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한국인의 평균 신장은 얼마나 될까.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이 발표한 2022년 ‘한국인 인체 치수조사’ 결과를 보면 남성은 172.5센티미터, 여성은 159.6㎝라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조사가 처음 실시된 것이 1979년인데 그때로부터 남성의 평균 키는 6.4㎝가 커졌고, 여성의 평균 키는 5.3㎝가 커졌다. 특히 30대만 따로 통계를 내면 남성은 174.9㎝로 8.8㎝가 커졌고, 여성은 161.9㎝로 7.9㎝가 커졌다. 우리가 이렇게 폭풍 성장을 하는 동안 북한 주민들의 키는 어떻게 변했을까. 안타깝게도 북한 주민들의 평균 신장은 여전히 아시아 최하위권이다. 전세계 국가별 평균 신장 데이터를 제공하는 에버리지 하이트(Average Height)에 의하면 북한 성인 남성의 평균 키는 165.6㎝라고 한다. 또 2000~2010년 한국에 온 탈북민 성인 남성의 평균 키는 167㎝로 조사된 바 있다. 우리나라 남성보다 7~10㎝나 작다는 뜻이 된다. 성장이 영양상태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남한과 북한의 차이처럼 잘 보여주는 사례는 없을 것 같다. 같은 DNA를 타고났는데 한국은 고도성장을 하면서 40여년 만에 키가 4% 가까이 커진 반면, 북한은 계속 제자리 걸음이다. 잘 먹는 것은 성장의 기본이다. 뼈와 조직의 성장, 근육의 성장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충분한 칼로리가 공급되어야 유전자가 갖고 있는 최대치의 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다. 2013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성인 남성은 하루 3056칼로리의 음식을 섭취하는 반면, 북한의 성인남성은 하루 2094칼로리를 섭취한다고 한다. 보건복지부가 정한 일일 권장 칼로리는 19~29세 성인남성 기준 2600칼로리이다. 한창 성장하고 활동이 많은 청소년기에는 이보다 더 먹어야 한다. 북한 남성이 한국 남성보다 키가 7~10㎝나 작은 이유는 성장기부터 지속적으로 칼로리 공급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무엇을 먹느냐도 중요하다. 한국인의 평균 신장이 40여년 동안 4% 커진 데에는 먹는 양이 증가한 것뿐만 아니라 식단이 달라진 것도 큰 원인을 차지한다. 70년대 국민영양조사 자료를 보면 당시 한국인이 먹는 음식의 90% 이상이 식물성 식품이었다. 단백질이라고는 가끔 먹는 고기와 생선, 그리고 콩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80년대에 와서 동물성 식품의 섭취가 전체 섭취량의 20%까지 늘었다. 지금은 쌀보다도 고기를 더 많이 먹는 나라가 되었다. 2019년 한국인의 1인당 쌀 소비량은 연간 55.6㎏인데 고기(소·돼지·닭고기) 소비량은 연간 58.4㎏이다. 위에서 알 수 있듯이 성장에는 단백질 공급이 중요하다. 단백질은 인체 모든 세포를 구성하고 근육, 조직, 피부, 손톱, 머리카락을 만드는 기본 재료다. 성장호르몬 역시 아미노산을 원료로 합성되므로 단백질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만들어지기 어렵다. 단백질을 구성하는 20개의 아미노산 중 11가지는 인체가 스스로 합성해낸다. 하지만 9가지는 합성하지 못하거나 합성하기가 어려우므로 반드시 음식을 통해 섭취해야 한다. 이렇게 반드시 음식을 통해 섭취해야 하는 아미노산을 필수 아미노산이라고 부른다. 영유아의 경우는 합성 능력이 떨어져서 아르기닌까지 포함하여 총 10가지가 필수 아미노산이다. 아미노산은 콩,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생선 등에 골고루 풍부하게 들어있다. 우유, 치즈, 요구르트, 달걀, 견과류도 훌륭한 아미노산 공급원이다. 보통 하루 필요한 열량의 10~30%를 단백질에서 섭취하는 것이 성장에 가장 이상적이다. 단백질 섭취에 대한 국제 기준은 미국학술원(National Academies) 산하 미국의학원(institute of Medicine), 그리고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식량농업기구(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가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성인은 몸무게당 0.8~0.83g정도의 단백질을 섭취해야 하는 것이 이상적이고, 유아~청소년은 그보다 많은 0.85~1.52g을 섭취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도 하루 단백질 권장량을 제시하는데 몸무게가 아니라 연령별 고정값으로 제시한다. 한국의 보건복지부도 연령별 고정값을 제시하는데 미국보다 더 많은 양을 먹도록 권장하고 있다. 아래 표를 참고하여 아이에게 하루 어느 정도의 단백질을 먹여야 할지, 나는 얼마나 먹어야 할지 기준을 세워 두는 것이 좋겠다. 물론 성장호르몬 촉진에 단백질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비타민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특히 비타민A와 D는 성장호르몬과 직간접적으로 연계하여 성장기의 발달을 돕는다. 비타민A는 시각의 발달과 면역기능에 필수인 영양소로 알려져 있지만 뼈와 조직의 성장을 돕고 야간의 성장호르몬 분비에도 영향을 미친다. 비타민D는 그 자체로 뼈의 성장에 필수이면서 인슐린유사성장인자-1의 분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혈중 비타민D 수치가 높으면 인슐린유사성장인자-1의 분비가 높아지고, 이것이 신장에서 1,25-디하이드록시비타민D가 신장에서 활성화된 형태의 생산을 증가시켜 뼈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칼슘과 인의 활용 효율을 높인다. 인슐린유사성장인자-1은 성장호르몬에 의해 분비되지만 성장호르몬보다 더 직접적이고 강력한 성장효과를 내므로 비타민D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비타민D는 성장호르몬과도 관련이 있다. 2018년 이집트 카이로 아인샴스 대학교의 임상연구에 따르면 성장호르몬결핍증을 앓는 50명의 소아환자 중 84%가 혈중 25-하이드록시비타민D(25-hydroxyvitamin D·비타민D가 간에서 활성화된 형태)가 부족한 상태였다고 한다. 이후 12개월 동안 이들에게 성장호르몬 보충 치료를 하자 25-하이드록시비타민D 수치가 대부분 정상화되었다고 한다. 정확한 메커니즘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성장호르몬이 비타민D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성장호르몬 분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비타민A와 비타민D를 충분히 먹어야 한다. 비타민A는 육류와 달걀, 콩, 녹황색 채소를 통해 쉽게 섭취할 수 있다. 비타민D는 등푸른생선, 달걀 노른자, 표고버섯, 견과류 등을 통해 섭취할 수 있다. 하지만 먹는 것보다 더 효율적인 것은 피부를 자외선에 노출하여 합성해내는 것이다. 피부에 자외선이 내리쬐면 표피 세포에 존재하는 7-디하이드로콜레스테롤(7-dihydrocholesterol)이 화학적 변화를 일으켜 프리-비타민D(3pre-vitamin D3)로 변환되고 이것이 다시 비타민D3로 변환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비타민D3는 곧바로 체내로 흡수되어 신진대사에 활용된다. 비타민D는 자외선 노출을 통해 세포가 직접 합성해낸다는 점에서 비타민이라기보다 호르몬에 가깝다. 비타민D가 호르몬이라고 개념을 바꾸어 생각한다면 이것이 뼈에 미치는 영향과 성장호르몬과 인슐린유사성장인자-1과의 관계를 좀 더 명확히 규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필자가 오래 전부터 품어온 생각이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5-07-22 17:33:41[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성장호르몬 결핍증이나 과다증 등 다양한 성장호르몬과 관련된 질환들을 알아보자. 터너증후군(Turner syndrome)여성의 XX 성염색체 중 하나에 완전 혹은 부분적 결손이 일어나 성장 및 성적 발달에 결함이 생기는 유전질환이다. 여아 2500~3000명당 1명 꼴로 발생하며 대부분 유산되지만 0.1%는 생존한다. X 염색체 이상이라서 여성호르몬 분비가 원활하지 않다. 이로 인해 가슴 발달에 이상이 생기고 난소 기능장애로 임신이 거의 불가능하며 생리를 하더라도 조기폐경의 확률이 높다. 에스트로겐은 뼈의 성장에도 관여하기 때문에 에스트로겐이 부족한 터너증후군은 성인이 되면서 골다공증에 시달릴 확률이 높다. 터너증후군이 저신장증을 보이게 되는 원리는 사춘기 키 성장에 에스트로겐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에스트로겐은 인슐린유사성장인자-1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세포와 조직 내에서 에스트라디올은 인슐린유사성장인자-1 수용체의 양을 늘려 성장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에스트라디올을 경구 섭취하면 인슐린유사성장인자-1의 혈청 농도가 오히려 감소한다. 정확한 메커니즘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에스트로겐이 인슐린유사성장인자-1과 긴밀히 공조하여 성장에 관여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 과정에서 성장호르몬 분비도 영향을 받는다. 에스트로겐이 부족한 터너증후군은 에스트로겐 보충 요법과 함께 성장호르몬 주사도 함께 진행하여 성발달과 키 성장을 유도해야 한다. 치료를 하지 않으면 평균 140㎝ 정도의 키를 갖게 되지만 치료를 하면 5~12㎝ 더 커질 수 있다. 프래더윌리증후군(Prader-Willi syndrome) 15번 염색체의 결손으로 시상하부 기능에 장애가 발생하는 질환이다. 신생아가 체중이 유난히 적고 근육 힘이 약해서 젖을 빨지 못하고 손과 발이 작고 목을 가누지 못하면 프래더윌리증후군을 의심해볼 수 있다. 생후 1년 동안은 잘 먹지 못해서 코에 튜브를 삽입하여 음식을 넣어야 할 수도 있다. 2~3세 경이 되면 갑자기 식욕이 증가해서 음식이 대한 욕구가 강해진다. 이로 인해 체중이 급격히 증가하고 당뇨병, 고혈압 등으로 발전할 수 있다. 시상하부 기능에 결함이 있기 때문에 성호르몬 분비에 문제가 있고 성장호르몬 결핍도 함께 올 수 있다. 저신장증, 비만, 식탐, 사춘기지연이 지적장애, 행동장애와 함께 오기 때문에 부모들이 아이를 다루기가 무척 어렵다. 성호르몬 치료를 기본으로 받아야 하고 성장호르몬 치료는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투여하면 키 성장과 체중감량에 도움이 된다. 소아 만성신부전증 만성신부전증은 3개월 이상 신장 손상이 지속되거나 몇 년에 걸쳐 천천히 신장 기능이 감소하는 질병이다. 신장은 대사산물의 각종 노폐물을 제거하는 기관이라서 신장기능이 망가지면 제거되지 않은 노폐물이 혈액에 쌓이게 된다. 또 신장은 여러 가지 호르몬을 분비하는 내분비 기관이기도 하다. 적혈구 형성에 관여하는 호르몬, 칼슘과 인 대사에 중요한 호르몬을 생산한다. 신장 기능이 망가지면 이러한 호르몬들이 원활히 분비되지 않아 쉽게 피곤하고 몸이 퉁퉁 붓고 혈압이 올라가고 심하면 호흡곤란, 구토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성인이 만성신부전증을 앓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당뇨로 인한 합병증, 고혈압 등이다. 반면에 소아의 만성신부전증은 선천적 신장의 기형(신이형성, 신무형성, 요로폐쇄), 만성 사구체신염(신장의 필터 역할을 하는 사구체에 염증이 생겨 신장이 손상되는 질환), 유전성 질환(알포트증후군, 낭포신) 등이 원인이다. 만성신부전증에 걸리면 신장의 기능이 모두 저하되므로 관련 장기가 모두 약해지고 전신에 증상이 나타난다. 아이들은 빈혈이 생겨 얼굴이 창백해지고 잘 먹지 못하고 영양분이 흡수되지 못해 뼈가 약해지며 성장지연이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막상 성장호르몬 농도를 조사해보면 대부분 분비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온다. 그럼에도 성장지연이 나타나는 이유는 신장 이상이 성장호르몬 수용체의 수를 현저히 감소시키고 간에서 인슐린유사성장인자-1의 분비를 촉진하는 효과와 이것이 수용체와 결합하는 효율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이것을 ‘성장호르몬 불감성’, 혹은 ‘성장호르몬 저항성’이라고 부른다. 고용량의 성장호르몬 치료는 키를 키우는 데에 확실한 효과가 있다. 치료를 하지 않는 것보다 약 2배 정도 더 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성신부전증 소아는 사춘기가 지연될 뿐만 아니라 지속기간이 매우 짧다. 여기에 성장호르몬 장애까지 겹쳐서 치료를 하지 않으면 여아는 154㎝ 안팎, 남아는 163㎝ 안팎에 그친다. 후에 신장이식을 한다 해도 더 크지 못한다. 사춘기 이전부터 적절한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성인의 성장호르몬 결핍증 나이가 들면서 성장호르몬이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병적으로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면 큰 문제는 없으며 식사, 운동, 다이어트 등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다. 성인이 의학적으로 성장호르몬 결핍증 진단을 받는 경우는 뇌종양이나 종양을 치료하기 위한 수술 혹은 방사선치료의 후유증인 경우가 가장 많다. 혹은 뇌에 외상을 입어 뇌하수체 기능을 상실했을 때도 성장호르몬이 결핍될 수 있다. 피로, 불안, 우울, 성기능감소, 근육 감소, 골밀도 감소, 심혈관질환 등이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사망률을 높아진다. 종양이 뇌하수체를 압박하는 것이 문제라면 종양을 제거하는 것으로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 수술이나 방사선치료, 외상이 원인이라면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치료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성장호르몬이 과다하게 분비되어도 문제가 되는데, 다음과 같은 증상을 꼽을 수 있다. 뇌하수체 거인증(Pituitary gigantism) 뇌하수체 거인증이란 성장기 아이에게 성장호르몬이 과다 분비되어 키가 비정상적으로 커지는 질환이다. 성장호르몬을 분비하는 뇌하수체전엽의 소마토트로프 세포(somatotropic cell)에 종양이 생겨 계속 증식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증상은 머리가 커지고 손과 발이 과도하게 길고 두통, 비만, 시각장애, 그리고 무감각과 저림 등의 감각이상을 보인다. 종양이 커지면서 뇌압을 높이고 시신경을 압박하기 때문이다. 키가 너무 커지기 전에 종양을 제거해주는 것이 가장 좋다. 종양이 작고 완전히 제거되면 완치율이 높다. 종양이 크고 완전히 제거되지 않으면 수술 후 방사선 및 약물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말단비대증(Acromegaly)거인증을 치료하지 않은 채 성인이 되면 말단비대증으로 발전한다. 뼈의 성장판이 닫혀 키는 더 이상 자라지 않지만 손, 발, 코, 턱, 입술 등의 신체 말단은 계속 커지고 자라서 얼굴 생김새가 바뀌게 된다. 아주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느끼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또 성장기에는 증상이 없다가 성인이 된 후 뇌하수체 종양이 발생해 말단비대증이 되기도 한다. 수술로 종양을 제거해도 증상이 계속된다면 성장호르몬억제호르몬 주사를 투여하거나 성장호르몬 수용체를 억제하는 약물을 투여한다. 방사선치료는 수술 후에도 남은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필요할 수 있지만 이로 인해 범뇌하수체 기능저하증이 생겨 뇌하수체에서 나오는 모든 호르몬의 분비가 감소할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5-07-08 16:26:29[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성장호르몬은 영양 공급이 충분하지 않거나 불규칙한 생활방식, 운동부족, 과식, 비만, 지나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조금 덜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조금 부족한 것과 의학적으로 ‘성장호르몬 결핍’이라는 진단을 받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조금 부족한 것은 식생활과 생활습관의 개선으로 얼마든지 회복이 가능하지만 성장호르몬 결핍은 분비 시스템에 병리학적 이상이 발생한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의학적으로 ‘성장호르몬 과다’로 진단을 받는 것도 병리적학적 이상이다. 이러한 경우는 적극적인 의료의 개입이 필요하다. 성장호르몬 결핍과 과다는 생애의 어느 시기에 어떤 이유로 발생했느냐에 따라 증상이 다르게 나타난다. 단순히 키와 몸집이 작은 것이 증상의 전부일 수도 있지만, 생김새가 정상에서 벗어나거나, 비만이 심하거나, 뼈가 유난히 약하고 정신지체가 있을 수도 있다. 빨리 발견하여 치료를 받아야 증상이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므로 부모들은 그 원인과 증상, 치료법에 대해 알아 두는 것이 좋겠다. 먼저, 신생아에게는 성장호르몬 결핍증이 나타날 수 있다. 태아는 엄마 뱃속에 있는 동안 성장호르몬에 노출된다. 보통 임신 10주 정도부터 서서히 증가해서 12~24주에 최고 수준에 노출된다. 이때 노출되는 성장호르몬은 전생애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양수 1㎖당 최대 100나노그램에 이른다. 이후 급하게 하락해서 출산이 가까워지면 거의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렇게 성장호르몬 수치가 임신 중기와 후기에 급변하는 이유는 중기에 분비된 성장호르몬이 인슐린유사성장인자-1의 분비를 촉진하고 그것이 시상하부에 네거티브 되먹임되어 성장호르몬 분비를 억제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이때의 성장호르몬은 태아의 성장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태아기에 성장을 주도하는 것은 성장호르몬이 아니라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기 때문이다. 대신 태아기 성장호르몬은 인슐린저항성을 유발하여 태아의 뇌를 저혈당으로부터 보호하고 지방을 분해하여 에너지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이론이 있다. 그래서 태아기에 성장호르몬이 부족했던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저혈당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신생아의 피부가 노래지는 황달도 성장호르몬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황달은 혈액 내에 빌리루빈이라는 담즙 색소의 농도가 증가해서 피부나 점막이 노랗게 보이는 증상이다. 성장호르몬이 결핍되면 담즙산이 제대로 합성되지 않고 쓸개모세관의 구조에 기형이 일어나 간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 신생아 황달은 워낙 흔한 증상이라서 생후 1~2주 내에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 이상 지속된다면 간세포 손상이나 성장호르몬을 포함한 대사질환을 의심해봐야 한다. 음경이 매우 작은 마이크로페니스도 성장호르몬 결핍을 의미할 수 있다. 신생아의 음경은 살짝 잡아당겨서 쟀을 때 3.5㎝ 안팎이다. 마이크로페니스의 경우는 1.8㎝ 미만이다. 생후 2개월이 지나도 음경 길이에 변화가 없다면 의사와 상담하여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보통 이것은 태아기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부족한 저생식샘자극호르몬성 생식샘기능저하증 때문인 경우가 많지만 성장호르몬 부족도 원인이 될 수 있다. 시상하부의 기능 자체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면 성호르몬과 성장호르몬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호르몬도 함께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전면적인 호르몬 검사가 필요하다.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나타나는 성장호르몬 결핍증도 있다. 유아기에는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다가 본격적으로 키가 크기 시작하는 아동기부터 유난히 발육이 더디다면 성장호르몬 결핍을 의심해볼 수 있다. 의학적으로 성장호르몬결핍증이라고 진단을 내리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키 성장 속도가 보통의 소년소녀보다 약 절반 정도 느리다는 것이 확인되어야 한다. 즉, 지금 당장의 키가 작은 것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최근 몇 년 간의 성장추이에서 평균보다 자라는 속도가 느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혹은 ‘소아청소년의 표준성장도표’에서 3백분위수(최저 3%) 이하에 해당한다면 성장호르몬 결핍증에 해당한다. ‘소아청소년의 표준성장도표’는 질병관리청이 대한소아과학회와 함께 소아청소년의 건강 및 성장 상태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개발한 것으로 10년 주기로 업데이트된다. 가장 최근 발표된 것은 2017년이다. 신장, 체중, 체질량지수의 백분위수 그래프를 제공한다. 자주 들여다보며 아이의 성장이 어디에 해당하는지 체크해보아야 한다. 성장호르몬 결핍증이 맞다면 키가 작은 것뿐만 아니라 골연령도 나이보다 몇 년 어리다. 심한 경우 근육도 잘 형성되지 않아서 걷고 뛰고 서있는 등의 운동 능력이 떨어진다. 지방, 뼈, 근육, 수분의 비율을 나타내는 체성분 지표에서도 지방에 비해 근육이 적게 나온다. 그대로 방치하면 나이가 들수록 통통해지고 사춘기도 몇 년씩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성장호르몬 자극 검사를 통해 실질적으로 분비량이 적다는 것이 밝혀져야 한다. 키가 3백분위수 이하에 해당해도 호르몬 분비가 정상이라면 성장호르몬 주사 치료는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호르몬 분비에 문제가 있는 것이 확인되고 성장판이 충분히 열려 있다면 성장호르몬 치료를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 성장호르몬 수치를 검사하는 방법은 성장호르몬이 잘 분비되는지 간단하게 알아보는 방법은 혈액검사로 혈중 성장호르몬 수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보통 성인 남성은 혈액 1㎖당 0.4~10나노그램 혹은 혈액 1ℓ당 18~44피코몰이고 성인 여성은 1~14나노그램 혹은 44~616피코몰이다. 아동과 청소년은 이보다 훨씬 높은 10~50나노그램 혹은 440~2200피코몰을 정상범위로 본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때나 채혈을 해서 혈중 농도를 확인하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정확하지 않다. 성장호르몬은 마치 맥박처럼 리듬을 타면서 불쑥 분비되었다가 떨어지는 ‘펄스(pulsatile) 박동식 분비를 하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 채혈을 했느냐에 따라 낮게 나올 수도 있고 높게 나올 수도 있다. 성장호르몬 수치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인슐린유사성장인자-1의 수치도 함께 확인해야 한다. 인슐린유사성장인자-1의 혈중 농도는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성장호르몬이 잘 분비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된다. 의학적으로 성장호르몬결핍을 정확히 진단하려면 좀 더 복잡한 ‘성장호르몬 자극검사’를 받아야 한다. 단, 이 검사는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키가 3백분위수 미만에 해당하고 골연령이 나이보다 1년 이상 어리고, 성장속도가 연간 4㎝ 미만으로 계속 감소하는 등 성장호르몬결핍을 의심해볼 만한 요건에 해당할 때만 받을 수 있다. 검사방법은 3일 동안 성장호르몬 분비를 자극하는 약물을 투여하여 성장호르몬분비가 얼마나 유도되는지 살핀다. 입원이 필요하고 여러 번의 채혈을 해야 한다. 약물은 모두 알파-아드레날린수용체로 시상하부를 자극해서 성장호르몬방출호르몬을 분비하는 원리다. L-도파, 클로니딘, 글루카곤, 아르기닌, 인슐린 중에서 2가지 이상이 사용된다. 한 약물 당 5회 이상, 총 10번 이상 채혈해야 하고 모든 검사에서 성장호르몬이 혈액 1㎖당 10나노그램 이하로 나와야 성장호르몬결핍증이라고 진단한다. 또한 별도로 MRI를 촬영하여 뇌하수체에 종양이 없다는 것도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원인을 알 수 없는 ‘특발성 성장호르몬결핍증’으로 진단을 받아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결핍증 진단을 받으면 남아는 165㎝까지, 여아는 153㎝까지 급여혜택을 받을 수 있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5-07-08 16:08:04[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성장호르몬은 펩타이드 호르몬이다. 펩타이드는 여러 아미노산이 특유의 결합으로 연결된 분자를 뜻하는데 이것이 아주 길게 많이 연결되면 폴리펩타이드라고 한다. 성장호르몬은 아미노산 191개가 연결된 폴리펩타이드이며 분자량이 2만2000에 이르는 단백질 호르몬이다. 체내에서 펩타이드의 주 역할은 세포 내 단백질 간의 신호 전달, 다른 고분자 물질과의 교류다.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단백질간 상호작용의 15~40%를 펩타이드가 담당한다. 그 역할은 효소, 항균, 항산화, 면역, 신경전달 등 다양한데 호르몬도 그중 하나다. 성장호르몬 외에도 식욕 촉진 호르몬인 그렐린, 혈당을 올리는 호르몬인 글루카곤, 여포자극호르몬, 생식샘자극호르몬, 인슐린, 렙틴, 옥시토신, 프로락틴, 바소프레신 등이 펩타이드 호르몬이다. 같은 펩타이드라서 이들 역시 세포 표면의 수용체와 결합하여 신호를 전달할 채널(또 다른 단백질)을 여는 방식으로 효과를 낸다. 채널이 열리면 신호는 세포 핵 속의 DNA로 전달되어 DNA가 호르몬을 합성해낸다. 모든 호르몬은 너무 많아도 안 되고 너무 적어도 안된다. 그래서 인체는 너무 많으면 호르몬 분비량을 낮추고, 너무 적으면 분비량을 높이는 고유의 제어 시스템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성장호르몬은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를 제어할까. 성장호르몬의 분비는 시상하부의 신경분비핵에서 성장호르몬방출호르몬을 분비하면서 시작된다. 얼마나 분비할지는 시상하부가 인체의 많은 자극을 종합하여 결정한다. 분비된 호르몬이 혈관을 타고 뇌하수체전엽으로 운반되면 그 안의 특정 세포에서 성장호르몬을 분비하게 된다. 분비된 성장호르몬은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이동한다. 그러다 수용체를 만나면 신호전달 경로가 활성화된다. 이 경로를 통해 수용체가 DNA에 신호를 전달하면 DNA가 관련 단백질을 발현하면서 세포 분열이 일어나게 된다. 바로 이 세포 분열이 우리가 말하는 ‘성장’이다. 성장호르몬이 간에 이르면 수용체와 결합하여 또 다른 경로를 활성화한다. 이 경로를 통해 신호를 전달받은 간 세포는 또 다른 단백질계 호르몬인 인슐린유사성장인자(IGF-1)를 분비한다. 인슐린유사성장인자-1은 인체의 거의 모든 조직에 존재하는 수용체와 결합하여 성장을 촉진하는 호르몬이다. 세포의 증식, 단백질의 합성, 골격의 성장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성장은 인슐린유사성장인자-1의 작용이다. 특히 어린이에서 청소년기의 성장은 성장호르몬의 직접적 작용보다는 인슐린유사성장인자-1을 통한 간접적 작용이 더 많다. 배고픔을 느낄 때 위에서 분비되는 그렐린도 성장호르몬 분비를 촉진한다. 그렐린은 배가 고플 때 식욕을 불러일으켜 먹게 만드는 호르몬이다. 하지만 배고픔을 느끼는 바로 그 순간에 성장호르몬 분비를 촉진하는 효과도 낸다. 그렐린이 이런 효과를 내는 이유는 그렐린과 결합하는 수용체가 시상하부에 다량으로 존재하는 성장호르몬분비촉진수용체-1(growth hormone secretagogue receptor-1)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그렐린이 분비되면 그 신호를 받아 시상하부의 수용체들이 활성화되고 이로 인해 성장호르몬 분비가 촉진된다. 그래서 성장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되게 하려면 간식을 먹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식후 서너 시간이 지난 후부터 배가 고프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꼬르륵 소리가 나는 것은 성장호르몬이 분비되고 있다는 신호다. 곧바로 뭔가를 먹지 말고 다음 식사 시간까지 버티면 성장호르몬이 더 많이 나오게 된다. 호르몬 분비를 촉진하는 체계가 있으면 반드시 그것을 억제하는 체계도 있다. 성장호르몬을 억제하는 것은 시상하부에서 분비되는 성장호르몬억제호르몬이다. 이 호르몬은 시상하부의 복내측핵에서 분비되어 뇌하수체전엽으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수용체와 결합하여 성장호르몬 분비를 억제한다. 분비량은 시상하부가 인체의 모든 자극을 종합하여 판단한다. 인슐린유사성장인자-1도 성장호르몬을 억제하는 시스템의 일부다. 성장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면 인슐린유사성장인자-1의 분비도 높아진다. 하지만 너무 높아지면 시상하부 및 뇌하수체에 네거티브 되먹임되어 성장호르몬의 분비를 억제한다. 또한 성장호르몬이 지방세포에 이르면 지방을 분해해서 유리지방산이 만들어지는데, 혈중 유리지방산의 양이 많아지면 이 역시 시상하부와 뇌하수체에 네거티브 되먹임되어 성장호르몬의 분비를 억제한다. 이밖에도 뇌하수체에는 성장호르몬억제호르몬 뉴런이 있어서 그 자체로 네거티브 되먹임 효과를 낸다. 즉, 혈중 성장호르몬의 농도가 높으면 이를 시상하부에 전달하여 성장호르몬억제호르몬 분비를 높이고, 혈중 성장호르몬의 농도가 낮으면 성장호르몬억제호르몬의 분비를 낮춘다. 이처럼 성장호르몬은 분비를 직접적으로 촉진하는 호르몬과 억제하는 호르몬이 있고, 다른 호르몬 및 대사물질들을 통해서도 억제와 촉진이 이루어진다. 호르몬이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된 시스템인지, 단 하나의 악기가 아닌 여러 악기가 함께 어우러지는 오케스트라와 같다는 것을 성장호르몬 분비 시스템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5-07-08 15:44:22[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어린아이의 성장호르몬 분비 이상은 대부분 뚜렷한 원인이 없어서 ‘특발성’으로 분류한다. 특발성이란 원인이 불분명하다는 뜻으로 유전자 이상이나 뇌 질환 등 뚜렷한 소인이 밝혀지지 않으면 모두 특발성으로 분류한다. 반면에 성인이 갑자기 성장호르몬이 분비되지 않는 경우는 원인이 비교적 뚜렷하다. 가장 흔한 원인은 외상으로 인한 뇌하수체 손상, 뇌종양, 뇌종양 수술로 인한 부작용, 방사선 항암치료 등이다. 성장호르몬은 뇌하수체에서 분비되기 때문에 뇌에 문제가 생기면 호르몬 분비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 밖에도 만성 간질환, 자가면역질환도 다른 호르몬과 연결되어 성장호르몬 분비에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다행히 성장호르몬이 의료의 개입이 필요할 정도로 부족한 경우는 아동의 경우는 4000~1만명 당 1명, 성인의 경우는 5만~10만명 당 1명일 정도로 아주 드문 일이다. 대부분의 경우는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매 시기 필요한 만큼의 성장호르몬이 분비된다. 나이가 들어서 성장호르몬이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기준보다 조금 떨어진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장호르몬을 의식해야 하며 좀 더 많이 분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분비되면 어린이와 청소년은 더 튼튼한 골격에 유전자가 허락하는 이상의 최대치로 키가 클 수 있고, 성인은 비만, 당뇨병, 골다공증 등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특히 성장호르몬은 멜라토닌과 더불어 노화를 막는 최고의 안티에이징 호르몬이다. 멜라토닌이 ‘활성산소 청소부’로 불린다면 성장호르몬은 ‘젊음의 샘’으로 불린다. 세포의 재생과 복원에 성장호르몬이 관여하며 특히 피부의 재생 주기에 관여하여 곱고 생기 있는 피부를 만들기 때문이다. 나이보다 10년 이상 젊어 보이는 탱탱한 피부의 비결은 성장호르몬 분비를 늘리는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성장호르몬 분비를 늘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깊고 충분한 수면과 적당한 스트레스, 균형 잡힌 식사, 운동 등이다. 필자는 강의를 가거나 진료실에서 환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호르몬 관리와 자기관리는 다르지 않다는 말을 자주 한다. 과식을 삼가고 식단에 신경을 쓰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잠을 잘 자는 것은 자기관리의 기본이자 호르몬 관리의 기본이기도 하다. 특히 식욕을 절제하여 살이 안 찌려고 노력하는 것, 운동으로 근육량을 늘리려고 노력하는 것, 적당한 스트레스 하에 즐겁게 일하는 것만큼 성장호르몬을 자극하기에 더 좋은 것은 없다. 성장호르몬을 염두에 두고 생활하면 저절로 자기관리가 되고 매사에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아동기와 청소년기의 성장호르몬은 발달에 직접적 영향을 끼친다. 이 시기에 어떤 습관을 들이느냐에 따라 키가 달라지고 몸매가 달라진다. 부모가 옆에서 식습관, 운동습관, 수면패턴 등을 잘 잡아준다면 유전자를 초월하여 더 건강하고 튼튼한 몸으로 발달할 수 있다. 더불어 청소년기에 만들어진 몸매는 건강한 자아상과도 연결된다. 아이가 스스로의 몸에 자신감을 가질수록 밝고 원만한 성격으로 자란다. 특히 과자, 빵, 튀김, 탄산음료 등 탄수화물과 당분을 많이 먹는 식습관과 과식하는 습관을 경계해야 한다. 이러한 습관은 소아비만, 청소년비만으로 이어지고 성조숙증, 저신장증으로 이어지게 된다. 어린 시절에 만든 습관은 평생 지속된다. 이 시기에 성장호르몬이 잘 분비되는 습관을 만들어 두면 아이가 나이가 들어서도 건강을 유지하고 남들보다 젊은 외모를 갖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5-07-08 15:29:35[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여성에게 소량의 테스토스테론이 생식기능과 건강에 필수이듯 남성에게 에스트로겐도 필수다. 적절한 수준의 에스트로겐이 없으면 성욕, 발기, 정자 생성, 골밀도, 콜레스테롤 수치 등에 문제가 생긴다. 남성이 분비하는 에스트로겐의 양은 성인 기준 에스트라디올이 혈액 1밀리리터 당 10~40피코그램이고, 에스트론이 10~60피코그램이다. 너무나 적은 양이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기능을 한다. 에스트로겐의 역할은 정상 범위에서 벗어날 때 수면으로 드러난다. 1994년에 보고된 한 남자의 케이스는 에스트로겐은 정상적으로 분비되지만 수용체의 염색체에 돌연변이가 생겨 에스트로겐을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였다. 그 결과 이 남자는 28세인데도 성장이 계속되고 복부비만과 과체중, 골다공증이 심각했다. 1997년에 보고된 또 다른 케이스는 선천적인 아로마타아제 효소 부족으로 테스토스테론을 이용하여 에스트로겐을 생산하지 못하는 남자였다. 이 남자 역시 뼈 성장에 문제가 있었고 포도당과 지방 대사에서도 문제가 발견되었다. 생식기능도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했다. 에스트로겐이 부족할 때 뼈 성장에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에스트로겐이 골단이라고 불리는 뼈 끝의 성장판을 닫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청소년기 성장이 끝나고 나면 골단이 닫혀 뼈가 더 이상 확장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에스트로겐 부족으로 그 역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나이가 들수록 팔다리가 계속 길어지고 키가 크는 직선형 성장을 한다. 뼈가 밀도 있게 다져질 새 없이 계속 자라기만 하기 때문에 뼈가 약해지는 증상이 동반된다. 발견 즉시 에스트라디올 보충 요법을 실시해야 성장판을 닫고 골다공증도 예방할 수 있다. 한편 에스트로겐 부족은 정자감소증을 유발하고 정자의 운동성에 문제를 일으킨다. 동물실험에서도 수컷 쥐의 고환에서 에스트로겐 생산을 억제하자 정자 생산과 활동이 비정상적으로 바뀌는 것이 확인되었다. 또한 에스트로겐은 남성의 성욕과 성기능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2013년 미국 보스턴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연구진은 202명의 건강한 성인 남성에게 인위적으로 남성호르몬 생성을 억제했다. 그러자 거의 모두 성욕과 발기 능력을 상실했다. 이후 연구진은 이 남성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쪽에는 아로마타아제 억제제와 함께 테스토스테론을 투여하고, 다른 한쪽에는 테스토스테론만 투여했다. 그 결과 테스토스테론만 투여 받은 그룹은 성욕과 성기능을 충분히 회복했지만, 아로마타아제 효소 억제제를 함께 투여 받은 그룹은 회복 속도가 느리고 약했다. 테스토스테론만 투여하면 체내에서 아로마타아제 효소를 통해 소량의 에스트로겐을 생산할 수 있지만, 아로마타아제 억제제를 함께 투여하면 에스트로겐 생산이 안 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고 해석할 수 있다. 남성의 성욕과 성기능은 테스토스테론만으로는 불가능하며 반드시 소량의 에스트로겐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 연구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에스트로겐 과잉은 남성에게 어떤 문제를 일으킬까? 먼저 유방비대증이 있다. 유방비대증은 사춘기 소년이나 50대 이상의 비만 남성에게 흔히 나타나며 대부분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춘기가 시작된 지 2년이 넘도록 여성형 가슴이 계속 발달한다면 큰 문제다. 부모로부터의 유전이거나, 신진대사 이상에 의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너무 낮거나, 간, 신장, 갑상선 등에 질환이 있거나, 특정한 약물에 의해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의 균형이 깨지면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 테스토스테론을 보충하거나 아로마타아제 억제제를 투여하여 에스트로겐 생성을 막는 것이 효과가 있다. 만약 약물로도 효과가 없다면 가슴성형을 받는 것도 방법이다. 미국에서는 2019년 기준 약 2만 4,000명의 남성이 성형수술로 유방비대증을 해결했다고 한다. 에스트로겐 과잉은 에스트로겐 부족과 마찬가지로 남성의 생식능력을 망가뜨린다. 건강한 성욕, 발기, 정자 생산에는 적정 수준의 에스트로겐이 필수다. 너무 적어도 불임이 되고 너무 많아도 불임이 된다. 에스트로겐 부족이 뼈를 계속 자라게 하는 반면 에스트로겐 과잉은 성장을 멈추게 한다. 에스트로겐이 골단의 성장판을 너무 빨리 닫아버리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춘기가 늦게 찾아오고 매우 작은 키에서 더 자라지 않고 성인이 된다. 이러한 외모는 개인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므로 되도록 빨리 호르몬 검사를 받아서 필요한 치료를 받을 것을 권한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5-05-08 16:29:26[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성조숙증도 아이에게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사춘기지연 또한 못지않게 고통스럽다. 다른 친구들은 외모가 점점 성숙해지는데 아이의 외모에 머물러 있는 것은 굉장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보통 인구의 5%에서 나타나는데 여아보다 남아의 발생 비율이 훨씬 높다. 남아의 경우 13~14세까지 고환의 부피가 커지지 않고 음모, 변성기, 목젖 등의 발달이 보이지 않을 때 사춘기지연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여아는 12~13세까지 유방과 음모에 발육의 기미가 보이지 않거나 15세까지 초경이 없을 때 의심해볼 수 있다. 왜소한 키, 신체의 기형적 성장을 동반하는 경우도 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신체검사, 혈액검사, X레이 촬영을 통한 골연령 검사, 유전자 검사, 골반 초음파 촬영,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등이 필요하다. 사춘기가 느린 아이들의 50% 이상은 체질적 증상일 뿐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온다.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리면 결국 사춘기가 시작되고 정상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아이가 조바심을 낸다면 남아는 테스토스테론 주사를, 여아는 에스트로겐 알약이나 피부에 붙이는 에스트로겐 패치로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 단기간 치료를 진행하면 사춘기가 유도되어 자연스럽게 2차 성징이 나타날 수 있다. 만약 시상하부나 뇌하수체의 이상으로 생식샘자극호르몬방출호르몬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면 빠른 치료가 필요하다. 이런 증상을 일으키는 원인은 중추신경 종양, 뇌하수체 종양, 림프구성 뇌하수체염 등이다. 역시 남아는 테스토스테론, 여아는 에스트로겐 치료를 받는다. 사춘기 진행 양상을 보면서 투약 기간과 투약 용량을 조절해야 한다. 사춘기지연 증상이 있는 아이들에게서 염색체 이상이 발견될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여아에게는 터너 증후군Turner's syndrome, 남아에게는 클라인펠터 증후군이 있다. 터너 증후군은 X 염색체 두 개 중 하나에 부분적 또는 전체적 결함이 있을 때 나타나는 질환이다. 이로 인해 키가 매우 작고 목과 어깨 사이에 물갈퀴처럼 피부가 두텁게 자리잡는 신체 기형이 생긴다. 난소 기능이 정상이 아니라서 생리를 하지 못하며 하더라도 조기폐경될 확률이 높다. 또 에스트로겐 분비가 원활하지 않아 가슴이 정상으로 발달하지 못한다. 염색체 이상을 고칠 수는 없지만 에스트로겐 치료로 성장을 촉진하고 사춘기를 유도할 수 있다. 키 성장을 위해 성장호르몬 치료도 함께 받는 것이 좋다. 클라인펠터 증후군은 남아에게 두 개 이상의 X염색체가 있을 때 나타난다. 남자는 X염색체를 하나만 가져서 XY가 되어야 정상인데 클라인펠터 증후군은 XXY, XXXY, XXXXY 등으로 X 염색체가 1~3개 많다. 이로 인해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긴 몸으로 자란다. 고환이 매우 작으며 여성형 유방을 가질 수 있다. 지적장애도 동반하는데 X염색체가 많을수록 더 심각하다. 염색체 이상을 고칠 수는 없지만 테스토스테론 보충요법을 통해 남성적 외모를 발달시키고 지적장애도 완화할 수 있다. 칼만증후군도 사춘기지연을 일으킨다. 이것은 유전자 결함으로 시상하부에서 생식샘자극호르몬방출호르몬이 분비되지 않는 질환으로 유전을 통해 발병한다. 남성은 성기가 작고 발기가 어렵고 무정자증이 확률이 높다. 여성은 가슴이 잘 발달하지 않고 무월경증이 나타난다. 특이한 것은 후각이 아예 없거나 약하고 여성보다 남성에게 2배 정도 발생률이 높다. 생식기능을 정상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그래도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 어느 정도 정상적으로 살 수 있다. 사춘기는 평생에 단 한 번뿐이며 신체와 정신에 평생 지속되는 큰 변화를 남긴다. 아이의 성 발달에 문제가 발견된다면 지체 없이 병원을 찾아야 한다. 일찍 진단하고 치료를 시작할수록 아이의 삶의 질이 높아질 것이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5-05-08 16:22:43[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생리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아이가 이미 사춘기에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사춘기 아이는 신체적으로 큰 변화를 겪는다. 특히 외모와 키의 변화가 가장 두드러진다. 한창 이성에 눈뜰 나이인 사춘기 소녀에게 외모의 변화는 더욱 예민하게 다가온다. 특히 또래에 비해 성장이 너무 빠르거나 혹은 너무 느린 경우 심리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너무 빠른 것을 성조숙증이라고 한다. 사춘기가 시작되는 시점은 여자는 11세, 남자는 12세가 평균이다. 하지만 개인에 따라 더 빨리 올 수도 있고 느리게 올 수도 있다. 보통 여자는 813세, 남자는 914세를 정상 범위로 본다. 만약 여자 아이가 8세 이전에 가슴이 커지고 초경을 한다면 성조숙증을 의심해 볼 수 있다. 남자 아이의 경우는 9세 이전에 고환의 부피가 커지거나 음모가 보이고, 목젖이 튀어나오고 변성기가 시작된다면 성조숙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 빠른 발달이 일으키는 가장 큰 문제는 이른 나이에 키 성장이 멈출 수 있다는 점이다. 성호르몬의 갑작스러운 분비가 성장을 가속화하여 초기에는 또래보다 키가 크지만 곧 골단의 성장판이 닫혀버려서 그 상태로 성장이 멈출 수 있다. 성조숙증은 보통 아동 1만명 당 1~2명에게 나타나는데 여아가 남아보다 10배 더 많다. 어째서 여아에게 더 많이 발생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과학자들과 의사들은 지나친 영양공급, 비만, 환경호르몬, 가정환경 등을 꼽는다.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우선 성조숙증 진단을 받아야 한다. 혈액 테스트를 통해 성호르몬 수치를 확인하고, X레이 촬영으로 골연령을 파악한다. 만약 성호르몬 과다가 원인이라면 여포자극호르몬, 황체호르몬의 수치가 높게 나올 것이고 골연령도 실제 나이보다 2~4년 더 높게 나올 것이다. 성호르몬 과다는 유전적인 요인 때문일 수도 있고 뇌수막염, 뇌염 등 뇌에 질환이 있어 시상하부에 장애가 발생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는 시상하부에서 분비되는 생식샘자극호르몬방출호르몬을 억제하는 약물을 정기적으로 투여한다. 이 약물을 투여하면 시상하부-뇌하수체-난소 축의 순환을 끊어서 여성호르몬의 분비를 억제할 수 있다. 만약 여포자극호르몬, 황체호르몬 분비량은 정상인데 성조숙증이 나타난다면 특별한 질환을 의심해 볼 수 있다. 맥큔 올브라이트 증후군(McCune Albright Syndrome)은 에스트로겐을 생성하는 효소인 아로마타아제가 체내에 급격히 증가해서 사춘기를 앞당긴다. 이런 경우는 아로마타아제 억제제를 투여해서 증상을 완화시킨다. 또 난소에 종양이 생긴 경우에도 종양세포에서 여성호르몬을 과다 생성하여 성조숙증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런 경우는 외과수술을 통해 종양을 제거해 주는 것이 가장 확실한 치료법이다. 성조숙증 진단을 받았다면 이제 치료를 받을 차례다. 그런데 치료를 받는다고 해서 과연 정말 키가 클까? 관련 논문을 보면 성조숙증 치료는 초경과 2차 성징의 발달을 늦추고 골연령의 진행을 늦추는 데에 좋은 효과가 있지만 실제로 키를 크게 하는 효과에는 논란이 있다. 치료 덕분에 키가 컸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반대의 결과도 있다. 키가 컸다는 긍정적 연구결과들은 주로 치료 전 예상신장에 비해 최종신장이 더 크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 예상신장이란 치료를 받기 시작할 때의 신장과 골연령, 부모의 신장 평균, 아동의 성별을 바탕으로 도출해내는데 최종신장이 예상신장보다 더 크고 부모의 신장 평균에 가까우면 치료가 효과적이라고 판단한다. 2014년 한국 연구팀의 논문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논문은 성조숙증으로 치료를 받은 82명 소녀들의 사례를 분석했는데 최종 신장이 평균 160.4센티로 치료를 시작할 때의 예상 신장(156.6센티)보다 크고 부모의 신장 평균(159.9센티)에도 가까우므로 치료가 효과적이었다고 말한다. 반면에 부정적 연구결과들은 성조숙증 치료를 받은 그룹과 치료를 받지 않은 그룹 사이에 최종 신장에 거의 차이가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1999년 보스턴어린이병원 연구팀이 80년대 중반 성조숙증을 진단받고도 치료를 받지 않은 16명의 소녀를 추적 조사해보니 그들 모두 평균 165.5센티의 성인으로 자란 상태였다. 이들의 성조숙증은 대부분 멈추거나 천천히 진행되어 다른 또래 소녀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2022년 슬로베니아 류블랴나Ljubljana 대학 연구팀의 조사에서도 치료를 받은 그룹과 받지 않은 그룹 사이에 신장 차이는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치료를 받은 소녀들의 최종신장이 161.3센티이고 치료를 받지 않은 소녀들은 161센티였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성조숙증 치료가 아예 불필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키 성장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2차 성징의 발달과 골연령의 발달은 확실히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위 류블라냐 대학 연구팀의 조사에서도 치료받은 소녀들은 초경이 11.5세에 일어났지만 치료를 받지 않은 소녀들은 9세에 초경을 했다. 골연령도 치료받은 소녀들은 실제 나이보다 1.97년이 더 많았지만 치료를 받지 않은 소녀들은 2.76년이 더 많았다. 초등학교도 가기 전인 5~7세 아이가 가슴이 발달하고 생리를 시작하는 것은 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다. 너무 이른 사춘기는 심리적 트라우마를 남기므로 의사와 잘 상담하여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성조숙증 치료를 받아야 한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5-05-08 16:17:40[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초경은 사춘기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이벤트다. 생리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여포와 난자가 잘 만들어지고 배란이 잘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사회적으로는 여성으로서의 신체적 성장을 의미하고 의학적으로는 임신이 가능한 신체 상태를 의미한다. 초경이 나타나는 나이는 보통 9~14세를 정상으로 본다. 미국의 통계를 보면 평균 12세에 초경을 겪는다. 영국은 13세로 나타나고 네덜란드, 스웨덴, 스위스, 독일은 13~13.5세로 나타난다. 이렇게 초경 시기가 국가별로 다르게 나타나는 것에는 지리, 인종, 민족, 문화, 생활수준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 한국의 경우는 초경 나이가 계속 빨라지는 추세다. 질병관리청의 국민건강영양조사 통계에 따르면 2001~2011년 사이 조사된 평균 초경 나이는 12.7세다. 하지만 12세 이전에 초경을 하는 비율이 2001년에는 21%였지만 2011년에는 34.6%로 증가했다. 10년 사이에 초경을 빨리하는 여아의 비율이 64%나 증가한 것이다. 중국의 경우도 2014년에는 평균 초경 연령이 12.8세였지만 2014년에는 12.3세로 빨라졌다. 빠른 초경은 생리하는 기간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12세에 생리를 시작하여 50세에 폐경을 한다고 가정할 때 평생 총 495회의 생리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임신 기간을 제외한다 해도 평균 450회 이상의 생리를 한다고 볼 수 있다. 생리는 새로운 세포를 만들고 파괴하는 과정의 반복이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생리 횟수는 자궁에 부담이 된다. 또 에스트로겐 및 여러 생식샘 호르몬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것이기 때문에 유방에도 부담이 된다. 현재 평생에 걸쳐 누적된 생리 회수가 유방암 및 자궁암 발병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들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초경을 겪으면서 아이가 가장 당황하는 것은 아마도 생리혈과 생리량, 생리통일 것이다. 아이가 놀라지 않도록 초경이 다가오는 10세 정도부터 생리에 대한 이야기를 엄마와 딸이 자연스럽게 주고받을 필요가 있다. 보통 생리혈은 맑은 분홍색에서 빨간색을 보이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생리량이 많은 날에는 어두운 자주색이 될 수도 있다. 생리 1~2일 차에는 붉었던 생리혈이 3일차에 다소 짙어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또 생리가 끝날 무렵에는 자궁 내벽의 세포들이 함께 분비되어 생리혈이 짙은 갈색으로 변한다. 이 역시 매우 정상이므로 아이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해주어야 한다. 생리량이 얼마나 되는지, 생리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도 알려주고 스스로 체크하게 해야 한다. 생리는 보통 5~7일 정도 지속되는데 총 출혈량은 30~50㎖다. 혈액뿐 아니라 다른 자궁내 노폐물과 함께 빠져나오기 때문에 총 분비물의 양은 70~80㎖가 된다. 이는 작은 야쿠르트 한 병(65㎖)을 조금 넘는 양이다. 아이가 기준을 삼을 수 있도록 알려주는 것이 좋겠다. 생리통은 아이에게는 매우 이상하고 불쾌한 감각일 것이다. 사실 초경과 더불어 곧바로 생리통을 경험하는 경우는 드물다. 생리통은 임신을 준비하면서 두꺼워진 자궁내벽이 자궁 근육의 수축을 통해 떨어져 나오면서 야기되는 감각인데 초경 시에는 배란이 충분히 완성되지 않은 상태라서 통증을 느끼는 경우는 드물다. 보통 초경 후 1~2년 이내에 생리통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된다. 생리통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사람에 따라 그 증상과 강도는 다르다. 보통은 골반 부위가 무겁고 불쾌한 정도지만 심하면 꼬리뼈와 허벅지까지 통증이 뻗어 나갈 수 있다. 또 아랫배가 쥐어짜는 듯이 아플 수 있고, 구토, 메스꺼움, 설사를 할 수도 있다. 일반적인 수준의 통증은 온열기로 배를 따뜻하게 하거나 골반 부위를 마사지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다스릴 수 있다. 하지만 일상 생활에 방해를 받을 정도로 아이가 아파한다면 진통제를 복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진통제의 원리는 자궁수축을 일으키는 물질인 프로스타글란딘의 생성을 억제하는 것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진통제는 모두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이기 때문에 복용하는 것이 인체에 크게 해가 되지 않는다. 생리통을 무조건 참는 것보다는 일상 생활을 편히 보내는 것이 중요하므로 약사의 복약지도에 따라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 만약 아이의 생리통이 진통제로도 다스려지지 않는다면 검사를 해 볼 필요가 있다. 자궁수축으로 인한 일차성 월경통이 아니라 골반강 내 이상으로 인한 이차성 월경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궁내막증, 자궁 혹은 질의 기형, 자궁 내 유착, 자궁근종, 만성 기능성 낭종, 잔류 난소 증후군 등이 이차성 월경통의 원인이 된다. 골반 초음파로 이런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고 이상이 확인되면 적극적으로 치료받아야 한다. 생리주기의 첫 시작은 뇌하수체에서 여포자극호르몬이 방출되면서부터이다. 이 호르몬은 난소 안의 여포(난소 조직에 있는 주머니 모양의 세포 집합체)를 자극하여 에스트로겐을 분비하게 하면서 동시에 여포와 난자를 성숙하게 만든다. 에스트로겐 분비가 충분히 높아지면 네거티브 되먹임 구조에 의해 여포자극호르몬의 분비가 줄어들고 황체형성호르몬의 분비가 늘어난다. 이렇게 분비된 황체형성호르몬은 성숙한 여포를 파열시킨다. 이때 여포가 파열되면서 그 안에서 자라고 있던 난자가 배출되는데 이것이 바로 배란이다. 배란이 이루어지고 나면 파열된 여포는 황체로 바뀐다. 황체는 파열된 여포가 발달해서 형성된 일시적 덩어리다. 황체는 황체형성호르몬의 자극을 받아 프로게스테론을 분비한다. 프로게스테론은 임신에 대비하여 자궁내벽을 두껍게 만들고 그 안에 코일 같이 촘촘한 혈관을 잔뜩 만든다. 또한 뇌하수체로 정보를 보내어 여포자극호르몬과 황체형성호르몬의 분비를 억제한다. 이로 인해 새로운 난자가 자라지 않고 더 이상의 배란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두 가지 갈림길이 생긴다. 하나는 정자가 들어와 난자와 수정이 되었을 때다. 이 경우 황체는 계속 유지되어 프로게스테론을 분비한다. 에스트로겐 역시 분비량을 유지한다. 이로 인해 뇌하수체에서는 여포자극호르몬과 황체형성호르몬의 분비가 억제된다.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이 협력하여 자궁내벽을 두껍게 만들어 수정란을 보호할 태세를 갖춘다. 이 상태가 바로 임신이다. 다른 하나는 수정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다. 이 경우 황체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어 퇴화된다. 황체가 사라지면 프로게스테론이 감소하게 되고 두껍게 만들었던 자궁내벽도 허물어지면서 모세혈관이 파열된다. 이것이 질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이 바로 생리, 월경이다. 월경이 끝나고 나면 낮은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수치 정보가 시상하부로 올라가 생식샘자극호르몬방출호르몬을 내보내고 이것이 뇌하수체를 자극하여 여포자극호르몬을 분비하게 만든다. 이때부터 또 다시 새로운 생리주기가 시작된다. 이러한 생리 사이클이 약 28일을 주기로 반복된다. 28일 주기가 달과 관련이 있다는 설이 있지만 그저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28일은 그저 평균 주기일 뿐 조금 짧아도 되고 길어도 된다. 보통 21~35일 주기를 정상범위로 본다. 매달 주기가 정확하게 맞아야만 정상인 것도 아니다. 며칠씩 빨라질 수도 있고 느려질 수도 있다. 다만 35일이 넘도록 생리를 하지 않는다면 몸 상태에 신경을 써야 한다. 생리를 늦추는 원인은 주로 심한 다이어트와 운동, 과로, 스트레스이다. 시험을 앞두고 있는 학생들이나 단기간 심하게 살을 뺀 여성들, 심한 체력 훈련을 하는 운동선수들 사이에서 생리가 멈추는 일이 흔히 일어난다. 이것은 몸이 임신을 하기에 충분히 건강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스스로 생식기능을 멈추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어린 학생들은 본인이 생리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부모가 잘 체크해서 필요한 경우 병원 진단을 받아야 한다. 아울러 생리를 규칙적으로 잘하는 것은 여성 호르몬의 사이클이 원활히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므로 아이가 그것을 자신의 건강을 살피는 척도로 삼도록 미리부터 잘 교육을 시키는 것이 좋겠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5-05-08 16:11:41[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에스트로겐의 합성은 시상하부에서 생식샘자극호르몬방출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시작한다. 생식샘자극호르몬방출호르몬의 분비는 뇌하수체에서 황체형성호르몬과 여포자극호르몬을 분비하게 하고, 이것이 혈액을 통해 난소에 이르면 안드로겐 수용체와 결합하여 에스트로겐을 합성하게 된다. 그런데 에스트로겐을 합성해내는 곳은 난소만이 아니다. 간, 췌장, 뼈, 부신, 피부, 뇌, 지방조직, 유방에서도 소량의 에스트로겐이 합성된다. 이렇게 합성된 에스트로겐은 폐경기 이후 난소 기능을 잃어버린 여성들이나 난소나 자궁이 없는 여성들에게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 혈액으로 나온 에스트로겐은 에스트로겐 수용체와 결합하여 활성화된다. 에스트로겐 수용체는 난소, 자궁, 유방 등 생식조직에 다량으로 분포한다. 피부, 간, 장, 뇌, 뼈, 침샘 등에도 에스트로겐 수용체가 있다. 다른 안드로겐 호르몬과 마찬가지로 에스트로겐도 자동으로 세포 속으로 들어가서 핵 속의 DNA와 결합하여 유전자를 발현하게 한다. 그런데 혈액으로 나온 에스트로겐이 모두 다 수용체와 결합하는 것은 아니다. 수용체를 만나기 전에 일부는 알부민 혹은 성호르몬결합글로불린과 결합한다. 이렇게 결합된 에스트로겐은 꽁꽁 묶여서 사용이 불가능하다. 에스트로겐 생산량이 너무 과다할 경우 인체는 이렇게 일부를 무력화시켜 에스트로겐 수치를 스스로 낮춘다. 에스트로겐 수치를 낮추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혈액 내에 에스트로겐의 수치가 너무 높으면 이 정보가 시상하부와 뇌하수체로 되먹임 된다. 그러면 시상하부와 뇌하수체가 스스로 생식샘자극호르몬방출호르몬과 황체형성호르몬, 여포자극호르몬의 분비량을 낮춘다. 이렇게 에스트로겐이 높으면 자극 호르몬을 낮추고, 에스트로겐이 낮으면 자극 호르몬을 높이는 '시상하부-뇌하수체-난소 축'의 네거티브 되먹임 구조에 의해 에스트로겐의 양이 자율 조절된다. 임신 초기 에스트로겐은 태아를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한다. 주로 엄마의 난소에서 분비되는 에스트로겐은 자궁 내벽을 두껍게 만들어 태아가 편하게 자리잡게 하고 태반을 무서운 속도로 자라게 하여 아기에게 호흡과 영양분을 공급할 기초 인프라를 만든다. 일단 태반이 자리를 잡으면 그때부터는 태반에서 자체적으로 임신기에 필요한 여러 호르몬을 분비한다.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태반성 젖분비자극호르몬, 인간융모성 생식샘자극호르몬(Human Chorionic Gonadotropin)등이 함께 작용하여 태아의 발달과 산모의 건강을 책임진다. 그렇다면 산모로부터 공급받는 것이 아니라 태아가 스스로 분비하는 에스트로겐은 어떤 역할을 할까? 여자 태아는 약 7주 정도부터 자궁을 형성하고 소량의 에스트로겐을 분비한다. 하지만 이때의 에스트로겐은 거의 존재감이 없다. 그러다 임신 중기로 접어드는 12주 무렵부터 에스트로겐 분비량이 치솟기 시작한다. 에스트로겐뿐만 아니라 황체호르몬과 여포자극호르몬도 동시에 치솟는다. 이렇게 임신 말기까지 쭉 높은 호르몬 수치를 유지하다가 출산하는 순간에는 거의 제로 수준으로 떨어진다. 이렇게 임신 중기~말기에 걸쳐 치솟았다 추락하는 호르몬이 태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이 시기 자궁이 완성되고 태아가 처음으로 여포를 만들어내는 등, 여성 생식력의 기초를 다지는 데에 이 호르몬들이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추측한다. 탄생 전에 호르몬이 감소하는 것은 산모의 태반에서 분비되는 많은 양의 에스트로겐이 태아의 '시상하부-뇌하수체-생식샘 축'을 억제하는 것으로 본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무뇌증이 있는 태아도 임신 34주차까지 호르몬 분비를 포함한 모든 발달이 정상적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 후부터는 정상 태아에서 관찰되는 막 자라나는 어린 여포들이 관찰되지 않는다. 이를 통해 태아의 호르몬 분비는 임신 7~8개월까지는 산모의 태반과 태아의 자궁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그 후부터는 뇌와 연결된 '시상하부-뇌하수체-생식샘 축'의 작용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다. 탄생의 순간 여아의 에스트로겐 수치는 거의 바닥 상태다. 에스트로겐이 이렇게 부족한 상태는 약 6~10일 정도 계속되다가 다시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한다. 에스트로겐 부족 상태가 시상하부로 음성 되먹임되어 다시 왕성하게 호르몬을 분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상하부-뇌하수체-생식샘 축'이 활성화된 것이자 미니 사춘기의 시작이기도 하다. 여아의 미니 사춘기는 남아의 미니 사춘기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 남아의 미니 사춘기가 테스토스테론, 여포자극호르몬, 황체호르몬이 모두 피크인 상태로 3개월을 보내는 것인데 비해, 여아의 미니 사춘기는 매우 높은 여포자극호르몬과 적당한 황체호르몬이 분비되는 상태에서 에스트로겐이 약 1.5개월 간격으로 파도처럼 높아졌다 낮아졌다를 반복한다. 이러한 미니 사춘기는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까지 지속된다. 미니 사춘기의 에스트로겐 파도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남아의 미니 사춘기는 고환과 음경의 크기가 늘어나고 생식기능이 발달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여아의 미니 사춘기는 아직까지 베일에 싸여있다. 이것이 유선과 자궁을 자극하여 크기를 키울 것이라는 가설을 증명하려고 노력한 과학자들이 있었으나 모두 실패했다. 미니 사춘기 기간 동안 가슴의 크기와 자궁 길이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이 에스트로겐 파도가 여포의 성숙과 위축의 주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과학자들은 미니 사춘기를 '기회의 창'이라고 칭한다. 이 시기가 '시상하부-뇌하수체-생식샘 축'의 결함을 발견하고 치료할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시상하부-뇌하수체-생식샘 축'은 닫히고 10년 후 사춘기가 시작되어 다시 활성화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미니 사춘기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이 밝혀진다면 발달 지연이나 성장에서 나타나는 여러 장애들에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5-05-08 16: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