강화하는 상법 개정안이 활발히 논의중인 가운데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주주행동주의가 한 단계 진화 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관련 SPC엔 국내 펀드 1세대로 알려진 손동식 미래에셋운용 전 사장(현 고문)이 주요 주주로 전격 참여했다. ■ 지배구조 악덕 기업엔 경고 VS 경영잘한 기업엔 '백기사' 역할도 2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전직 대형 증권사 임원 출신이 주도해 (주)HSIS를 설립했다. HSIS는 소액주주들의 주식을 모아 의결권을 법인인 HSIS 주식회사에 위임해 단일 대주주로서의 지위를 확보, 최대주주와 동등한 위치에서 소액주주들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해 세운 특수목적을 가진 법인이다. 김영수 HSIS 공동대표는 “그간 소액주주들의 합산주식 수보다 적은 주식수로 소액주주들의 합산주식 수가 최대주주보다 많음에도 불구 상법상 1인지배주주의 권리를 이용해 다수인 소액주주의 권리를 짓밟고 경영권을 장악한 사례가 빈번했다”라며 “기업들이 1인지배주주의 이익에만 부합하는 페이퍼컴퍼니 이용 이중 지배구조, 물적분할 등의 결정을 함으로써 1인 대주주의 이익만 추구하고, 다수이면서 실제로 합산주식수가 1인 대주주보다 더 많은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침해중인 대기업들을 저지하고자 HSIS를 설립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HSIS는 기존의 소액주주 행동주의 방식과 완전히 다른 차원의 개념으로 접근하기 위해 설립 한 의결권 행사 전문 SPC(특수목적법인)로써, 기존의 소액주주의 위임장을 받아 소액주주 행동주의를 하는 틀을 깼다”라며 “각각의 소액주주들이 임치계약서를 작성하고 HSIS 증권계좌에 주식만 이체하면 HSIS자체가 단일대주주로서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게 만든 법인”이라고 부연했다. HSIS는 이미 법원의 허가를 받아 설립 등기증을 발부받고 특허까지 출원 중이다. 즉 의결권 위임에 따라 단일 대주주로서의 지위를 행사하는 합법적인 전문 의결권 대리행사 특수목적법인(SPC)이라는 설명이다. 김 공동 대표는 “경영지배 구조가 바람직하지 못한 기업들에게 바로미터가 되고 싶다”라며 “또한 반대의 경우인, CEO가 경영을 잘하는데 대주주 지분이 낮다면 우호 백기사로도 소액 주주들의 지분을 모으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라고 언급했다. 특히 국내 펀드 1세대이자 미래에셋그룹 창업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손동식 전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도 HSIS에 주요 주주로 전격 참여했다. 손 전 사장은 이달 초 일신상의 사유로 미래에셋운용 CEO직에서 사의를 표명한 이후 현재 고문으로 물러 난 상태다. ■ 화승인더에 주주서한 배포...자사주 소각 등 요구 한편 HSIS는 지난 26일 첫 행동주의 타깃 기업으로 화승인더스트리를 겨냥하고 1차 주주서한을 배포했다. 이들이 주장하는 요구사항은 크게 △실적 증가에 따른 배당확대 △기존 자사주 보유물량 전량 소각 △올해부터 2027년까지 3년간 매년 최소 5%에서 10%대의 자사주 매입 소각 등이 꼽힌다. 앞서 화승인더스트리는 지난 2018년 7월 26일 주주 권리를 보호하고 건전한 기업 지배 구조화 투명한 가치 경영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밑거름이란 믿음으로 ‘화승인더스트리 기업 지배구조 헌장’을 제정했다. HSIS측은 "화승인더스트리는 공장증설 등 설비투자를 하는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잉여현금을 주주환원을 위해 쓸 수 있는 회사이며, 2024년말 기준 현금이 별도기준으로 500억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라면서 ”이에 따라 자금은 충분하다. 2024년말 기준 화승인더스트리의 별도 재무제표를 보면 이익잉여금이 1700억, 보유현금이 500억 이상 되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2025년부터 2027년까지 매년 최소 5%에서 최대 10%씩 자사주를 매입 및 소각한 후, 대주주 지분율을 현재의 33.5%에서 최대 55.97%까지 확대한 뒤 2028년 화승인더스트리와 화승엔터프라이즈를 합병하면 건전한 지배구조를 만들 수 있다”라며 “합병으로 인한 지분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지분율 33.5%이상을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라고 언급했다 HSIS는 화승인더스트리와 화승엔터프라이즈의 합병도 요구했다. 그 이유에 대해선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는 밸류업 정책의 핵심 내용인 중복상장으로 인한 이중지배구조의 폐해를 없애고 모범적인 기업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하다”라며 “실제 지금 화승인더스트리와 화승엔터프라이즈로 분리된 이중지배구조를 건전한 단일지배구조로 바꾸면 영업이익률이 같은 영업환경에서도 바로 2~3% 올라가 기업밸류의 리레이팅이 가능하다”라고 부연했다. 또한 지금 영업권의 몫으로 화승인더스트리가 수취하는 2~3%의 수수료가 단일회사의 순수영업이익으로 합산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HSIS는 “단일지배구조가 되면 그동안 중복상장의 폐해인 더블 카운팅으로 인한 화승인더스트리의 과도한 디스카운트 요인이 해소되어 기업이 제대로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kakim@fnnews.com 김경아 기자
2025-02-27 10:53:03◆ 국가철도공단 <승진> ◇1급 △기획본부 재무전력처장 대진영 △경영본부 노사복지처장 남희목 △강원본부 재산지원처장 유승상 △안전본부 안전총괄처장 윤영호 △시설본부 시설정보처TF장 한승우 △건설본부 고속철도처TF장 정대호 △기술본부 전철처장 홍석진 △건설본부 건축설비처TF장 유승현 <전보> ◇본부장급 △수도권본부장 손병두 △충청본부장 김용두 △강원본부장 양인동 ◇처장급 △미래전략연구원 기술연구처장 이광재 △홍보실장 정기연 △기획본부 사업기획처장 김현성 △경영본부 계약처장 정백 △경영본부 정보관리처장 남희목 △시설본부 시설개량처장 윤증원 △시설본부 시스템개량처TF장 한창우 △시설본부 시설정보처TF장 사덕환 △시설본부 자산운영단 재산계획처장 김태은 △건설본부 건설계획처장 민병균 △건설본부 고속철도처장 백효순 △건설본부 건축설비처TF장 김영성 △건설본부 설계실 건축설계처장 유승현 △기술본부 궤도처장 유진영 △기술본부 차랑처TF장 전공준 △해외사업본부 해외사업1처장 김영균 △수도권본부 사업지원처장 민병창 △수도권본부 재산운영처장 양동범 △수도권본부 시설관리처장 곽명수 △수도권본부 수도권사업단장 고병찬 △수도권본부 수도권광역사업단TF장 허진효 △영남본부 재산지원처장 조복형 △영남본부 영남권사업단장 박창완 △호남본부 재산지원처장 임연민 △충청본부 재산지원처장 박성규 △충청본부 시설관리처장 강태융 △충청본부 충청권사업단장 한승우 ◇부장급 △기획본부 경영성과처 ESG부장 박정범 △시설본부 시스템개량처TF 전철개량TF부장 손동식 △건설본부 설계실 건축설계처 건축설계2부장 송규철 △기술본부 수송계획처 종합시운전부장 장기동 △기술본부 차량처TF 차량계획TF부장 이지현 △해외사업본부 해외사업1처 해외사업1부 윤치만 △수도권본부 재산운영처 북부재산운영부장 김부현 △수도권본부 시설관리처 신호통신개량부장 안재호 △수도권본부 수도권광역사업단TF GTX-A/신안산선PMTF부장 유홍균 △영남본부 영남권사업단 사업총괄부장 이춘경 △호남본부 시설관리처 시설개량부장 김태원 △호남본부 호남권사업단 궤도PM부장 안성진 △충청본부 시설관리처 시스템개량부장 김충섭 △충청본부 충청권사업단 장항선/경부고속PM부장 김기항 △강원본부 시설관리처 시스템개량부장 박충원 △강원본부 강원권사업단 춘천속초PMTF부장 이민우 △강원본부 강원권사업단 도담영천PM부장 이진균
2022-01-17 10:17:19롯데백화점 잠실점이 오는 29일까지 ‘속초 중앙시장 맛집’ 팝업스토어 행사를 진행한다. 이번 팝업스토어는 일자별로 다른 품목으로 진행돼,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만석닭강정’을 12일부터 15일까지, 줄서서 먹는 새우튀김&강정 맛집 ‘속초 아저씨 새우튀김’을 13일부터 19일까지, 생활의 달인에 출연해 인기 고공행진 중인 ‘팡파미유 육쪽 마늘빵’을 16일부터 29일까지 판매한다. 대표 품목으로 ‘만석 닭강정(보통맛 뼈/매운맛 뼈)’를 각 1만 7000원, 1만 8000원에, ‘속초 아저씨 새우튀김’의 씨앗 새우강정을 1만 8000원에, ‘왕새우튀김(7마리)’를 1만원에 선보인다. 한편, 롯데백화점 잠실점은 해당 팝업스토어가 진행되는 동안 청정 환경 속에서 자라 맛과품질이 우수한 ‘강원도 횡성한우 초대전’도 준비해 오는 13일부터 19일까지 ‘횡성한우 국거리·불고기’를 각 100g 당 4500원에 판매한다. 롯데백화점 잠실점 손동식 식품팀장은 “속초에 가서 맛볼 수 있었던 다양한 상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행사를 준비했다”며, “연말 시즌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드시고 싶으신 분들에게 이번 행사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padet80@fnnews.com 박신영 기자
2019-12-13 08:40:30북한에서는 1990년대 중반 최악의 식량난이 일어나 약 33만명이 굶어죽은 '고난의 행군'이 찾아왔다. 북한 정권은 외화벌이를 위해 마약밀매에도 손을 댔다. 지방에서 양귀비(북한명 백도라지)를 생산하면 이를 평양으로 수거해 중국과 옛 소련 등지에 판매하는 작업이었다. 당시 국군포로의 딸인 손명화(56)씨가 근무했던 보위사령부 518소도 양귀비 생산에 관여했다가 일이 터졌다. 중국에서 활동했던 판매책이 붙잡혀 518소에 대해 실토한 것이다. 하룻밤 만에 해산 명령이 떨어졌고, 명분이 필요했던 보위부는 출신성분이 나빴던 손씨에게 모든 혐의를 뒤집어 씌웠다. 당시 보위부 구치소에 들어가면 살아서 나오는 사람은 1000명 중 한 명꼴이라는 얘기가 돌 만큼 악독한 곳이었다. 10개월 동안 고문을 받다가 겨우 살아서 돌아온 손씨는 부모도 없이 1년을 지내온 16살과 14살 아들들을 본 순간 탈북을 결심했다. 2005년 신병교육을 받고 휴가를 나와 군복도 갈아입지 않은 작은 아들의 손을 잡고, 무작정 탈북을 시도했다. 그리고 중국을 거쳐 2005년 12월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아버지 피로 지켜낸 이 나라..유해수습 요청에 '모르쇠'?손씨는 "공항에 내리니 사방에 불이 번쩍번쩍하는 모습을 보고 벌러덩 주저 앉았다"며 "아버지가 피흘려 지켜낸 조국은 전깃불이 남아돌아 펑펑쓰고 있는데, 국군포로였던 아버지는 버림 받아 평생을 어두운 탄광에서 보냈나'는 생각에 화가 났었다"고 말했다.그 때부터 아버지의 명예를 찾겠다고 마음먹었다. '고향인 경남 김해에 유해를 묻어달라'는 유언부터 받들어야 했다. 수 년간 고생 끝에 지난 2013년 9월 북한에 남아있는 여동생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의 유해를 수습한 뒤 북중 접경인 연길로 보낼 수 있었다. 이후 중국 브로커가 보관 중인 유해를 한국에 가져오기 위해 국방부에 도움을 청했지만, '정치적 사고가 생길 수 있다'며 거부당했다. 손씨는 박선영 당시 물망초 국군포로송환위원회 이사장으로부터 800만원을 지원받아 중국으로 향했다. 30년 만에 마주한 아버지의 유해를 안는 순간 '내 아버지다'는 확신이 가슴에 꽂혔다. 아버지의 유골 하나하나에는 부친임을 증명하는 여동생의 필체가 새겨져있었다.손씨는 중국에 27일간 방치됐던 유해를 되찾고, 중국 세관을 통과한 후 당도한 연안부두에서 기막힌 광경을 봤다고 했다. 그는 "유해를 찾으러 갈 때에만 도움의 손길을 거부했던 사람들이 그 곳에 수십 명의 취재진들과 함께 마중나와 있었다"며 "그렇게 울고불고 했어도 모른 척 했으면서 목숨을 걸고 유해를 찾아오니 마치 자신들이 모셔온 것 마냥 행사를 열었다"고 했다. 이후 들려온 소식은 처참했다. 아버지의 유해를 수습했던 여동생과 오빠가 정치범으로 간주돼 수용소로 끌려갔다는 것이다. ■보훈처서 국가유공자증서 받았건만 … "유공자 명단에 없다"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9월 13일 국가보훈처는 아버지 고(故) 손동식씨에게 '대통령 이명박' 직인이 날인된 '국가유공자증서'를 수여했다. 때늦은 감이 있었지만 아버지의 명예를 되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 2016년 5월 보훈처로부터 받은 증서를 토대로 보훈지청에 국가유자녀 신청을 접수했으나 '손동식씨는 국가유공자등록자 명단에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보훈처를 찾아가 따졌더니 '유공자증서를 준 일이 없다'는 겁니다. 손동식이라는 이름조차 등록된 일이 없었습니다. '증서에 적힌 등록번호는 무엇이냐'고 따져도 모르겠다는 대답 뿐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짜 증서를 줬던겁니다."보훈처는 이후 손씨의 부친에 대해 참전유공자로 새롭게 등록했다. 전쟁에서 전사한 국가유공자와는 달리 참전유공자의 유족은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그나마 한국으로 귀환에 성공한 국군포로 출신들은 미지급된 군인 보수를 받을 순 있지만,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들에 대한 지원은 전혀 없다. 국군포로들이 이렇게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 것은 법이 잘못되서라는 판단이 들었다. 손씨는 혼자 힘으로 국가를 상대로 수 차례 소송전을 치렀고, 모두 승소했다. 지난 2016년 8월에는 '대한민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에 대한 예우 등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하지 않은 건은 헌법에 위반된다'며 입법부작위 위헌확인 헌법소원을 냈고, 헌재는 지난 5월 31일 해당 부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현재 6.25 국군포로가족회의 대표를 맡고 있는 손씨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한다. "단 한명의 국군포로들이 남아있더라도 그들의 삶에 행복을 주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2018-10-01 17:48:23북한에서는 1990년대 중반 최악의 식량난이 일어나 약 33만명이 굶어죽은 '고난의 행군'이 찾아왔다. 북한 정권은 외화벌이를 위해 마약밀매에도 손을 댔다. 지방에서 양귀비(북한명 백도라지)를 생산하면 이를 평양으로 수거해 중국과 옛 소련 등지에 판매하는 작업이었다. 당시 국군포로의 딸인 손명화(56)씨가 근무했던 보위사령부 518소도 양귀비 생산에 관여했다가 일이 터졌다. 중국에서 활동했던 판매책이 붙잡혀 518소에 대해 실토한 것이다. 하룻밤 만에 해산 명령이 떨어졌고, 명분이 필요했던 보위부는 출신성분이 나빴던 손씨에게 모든 혐의를 뒤집어 씌웠다. 당시 보위부 구치소에 들어가면 살아서 나오는 사람은 1000명 중 한 명꼴이라는 얘기가 돌 만큼 악독한 곳이었다. 10개월 동안 고문을 받다가 겨우 살아서 돌아온 손씨는 부모도 없이 1년을 지내온 16살과 14살 아들들을 본 순간 탈북을 결심했다. 2005년 신병교육을 받고 휴가를 나와 군복도 갈아입지 않은 작은 아들의 손을 잡고, 무작정 탈북을 시도했다. 그리고 중국을 거쳐 2005년 12월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아버지 피로 지켜낸 이 나라..유해수습 요청에 '모르쇠'? 손씨는 "공항에 내리니 사방에 불이 번쩍번쩍하는 모습을 보고 벌러덩 주저 앉았다"며 "아버지가 피흘려 지켜낸 조국은 전깃불이 남아돌아 펑펑쓰고 있는데, 국군포로였던 아버지는 버림 받아 평생을 어두운 탄광에서 보냈나'는 생각에 화가 났었다"고 말했다. 그 때부터 아버지의 명예를 찾겠다고 마음먹었다. '고향인 경남 김해에 유해를 묻어달라'는 유언부터 받들어야 했다. 수 년간 고생 끝에 지난 2013년 9월 북한에 남아있는 여동생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의 유해를 수습한 뒤 북중 접경인 연길로 보낼 수 있었다. 이후 중국 브로커가 보관 중인 유해를 한국에 가져오기 위해 국방부에 도움을 청했지만, '정치적 사고가 생길 수 있다'며 거부당했다. 손씨는 박선영 당시 물망초 국군포로송환위원회 이사장으로부터 800만원을 지원받아 중국으로 향했다. 30년 만에 마주한 아버지의 유해를 안는 순간 '내 아버지다'는 확신이 가슴에 꽂혔다. 아버지의 유골 하나하나에는 부친임을 증명하는 여동생의 필체가 새겨져있었다. 손씨는 중국에 27일간 방치됐던 유해를 되찾고, 중국 세관을 통과한 후 당도한 연안부두에서 기막힌 광경을 봤다고 했다. 그는 "유해를 찾으러 갈 때에만 도움의 손길을 거부했던 사람들이 그 곳에 수십 명의 취재진들과 함께 마중나와 있었다"며 "그렇게 울고불고 했어도 모른 척 했으면서 목숨을 걸고 유해를 찾아오니 마치 자신들이 모셔온 것 마냥 행사를 열었다"고 했다. 이후 들려온 소식은 처참했다. 아버지의 유해를 수습했던 여동생과 오빠가 정치범으로 간주돼 수용소로 끌려갔다는 것이다. ■보훈처서 국가유공자증서 받았건만.."유공자 명단에 없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9월 13일 국가보훈처는 아버지 고(故) 손동식씨에게 '대통령 이명박' 직인이 날인된 '국가유공자증서'를 수여했다. 때늦은 감이 있었지만 아버지의 명예를 되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 2016년 5월 보훈처로부터 받은 증서를 토대로 보훈지청에 국가유자녀 신청을 접수했으나 '손동식씨는 국가유공자등록자 명단에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보훈처를 찾아가 따졌더니 '유공자증서를 준 일이 없다'는 겁니다. 손동식이라는 이름조차 등록된 일이 없었습니다. '증서에 적힌 등록번호는 무엇이냐'고 따져도 모르겠다는 대답 뿐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짜 증서를 줬던겁니다." 보훈처는 이후 손씨의 부친에 대해 참전유공자로 새롭게 등록했다. 전쟁에서 전사한 국가유공자와는 달리 참전유공자의 유족은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그나마 한국으로 귀환에 성공한 국군포로 출신들은 미지급된 군인 보수를 받을 순 있지만,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들에 대한 지원은 전혀 없다. 국군포로들이 이렇게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 것은 법이 잘못되서라는 판단이 들었다. 손씨는 혼자 힘으로 국가를 상대로 수 차례 소송전을 치렀고, 모두 승소했다. 지난 2016년 8월에는 '대한민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에 대한 예우 등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하지 않은 건은 헌법에 위반된다'며 입법부작위 위헌확인 헌법소원을 냈고, 헌재는 지난 5월 31일 해당 부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현재 6·25 국군포로가족회의 대표를 맡고 있는 손씨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한다. "단 한명의 국군포로 출신이 남아있더라도 그들의 삶에 행복을 주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2018-10-01 14:11:5243호. 6·25 전쟁 당시 북한으로 잡혀간 국군포로를 지칭하는 단어다. '남조선 괴뢰군'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던 43호들은 평생 탄광에서 강제노역을 해야만 했다. 자식들도 2등 인민으로 전락한 채 북한 사회에 녹아들 수 없었다. 올해는 국군의 날 70주년이다. 목숨 바쳐 조국을 지켰건만 고통과 수모만이 가득했던 그들의 한 맺힌 인생을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24살의 앳된 청년은 그해 6.25 전쟁 마지막 보루였던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 투입됐다. 그 후 3년간 치열한 전장을 누볐던 청년은 중부전선의 심장부였던 강원도 금화지구전투에서 총상을 입고 쓰러졌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인민군 복장의 군의관이 상처를 치료 중이었다. 한 청년의 인생을 비극으로 몰아넣은 이날은 '1953년 5월 26일', 정전협정이 맺어진 지 불과 두 달 전이었다. 함경북도 무산군 출신 탈북민 손명화씨(56)에게 아버지 고 손동식씨는 평생 풀지 못할 마음의 응어리다. 소녀시절엔 끝없는 원망을, 머리가 굵어졌을 때에는 무한한 연민을 남긴 채 떠난 분이셨다. ■피고름 묻은 군복 입고 버틴 수용소…이후엔 평생을 탄광서 인민군에게 사로잡혔던 아버지는 이후 평안남도 강동포로수용소로 옮겨졌다. 전쟁의 막바지였던 당시 아버지를 포함한 29명의 포로들은 마지막 포로라는 상징성 때문에 수용소에서 '29명조'로 통했다. 포로생활 후 아버지는 무산군에 위치한 광산으로 향했다. 그 후는 말 그대로 노예의 삶이었다. 29명조에게는 전향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전쟁이 끝날 때쯤 포로가 됐으니 인민군을 제일 많이 죽였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아버지는 평생 전깃불을 못보고 사셨습니다. 52살에 폐암 진단을 받고서야 탄광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매일 돌가루를 들이마신 아버지의 폐는 처참히 망가져 있었다. 그러나 가족과도 찢어져 무산군 시내에서 70㎞나 떨어진 산골에 홀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통나무에 진흙을 발라 만든 움막에 살면서 갱도를 지탱하는 갱목용 목재를 조달했다. 그렇게 7년을 홀로 사셨던 아버지는 산송장이 된 채 소달구지에 실려 집으로 왔다. 병원으로 갔을 때는 암이 퍼져 손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집에 혼자 남아 간병을 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통일이 되면 아버지 고향에 꼭 가라. 아버지 묘를 파서라도 거기다가 꼭 묻어다오." 아버지는 행여 자식들에게 피해가 갈까 싶어 평생 숨겨온 비밀도 명화씨에게 고백했다. 당신의 군번은 'K'로 시작했다는 유언이었다. 명화씨가 스물셋이 되던 해, 아버지는 자신이 국군이었다고 처음으로 밝혔다. 그리고 집에 온 지 열흘 만에 세상을 떠나셨다. 1984년 1월 11일 59세의 나이로.■아버지 주홍글씨에 발목 잡힌 자식들…남편도 떠났다 북한은 악명 높은 연좌제가 적용되는 곳이다. 어머니 집안이 북한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백두산 줄기' 출신이었음에도 명화씨 6남매는 한 명도 출세를 못했다. 연좌제는 명화씨의 발목도 잡았다. 바이올린 연주와 시낭송에 재능이 있었던 명화씨는 청소년 콩쿠르 3등을 기록한 실력에도 예술대학 입시에 번번이 낙방했다. "시험에서 떨어진 후 너무 허무해서 청진예술단이 되겠다며 3개월 동안 가출을 했어요. 그때 엄마가 청진으로 찾아와 '상처를 받을까 말을 안 했는데, 너희 아버지 때문에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셨죠. 너무 억울한 마음에 양잿물을 먹고 죽으려고 했으나 병원으로 옮겨져 겨우 살았습니다." 이후 결혼을 결심하고, 경찰과 연애를 했다. 어느 날 그는 '43호'라는 도장이 찍혀있는 아버지의 주민대장을 내밀며 말했다. "43호는 국군포로라는 뜻이다. 너랑 살면 내가 옷을 벗어야 하니 포기하자." 그 뒤로 장교를 만났다. 결혼을 하고 큰아들을 낳았다. 남편도 진급하면서 앞날이 풀리는 듯했으나 돌연 옷을 벗게 됐다. "남편 전역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자기가 옷을 벗은 이유를 몰랐던 신랑에게 '내 아버지가 국군포로였기 때문이다'란 말은 할 수 없었어요." 명화씨는 고향인 무산군으로 돌아가 둘째 아들을 낳았다. 남편은 일자리를 구하던 중 명화씨 집안의 비밀을 알게 됐다. 진실이 밝혀지자 거대한 갈등의 골이 생겨났다. 몇년 뒤 남편은 "내 장래를 위해 더 이상 너하고 살 용기가 안난다"며 집을 나갔다. 혼자 힘으로 억척같이 아이들을 키워나가던 중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시련이 찾아왔다. '고난의 행군'이 닥쳤을 무렵이었다.<다음화에 계속>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2018-09-30 17:18:3643호. 6.25 전쟁 당시 북한으로 끌려간 국군포로를 지칭하는 단어다. '남조선 괴뢰군'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던 43호들은 평생 탄광에서 강제노역을 해야만 했다. 자식들도 2등 인민으로 전락, 북한 사회에 녹아들 수 없었다. 올해는 국군의 날 제 70주년이다. 목숨바쳐 조국을 지켰건만 고통과 수모만이 가득했던 그들의 한 맺힌 인생을 들여다 봤다.<편집자주>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24살의 앳된 청년은 그 해 한국전쟁 마지막 보루였던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 투입됐다. 그 후 3년간 치열한 전장을 누볐던 청년은 중부전선의 심장부였던 강원도 금화지구전투에서 총상을 입고 쓰러졌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인민군 복장을 한 군의관이 상처를 치료 중이었다. 한 청년의 인생을 비극으로 몰아넣은 이 날은 '1953년 5월 26일', 정전협정이 맺어진 지 불과 두달 전이었다. 함경북도 무산군 출신 탈북민 손명화씨(56)에게 아버지 고(故) 손동식씨는 평생 풀지 못 할 마음의 응어리다. 소녀였을 때에는 끝 없는 원망을, 머리가 굵어졌을 때에는 무한한 연민을 남긴 채 떠난 분이셨다. ■피고름 묻은 군복입고 버틴 수용소, 이후 평생을 탄광서 인민군에게 사로잡혔던 아버지는 이후 평안남도 강동포로수용소로 옮겨졌다. 전쟁의 막바지였던 당시 아버지를 포함한 29명의 포로들은 마지막 포로라는 상징성 때문에 수용소에서 '29명조'로 통했다. 이들은 한여름에 갈아입을 의복도 받지 못한 채 피와 고름으로 더렵혀진 군복을 입고 수용소에서 두 달을 견뎌야 했다. 포로생활이 끝나고 아버지는 무산군에 위치한 광산으로 향했다. 그 후는 말 그대로 노예의 삶이었다. 29명조에게는 전향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전쟁이 끝날 때쯤 포로가 됐으니 인민군을 제일 많이 죽였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아버지는 평생 전깃불을 못보고 사셨습니다. 캄캄한 지하 갱도에서 일생을 보내셔야 했어요. 52살에 폐암 진단을 받고서야 탄광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30년이 가까운 세월 동안 매일 돌가루를 들이마신 아버지의 폐는 처참히 망가져 있었다. 그러나 탄광을 벗어나서도 '악질 분자'로 낙인 찍힌 이에게는 조금의 휴식도 허락되지 않았다. 오히려 가족과도 찢어져 무산군 시내에서 70km나 떨어진 산골에 홀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통나무에 진흙을 발라 만든 움막에 살면서 갱도를 지탱하는 갱목용 목재를 조달했다. 주어진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는 날에는 불려나가 비판서(반성문)를 써야만 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였다. 명화씨는 매주 배낭에 등불용 기름과 쌀, 간장 등을 채워서 아버지에게 가져다줬다. 7월 무더운 여름날 아버지의 어깨는 목재를 질질끌면서 생긴 마찰에 피부가 벗겨져 시뻘개져 있었다. 상처에 분가루를 뿌리고, 천으로 감싸면서 명화씨는 평생의 한으로 남을 광경을 봤다고 했다. 그렇게 7년을 홀로 사셨던 아버지는 산송장이 된 채 소달구지에 실려 집으로 왔다. 병원으로 갔을 때는 암이 퍼져 손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동생들이 일을 나간 후 집에 혼자남아 간병을 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통일이 되겠지. 통일이 되면 아버지 고향에 꼭 가라. 네가 갈 적에는 아버지 묘를 파서라도 거기다가 꼭 묻어다오." 아버지는 행여 자식들에게 피해가 갈까 싶어 평생 숨겨온 비밀도 명화씨에게 고백했다. 당신의 군번은 'K'로 시작했다는 유언이었다. 명화씨가 스물셋이 되던 해, 아버지는 자신이 국군이었다고 처음으로 밝혔다. 그리고 집에 온 지 열흘만에 홀연히 세상을 떠나셨다. 1984년 1월 11일 59세의 나이로. ■주홍글씨에 발목 잡힌 자식들..남편도 떠났다 명화씨는 사실 아버지의 배경을 이미 알고 있었다. 북한은 악명높은 연좌제가 적용되는 곳이다. 어머니 집안이 북한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백두산 줄기' 출신이었음에도 명화씨 6남매는 한 명도 출세를 못했다. 북한에서는 출신성분이 나쁘더라도 가족 내에 반혁명과 반동을 못하게 할 목적으로 공산당 당원을 두게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명화씨 집안에는 당원이 없었다. 어린 시절 오빠들이 당원이 못되자 어머니는 아버지 탓을 했지만, 아버지는 한마디도 못하셨다. 그러곤 말 없이 술만 마시면 우셨다. 연좌제는 명화씨의 발목도 잡았다. 바이올린 연주와 시낭송에 재능이 있었던 명화씨는 청소년 콩쿨 3등을 기록한 실력에도 예술대학 입시에 번번히 낙방했다. "시험에서 떨어진 후 너무 허무해서 청진예술단이 되겠다며 3개월 동안 가출을 했어요. 그때 엄마가 청진으로 찾아와 '상처를 받을까 말을 안 했는데, 너희 아버지 때문에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셨죠. 너무 억울한 마음에 양잿물을 먹고 죽으려고 했으나 병원으로 옮겨져 겨우 살았습니다." 이후 결혼을 결심하고, 경찰과 연애를 했다. 어느날 그는 '43호'라는 도장이 찍혀있는 아버지의 주민대장을 내밀며 말했다. "43호는 국군포로라는 뜻이다. 너랑 살면 내가 옷을 벗어야 하니 포기하자." 출신성분이 나쁜 줄만 알았지 국군포로 출신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그제서야 집안에 당원이 없던 이유가 이해됐다. 그 뒤로 장교를 만났다. 남편 쪽의 출신성분이 좋으면 내 자식들은 출세할 수 있을 거란 믿음 때문이었다. 결혼을 하고 큰 아들을 낳았다. 남편도 진급하면서 앞날이 풀리는 듯 했으나 돌연 이유도 모른 채 옷을 벗게 됐다. "남편의 전역이 결정된 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자기가 옷을 벗은 이유를 몰랐던 신랑에게 '내 아버지가 국군포로였기 때문이다'란 말은 할 수 없었어요." 명화씨는 고향인 무산군으로 돌아가 둘째 아들을 낳았다. 남편은 일자리를 구하던 중 명화씨 집안의 비밀을 알게 됐다. 진실이 밝혀지자 거대한 갈등의 골이 생겨났다. "왜 나를 속였나. 네가 아니었으면 나는 출세할 사람인데..." 그렇게 산 지 몇년 뒤 남편은 "내 장래를 위해 더 이상 너하고 살 용기가 안난다"며 집을 나갔다. 큰 애가 5살, 작은 애가 3살 때 일이었다. 혼자 힘으로 억척같이 아이들을 키워나가던 중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시련이 찾아왔다. '고난의 행군'이 닥쳤을 무렵이었다. <다음화에 계속>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2018-09-29 21:52:01정보보안 전문기업 윈스테크넷은 5일 공개 웹 게시판인 제로보드, 텍스트큐브, Wordpress에서 악성코드 유포 및 공격이 가능한 XSS(Cross Site Script)취약점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취약점은 제로보드, 텍스트큐브, Wordpress 관리자가 게시판에 HTML로 게시글을 작성시, 사용자가 직접 HTML 태그의 파라미터의 조작과 EMBED 태그의 파라미터 조작이 가능하다는 부분에 착안된 것이다. 이 취약점에 노출 될 경우 공격자는 필터링 정책을 우회하는 악의적인 스크립트를 작성해, 웹 페이지를 열람하는 사용자 브라우져에서 임의의 코드가 실행되도록 공격하거나, 악성코드 유포, 사용자 세션 정보 탈취 등의 행위를 수행할 우려가 있다고 사측은 밝혔다. 윈스테크넷 WSEC 손동식 센터장은 "공개용 게시판은 많은 사용자가 사용하고 있는 만큼, 게시판에 존재하는 취약점으로 인해 영향을 받는 범위가 매우 넓다" 며, "사용자는 보안패치를 최신으로 유지하고, 취약점 공격에 대응하기 위하여 수시로 게시판의 컨텐츠를 점검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kiduk@fnnews.com 김기덕 기자
2013-07-05 09:2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