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우리는 항상 입버릇처럼 "사람"을 만나는 여행을 하고싶다고 말해왔는데 이곳 키르기즈스탄에 와서 정말 본격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여러가지 일들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이 생겨 매우 기뻤다. 다음 일정은 비슈케크에서 동쪽으로 차로 6시간 거리인 카라콜이라는 소도시에 가는 것이었다. 얼마전 놀러왔던 이슥쿨 호수를 지나 한두시간을 더 가서야 카라콜에 도착했다. 카라콜 주변에 높은 산이 많아 풍경이 근사하다. 트래킹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라고 한다. 길가에 배낭을 멘 여행자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작은 도시지만 대형마트도 보이고 깨끗한 모습이 살기 좋은 곳 같았다. 이곳에 사시는 한국계 미국인이신 션선생님댁에 며 묵기로 했다. 깨끗하고 좋은 방을 빌려주셔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추울까봐 온열기도 가져다 주셨는데 그리 춥지 않았다. 선생님은 카라콜의 여러 학교와 학원에서 특별수업을 하시는데 우리도 견학할 기회가 생겼다. 선생님께서는 2층짜리 러시아식 학교에서 구강위생에 관한 수업을 하셨다. 러시아식 건물이 다 그런건지 이 학교도 층고가 꽤 높다. 학생들은 중고등학생 정도 되어보였는데 수업에 참여하는 태도가 사뭇 진지했다. 시골마을에서 접하기 흔치 않은 교육이라 그런지 꽤나 흥미있어하는 듯 했다. 학생들의 열띤 질문세례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우리에게 웃으며 인사도 잘하고 매우 호의적이었다. 다른 강의가 지역의 영어학교에서도 있어 따라가보았는데 강의 후 학생들이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영어로 한국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한국에 가고 싶다고 하길래 왜냐고 이유를 물었더니 매우 아름다운 나라이고 아름다운 도시라면서 가서 떡볶이와 라면, 소주를 먹고싶다고 한다. 열 서너살도 안되어 보이는 소녀가 웬 소주! 좋아하는 K드라마가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달의 연인-보보경심려와 꽃보다남자 이야기를 열심히 하며 너무 좋아한다. 다른 친구는 우리에게 "안녕하세요, 저는 아야나입니다. 그리고 저는 열네살입니다. 한국에 아주 가고싶습니다."라고 한국말로 또박또박 말을 하는데 신기하고 예뻐서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5개월 배웠다는 실력이 놀랍다. 한류가 유행이라 어디를 가도 호의적으로 대해주는 어린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참 감사했다. 이 친구들에게는 우리가 한국사람의 대표이미지로 남을 수 있을테니 잘해야겠다. 다음날 우리는 선생님들의 지인이 운영하는 카페의 인테리어 촬영을 하기로 했다. 카라콜에 드문 크리스찬이 운영하는 곳인데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메뉴도 다양하고 인테리어도 편안하게 잘해놓았는데 손님이 많아지길 바라며 작업을 했다. 카페를 촬영하던 중 야외테이블에 이스라엘에서 온 손님들이 앉았다. 배낭에 삐죽 보이는 우쿨렐레에 관심이 가서 혹시나 하고 노래를 청하자 카페 앞 길거리가 콘서트장이 되었다. 아마도 히브리어인 듯한 가사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맑고 경쾌한 우쿨렐레 연주에 맞추어 노래하는 나그네의 흥겨운 모습에 함께 듣던 모두가 그의 음악에 즐겁게 동화되었다. 그 다음날 아침 카라콜의 한 공원에서 이곳 어린이들을 만나기로 했다. 학교의 시설에 문제가 생겨 며칠 휴교를 할 수 밖에 없었는데 교장선생님이 우리가 신세지고 있는 선생님들과 아는 사이여서 우리 얘길 듣고 아이들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을 하셨다고 한다. 좋은 기회다 싶어 흔쾌히 하기로 했다. 날씨도 선선하고 울긋불긋 단풍도 들어 촬영하기 아주 좋았다. 한국과는 달리 이곳 사람들은 다들 사진촬영을 매우 즐긴다는 것이 신선하다. 예쁜 옷을 골라 입고 나왔다며 신나는 모습들이었고 모델 뺨치게 다양한 포즈를 꽤 그럴듯하게 취하는 모습에 찍는 사람도 덩달아 즐거워진다. 아이들 사진에 온 가족이 더해져 가족사진이 된다. 뒤로 빼기는 커녕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낙엽을 모아 흩뿌리는 연출도 하고, 달리는 모습을 찍어달라며 계속해서 왔다갔다 뛰어다니며 에너지가 넘친다. 즐겁게 촬영을 마치고 카라콜의 명물이라는 정교회의 성당을 방문했다. 지어진지 150년이 넘었다는 이 성당은 나무로 만들어 외관은 갈색 나무판이고 지붕은 민트색에 지붕 꼭대기에는 황금색 조형물이 첨탑마다 있다. 1889년 지진으로 일부 파괴되어 보수공사를 한 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아쉽게도 우리가 갔을때는 타이밍이 안좋아 안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성당 외관과 잘 가꾸어놓은 정원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1초만에 나온 현지국수.. 카라콜에 다시 온다면 '이 국수맛 때문' 저녁이 되어 우리는 션선생님 부부와 함께 시장에 갔는데 두 분이 자주 드신다는 국집에 갔다. 면을 다 삶아둔건지 앉은지 1초만에 나오는 현지국수. 빨간 국물에 파송송 면발이 좀 특이하긴 하지만 먹음직하다. 탄은 자기 입맛에 딱이라며 더 먹고싶다고 난리다. 카라콜에 또 온다면 이거 먹으러 오는 거라고 할 정도였다. 후식으로 둥글넓적한 튀긴빵도 먹었는데 모양만 다르지 딱 한국의 꽈배기와 같은 아는 맛이어서 맛있게 잘먹었다. 현지사시는 선생님들 덕분에 우리끼리였으면 들어갈 엄두도 못냈을 작은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잘 시켜먹을 수 있어 정말 좋았다. 마지막날 선생님들을 따라 카라콜에서도 30~40분 더 들어가는 시골마을에 한 개척교회를 찾아갔다. 어렵게 교회를 벽돌 한장한장 모아 지었다고 한다. 마당에는 아이들 장난감이 띄엄띄엄 보이고 커다란 하얀개가 꼬리를 흔들며 맞아준다. 마을사람 대부분이 이슬람인데 목사님부부는 젊은 키르기스사람들이었다. 이곳도 고도가 꽤 높은 지역이라 겨울엔 영하 10도 밑으로 내려가는데 창문유리를 살 돈이 없어 창문이 있어야 할 자리를 비닐로 막아놓고 있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이러면 밖이나 안이나 온도 차이가 거의 안날텐데 이러고 어떻게 겨울을 나나 걱정되었는데 지금 있는 건물로도 너무나 감사하며 산다고 살만하다며 씨익 웃으시는 청년목사님. 집옆 텃밭에서 딴 토마토로 만든 소스를 한병가득 주셨다. 파스타 해먹으면 맛있겠다! 이 마을에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없는 것이 가장 마음에 쓰인다며 아이들이 즐겁게 뛰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살 돈은 없지만 미리 터도 봐놨다고 해서 마을을 걷다가 그 터를 보게 되었는데 삼각형의 공터가 매우 특이해서 기억에 남았다. 여기에 멋진 놀이기구가 세워지고 아이들이 즐겁게 떠들며 신나게 노는 모습이 실현되기를 조용히 바래보았다. 마지막 저녁에는 예쁜 카페에가서 샤슬릭과 현지음식으로 만찬을 나누었다. 고기와 감자요리며 우리 입에 맞는 맛있는 음식이 나와 즐거운 식사를 하며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한층 더 서로를 잘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여러 좋은 만남이 있었던 꽉찬 카라콜 여행이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peq2g2Fn-HY?si=l_QBEFvYU2DDOxpS>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7-04 15:42:16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수도인 비슈케크에 살면서 지방을 다니며 봉사하시는 현지분들과 함께 6시간 거리의 나린이라는 곳에 갈 기회가 생겼다. 나린은 해발 2000m 이상으로 한라산보다 높은 곳에 있으며 인구는 3만5000정도의 나린주의 주도이다. 키르기스에서 손에 꼽히는 큰 도시 중 하나라고 하는데 5층 이상의 건물을 찾기가 힘들었다. 나린출신의 독립영화제작자 울란씨도 동행했다. 탄이 울란씨의 다큐멘터리 영상촬영을 함께 하기로 했다. 나린 가는 길은 몽골의 초원이 연상되었다. 역시나 나무 한그루 찾아보기 힘든 민둥산의 연속이었지만 햇빛과 구름 그림자와 산의 굴곡이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만들어 낸다.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말들을 쉽게 볼 수 있었고 소떼와 양떼 등 가축들이 자동차도로를 점령하고 있기 일수여서 기다렸다 가야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두어시간쯤 가다가 길가의 카페에 들러 점심식사를 했다. 빵과 찌개 비슷한 스튜 등 러시아에서 본 음식들과 꽤나 비슷했다. 식사후 화장실을 갔다가 오는 길에 무언가 하얗고 동그란 덩어리들을 팔고 있는 것을 보고 무엇인지 궁금해서 현지인인 울란씨에게 물어보았더니 웃으며 하나 사주겠다고 한다. 극구 사양을 했지만 어느새 내손에 들어온 하얀 덩어리. 모양은 하얀 고무찰흙 뭉쳐놓은것 같은데 꼬릿꼬릿한 냄새가 나고 무엇인지 당췌 알 수가 없다. 사주신 성의를 봐서라도 먹어야하는데 쉽게 입이 열리질 않는다. 밍기적대다가 조금 잘라서 작은 조각을 입에 넣었는데 악! 엄청나게 짜고 쿰쿰하고 이게 정말 먹는 음식이 맞긴 한건가 싶다. 그래도 울란에게는 웃으며 끄덕이고 나머지는 슬며시 가방에 넣었다. 다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유쾌하게 웃는다. 알고보니 이것은 말젖을 발효시킨 쿠르트라는 것으로 칼슘이 풍부한 전통먹거리라고 한다. 맘에 안드는 사람에게 선물하기 딱 좋겠다는 심술맞은 생각을 했다. 그 후로도 서너시간을 더 달려 드디어 나린에 다다르자 개선문같이 생긴 커다란 조형물이 우리를 반긴다. 잘 만들어놨는데 깨진 곳도 많고 관리는 잘 안되고 있는 것 같아 조금 아쉽다. 나린 시가지에 들어가기 직전 좁은 협곡을 통과한다. 산줄기가 마치 성벽처럼 도시를 둘러싸고 있어 천연요새같은 모습이다. 외부에서 공격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나린은 한번도 본 적 없는 희안한 지형의 도시이다. 구불구불 흐르는 나린강이 있고 강옆 평지에는 낮은 집들이 자리잡고 있다.양옆으로 병풍같은 높고 긴 산맥들이 도시를 포근하게 감싼다. 나린에서 첫번째로 방문한 곳은 울란이 미리 섭외해둔 인터뷰를 촬영할 분의 집이었다. 언덕에 있는 정비소였는데 약속이 잘 안된건지 안계셔서 한참을 차안에서 기다려야했다. 기다리며 들어보니 이곳 사람들은 시간의 개념이 매우 두리뭉실하다고 한다. 몇시 몇분에 만나자는 식이 아니라 "내일 갈께" 라던가 "이따 저녁먹으러 와" 같이 언제 올지 모르지만 대충 올 것을 알고 있는 그런 정도랄까. 두어시간을 기다리다보니 '한국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하며 뿔이 나다가 생각해보니 예전엔 한국도 코리안타임이라고 정해진 시간+a 로 시간에 항상 늦기 일수였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이곳에는 아직도 5분, 10분, 한두시간의 차이가 크게 중요하지 않은 문화인것 뿐이다. 키르기스스탄에서 10년 정도된 자동차는 매우 인기있는 편이다. 한참을 기다려 드디어 주인공이 나타나셨다. 몇십년 이상 된 차들이 많고 앞유리가 금가고 깨지거나 헤드라이트가 안들어오고 범퍼가 없어도 잘들 운행하고 다닌다. 그래서 자동차정비소는 매우매우 중요한데 오늘 인터뷰하실 분이 나린에서 오랫동안 자동차정비를 해온 유명한 분이라고 한다. 비슈케크에서 차를 고치러 일부러 찾아올 정도 로 실력을 인정받는다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울란은 과거 라디오방송국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독립영화제작을 하며 기획, 섭외, 연출, 촬영, 편집 등 모든 것을 혼자 하는 원맨제작자이다. 이날 촬영은 탄이 맡고 울란이 리포터가 되어 진행했다. 수십년의 손때가 묻은 작업장에서 일에 몰두하는 사장님의 모습은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인구 80%가 이슬람교인 키르기스스탄에서 소수의 기독교인으로 사는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와 직업을 통해 삶으로 믿음을 실천하는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 안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개만 먹을 수는 없는 맛 촬영이 끝나고나자 사장님께서 인심 좋게도 마당에 있는 나무에서 사과와 베리를 따가라고 하셨다. 시장에서 본 것보다 훨씬 크고 탐스럽게 생긴 사과 몇알과 산딸기같이 생긴 베리를 한봉지 얻어 매우 감사했다. 과일을 무척 좋아하는 우리에게 큰 선물이 되었다. 우리는 나린에 몇 없는 한 교회겸 사택에 묵게 되었다. 현지인이신 사모님이 매끼 손수 현지음식을 해주시는데 맛이 있을 뿐 아니라 양도 많아 배불리 먹었다. 말도 잘 안통하면서 자꾸 더 먹으라고 권하시는 것이 시골 할머니댁에 간것 같은 느낌이었다. 밀가루반죽을 얇게 밀어 만두피를 만들고 다진고기와 야채로 속을 채우는 음식을 만드는 것을 구경했는데 우리네 만두랑 똑 닮았다. 두부와 당면이 들어갔으면 딱 좋을텐데 싶었다. 하지만 찌지 않고 만두 위에 계란물을 발라 빵처럼 오븐에 굽는다. 안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개만 먹을 수는 없는 맛. 집앞 사과나무에서 딴 사과로 애플파이도 만들어 주셨는데 좋은 사과를 잔뜩 넣고 시나몬과 아몬드도 들어갔다. 많이 달지않고 갓구운 파이가 먹어본 중 가장 맛있게 느껴졌다. 사모님 음식솜씨 최고! 다음날 서쪽의 높은 언덕에 올라갔다. 나린시가 한눈에 보인다. 언덕위의 갈대가 일몰에 황금빛으로 반짝여서 아름다웠다. 나린 주변의 지형은 정말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특이한 모습이었다. 북한의 개마고원이 이런 모습일까? 태초의 지구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듯한 날것의 풍경에 숙연해짐을 느꼈다. 우리 일행 중에는 지방을 다니며 자원봉사로 안경을 만들어주는 일을 하시는 분도 계셨다. 큰 도시를 제외하고는 안경점이 있어도 너무 비싸서 안경을 살 엄두를 못내거나 주문하면 받는데까지 시간이 몇달이 걸려 눈이 침침해도 그냥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하루에도 많은 분들이 찾아오셨는데 시력검사부터 안경제작까지 척척이다. 새안경을 받고 잘보인다고 기뻐하시는 분들을 보니 내가 다 시원하고 좋았다. 안경일 하시는 김쌤과는 해바라기씨를 좋아하는 공통점을 찾고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이분은 러시아에서 10년, 키르기스스탄에서 10년가량 농부로 사시면서 안경일은 가끔 소일거리로 하신다고 한다. 사시는 곳이 비슈케크에서 한시간반정도 떨어진 프로그래스라는 곳이라고 놀러오라며 초대를 해주셨다. "저희는 초대받으면 사양않고 갑니다. 빈말 뭐 그런거 없습니다."라고 엄포를 놓자 유쾌하게 웃으며 정말 오라고 주소까지 알려주셨다. 점심먹을 타이밍이 되자 라면을 끓여먹자고 우리가 제안했다. 까브리에 모든 것이 다 있다. 차를 길가의 간이 쉼터에 대고 마침 테이블도 있어서 휴대용버너를 꺼내 라면을 끓였다. 즉석밥과 캔김치까지 한상 제대로 차렸다. 러시아에서 샀다가 통조림따개가 없어 몇달간 가지고만 다니던 파인애플통조림도 울란이 칼로 어찌어찌 따주어 함께 먹을 수 있었다. 며칠간 나린에서 대접받은 현지음식이 푸짐하고 맛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한국사람인가보다. 며칠 한국음식을 못먹자 얼큰한 라면이 너무너무 땡겼다. 김치에 라면 한 젓가락을 먹으니 세상 다 가진 것 같다. 라면국물에 밥도 말아 국물한방울 안남기고 야무지게 잘먹었다. 라면은 야외에서 좋은 사람들과 같이 먹는 라면이 가장 맛있는 것 같다. 이날 점심은 잊을 수 없는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WlMtUCcjdEM?si=Gcpf38v40yZrTFdK>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6-27 10:28:46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우리가 비슈케크에 도착했을 때는 9월초였다. 원래 우리는 이곳에 일을 하려고 잔뜩 각오를 하고 왔던터라 관광에 대한 것은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만나는 현지에 사시는 분들마다 키르기스에 왔는데 이슥쿨 호수는 꼭 가야한다고, 그것도 이제 조금만 지나면 추워지니 수온이 더 내려가기 전에 어서들 가라고 재촉을 하셨다. 대체 얼마나 좋은 곳이길래 하며 궁금증이 생겼고 올해는 여름이 지나도록 물가에 한번 가본 일이 없던 차에 물놀이를 할 수 있다니, 여행때마다 항상 소중하게 가지고 다니는 투명튜브를 꺼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만사 제쳐두고 또 함께 일하실 분들의 환송을 받으며 "얼른 다녀올께요~!" 하며 이슥쿨호수로 출발했다. 수도 비슈케크에서 차로 4시간 거리의 이슥쿨 호수. 내륙국가인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이 최고로 꼽는 휴양지라고 한다. 간만의 물놀이 생각에 설레어서 새벽같이 일어나 출발했다. 가는 길 길가에는 마치 과일도매시장같이 수박이며 각종 여름과일들이 가득가득 진열된 노점상들이 길게 줄지어 있어 과일귀신인 우리의 발길을 붙잡았다. 몇일전 현지분과 시장에 갔던 경험을 살려 맛있다고 들은 복숭아와 그나마 알고있는 귤처럼 보이는 과일을 무지 저렴하게 샀다. 좋아하는 과일까지 가득 싣고 물놀이 가는 길이 마냥 즐겁고 행복하다. 한참을 달리니 인가는 사라지고 나무 한그루 없는 민둥산길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오 이제 시작인건가?' 하고 생각했다. 이슥쿨 호수가 유명한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해발 1600m 높이에 있는 산정호수라는 것이다. 설악산 대청봉이 1700m정도이니 호수가 얼마나 높은 곳에 있는지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소금기가 많은 짠물 호수라고 한다. 이미 카자흐스탄의 발하슈 호수에서 짠물의 호수를 한번 겪어봐서 그런가보다 했지만 처음엔 호숫물이 짜다는 것이 매우 이상했었다. 길이 험해지고 오르막이 계속되자 곧 호수가 보일것 같이 두근두근했는데 아무래도 너무 빨리 김칫국을 마셨나보다. 호수까지는 아직도 한참 남았다. 길옆으로 옥색빛이 아름다운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물살이 매우 세차게 흘러서 래프팅하면 딱이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산과 산 사이 계곡옆길을 가다보니 보이는 것은 민둥산 밖에 없다. 기후가 건조해서 나무가 잘 못 자라는 건가 왜 식물이 거의 없는지 궁금했다. 산지를 한참 지나자 다시 평지가 나왔다. 역시 호수는 아직도 멀었다. 공사 중인 비포장도로를 지나고 드디어 다시 오르막길을 올라 올라 호수의 첫번째 목적지인 선착장에 도착했다. 하루에 2번 배가 뜨는데 혹시나 했던 11시 배는 이미 놓쳤고 3시 배는 출발 30분 전에 다시 오라고 한다. 어차피 놓친거 "에잉, 그냥 잘 되었다." 하고 차에서 여유 있게 점심을 든든히 챙겨 먹고 좀 쉬다가 래쉬가드로 갈아입고 배에 가져갈 튜브 등을 준비했다. 약간 동네장사 느낌으로 간이매점같은 곳 앞 파라솔아래 앉은 사람이 종이로 대충 만든 표를 팔고 있어서 찾기가 쉽지 않았다. 선착장에 배가 여러대가 있었는데 우리가 탈 배가 무언지 몰라 또 어리버리하다가 남들 가는대로 따라가 표를 내밀어 탈 수 있었다. 작지 않은 배에 우리말고도 사람들이 적당히 있어 좋았다. 오랜만의 뱃놀이, 물놀이에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배가 출발하자 끝없이 펼쳐진 호수가 호수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게 넓어 마치 바다같다. 물빛도 맑고 아름다와 어서 뛰어들고만 싶어진다. 이 맑고 깨끗한 물이 제발 오염되지 않기를 저절로 바라게 된다. 호수 한가운데에 다다르자 배가 멈추었다. 이제 수영 타임! 배에서 나눠주는 빨간 구명조끼를 입고 튜브를 가지고 물에 퐁당 뛰어들었다. 튜브를 준비해온 건 우리밖에 없지만 창피해 하지 않고 뻔뻔하게 놀기~ㅎㅎ 햇살이 따가와 파라솔 대신 준비한 양산도 있었지만 차마 그것까지 펼 용기는 나지 않아 그냥 넣어뒀다. 하루라도 더 일찍 가야한다고 재촉하는 이야기에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따사로운 햇살과 수온이 물놀이를 하기에 딱 좋았다. 맑고 파란 물 위에 떠 있는 기분은 그야말로 최고였고 거기에 더 기가 막힌 것은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멋진 산맥이 만드는 풍경. 푸르른 하늘에 뭉게뭉게 하얀 구름들 아래로 병풍처럼 펼쳐진 산맥을 보며 물놀이를 할 수 있다니 정말 다른 어떤 곳에서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탄과 붙잡기 놀이며 장난을 치고 또 풍경을 보고 놀다보니 배에서 이제 올라오라고 사람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쉬운 마음에 늑장을 부리다가 민폐는 안될 정도로 제일 늦게 배에 올랐다. 배에서 젖은 옷을 간단히 갈아입고 이때를 위해 준비한 비장의 그것! 수영 후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캔! 크아~ 주변 사람들의 부러워하는 눈초리가 느껴졌다. 출발 전 현지분들이 지도를 보며 열심히 알려주신 차박하기 좋은 곳을 찾아갔다. 들어가는 길이 좀 울퉁불퉁 험했지만 도착해보니 주차할만한 장소도 잘 정비되어있고 호수변에 모래사장이 있어 물놀이 온 현지인들도 적당히 있고, 평화롭게 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안심이 되고 좋았다. 마치 바닷가처럼 모래사장도 있고 수심도 얕아 물놀이 하기에 매우 좋은 곳이었다. 물속 모래에서 공기방울이 뽀글뽀글 올라온다. 조개라도 사는 것일까? 물가에서 발만 조금 담그고 놀다가 오전에 네댓시간 운전하고 온데다 낮에 배타고 한 물놀이가 힘들었는지 피곤이 몰려왔다. 내일 더 재미있게 놀자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밤엔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간간히 들렸지만 비교적 편안하게 잘 잘 수 있었다. 다음날 일어나 호수를 보며 아침을 먹고 어제의 짧은 물놀이가 아쉬워 본격적으로 물을 즐겨보기로 했다. 남들처럼 모래사장에 자리를 깔고 캠핑용 의자도 펴고 이번엔 내가 좋아하는 튜브침대를 가지고 물에 들어갔다. 눈치 볼 것도 없고 아무 거리낌 없이 원하는 대로 튜브에 누워 양산으로 햇빛을 가리고 물위에 동동 떠있으니 따뜻한 공기에 시원한 바람에 둥실둥실 기분이 최고였다. 호수에서 바라보는 설산의 풍경이 정말 장관이다. 세상에 다시 없을 호강이다 싶다. "시로표 워터파크 개장이요!" 하며 튜브 위에 앉은 탄이를 뱅글뱅글 돌려주었더니 얼른 교대해서 나에게도 해줄 생각은 안하고 "한번 더~ 한번 더!"를 외치고 있다. 이번엔 내차례라고 탄이를 밀어내니 착하게도 열심히 놀이기구가 되어주었다. 탄이는 호수의 아름다움을 담고싶다며 드론을 띄웠고 하늘 위에서 보는 이슥쿨호수의 광경은 더욱 더 아름답게 보였다. 어제부터 호수에서 물놀이 하고나서 씻지를 못한 것이 계속 찝찝했는데 근처에 온천이 있다는 것을 알고 개운하게 씻을겸 찾아갔다. 입구에서 이용료를 내야하는데 러시아어로 된 가격표가 A4용지에 한가득이다. 대체 뭘 선택해야하는 거야? 번역앱을 통해 보아도 무슨 닥터피쉬나 마사지 등 옵션이 다양하게 있는것 같긴한데 확실히 어떻게 되는 건지 파악이 안된다. 결국 가장 저렴한 기본가격인 350솜 입장료만 내고 들어갔다. 안에 들어가보니 닥터피쉬 같은건 보이지 않아서 기본으로 들어오기를 잘했다 싶었다.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는 온천이라고 해서 한국의 워터파크 같은 곳을 생각했는데 들어가보니 야외에 따뜻한 물이 나오는 탕이 여러개 있는 것이 비슷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그게 다였다. 온도가 너무 뜨거운 탕이 많아서 한곳에 오래 있기가 힘들었고 잠깐 들어갔다가 나와서 썬배드에서 쉬기를 반복해야 했다. 한국은 이런 썬배드 이용도 다 따로 돈을 받는데 다행히 여기는 안에서 추가금을 받는 건 없어서 좋다. 충분히 온천욕을 했다 싶어 이제 씻고 나가려고 하는데 헐.. 목욕시설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워터파크 생각을 하고 야외 온천탕과는 별개로 여탕, 남탕이 있을테니 뜨끈한 물에 머리도 감고 옷에 소금기도 좀 빼고 개운하게 씻어야지 했는데 비누는 절대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써있는 야외에 찬물만 나오는 샤워기 6개가 끝이었다. 기대와 너무 달라서 좀 실망을 했지만 그래도 소금기없는 맑은 물로 씻은 것이 어디냐 하고 나왔다. 씻고나자 노곤하고 출출해져서 카페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임페리얼이란 근사한 카페였는데 참 키르기스스탄이 특이한 것이 관공서며 학교, 상점, 웬만한 빌딩들은 다 낡고 허름하고 어딘가 갈라져있거나 부서져있고 우리나라 30~40년전 모습인데 "카페"들만은 현재 한국의 레스토랑과 비교해도 별차이없을 정도로 너무나 훌륭한 인테리어로 멋지게 꾸며져 마치 다른 나라에 온것같은 느낌마저 들게 한다. 키르기스스탄에 있는 내내 이 점은 참 희안하게 느껴졌다. 인테리어며 조명이 매우 훌륭한데다 음식 가격은 매우 저렴하지만 꽤 맛있다. 아마 우리에겐 저렴하지만 현지 사람들에겐 크게 부담되는 가격일 듯 하다. 물놀이와 온천 후 먹는 피자와 치킨과 생맥주는 아주 꿀맛같았다. 비슈케크로 돌아오는 길에 까브리도 들어갈만큼 큰 세차장을 발견했다. 사실 세차장은 매우 자주 눈에 띄인다. 키르기스스탄의 차들이 낡고 오래된 차가 많지만 사람들이 차를 매우 좋아해서 세차를 아주 열심히 한다고 한다. 우리는 원래 차가 좀 지저분해야 도둑들도 눈길을 안줄거라 생각하며 여행 떠난 후 여태껏 한번도 세차를 안하고 지내왔는데 벌레사체때문에 차가 부식될까 걱정도 되고 또 이곳에서 만날 분들께 깨끗한 인상을 드리고 싶어 드디어 세차를 하기로 했다. 글자도 모르면서 떡하니 차를 대놓고 셀프세차기 앞에서 헤메는데 다행히 옆칸에서 세차하시던 현지분이 와서 도와주신다. 몰라도 부딛치면 다 된다. 덕분에 묵은때를 깨끗이 벗겨내니 까브리가 오랜만에 뽀얀 자태를 뽐내게 되었다. "이야 너 원래 이렇게 깨끗한 차였구나?" 탄이도 시로도 까브리도 시원하게 물놀이를 즐기고 온 즐거운 이슥쿨여행이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o7692AmJx0A?si=mKRolx8pcp0ox58h>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6-20 10:19:29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약 한 시간 정도 남쪽으로 더 내려오니 비슈케크가 나왔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방이 누런 흙먼지가 날리는 황량한 사막을 달리고 있었는데 도시의 건물과 사람들과 차들을 보니 반갑다. 차 막히는 것조차 오랜만이라며 마냥 좋다. 키르기스스탄에는 여행 출발전 한국에서부터 만나기로 한 분들이 있다. 수도 비슈케크에 사는 한국분들을 만나 현지에서의 삶을 경험하고 배울 좋은 기회가 되리라 무척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사진이나 영상촬영, 디자인 등의 일들이 그분들께 필요하다면 힘껏 돕겠다는 의사도 전달했었다. 한국여권으로 키르기스스탄에는 무비자로 2개월간 체류가 가능하니 최대 두달간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 처음 방문한 곳은 한국사람이 세운 SGA라는 학교였다. 1991년 소련연방이 해체되자 얼떨결에 많은 "~스탄"국가들이 독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무상제공되던 교육, 의료서비스 등 많은 사회적인 인프라가 무너져 지금까지도 매우 부실하게 운영되거나 그러한 혜택이 아예 없는 지역도 많다고 한다. 이곳 비슈케크는 수도임에도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는 학교를 찾기가 어려워 이 학교를 세우게 되었다고 했다. 학교는 나무들이 우거진 숲속에 자리잡은 예쁜 건물들과 평화로운 분위기가 마치 유서깊은 영국의 사립학교와 같은 인상을 주었다. 신기했던 것은 한 학교에서 유치원에서 11학년까지 거의 통합적인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10년 이상을 같은 곳에서 교육을 받는다니 선생님한테 찍히거나 하면 매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오랜 시간 함께하고 자라는 과정을 서로 잘 아는 울타리 안에서 마치 가족같은 전인적 교육이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비슈케크에는 관공서건 상점이건 일반 주택이건 거의 모든 건물들이 타일이 깨져있거나 문이 내려앉아있거나 창문이 비틀려있거나 울타리에 이가 빠져있는 등 무언가 고장나 있고 수리가 필요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그대로 방치되어있는 상태로 보이는 건물들이 거의 다 였다. 그런데 이 학교는 깨진 바닥타일이며 금간 창문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놀랄 일이었다. 시설이 참 깨끗하고 잘 갖추어져 있고 잘 관리되고 있는 것 같았다. 한 반에 학생 수도 열명가량인 듯 적은 것이 선생님의 관심이 아이들에게 잘 닿겠다 싶었다. 이곳에서는 한국어 수업시간도 있다. 점심은 식당에서 시간 차를 두고 급식을 주는데 아이들은 질서정연하게 차례대로 맛있게 식사를 하는 모습이었다. 우리도 한가한 틈을 타 선생님들과 함께 식사를 했는데 빵과 스프가 담백하니 건강한 맛이었다. 식사후 아이들은 인조잔디가 깔려있는 운동장에서 축구와 줄넘기 등을 하며 마음껏 뛰놀았다. 체육시간에는 실내체육관에서 교육을 받는다. 아이들이 잘 먹고 좋은 시설에서 공부하고 또 뛰놀며 체육활동도 안전하게 잘 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 것같아 참 보기 좋았다. 키르기스에서 이런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은 별로 없을 것 같았다. 좋은 책들을 구입하고 과학실험용품등 도구들을 구비해 놓고 싶어도 내륙국가라 물건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엇을 사려면 종류가 너무 많아 고르기가 힘들 지경인데 이곳은 필요한 것이 있어도 살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곳에서 깨진 타일과 금간 유리창을 그대로 방치한 건물을 많이 볼 수 있는 이유도 돈이 넉넉치 못한 때문도 있지만 고치고 싶어도 똑같은 타일과 유리창을 살 수가 없어 그대로 두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날 하루동안 탄은 열심히 카메라와 드론을 이용해 영상을 찍어 학교홍보영상을 만들어 드렸고 나는 교실 문패, 가정통신문 등 전체적인 학교 이미지 통합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드렸다. 이 학교를 통해 키르기스스탄의 아이들이 좋은 교육을 받고 바른 심성으로 잘 성장해서 이 나라에 깨어있는 지식인으로 좋은 역할을 해주기를 바래본다. 30여년전 소련의 해체 후 교육공백에 따른 어려움이 있던 이곳에 이렇게 훌륭한 학교가 세워져 귀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같은 한국인으로서 마음이 뭉클해졌다. 돌아오는 길에 장도 볼겸 현지에 사시는 선생님과 함께 근처 시장에 갔다. 시장안 어떤 식당 앞을 지나는데 하얀 두건을 쓴 키르키즈 아주머니가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밀어 국수를 뽑고있다. 한손으로 반죽을 끌어당기고 다른 한손으로 면을 바닥에 굴려 면을 얇고 길게 만든다. 유리창을 통해 구경하는 우리를 보자 웃으며 환대해주신다. 탕탕 치며 뽑는 수타면은 봤지만 손으로 굴려서 길게 빼는 면은 처음 봤다. 굵기가 일정하지 않아보였는데 저 면으로 만든 국수가 어떨지 궁금했으나 식사 때가 아니어서 다음 기회에 먹어보기로 기약했다. 시장 모습이 우리 옛날 재래시장과 크게 다르지가 않아 정겨웠다. 양말이며 속옷 파는 가게, 이불가게, 전자제품 수리점, 과일가게들이 보인다. 과일이 한국의 마트에서 본것들처럼 예쁘고 크지는 않아도 엄청 저렴하고 싱싱해보인다. 단지 내가 알던 크기와 색깔의 과일이 아니어서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복숭아도 골프공만한 조그만 것들이 주로 많고 노란색, 검붉은색, 주황색 등 못보던 품종들이라 어떤 맛일지 상상이 안가고 뭘 기준으로 골라야 할지 몰라 사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함께 가주신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시는 것으로 복숭아 1kg을 샀는데 꽤 묵직한 큰 봉지가 천원이 조금 넘는다. 키르기스에는 꿀이 또 유명해서 여러가지 종류의 꿀을 가득 쌓아놓고 파는 곳도 있었다. 꿀이 흔해서인지 진한색, 밝은색, 견과류를 넣은 것등 다양한 종류의 상품이 있었다. 모자가게, 옷가게, 장난감가게 등 시장 구경이 즐거웠다. 탄이 운전을 오래하면 엉덩이가 아프다고 해서 적당한 방석을 사고싶었는데 과일값이 저렴한 것에 비해 공산품 가격은 생각보다 비싸고 품질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아서 결국 사지 않기로 했다. 양말가게에 커다랗게 러시아어로 광고판을 세워놨는데 한국제 양말을 판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한국양말 품질 좋다고 이곳에서 소문났나보다. 길가에 삼겹살이 떡하니 진열되있어 반가와했더니 오랫동안 먹을 수 있도록 짜게 절여서 훈제한거라며 잘못 사서 구워먹으면 낭패란다. 이곳에선 저 삼겹살같은 고기를 스페인의 하몽처럼 얇게 잘라 먹는 단다. 외국에서 식재료 사기는 정말 만만한 일이 아니다. 휴지가 잔뜩 쌓인 가게를 발견하고 두루마리 휴지를 사려고 들어갔다. 러시아에서부터 많이 본 휴지심 없는 잿빛휴지들이 가득한 가운데 비싸지만 부드러운 꽤 쓸만한 휴지를 찾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한참 구경하다보니 목이 말라 가판에서 석류쥬스를 사먹어 보기로 했다. 위생이 좀 걱정되긴 했지만 뭐 어릴때 흙도 파먹었던 우리니까 이정도야 괜찮겠지 하며 주문을 했다. 한국에서는 구경하기도 힘들고 1개에 5~6천원 하는 커다란 석류를 눈앞에서 4개나 짜서 100% 원액주스 3잔을 받았는데 2000원 정도 했다. 생전 처음 석류를 원액으로 짜서 마셔보았는데 석류가 이런 맛이구나 싶어 여행 나오기를 잘했다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나오다가 한 정육점을 보았는데 돼지고기를 파는 정육점이라고 한다. 엥? 정육점에서 돼지고기를 팔지 그럼 뭘 파나 싶어 어리둥절했는데 키르기스스탄 사람들 대부분이 무슬림이라 돼지고기를 안먹는데 이곳에 러시아 사람들도 꽤 많이 살고 있어서 러시아 사람들을 위해 돼지고기를 파는 정육점이 특별하게 몇 군데 있다는 것이다. 그제야 알아듣고 잘 기억했다가 돼지고기 먹고싶으면 찾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코리아 마트! 신기하게도 시장 한구석에 한국식품을 파는 마트가 있었다. 그만큼 키르기스에 사는 한인들이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한류가 이곳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닌가 싶다. 현지인에게도 인기 많은 불닭볶음면이 제일 먼저 보이고 각종 라면과 장류, 조미료, 음료수 등 반가운 상품들이 많이 보인다. 한국 가게에 온 기분에 신이나서 라면과 몇가지를 샀다. 웬만한 것은 다 있다는 말이 딱 맞다. 이렇게 해외에서 한국마트를 만나면 마치 오아시스에 온 듯한 기분이 들어 참 감사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ZRjKI5Q8qVU?si=lDliUO0lDz9seBwy>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6-13 16:20:36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풀 한포기 없는 허허벌판에 까브리만 오롯이 서있다. 옆에 넓은 구덩이가 파여있는데 그 안에 뭔가 하얀 것이 눈에 띄었다. 이 햇살 따가운 늦여름에 눈일리는 없고 흙이 하얀색인가 갸우뚱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소금이었다. 사막에 소금이라니 참 신기한 일이다. 그러고보니 발하슈호수도 짠물이었는데 아마도 옛날엔 이 주변이 바다였을까. 다시 메인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이동한다. 길가에 가끔 양떼와 말들이 보이는데 이 끝도 안보이는 바싹 마른 황량한 땅에 뭐 먹을게 있을까 싶어 안타깝다. 야생동물인가 궁금했는데 나중에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분명 주인이 근처 어딘가에서 보고 있을 거라고 한다. 허허벌판 달린다 만난 낙타떼.. "이 곳에서 너를 보다니, 반갑다" 아침에 본 것과 같은 하얀 소금이 쫘악 깔린 웅덩이같은 곳이 자주 눈에 띈다. 꽤 넓은 저수지나 호수같은 곳이 바싹 말라버려서인지 눈이 소복이 내린 것처럼 보인다. 카스피해를 제외하면 내륙국가인 카자흐스탄에서 귀한 소금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장소일 것 같다. 다 사람이 살게 해두신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가도가도 끝없는 메마른 누런 땅만 나오고 그늘 찾아보기가 힘들다. 두세시간 운전 후 쉴 때도 그냥 길가에 차를 세우고 땡볕에 나와 허리 한번 펴고 차상태나 잠깐 들여다보고 그렇게 쉬는게 쉬는게 아닌 휴식시간을 잠깐 갖고 또 남쪽을 향해서 계속 달려간다. 한참을 달리다 길을 건너고 있는 낙타떼를 만났다. 낙타들이 놀라지 않게 차를 살살 세우고 기다린다. 차 없던 옛날엔 저 녀석들이 훌륭한 이동수단이었겠지. 동물원이 아닌 곳에서 낙타를 만나니 신기한 마음에 구경하느라 기다림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건 도로상태가 꽤 좋은 편이다. 가끔 공사중인 비포장 구간이 나오기도 하지만 포트홀이나 갈라진 곳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러시아보다 도로 관리가 썩 잘 돼있는 듯 했다. 카자흐스탄에서 주행할 때 힘들던 것 중 하나가 볼일 보는 일이었다. 러시아에서도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무 뒤에서 해결하거나 쉼터에 재래식 화장실이라도 종종 보였었는데 이곳에는 쉼터 찾아보기가 하늘에 별따기다. 우리가 사람들이 잘 안다니는 루트로 다녀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차 세우고 쉴만한 공터나 변소가 거의 없었다. 가려줄 나무도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언제 다른 차가 지나갈지도 모르는데 밖에서 소변을 보기가 불가능해서 주로 차안의 휴대용변기를 이용했다. 휴대용 변기는 용변을 본 후 청수를 조금 부어 헹구어 아래통으로 내려보내는데 둘이 약 2~3일 정도 사용할 수 있었다. 한봉지에 1000원이 넘는 용변분해제를 넣으면 냄새를 어느정도 막아주고 대변도 분해해준다고 한다. 하지만 대변은 웬만하면 밖에서 해결했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버릴때 보게되서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변을 볼때는 모종삽으로 땅을 판 후에 일을 보고 흙으로 덮었다. 딱 한번 길가의 카페 옆에 화장실을 발견했는데 구세주를 만난듯 반가웠다. 건조해서 그런지 냄새도 많이 안나고 시원하게 해결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키르기스스탄에 가까이 갈수록 풍경이 푸르러진다 키작은 나무가 한두그루 보이다가 키큰 나무들도 점점 많이 보이게 되니 웬지 살것같다는 느낌이 들고 공기도 달라진 것 같아 숨쉬기 편하다. 몰랐는데 내가 나무를 좋아했었구나 싶다. 국경이 가까워오자 꽤 큰 아름드리 나무들이 길가에 줄지어 있어 드디어 그늘 아래에서 쉴 수가 있었다. 카자흐스탄을 쭉 지나며 해를 피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간만에 그늘에 들어오니 살랑살랑 시원한 바람도 불고 너무 좋았다. 햇빛아래는 사람이 익어버릴듯 뜨거운데 그늘이 이리 시원하고 좋다니 해의 에너지가 정말 대단하다 싶다. 이제 곧 국경이 나오겠구나 하며 가고있는데 네비가 갑자기 유턴을 하라고 하더니 좁은 샛길로 인도를 한다. 샛길에 들어서자마자 비포장도로가 나오고 길이 점점 좁아진다. 우리 외에는 사방에 차가 한대도 안보인다. "이거 뭔가 좀 이상한데?" 지도를 보니 우리차가 향하는 방향이 국경쪽이 맞고 그 너머가 키르기스스탄이기는 했다. 하지만 길은 흙바닥에 차가 다닐 수는 있지만 찻길이라고 하기 힘든 상태고 더군다나 국경사무소같은 건물따위는 눈씻고 찾아볼래야 볼 수가 없었다. "이렇게 국경을 넘어서는 안될것 같아." 여권에 입국 도장도 없이 엉겁결에 국경을 넘게되면 잘못하다가 밀입국이라고 큰 문제가 생기는게 아닌가 더럭 겁이 나서 차를 돌려 다시 큰길로 돌아가기로 했다. 큰길에 들어서자 KORDAI라는 우리가 가려는 국경이 도로표지판에 보인다. 다행이다. 바보같은 네비가 우리를 또 한번 엉뚱한데로 안내해서 계속 따라갔으면 큰일날 뻔 했다. 한참을 더 달려 오후 12시쯤 드디어 국경에 도착했다. 큰 트럭들은 안보이고 승용차 여러대가 두줄을 만들어 줄지어 있었다. 우리는 어디 설까 눈치보다 그냥 짧은 오른쪽으로 차를 세웠다가 왼쪽에 차들이 쭉쭉 들어가길래 우리도 얼른 그쪽으로 옮겨 따라들어가려했다. 그러나 들어가기 직전 입구에서 제지당하고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자국차와 외국차로 나눈걸까 왜 줄이 다른지 몰랐지만 뭐 하라는 대로 그냥 기다릴 수밖에. 그리고 전혀 예상을 못했던 것 중 하나는 운전자를 제외한 동승자들은 차에서 내려서 다른 문으로 따로 걸어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철문 앞에서 갑자기 내리라는 손짓을 보고는 엉겁결에 여권과 스마트폰만 겨우 가지고 내린 나는 당황해서 두리번거리다가 다른 사람들을 따라서 구석의 작은 문을 지나 국경사무소로 걸어들어갔다. 짧은 줄을 기다려 여권에 시원하게 출국도장을 받고 다시 유리창이 양옆으로 이어진 긴 복도를 따라 걸어갔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커다란 흰색 아치구조물 아래 검문소에 까브리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혼자 키르기스스탄 입국장으로 가기도 좀 두렵고 탄이 혼자 짐을 내리고 검문을 받으며 고생하면 어쩌나 발걸음이 떨어지질않아 한동안 통로 유리벽에 붙어서 지켜보았는데 군인 여러명이 까브리에 들락날락 올라갔다 나왔다 한다. 깐깐하게 보며 힘들게하나 걱정되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군인들이 신기하고 궁금해서 구경들 한거라고 분위기가 좋았다고 한다. 한참이 지나고나서 드디어 까브리가 카자흐스탄 국경을 빠져나온다. 탄이 통로에 서있던 나를 발견하고 가까이 왔다. 잠시 차를 세우고 서로 손짓발짓으로 반가움을 표시했다. '탄아 잘 통과해야해~', '시로야 잘 들어가서 기다려~' 뭐 그리 애틋하게 신파를 찍을 일인가 싶기도 했지만 짧게라도 다시 봐서 좋았다. 통로를 지나 국경을 넘는 지점 오른편에는 작은 강이 보인다. 이 강이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국경을 나누는 기준이 되나보다. 나는 짐도 없고 해서 키르기스스탄 입국수속도 금방 끝났다. 여권에 입국도장을 받고 건물을 나오니 나같은 동승자들이 많이 대기하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 무리에 섞여 까브리를 목빼고 기다렸다. 긴장하고 국경을 넘고 뙤약볕에 기다리고 있자니 목이 매우 탔는데 있는거라곤 여권과 스마트폰이 다였다. 옆에 콜라 파는 곳이 있었는데 사마시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시간이 걸릴지 두시간이 걸릴지 전혀 알 수가 없어 마음을 내려놓고 그저 기다리고 있던 중 한 30여분이 지나서 저 멀리 반가운 까브리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와! 생각보다 빨리 나왔네?" 긴시간은 아니었지만 나 혼자 이렇게 뚝 떨어져있은 적이 없었어서 다시 만난 탄과 까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탄이 국경넘은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군인들이 우호적이고 인상도 좋고 웃으며 대해주어서 여기는 험한 국경은 아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두번째 국경 통과의 기쁨을 탄과 나누며 서로 축하를 했다. 키르기스스탄에는 만나기로 한 분들이 많았다. 한국에서 알게된 선교단체의 대표님을 통해 여러 좋은 일 하시는 분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어떤 분들을 뵙게될까 설레고 기대가 많이 되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BvevsCcTef8?si=yeVWtgZDTEwDhKwc>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5-29 10:12:09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에키바스투즈에서 10시에 체크아웃한 후 남쪽을 향해 부지런히 이동한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아주 원없이 본다. 높은 산도 언덕도 없고 나무조차 보기 힘든 벌판이다. 10년전 미국여행때 이렇게 길외에 아무것도 없는 그런 길을 달려보고 싶었는데 코스를 잘못잡아 그런 기회가 없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카자흐스탄에서 내가 꿈꾸던 버킷리스트를 이루게 되었다. 하늘에 구름 한점 없이, 동서남북 사방을 둘러봐도 새파란 하늘만 머리위에 반구처럼 씌워져있는 신기한 경험이다. 10미터 넘는 나무들이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는 러시아와 달리 나무 한그루 찾아보기 어려운 광야같은 풍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주변 풍경이 점점 변해가는 것이 모래사막이 아닌 자갈사막이 펼쳐진다.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에 비해 체감상 주유소가 드물게 있는 것 같다. 주유소가 있더라도 휘발유만 팔고 경유는 없는 곳이 많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자칫 낭패를 당하기 십상일 것 같았다. 그래서 러시아에선 4분의 1정도 남았을때 주유를 했었는데 카자흐스탄에선 웬만하면 경유 파는 주유소를 만날때마다 주유를 했다. 도로를 달릴 땐 앞차를 잘 만나면 편하다. 카자흐스탄서 만난 마티즈는 우리의 '드로그'(친구)가 됐다. "같이 가요 드로그~" 우리가 스페인어권을 다닐때는 선행차량을 "아미고(스페인어로 친구)"라고 불렀었다. 이제 러시아어권 나라를 다니니 "드로그(러시아어로 친구)"로 명칭을 바꿨다. 선행차량은 무척 중요하다. 특히 가로등 없는 밤길을 갈때 매우 도움이 되고 낮에도 처음 가는 길이라면 선행차량의 움직임을 보고 노면상태와 속도조절 등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카자흐스탄에서는 하루에 두세번 이상은 길에서 경찰을 볼 수 있었는데 이미 한번 나쁜 기억이 있는지라 경찰만 나타나면 초긴장에 숨까지 죽이고 지나가곤 했는데 이때 드로그가 있다면 바짝 붙어서 우리차를 가리며 함께 지나가 경찰을 피하기 좋았다. 한참 가다가 앞서가는 빨간 마티즈 한대를 만났는데 한국차가 반갑기도 했고 우리가 따라갈만한 적당한 속도로 잘 가기에 잘됐다 싶어 드로그 삼아 뒤따라 가기로 했다. 이 마티즈가 참 신통한 것이 속도제한표시가 나오면 그 속도를 철저히 지키고 추월금지구간에선 절대 추월하지 않는 등 아주 노련한 운전자가 타고 있는 것 같았다. 열심히 따라가는 동안 운전하기가 매우 수월해 고마웠다. "같이가요, 드로그~~" 해가 뉘엿뉘 질무렵 도로 옆 까페 앞 공터에 차를 세웠다. 해가 지니 서쪽 하늘이 통째로 무지갯빛이 돼버린다. 구름 한점 없는 석양을 한참 감상하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 하필 길디 긴 냉동트럭이 우리 앞에 차를 세우고 자는 바람에 트럭엔진소리에 밤새 잠을 설쳤다. 잠을 푹 못자 힘들어 짜증이 좀 났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저 운전수는 매일 어찌 잠을 잘까 싶어 마음을 곱게 쓰기로 했다. 아침이 되니 이번엔 동쪽에서 찬란한 일출이 시작되고 있다. 눈닿는 사방에 아~무것도 없기에 같은 곳에서 서쪽의 일몰을 보고 잠들고, 다음날은 동쪽의 일출을 볼 수 있다. 다시 길을 나선다. 해는 더 따갑고 주변 풍경은 더 황량하다. 생명이 스러져가는 풍경에 질려 기운이 떨어져갈때쯤 발하슈 호수 북쪽의 발하시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발하시에 단 하나 있는 중국식당을 인터넷에서 찾아냈다. 호텔의 지하라고해서 호텔에 들어가서 헤매다가 말도 안통하는 직원분의 친절한 안내로 옆으로 돌아 지하로 내려가는 식당을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얼큰한 짬뽕과 바삭한 탕수육을 꿈꾸며 메뉴판을 번역기로 열심히 찾아봤지만 그런건 없다. 그나마 알겠는 볶음고기국수와 으깬감자, 상하이 스프라는 것을 주문해보았다. 잠시후 음식들과 함께 시키지 않은 빵도 함께 나왔는데 먹을까말까, 추가로 돈을 내야하는걸까 의심하다가 탄이 "내면 또 얼마나 더 내겠냐"며 그냥 먹자고 한다. 듣고보니 맞는 소리여서 "그래, 그러자" 하고 막 먹었다. 중국음식이라기엔 뭔가 태국, 우즈벡 등등이 섞인 퓨전스러운 여태껏 한번도 못먹어본 맛이었지만 한끼 든든하게 식사하고나니 주변을 둘러볼 여유와 길 떠날 힘이 생긴다. 발하시의 시내는 별다른 볼거리는 크게 없었지만 조각상이 있는 공원에서 소화도 할겸 산책을 했다. 사실 어제, 오늘 계속해서 남쪽으로 오면서 나무 한그루 찾아보기 힘든 사막의 황량한 풍경이 지겨워져서 지도에서 남쪽의 커다란 발하슈 호수가 있는걸 보고 그래도 호수 근처는 푸르르고 나무도 많겠지 하는 희망이 있었는데 예상과 달리 호수 근처의 도시도 계속 쭈욱~황량하다. 도시를 나와 2시간 이상을 달려도 쉼터 하나 보이지 않는다. 쉬려고 차를 잠시 세우고 있어도 땡볕아래라서 쉬는게 쉬는게 아니었다. 호숫가는 조금 나으려나 싶어 작은길로 들어가 호수로 갔다. 민트색의 잔잔한 물결이 이는 아름다운 호수였다. 하지만 물가에는 정체 모를 거품이 떠있어서 조금 꺼림직해 물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않았다.. 나중에 알게됐는데 이곳은 민물이 아닌, 염분이 많은 호수라고 한다. 동네 아이들은 튜브를 띄우고 즐겁게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호숫가에도 그늘은 없었지만 우리는 호수를 바라보며 허리도 펴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이동했다. 또 다른 드로그를 따라가며 열심히 경찰을 피한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들이 하이빔을 켜며 경찰이 있다는걸 알려준다. 우리나라도 80~90년대에 교통경찰들이 단속을 하며 돈받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예전에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서로 경고해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카자흐스탄의 몇몇 도시에서 카우치요청을 해보았지만 답도 없고 호스트도 별로 많지 않아 찾기가 힘들었다. 동남쪽에 소련시절 수도였던 알마티라는 큰도시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굳이 대도시를 가고 싶지도 않았고 카자흐스탄의 메마른 사막풍경에 지쳐서 이 나라는 그냥 빠르게 지나가기로 했다. 첫인상이 안좋았던 것도 큰 이유중 하나였다. 오늘도 아침 8시부터 저녁 7~8시까지 거의 12시간동안 운전한 셈이었지만 러시아때랑은 달리 노면 상태가 꽤 좋은 길도 많았고 2시간마다 잘 쉬어서 피곤하긴 했지만 버틸만했다. 7시가 넘고 발하슈 호수가 끝나는 지점이 다가오자 우리는 이왕이면 호숫가에서 차박을 하자고 했다. 큰길에서 벗어나 호수근처로 들어가는데 길이 울퉁불퉁 난리도 아니다. 깊이 패여있는 곳이 여러군데 있어 몇번을 차가 통과할 수 있을지 내려서 살펴보고 와야했다. 호수옆 작은 마을을 발견하고 여기가 좋겠다고 세우려다가 창밖에 그 주위를 가득채운 작은 날벌레떼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후퇴해야했다. 벌레를 피해 여기저기 다니다가 결국 호수뷰는 포기하고 그냥 사막 한가운데에 차를 세우기로 했다. 찻길에서도 한참 떨어져있는 곳에 주변에 아무것도 없이 외진 곳이다. 평소에는 다른 트럭들이라도 있는 곳을 선호하긴 했지만 여긴 외져도 너무 심하게 외져서 누가 와서 시비 걸 일이 전혀 없을 것 같았다. 저녁을 대충 먹고 잘준비를 하다가 우연히 하늘을 보고 놀라서 한동안 입을 딱벌리고 쳐다보았다. "우와, 저것 좀 봐봐!" 달도 없는 하늘에 쏟아질 듯한 별들이 촤르르르~ 탄이는 "장시간 운전에 피곤은 하지만 이건 참을 수 없지." 하며 촬영을 시작했다. 아주 어릴적 시골에서 이런 하늘을 본 적이 있던 것도 같은데 잘 기억이 안난다. 차 앞자리에 거꾸로 누워서 한국에선 더이상 볼 수 없는 은하수며 별똥별들을 마음껏 감상했다. 주변에 빛이라곤 전혀 없는 이곳에 차를 세우게된 건 정말 '선물같은 우연'이었다. 트럭 지나가는 소리도 벌레 우는 소리하나 들리지 않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별들을 지붕 삼아 푹 잘 수 있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XPBmxg3fgjY?si=gDOWze5v9IyhhmLy>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5-29 10:05:00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러시아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첫 국경을 넘었다. 5시간이 넘게 걸려서 진땀을 빼고 국경을 넘자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어서 새로운 나라에 도착한 것이 기쁘기보다는 그저 어디가서 쉬고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일단 국경에서 가까운 도시인 파블로다르로 향했다. 가는 길에 작은 마을길을 지나는데 경찰차가 길가에 서있다. 예감이 좋지 않다. 역시나 싸이렌을 울리며 바로 따라왔다. "저희가 러시아말을 몰라요" 하며 일단 한국여권을 꺼내보여주었다. 손짓으로 창문을 올려보라고 한다. 한국에서부터 불안불안하던 썬팅을 트집 잡는 것 같다. 앞유리에는 없었지만 옆 유리에 썬팅필름이 있었다. 한국에서 출발 전부터 뜯어내자고 했었는데 탄이 괜찮을 거라 해서 그냥 두었었다. 러시아에서는 여태껏 별탈없이 왔는데 결국 문제가 되었다. 나는 진작부터 떼고 싶던거 바로 칼을 들고 떼기에 열중했다. 많은 나라에서 윈도우틴팅(썬팅)은 허락되지 않는다 탄이 경찰과 이야기하고 오더니 "돈을 달라는것 같아"라고 한다. 수중에 있던 돈이라곤 러시아돈 1250루블(약 1만8000원)정도가 전부다. 부패경찰한테 다 뜯기긴 아까와 250루블(3700원)만 쥐어줬다. 경찰에 갔다 온 탄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만루블(약 14만원)을 달라고 그러네"라고 한다. "헐, 아주 한몫을 단단히 챙기시려고 드네?" 있어도 안줬겠지만 줄 돈도 없다. 예전에 멕시코에서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별 시덥지 않은 핑계로 차를 세운 후 경찰서에 가자는 둥 감옥에 갈 수 있다는 둥 겁을 주며 돈을 뜯으려는 경찰에게 그때는 순진해서 20만원정도의 거금을 뜯겼었다. 세월도 10년이 지났고, 우리도 산전수전 다 겪었다. 급한 사람이 지는 게임이다. 우리는 차를 길가에 아예 옮겨놓고 나는 계속 필름떼기만 하고 탄이는 웃으며 계속 한국말로 "우리 돈 없어요, 가진게 그것밖에 없어요." 라고 같은 이야기만 되풀이 했다. 결국 경찰들은 우리가 계속 시간을 끌자 뭐라고 잔소리하며 250루블만 받고 그냥 가버렸다. 카자흐스탄에 오자마자 삥부터 뜯기다니 쩝. 큰 돈은 아니었지만 그 상황에 매우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꿀꿀한 기분으로 파블로다르에 갔다. 파블로다르는 생각보다 큰 도시였다. 이곳에서 우리가 먼저 해야할 것은 돈 찾기 또는 환전, 그리고 유심칩 구입이었다. 러시아에서는 장사장님 덕에 너무 편하고 쉽게 했는데 새삼 그립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한국말로 "이거 사고 싶어요" 손짓 발짓..바디랭귀지는 만국 공통어다 어디서 어떻게 할지 조금 막막했지만 큰 길가를 지나다가 쇼핑몰 같은 곳을 발견하고 들어가 보았다. 처음엔 안쪽 광장으로 들어가니 뭔가 아울렛같은 작은 신발과 의류가게가 줄지어 있었는데 다시 나와 건물로 들어가니 오! 그곳에 전자제품매장이 있었다. 휴대폰을 팔면 혹시 통신사도 근처에 있을까 싶어 직원을 붙잡고 러시아에서 샀던 유심칩을 보이며 막무가내 한국말로 "이거 사고싶어요!"라고 했다. 바디랭귀지가 통했다. 자기 휴대폰을 꺼내 번역앱으로 "Next store"라는 글을 보여준다. "우와, 여기 유심칩 파는 매장이 진짜 있나봐!" 기뻐하며 고맙다고 인사하고 달려나가는데 헐레벌떡 따라와 여기라고 매장밖까지 나와서 알려주시는 친절한 직원분. 그분이 아니었으면 못 찾았을 간판도 광고판도 없는 작은 가게에서, 또다시 그 가게 직원분의 번역앱으로 의사소통을 해서 무사히 유심칩을 살 수 있었다. 카자흐스탄은 5~7일 안에 지나갈 예정이라 제일 저렴한 7기가짜리 3690텡게(약 만원) 상품을 구입했다. 그리고 나오다가 ATM을 발견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마스터카드를 넣어 현금 인출을 시도했더니!!! "다다다다다다" 돈나오는 소리가 이렇게 반갑고 기쁠줄이야! 참고로 러시아에서는 비자, 마스터 카드 사용이 불가능했었다. 한 곳에서 목적한 두 가지를 다 이루니 자신만만해졌다. 이제 이곳의 주유소에 익숙해질 차례다. 러시아에서 경유는 리터당 53~69정도 했었는데 카자흐스탄에서는 아예 단위가 세자리수로 바뀌어서 어리둥절하다. 카자흐스탄 기름값이 매우 싸다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주유소 앞 가격표를 봐도 이게 싼건지 비싼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냥 먼저 눈에 띄는 주유소에 들어가서 찾은 돈 중 대충 제법 커보이는 지폐를 내고 돌아와 주유를 시도했다. 탄이 차에 주유호스를 꽂고 손잡이를 눌렀는데 주유기 숫자도 안바뀌고 들어가는 느낌도 없다며 이상하다고 다시 사무실에 갔다. 영어하는 사람을 어렵게 찾아서 같이 나와 주유기쪽으로 와서 이야기를 하는데 이 직원이 반대편 디스플레이를 보여주며 뭐라고 하는데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탄이 주유가 안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차시동을 켜자 희안하게도 조금은 주유가 되어 눈금이 올라가는 것이었다. 아마도 당시 우리가 카자흐스탄 돈에 대한 감각이 없어 너무 작은 금액을 내고는 주유가 금방 끝나 안들어갔다고 생각했던건지 아직도 이 사건은 미스터리로 남았다. 어쨌든 한바탕 작은 소동과 함께 첫번째 주유를 했다. 경찰사건에 이어 주유소도 속이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어서 다행이었다. 원래 오늘은 남쪽으로 가는데까지 가다가 그냥 길가에서 차박을 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어제 국경마을까지 닿으려고 저녁 늦게까지 무리를 하고, 오늘 또 국경넘느라 신경쓰고, 짐들 내렸다 다시 싸고, 경찰을 만나 씨름하고, 돈찾고 주유하는 등 신경쓰고 스트레스 받은 일이 많아 많이 힘들었다. 몸도 마음도 휴식이 필요했다. 즉흥적으로 구글에서(카자흐스탄부터는 구글이 된다) 가까운 마을의 숙소를 검색해보니 100km 거리에 있는 에키바스투즈에 저렴하고 괜찮아보이는 공유숙소가 있어 예약을 했다. 도착해보니 아파트인데 호수는 안나와있고 연락처는 있지만 전화해봤자 러시아말을 못하는데 이걸 어쩌나 싶었다. 딱 울란우데에서의 상황과 같았다. 숙소 위치를 모른다, 지나가는 어린 학생들을 무작정 붙잡았다 마침 지나가는 어린 학생들을 무작정 붙잡았다. 어차피 영어를 모를테니 핸드폰을 보여주며 그냥 막무가내 한국말로 "이 주소가 여기 맞아?" 하고 물어봤다. 다행히 소년들은 그냥 지나치지않고 열심히 들여다보더니 자기 핸드폰을 꺼내 찾아보고는 바로 앞 아파트가 맞다고 끄덕인다. "그럼 여기로 전화 좀 해줘." 라며 뻔뻔스럽게 숙소주인 전화번호를 들이밀었다. 착한 학생들은 나의 바디랭귀지를 알아듣고 전화를 해주었다. 그와중에 내 폰 인터넷이 안되서 자기 폰 핫스팟으로 연결해주고 내 폰배터리가 나가자 전화도 본인폰으로 걸어줬다.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열한두살쯤 되보이는 소년은 집주인과 길게 통화를 나눈 후에 자기 핸드폰 번역앱으로 "주인이 5분내 올거다"라고 알려주는데 정말 와락 안아주고 싶을만큼 고맙고 감사했다. 차에 뛰어가 우리 유튜브명함이랑 코리아가 수놓아진 컵받침을 가져와 선물로 주었다. 숙소주인을 기다리며 소년들에게 우리 차도 구경시켜주고 번역앱으로 띄엄띄엄 여행이야기도 약간 나누었다. 곧 주인이 와서 우리는 소년들과 기분 좋은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알고보니 주소가 잘못 적혀있던 모양이다. 주인의 차를 따라 한 5분간 더 가서 숙소에 도착했다. 11000텡게(약 3만원)의 저렴한 곳인데 침실에, 거실에, 주방에, 필요한 것이 다 있다. 주인 아주머니는 이곳저곳을 세심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가셨다. "카자흐스탄엔 부패경찰만 있는게 아니야" 국경에서 애를 먹고 국경 지나자마자 만난 경찰에 마음 상해 카자흐스탄에 대한 인상이 확 안좋아졌었지만 오늘 만난 좋은 사람들을 하나하나 다시 생각해보았다. 자기매장 고객도 아닌데 매장밖까지 따라나와 유십칩 살수있는 가게를 알려준 청년, 친절하게 유심칩 안내를 해준 직원분, 숙소찾는 것을 도와준 소년들 등... '어디에나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어. 한 두 사람으로 그 나라 전체를 평가해서는 안돼' 라고 생각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AtVccTsSlKc?si=GAx7uzS-hk7i40_z>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5-17 15:18:02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내가 알던 러시아는 북한을 도와 우리나라를 갈라놓은 나쁜 나라, 덩치 큰 불곰국형님들이 보드카를 마셔대는 나라, 차갑고 무뚝뚝한 사람들의 나라였다. 두달 가까이의 여행 후 러시아는 백인, 황인 등 다양한 인종과 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 어마어마하게 큰 광활하고 비옥한 땅을 가진 나라, 우리와 다르지 않은 희노애락을 느끼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로 보였다. 우리가 여행을 시작할 때는 러-우크 전쟁이 막 발발하던 때였다. 러시아에 대한 감정이 안좋아 같이 출발한 혹자는 러시아는 그냥 지나가는 곳으로 빠르게 패스할거라고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하지만 우리는 전쟁의 책임과 상관없는 평범한 러시아 사람들과 문화가 궁금했다. 그래서 열심히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전쟁의 책임과 상관없는 평범한 러시아인들의 문화가 궁금했다 러시아의 도로가 안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다녀보니 과연 비포장도 많고 아스팔트도 누더기처럼 덧대거나 깊은 구멍이 갑자기 나타나는 경우도 많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서쪽으로 갈수록 도로사정은 조금씩 좋아진다. 아무래도 수도인 모스크바의 재정과 관리가 멀리 시베리아 동쪽까지 닿기가 힘든것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 서울과 춘천 2시간거리를 달리려면 십여개의 터널을 지나야 한다. 하지만 러시아의 그 넓고 광활한 땅을 한달간 달리며(약 7000km) 단 한개의 터널도 만나지 않았다. 큰 다리도 건넌적이 없다. 험한 산지가 없이 대부분이 평지였다. 도로는 거의 편도 1차로가 대부분이었다. 주유소는 100~150km마다 자주 있는 편으로 너무 바닥나지 않도록 잘 관리하면 낭패볼 일은 없을것 같았다. 우리는 계기판의 남은 디젤이 4분의1이 되기전 주유소를 들어갔었다. 우리가 흔히 보았던 러시아의 사람들은 무표정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차갑거나 화가나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우리나라도 20여년 전까지만해도 잘 웃지 않는 사람들로 여겨졌었다. 내 가족이나 친구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웃으며 이야기해도 모르는 사람에게 굳이 처음부터 웃어줄 필요를 못 느끼는 문화인 것일 뿐이었다. 한국에서 접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기사는 매우 자극적이고 러시아를 나쁘게 묘사하는 것들 위주로 되어있다. 러시아군인에게 그 아내가 우크라이나 여자는 강간해도 된다는 전화통화 내용을 보도한 기사 등 러시아 사람들을 싸잡아 파렴치한 나쁜 인간들처럼 여기도록 하는 내용이 많다. 하지만 직접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 러시아 사람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고 오히려 친절하고 정이 많았다. 몇몇은 작은 나라를 침략한 사실을 매우 마음 아파했고 푸틴 정부가 "군사적 특별작전"정도로 이 전쟁을 왜곡해 축소하려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탄압으로 반대의견을 낼 수 없는 사회 시스템에 안타까워했다. 평화롭게 공존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언론에서는 러시아는 전쟁의 피해를 전혀 못느끼고 잘만 지내는 듯 그렸지만 경제제재의 피해는 고스란히 물자의 부족과 급등한 가격으로 서민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었다. 물론 폭격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우크라이나인들에 비하면 큰 피해도 아니겠지만... 억압과 가부장적 분위기에 무겁고 심각해 보이는 러시아 사람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러시아의 자동차들은 나라의 크기에 비해 작은 차들이 주를 이루었다. 동쪽에는 거의 폐차해야할 수준의 차들이 금가고 깨진 유리창을 달고 범퍼도 없이 시꺼먼 매연을 뿜으며 다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역시 서쪽으로 갈수록 점점 차의 상태도 좋아지고 제법 큰차도 볼 수 있었다. 특이했던 점은 운전대가 우측에 있는 일본차가 전역에 많다는 점. 금지법이 없어 일본의 중고차가 저렴하게 많이 들어오는것 같았다. 스페인어권인 중남미의 사람들과 경제수준은 비슷해보였지만 중남미사람들은 낙천적이고 즐거워보이는 반면 러시아어권 사람들은 억압과 가부장적 분위기에 무겁고 심각해보였다. 얼마전까지만해도 나는 우리나라보다 못사는 듯한 나라에 가게되면 어리석게도 '아, 이나라는 몇년이나 지나야 우리처럼 잘살게 될까?'하는 오만한 생각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러시아를 다니며 한국과는 달리 길에서 많은 어린이들을 볼 수 있음을 깨닫고는 한국이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아 아이를 낳아 키우고싶지 않은 나라이고, 자살률이 가장 높으며, 사회 각계각층의 갈등이 극도로 치닫고 있음이 떠올라 과연 한국처럼 되는 것이 바람직한가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인프라가 한국보다 덜 되있건 GDP가 한국보다 낮건 각 나라 사람들은 그 나라에 맞게 적응하며 나름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결코 멱살잡고 "한국처럼 발전해"라고 끌어당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지나며 보아온 풍경은 거의가 장대한 나무들이 울창한 푸른 숲과 풍부한 강과 비옥해보이는 검은 흙등이었다. 이 넓고 좋은 땅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옆나라 작은 땅마저 빼앗지 못해 안달인가 이해되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우리가 시베리아의 겨울을 만나지 못해서였을 지도 모르겠다. 나쁜나라 좋은나라는 없다. 탐욕스런 사람이 정치를 하는 나라가 있을 뿐. 어느 나라건 대부분의 서민들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그냥 사람들일 뿐이다. 내가 만난 러시아친구들을 떠올려보니 이탈리아와 멕시코친구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나그네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조금이라도 돕고자하는 선한 마음을 가진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된 것에 너무너무 감사드린다. 러시아에 대해 가졌던 나의 편견을 보기좋게 깨준 것에 더 깊은 감사를 드린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08MiC7LKf0Y?si=K9Pkju7LlUlNPGKv>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5-05 10:57:17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노보시비르스크로 가는 길. 날이 흐렸다 비가왔다 오락가락 하다. 중간에 네비게이션이 이상한 길로 안내해서 출렁다리로 강을 건너고 잠시 당황했지만 덕분에 못보던 시골길을 달리게 되어 나쁘지 않았고 곧 다시 메인도로로 수월하게 잘 돌아왔다. 노보시비르스크까지는 빨라야 이틀길이다. 너무 어두울때 도시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첫째날은 좀 늦게까지 이동을 했다. 9시가 못되서 길 안쪽에 있는 넓은 쉼터를 발견하고 들어갔다. 헛, 우리차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한 러시아 아저씨가 다가온다. 100루블을 내라는 말에 나는 거부감이 좀 들었는데 탄은 여기는 울타리도 있고 도로와 떨어져서 차 지나가는 소리도 덜들리고 2000원에 지켜준다는데 땡큐지 하며 선뜻 지불한다. 다른 대형트럭들도 몇대 주차되어있고 재래식이지만 냄새 거의 안나는 변소도 있고 안전에 안심이 되어 잘 왔다 싶었다. 잘 자고 새벽 6시 다시 이동한다. 하늘은 아직도 흐리다. 구름이 낮고 넓게 깔려있어 하늘에 큰 구름이불이 덮인 것 같다. 숲길도 지나고 케메보로라는 좀 큰 도시도 지나고 부지런히 이동하며 주위 풍경을 만끽한다. 시야 가득 펼쳐진 하늘에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을 보는 것 만으로도 지루할 새가 없다. 주행중에는 대형트럭을 많이 만나는데 앞서가는 트럭뒤에 75라는 숫자가 쓰여있다. "자체 제한속도가 75라는거 아니야?" 하고 농담하며 웃었는데 뒤따라 가다보니 정말 75km/h로 달린다. 점심때는 쉼터에 차를 세우고 짜장면을 해먹었다. 탄이 운전만 하고 앉아있기 지겹다며 서서 요리하기를 자청해서 스파게티면에다 스팸과 양파를 추가해서 짜장가루로 맛을 낸 요리를 만들었는데 그럴듯하다. 맛있게 잘 먹었다. 이케아가 있는 도시.. 연어와 미트볼 잔뜩 기대했는데 '휴업'이네 오후 5시경 대도시 노보시비르스크에 도착했다. 러시아에서 몇 안되는 이케아가 있는 도시라고 들어서 이케아 식당에들러 미트볼과 연어샐러드를 먹을 생각에 나는 몇일전부터 들떠있었다. 그러나 주차장이 막혀있고 뭔가 썰렁하고 싸한 느낌. 휴업중이라고 한다. 아마도 전쟁여파인듯... 실망이 컸지만 할수 없지 하고 대신 Aura라는 대형 몰을 찾아갔다. 하남의 스타필드 같은 느낌의 어마어마하게 크고 현대적 시설을 갖춘 쇼핑센터였다. 식당가도 무척 넓고 여러 종류의 식당이 있었다. 쇼핑몰 1층에는 큰 마트도 있어 계란 등 식료품을 잔뜩 샀다. 아쉽게도 노보시비르스크에서는 카우치요청에 답이 없어서 시 외곽의 저렴한 숙소를 예약했다. Apostol이라는 호스텔이었는데 가보니 카톨릭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시설인듯 했다. 특이하게 오후 7시부터 체크인이 가능한 곳이었는데 어차피 일찍 들어갈 일이 없어 상관없었고 3만원정도로 착한 가격에다 깨끗한 침상과 시설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노란 방안의 벽에는 예수님의 그림과 십자가가 걸려있었다. 매우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차고도 있고 밤에는 문을 잠그는 철제울타리도 있어 안심이 되었다. 공용주방에서 편안하게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아침에 커피와 크림스프, 계란과 소세지샌드위치를 만들어 든든히 먹었다. 호스텔 복도에 걸린 사진들을 보니 여러 구호사업등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이곳에서 편히 쉴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또 하시는 일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소량의 러시아 돈을 기부함에 넣었다. 러시아의 마지막 대도시 노보시비르스크를 떠난다. 보통 대다수의 러시아 횡단 자동차 및 바이크 여행자들은 모스크바를 향해 계속해서 서쪽으로 가지만 우리는 스탄국가들에 가기 위해 여기부터 남쪽으로 방향을 꺾어 내려가기로 했다. 국경통과는 오전에 하는 것이 좋다고 해서 국경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인 카라숙으로 가서 밤을 보낼 계획이다. 한참 러시아에서 보기드물게 노면상태가 좋은 도로를 기분 좋게 드라이브를 하다가 탄이 갑자기 왼쪽 샛길로 들어선다. 앞에 길을 막아놓은 것을 보았다고 한다. 공사 중인걸까? 왼쪽의 작은 길로 들어갔다가 얼마간 진행되면 다시 큰 길로 돌아올 생각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노란 파이프들이 줄지어 있는 작은 마을로 들어왔다. 마을을 지나니 비포장길이 점점 좁아지고 길을 잘못 들어 작은 마을을 한바퀴 빙 돌아 나오기도 하고 차가 다닌 자국은 있지만 길이라고 할 수도 없는 곳을 계속해서 가다가 급기야 차가 더이상 갈 수 없을듯한 푹 패인 곳에 다다랐다. 탄이 내려서 앞에 길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온다고 나갔다. 겁이 더럭났다. 주변에 차는 커녕 사람 한명 다니는 것을 못본지 오래였고 만약 차가 빠져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나 불안했다. 러시아말을 전혀 모르는 데다 시골이라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다. 탄이 돌아와서는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과연 가능할지 너무 걱정이 되었다. 겨우 하나를 지나가면 또 비슷한 구간이 나와 수차례 멈추었다 쿵덕거리며 아슬아슬하게 지나가기를 반복했다. 나는 긴장해서 팔걸이를 꽉 잡은 손에 땀이 범벅이 되고 말수를 잃었다. 그저 속으로 아무 사고없이 이 구간을 지나가기를 바랄 수 밖에 없었다. 느릿느릿 한시간 넘게 이런 길을 지나 겨우 큰 길이 눈앞에 보였다. "어휴 살았다."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안도하는 것도 잠깐이고 산너머 산이다. 지금까지 러시아를 한달 넘게 다니면서 한번도 본적 없던 중앙분리대가 떡하니 있어 좌회전을 할 수가 없다. 다시 온방향으로 우회전해서 가야한다. 한시간을 넘게 헤매며 온 방향으로 다시 10여km를 되돌아가서 겨우 유턴하는 곳을 찾아 돌아갈 수 있었다. 카라숙에 도착하면 러시아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식당에 가서 아직까지 못 먹어본 보르쉬, 블린 등을 먹자고 격려하며 계속해서 달려갔다. 눈앞의 석양이 유난히 따가워 바라보며 달리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길에서 허비한 시간을 버느라 오후 9시가 되도록 달려서 어두워지기 직전 겨우 카라숙에 닿았다. 시간이 너무 늦어 식당들은 모두 문을 닫은 상태여서 외식은 포기하고 겨우 마트를 하나 찾아 식료품을 사서 저녁을 해결했다. 마을 지도에 작은 호수같은 것이 몇개가 보여 예전처럼 호숫가 차박을 꿈꾸며 찾아봤지만 차를 대고 잘만한 곳은 없었다. 다시 시내로 돌아와 어느 아파트의 주차장에 들어가 마치 주민인 듯 차들 옆에 우리 차를 세우고 몰래 차박을 했다. 쉽지 않은 하루였지만 별 탈 없이 조용하고 안전하게 잘 잘 수 있었다. 6시경 일어나 아침은 건너뛰고 바로 국경으로 출발했다. 되도록 일찍 가고싶기도 했고 긴장되어 뭘 먹을 생각이 없었다. 카라숙에서 국경인 App 까지는 약 2시간 정도 걸렸다. 아침 일찍인데도 벌써 많은 차들이 와있었다. 대형트럭들이 줄줄이 서있는 것이 너무 길어 "헉, 저 차들을 다 기다려야 하나?" 당황스러웠는데 다행히 작은 승용차나 우리같은 캠핑카는 훨씬 짧은 옆줄에 세우면 되었다. 아마도 절차가 다른 모양이다. 그래도 꽤 긴 줄에 차를 세우고 기다리는 동안 탄이는 한국말을 할 줄 아는 트럭기사 아저씨들과 떠들썩하게 여행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비행기 여행때 농수산물은 국경통과가 안되서 버려야했던 기억이 떠올라 남은 감자를 급히 삶기 시작했다. 익힌 것은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신경쓸 필요가 없었던 것이 여행내내 차로 국경을 지날때에 과일이며 농수산물이 문제가 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우리 차례가 되어 차를 안쪽으로 이동시키고 내려서 사무소에 들어가 출국심사를 받았다. 우리 앞의 러시아 사람들은 금방금방 끝나 지나가는데 탄이 차례가 되자 이야기가 길어진다. 긴장되는 출국심사..말이 통하지 않아 더욱 답답하고 떨린다 차량의 짐을 모두 내려야한다. 말이 안통하니 서로 답답하다. 자동차등록증을 달라는 것일까? 우리가 가져온 것들을 보이며 "이게 다예요" 라고 아무리 말해도 안 통한다. 조금 있다가 상관인듯한 군인이 와서 우리 서류를 살펴보더니 심사관한테 이거면 된다고 하는 듯 해서 한시름 놓고 한참만에 겨우 여권에 도장을 받았다. 다음은 차 검사. 방바닥TV를 보고 이곳 국경이 까다롭지 않다고 들어 일부러 찾아왔는데 참, 사람마다 다른가보다. 까브리에 있는 거의 모든 짐을 몽땅 다 바닥에 내려서 하나하나 열고 속까지 샅샅이 파보고 나서야 됐다는 사인이 났다. 전에는 내 살림이 여러 모르는 사람들 앞에 까발려지는 것이 창피하고 속상했던 때도 있었지만 한두번 겪고나니 그저 이 사람들도 자기 일을 할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러시아 출국에 3시간이 넘게 걸려 겨우 나왔다. 이번엔 카자흐스탄 입국심사가 기다리고 있다. 또 긴 줄을 기다려서 우리 차례가 되었다. 또 차량등록증이 문제다. 자기들이 익숙한 뭔가 작은 종이를 달라고 하는 것 같은데 우린 그런 것을 본 적이 없다. 영문차량등록증이랑 러시아 입국시 받은 증서가 다일뿐. 기다리라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이 오고, 왔다갔다 몇번을 하고난 후에야 드디어 40여분만에 우리 여권에 입국 도장이 찍혔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여권을 받아 차를 타고 출입국 너머로 이동하려하자 또다시 차를 세우는 카자흐스탄군인. '후, 또 짐을 몽땅 빼야하는건가?' 다행히 이번엔 4~5개정도만 빼고 살펴보더니 가라고 했다. 이렇게해서 약 5시간 만에 국경을 넘고나니 둘다 진이 쏙빠져서 국경사무소가 안보이는 곳으로 얼마간 이동하고는 차를 세우고 한동안 맘을 추스려야했다. 국경 넘는 것은 정말 긴장되고 힘이 들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WoAEJASdzWk?si=6clXQ_AqDO5EDx_m>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5-05 10:52:18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바이칼에서 두번째로 가고싶은 곳은 1시간반 거리의 붉은 모래(Red sands). 바이칼의 호숫가는 거의 자갈강변인데 특이하게 이곳만 보석류인 석류석모래로 이루어져 붉은 색을 띄고 있다는 정보를 보고 궁금해져서 보러 가기로 했다. 고장난 차 발견.."오, 우리가 러시아 청년 도와줄 차례" 레드 샌드로 가던 중, 길옆에 비상등을 켜고 서있는 차와 청년들이 보였다. 설까말까 망설일 새도 없이 탄이 그 앞에 차를 세웠다. 사실 우리차를 보고 한국번호판을 달고 있는 것과 캠핑카 여행자인줄 알아차리는 러시아 사람들이 와서 말을 거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일일이 친절히 응대하지는 못해도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면 무조건 돕자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딱 그런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일행 중 마침 알렉산더라는 영어를 하는 친구가 있어서 소통이 가능했다. 차를 견인해 가까운 마을의 정비소까지 이동시켜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다행히 그 친구들에게 견인줄이 있어서 까브리 뒤쪽에 줄을 매달 곳을 찾아 연결할 수 있었다. 다른 차를 달고 운전하기는 탄이도 생전 처음이라고 한다. 한국은 워낙 시스템이 잘 돼있어 이럴 일이 없지만 여기선 흔한 일인것 같다. 이들은 이르쿠츠크에 사는 4명의 친구들이었는데 함께 여행을 하려고 출발한 지 3시간 만에 차가 갑자기 멈춰버려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고 한다. 작은 차에 4명이 타고 짐까지 가득 싣고 있었다. 우리차 앞자리에는 붙어 앉으면 3명까지 탈 수가 있어서 고장차와의 소통을 위해 알렉산더가 우리차에 동승했다. 안전을 위해 40km이하로 천천히 이동해야 했다. 시간은 두배 이상 걸렸지만 도울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즐거웠다.(고장 차량분들은 아니었겠지만--;) 가는 동안 알렉산더와 왓츠앱등록도 서로하고 우리의 여행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한국에 가보고 싶다고 하길래 오게 되면 우리에게 꼭 연락하라고 하며 카우치서핑도 추천해주었다. 한참을 달려 호수 근처의 작은 마을 바이칼스크의 한 정비소에 도착했다. 정비소에서 견인해온 차의 시동을 걸어보니 고장났던 차가 다시 움직이는 듯해 모두 기뻐했다. 하지만 또 주행중 멈출 수 있으니 일단 정비를 받아야 할 것 같았다. 헤어지기 전 우리차와 같은 모터홈이 꿈이라는 네명의 친구들에게 차를 구경시켜주었다. 다들 너무 좋아했다. 친구들은 감사의 의미로 다차에서 만든 쨈을 우리에게 선물해주었다. 함께 사진을 찍고 이렇게 또 하나의 추억이 만들어졌다. 다행히 레드샌즈가 그곳에서 멀지않아 바로 찾아갔다. 들어가는 길이 울퉁불퉁했는데 어찌어찌 잘 도착했다. 호수옆에 약간의 공터가 있어 이곳에서 차박을 했어도 괜찮았겠다 싶었다. 호숫가에 가보니 역시나 붉은 모래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른 곳과 달리 약간 따뜻한 색계통의 잔 모래가 많이 있긴 했는데 보고싶던 쨍한 붉은모래는 사람들이 가져가고 파도가 쓸어가 일이년 전부터 보기 힘들다더니 정말 보통 강변같아 보인다. 환경이 더 파괴되기 전 여기저기 열심히 돌아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그런데 몇일 후 알렉산더로부터 메세지와 사진이 왔는데 우리가 레드샌드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차를 고친 후 그들도 레드 샌드를 찾아가 보았는데 발견했다는 것이다. 지도에 나온 곳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남아있었다고 했다. 보내준 사진의 붉은색 모래가 신기하고 아주 예뻤다. 직접 보지못해 좀 아쉬운 마음이 있었지만 아직 붉은 모래가 남아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알려준 알렉산더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바이칼에서 서쪽으로 두시간 거리에 이르쿠츠크가 있다. 아마도 바이칼호수를 구경오는 사람들이 도착하는 곳이 이곳일 것이다. 여기도 꽤 큰 도시라 마트에 들러 장을 볼 생각이었는데 소통의 부재로 탄이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어두워질 때쯤 길 옆 한 카페주차장에서 밤을 보냈다. 도로 바로 옆이라 차 지나가는 소리가 커서 걱정이 되었는데 탄이 준 말랑한 귀마개가 아주 효과적이었다. 처음엔 거부감이 좀 있었는데 한번 해보니 이물감도 별로 없고 소음을 꽤 잘 막아줘서 수면에 도움이 되었다. 다시 이틀길을 달려 크라스노야르스크에 도착했다. 가는 길 위에서는 인터넷이 안되서 미리 카우치 요청을 보낼 수가 없었다. 도시에 도착해서야 급히 검색해보고 바실리라는 친구에게 당일 묵어도 되는지 요청을 보내보았다. 하지만 너무 급작스러운 요청이라 무리겠지 하며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답이 없으면 대충 길가에서 일찍 자고 내일 새벽에 또 이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내를 구경하며 밥을 먹고 있었는데 웬걸 바실리에게 답이 왔다. 그는 "No problem"이라며 시원스레 주소를 알려주었다. 너무 반갑고 감사한 마음으로 찾아갔는데 그는 시내 서쪽의 좋은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었다. "No problem" 카우치서핑으로 만난 바실리 우리가 그의 아파트 앞에 도착하자 바로 내려와서 우리 까브리에 큰 관심을 보이며 차내부를 구경하고 무척 흥미로워했다. 함께 계단을 올라가며 우리 짐을 들어주는 등 무척 친절했다. 우리는 신나게 서로의 여행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도 표트르처럼 히치하이킹으로 러시아를 돌아다닌 경험이 있어 여행자의 힘듦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바실리는 20대 후반의 IT쪽 일을 하는 청년이다. 그러나 그의 원래 꿈은 야마카시, 파쿠르같은 익스트림 스포츠를 하며 촬영하고 편집하는 방송쪽 일을 하고싶어 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에게 그가 1년동안 제작한 영상과 사진들을 보여주었는데 놀라서 감탄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우리가 하루만 머무르고 가겠다고 하자 바실리는 매우 아쉬워하며 저녁에 시간이 있으면 크라스노야르스크 시내를 구경시켜주고 싶다고 한다. 사실 차박에 지쳐 쉬고자 들른 것이었지만 친구의 성의에 감사하며 저녁시간에 함께 외출을 나섰다. 차가 있는 폴이란 친구를 불러 우리를 태우고 크라스노야르스크의 야경을 볼 수 있는 "콘카"라는 곳에 올라갔다. 예니세이강과 불빛이 아름다운 다리가 보이고 도시의 불빛이 별처럼 반짝였다. 강때문인지 도시에 구름이 내려앉은듯 안개가 낀 풍경이 더욱 신비로워 보였다. 친구 덕분에 이런 풍경을 보는구나 싶어 정말 고마웠다. 다음엔 시내의 차가 다니지 않는 거리인 미라, 레닌, 마르크스 거리로 갔다. 그곳에서 바실리의 여자친구 크리스가 합류했는데 마침 광장의 커다란 무대에서 무료콘서트가 진행 중이어서 운좋게 구경할 수 있었다. 처음 듣는 음악이었지만 사람들 틈에 섞여 잠깐의 흥겨움을 느낄 수 있었다. 단 하룻밤 머물렀지만.. 아름다웠던 크라스노야르스크의 추억 걷다보니 전망대에서 봤던 불빛이 아름다운 다리에 왔다. 솜씨 좋은 바실리가 적극적으로 우리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포즈를 취하라고 열심이다. 친구들 모두 어찌나 사려깊던지 춥지않냐며 괜찮다고 해도 옷을 빌려주고 계속해서 필요한 것이 없는지 살피고 물어봐주어서 너무 고맙고 황송할 지경이었다. 멋진 밤외출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크리스의 엄마가 만드신 케이크를 같이 먹었는데 과일이 들어있어 새콤달콤 너무 맛있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웃고 떠들며 좋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바실리가 아니었으면 차타고 그저 스쳐가는 지역중 하나였을텐데 비록 단 하루였지만 그의 덕분에 크라스노야르스크는 러시아의 아름다운 도시로 기억에 강하게 남았다.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바실리는 뭘 도와줄까 물어보고 엄마의 다차에서 가져온 양파며 감자 등을 가져가라며 잔뜩 주었다. 편하게 쉬고 씻고 세탁도 할 수 있게 해주고 커다란 추억을 만들어준 바실리에게 너무너무 감사하다. 지금 생각하면 뭐 그리 급한 일이 있다고 하루만에 나왔을까, 아쉬워하는 친구와 하루라도 더 같이 보내며 여유 있게 이야기도 나누고 할걸 하는 마음이 든다. 여행 초반이라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에게 몇가지 선물을 했는데 그중 한국에서 사간 눈오리 집게가 있었다. 그런데 몇달후 겨울에 바실리는 그가 직접 만든 눈오리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잘 활용하고 있는 것같아 반갑고 기분 좋았다. 아쉬운 마음에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지만 우린 다음날 노보시비르스크를 향해 출발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osoydnMxZsg&t=375s>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4-15 10:1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