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스마트도시 정책에 대한 유럽 왕가의 관심이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 올 초부터 우리나라를 국빈방문한 유럽 왕가들은 바쁜 일정을 쪼개 서울시를 방문하는 것이 필수코스가 됐다.서울시는 24일 박원순 시장이 우리나라를 국빈방문 중인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과 레티시아 왕비에게 서울시청에서 명예시민증을 수여했다고 밝혔다. 올 들어 서울에서 명예시민증을 받은 세번째 유럽 왕가다. 필리페 6세 스페인 국왕은 아버지 카를로스 1세에 이어 2014년 6월 국왕에 즉위했다. 왕세자 신분이던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누나 크리스티나 공주의 요트경기를 참관하기 위해 서울을 찾은 이후 두 번째 서울 방문이다.명예시민증 수여식에는 호세프 보렐 외교부 장관, 마리아 레예 산업통상관광부 장관, 이그나시오 모로 주한스페인대사 등 40여명의 스페인 공식방문단이 참석했다.수여식에 앞서 박 시장은 스페인 국왕에게 스페인 측에서 관심을 표명한 '디지털 시민시장실'을 직접 시연했다. 실시간 재난관리와 생활물가 변동상황 등 시민 삶에 직결된 데이터를 상시 시민에게 공개하고 있는 최첨단 시스템이다. 또 박 시장과 스페인 국왕은 '서울시와 스페인 도시들 간 교류협력 강화'를 화두로 면담했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기자
2019-10-24 18:45:211905년 4월 초 대한제국 정부는 최초로 이민법을 공포했다. 그 시기가 참으로 묘하다. 러일전쟁이 진행 중이었고, 한반도의 육지와 바다는 전쟁터로 변모한 상태였다. 대륙과 도서에 긴장이 발생하면 양쪽을 연결하는 반도는 긴장이 폭발하는 전장이 되는 것이 지정학적 문제다. 1904년 봄부터 진남포와 원산 그리고 인천과 부산 등의 항구에는 광고문이 붙었다. "녹금(綠金)을 캐러 갑시다"라는 문구다. 1903년 하와이 이민의 결과는 백금이라는 부를 캐러 가는 것이라는 인상이 심어졌는데, 이번에는 녹금이란다. 단 한 번의 하와이 이민은 사탕수수 농장의 계약노동자 모집에 응했던 것인데, 캘리포니아주의 일본 이민 반대 법안으로 조선인도 건너갈 수가 없게 됐다.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으로부터 노동자를 모집하는 광고에 녹금이라는 유혹 단어가 삽입되었다. 1905년 3월 말 인천에서 1031명의 조선인이 고국을 떠났다. 소위 계약노동이라는 조건이었다. 한반도 주변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외국 화물선이 근접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인 중간상인의 개입이 가까스로 태평양을 횡단하는 네덜란드 화물선을 잡았다. 그 배를 보낸 다음, 곧 바로 4월에 이민법이 공포되었다는 사실은 중간상인과 대한제국 공무원 사이의 농간 냄새가 진하게 배어난다. 배삯을 비롯한 신청 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에, 형편이 어지간히 되는 사람들이 나갔다. 배에서 어린이가 2명 출생했고(한 명의 이름은 인천에서 출발했다고 仁出이 되었다), 1명이 사망한 결과 1032명이 멕시코의 태평양 항구 아카풀코에 도착한 것은 그해 5월 말이었고, 육로로 베라크루즈항으로 이동해 다시 배를 타고 유카탄주의 메리다로 들어갔다. 그렇게 팔려 나간 그들을 기다렸던 노동 과정은 열대의 지옥이었다. 사람보다 훨씬 큰 에네켄이란 선인장의 잎사귀를 잘라서 다발로 묶고, 집하장까지 운반하는 중노동이었다. 그 잎을 삶아서 남는 줄거리가 밧줄의 원료가 된다. 선박에 필수적인 밧줄 원료를 생산하는 과정이었다. 에네켄 잎사귀에 솟아난 손가락 길이의 침에 찔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설상가상으로 조선인 노동자들은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했다. 1898년 미서전쟁의 전쟁 배상으로 스페인이 미국에 필리핀을 양도했다. 미국은 필리핀에서 마닐라 삼이라는 양질의 밧줄 원료를 개발했기 때문에,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은 사양산업이 되었다. 조선인 계약노동자들은 망해가는 멕시코 산업의 막차를 탄 셈이었다.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조선인들은 동포 인신매매업자 이해영의 꼬임으로 다시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팔려 나갔다. 현재 쿠바의 아바나와 마탄사스에 거주하는 한인동포는 그들의 후예다. 1979년 여름 나는 예일대학의 국제교류숙소에서 보냈다. 입소하는 날 초인종을 눌렀더니, 동양인 여성이 나왔는데 하마터면 한국말이 나올 뻔했다. 얼마 지난 후 일요일 응접실에 갔더니, 그가 가족과 함께 나와 있었다. 남편은 휴스턴대학 스페인문학 교수였고, 자녀 둘이 있었다. 소통을 하고 보니 그는 파나마 태생이며, 할머니가 한국인이라고 했다. 생김새가 전형적인 한국인 느낌 백퍼센트였다. 1986년 11월 나는 페루의 리마에서 그곳 한인회장의 안내로 '알레한드로 킴'이라는 사내를 만났다. 길거리의 코너에서 건물의 창문 틀에 담배 몇 개와 사탕 몇 알을 올려 놓고 팔고 있었다. 생김새는 안데스의 전형적인 꿰추아 인디오였다. 한사코 자신은 "꼬레아노"라고 목청을 높인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을 했다고. 1987년 1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서울공대를 졸업한 광산무역업자를 만났다. 그 선배는 주사(朱砂, cinnabar)를 수입해 아시아로 판매했다. 전 세계적으로 주사 생산지로 알려진 곳은 세 곳이란다: 북아프리카의 마라케시산맥, 미국 남서부의 애리조나 일대 사막, 그리고 아르헨티나 북부의 후후이 사막. 이 지역의 공통점은 산의 돌이 붉은색. 볼리비아와의 국경지대인 후후이의 산악지대 답사를 하면서 만난 곳이 '뿌에블라 꼬레아노(한국인촌)'라고 했다. 후후이에 거주하는 최천명씨의 주소를 받아서 아내와 함께 방문하였다. 나의 가설은 유카탄 반도에서 흘러내린 한국인들 일부는 쿠바로 향했고(1920년 경), 일부는 파나마를 거쳐서 페루에 도착하였다. 그들 중 일부는 일자리를 찾아서 볼리비아 남부의 포토시와 수크레 등의 광산지대에 도달했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1932~35년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사이에 차코전쟁(Chaco War, 목마름의 전쟁)이 터졌다. 볼리비아가 패전해 엄청난 영토를 파라과이에 빼앗겼다. 볼리비아의 광산에 터전을 잡았던 한국 이민자들은 전쟁을 피해 아르헨티나 쪽으로 피난했을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러일전쟁 피난민이 30년 만에 다시 남미에서 차코전쟁의 피난민 신세가 되었다. 후후이는 아르헨티나 북부의 사막지대로 주변의 산들은 붉은색 일색이었다. 음식점을 찾으니 중국집이 있었다. 홍콩으로부터 이사 온 젊은 부부가 가게를 연 지 2년 되었다고. 이 동네에 한국인 옷가게를 하는 가정이 두 집. 그중의 한 분이 최천명씨였다. 그의 가게 이름은 '꼬레아(Corea)'. 해마다 인디오 행색을 한 뿌에블라 꼬레아노들이 남부여대하여 옷을 사러 온다고 했다. 최씨의 제안으로 우리는 뿌에블라 꼬레아노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최씨의 친구인 레바논 이민자 호세가 기꺼이 차량을 제공하고 운전을 했다. 풀 한 포기 없는 자갈길 산악을 오르는 과정에 재규어 한 마리가 차 밑으로 들어가는 일도 있었다. 해발이 높아질수록 자갈의 크기가 커지면서, 드디어 '귀신의 목(garganta del diablo)'이라는 지점에 이르렀다. 바위 산의 협곡이 시작되는 곳이다. 지진 여파로 산이 무너져서 협곡은 바위 덩어리로 가득했다. 더 이상 진행은 불가능이었다. 조금 있으니 바위들 사이로 모자를 쓴 인디오 한 명이 나귀를 끌고 내려온다. '꼬까'를 얼마나 씹었는지 입 주위가 시퍼렇고, 절반은 취한 상태다. 뿌에블라 꼬레아노를 물으니, 연신 산 위로 손가락질을 하면서 횡설수설이다. 20세기 초 조선인들이 일본인 거간꾼이 개입된 인신매매 조직망에 걸렸던 사건이 멕시코로의 이민이었다. 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한 난민 대열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내가 페루의 알레한드로 킴일 수도, 뿌에블라 꼬레아노의 난민일 수도 있다. 나에게 잠재된 내면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전쟁광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가 없는 인간 세상이 원망스럽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4-11-18 18:34:221905년 4월 초 대한제국 정부는 최초로 이민법을 공포했다. 그 시기가 참으로 묘하다. 러일전쟁이 진행중이었고, 한반도의 육지와 바다는 전장터로 변모한 상태였다. 대륙과 도서에 긴장이 발생하면 양쪽을 연결하는 반도는 긴장이 폭발하는 전장이 되는 것이 지정학적 문제다. 1904년 봄부터 진남포와 원산 그리고 인천과 부산 등의 항구에는 광고문이 붙었다. “녹금(綠金)을 캐러 갑시다”라는 문구다. 1903년 하와이 이민의 결과는 백금이라는 부를 캐러 가는 것이라는 인상이 심어졌는데, 이번에는 녹금이란다. 단 한 번의 하와이 이민은 사탕수수 농장의 계약노동자 모집에 응했던 것인데, 칼리포니아주의 일본 이민 반대 법안으로 조선인도 건너갈 수가 없게 됐다.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으로부터 노동자를 모집하는 광고에 녹금이라는 유혹 단어가 삽입되었다. 1905년 3월 말 인천에서 1031명의 조선인이 고국을 떠났다. 소위 계약노동이라는 조건이었다. 한반도 주변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외국 화물선이 근접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인 중간상인의 개입이 가까스로 태평양을 횡단하는 네델란드 화물선을 잡았다. 그 배를 보낸 다음, 곧 바로 4월에 이민법이 공포되었다는 사실은 중간상인과 대한제국 공무원 사이의 농간 냄새가 진하게 배어난다. 배삯을 비롯한 신청 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에, 형편이 어지간히 되는 사람들이 나갔다. 배에서 어린이가 2명 출생했고(한 명의 이름은 인천에서 출발했다고 仁出이 되었다), 1명이 사망한 결과 1032명이 멕시코의 태평양 항구 아카풀코에 도착한 것은 그해 5월 말이었고, 육로로 베라크루즈 항으로 이동해 다시 배를 타고 유카탄주의 메리다로 들어갔다. 그렇게 팔려 나간 그들을 기다렸던 노동 과정은 열대의 지옥이었다. 사람보다 훨씬 큰 에네켄이란 선인장의 잎사귀를 잘라서 다발로 묶고, 집하장까지 운반하는 중노동이었다. 그 잎을 삶아서 남는 줄거리가 밧줄의 원료가 된다. 선박에 필수적인 밧줄 원료를 생산하는 과정이었다. 에네켄 잎사귀에 솟아난 손가락 길이의 침에 찔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설상가상으로 조선인 노동자들은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했다. 1898년 미서전쟁의 전쟁 배상으로 스페인이 미국에게 필리핀을 양도했다. 미국은 필리핀에서 마닐라 삼이라는 양질의 밧줄 원료를 개발했기 때문에,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은 사양산업이 되었다. 조선인 계약노동자들은 망해가는 멕시코 산업의 막차를 탄 셈이었다.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조선인들은 동포 인신매매업자 이해영의 꼬임으로 다시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팔려 나갔다. 현재 쿠바의 아바나와 마탄사스에 거주하는 한인동포는 그들의 후예다. 1979년 여름 나는 예일대학의 국제교류숙소에서 보냈다. 입소하는 날 초인종을 눌렀더니, 동양인 여성이 나왔는데 하마터면 한국말이 나올 뻔했다. 얼마 지난 후 일요일 응접실에 갔더니, 그녀가 가족과 함께 나와 있었다. 남편은 휴스턴대학 스페인문학 교수였고, 자녀 둘이 있었다. 소통을 하고 보니, 그녀는 파나마 태생이며, 할머니가 한국인이라고 했다. 생김새가 전형적인 한국인 느낌 백퍼센트였다. 1986년 11월 나는 페루의 리마에서 그곳 한인회장의 안내로 ‘알레한드로 킴’이라는 사내를 만났다. 길거리의 코너에서 건물의 창문 틀에 담배 몇 개와 사탕 몇 알을 올려 놓고 팔고 있었다. 생김새는 안데스의 전형적인 꿰추아 인디오였다. 한사코 자신은 “꼬레아노”라고 목청을 높인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을 했다고. 1987년 1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서울공대를 졸업한 광산무역업자를 만났다. 그 선배는 주사(朱砂, cinnabar)를 수입해 아시아로 판매했다. 전세계적으로 주사 생산지로 알려진 곳은 세 곳이란다: 북아프리카의 마라케시 산맥, 미국 남서부의 아리조나 일대 사막, 그리고 아르헨티나 북부의 후후이 사막. 이 지역의 공통점은 산의 돌이 붉은색. 볼리비아와의 국경지대인 후후이의 산악지대 답사를 하면서 만난 곳이 '뿌에블라 꼬레아노(한국인촌)'라고 했다. 후후이에 거주하는 최천명씨의 주소를 받아서 아내와 함께 방문하였다. 나의 가설은 유카탄 반도에서 흘러내린 한국인들 일부는 쿠바로 향했고(1920년 경), 일부는 파나마를 거쳐서 페루에 도착하였다. 그들 중 일부는 일자리를 찾아서 볼리비아 남부의 포토시와 수크레 등의 광산지대에 도달했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1932~35년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사이에 차코전쟁(Chaco War, 목마름의 전쟁)이 터졌다. 볼리비아가 패전해 엄청난 영토를 파라과이에 빼앗겼다. 볼리비아의 광산에 터전을 잡았던 한국 이민자들은 전쟁을 피해 아르헨티나 쪽으로 피난했을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러일전쟁 피난민이 30년 만에 다시 남미에서 차코전쟁 피난민 신세가 되었다. 후후이는 아르헨티나 북부의 사막지대로 주변의 산들은 붉은색 일색이었다. 음식점을 찾으니 중국집이 있었다. 홍콩으로부터 이사온 젊은 부부가 가게를 연 지 2년 되었다고. 이 동네에 한국인 옷가게를 하는 가정이 두 집. 그 중의 한 분이 최천명씨였다. 그의 가게 이름은 '꼬레아(Corea)'. 해마다 인디오 행색을 한 ‘뿌에블라 꼬레아노’들이 남부여대하여 옷을 사러 온다고 했다. 최씨의 제안으로 우리는 뿌에블라 꼬레아노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최씨의 친구인 레바논 이민자 호세가 기꺼이 차량을 제공하고 운전을 했다. 풀 한 포기 없는 자갈길 산악을 오르는 과정에 재규어 한 마리가 차 밑으로 들어가는 일도 있었다. 해발이 높아질수록 자갈의 크기가 커지면서, 드디어 ‘귀신의 목(garganta del diablo)'이라는 지점에 이르렀다. 바위 산의 협곡이 시작되는 곳이다. 지진 여파로 산이 무너져서 협곡은 바위 덩어리로 가득했다. 더 이상 진행은 불가능이었다. 조금 있으니 바위들 사이로 모자를 쓴 인디오 한 명이 나귀를 끌고 내려온다. ‘꼬까’를 얼마나 씹었는지 입 주위가 시퍼렇고, 절반은 취한 상태다. '뿌에블라 꼬레아노'를 물으니, 연신 산 위로 손가락질을 하면서 횡설수설이다. 20세기 초 조선인들이 일본인 거간꾼이 개입된 인신매매 조직망에 걸렸던 사건이 멕시코로의 이민이었다. 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한 난민 대열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내가 페루의 ‘알레한드로 킴’일 수도, '뿌에블라 꼬레아노'의 난민일 수도 있다. 나에게 잠재된 내면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전쟁광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가 없는 인간세상이 원망스럽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4-11-16 16:46:08[파이낸셜뉴스] 최악의 홍수 참사가 발생한 스페인에서 피해 지역을 찾은 스페인 국왕 부부가 분노한 수재민들에게 욕설과 함께 진흙을 맞는 봉변을 당했다. 3일(현지시간) AFP, EFE 통신 등에 따르면 펠리페 6세는 이번 수해로 최소 62명 사망자가 나온 발렌시아주 파이포르타를 레티시아 왕비, 산체스 총리, 카를로스 마손 발렌시아 주지사와 함께 방문했다. 성난 주민들은 피해 지역을 걷는 펠리페 6세와 산체스 총리 일행을 에워싸고 진흙과 오물을 집어 던졌으며, "살인자들", "수치", "꺼지라"고 욕설했다. 한 청년이 국왕을 향해 "국가의 이번 수해 대응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외치는 영상이 온라인에 공개되기도 했다. 경호원들이 급히 우산을 씌우며 보호했으나 펠리페 6세와 레티시아 왕비는 얼굴과 옷에 진흙을 맞는 수모를 피할 순 없었다. 펠리페 6세는 다른 일행보다 더 오래 머물며 주민들을 위로하려 시도하는 모습이었지만 시간을 단축해 서둘러 방문을 종료했다고 AFP 등은 전했다. 파이포르타에 이어 찾으려했던 다른 수해 지역 방문도 취소됐다. 스페인 왕실은 대중적인 이미지를 크게 신경 쓰며 국왕을 향해 물체를 던지거나 욕설을 퍼붓는 일은 아주 드물다고 한다. 스페인 방송 RTVE는 이날 군중이 던진 물체에는 돌과 딱딱한 물체가 섞여 있었으며 경호원 두 명이 다쳐 치료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또한 산체스 총리의 차량 창문도 깨진 것으로 전해졌다. 펠리페 6세는 이후 SNS를 통해 "피해 주민들의 분노와 좌절을 이해해야 한다"며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온전하다는 희망과 보장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국왕과 정부에 이처럼 분노한 것은 이번 수해가 당국의 안이한 대응 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페인에서는 지난달 29일 쏟아진 기습 폭우로 최소 217명이 사망한 것으로 3일 집계됐다. 수십 명의 소재가 아직 파악되지 않았고 약 3000가구가 여전히 단전을 겪고 있다. 스페인 기상청이 폭우 '적색경보'를 발령한 때부터 지역 주민에게 긴급 재난 안전문자가 발송되기까지 10시간 넘게 걸리는 등 당국의 미흡한 대응이 인명피해를 키웠고 이후 수색과 복구 작업도 느리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최소 150명의 목숨을 앗아간 1973년 폭우 이래 스페인 최악의 홍수"라고 전했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11-04 06:53:28[파이낸셜뉴스] 사탕을 사주겠다는 말에 속아 따라갔다가 유괴됐던 미국 꼬마가 70여년 만에 가족을 찾아 극적 재회한 사연이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2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루이스 아르만도 알비노가 지난 6월 온라인 조상 찾기 검사와 경찰, 연방수사국(FBI)의 도움으로 오클랜드에 사는 가족들을 70여년 만에 만났다. 푸에르토리코에서 태어난 알비노는 지난 1951년 2월21일 형인 로저 알비노와 함께 웨스트 오클랜드의 한 공원을 찾았다가 스페인어를 하는 한 여자가 사탕을 사주겠다는 말에 속아 따라갔다가 가족과 생이별했다. 유괴된 이후 동부지역에 사는 한 부부의 아들로 살아온 알비노는 해병대 소속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으며, 제대 이후 소방관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지난 2020년 조카딸인 알리다 알레퀸(63)이 재미 삼아 온라인 DNA 검사를 받았는데, 알레퀸은 검사 결과가 22%나 일치하는 한 남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알레퀸은 유괴된 삼촌일 수 있다는 생각에 조사 작업을 벌였으나 당시에는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올해 초 오클랜드 공공도서관에서 알비노의 사진이 실린 예전 신문 기사를 확인한 알레퀸은 오클랜드경찰에 이 사실을 알렸다. 경찰은 알비노 실종사건에 대해 재수사에 나섰고, 알비노와 그의 여동생인 알레퀸의 어머니 DNA 검사 등을 통해 알비노가 실종됐던 꼬마임을 확인했다. 알비노는 FBI의 지원으로 지난 6월24일 오클랜드를 찾아 여동생인 알레퀸의 어머니와 형인 로저 알비노 등과 70여년만에 재회했다. 동생 실종 이후 여러 차례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던 형 로저 알비노는 동생을 찾은 지 두 달여만인 지난달 세상을 떠났다. 알레퀸은 "외할머니가 지난 2005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아들이 살아있을 것이란 희망을 버리지 않았었다"면서 "70년 넘게 실종상태였지만 알비노는 항상 가족들의 마음속에 있었다"고 전했다. newssu@fnnews.com 김수연 기자
2024-09-24 07:31:35[파이낸셜뉴스] 말레이시아의 한 예비부부가 철교 위에서 사진을 찍으려다 참변을 당할 뻔한 사실이 알려졌다. 다행히 열차가 이들을 발견하고 속도를 늦춰 화는 면했지만 열차 운행을 지연시켰다는 이유로 벌금형에 처해졌다. 12일 베르나마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최근 말레이시아 켈란탄주 타나메라에 있는 길리마르드 다리에서 찍힌 영상이 SNS에서 화제가 됐다. 영상 속에는 흰색 예복을 갖춰 입은 남녀가 다리를 빠져나오는 가운데 이들 뒤에서 열차가 경고음을 내며 천천히 뒤따르고 있다. 먼저 황급히 뛰어나온 남성이 카메라를 들고 있고, 뒤따라오는 남녀가 결혼 예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이들은 다리 위에서 결혼사진을 찍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상 공개 후 현지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특히 촬영기사가 황급히 다리를 빠져나오는 것과 달리 예복을 입은 남녀는 느린 걸음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담겨 "이토록 위험한데 커플은 아무 일도 없는 듯이 걷고 있다"는 지적이다. 매체에 따르면 해당 철교는 열차만 다닐 수 있는 다리로 사람이 걸어갈 수 있는 인도는 따로 설치되어 있지 않다. 이와 관련 말레이시아 철도 당국(KTMB)은 "해당 열차가 이들이 안전하게 철로를 빠져나갈 수 있도록 속도를 늦추는 바람에 운행이 지연됐다"며 "철로 위에서는 촬영이 법적으로 전면 금지돼 있다. 교통법 126조에 따라 이러한 행위는 500링깃(약 15만 4000원)의 벌금이 부과된다"고 전했다. 한편 '인생 사진'을 찍으려다 사망하는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3일 페루의 잉카 유적지 마추픽추에서 관광객이 셀카를 찍다가 중심을 잃고 3m아래로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달 21일 인도 뭄바이에서 활동하며 30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인도의 유명 인플루언서 안비 캄다르가 SNS에 올릴 영상을 촬영하다 협곡으로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4월에는 인도네시아 유명 화산 분화구에서 사진을 찍던 중국인 여성이 절벽 아래로 추락해 숨지는가 하면, 남아프리카공화국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코끼리떼에 다가간 스페인 관광객이 코끼리에 밟혀 사망하기도 했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8-12 07:55:16【파이낸셜뉴스 신안=황태종 기자】전남 신안군이 압해읍 일원에 '위대한 낙서마을(GRAFFITI TOWN)'을 조성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30일 신안군에 따르면 '1섬 1뮤지엄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12월부터 월드클래스 그라피티 작가인 미국의 존원(JonOne), 스페인의 덜크(Dulk)가 참여한 가운데 '위대한 낙서마을(GRAFFITI TOWN)'을 만들고 있다. 오는 9월에는 포르투갈의 빌스(Vhils)도 참여할 예정이다. 신안군은 육지와의 접근성 등 압해읍이 가진 다양한 매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생기 있고 활력 있는 신안의 관문을 만들고자 청년층을 유입할 수 있는 '그라피티 타운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됐다. 지난 2023년 신안군과 '그라피티 타운'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후 이번 작품 제작 전반을 담당하는 어반아트브레이크의 장원철 대표는 "이전 국내 곳곳에 그려진 벽화마을은 벽에 그 지역의 상징물 또는 마을의 이미지만을 표현했다면,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그라피티 타운은 세계적인 거장들이 참여해 건물들의 벽 한 면 한 면이 작품인 글로벌한 그라피티 타운이 조성된다는 점에서 완전히 차별적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라피티 타운' 조성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작품은 압해읍을 상징하는 대표적 관공서 건물인 '압해읍사무소'에 조성됐다. 이는 경직된 조직사회의 상징인 공공건물을 배경으로 한 것이어서 의미가 남다르다. 이 작업에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Expedition Expert로 유명한 덜크(Dulk)가 참여했다. 그는 작품 소재를 놓고 1년여 동안 신안군과 협의 끝에 세계자연유산인 신안 갯벌과 그 갯벌 속에서 자생하는 생물들, 한국의 멸종위기 동물에 영감을 얻어 노랑부리저어새, 동박새, 호랑이 등을 벽에 담았다. 덜크는 "자연적인 것과 연관된 작품을 하는데, 신안은 자연환경이 매우 좋은 친환경적인 공간이다. 신안군의 관문인 압해도라는 섬에 그라피티와 스트리트아트를 소개할 수 있는 게 특별하고 감사하다.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이 내 작품을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 작품은 미국의 존원(JonOne)이 참여했다. 그는 뉴욕 할렘가 태생으로 17세부터 그라피티를 해왔다. 그러던 중 반도(Bando)라는 프랑스 그라피티 아티스트가 그의 예술가로서의 소질을 알아보고 프랑스 파리로 초청했고, 파리를 방문한 그는 줄곧 파리에서 지내며 예술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지난 2015년 프랑스 최고 영예인 레지옹 도뇌 문화예술훈장을 수상하는 등 그라피티 아트계에서 독보적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LG 등 세계적인 기업들과 수많은 협업을 통해 예술세계를 확장해 왔고, 국내에서는 가수 윤종신과 앨범 콜레버레이션으로 화제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존원의 작품이 설치된 곳은 덜크의 작품이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으로, 특히 신안군에서 신혼부부에게는 1만원에 빌려주는 아파트인 '팰리스파크' 두 개 동의 벽면에 존원만의 생기 넘치는 작품을 선보여 의미를 더했다. 존원은 "신안의 그라피티 마을은 월드클래스가 모여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표현하고, 세계적이고 열정적인 작가들이 그 열정을 신안군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해 깡촌이고 이름도 몰랐던 섬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라고 전했다. 또 "내가 거리를 지나다 거리에서 마주한 그림을 보고 세계적 그라피티 아티스트가 된 것처럼 신안의 낙서 벽에 숨겨진 재능을 마음껏 펼침으로써 동양 최초의 세계적 그라피티 아티스트가 탄생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덧붙였다. 세 번째 작품은 무더위가 지나가는 9월경 작가의 조형 언어인 드릴로 벽이나 바닥에 단차를 만들어 음영을 주는 작품을 표현하는 포르투갈 출신 빌스(Vhils)가 작업할 예정이다. 신안군은 국내에서 생소한 그라피티 아트의 대중화를 위해 '낙서의 벽'도 조성해 추진할 계획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와서 불법이 아닌 합법적 낙서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할 방침으로, 외설과 욕설은 제한한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지금 당장 보이지는 않지만 신안의 미래라는 큰 퍼즐을 하나하나 조각조각 맞추어 가고 있다. 모든 조각이 맞춰지면 누구도 그려보지 못한 놀라운 그림을 보게 될 것"이라며 "신안군은 세계 문화 예술의 거장들이라면 생전에 근사한 작품 하나는 반드시 남기고 가야 할 곳이 '신안'이라는 목표를 가지게 할 만큼 국내외 문화 예술의 요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신안군은 각 섬마다의 색을 지정하고, 이 색을 담아 섬들을 변화시키는 컬러 마케팅으로 이미 국내외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중 안좌도라는 섬은 CNN에서도 '퍼플섬'으로 소개된 유명한 곳이다. 거주민들의 속옷마저도 '보라색'을 입었다 할 정도로섬 전체를 '보라색'으로 물들이고 있으며, 보라색 수종인 라벤더 축제와 버들마편초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도초도는 '코발트블루'로 물들였다. 모든 가옥의 지붕이 파란색으로 덮여져 이를 지켜보는 이의 눈을 밝게 한다. 그리고 파란색 꽃잎이 많은 수국 축제를 연다. 더 이색적인 것은 '팽나무 숲길'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팽나무들을 10리길에 식재해 이곳을 걷는 이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준다. 이 밖에 임자도는 홍매화를 소재로 '빨강', 장산도는 자작나무를 소재로 한 '화이트', 하의도는 인동귤의 '노란색', 신의도는 올리브의 '연녹색' 등 지속적으로 신안의 섬에 색을 입히고 있다. hwangtae@fnnews.com 황태종 기자
2024-07-30 13:59:19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약 한 시간 정도 남쪽으로 더 내려오니 비슈케크가 나왔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방이 누런 흙먼지가 날리는 황량한 사막을 달리고 있었는데 도시의 건물과 사람들과 차들을 보니 반갑다. 차 막히는 것조차 오랜만이라며 마냥 좋다. 키르기스스탄에는 여행 출발전 한국에서부터 만나기로 한 분들이 있다. 수도 비슈케크에 사는 한국분들을 만나 현지에서의 삶을 경험하고 배울 좋은 기회가 되리라 무척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사진이나 영상촬영, 디자인 등의 일들이 그분들께 필요하다면 힘껏 돕겠다는 의사도 전달했었다. 한국여권으로 키르기스스탄에는 무비자로 2개월간 체류가 가능하니 최대 두달간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 처음 방문한 곳은 한국사람이 세운 SGA라는 학교였다. 1991년 소련연방이 해체되자 얼떨결에 많은 "~스탄"국가들이 독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무상제공되던 교육, 의료서비스 등 많은 사회적인 인프라가 무너져 지금까지도 매우 부실하게 운영되거나 그러한 혜택이 아예 없는 지역도 많다고 한다. 이곳 비슈케크는 수도임에도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는 학교를 찾기가 어려워 이 학교를 세우게 되었다고 했다. 학교는 나무들이 우거진 숲속에 자리잡은 예쁜 건물들과 평화로운 분위기가 마치 유서깊은 영국의 사립학교와 같은 인상을 주었다. 신기했던 것은 한 학교에서 유치원에서 11학년까지 거의 통합적인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10년 이상을 같은 곳에서 교육을 받는다니 선생님한테 찍히거나 하면 매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오랜 시간 함께하고 자라는 과정을 서로 잘 아는 울타리 안에서 마치 가족같은 전인적 교육이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비슈케크에는 관공서건 상점이건 일반 주택이건 거의 모든 건물들이 타일이 깨져있거나 문이 내려앉아있거나 창문이 비틀려있거나 울타리에 이가 빠져있는 등 무언가 고장나 있고 수리가 필요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그대로 방치되어있는 상태로 보이는 건물들이 거의 다 였다. 그런데 이 학교는 깨진 바닥타일이며 금간 창문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놀랄 일이었다. 시설이 참 깨끗하고 잘 갖추어져 있고 잘 관리되고 있는 것 같았다. 한 반에 학생 수도 열명가량인 듯 적은 것이 선생님의 관심이 아이들에게 잘 닿겠다 싶었다. 이곳에서는 한국어 수업시간도 있다. 점심은 식당에서 시간 차를 두고 급식을 주는데 아이들은 질서정연하게 차례대로 맛있게 식사를 하는 모습이었다. 우리도 한가한 틈을 타 선생님들과 함께 식사를 했는데 빵과 스프가 담백하니 건강한 맛이었다. 식사후 아이들은 인조잔디가 깔려있는 운동장에서 축구와 줄넘기 등을 하며 마음껏 뛰놀았다. 체육시간에는 실내체육관에서 교육을 받는다. 아이들이 잘 먹고 좋은 시설에서 공부하고 또 뛰놀며 체육활동도 안전하게 잘 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 것같아 참 보기 좋았다. 키르기스에서 이런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은 별로 없을 것 같았다. 좋은 책들을 구입하고 과학실험용품등 도구들을 구비해 놓고 싶어도 내륙국가라 물건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엇을 사려면 종류가 너무 많아 고르기가 힘들 지경인데 이곳은 필요한 것이 있어도 살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곳에서 깨진 타일과 금간 유리창을 그대로 방치한 건물을 많이 볼 수 있는 이유도 돈이 넉넉치 못한 때문도 있지만 고치고 싶어도 똑같은 타일과 유리창을 살 수가 없어 그대로 두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날 하루동안 탄은 열심히 카메라와 드론을 이용해 영상을 찍어 학교홍보영상을 만들어 드렸고 나는 교실 문패, 가정통신문 등 전체적인 학교 이미지 통합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드렸다. 이 학교를 통해 키르기스스탄의 아이들이 좋은 교육을 받고 바른 심성으로 잘 성장해서 이 나라에 깨어있는 지식인으로 좋은 역할을 해주기를 바래본다. 30여년전 소련의 해체 후 교육공백에 따른 어려움이 있던 이곳에 이렇게 훌륭한 학교가 세워져 귀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같은 한국인으로서 마음이 뭉클해졌다. 돌아오는 길에 장도 볼겸 현지에 사시는 선생님과 함께 근처 시장에 갔다. 시장안 어떤 식당 앞을 지나는데 하얀 두건을 쓴 키르키즈 아주머니가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밀어 국수를 뽑고있다. 한손으로 반죽을 끌어당기고 다른 한손으로 면을 바닥에 굴려 면을 얇고 길게 만든다. 유리창을 통해 구경하는 우리를 보자 웃으며 환대해주신다. 탕탕 치며 뽑는 수타면은 봤지만 손으로 굴려서 길게 빼는 면은 처음 봤다. 굵기가 일정하지 않아보였는데 저 면으로 만든 국수가 어떨지 궁금했으나 식사 때가 아니어서 다음 기회에 먹어보기로 기약했다. 시장 모습이 우리 옛날 재래시장과 크게 다르지가 않아 정겨웠다. 양말이며 속옷 파는 가게, 이불가게, 전자제품 수리점, 과일가게들이 보인다. 과일이 한국의 마트에서 본것들처럼 예쁘고 크지는 않아도 엄청 저렴하고 싱싱해보인다. 단지 내가 알던 크기와 색깔의 과일이 아니어서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복숭아도 골프공만한 조그만 것들이 주로 많고 노란색, 검붉은색, 주황색 등 못보던 품종들이라 어떤 맛일지 상상이 안가고 뭘 기준으로 골라야 할지 몰라 사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함께 가주신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시는 것으로 복숭아 1kg을 샀는데 꽤 묵직한 큰 봉지가 천원이 조금 넘는다. 키르기스에는 꿀이 또 유명해서 여러가지 종류의 꿀을 가득 쌓아놓고 파는 곳도 있었다. 꿀이 흔해서인지 진한색, 밝은색, 견과류를 넣은 것등 다양한 종류의 상품이 있었다. 모자가게, 옷가게, 장난감가게 등 시장 구경이 즐거웠다. 탄이 운전을 오래하면 엉덩이가 아프다고 해서 적당한 방석을 사고싶었는데 과일값이 저렴한 것에 비해 공산품 가격은 생각보다 비싸고 품질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아서 결국 사지 않기로 했다. 양말가게에 커다랗게 러시아어로 광고판을 세워놨는데 한국제 양말을 판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한국양말 품질 좋다고 이곳에서 소문났나보다. 길가에 삼겹살이 떡하니 진열되있어 반가와했더니 오랫동안 먹을 수 있도록 짜게 절여서 훈제한거라며 잘못 사서 구워먹으면 낭패란다. 이곳에선 저 삼겹살같은 고기를 스페인의 하몽처럼 얇게 잘라 먹는 단다. 외국에서 식재료 사기는 정말 만만한 일이 아니다. 휴지가 잔뜩 쌓인 가게를 발견하고 두루마리 휴지를 사려고 들어갔다. 러시아에서부터 많이 본 휴지심 없는 잿빛휴지들이 가득한 가운데 비싸지만 부드러운 꽤 쓸만한 휴지를 찾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한참 구경하다보니 목이 말라 가판에서 석류쥬스를 사먹어 보기로 했다. 위생이 좀 걱정되긴 했지만 뭐 어릴때 흙도 파먹었던 우리니까 이정도야 괜찮겠지 하며 주문을 했다. 한국에서는 구경하기도 힘들고 1개에 5~6천원 하는 커다란 석류를 눈앞에서 4개나 짜서 100% 원액주스 3잔을 받았는데 2000원 정도 했다. 생전 처음 석류를 원액으로 짜서 마셔보았는데 석류가 이런 맛이구나 싶어 여행 나오기를 잘했다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나오다가 한 정육점을 보았는데 돼지고기를 파는 정육점이라고 한다. 엥? 정육점에서 돼지고기를 팔지 그럼 뭘 파나 싶어 어리둥절했는데 키르기스스탄 사람들 대부분이 무슬림이라 돼지고기를 안먹는데 이곳에 러시아 사람들도 꽤 많이 살고 있어서 러시아 사람들을 위해 돼지고기를 파는 정육점이 특별하게 몇 군데 있다는 것이다. 그제야 알아듣고 잘 기억했다가 돼지고기 먹고싶으면 찾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코리아 마트! 신기하게도 시장 한구석에 한국식품을 파는 마트가 있었다. 그만큼 키르기스에 사는 한인들이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한류가 이곳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닌가 싶다. 현지인에게도 인기 많은 불닭볶음면이 제일 먼저 보이고 각종 라면과 장류, 조미료, 음료수 등 반가운 상품들이 많이 보인다. 한국 가게에 온 기분에 신이나서 라면과 몇가지를 샀다. 웬만한 것은 다 있다는 말이 딱 맞다. 이렇게 해외에서 한국마트를 만나면 마치 오아시스에 온 듯한 기분이 들어 참 감사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ZRjKI5Q8qVU?si=lDliUO0lDz9seBwy>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6-13 16:20:36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에키바스투즈에서 10시에 체크아웃한 후 남쪽을 향해 부지런히 이동한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아주 원없이 본다. 높은 산도 언덕도 없고 나무조차 보기 힘든 벌판이다. 10년전 미국여행때 이렇게 길외에 아무것도 없는 그런 길을 달려보고 싶었는데 코스를 잘못잡아 그런 기회가 없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카자흐스탄에서 내가 꿈꾸던 버킷리스트를 이루게 되었다. 하늘에 구름 한점 없이, 동서남북 사방을 둘러봐도 새파란 하늘만 머리위에 반구처럼 씌워져있는 신기한 경험이다. 10미터 넘는 나무들이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는 러시아와 달리 나무 한그루 찾아보기 어려운 광야같은 풍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주변 풍경이 점점 변해가는 것이 모래사막이 아닌 자갈사막이 펼쳐진다.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에 비해 체감상 주유소가 드물게 있는 것 같다. 주유소가 있더라도 휘발유만 팔고 경유는 없는 곳이 많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자칫 낭패를 당하기 십상일 것 같았다. 그래서 러시아에선 4분의 1정도 남았을때 주유를 했었는데 카자흐스탄에선 웬만하면 경유 파는 주유소를 만날때마다 주유를 했다. 도로를 달릴 땐 앞차를 잘 만나면 편하다. 카자흐스탄서 만난 마티즈는 우리의 '드로그'(친구)가 됐다. "같이 가요 드로그~" 우리가 스페인어권을 다닐때는 선행차량을 "아미고(스페인어로 친구)"라고 불렀었다. 이제 러시아어권 나라를 다니니 "드로그(러시아어로 친구)"로 명칭을 바꿨다. 선행차량은 무척 중요하다. 특히 가로등 없는 밤길을 갈때 매우 도움이 되고 낮에도 처음 가는 길이라면 선행차량의 움직임을 보고 노면상태와 속도조절 등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카자흐스탄에서는 하루에 두세번 이상은 길에서 경찰을 볼 수 있었는데 이미 한번 나쁜 기억이 있는지라 경찰만 나타나면 초긴장에 숨까지 죽이고 지나가곤 했는데 이때 드로그가 있다면 바짝 붙어서 우리차를 가리며 함께 지나가 경찰을 피하기 좋았다. 한참 가다가 앞서가는 빨간 마티즈 한대를 만났는데 한국차가 반갑기도 했고 우리가 따라갈만한 적당한 속도로 잘 가기에 잘됐다 싶어 드로그 삼아 뒤따라 가기로 했다. 이 마티즈가 참 신통한 것이 속도제한표시가 나오면 그 속도를 철저히 지키고 추월금지구간에선 절대 추월하지 않는 등 아주 노련한 운전자가 타고 있는 것 같았다. 열심히 따라가는 동안 운전하기가 매우 수월해 고마웠다. "같이가요, 드로그~~" 해가 뉘엿뉘 질무렵 도로 옆 까페 앞 공터에 차를 세웠다. 해가 지니 서쪽 하늘이 통째로 무지갯빛이 돼버린다. 구름 한점 없는 석양을 한참 감상하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 하필 길디 긴 냉동트럭이 우리 앞에 차를 세우고 자는 바람에 트럭엔진소리에 밤새 잠을 설쳤다. 잠을 푹 못자 힘들어 짜증이 좀 났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저 운전수는 매일 어찌 잠을 잘까 싶어 마음을 곱게 쓰기로 했다. 아침이 되니 이번엔 동쪽에서 찬란한 일출이 시작되고 있다. 눈닿는 사방에 아~무것도 없기에 같은 곳에서 서쪽의 일몰을 보고 잠들고, 다음날은 동쪽의 일출을 볼 수 있다. 다시 길을 나선다. 해는 더 따갑고 주변 풍경은 더 황량하다. 생명이 스러져가는 풍경에 질려 기운이 떨어져갈때쯤 발하슈 호수 북쪽의 발하시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발하시에 단 하나 있는 중국식당을 인터넷에서 찾아냈다. 호텔의 지하라고해서 호텔에 들어가서 헤매다가 말도 안통하는 직원분의 친절한 안내로 옆으로 돌아 지하로 내려가는 식당을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얼큰한 짬뽕과 바삭한 탕수육을 꿈꾸며 메뉴판을 번역기로 열심히 찾아봤지만 그런건 없다. 그나마 알겠는 볶음고기국수와 으깬감자, 상하이 스프라는 것을 주문해보았다. 잠시후 음식들과 함께 시키지 않은 빵도 함께 나왔는데 먹을까말까, 추가로 돈을 내야하는걸까 의심하다가 탄이 "내면 또 얼마나 더 내겠냐"며 그냥 먹자고 한다. 듣고보니 맞는 소리여서 "그래, 그러자" 하고 막 먹었다. 중국음식이라기엔 뭔가 태국, 우즈벡 등등이 섞인 퓨전스러운 여태껏 한번도 못먹어본 맛이었지만 한끼 든든하게 식사하고나니 주변을 둘러볼 여유와 길 떠날 힘이 생긴다. 발하시의 시내는 별다른 볼거리는 크게 없었지만 조각상이 있는 공원에서 소화도 할겸 산책을 했다. 사실 어제, 오늘 계속해서 남쪽으로 오면서 나무 한그루 찾아보기 힘든 사막의 황량한 풍경이 지겨워져서 지도에서 남쪽의 커다란 발하슈 호수가 있는걸 보고 그래도 호수 근처는 푸르르고 나무도 많겠지 하는 희망이 있었는데 예상과 달리 호수 근처의 도시도 계속 쭈욱~황량하다. 도시를 나와 2시간 이상을 달려도 쉼터 하나 보이지 않는다. 쉬려고 차를 잠시 세우고 있어도 땡볕아래라서 쉬는게 쉬는게 아니었다. 호숫가는 조금 나으려나 싶어 작은길로 들어가 호수로 갔다. 민트색의 잔잔한 물결이 이는 아름다운 호수였다. 하지만 물가에는 정체 모를 거품이 떠있어서 조금 꺼림직해 물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않았다.. 나중에 알게됐는데 이곳은 민물이 아닌, 염분이 많은 호수라고 한다. 동네 아이들은 튜브를 띄우고 즐겁게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호숫가에도 그늘은 없었지만 우리는 호수를 바라보며 허리도 펴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이동했다. 또 다른 드로그를 따라가며 열심히 경찰을 피한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들이 하이빔을 켜며 경찰이 있다는걸 알려준다. 우리나라도 80~90년대에 교통경찰들이 단속을 하며 돈받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예전에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서로 경고해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카자흐스탄의 몇몇 도시에서 카우치요청을 해보았지만 답도 없고 호스트도 별로 많지 않아 찾기가 힘들었다. 동남쪽에 소련시절 수도였던 알마티라는 큰도시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굳이 대도시를 가고 싶지도 않았고 카자흐스탄의 메마른 사막풍경에 지쳐서 이 나라는 그냥 빠르게 지나가기로 했다. 첫인상이 안좋았던 것도 큰 이유중 하나였다. 오늘도 아침 8시부터 저녁 7~8시까지 거의 12시간동안 운전한 셈이었지만 러시아때랑은 달리 노면 상태가 꽤 좋은 길도 많았고 2시간마다 잘 쉬어서 피곤하긴 했지만 버틸만했다. 7시가 넘고 발하슈 호수가 끝나는 지점이 다가오자 우리는 이왕이면 호숫가에서 차박을 하자고 했다. 큰길에서 벗어나 호수근처로 들어가는데 길이 울퉁불퉁 난리도 아니다. 깊이 패여있는 곳이 여러군데 있어 몇번을 차가 통과할 수 있을지 내려서 살펴보고 와야했다. 호수옆 작은 마을을 발견하고 여기가 좋겠다고 세우려다가 창밖에 그 주위를 가득채운 작은 날벌레떼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후퇴해야했다. 벌레를 피해 여기저기 다니다가 결국 호수뷰는 포기하고 그냥 사막 한가운데에 차를 세우기로 했다. 찻길에서도 한참 떨어져있는 곳에 주변에 아무것도 없이 외진 곳이다. 평소에는 다른 트럭들이라도 있는 곳을 선호하긴 했지만 여긴 외져도 너무 심하게 외져서 누가 와서 시비 걸 일이 전혀 없을 것 같았다. 저녁을 대충 먹고 잘준비를 하다가 우연히 하늘을 보고 놀라서 한동안 입을 딱벌리고 쳐다보았다. "우와, 저것 좀 봐봐!" 달도 없는 하늘에 쏟아질 듯한 별들이 촤르르르~ 탄이는 "장시간 운전에 피곤은 하지만 이건 참을 수 없지." 하며 촬영을 시작했다. 아주 어릴적 시골에서 이런 하늘을 본 적이 있던 것도 같은데 잘 기억이 안난다. 차 앞자리에 거꾸로 누워서 한국에선 더이상 볼 수 없는 은하수며 별똥별들을 마음껏 감상했다. 주변에 빛이라곤 전혀 없는 이곳에 차를 세우게된 건 정말 '선물같은 우연'이었다. 트럭 지나가는 소리도 벌레 우는 소리하나 들리지 않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별들을 지붕 삼아 푹 잘 수 있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XPBmxg3fgjY?si=gDOWze5v9IyhhmLy>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5-29 10:05:00[파이낸셜뉴스] 【베이징=이석우 특파원】유럽연합(EU) 대표가 프랑스를 국빈 방문중인 중국의 시진핑 국가 주석의 면전에서 과잉 생산 및 저가 수출 문제를 빠른 시일 안에 시정하라고 강하게 압박했다. EU 행정부의 수장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3자 회담에서 "경쟁이 공정하고 왜곡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라며 시 주석에게 이 같이 요구했다고 AFP 통신 등이 전했다. 미국의 과잉생산 등과 관련한 대중 압박에 이은 것으로 중국의 과잉 생산 및 초저가 수출 등 통상 문제에 대한 압박과 국제사회의 공동 보조가 더 강해지고 있는 모양새이다. 그는 이 문제를 빠른 시일 안에 해결해 성과를 보여달라고 요구, EU의 중국 제품에 대한 고관세 적용 등 각종 무역 제재 가능성을 숨기지 않았다. EU 집행위원장, 구조적 과잉생산 해결 촉구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파리 엘리제궁에서 1시간 넘게 이어진 회담 후 기자회견을 열어 "중국 정부에 구조적 과잉 생산 문제를 해결하도록 촉구했다"라고 확인했다. 이어 "중국은 전기차를 비롯해 제조업 부문에 대대적인 지원을 계속하는데 세계는 중국의 과잉 생산을 흡수할 수 없다"며 "공정 무역을 위해 서로의 시장에 대한 접근도 상호주의적이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그는 회담 시작 전 모두 발언에서도 "유럽과 중국은 상당한 규모의 경제 관계를 맺고 있으나 이런 관계는 국가 주도의 과잉 생산, 불평등한 시장 접근 등으로 위협받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마크롱 대통령도 공개 발언에서 "유럽과 중국 간 무역에서 모두를 위한 공정한 규칙을 보장해야 할 책임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시진핑 주석은 비공개 회담에서 "소위 '중국의 과잉 생산 능력 문제'는 비교 우위 관점이나 글로벌 수요에 비춰 볼 때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전했다. 시 주석은 아울러 "EU가 중국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발전시키고 긍정적인 대중 정책을 채택하길 희망한다"라며 "대화와 협의를 통해 경제·무역 마찰을 적절히 해결하고 서로의 정당한 우려를 수용하는 게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시 주석, 과잉 생산은 글로벌 관점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반박 중국과 EU는 전기차·태양광 패널·풍력터빈 등의 보조금, 저가 판매 문제로 잇따라 마찰을 빚고 있다. EU 집행위는 최근 몇 달 사이 중국을 겨냥해 다수의 불공정 경쟁, 무역 관련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EU 집행위는 시 주석의 유럽 순방을 앞두고 지난달 24일에도 중국 의료기기 분야를 상대로 EU 국제 조달규정에 따른 직권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앞서 EU는 지난달 3일부터 중국 태양광 관련 기업에 대해, 지난해 10월에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각각 불공정 보조금 조사에 착수했다. 또, 스페인, 그리스, 루마니아, 불가리아의 풍력발전단지 개발에 참여하는 중국 기업들에 대해서도 관련 상황을 조사 중이다. 이날 3자 회담의 또 다른 주요 의제였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도 EU와 중국 간 입장차가 드러났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회담 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략 전쟁을 종식하기 위해 중국이 러시아에 대한 모든 영향력을 사용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또한 러시아에 치명적인 장비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중국의 약속에 대해서도 논의했다"면서 "중국이 군사적 용도로 전용할 수 있는 이중 용도 상품의 러시아 공급을 줄이기 위해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EU 집행위원장, 중국 대러 군사용 전용 가능 상품 이전에 더 주의해야 지적 이에 시 주석은 "중국은 우크라이나 위기를 조성하지도 않았고 당사자도 아니다"라며 "중국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과 건설적인 역할은 국제사회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다"라고 응수했다. 아울러 "중국은 그동안 평화를 위한 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 왔다"며 "중국은 관련 당사자들과 계속 소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한편, 시진핑 주석은 마크롱 대통령과 가진 양자 정상회담에서 녹색 저탄소 산업분야의 협력 등을 제의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대해선 프랑스, 국제사회와 함께 위기에서 벗어날 합리적인 방안을 찾을 용의가 있다고 표명했다. 서로 간의 견해차에도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날 회담에서 "솔직하고 개방적인 교류와 토론을 가졌다"라고 평가했다. 중국 외교부도 "세 정상은 이번 3자 회담을 통해 상호 이해를 증진하고 협력을 위한 공감대를 형성했으며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확인했다"라고 논평했다. 시 주석도 이날 모두 발언에서 "현재 세계는 새로운 격동·변혁기에 진입했다"며 "이 세계의 중요한 두 축의 힘으로서 중국과 유럽 양측은 전략적 소통 심화와 공동 인식 등으로 중국-유럽 관계의 안정적이고 건강한 발전 추진에 나서야 하고 세계 평화와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공헌을 해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시 주석의 프랑스 방문은 2019년 이후 5년 만이다. 회담이 끝난 뒤 시 주석은 두 나라 경제인이 모인 경제 포럼장에서 폐막연설을 하고, 엘리제궁 국빈 만찬에 참석했다. 중국과 프랑스 두 정상 부부는 순방 이틀째인 7일 프랑스 남부 오트 피레네로 옮겨 점심을 함께한다. 이곳은 마크롱 대통령의 외할머니가 2013년까지 살던 곳으로 마크롱 대통령이 종종 방문하는 '마음의 고향'이다. 프랑스 측이 준비한 '파리 밖 일정'은 작년 마크롱 대통령 초청에 대한 보답 차원이자 개인적 친밀감을 높이려는 사교 행사로 보인다. 시 주석은 프랑스에 이어 세르비아와 헝가리를 방문한다. NYT, 시 주석 방문은 서방 동맹 갈라놓으려는 것 뉴욕타임스(NYT)는 5일자 기사에서 "미국은 시 주석의 이번 유럽 방문을 서방 동맹(미국과 유럽)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시 주석의 노력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NYT는 "시 주석이 찾는 세 나라는 미국의 전후 세계질서 구축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나라들이자 중국을 필수적인 균형추로 간주하며, 중국과 경제적 관계를 강화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방문에서 시 주석이 "유럽에 대한 중국의 점증하는 영향력을 보여주고 실용적인 화해를 추구하려 한다"라고 진단했다. 앞서 시 주석은 5일(현지시간) 르피가로에 실린 기고문을 통해 중국과 프랑스가 관계를 맺으면서 동서양의 소통을 여는 가교가 세워졌다고 평가했다. 시 주석은 "중국은 세계에 더 많이 개방하고 프랑스 및 다른 나라들과 협력을 심화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우리는 중국의 제조업 분야를 완전히 개방했으며, 통신과 의료, 기타 서비스에 대한 시장 접근성을 확대하기 위해 더 빠르게 움직일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과 프랑스는 올 해 수교 60주년을 맞았다. june@fnnews.com 이석우 대기자
2024-05-07 00:5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