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넘쳐나는 뉴스, 딱 '쓸만한 이슈'만 씁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다양한 이슈를 새로운 시선에서 뾰족하게, 삐딱하게 탐구합니다. <편집자 주> 얼마 전, 15년간 함께 살았던 기자의 반려묘가 고양이 별로 돌아갔습니다. 성인이 된 후 가족과 떨어져 독립생활을 한 순간부터 줄곧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숨 쉬고, 잠들고, 교감하던 작은 생명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면서 느낀, 심연과도 같은 슬픔과 감회는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는데요. 반려동물과 함께 한 경험이 없으시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조금은 과장된 감정으로 비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최근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었던 보도, 반려동물의 과세 정책과 관련한 기사에 이어진 댓글들은 상당히 이례적(?)이었는데요. 건강 보험료나 국민연금 인상 소식에 쿠데타라도 일으킬 듯 분노를 표출하던 네티즌들이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세금을 내겠다"는 의견을 보인 겁니다. 사회로부터 나의 반려동물이 갖는 권리와 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응당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인식이 커진 건데요. 한국 사회, 언제부터 이렇게 생명에 대한 책임감과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게 됐는지, 마음이 찡해져 울컥하고 말았지 뭡니까. '물건' 지난 23일 정부는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제3차 동물복지 종합계획’ 수립 과정에서 반려동물 보호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는데요. 반려동물 보유세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윤 후보는 홍보 영상을 통해 " 동물을 등록하면 세금을 좀 내는 대신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고 밝힌 바 있지요. '가족과도 같은 나의 반려동물을 위해 세금을 내고, 권리를 보장 받는 동시에 사회적 보호를 받는다'라는 취지는 일단 바람직합니다. 지난 2022년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동물보호 국민의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 양육 가구 수는 전체의 25.4%인 602만 가구에 달하고요. 양육 인구 수는 150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펫팸족(반려동물(Pet)과 가족(Family)의 합성어)'이라는 말이 새롭게 등장하고, 국내 반려동물 관련 용품 시장 규모가 3년 내 6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반려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현행법마저도 사실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국민정서적으로도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요. 네, 이론상으로는 훌륭합니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세상이라는 게 그렇게 만만치가 않은 곳이라서 그렇죠. '버림' 반려동물 보유세 관련 소식이 전해지면서, 공공의 동물보호센터 운영에 따른 사회적 비용 감소·반려동물 양육에 수반되는 책임감 강화 등의 장점과 같은 긍정적 측면이 많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현실적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의견 등이 찬반양론으로 부딪히고 있는데요. 가장 중요한 쟁점은 유기동물의 증감여부일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정책 도입 시 양육자가 반려동물을 입양하고 양육하는 행위에 대해 좀 더 신중한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그에 따른 책임감이 이전보다 강하게 실릴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데요. 전체 가구의 56%가 반려동물을 양육하는 독일의 경우 실제 보유세 도입 이후 유기동물이 줄었다는 통계 조사가 있기도 합니다. 현재 유럽에서는 연간 약 25만원 가량을 보유세로 납부하고 있습니다. 반대 의견도 있습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버려지거나 잃어버린 유기·유실 동물은 11만3072마리로 집계됐는데요. 이기재 한국펫산업연합회 회장은 지난 24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유기견 중 80% 이상이 시골 마당에서 경비 목적으로 기르는 믹스견"이라며 "농촌에서는 노인들이 여러 마리 반려동물을 한꺼번에 키우는 경우가 많다. 이들 대부분은 취약계층으로 보유세 도입시 반려동물을 대량으로 버려서 유기동물이 오히려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반려=함께하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한국 사회에서 반려동물을 바라보는 인식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변화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가정에서 양육하는 강아지와 고양이 등은 '반려동물'이 아닌 '애완(가까이 두고 귀여워하거나 즐김)동물'로써 구매해 키우는 대상에 불과했지요. 기자 또한 '강아지 한 마리 아프다고(죽었다고) 요란을 부린다'며 야단 맞던 시대를 살아왔고요. 하지만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의 발달로, 고양이 한 마리를 구하기 위해 불 속으로 뛰어드는 '외쿡 소방관' 아저씨의 모습이 전 세계에 공유되면서, 사회 구조와 그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로 1인 가구와 딩크족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그리고 또 뛰어난 언변을 가진 어느 유명한 '반려견 전문가'의 조언과 호소가 마음에 와 닿으면서 생명에 대한 우리의 시선 또한 성숙해졌습니다. '작은 생명을 향한 나의 사랑'이 존중 받고 보호 받는 사회가 된 겁니다. 이쯤에서, 특정 종에 치우친 반려동물의 생명권만을 중시하는가, 전 세계에서 매일같이 식용으로 도살 당하는 동물들의 생명 존엄에 대해서는 어째서 개와 고양이 등만큼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가 라며 ‘유난 떨지 말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겠네요. 네, 마찬가지로 고려돼야 마땅한 사안이고, 문명 사회로 발전을 더해가는 세계의 큰 딜레마이지요. 사실 우리가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다소 늦게 반려동물과 인간의 생활에 대해 정부 차원의 논의를 하고 있는 것조차 과거에는 생각지 못했던 일입니다. 현재 미국과 유럽 등에서 식용 동물 도축이 정치권과 각계의 뜨거운 이슈인 만큼, 우리도 언젠가 이에 대해 좀 더 포괄적인 논의를 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 아닐까요? rainbow@fnnews.com 김주리 기자
2024-09-24 13:57:02넘쳐나는 뉴스, 딱 '쓸만한 이슈'만 씁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다양한 이슈를 새로운 시선에서 뾰족하게, 삐딱하게 탐구합니다. <편집자 주>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20대 여성과 LA를 누비는 장면이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한 명은 방 의장보다 28살 어린 2000년생 BJ '과즙세연'이었고요. 다른 한 명은 다름 아닌 과즙세연의 언니였다고 합니다. 아니 뭐, 방 의장이 과즙세연을 좀 만나면 어떻습니다, 개인사인데요. 하지만 이 같은 소식에 울고 웃는 이들이 한 두 명이 아닌 게 문제인데요. 그만큼 국내 엔터 사업의 영향력이 막강해진 탓이지요. 대중의 입방아에 올라 안주거리에 그치던 구설수가 실물경제에 직접적인 반향을 일으키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한때 뜨거웠던 테마주 '엔터주'때문에 애태우는 주주들이 그만큼 많아진 겁니다. '삼진아웃' 엔터테인먼트주(株)가 전반적으로 하락세를 면치 못 하고 있는 가운데, 대장주로 꼽히는 하이브의 주주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하이브 경영진과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의 갈등에 걸그룹 뉴진스까지 전면 등판하면서 하이브 주가가 이달 들어 10% 이상 하락했기 때문인데요. 사실 타이밍까지 지지리도 안 좋긴 했습니다. 지난 5월 민 대표의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8월에는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의 과즙세연 동행 논란이 번지더니 믿었던 BTS 슈가의 음주운전까지 터졌습니다. 이 여파로 주가는 8월 9일부터 14일까지 4거래일 동안 12% 폭락했고요. 지난 4월부터 따지면 시가총액은 3조원 가까이 증발했습니다. 여기에 또 더해 뉴진스가 지난 11일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민 전 대표를 25일까지 대표직에 복귀시키라"고 통보한 이후 14일 기준 하이브의 주가는 2거래일 연속 하락하면서 16만4000원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외국인은 지난 6일부터 하루를 제외한 5거래일 연속 하이브 주식을 팔아치웠 고요. 하이브 주가는 이달 2일 17만9800원으로 장을 시작해 10거래일만에 무려 11.06% 급락했습니다. 주주들에겐 말 그대로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하이브 소액주주들은 "BTS를 키워낸 공로를 인정하지만 후속 그룹을 제대로 키워내지 못하고, 걸그룹 양성 과정에서 내부 갈등이 심한데 잡음만 일으킨다",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영자는 물러나야 한다"는 등 격양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오너리스크'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특성상 가장 치명적인 수 는 인재(人災)일 것입니다. 이를 테면 기업 소속 아티스트의 반(反)사회적 혹은 '반대중친화적' 행동은 엔터 회사의 수익과 직결되는 이미지와 인기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게 되고 이 같은 내상은 주가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지요. 다만 이번 하이브 사 태는 오너가 되레 나서서 잡음을 내고 있으니 주주들의 속이 타들어갈 수밖에요. 물론 과거에도 유사한 사례는 있었습니다.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최대주주이자 프로듀서는 유튜브 채널 슈카월드에 출연해 JYP엔터 자사 주식 마케팅에 나섰는데요. 바닥권으로 떨어져 매수에 나서기 좋은 때라는 발언을 한 겁니다. 당시 9만5000원 대였던 JYP엔터 주가는 반 토막이 났고요. 박진영 씨 말을 믿고 주식을 산 주주들은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양현석 YG 창업자 의 경우 2019년 클럽 ‘버닝썬’ 성접대 의혹과 소속 아티스트 마약 투약 관련 보복 협박 혐의 등 논란으로 경영에서 물러난 후 2022년 경영 일선에 복귀했습니다. 이후 황보경 전 대표이사와 공동 대표 체제를 유지하다가 올해 3월 이사회 의결을 통해 단독 대표에 다시 올랐고요. 일부 주주는 "형제가 떠나야 YG엔터가 산다"며 반발감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딴따라' '안 해도 될 게 연예인 걱정'이라 했습니다. 하지 만 엔터 기업이 대기업 수준의 시가총액을 인정받으며 상장을 하고, 기업의 인적 자산과 영상 저작물 등의 물적 자산 규모가 방대해지고, 엔터주의 주식시장 내 영향력이 급성장하면서 주주들은 엔터 사업 관련자들의 범죄, 열애, 부동산까지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과거 '딴따라'·'광대' 로 불리던 이들이 문화예술산업의 중심 으로 자리잡았다는 반증이지요. 결국 소박했던(?) 하이브의 집안 싸움은 대규모 금액이 달린 법정 싸움으로 번질 위기 입니다. 일각에서는 최악의 경우 뉴진스가 수천억원에 달하는 위약금을 내게 될 수도 있다는 예측이, 하이브 또한 브랜드 평판과 주가가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소송전이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 주주들은 답답한 심정으로 이들의 싸움을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rainbow@fnnews.com 김주리 기자
2024-09-19 07:50:58넘쳐나는 뉴스, 딱 '쓸만한 이슈'만 씁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다양한 이슈를 새로운 시선에서 뾰족하게, 삐딱하게 탐구합니다. <편집자 주> 한 가지 가정을 해봅시다. 정보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물 유포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범행에 가담한 이들은 A와 B입니다. A는 범행 계획을 세워 B에게 음란물 제작을 의뢰했고, B는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은 채 적나라한 음란물을 만들어 A에게 제공했습니다. 이에 A는 다시 제작된 결과물을 정보통신매체(모바일을 통한 인터넷 등)를 통해 유포했고요. 통상적으로 A와 B에게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음란물 제작 및 유포 혐의가 적용되겠는데요. 당초 범행의 계획을 세우고 음란물을 공연적으로 배포한 A에게 조금 더 무거운 형이 내려질 것으로 보이지만, 이를 제작하고 제공한 B도 법의 심판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최근 이와 같은 범죄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이 구속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B에 해당하는, 실질적으로 음란물을 만든 이는 어떠한 혐의도 받지 않은 채 입건조차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물며 정치권을 비롯한 각계에서는 B의 행위를 근거해 법까지 개정해야 한다고 나서고 있는데요.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오늘 '쓸만한 이슈'에서는 인공지능(AI)과 딥페이크 범죄 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악용' 우려했던 일들이 하나 둘 발생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지능이 가지는 학습, 추리, 적응, 논증 따위의 기능을 갖춘 컴퓨터 시스템'인 인공지능을 활용한 범죄가 출현하기 시작한 건데요.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딥페이크 범죄가 대표적입니다. 딥러닝(Deep learning)과 가짜(Fake)의 결합어인 딥페이크는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한 가짜 이미지, 오디오, 비디오를 의미하는데요. 이 기술을 악의적으로 이용해 가짜 동영상, 가짜 뉴스 등을 유포하는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겁니다. 급기야 정부까지 나섰습니다. 고학수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0일 "딥페이크 악용 문제는 개인정보 보호의 본질인 인간의 존엄성과 인격권에 직결된 사안"이라며 "현재의 법적 장치들이 이러한 범죄에 대해 일부 대응할 수 있지만 실효성이 부족하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개인정보보호라는 근본적인 이념과 맞닿아 있는 부분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또 이를 반영해 법 개정을 어떻게 해나갈지 정리하는 과정에 있다"고 말하며 관련 분야의 법 개정의 가능성 또한 시사했습니다. '우월' 딥페이크 범죄를 예시로 둔 인공지능은 질문 혹은 주문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고철 덩어리 안에서 작동하는 일개 소프트웨어에 불과한데요. 다만 인공지능의 의지와 무관하게 비자발적인 입력이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입력된 키워드를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계산하고 수집하고 정리해 설명하는 능력을 발휘하지요. 인공지능이 인간의 논리성과 합리성, 문화적 특성까지 축적됐다 여겨지는 바둑으로 인간에게 승리한 게 벌써 8년 전입니다. 이제 인간의 두뇌로 감당할 수 없는 대량의 정보를 다양한 형태로 품고 있는 인공지능은 방탄소년단(BTS)이 부르는 비틀즈(Beatles)의 노래를 창작하고, 옆 집에 사는 여인의 포르노그라피를 만드는 범죄에 일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심지어, 바로 며칠 전인 12일(현지시간) 챗GPT 개발사 오픈AI는 추론하는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까지 출시했습니다. 오픈AI 수석 과학자인 야쿱 파초키는 새로운 버전의 챗GPT에 대해 "문제를 생각하고 분석하고 각도를 찾아 최선의 해답을 제시할 것"이라고 소개했는데요. 한국인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 있는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능력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존재' 인간과의 바둑 대국 이후 확산된 '인공지능이 인간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인공지능 포비아(AI Phobia)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으로 구체화되고 세분화됐습니다. 지난 5월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패턴'에 인공지능 시스템이 상대방을 배신하고, 블러핑(허풍)을 부리고, 거짓말을 친 사례들을 논문으로 공개하기도 했지요. 추론하고 생각하는 주체 인 동시에 인간에 의해서만 사용되는 객체인 인공지능의 발달은 어디까지 일까요? 어느 고전 영화의 명장면처럼 인류가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인간은 기술을 창조하고, 기술은 인간을 통해 또 다른 창작물을 배출하며 기술과 인간은 상호작용을 계속해 왔습니다. 인간이 기술을 발달시키는 진정한 목적 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 인공지능을 발달시키는 인간의 지향점은 과연 어디일까요? 챗GPT에게 물었습니다. rainbow@fnnews.com 김주리 기자
2024-09-11 07:11:30넘쳐나는 뉴스, 딱 '쓸만한 이슈'만 씁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다양한 이슈를 새로운 시선에서 뾰족하게, 삐딱하게 탐구합니다. <편집자 주> 그 분들이 마침내 한국에 오셨습니다. 서비스 도입 전부터 각종 논란을 일으켰던, 대한민국 육아 전쟁의 구세주가 될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이 지난달 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에 입국했는데요. 이모님들은 4주 가량 총 160시간의 특화교육을 받은 뒤 지난 3일부터 본격적인 업무에 투입됐습니다. 국가 문제로까지 대두된 초저출생 문제를 해결해 줄 영웅으로 부상할 지 기대가 되는데요. 그런데... 업무 시작 전부터 임금 미지급 사태가 발생하지를 않나, 급기야 서비스 무더기 취소까지 나오는 등 벌써부터 순탄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네요. 과연 이모님들은 무사히 한국에 정착해 서울시가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내줄 수 있을까요? 1평 남짓 숙소생활에 '임금 미지급' 사태까지…벌써부터 '잡음' 지난달 30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은 1인당 교육수당 약 96만원을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들은 정부 인증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인 홈스토리생활(대리주부·70명), 휴브리스(돌봄플러스·30명)와 근로계약을 맺고 8월 3일 서비스 시작 전까지 하루 8시간씩 교육을 받았는데요. 당시 필리핀 가사관리사에 대한 교육수당은 사업주가 부담해야 하지만 업체들은 현금이 부족해 교육수당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교육수당 지급이 밀리면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은 초기 정착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문제에 부딪히게 되겠죠? 이 뿐만이 아닙니다. 가사관리사들이 생활 중인 공동숙소 면적이 고시원 수준으로 좁아 '인권 침해가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데요. 이들이 지내는 숙소는 1인실(4.8㎡) 또는 2인실(6.5㎡)로, 평수로 환산 때 각각 1.45, 1.96평에 해당합니다. 근로기준법상 기숙사 면적의 최소 기준(1인당 2.5㎡)보다는 넓지만, 국토교통부가 정한 1인 가구 최저주거기준(14㎡)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지요. 서울시 또한 숙소 면적이 좁다는 데는 동의했습니다. 다만 강남 지역 특성상 월세 대비 면적이 좁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는데요. 숙소 위치가 역삼동으로 선정된 이유는 돌봄 서비스 수요 가정과의 접근성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응? 왜 하필 강남인가요? 필리핀 이모님은 '강남 엄마' 전유물?…"영어 잘하시죠?" 지난 13일 서울시에 따르면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신청한 751가구 중 318곳(43%)이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에 있는 가구였습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강남3구 가구가 더 적극적으로 가사관리사를 원한다는 점이 수치로 증명된 셈인데요. 필리핀 가사관리사 고용에는 최저임금이 적용돼 사업 참여 가구가 지급해야 하는 비용은 8시간 전일제 기준으로 월 238만원입니다. 238만원은 일반적인 가구의 소득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수준이지요. 국내 3인 가구 중위소득(소득순으로 순위를 매겼을 때 가운데 해당하는 소득)이 471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소득 절반을 필리핀 가사도우미에게 떼 줘야 하는데, 중·저소득층 가구에게는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는 금액이지요. 이 가운데 이른바 '강남 엄마'들은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영어 능력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린 자녀의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인데요. 실제 강남권 부모들이 가입·활동하는 한 맘카페 회원은 "필리핀 도우미가 정말 영어공부에 도움이 될까요?" 등의 잇따라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강남 엄마'로 추정되는 한 회원은 "강남 부모들은 도우미 2~3명 쓰는게 별 부담이 아니니, 필리핀 출신 도우미가 영어에 도움이 되면 쓰자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필리핀에서도 대학 나오고 배운 사람들로 선발했다는데 이들한테 영어를 잘 배우면 비싸도 쓰는 것"이라고 적기도 했지요. "외국인 도우미 결국 늘어날 것…명확한 가이드라인 필요" 이 같은 상황에 대해 김아름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시간당 1만3700원으로 더 비싸다"며 "그 돈을 주면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정말 육아도우미를 구하지 못했겠나"라고 꼬집었는데요. 필리핀 가사관리 시스템 자체가 결국 상류층에 맞춰져 있다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서비스 이용 가구로 선정된 10%가량이 서비스를 취소하면서 서울시는 취소분에 대해 상시 신청 접수를 하기로 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는데요. 비용적 부담으로 취소를 했다는 사례가 인터넷 맘카페 등에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계약 조건의 취약점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 인터넷 카페에 필리핀 가사관리사를 취소했다는 글을 올린 회원은 "가사관리사가 맘에 안들어도 계약기간(6개월) 동안 취소가 안된다고 하더라"며 "일정 변경도 전혀 안되고 한달에 딱 한번만 쉼으로 처리되고 미리 말해도 100% 위약금을 내야 한다. 취소도 못하고 심지어 업무범위도 개판인 상태로 계약 시작하고 꼬박꼬박 돈주면서 역갑질할꺼 같아 그냥 취소했다"고 전했습니다. 이 밖에도 모호한 업무 범위 등도 이용을 망설이게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출생부터 여성의 경력단절 같은 여러 사회문제를 고려했을 때, 가사관리사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천소라 인하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절차와 비용 등을 포함해 여러가지 가이드라인이 모호한 상태"라며 "업무분장의 모호성이 개선될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합의 절차에 대해서 유연하게 간소화될 필요가 있는지 여부를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서비스 이용에서 매칭이 된다 하더라도 서로 안 맞는 경우들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럴 때 교환, 환불 등의 소비자 권리 보호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지 등의 보완사항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며 "어쨌든 지금 돌봄인력이 굉장히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에 외국인 도우미가 장기적으로는 늘어날 수밖에 없을 텐데, 관리 여력이 어떤 식으로 정비가 될 것인지 등이 시범사업을 통해서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스템은 육아의 어려움을 일부 해소한다는 큰 포부와 함께 도입된 제도입니다. 정부와 서울시의 발 빠른 대응으로 최대한 잡음 없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길 바랍니다. 아울러 향후 증가할 외국인 근로자 고용에 따른, 인권 침해와 임금 미지급 등의 각종 문제에 대해서도 이번 기회에 견고한 기틀을 마련하길 희망해봅니다. rainbow@fnnews.com 김주리 기자
2024-09-04 07:11:47넘쳐나는 뉴스, 딱 '쓸만한 이슈'만 씁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다양한 이슈를 새로운 시선에서 뾰족하게, 삐딱하게 탐구합니다. <편집자 주> 며칠 전 기자의 계좌에서 7890원이 자동인출됐다는 알림이 왔습니다. 쿠팡이 드디어 인상된 멤버십 가격을 수거(?)해가기 시작했나 봅니다. 탈쿠팡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오랜 고민 끝에 기자는 쿠팡에 남기로 했는데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지나치게 편리하기 때문이죠.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셨나요? 간·쓸개 다 빼줄 것처럼 잘해주더니 흑자도 났겠다 냉큼 가격을 올려버린 괘씸한 쿠팡을 떠나셨나요? 아니면 천리길도 이웃으로 만들어주는 쿠팡을 택하셨나요? '로켓' 로켓배송을 필두로 내세운 로켓와우와 제트배송 등 쿠팡의 배송 서비스는 그야말로 '혁명'이었습니다. 지금 주문하면 몇 시간 뒤 가져다준다는데, '빨리빨리'의 韓민족들이 이걸 어떻게 지나치겠습니까. 편리함과 신속함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쿠팡에 몰려들었고 쿠팡과 같은 '풀필먼트 배송서비스'를 차용해 컬리와 쓱닷컴 등이 후발주자로 시장에 진출했지요. 이어 G마켓과 옥션, 마침내 네이버까지 빠른배송 서비스에 뛰어들었습니다. 약 1400만명(2023년 12월 기준)의 와우 멤버십 회원을 품에 안은 쿠팡은 2021년 3월 11일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을 합니다. 이를 두고 월스트리트저널(WSJ), 포브스, 파이낸셜타임스까지 비상한 관심을 보이며 쿠팡의 세계 진출에 주목했는데요. WSJ의 경우 "2014년 알리바바그룹의 블록버스터 데뷔 이후 가장 큰 외국 회사의 기업공개(IPO)가 될 전망"이라고까지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이후 쿠팡은 2022년 국내 쇼핑몰 업체 거래액 및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에서 네이버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섰고요. 같은 해 추정 거래액 또한 40조원을 넘기며 다시 한 번 네이버를 앞질렀습니다. 다음 해인 2023년 1분기에는 사상 처음으로 이마트의 매출을 넘기고 국내 유통업 점유율 1위 업체 로 우뚝 서게 됩니다. '58%' 이렇듯 소비자들의 안녕한 쇼핑에 혁혁한 공을 세운 쿠팡은 어느 날 '국민 욕받이 기업'으로 전락하게 되는데요. 지난 4월 와우 멤버십 월 회비를 4990원에서 7890원으로, 무려 58% 인상하겠다고 발표하면서부터입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 쿠팡플레이, 쿠팡이츠 배달서비스도 함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설명에도 소비자들은 거세게 반발했고요. '사용하지도 않는 서비스를 울며 겨자먹기로 구독해야 한다'는 아우성이 터져나왔습니다. 이어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등이 참여한 '온라인플랫폼 이용자 불만 신고센터'는 쿠팡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신고하기에 나섭니다. "쿠팡이 일방적으로 와우 멤버십 가격을 58% 가량 인상하면서 별개 서비스인 쿠팡플레이와 쿠팡이츠 알뜰배달 서비스를 무료 제공하는 끼워팔기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지요. 결국 공정위까지 나서는데요.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26일 '쿠팡이츠·플레이 끼워팔기' 의혹에 대한 조사를 신속하게 진행 중이라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 위원장은 "수수료 등 가격에 대한 문제는 직접 개입할 수 없다는 게 원칙"이라면서도 "독과점 남용에 해당하는지 검토해보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역할' 쿠팡은 현재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부당 우대했다는 공정위의 제재에 따라 1628억 원의 과징금을 내게 된 상황입니다. 공정위가 쿠팡의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한 제재 내용을 담은 의결서에는 '검색 알고리즘 조작과 임직원 리뷰를 통해 PB 상품이 우수한 것처럼 소비자를 오인시키고, 구매를 유도하는 행위를 중단하라'는 시정명령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흥미로운 점은 전문가들이 해당 과징금 부과 명령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내는 부분입니다. 한 전문가는 "상품 진열은 유통업체의 고유 권한이자 근간으로 전 세계적으로 정부에서 상품 진열 순서를 가지고 규제한 적은 없다"고 분석했는데요. 다른 전문가 또한 " 판매 증대를 위한 디스플레이 전략은 유통업체들의 핵심 역량에 따른 것으로 정부 당국이 이를 규제하는 건 기업 운영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결국 국가기관까지 나서 개입하게 된 쿠팡의 이번 '58% 인상' 사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윤 추구를 목표로 하는 것이 당연한 기업이, 마땅히 지켜야 할 사회적 책무에 대해서도 되돌아보게 되는데요. '훌륭한 기업'이란, 산업을 발전시켜 국가 경제에 막강한 도움이 되는 곳일까요? 아니면 더딘 성장을 감수하고서라도 소비자의 입장과 의견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꾸준히 정진해가는 곳일까요? 쿠팡에 대한 공정위의 결정에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rainbow@fnnews.com 김주리 기자
2024-08-27 07:31:52넘쳐나는 뉴스, 딱 '쓸만한 이슈'만 씁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다양한 이슈를 새로운 시선에서 뾰족하게, 삐딱하게 탐구합니다. <편집자 주> 하나의 유령이 서울을 떠돌고 있다. '영끌'이라는 유령이. 네, 서울 아파트값과 거래량이 치솟으면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과 빚투(빚내서 투자)족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5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은 지난 7월 말부터 8월 14일까지 총 3조2407억원 증가했고요. 지난 8월 14일 기준 5대 은행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562조9908억원으로 560조원을 돌파했습니다. 주목해야 할만한 부분은 4대(KB국민·신한·하나·우리) 시중은행의 올 상반기 기준 주담대 연체액 규모가 1조800억원 가량인 점인데요. 이는 2021년 상반기 5793억원 대비 5000억원 이상 늘어난 수치입니다. 고금리가 계속되면서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한 영끌족이 금융 건전성에 '독'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이지요. 부동산 상승 기대감과 함께 다시 돌아오는 영끌족. 이들은 누구길래 굳이 영혼까지 끌어모아 나라 경제를 힘들게 하는 걸까요? '괴담' 영끌족들에 대해 알아보려면 일단 영끌이 무엇인지, 이들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지난 5월 한국부동산원이 발간한 학술지를 들여다볼까요. '2030세대 영끌에 대한 실증분석'에 참여한 연구진은 '영끌 매수자'의 기준을 주택 구입 시 연소득 대비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 '40% 이상'인 경우로 잡았습니다. 이를 토대로 2020년부터 2022년 6월까지 서울 소재 3억원 이상 본인 입주용 주택을 구입한 자금조달계획서 원자료(13만2511건, 제2금융권 대출 포함)를 분석한 결과, DSR '40% 이상'인 영끌 규모는 2030세대 매수자 전체(4만6473명)의 3.8%(1778명)에 불과했다는 결과가 나왔고요. 이에 비해 같은 기간 2030세대 주택 구입자 가운데 서 빚이 없거나, 가족의 도움으로 1억5000만원 이상을 받은 사례는 영끌족 대비 각각 2.8배, 5.1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차입금이 없는 비율(10.9%·5052명)과 원가족으로부터 1억5000만원 이상 지원받은 매수자 비율(19.7%·9143명)이 청년 영끌족(전체 3.8%)보다 3~6배가량 높게 나타난 것이지요. 맞습니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2030세대 영끌의 비중은 크지 않습니다. 영끌보다는 '부모 찬스'로 인해 발생하는 '부의 대물림'이 부동산 시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지요. '실체' 영끌이 일부 '괴담화' 된 측면이 있다는 걸 우리는 이제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부모 찬스 없이 자력으로 아파트를 구입하는 이 가련한 '진짜 영끌족'은 누구일까요. 단순하게 생각해봅시다. 사회초년생이던 20대를 지나 이제서야 부모의 도움 없이 사회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30대가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이들이 아파트를 구입하는 종잣돈은 대부분이 은행 돈, 즉 대출이지요. 사실 2019년 하반기부터 광풍처럼 몰아쳤던 영끌의 등장에는 시대적 현상과 그림자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이른바 MZ라고 불리는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세대는 1990년대 성장기를 아파트에서 보낸 '아파트 키즈'이자 높은 대학진학률과 맞벌이 일반화, 자녀 수 감소로 주택 구매력이 높아진 세대인데요. 이 와중에 당시 영끌을 부추긴 '지금 안 사면 영영 못 산다'는 '패닉 바잉(panic buying)' 열풍이 불었고, 집값이 말도 안 되게 오르면서 청년들은 허탈감을 느꼈습니다. 이는 다시 집값에 대한 지나친 기대심리로 이어졌지요. 아울러 '내 집 마련'에 대한 판타지가 사회 전반에 조성되면서, 일치감찌 '부자의 꿈'을 포기한 세대는 위험한 도박이라는 걸 알면서도 상대적 박탈감에서 벗어나고자 집을 사는 데 '올인'을 하기 시작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퇴마' 영혼까지 바쳐가며 구입한 주택은 '내 집'이 되긴 했을까요? 최근에는 집을 사려고 빌린 대출금을 못 갚아서 임의경매로 넘어가는 부동산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4일 법원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7월 부동산 임의경매 개시결정등기 신청 건수는 총 1만3631건(8월 3일 기준)으로 집계됐는데요. 한 달 전인 6월(1만983건)에 비해 24.1%, 1년 전(9328건)에 비해 46.1% 각각 늘어난 수치였습니다. 2013년 7월(1만4078건) 이후 11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지요. 문제는 이 와중에 또 다시 주택 매수세에 불이 붙으며 주담대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은행 주담대 잔액은 26조5000억원가량 급증하며, 2021년 상반기(30조4000억원)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늘었는데요. 대출금리가 줄어들며 주택거래가 늘어난 데다, 정책대출 공급이 지속된 결과로 해석됩니다. 사실 모든 시기의 주택가격은 높습니다. 왜냐하면 '가격'이라는 것이 상대적이기 때문이지요. 베이비부머가 주택을 매입할 당시에도 주택가격은 높았고 주택 매수자들은 당연히 대출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올 아파트 값의 극성스러운 상승과 함께 집계된 여러가지 숫자들을 보고 있자니 조금은 우려가 되네요. 영끌이 더 이상 괴담 수준으로 머물지 않을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로 보이기도 하고요. 함께 살펴보았듯, 본질적으로는 영끌을 걱정하기 보다 부모 찬스로 인해 발생할 자산이전과 이것이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더 필요한 게 사실입니다. 가족의 도움이 없어 집을 구입하지 못하는 젊은 층이 훨씬 더 많고, 이 같은 세대들이 부동산 시장에서 헤매면서 미칠 부작용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영끌을 의식한 각종 정부 정책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요. 우선적으로 영끌이라는 과장된 담론에서 벗어나 세대간 부의 이전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시작이 아닐까요? rainbow@fnnews.com 김주리 기자
2024-08-20 09:53:52넘쳐나는 뉴스, 딱 '쓸만한 이슈'만 씁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다양한 이슈를 새로운 시선에서 뾰족하게, 삐딱하게 탐구합니다. <편집자 주> "매력있는 '오늘의 남성'을 만나보세요! 서류를 통해 전문직·고소득(연봉 1억원 이상)·고액자산(20억원 이상)이 인증된 회원입니다" 매일 오후 12시, 그리고 저녁 7시쯤 남성 회원 프로필 카드가 도착합니다. 김주리 회원(기자 본인)의 나이에 꼭 맞게, 위아래로 4살차가 대부분이고요, 훤칠한 키에 수려한 외모까지 갖춘 남성 회원들을 보고 있자니 김주리 회원의 마음이 설레기 시작합니다. “결혼 전제의 진지한 만남을 찾고 있다”는 애달픈 자기소개는 둘째치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사진 아래에 있는 '인증 배지'입니다. 명문대를 나왔는지, 2억원 이상의 '슈퍼카'를 소유했는지, 직계 가족 자산이 100억원 이상인 '상류층 집안'인지, 서류로 인증해야만 받을 수 있는 '인증 배지' 말입니다. 이제 만날 준비 되셨나요, 오늘의 '쓸만한 이슈'는 '고품격 하이엔드 소 개팅' 데이팅 앱입니다. "김주리 회원님, 어제 매칭돼서 오늘 만났네요" 학력과 경제력 인증을 기반으로 한 데이팅 앱의 사용법은 대체로 유사합니다. 하루에 일정 횟수, 일정 인원의 이성 프로필 카드를 제공 받고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다면 아이템을 구매해 '호감 표시'를 보냅니다. 상대편도 마음에 든다면 마찬가지로 호감을 보내 '매칭' 하면 됩니다. 가입 전 본인 명의 휴대폰 인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실제 만남에서 엉뚱한 사람이 등장할 일은 많지 않습니다. 대포폰 사용자 혹는 과도하게 보정된 사진을 올려 실물과 외모가 딴 판인 사람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요. 실제 앱들은 '허위 프로필', '사칭'이 적발된 회원을 영구탈퇴시키는 등 안전에 꽤 공을 들이고 있는 것도 확인됐습니다. 뒤에 나올 단점들을 제외하면, 이성을 만나는 데 확실히 편리합니다. 주선자을 통해 만날 때마다 '어떤 사람이냐', '무슨 일을 하느냐' 등 눈치 보며 질문하지 않아도 상대편에 대한 정보를 직접 확인할 수 있고 공식 서류를 통해 인증된 배지들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추론까지 할 수 있으니까요. 실제 결혼까지 이어진 경우 앱을 통해 후기와 결혼식 사진이 공개되니, 수백만원에 달하는 결혼정보회사 가입비를 생각해보면 가성비도 나쁘지 않아 보이네요. 그런데 말입니다… "김주리 회원님, 배지가 많이 없으시네요…" 하이엔드(High end) 소개팅을 표방하는 데이팅 앱들에는 사실 불편한 진실들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아무나 가입되지 않는 프리미엄 소개팅을 추구한다'는 이들 앱은 남성과 여성의 가입조건부터 상이한데요. 60만명에 육박하는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는 A앱의 남성 가입조건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전국 의치·한의대 등에 재학·졸업한 남성(하한선 '서성한') △대기업·국가기관·주요언론사 등에 재직 중인 남성 △전문직(의사, 변호사, 회계사, 변리사 등)으로 매우 까다롭습니다. 반면 여성의 가입조건은 △프로필을 입력한 직장인 또는 프리랜서, 취준생 등 △학교나 전공 입력 후 가입이 승인된 모든 대학생·대학원생입니다. 기본적인 설정이 이렇다 보니 앱을 통한 만남이 변질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있는 사람들끼리'의 품격 있는 데이트를 주선한다는 앱의 본질과 다르게 이른바 '스펙' 부족한 여성들이 돈 많고 능력 있는 남성들과의 '취집(취직 대신 시집)'을 노리고 앱을 사용한다는 지적과, 재력에 비해 외적 조건이 부족한 남성들이 나이 어린 여성들을 성적인 착취 대상으로 소모하기 위해 만남을 이용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결혼 관련 후기 게재를 통해 진정성 있는 만남을 자부하는 앱인 만큼, 논란은 해당 앱들이 물질만능주의를 넘어 매매혼까지 조장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앱 커뮤니티에는 "남자들이 결혼할 여성과 '먹고 버릴(성관계만 취한 후 관계를 단절할)' 여성을 구분해서 만난다"는 만남 후기가 하루가 멀다 하게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틴더, 범블 등 기존 데이팅 앱에서 문제로 제기됐던 쾌락성 만남에 대한 지적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선자도 없겠다 책임감을 느낄 명분도 딱히 없다 보니 잠자리 이후 '잠수'를 타버리는 경우도 흔했고요. 잠자리를 갖지 않는다고 해도 하루에 2명 이상, 한 주에 5명 이상의 이성을 만나는 사례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실제 기자가 만난 한 여성 이용자는 "이번 주 일요일 3명의 이성과 만남이 예정돼 있다"며 "각각 브런치와 커피, 저녁식사를 함께 할 생각이다, 물론 상대방은 모른다"라고 전했습니다. 이처럼 연속된 단발적 만남으로 여러 차례 '번아웃'을 경험했다는 이용자도 다수였습니다. “김주리 회원님, 정말 탈퇴하시겠습니까?” 물론 이런 형태의 인간관계가 그릇됐다며 꼰대같은 주장을 펼칠 생각은 없습니다. 스마트폰의 일상 보급,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도래한 비대면시대 등에 따라 연애하고 사랑하는 방식 또한 변화한 것 뿐이니까요. 하지만, 넘쳐나는 가벼운 만남과 보험성 관계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애매한 관계에 대한 소감을 듣다 보니 생각이 많아지기는 합니다. 이들 모두는 가벼웠을까요? 아니면 진지했을까요? 꿈에 그리던 이성을 만나길 희망하며, 만남도 헤어짐도 쉽고, 간편하고, 신속한 관계를 만들어주는 '고품격 하이엔드 소개팅'. 특별할 것 없는 게 인생이고 사랑이라고는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rainbow@fnnews.com 김주리 기자
2024-08-07 07:04:50넘쳐나는 뉴스, 딱 '쓸만한 이슈'만 씁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다양한 이슈를 새로운 시선에서 뾰족하게, 삐딱하게 탐구합니다. <편집자 주> 대한민국에서 일도, 구직 활동도 하지 않는 대졸자가 올해 상반기 400만명을 넘어서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지난달 21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월 평균 대졸 이상(전문대 포함)의 학력을 가진 비경제활동인구는 405만8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만2000명 늘었다고 하는데요. 비경제활동인구(비경활)는 만 15세 이상 인구 중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사람들입니다. 일을 할 능력이 없거나 일할 수 있음에도 일을 할 뜻이 없어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해석되는데요. 각종 언론 보도에 따르면 대졸 비경활 증가세의 중심에는 20대가 자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마이크로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월평균 대졸 이상 청년층(15∼29세) 비경활 인구는 59만1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00명 늘었고요. 인구가 줄고 있음에도 대졸 비경활이 늘어난 연령대는 청년층이 유일하다고 하네요. 또, 또…이 같은 소식을 다룬 뉴스 댓글창에는 '의지박약 젊은이'들을 향한 비난과 '대졸 백수 시대'에 대한 한탄 이 끓어올랐습니다. "청년들 의지박약" 커지는 한탄 뒤엔.. 그들의 좌절 2000년대 중반 독서시장에 불었던 자기계발서 열풍을 기억하시나요? '꿈은 이루어진다'는 다소 극단적인 희망을 골자로 하는 서구식 자기계발서에 담긴 응원과 격려에 독자들은 최면에 걸린 듯 열광했는데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탄줘잉의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 론다 번의 '시크릿' 등이 베스트셀러로 떠오르며 서점가를 휩쓸었지요. 노력으로 삶 전체를 바꿀 수 있다고 믿던 '꿈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꿈 이야기는 어느 순간 외면 받기 시작했는데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지고 우리 삶의 예측 가능성은 줄어들었습니다. 신자유주의적 서구 모델의 한계가 드러난 상황에서, 미국식 자기계발서는 사회 모순을 외면하고 개인의 변화만을 강조한다는 비판이 제기된 탓이지요. 이와 함께 어렵사리 취업에 성공한 젊은 세대들의 자조도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야심차게 사회에 진출한 청년들은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에 직면하며 임금 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차별 등을 경험하기 시작했고요. 높은 연봉과 안정적인 고용, 워라밸이 보장되는 직장을 선호하지만 한정된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더욱 치열한 경쟁 속에 놓이게 됐습니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직장에 남은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공노비', '사노비', '학사모 쓴 노예' 등으로 칭하며 좌절감에 빠졌습니다. '주체적 삶'을 위한 준비기간이라 볼순 없을까요? 백수들이 넘쳐나는 사회를 향한 우려, 일리는 있습니다. 청년·고학력자 중심의 비경제활동인구 증가는 결국 생활고와 주거 불안정 심화로 이어지게 될 것이고요. 이는 결국 경제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를 줄이는 일은 중장기적인 과제일 수밖에 없고, 청년층의 취업 선호도·직업관 변화 역시 간단히 개선될 일이 아니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 지 막막한 게 현실이지요. 이 가운데 일부 전문가들은 정책의 변화와 함께 사회 구성원간의 인식 개선이 선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꼬집고 있습니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자'는 무능과 모자람으로 인한 사회적 낙오자라는 낙인이 먼저 사라져야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설명이지요. '노비'를 택할 바에는 무직자가 되겠다는 청년들에게 "배부른 소리 그만하고 아무 일이나 하라"고 다그쳐서 해결될 것 같았으면 애초에 문제가 대두되지도 않았을 겁니다. 비경제활동인구가 증가하는 본질적인 이유, 시대의 변화 등을 면밀히 살피고 분석하는 것이 선행돼야 어떤 것이 진정한 '양질의 일자리'인지에 대한 판단이 이루어지고, 그에 따른 올바른 경제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입니다. 고미숙 고전평론가는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라는 책에서 백수를 '경제활동을 스스로 조율하면서 자기 삶 전체를 관리하는, 삶의 주도권을 가진 존재'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우리가 노동을 하는 이유는 1차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지만, 사람에게는 삶을 주체적으로 끌고 나가는 데서 오는 자부심이라는 게 있기 마련입니다. 고 평론가의 진단처럼, '무직자'이자 '백수'를 사회적 문제아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새로운 경제활동의 가치를 찾아 나서는 사회 구성원으로 바꾸어 바라보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 단추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rainbow@fnnews.com 김주리 기자
2024-07-31 14:30:04넘쳐나는 뉴스, 딱 '쓸만한 이슈'만 씁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다양한 이슈를 새로운 시선에서 뾰족하게, 삐딱하게 탐구합니다. <편집자 주> "형들, SNS하는 여자는 '믿거(믿고 거른다)' 맞지?" 인터넷에 떠도는 남성들의 우스갯소리 중 하나인데요. 결혼상대로 피해야 할 상대 유형은 ‘인스타그램을 과하게 사용하는 여성’이라고 합니다. '허영에 빠져 다른 사람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고, 타인이 하는 것을 카피해 사치하는 여자'를 멀리 하라는 비하이자 조롱인데요. 유쾌하지 않지만 요점은 이해합니다. 비단 남자와 여자를 구분 짓지 않더라도, 본인만의 철학과 소신없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누군가를 보면 답답한 마음이 들 때가 있지요. 하지만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이처럼 "쟤가 사니까 나도 살래"라는, 일차원적인 과시와 허영으로 여겨지는 소비 성향이 실물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인데요. 오늘은 한 번 쯤 들어보셨을 ‘디토(Ditto) 소비’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쟤가 샀다, 그러므로 나도 산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를 통해 디토소비, 분초사회, 시성비 등을 2024년의 핵심 키워드로 꼽았습니다. 예를 들자면, 저 멀리 중동에서 건너와 대한민국 유통가를 흔들고 있는 '두바이 초콜릿'의 시작은 틱톡에 올라 온 짧은 영상이었습니다. '마리아 베하라'라는 아랍에미리트의 유명 인플루언서가 초콜릿을 먹는 영상을 올리며 전 세계적으로 입소문이 퍼졌고, 이후 국내 유튜버가 두바이 초콜릿을 직접 만드는 영상을 업로드하면서 인기몰이가 시작된 건데요. 인플루언서로 인해 흥행에 성공한 건 두바이 초콜릿 뿐만이 아닙니다. 새로운 디저트 트렌드로 급부상하고 있는 요거트 아이스크림, 품절 대란을 일으킨 분홍색 스탠리 텀블러의 인기 시발점은 인플루언서였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김난도 교수는 "쟤가 사니까 나도 산다"라는 디토 소비의 기저에는 분초사회를 살아가며 시성비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의 가치관이 깔려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경제 패러다임이 소유 경제에서 경험 경제로 이행했고, 시간은 돈 만큼이나 중요한 자원이 됐습니다. 모두가 분초를 다투며 살면서 '시간 대비 성능'을 따지는 시대가 도래했고요. 이렇다 보니 소비자들은 정보 탐색, 대안평가 등 제대로 된 구매 의사결정의 시간을 생략한 채 특정 사람·콘텐츠·커머스를 추종해 구매하는 경향을 갖게 됐다는 말입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 온 샤넬백과 오마카세 자랑글을 보고 귀신에 홀린 듯 돈을 쓰는 소비자들의 경향이 마침내 무시할 수 없는 경제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지요. "'이부진 가방' 주세요" 디토 소비가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기업들까지 적극 대응에 나서고 있습니다. 예시로 든 두바이 초콜릿의 경우 각 대형 편의점이 관련 상품을 앞다퉈 출시하는 것은 물론 대형마트와 백화점까지 팝업 스토어를 유치하는 등 발 빠르게 소비자 수요에 대처하고 있는데요.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의 경우, 지난 12일부터 25일까지 진행한 ‘원베이크팩토리’ 팝업 스토어에 두바이 초콜릿을 구매하기 위한 고객 오픈런 행렬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초콜릿 1개를 1만7000원에 내놨는데 평일에는 개장 후 30분 만에, 주말에는 개장과 동시에 번호표가 마감됐다고 하네요. 예기치 않게 수익을 올린 기업도 있습니다. 생활문화기업 LF는 올 들어 디토 소비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하는데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LF가 수입·판매하는 브랜드 ‘빠투’(PATOU) 제품을 착용해 화제가 된 후 해당 가방의 판매량이 2주 동안 약 1000% 증가했다고 합니다. 재질·사이즈 등 비슷한 상품도 판매량이 올랐는데 이를 포함하면 무려 1600% 폭증했다고 하네요. 디토 소비의 일상화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네요.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물론 부작용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디토 소비는 본질적으로 모방소비 의 성격을 띄었기에 충동소비와 과잉소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또한 SNS를 끼고 사는 청소년들에게 끼칠 악영향도 우려 되는데요. '쟤가 사니까 나도 산' 샤넬백을 사지 못한 개인이 갖게 될 상대적 박탈감도 무시할 수 없을 테고요. 소비자학에서는 소비라는 행위를 '만족을 창출하기 위해 시간과 자원을 결합하는 모든 활동'이라고 정의합니다. 명품 또는 값비싼 자동차의 가치를 희소성이라고 봤을 때, 이들 상품을 구입하는 이유는 '남과 다른 특별한 나'를 추구하기 위한, 일종의 정체성을 구현하려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같은 관점에서 놓고 본다면 디토 소비, 아이러니하기는 하네요. 어느 세대보다 자기 주장이 강한 요즘 젊은 사람들의 보편적 소비 성향이 '동조 소비'인 셈이니까요. '극단적 편리'를 추구하는 요즘 세대들이 만드는 다음 트렌드 는 어떤 것일까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rainbow@fnnews.com 김주리 기자
2024-07-25 07:53:44넘쳐나는 뉴스, 딱 '쓸만한 이슈'만 씁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다양한 이슈를 새로운 시선에서 뾰족하게, 삐딱하게 탐구합니다. <편집자 주> 다들 '열심히' 살고 계신가요? 좋은 대학교에 입학하려고, 회사에서 승진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지금보다 나은 사회적 지위를 얻고자 하루하루 아등바등 최선을 다해 애쓰고 계시죠? 매 순간 찾아오는 실패와 좌절과 설움에도 세상 탓하지 말고 끝까지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간절히 바라면 하늘이 감동해 가히 온 우주가 나를 도와준다는 말도 있잖아요. 부족한 건 여러분의 '노오력'이에요, 아시겠습니까? '스카이 피플' 자, 화내지 말고 함께 들여다봅시다. 지난 3월 달갑지만은 않은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최근 5년 새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소위 'SKY'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합격자 10명 중 9명 가량이 SKY대 출신이라는 종로학원의 분석이 나왔습니다. 종로학원은 대입 수험생들에게도 이들 대학으로의 쏠림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 우려하기도 했는데요. 여기에 더해 6월에는 SKY대의 올해 신입생 3명 중 1명이 서울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는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4년제 대학 평균의 무려 두 배에 달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서울대 입학생 3746명 가운데 서울 출신은 1361명(36.3%)이었고요. 연세대는 입학생 4358명 중에 31.6%인 1375명이, 고려대는 5037명 가운데 29.1%인 1466명이 서울 출신으로 나타났지요. 여기에 또 더해서, SKY대 입학생 중 일반고 출신은 7275명으로 55.4%에 그쳤다고 합니다. 세 개 대학 입학생이 일반고 다음으로 많이 나온 고교는 자율형사립고(14.0%), 외국고(9.3%), 외국어고·국제고(8.2%), 영재학교(3.9%) 순이었고요. 자사고(3.4%), 외국고(3.8%), 외고·국제고(1.8%), 영재학교(0.3%)의 전체 평균치를 고려하면 이들 고교 출신이 SKY대에 특히 많이 진학했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들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이른바 '잘 사는 애들'이 성공과 인생 탄탄대로가 보장된 SKY대에 많이 가게 됐으며, 하물며 대학 서열과 경제적 서열이 일치하는 현상이 발생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더 이상 '노오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개천의 용들' 이 같은 '부의 대물림'에 대해 한 전문가는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은 계층 이동에서 비롯됐는데, 경제적 형편이 교육으로 대물림 되면서 이런 역동성이 깨지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역동경제가 사라지고 선순환 구조가 붕괴되었다는 의미이지요. 쉽게 말해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힘과 역량이 불평등해졌다는 뜻입니다. 어르신들이 가끔 추억하시는 '라떼'를 떠올려봅시다. 대한민국의 전무후무한 고도 성장기인 1960~1980년대, 경제가 매년 10% 가까이 성장했고 산업화로 인해 구조 자체가 변화를 맞았습니다. 농민이 블루칼라가 되고, 블루칼라가 화이트칼라로 변하는 것이 가능한 시기였지요. 이른바 '개룡(개천에서 나는 용)'들의 성공담이 신화처럼 퍼지던 것도 이 때입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오히려 역으로, 이 같은 '개룡'들이 탄생시킨 현대 사회가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았다고 진단합니다. 공부 잘하고 시험만 합격하면 성공하는 시대 속 누구에게나 주어진 입장권을 가진 이들은 '계층 사다리'에 오르기 위해 무한 경쟁을 시작했고 그렇게 성공한 이들은 고위공무원, 법조인, 의료인, 대기업 직원 등 신흥 엘리트 1세대가 되어 서울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는 힘겹게 얻은 우월한 위치를 자식들에게 넘겨주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고, 이는 결과적으로 지역의 격차, 빈부의 격차, 교육의 격차로 이어졌지요. 부모의 경제력 격차는 자녀의 학력 격차로 이어지고 다시 일자리와 소득 격차로 재확산하면서 우리 경제의 역동성이 허물어졌다는 설명입니다. '기회의 평등'이 '기회의 불평등'이라는 유산을 낳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기회의 평등' 일부 전문가들은 이 같은 '부의 대물림'으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의 해결에 정부가 직적접인 개입을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회경제적 정책을 통해 기회 균등을 실현하는 일은 매우 어렵지만, 결국 상황의 본질은 ‘사회 양극화’이며 취업, 교육 등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지요. 한국 사회가 극단적인 양극화 문제에 도달한 이유는 과거 정부가 그동안 성장 위주의 패러다임을 고수해 왔기 때문이라는 진단도 있습니다. 고도 성장기 정부는 기간 시설, 공장 등 물적 자본 투자에 매달렸고 경제성장률, 수출 증가율, 무역수지 등으로 경제 성적표를 매기는 반면, 고용과 교육, 복지 등 사람에 대한 투자는 부족했고, 사회 안전망이 부실하다 보니 벌어진 격차를 줄여 주는 기능 또한 미흡했다는 분석입니다. 지난 5월, 정부는 역동경제 구현을 위한 '사회이동성 개선방안'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당시 주환욱 기획재정부 경제구조개혁국장은 "미래세대가 공정한 기회를 부여받고 능력·노력에 따라 소득계층 상향이동을 할 수 있는 기회 확대는 역동경제의 출발점"이라며 "원활한 사회 이동을 통해 경제주체들의 미래투자·근로의욕을 증대시킬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주된 방침으로는 △청년 맞춤형 취업지원 △저소득층 교육 초등생 조기지원 △부동산 연금화 촉진세제 도입 등입니다. 다만 이 같은 해결책이 사회 양극화에 직접적인 효과를 줄 수 있을 지는 미지수입니다. 현 한국 사회의 소득·자산 양극화는 계층 이동 사다리가 취약해진 탓도 있지만, 대·중소기업 및 정규·비정규직 임금격차나 조세를 통한 소득·자산 재분배 기능의 약화도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정부는 이번 방안을 실효적으로 추진하되, 임금격차 완화나 소득·자산 누진과세 보강 등 전환적 대책도 보강할 필요가 클 것으로 보입니다. 1933년 뉴딜정책을 주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모든 시민의 평등, 기회, 고용 안정을 우선시한다는 철학을 밝히며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정치 및 경제 시스템에 기대하는 기본적인 사항은 간단하다. 청년과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회의 평등,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일자리,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안보다" rainbow@fnnews.com 김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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