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은사 중에 자신의 집 마당에서 키우던 애완견을 '이토'라고 부르던 분이 계셨다. 예상한 대로 이토의 풀네임은 이토 히로부미다. 한국 고전문학을 전공한 선생이 개 이름을 그렇게 지은 까닭을 알기에 피식 웃음이 났던 기억이 새롭다. 한번은 선생의 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토가 쪼르르 달려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이토를 번쩍 들어올린 선생은 "녀석이 제법 나를 잘 따른다"며 껄껄 웃었다. 일본사람들이 들으면 기겁을 할 에피소드이지만 한국에서 이토 히로부미(1841~1909)에 대한 대접은 이럴 수밖에 없다. 1909년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쏜 총탄을 맞고 유명을 달리한 그가 누군가. 한반도 식민지화의 기틀을 마련한 일본 제국주의의 일등공신 아닌가. 그러나 그에 대한 일본에서의 평가는 우리와 180도 다를 수밖에 없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재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는 낮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메이지정부 초대 총리대신을 지낸 입지전적 인물이자, 일본 근대화를 이끈 민족의 영웅 대접을 받는다. 일본 정부가 9일 내놓은 새 지폐 도안 때문에 한·일 양국이 시끄럽다. 일본 경제의 상징인 1만엔권 속 인물을 시부사와 에이이치(1840~1931)로 바꾸겠다고 발표하면서다. 이토 히로부미의 절친으로 알려진 시부사와는 일본 내에서 '근대경제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인물이다. 그는 다이이치국립은행, 도쿄증권거래소, 도쿄가스 등 다수의 기업을 세웠다. 국내에선 구한말 경부선 철도 건설에 간여하고 경성전기 사장을 지내는 등 한반도 경제침탈의 최선봉에 섰다. 일본 지폐의 얼굴로 그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소식이 달갑지만은 않은 이유다. '지폐의 세계사'라는 책을 쓴 대만 인문학자 셰저칭은 "지폐는 단순한 돈이 아니라 시대적 기억"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지폐의 도안은 시대와 역사를 반영할 뿐 아니라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함축한다. 이번 지폐 도안 변경 논란이 아베 정권의 역사관을 보여주는 듯해 씁쓸하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논설위원
2019-04-10 17:31:14[파이낸셜뉴스] 일본의 1만엔 신권 지폐에 담긴 인물이 불륜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가운데, 1만엔 지폐가 결혼식 축의금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인식까지 확산하고 있다. 3일 야후재팬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 7월 발행된 일본 1만엔 신권에 실린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과거가 온라인 상에서 확산하면서 이 지폐를 결혼 축의금으로 쓰면 안 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시부사와는 본처와 불륜녀를 한집에 동거시키며 불륜을 저질렀고 집안에서 일하던 여종에게도 손을 댄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1만엔권이 상대방의 외도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축의금에 적합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본 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불륜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결혼식 축의금에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옛 지폐를 사용하는 것이 예절이다"라는 글이 퍼지고 있다. 이날 야후재팬에 보도된 결혼식장을 찾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 조사에 따르면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새 지폐를 축의금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약 3할의 사람들이 예절 위반이라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후카야시의 코지마 스스무 시장은 "매우 유감스럽다. 에이이치가 여성을 좋아했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지만 그런 이야기가 독자적으로 퍼져나가는 것이 힘들다"며 당혹스러운 입장을 전했다. 코지마 시장은 "시부사와 씨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사람'이다.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다양한 상담을 해결책으로 만들어 갔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에이이치 씨가 해온 일들을 조사하고 공부해 주신다면 감사하겠다"고 덧붙였다. rainbow@fnnews.com 김주리 기자
2024-10-04 15:08:09【도쿄=김경민 특파원】 일본 1만엔 신권의 얼굴인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일본 사회에서 재조명되고 있는 가운데 그의 여성 편력 등 부정적인 이력도 드러나 화제다. 10일 일본 아사히 계열 아베마타임스는 시부사와는 '근대 일본 경제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지만 아내를 두고 불륜을 저질렀던 전적이 있어 물의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부사와는 아내와 불륜녀를 한 집에 동거시키고, 집안에서 일하던 하녀에게도 부적절한 행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부사와는 불륜을 연상하기 때문에 결혼식 축의금에는 시부사와가 그려진 1만엔 신권 대신 후쿠자와 유키치가 그려진 구권을 사용하는 게 매너라는 지적도 나온다. 시부사와는 일제강점기 한반도 경제 침탈에 앞장선 인물로도 알려지며 논란이 된 바 있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2024-07-10 15:27:31【도쿄=김경민 특파원】 일본이 신권을 발행한 가운데 현지에서 무현금 결제 문화가 빠르게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3일 오전에 신권이 은행 지점에 도착했지만 새 지폐를 구하기 위해 점포를 방문한 사람은 드물었다"며 "신권 발행 전날 밤부터 새 지폐를 요구하는 사람이 일본은행 본점에 모인 20년 전의 디자인 변경 때와 비교하면 분위기가 다르다"고 보도했다.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캐시리스(무현금) 결제 비율은 2023년 39% 정도다. 2025년까지 40%로 끌어올리겠다는 일본 정부 목표에 이미 육박했다. 이번 신권 발행에 따른 자동판매기 및 현금자동인출기(ATM) 등 기종 변경, 시스템 개선으로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연 0.27%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신권 환경에 대응하지 않고 완전한 무현금 결제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지난 5월 도쿄 내 라멘전문점인 '브레이크 비츠'는 현금을 받지 않는 티켓 자판기로 교체했다. 현금 기반 모델 대비 도입 비용은 절반이 채 안 됐다. 은행 점포 수도 20년 동안 30% 이상 줄었다. 신용카드 발행 건수는 3억건을 넘었고, 스마트폰 결제 시장의 약 70% 이상 점유율을 차지한 페이페이의 등록자 수는 6400만명에 달한다. 금융기관도 디지털화를 가속화 중이다. 미쓰이스미토모 파이낸셜그룹은 중기 투자 규모를 1000억엔 늘려 스마트폰 전용 금융 서비스 '올리브'의 기능을 확대하고 점포 수를 줄여간다는 방침이다. 그럼에도 아직 일본의 무현금 결제 비중은 주요국 대비 뒤처졌다는 평가다. 캐시리스 결제 비율은 2020년 기준 영국은 63.9%, 싱가포르는 60.4%, 미국은 55.8%에 이른다. 글로벌 사회는 자금 세탁을 막기 위한 노력으로 고액권 지폐를 폐지하는 추세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016년 500유로권(약 74만5000원)을 폐지했고, 싱가포르는 2021년에 1000싱가포르 달러권(약 102만원)의 발행을 중단했다. 일본은행(BOJ)에 따르면 현재 유통되는 화폐량은 4조7000억엔(40조2353억원) 정도로 20년 전 대비 6% 증가했지만, 1만엔권으로 발행된 지폐는 약 120조엔으로 60% 증가했다. 당국의 금융완화로 자금 공급이 늘어난 데다 저금리로 은행 예금의 매력이 떨어지면서 은행에 맡기지 않는 '장롱 예금'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편 일본은 전날 1만엔권, 5000엔권, 1000엔권 등 3가지 신권을 발행했다. 특히 새 1만엔권의 얼굴에 일본 '자본주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1840~1931)가 낙점됐다. 시부사와는 한반도 침략이 선봉자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로, 신권에 들어가기에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2024-07-04 12:58:43[파이낸셜뉴스] 일본은행이 20년 만에 도안을 완전히 바꾼 새로운 지폐 3종을 3일 발행한 가운데, 일제강점기 한국 경제침탈 주역의 얼굴이 실려 논란이 예상된다. 현지 공영방송 NHK와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은행은 이날 오전 도쿄 주오구 일본은행 본점에서 새 지폐 발행 기념식을 열고 신규 1000엔권과 5000엔권, 1만엔권 유통을 개시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기념식에서 "오늘 1조6000억엔(약 13조7000억원)의 새 일본은행권을 세상에 내보낼 예정"이라며 "캐시리스(cashless)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현금은 앞으로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결제 수단으로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일본은행 본점을 찾아 시찰하고 취재진과 만나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지폐"라며 "새 지폐가 일본 경제에 활력을 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신권은 이날 오전 8시께부터 일본은행에서 각 금융기관으로 양도됐고, 일부 은행 지점에는 새 지폐를 받기 위해 사람이 몰리기도 했다고 NHK는 전했다. 새 1만엔권에는 일본 메이지 시대 경제 관료를 거쳐 여러 기업 설립에 관여해 '일본 자본주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1840∼1931)의 초상화가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일제강점기 경성전기(한국전력의 전신) 사장을 맡으며 경제 침탈에 앞장서고 대한제국 시절 한반도에서 첫 근대적 지폐 발행을 주도하면서 스스로 지폐 속 주인공으로 등장해 한국에 치욕을 안긴 인물이기도 하다. 5000엔권에는 일본 여성 교육 선구자로 평가받는 쓰다 우메코(津田梅子·1864∼1929), 1000엔권에는 일본 근대 의학의 기초를 놓은 기타사토 시바사부로(北里柴三郞·1853∼1931)의 초상이 각각 새겨졌다. 일본에서는 지폐 교체로 상당한 경제 부양 효과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감이 확산하고 있다. 노무라종합연구소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 교체 등에 드는 비용을 약 1조6000억엔으로 추정하며 일본의 연간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0.27%가량 끌어올리는 경제 효과가 있다고 추산했다. 또 고령층 등 개인이 집에 쌓아둔 현금인 '장롱 예금'이 밖으로 나와 소비와 투자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일본 내 장롱 예금은 60조엔(약 515조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지폐는 지금까지 약 20년 간격으로 바뀌었다"며 20년 뒤에는 디지털 화폐가 보급돼 새로운 지폐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전문가 견해를 전했다. rainbow@fnnews.com 김주리 기자
2024-07-04 08:13:35일본의 새로운 지폐가 3일부터 발행된다. 엔화 지폐 디자인이 리뉴얼되는 것은 20년 만이다. 1만엔권, 5000엔권, 1000엔권 등 3가지 신권이 발행된다. 1만엔권의 얼굴에는 일본 '자본주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1840~1931)가 낙점됐다. 기존에는 일본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 초상이 들어가는데 40년 만에 교체되는 것이다. 기업인이 지폐의 인물이 됐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또 5000엔권에는 일본 여성 교육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쓰다 우메코(1864~1929)가 새롭게 등장한다. 1000엔권은 일본 근대 의학의 기초를 놓은 기타자토 시바사부로(1853~1931)가 선정됐다. 이 중 한국과 연관이 큰 인물은 1만엔권의 주인공인 시부사와다. 시부사와는 일본 500여개의 기업과 기관을 설립하는 데 직접적으로 관여했다.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한 대표적인 기업으로 도쿄가스, 제일국립은행, 도쿄증권거래소 등이 있다. 이 기업들은 일본 경제의 근간을 이루어 현재까지도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시부사와가 다른 경제인들과 차별화되는 것은 그가 경제활동에 있어 윤리적 가치를 중시해서다. 그는 '논어와 주판'(論語と算盤)이라는 저서에서 "한 손에는 주판을 들고 돈을 많이 벌되 또 다른 손에는 논어를 들고 항상 윤리를 생각하라"고 강조했다. 이 책은 당시 다수와 조직의 이익에만 가치관이 매몰된 일본 사회에 경종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의 경제철학은 요즘 기업 경영의 화두가 되는 기업의 사회적책임(CSR)이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과 맞닿아 귀감이 되고 있다. 신권 발행은 다시 일본 사회에 시부사와 바람을 불게 했다. 연일 신문에서는 그를 재조명하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야나이 다다시 패스트리테일링(유니클로) 회장, 오카후지 마사히로 이토추 회장, 구리야마 히데키 전 일본 야구대표팀 감독 등이 인터뷰 기사를 통해 자신의 성공 뒤에 시부사와의 철학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시부사와는 일본 근대 경제의 아버지로서 대단한 기여를 했다. 하지만 그의 업적은 한국 입장에서 볼 땐 뚜렷한 명암이 공존한다. 한국의 경제발전과 관련해 금융시스템 도입과 기업 경영의 현대화 등 그의 조언은 중요한 역할을 했고, 한일 양국 간의 경제적 협력의 기초가 됐다. 한국 입장에서는 시부사와의 경제개혁이 일본의 경제모델을 연구하고 벤치마킹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역시 시부사와는 한반도 침략의 선봉자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가 기여한 한일 간 경제적 교류 촉진은 일본의 식민지 활성화를 위한 수단일 뿐, 과정은 불순했다. 당시 경제교류는 일방적인 착취로 이어졌고, 한국 경제는 일본의 하위 구조로 전락했다. 광복 이후에도 수십년간 한국 경제의 자립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시부사와의 경제정책은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옹호한다. 그의 시스템을 모방한 한국은 경제발전 과정에서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를 취해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에선 중소기업이 크기 힘든 불균형한 토양을 만들었다. 그는 1900년대 초 자신이 은행장이었던 제일국립은행이 대한제국에서 허가 없이 1~10엔 화폐를 발행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심지어 해당 화폐에 본인의 얼굴을 넣어 한국에 치욕을 안겼다. 그는 한반도에 철도를 부설하고 일제강점기 경성전기(한국전력의 전신) 사장을 맡아 경제침탈에 앞장섰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1만엔권의 시부사와는 2019년 아베 정권에서 결정한 것"이라며 "이를 시정하지 않고 그대로 발행하는 기시다 정권도 문제가 크다. 역사를 수정하려는 전형적인 꼼수"라고 비판했다. 그의 공과를 균형 있게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달 70만명이 넘는 한국인이 일본을 여행한다. 1만엔짜리에 새로 새겨질 시부사와는 우리에겐 그런 사람이다. km@fnnews.com
2024-07-02 18:59:17[파이낸셜뉴스] 일본이 화폐 3종에 대해 새 지폐 발행을 단행하는 가운데 가장 큰 단위 화폐인 1만엔권에 일제강점기 경제 침탈의 장본인인 시부사와 에이이치 초상화가 들어가게 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30일 외신 등에 따르면 일본은 다음 달부터 1000엔, 5000엔, 1만엔 등 화폐 3종을 교체 발행한다. 1000엔, 5000엔권의 인물이 바뀌는 것은 2004년 이후 20년 만이다. 1만엔권 인물 교체는 1984년 이후 40년 만에 처음이다. 특히 최고액권인 1만엔권 새 인물에는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정해졌다. 시부사와는 일본 메이지 시대 경제 관료를 거쳐 여러 기업의 설립 및 육성에 관여해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린다. 이에 대해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번 일본의 결정을 강력히 비판했다. 서 교수는 "그는 구한말 한반도에 철도를 부설하고 일제 강점기 경성전기(한국전력의 전신) 사장을 맡으며 '경제 침탈'에 앞장선 인물로 비판받아 왔다"며 "또한 대한제국 시절 이권 침탈을 위해 한반도에서 첫 근대적 지폐 발행을 주도하고, 스스로 지폐 속 주인공으로 등장해 한국에 치욕을 안겼던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특히 대한제국에서는 1902년∼1904년 일본 제일은행의 지폐 1원, 5원, 10원권이 발행됐는데, 이 세 종류 지폐 속에 그려진 인물이 바로 당시 제일은행 소유자였던 시부사와 에이이치 였다"며 "이번 1만엔권의 등장 인물은 지난 2019년 아베 정권에서 결정한 것인데, 이를 시정하지 않고 그대로 발행하는 기시다 정권도 문제가 크다"고 꼬집었다. 끝으로 그는 "아울러 일제 식민 지배를 받은 한국에 대한 배려가 없을 뿐만 아니라, 역사를 수정하려는 전형적인 꼼수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며 "이들의 이런 행위는 언제쯤 끝이 날까"라고 비판했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2024-07-01 08:47:10【 도쿄=조은효 특파원】 국중호 일본 요코하마시립대 경제학과 교수(사진)는 '일본 자본주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일본 사회에서 회자되는 이유에 대해 '결핍'과 '의지처'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설명했다. '흐름의 한국, 축적의 일본' '호리병 속의 일본' 등의 저서로 잘 알려진 국 교수는 7일 본지 인터뷰에서 "일본 자본주의의 결핍과 현재 처한 경제 어려움을 극복해 내기 위한 의지의 대상으로 (과거 아베 정권이) 시부사와라는 과거 근대 인물을 발굴해 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국 교수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최근의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어, 일본사회에 자신감을 심어주고자 고른 인물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 교수는 이어 "사익추구에 초점을 둔 서양의 자본주의와는 전혀 다른 공익과 사익의 조화를 통한 경제발전이라는 화두가 지금의 일본 사회에 기업가상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라며 "더군다나 물질의 부흥 만이 아니라 정신의 부흥까지도 고취시켰다는 점에서 일본 사회의 결핍을 충족시킬 만한 적격이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국 교수는 시부사와 열풍의 근본적인 배경으로는 '잃어버린 30년'에 있다고 분석했다. 1991년 버블경제 붕괴 이후 여전히 일본 경제는 '성장상실기'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베노믹스 이전인 1991년부터 2011년까지 평균 국내총생산(GDP)성장률이 0.9%였는데, 재정과 금융을 총동원한 아베노믹스 가동 기간 1.2%였다"며 "0.3%포인트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성장상실기는 정책 오류와 민간 부문의 수동성이 빚어낸 합작품이라고 강조했다. 조은효 기자
2021-02-07 17:49:49【파이낸셜뉴스 도쿄=조은효 특파원】 "진취적인 정신의 뿌리에는 경제인으로서 확고한 철학이 있었다. 그의 철학을 다시 배운다."(오카후지 마사히로 이토추 상사 회장)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역경이 불어닥칠 때야 말로,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말년에도 나라를 바로세우기 위해 정력적으로 임했던 시부사와의 뜻을 이어받겠다."(일본 상공회의소 미무라 아키오 회장) 최근 일본에서는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이자 요즘말로는 스타트업 육성자인 '액셀러레이터'로 불릴 만한 시부사와 에이이치(1840~1931년)에 대한 '학습 열풍'이 뜨겁다.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를 대신해 2024년, 40년 만에 일본의 최고액권인 1만엔권 화폐의 새 얼굴이 될 그는 사실, 한국에는 다소 생소한 인물이나, 한반도와 적지않은 악연을 갖고 있다. 그가 만든 제일국립은행과 철도, 전력 회사들이 한반도 수탈의 첨병 노릇 역할을 했으니 씁쓸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일본 사회가 근대 메이지시대 인물에 몰입하고 있는 것은 분명 주목해야 할 현상이다. 중국의 추월, 한국의 추격, 안으로는 성장 정체와 한계에 다다른 아베·스가노믹스, 이 안에서 근대 여명기 리더에게 오늘의 해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日, 근대 '벤처설립가' 열광 일본 공영방송인 NHK는 이달 14일부터 일본의 '국보급 얼굴'이라는 배우 요시자와 료를 앞세워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생을 그린 새 대하드라마를 방영한다. 지난 2019년 방문했던 도쿄 기타구 소재 시부사와 기념관은 3월 말까지 방문 예약이 꽉 찬 상태였다. 서점가는 이미 100여년 전 '도덕 경제' '공익과 사익의 조화' 등을 주장했던 그의 사상과 행적, 어록을 정리한 서적들로 즐비하다. 만화잡지에 연재물로도 등장했다. 고전어로 쓰여져 요즘 사람들이 읽기 어려워 현대어로 각색됐다는 그의 저서 '논어와 주판'은 마루젠 등 도쿄 유명 서점의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이바라키현의 어느 커피회사는 막부 말기, 프랑스 파리박람회에 참석 당시 그가 마셨다는 커피를 재현해 보겠노라며 고증까지 나선 마당이다. 사부사와는 일본에 자본주의 기틀을 심어놓은 인물이다. 메이지 정권의 대장성 관료를 박차고 나온 33세(1873년)부터 대략 90세에 이를 때까지 500여개 기업을 만들었다. 일본의 3대 은행 중 하나인 미즈호은행의 전신인 제일국립은행을 설립해 이곳을 기반으로 도쿄증권거래소, 전력, 철도, 항공, 호텔, 보험 등 일본 경제의 인프라가 된 기업들을 세웠다. 그 많은 기업의 실소유자였는가. 이 부분에서는 일본 제국주의 당시 재벌을 형성했던 미쓰비시, 미쓰이가(家)와는 결이 달랐다. '한 손에는 논어를, 한 손에는 주판을 들고'라는 그의 도덕경영 구호처럼 경영은 하되 소유는 하지 않았다. 패전 후 맥아더 통치하 미군정(GHQ)이 재벌 해체에 나설 때 시부사와가(家)도 해체 대상으로 놓고 뚜껑을 열어봤더니 제대로 된 기업 하나 소유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얘기들이 일본 사회에 미담으로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여성교육, 상업교육, 사회사업 등까지 강조한 '실용주의적 도덕경제론자'였다. 그러나 그의 도덕경제는 어디까지나 일본 내셔널리즘에 입각한 것이었다. 대장성에 사직의 변을 올릴 때만 해도 군부의 대외팽창정책에 반대했다고는 하나, 재정 건전성이나 국가경제 운영, 무역거래의 관점에서였다. ■심연의 인물 끌고 나온 건 아베·아소 그렇다면 왜 지금인가. 일본 사회가 왜 이 100여년 전 인물을 대상으로 '앓이'를 하고 있는 것일까. 시동을 건 것은 아베 신조 전 총리와 그의 정치적 '맹우'인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이었다. 아소 부총리는 지난 2019년 4월 9일 전격적으로 지폐쇄신안을 발표했다. 나루히토 일왕 즉위 한 달 전에 1000엔권, 5000엔권, 1만엔권 화폐 속 인물들을 교체하겠다고 한 것이다. 심연에 있던 시부사와 에이이치를 세상으로 끌고나온 것이자 일본 제국주의 시대로 이어지는 근대 인물의 전면 재등장이었다. 대개 화폐 디자인 변경 발표는 실시 2~3년 전에 하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시행 5년을 앞두고 조기에 발표한 것이다. 모리토모 학원 비리 사건으로 인한 정권 이미지 타격, 장기 집권에 따른 피로감 등을 일거에 쇄신하고 당시 나루히토 일왕 즉위, 레이와(令和)시대 개막에 맞춘 일종의 축포였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더욱이 아베노믹스의 성과를 부각시키고, 경제활력을 향한 메시지를 주기에 '애국적 경제관'으로 일본의 민간경제를 주도한 시부사와는 적격이었던 것이다. 작가 에가미 고우는 최근 지지통신에 "중국에 추월 당해버린 일본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국내총생산(GDP)을 약진하기 위해 시부사와를 택한지도 모른다"며 "매일 지갑에서 시부 얼굴을 경배함으로써 기업가 정신을 고취시켜 달라는 의도"라고 꼬집기도 했다. 과거 대하드라마에서 전국시대 인물들만 다뤄온 일본의 공영방송 NHK가 사상 처음으로 근대 인물인 시부사와의 삶을 다룬 드라마를 이달 14일부터 내보낸다. 앞서 아베 정권이 꺼내든 시부사와를 NHK가 띄우고, 이 붐을 타고 출판시장이 함께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경제인들은 시부사와의 어록을 곱씹고 있다. 유력 총리 주자였다가 지난해 스가 요시히데 총리에 밀려 절치부심하고 있는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전 정무조사회장은 당시 선거전에서 '목표하는 국가상'에 대해 "지금 시대에 맞는 자본주의를 만들어 가자"며 시부사와의 경제철학을 화두로 꺼내들었다. ■과거 성공경험의 복습 민간의 위기감도 시부사와 학습 열풍의 이유로 지목된다. "사회 전체를 보면서 자신의 이익이 아닌 공익을 항상 생각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국가전체의 이익을 생각했다"는 등의 평가가 줄을 잇고 있다.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의 거대 IT기업인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와 마이크로소프트, 이들 5개 기업의 시가총액 합계가 도쿄 증시 1부에 상장된 2170개사의 시총 합계치를 웃돈다고 보도했다. 지난 2018년 아베 정권 당시 일본 정부는 각의 결정을 통해 2023년까지 기업가치 10억 달러, 1조원대 이상의 비상장 '유니콘'등 신흥기업을 20개가량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걸었지만 아직까지는 이렇다할 성과는 없어 보인다. 미국, 중국 기업들은 이미 새로운 시대를 향해 앞서 가는데 여전히 일본에서는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DX), 디지털 전환이 화두인 마당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재정확대로 지탱해온 일본 경제에 충격을 줬고 초고령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위기감은 과거 성공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메이지 시대의 "화혼양재(일본의 전통·정신에 기반해 서양의 학문과 지식을 조화시켜 발전시키자)정신을 다시 끄집어 내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1840년 사이타마현 출생 1866년 프랑스 파리 만국 박람회로 유럽 방문 1867년 메이지유신 정부의 대장성 국장 취임 1873년 대장성 관료 사임, 제일국립은행 설립 등 1878년 도쿄상법회의소 설립 1883∼1928년 오사카 방적회사, 일본철도회사, 도쿄가스, 제국호텔, 삿포로 맥주, 도쿄교환소, 도쿄전력, 일본항공수송회사 등 500개 회사 설립 1931년 사망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2021-02-07 17:49:46이웃나라 일본은 5월 1일 나루히토 일왕이 즉위하면서 연호도 레이와(令和)로 바꾸고 지폐에 넣는 인물도 교체하는 등 새로운 왕에 걸맞은 새로운 나라 만들기에 분주하다. 그런데 일본의 가장 고액권인 1만엔권에 선정된 인물이 한반도 경체침탈의 상징적 인물이라고 국내 언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주인공은 일본 경제 근대화의 최대 공헌자라는 시부사와 에이이치. 그는 은행을 기반으로 도쿄전력, 기린맥주 등 무려 500곳의 기업 창업에 관여하며 일본 자본주의의 기틀을 쌓은 인물이다. 그 이전 40년간 1만엔권을 지킨 후쿠자와 유키치는 유럽에서 신문명을 배운 일본 개화기의 계몽사상가로 일본의 자유주의, 공리주의적 가치관을 확립하고 메이지유신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다. 이 두 인물을 통해 일본이 1차 산업혁명 이후의 근대화 과정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우리에게는 가장 뼈아픈 역사이기도 하다.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1차 산업혁명은 유럽과 미국 대륙으로 확산되며 기계문명에 기반한 새로운 종족을 탄생시켰다. 이 기계종족들은 압도적인 과학기술의 힘을 바탕으로 세계 식민화의 길로 나섰다. 1850년 이 신문명이 조선과 일본에 당도했을 때 두 나라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조선은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치르며 쇄국을 국시로 신문명 차단을 더욱 공고히 했고 일본은 후쿠자와 유키치 등 유럽 유학파들 주도로 국가 전체의 시스템을 개혁하는 메이지유신을 단행했다. 조선은 양반이라는 기득권 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에 사대하며 유럽의 신문명을 거부한 반면 일본은 1871년 메이지유신을 완성하며 거대한 기득권 막번시대를 마감하고 서구식의 새로운 국가시스템을 출범시켰다. 이후 40년 일본은 서구열강과 겨룰 만큼의 힘을 축적하고, 1910년 기어이 대한제국을 삼켜버렸다.일본은 대한제국 침탈 이후 우리에게 참 나쁜 짓을 많이 한 나라인 게 명백하다. 그런데 일본의 역사에서 보자면 1850년 이후 그들은 전혀 다른 나라가 됐다. 수천년 동안 아시아의 작은 섬나라에 2류 국가로 폄하받던 일본이 불과 40년 사이 국격이 달라져버린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대륙에 신문명이 출몰하면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기회가 될 수 있는지 역사를 통해 체험했고, 그 교훈을 잊지 않으려 신문명을 받아들인 두 인물을 최고액 지폐에 새겨 기념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반면 조선은 기득권 보호를 위해 쇄국을 선택한 탓에 이후 100년간 피로 얼룩진 역사를 후손에게 남겨줘야 했다. 대륙에 신문명이 등장했을 때 역사의 교훈은 이처럼 명료하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유발 하라리가 언급했듯 호모사피엔스 역사의 일관된 교훈이기도 하다.작금의 현실은 참으로 암담하다. 미국과 중국 대륙에는 포노사피엔스 신문명이 혁명을 일으키며 세상을 바꾸고 있는데 우리 기득권층은 규제의 방벽으로 쇄국에 여념이 없다. 정치권은 좌우로 갈라져 아귀 다툼에 정신이 없고, 국가지도자로 발탁된 장관급 인사들은 국민이 우선이다 하면서 뒤로는 자기 자식, 자기 재산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우리는 1850년의 조선에서 도대체 어떤 교훈을 얻은 것인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기득권을 지켜주려 대륙에 찾아온 신문명을 다시 쇄국으로 막으면 이후 100년 우리 아이들이 피로 갚아야 한다. 일본 지폐 속 인물들을 곱씹어 보며 역사의 준엄한 교훈을 되새겨야 할 때다.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2019-04-17 17:0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