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여자 친구가 앉아서 소변 눌 것을 강요했다는 남성 사연이 전해졌다. 지난 4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여자 친구가 결혼 후 집에서는 앉아서 소변을 보라는데 별거 아닌가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A씨는 "여자 친구 집에 가끔 놀러 가면 앉아서 소변을 보라고 하더라"라며 "몇 번은 그렇게 했는데 뭔가 불편했다. 대변 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서서 보면 안 되냐고 했더니 절대 안 된다더라. 엄청 진심이다. 서서 소변을 누면 그 소변에 있는 균이 칫솔에 튄다더라. 그래서 여자 친구의 의사를 존중해 그녀의 집에서는 몇 번 앉아서 소변을 눴다"고 털어놨다. 불편함을 참지 못한 A씨는 결국 여자 친구 집에 방문하면 화장실에 가지 않는다고. 그는 "저번엔 서 있는지 앉아 있는지 문 열어서 보더라. 그래서 여자 친구 집에서 놀 땐 화장실에 안 간다. 아래에 있는 상가에 내려가서 볼일 보고 온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저 혼자 사는 집에서는 당연히 서서 소변보고 직접 청소도 한다. 결혼하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화장실이 2개 있어서 각자 쓰는 게 아니라면 꼭 앉아서 소변을 보라더라. 이 정도는 (결혼을) 고민할 건더기도 아닌가?"라고 의견을 물었다. 해당 사연에 누리꾼들은 "그냥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아라" "나중엔 냄새난다고 집에서 볼일도 못 보게 할 듯" "변기 한번 안 닦아 본 사람이 말이 많다" "앉아서 볼일 보는 게 뭐 어렵다고" 등의 반응을 보였다. gaa1003@fnnews.com 안가을 기자
2024-09-06 07:39:44[파이낸셜뉴스] 가수 장윤정이 남편 도경완을 향해 앉아서 소변을 봤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지난 1일 방송된 E채널 '마법의 성'에서는 남자들의 소변 보는 자세를 놓고 설전이 오갔다. 방송에서 장윤정은 "우리 경완씨에게 변기에 앉아서 소변을 봐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이에 도경완은 "나 서서 볼래! 나는 왜 앉고 아들은 서서 싸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성교육 강사 이시훈은 "남자 아이들에게 앉아서 소변 보는 게 편하냐고 물어보면 불편하다고 답한다. 남자의 요도가 길고 꺾여 있는데, 앉아서 소변을 보면 꺾인 요도가 한 번 더 꺾인다. 그래서 잔뇨 증상이 생길 수 있다. 청소년기에는 서서 소변을 보는 걸 권장한다”고 설명했다. 위생상 좋지만 건강상으로는 큰 차이 없어 여성은 변기에 앉아서, 남편은 서서 소변을 보는 게 당연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최근 위생상 좋지 않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며 앉아서 소변을 보는 남성들이 증가하고 있다. 남성이 서서 소변을 보면 변기 주변으로 소변이 많이 튀는 건 사실이다. 일본 라이온사 실험에 따르면 남성이 하루 동안 서서 소변을 볼 때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이 약 2300방울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변이 튀는 범위도 넓었다. 일본 기타사토환경과학센터 연구에 의하면 바닥 반경 40cm, 벽은 30cm 높이까지 소변이 튀었다. 한편, 앉아서 소변을 보는 습관이 남성 건강에 좋은지에 대한 여부는 전문가마다 의견이 다르다. 남성의 요도가 휘어져 있어서 잔뇨감이 생길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남성의 요도는 여성보다 길이가 길며 ‘S’자 모양을 하고 있다. 때문에 남성이 앉아서 소변을 보면 요도의 S자 모양이 더 구부러져 소변이 나오기 어려워 잔뇨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위생을 지키는 대신 건강은 놓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다만 앉아서 소변을 보는 것이 건강에 좋은 남성도 있다. 전립선비대증, 요도협착증, 방광염 등 배뇨 장애로 인해 방광 수축 능력이 약해진 남성이라면 앉은 상태에서 소변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서서 소변볼 때와 달리 앉는 자세는 골반과 척추 근육을 완전히 이완시켜 소변 배출이 더 쉽다. 네덜란드 라이덴대 메디컬센터 연구진은 "앉아서 힘을 주면 복압이 올라가 경직된 골반 근육이 잘 이완된다"고 설명했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8-04 11:31:37건강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하루에 2리터 정도의 소변을 만든다. 보통 방광의 용량이 300~400cc이기 때문에 하루에 5번 정도 소변을 보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상적인 횟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비교할 필요는 없지만, 평소보다 횟수가 잦아진다면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남성은 소변을 앉아서 보는 게 좋을까? 서서 보는 게 좋을까? 대구 코넬비뇨기과 이영진 원장은 남성의 경우 소변을 서서 보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고 밝혔다. 이 원장은 “남성의 요도는 일반적으로 20~25cm의 S자 구조로 되어 있다”며 “서서 소변을 보면 S자 형태의 요도가 잡아 당겨져 직선 형태로 되어 소변 배출에 용이하고 시원하다”고 말했다. 이어 “엉덩이에 압박되지 않을 정도로 음경을 가볍게 당기는 것이 좋다”며 “소변을 다 본 후에는 꼭 털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변을 본 후 털어줘야 하는 이유에 대해 “요도에 소변이 조금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간혹 바지에 소변이 묻는 경우는 소변을 털지 않아서가 아니라 방광에 남아 있는 소변의 영향인 것으로 나타났다. 바지를 젖지 않게 하는 방법에 대해 이 원장은 “소변을 다 봤을 때쯤 방광과 요도를 연결하는 괄약근을 조여 줘야한다”며 “괄약근을 조이면 요도 내에 음압을 형성하고, 조여진 괄약근을 풀면 방광에 남아 있는 잔뇨까지 깔끔하게 배출된다”고 설명했다. 잔뇨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남성들이 많고, 바지에 묻으면 위생적으로도 보기가 좋지 않다. 또한, 잔뇨로 인해 균이 증식하거나 염증 발생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방광에 있는 잔뇨를 잘 제거해야 한다. 끝으로 이 원장은 서서 소변을 볼 때 바닥에 튀지 않는 방법은 “파리 그림을 조준해서 소변을 보거나 파리 그림이 없다면 물 표면에서 5cm 위를 향해 발사하는 것이 좋다”라고 조언했다. 한편, 여성은 요도가 2~3cm의 직선 형태로 되어 있어 자세와 관계없이 소변 배출에 용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hyuk7179@fnnews.com 이혁 기자
2019-01-24 16:42:01김병준 변호사가 소변을 앉아서 본다고 돌발 고백했다. 최근 진행된 KBS 2TV ‘퀴즈쇼 사총사’ 녹화에는 ‘풀하우스’의 인연으로 맺어진 4총사 오한진 박사, 김병준 변호사, 왕혜문 한의사 그리고 역학자 조규문이 함께 출연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날 김병준 변호사는 ‘김병준 씨가 공처가라고 하시던데?’라는 말에 “(내가) 나이 들어서 애를 늦게 낳다”며 “조금 철이 든 다음 애를 나니, 미운 게 없다”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공개했다. 이어 “아내가 아침에 눈치껏 밥 차려주면 먹고, 안주면 그냥 나온다”며 “집에서 소변도 앉아서 본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특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반응을 보인 MC 김준호에게 “(아내에게) 맞아봐. 맞아보면 앉아서 보게 된다”고 이유를 설명해 스튜디오는 웃음바다가 됐다. 한편 김병준 변호사의 돌발 고백은 30일 오전 8시10분에 방송되는 ‘퀴즈쇼 사총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파이낸셜뉴스 스타엔 victory@starnnews.com김지이 기자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starnnews.com
2013-06-30 08:02:50박정학과 류승수가 소변문제로 대립했다. 23일 방송된 MBC 일일시트콤 ‘엄마가뭐길래’에서는 극중 박정학이 박미선의 강압에 못 이겨 류승수를 찾아가는 장면이 그려졌다. 이날 “저 글은 잘 써지나?”라고 어렵게 말문을 연 박정학은 “혹시 볼일을 서서보나?”라며 “앞으로는 앉아서 해결해주게”라고 본심을 드러냈다.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던 류승수는 “소변을 왜 여자처럼 앉아서 쌉니까?”라며 “말도 안돼요”라고 고개를 저었다. 깔끔하다는 이유로 그렇게 해왔던 박정학은 “한 번 해보면 편하고 괜찮아”라며 “내 얼굴봐서라도 부탁해”라고 사정사정 부탁했다. 이에 “우린 남자에요”라고 쐐기를 박은 류승수는 “남자는 어렸을 때부터 서서 누도록 훈련을 받는데 그걸 왜 바꿔요”라며 “형님도 서서 누세요”라고 확고하게 의지표명을 했다. 분명 박미선과 박서형(김서형 분)의 문제로 일이 커질 것을 예상한 박정학은 “우린 집안 대대로 다 앉아서 쌌어”라며 “어떻게 좀 안되겠나?”라고 분란을 막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다. “차라리 앉아서 잠을 자라고 하세요”라고 소리친 류승수는 “싸는 문제는 좀 그렇잖아요”라고 헛웃음을 지었다. 한편 박새론(김새론 분)은 어른이 되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아무것도 타지 않은 커피를 마시는 게 진정한 어른이지”라고 귀여운 해결방안을 찾았다. /파이낸셜뉴스 스타엔 soarhi@starnnews.com강혜인 기자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starnnews.com
2012-10-23 20:52:31[파이낸셜뉴스] 요실금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방광에서 소변이 새어나와 위생적·사회적 불편을 발생시키는 질환이다. 이 질환은 노인의 건강과 삶의 질을 심각히 떨어뜨려 질환 자체의 치명성보다 노인의 사회적 참여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암(social cancer)’이라고도 불린다. 23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60세 이상 요실금 진료 인원은 약 17만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여성이 76%, 13만여명으로 집계됐고 남성은 4만여명에 이른다. 하지만 환자들이 증상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해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많은데, 환자의 약 25%만 의료기관을 찾는다는 보고도 있는 것으로 미뤄 실제 환자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 온종합병원 요실금센터 김지연 과장(산부인과전문의)는 “요실금은 우리나라 여성의 40%가 경험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성 환자 수가 남성의 수를 압도하는 질환”이라며 “원인은 다양하지만 자연 분만 후 골반 근육이 약화되어 발생하는 경우가 많으며, 노인의 경우에는 방광 근육의 수축력이 저하돼 발생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요실금 진단은 우선 병력을 듣는 게 중요하다. 요실금이 발생하는 상황과 동반된 빈뇨, 야간뇨, 절박뇨, 약뇨, 요 주저, 잔뇨감 등 각종 하부 요로증상과 함께 출산력, 수술력, 당뇨, 신경 질환의 유무를 확인해야 한다. 환자의 방광에 적당히 소변이 차 있는 상태에서 환자를 검사대에 눕혀 실시하는 신체검사나 소변 검사를 통해 증상이 비슷한 요로 감염 여부를 감별해야 한다. 또 패드를 착용한 후 일정 시간 동안 소변이 새는 양을 측정하기도 한다. 요실금의 치료효과를 높이려면 골반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골반강화 운동에는 우선 케겔 운동법이 있다. 소변을 참을 때처럼 질 근육을 조였다 풀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1940년대 초 미국의 산부인과 의사 아놀드 케겔이 창안한 요실금 치료운동법으로, 골반 밑 근육을 조였다 풀었다 하기를 반복함으로써 괄약근을 강화시켜 소변이 쉽게 새어 나오지 못하게 한다. 구체적인 케겔 운동 방법으로 △소변을 참을 때를 연상하며 질을 1초 동안 수축했다가 긴장을 푸는 것을 반복한다 △하루에 20회부터 시작해서 점차 횟수를 늘려가는 이 운동을 서거나, 앉아서, 누워서 등 다양한 자세에서 틈틈이 하는 게 효과적이다. 다리를 어깨 너비로 벌리고 허리를 곧게 편 상태로 엉덩이를 뒤로 빼면서 천천히 무릎을 굽히는 스쿼트 운동도 요실금 치료에 효과적이다. 이 운동 시 무릎이 발끝보다 앞으로 나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10∼15회씩 3세트 반복한다. 스쿼트 외에도 브릿지, 런지 등의 운동을 통해 골반 근육을 단련할 수 있다. 요가, 근력 운동을 실천하는 것도 요실금 치료와 예방에 도움 된다. 특히, 플랭크, 다운워드 도그, 코브라 자세 등의 요가 자세는 방광 통제력을 향상시키는 데에도 좋다.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워 무릎을 세운 후 엉덩이를 들어 올리는 브릿지 운동이 요실금 개선에 도움이 된다. 브릿지 운동의 정확한 자세는 바닥에 누워 무릎을 세우고 발을 골반 넓이로 벌린다. 이어 복근과 엉덩이에 힘을 준 상태로 엉덩이를 들어 올려 5초간 자세를 유지한 후 천천히 엉덩이를 내린다. 이 운동 역시 10∼15회씩 3세트 되풀이하면 된다. 온종합병원 요실금센터 김재식 교수(전 가톨릭의대 인천성모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요실금은 우선 방광의 수축력을 감소시키거나 요도의 압력을 증가시키는 약물 처방과 함께 골반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이나 전기 자극 치료를 하게 된다”고 말하고 증상이 심할 경우 TOT(요도 슬링 수술) 등 수술치료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도를 지탱하고 괄약근 기능을 강화시켜 요실금을 치료하는 TOT는 수술 후 90% 이상의 환자에서 요실금 증상이 완전히 사라지거나 현저히 호전된다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보건복지부는 노인들이 적기에 요실금을 치료받을 수 있도록 관련 의료비와 의료기기 사용을 지원하는 ‘요실금 치료 지원 사업’을 실시하기로 하고 공모를 통해 시·군·구별 수요를 고려해 40개에서 80개의 시·군·구를 지원할 계획이다. 복지부는 이 사업을 통해 60세 이상 요실금 진단자 중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연 100만 원 범위 내에서 검사비, 약제비, 물리치료비, 수술비 등 요실금 관련 의료비 본인부담금 등을 지원한다. roh12340@fnnews.com 노주섭 기자
2024-06-23 17:40:56[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때는 조선 1720년 음력 6월, 경종이 임금으로 즉위했다. 경종은 동궁에 있을 때부터 병약하고 걱정과 두려움이 많아 우울감도 심했다. 왕에 오를 당시까지도 적대 관계에 있는 노론과 경종을 옹호하는 소론의 당쟁이 극에 달해 화가 심했다. 경종은 즉위 이후에 결국 화기(火氣)가 위로 올라와서 때로는 정신이 혼미한 증상까지도 나타났다. 내의원에서는 계속해서 우황육일산(牛黃六一散)과 곤담환(滾痰丸) 등 아래로 하리(下利)시키는 처방을 복용하였으나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경종 즉위 2년(1722년), 급기야 이공윤이 천거되어 약방에 들어가 왕의 병환을 살피게 되었다. 이공윤은 평소 강한 약으로 하기시켜서 치료하는 처방을 선호했다. 그는 도인승기탕(桃仁承氣湯)과 시평탕(柴平湯)에 대황, 지실 등을 넣어 처방했다. 심지어 시평탕 가감방은 계묘년(1723년) 말부터 다음 해 봄까지 처방되어서 거의 백 십여첩을 올렸다. 이공윤은 성질이 광폭하기까지 해서 누구도 처방에 토를 달지 못했다. 1724년 음력 7월, 여름이 되면서 경종은 식욕이 떨어져서 수라상마저 거부했다. 의관들은 날마다 입진해서 환후를 살폈다. 음력 8월 2일, 경종은 오한발열(惡寒發熱)의 징후가 나타났다. 내의원 약방에서는 급히 시진탕(柴陳湯)을 지어 올렸다. 그러나 경종의 한열증은 조금씩 악화되었다. 특히 밤이 되면 심해졌다. 경종의 체격은 외형(外形)은 왕성하나 비위(脾胃)가 약한 체질이어서 이공윤의 처방을 견디질 못한 것이다. 그러면서 수라를 들지 못한 날 수가 길어지면서 마침내 한열의 증세가 발생하였다. 그런데도 도제조 이광좌는 오히려 대비마마의 병환이 나은 것도 이공윤 때문이라며 치켜세우면서 논상(論賞)을 청하기도 했다. 약방에서는 다시 승양산화탕(升陽散火湯), 시호백호탕(柴胡白虎湯) 등을 지어 올렸다. 의관들은 학질(瘧疾)로 진단했다. 그러나 한열증은 잡히지 않고 간혹 설사까지 했다. 이렇게 거의 한 달이 지났다. 음력 8월 19일, 약방에서는 경종이 피로함을 호소하기에 육군자탕(六君子湯)을 올렸다. 육군자탕은 기가 허하고 담(痰)이 성하여 온몸이 노곤하면서 식욕이 없고 때로 메스껍고 토하며 설사를 하는데 쓰는 처방이다. 지금까지 실증(實症) 처방을 했다면 이제 허증(虛症) 처방으로 바뀐 것이다. 다음 날인 음력 8월 20일 밤에 경종은 가슴과 배가 조이듯이 아파졌다. 대비전에서는 걱정이 많았다. 대비전에서는 “주상의 복통은 벌써 며칠째 수라를 들지 못한 까닭일 것이다. 요즘 가을 게장이 나오니 수라간에서 게장과 감을 올리도록 하라.”라고 명했다. 당시 게장은 가을철 별미였다. 경종은 짭조름한 맛의 게장을 꽤 많이 먹고 나서 이어서 후식으로 감까지 먹었다. 그 소식을 들은 대비전에서는 기뻐했다. 그런데 그날 밤 새벽, 게장과 감을 먹은 경종은 심한 복통과 설사를 했다. 복통은 잠시 멈추는가 싶다가도 장이 끊어지듯이 아프면 여지없이 수설(水泄)을 폭포수처럼 쏟아 냈다. 얼마나 심하게 설사를 하던지 항문이 빠져나오는 듯 고통스러웠다. 음력 8월 21일 아침, 약방에서는 경종의 극심한 복통과 설사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무엇보다 그 이유가 전날 밤에 대비전으로부터 게장과 함께 감이 진어된 것 때문인 것을 알고 무척 놀랐다. 약방의 한 의관이 “의서에 보면 감과 게를 함께 먹으면 복통을 일으키고 설사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기운이 차갑기 때문입니다. 복통과 설사가 있는데, 설상가상 여기에 게와 감이라니요?”라고 했다. 그러나 누가 게와 감을 올렸는지, 상한 게는 아니었는지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약방에서는 급히 두시탕(豆豉湯)과 곽향정기산(藿香正氣散)을 진어하도록 청하였다. 모두 곽란(癨亂)을 치료하는 처방들이다. 식중독을 의심한 것이다. 그러나 다음날까지도 복통과 설사는 잡히지 않고 심해졌다. 약방에서는 다시 황금탕(黃芩湯)을 지어 올렸다. 황금탕은 급성장염에 쓰는 처방이다. 음력 8월 23일, 경종은 설사가 그치지 않고 정신까지 혼미하고 기운이 없었다. 약방에서는 복용 중인 황금탕을 중지하고 인삼속미음(人蔘粟米飮)을 올렸다. 인삼속미음은 메좁쌀에 인삼 달인 물을 넣어 끓인 죽으로 병약자의 소화를 돕고 기운을 나게 하는 음식이다. 그 날은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경종의 환후는 위태롭고 맥은 무력했다. 그날 밤 새벽 2시경에도 약방에서 입진해서 다시 인삼차를 올린 후 수라를 관장하는 주원(廚院)에서 숙직을 했다. 주원에서 숙직을 한 이유는 함부로 수라를 올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감시 목적이었다. 음력 8월 24일, 날이 밝자 오전 10시경 의관들이 다시 서둘러 입진했다. 도제조 이광좌와 제조 이조가 인삼속미음을 진어하기를 청했지만 경종은 대답이 없었다. 이에 연잉군이 재차 “전하, 미음을 좀 드시옵소서.”라고 했다. 그러자 경종이 비로소 고개를 들어 인삼속미음 한 숟가락을 간신히 먹었다. 연잉군은 경종의 이복동생으로 훗날 영조왕이 된다. 제조 등이 물러 나와 여러 의관들과 앞으로 어떤 처방을 쓸지 논의를 했다. 이때 이공윤이 “주상의 증상에 인삼을 쓰면 안됩니다. 계지마황탕(桂枝麻黃湯) 2첩만 진어할 것 같으면 설사는 금방 그치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계지마황탕은 원래 상한(傷寒)에 쓰는 처방이지만 그치지 않는 손설(飱泄, 음식이 소화되지 않고 나오는 설사)에도 사용되기도 한다. 약방에서는 이공윤이 하도 자신있게 말하기에 인삼차와 인삼속미음을 중지하고 계지마황탕을 달여 올렸다. 저녁 6시경에 의관이 입진을 하고서는 “성상의 환후가 아침에 비교해 더욱 위급합니다.”라고 알렸다. 모든 신하들이 서둘러 희인문으로 모여들었다. 도제조와 제조 모두 입진을 해서 보니 경종은 내시에게 몸을 기대어 힘들게 앉아 눈을 부릅뜨고 있지만 힘겨워 보였다. 도제조 이광좌가 “환후는 어떠하시옵니까?”하고 문후를 올렸지만 경종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더니 스르르 눈을 감으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이때 연잉군이 울부짖으면서 “인삼과 부자를 급히 쓰도록 하라!”하고 소리쳤다. 이광좌는 인삼만을 달여서 급히 올렸고 경종은 천천히 몇 모금 삼켰다. 바로 그때 갑자기 이공윤이 들어 오더니 이광좌에게 귀엣말로 “내가 앞서 인삼을 쓰지 말라고 하지 않았소. 내가 처방한 계지마황탕을 어서 진어하도록 하시오. 또다시 인삼차를 올리게 되면 기(氣)가 돌지 못하고 막히게 될 것이오.”라고 화를 내듯이 말했다. 귓가에 대고 하는 말이었지만 소리가 커서 주위의 모든 신하들에게 들렸다. 그러자 연잉군이 어이가 없어 하면서 이공윤에게 “사람이란 본시 자기의 의견을 세울 때와 장소가 있기는 하나, 지금이 어떤 때인데 자기의 의견만을 고집하면서 인삼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요?”하고 언성을 높였다. 그런데 잠시 후 경종의 눈동자가 또렷해지면서 다소 안정되고 콧등이 다시 따뜻해졌다. 인삼차 때문이었을까? 연잉군은 다행스럽게 생각하면서 “나는 의약의 이치를 알지 못하나, 그래도 인삼과 부자가 양기를 능히 회복시키는 것만은 알고 있소이다.”라고 하였다. 이공윤은 왕손인 연잉군의 말이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한숨을 뒤로 하고 물러났다. 밤 10시경에 임금의 기운과 숨소리가 다시 미약해졌다. 이광좌가 인삼차를 올렸으나 경종은 스스로 마시지 못해 의관이 숟가락으로 떠서 입안에 넣었다. 그러나 삼키지를 못하고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의관이 경종의 코에 새의 깃털을 대어 보니 실오라기 같은 떨림이 남아 있었다. 맥은 곧 끊어질 듯한 가는 실처럼 느껴졌다. 풍전등화와 같았다. 밤이 깊었다. 새벽 2시경, 경종은 즉위한 지 4년 만에 환취정에서 승하했다. 내시가 지붕에 올라가 경종의 속적삼을 잡고 흔들면서 ‘복복복(復復復)’하고 세 번 외치면서 혼을 달래며 임금의 훙서(薨逝)를 온 천하에 알렸다. 저 멀리 밤하늘에 유성이 흘렀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비전에서 게장과 감을 함께 올려서 경종을 독살했다는 설이 퍼졌다. 그러나 이는 소론에 의한 이간계였다. 또한 연잉군에 의한 인삼 독살설 또한 퍼졌으나 신빙성이 높지 않다. 연잉군은 인삼을 최고의 약재로 여겼을 뿐이다. 연잉군은 훗날 영조왕이 된 이후에도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엄청난 양의 인삼을 복용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경종은 학질을 치료하다가 위장에 탈이 난 상태에서 ‘상한’ 게장을 먹고서 식중독에 걸려 사망했다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해 보인다. 경종이 연잉군의 인삼의 복용을 중지하고 이공윤의 계지마황탕을 지속적으로 복용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까? 아무도 모를 일이다. * 제목의 ○○○은 ‘식중독’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조선왕조실록> ○ 景宗 4年 甲辰 7月 20日 辛酉. 上有疾不豫, 藥房連日問安. (경종 4년 갑진 1724년 음력 7월 20일. 임금이 병환이 있어 편치 않으므로 약방에서 날마다 문안하였다.) ○ 景宗 4年 甲辰 1724年 8月 2日. 上疾連日彌留, 厭進水剌, 至是, 又有寒熱候, 藥房入診議藥, 進柴陳湯. 上自在東宮, 積憂畏, 遂成難狀之疾, 歷歲沈痼, 火熱上升, 有時昏迷. 連服局方所進牛黃六一散, 滾痰丸等下利之劑, 猶未效. 士人李公胤, 性狂妄, 業醫有名, 而其術大抵以峻利爲主. 壬寅後, 薦入藥房侍疾, 公胤自言, 以桃仁升氣湯數服, 大蕩滌之, 上疾可立愈, 試之無驗. 公胤猶恣睢自衒, 更議柴平湯, 以大黃, 枳實推盪之材爲君藥, 自癸卯以後, 至今春連進百數十貼. 上雖體膚外旺, 而脾胃內虛, 厭膳日久, 遂發寒熱之症. 李光佐不能覺公胤之妄, 反以大妃疾愈, 歸議藥功於公胤, 至請論賞, 識者惜之. (경종 4년 1724년 음력 8월 2일. 임금의 병환이 계속 여러 날 동안 낫지 않아 수라를 올리는 것마저 싫어하였는데, 이에 이르러서는 또 한열의 징후가 있어 약방에서 입진하고 약을 의논하여 시진탕을 지어 올렸다. 임금이 동궁에 있을 때부터 걱정과 두려움이 쌓여 마침내 형용하기 어려운 병을 이루었고, 해를 지낼수록 깊은 고질이 되었으며, 더운 열기가 위로 올라와서 때로는 혼미한 증상도 있었다. 그래서 계속 국방에서 올린 우황 육일산과 곤담환 등 하리의 약제를 복용하였으나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그런데 사인 이공윤은 성질이 광망하였으나 의업으로 명성이 있었는데, 그의 의술은 대체로 준리를 위주로 하였다. 임인년 이후로 천거되어 약방에 들어가 임금의 병환을 모시었는데, 이공윤이 스스로 말하기를 ‘도인승기탕을 자주 복용하여 크게 탕척해 내면 임금의 병환이 금방 나을 수 있다.’고 하여 그것을 시험해 보았지만 효험이 없었다. 그런데도 이공윤은 오히려 방자하게 노기 띤 눈으로 보면서 스스로 의술을 자랑하며, 다시 시평탕을 의논하면서 대황, 지실 등 추탕하는 재료로 군약을 삼아 계묘년에 시작하여 올봄에 이르도록 계속하여 1백 수십 첩을 올렸다. 그러자 비록 임금의 체부의 외형은 왕성하나 비위 등 내장이 허하였고, 음식을 싫어하는 날수가 오래 되어 마침내 한열의 증세가 발생하였다. 그런데도 이광좌는 이공윤의 망령됨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대비의 병이 나은 것도 그 의약의 공을 이공윤에게 돌리고 논상을 청하기까지 하였으니, 식자가 이를 애석하게 여겼다.) ○ 景宗 4年 1724年 8月 3日. 夜, 上寒熱猝劇, 藥房都提調李光佐等入診於大造殿寢室, 翌朝議進升陽散火湯. (경종 4년 갑진 1724년 음력 8월 3일. 밤에 임금이 한열이 갑자기 심하여 약방 도제조 이광좌 등이 대조전 침실에 입진하고, 이튿날 아침에 의논하여 승양산화탕을 지어 올렸다.) ○ 景宗 4年 1724년 8月 8日. 上疾, 寒熱不止, 藥房議進柴胡白虎湯, 三提調始直宿本院. (경종 4년 1724년 음력 8월 8일. 임금이 한열이 그치지 않아 약방에서 의논하고 시호백호탕을 지어 올리고, 세 제조가 처음으로 본원에서 직숙하였다. ○ 景宗 4年 1724年 8月 16日. 上疾, 寢膳日減, 小便漸短, 藥房議藥, 進柴苓湯. (경종 4년 1724년 음력 8월 16일. 임금이 병환으로 침선이 날로 줄어들고 소변이 점점 단축되므로 약방에서 약의 조제를 의논하고 시령탕을 올렸다.) ○ 景宗 4年 1724年 8月 19日. 藥房入診, 更議藥, 進六君子湯. 始慮上候虛憊也. (경종 4년 1724년 음력 8월 19일. 약방에서 입진하여 다시 약의 처방을 의논하고 육군자탕을 올렸으니, 비로소 임금의 환후가 허하고 피곤함을 염려하였다.) ○ 景宗 4年 1724年 8月 20日. 夜, 上胸腹絞痛, 招醫官入診. 藥房提調, 詣閤門外問安. (경종 4년 1724년 음력 8월 20일. 밤에 임금이 가슴과 배가 조이듯이 아파서 의관을 불러 입진하도록 하고, 약방 제조가 합문 밖에 나아가 문안을 하였다.) ○ 景宗 4年 1724年 8月 21日. 藥房入診. 諸醫以上昨日進蟹醬, 繼進生柿. 是醫家所忌, 請進豆豉湯及藿香正氣散. (경종 4년 1724년 음력 8월 21일. 약방에서 입진하고 여러 의원들이 임금에게 어제 게장을 진어하고 이어서 생감을 진어한 것은 의가에서 매우 꺼려하는 것이라 하여, 두시탕 및 곽향정기산을 진어하도록 청하였다.) ○ 景宗 4年 1724年 8月 22日. 上腹痛泄瀉益甚, 藥房入診, 進黃芩湯. (경종 4년 1724년 음력 8월 22일. 임금의 복통과 설사가 더욱 심하여 약방에서 입진하고 황금탕을 지어 올렸다.) ○ 景宗 4年 1724年 8月 23日. 上泄候不止, 昏困特甚, 藥房入診, 停湯藥, 連進人參粟米飮. (경종 4년 1724년 음력 8월 23일. 임금의 설사의 징후가 그치지 않아 혼미하고 피곤함이 특별히 심하니, 약방에서 입진하여 탕약을 정지하고 잇따라 인삼속미음을 올렸다.) ○ 景宗 4年 1724年 8月 24日. 雨雪. 上候困殆益甚, 脈低無力. 四更, 藥房入診, 進參茶, 退而請移直廚院, 巳刻復入診. 上自有疾以來, 諸臣問聖候, 上輒有酬答, 至是, 玉聲漸微. 都提調李光佐、提調李肇, 勸進粥飮, 皆不答, 世弟起而請之, 上始擧首進米飮. 提調等退與諸醫議藥, 李公胤揚言: “參茶不可用. 若進桂枝麻黃湯二貼, 泄瀉可立止.” 遂煎入進服. 酉刻醫官入診, 退言: “症候比朝益危急.” 諸臣疾趨入熙仁門, 自內促提調入診, 李光佐等入侍, 上倚內侍, 眼深視瞋. 光佐問候, 上不答, 世弟泣曰: “急用參附.” 光佐進參茶, 上再進服. 李公胤謂光佐曰: “毋多用參茶. 進吾藥而復進參茶, 則氣不能運旋也.” 世弟曰: “人固有立己見處, 此何等時, 必欲立己見, 使不得用參劑耶?” 少頃, 上眼視稍定, 鼻梁復溫. 世弟曰: “予不解醫理, 尙知參附能回陽矣. 昨日用參旋停, 想必以公胤言持難也.” 二更, 上氣息復微, 光佐進參茶, 上己不能飮, 醫官以匙灌之. 光佐請祈禱廟社, 仍涕泣言: “臣愚迷昧症候, 藥物多失宜, 罪當萬死.” 世弟曰: “聖上於余, 情是兄弟, 義兼父子, 侍疾無狀, 遽至於此, 更何言哉? 祈禱雖過時, 宜速擧行.” (경종 4년 1724년 음력 8월 24일. 비와 눈이 내렸다. 임금의 환후가 피곤하고 위태함이 더욱 심하고 맥이 낮아져서 힘이 없었다. 4경에 약방에서 입진하여 삼다를 올리고 물러 나와서는 주원으로 옮겨서 입직하기를 청하였으며, 사각에 다시 입진하였다. 임금이 병환이 있은 뒤로 여러 신하들이 성후를 문안하면 임금이 번번이 응수하여 대답을 하였는데, 이에 이르러서는 임금의 음성이 점점 미약하여졌다. 도제조 이광좌와 제조 이조가 미음을 진어하기를 권하였으나 모두 응답하지 않았으며, 세제가 일어나서 청하매 임금이 비로소 고개를 들므로 미음을 올렸다. 제조 등이 물러나와 여러 의원들과 약을 의논하였는데, 이공윤이 공언하기를, “삼다를 써서는 안된다. 계지마황탕 2첩만 진어할 것 같으면 설사는 금방 그치게 할 수 있다.”하므로, 마침내 다려 올려 복용하였다. 유각에 의관이 입진하고 물러나와 말하기를, “환후의 증세가 아침에 비교해 더욱 위급합니다.”하자, 모든 신하들이 희인문으로 달려 들어갔고, 대내로부터 제조의 입진을 재촉하여 이광좌 등이 입시하였는데, 임금이 내시를 의지하고 앉아서 눈을 몹시 부릅뜨고 보았다. 이광좌가 문후를 하였으나 임금이 대답하지 않자, 세제가 울면서 말하기를, “인삼과 부자를 급히 쓰도록 하라.”하였고, 이광좌가 삼다를 올려 임금이 두 번 복용하였다. 이공윤이 이광좌에게 이르기를, “삼다를 많이 쓰지 말라. 내가 처방한 약을 진어하고 다시 삼다를 올리게 되면 기를 능히 움직여 돌리지 못할 것이다.”하니, 세제가 말하기를, “사람이란 본시 자기의 의견을 세울 곳이 있긴 하나, 지금이 어떤 때인데 꼭 자기의 의견을 세우려고 인삼 약제를 쓰지 못하도록 하는가?”하였다. 조금 지나자 임금의 안시가 다소 안정되고 콧등이 다시 따뜻하여졌다. 세제가 또 말하기를, “내가 의약의 이치를 알지 못하나, 그래도 인삼과 부자가 양기를 능히 회복시키는 것만은 안다.”하였다. 어제 쓰던 삼을 바로 멈추었던 것은, 생각건대 반드시 이공윤의 말 때문에 미루었던 것 같다. 2경에 임금의 기식이 다시 미약하므로 이광좌가 삼다를 올렸으나 임금이 스스로 마시지 못하여 의관이 숟가락으로 떠서 넣었다. 이광좌가 종묘와 사직에 기도하기를 청하고 이내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기를, “신이 어리석고 혼미하여 증후에 어두워서 약물을 쓰는 데도 합당함을 잃은 것이 많았으니, 그 죄는 만번 죽어 마땅합니다.”하였고, 세제는 말하기를, “성상이 나에게 정으로는 형제이나 의로는 부자의 관계를 겸하였는데, 병환 중에 모시기를 잘하지 못하여 갑자기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는가? 기도는 비록 때가 지났으나 빨리 거행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하였다.) ○ 景宗 4年 1724年 8月 25日. 夜, 流星出昴星下, 又出井星上. 丑刻, 上昇遐于環翠亭, 內侍乘屋復, 乃擧哀. (경종 4년 1724년 음력 8월 25일. 밤에 유성이 묘성 아래에서 나왔으며 또 정성 위에서도 나왔다. 축각에 임금이 환취정에서 승하하니, 내시가 지붕에 올라가 고복을 하고 곧 거애를 하였다.) ○ 英祖 31年 5月 21日. 甲辰八月, 景廟違豫彌留, 水剌厭進之候漸加, 故宮中憂遑, 二十日御廚於水剌, 供蟹醬. 乃秋節新味, 故景廟以此多進水剌, 宮中皆歡喜. (영조 31년 1755년 음력 5월 21일. 갑진년 1724년 8월에 경묘께서 병환이 다 낫지를 않고, 수라를 들기 싫어하는 징후가 점차 더했기 때문에 궁중에서 근심한 나머지 20일에 어주에서 수라에 게장을 올렸었다. 이는 가을철 새로운 맛인데, 경묘께서 이 게장으로 수라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궁중에서 모두 기뻐하였었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4-03-20 17:22:58[파이낸셜뉴스] 변기에 앉아서 볼일만 보면 신원을 파악하고 대소변의 상태를 분석해 질병을 진단하는 변기가 있다. 이 변기를 발명한 미 스탠퍼드 의대 비뇨기의학과의 박승민 박사가 올해의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을 수상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하버드대 과학 유머 잡지 AIR(Annals of Improbable Research)는 하버드대에서 시상식을 열고 화학·지질학, 문학, 기계공학, 공공보건 등 10개 분야 수상자를 발표했다. AIR은 매년 노벨상 발표에 앞서 재미있고 기발한 과학 연구를 내놓은 연구진에게 ‘괴짜 노벨상’으로 불리는 이그노벨상을 수여해 왔다. 이그 노벨상은 노벨상을 패러디해 1991년 만들어졌다. 노벨상 발표 한 달 전 발표하는 ‘짝퉁 노벨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그 노벨상은 진짜 노벨상처럼 과학상, 문학상, 경제학상, 평화상 등을 수상한다. 노벨상에는 없는 수학상이나 환경보호상도 있다. 올해 공공보건 분야 수상자로 선정된 박 박사는 ‘스탠퍼드 변기’를 발명했다. 이 변기에는 2개의 센서(압력 센서, 모션 센서), 소변 검사지, 3개의 카메라(대변, 항문, 소변)가 장착돼 있다. 사용자가 대변 또는 소변을 보면 카메라가 대변 색과 크기, 소변량 등을 찍어 분석한다. 이를 통해 사용자의 건강 상태, 감염병 여부 등 10여개의 질병을 분석한다. 박 박사가 발명한 변기는 대변 모양을 시각적으로 분석해 암이나 과민성 대장증후군 징후를 찾아내고, 소변에 포도당이나 적혈구 등이 포함돼 있는지도 확인 가능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지문처럼 사람마다 형태가 다른 것으로 알려진 항문 모양으로 신원을 파악해 여러 사람이 사용할 경우에도 장기적인 추적 관찰이 가능하다. 박 박사는 영국 PA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종종 가장 개인적 공간으로 여겨지는 화장실은 우리 건강의 조용한 수호자가 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그노벨상 수상자들에게는 트로피와 함께 2000년대 초인플레이션을 겪을 당시 짐바브웨가 발행한 10조 짐바브웨 달러 짜리 지폐 1장이 상금으로 수여됐다.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이 지폐는 현재 1∼2만원 수준에 거래된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3-09-21 17:32:36[파이낸셜뉴스] 중장년층에서 많이 발생하던 허리디스크가 최근 젊은 층에서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서 일하거나 종일 서있는 직장인, 허리를 자주 사용해 일을 해야 하는 등 생활습관 때문이다. 23일 고려대 안산병원에 따르면 허리디스크는 추간판의 섬유륜이 약화돼 발생하는 질환이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잘 생길 수 있지만 유전적인 소인이나 습관, 외상 등의 영향으로 인해 어린 나이에도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젊은층에서는 외상, 사고 등으로 인해 갑자기 디스크가 파열되는 급성디스크가 많은 편이다. 주요 증상으로는 주로 엉덩이부터 다리까지 이어지는 좌골신경통과 다리 저림, 찌릿하게 다리로 뻗치는 방사통 등이 있다. 또 허리가 아프고 다리에 힘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치료는 크게 비수술적 치료와 수술적 치료로 나눌 수 있다. 보통 허리디스크 치료는 수술을 먼저 떠올리지만 환자의 70~80%는 발병 후 4~6주가 경과하면 수술을 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증세가 호전되기도 한다. 비수술적 치료법은 소염진통제와 근육이완제 등 약물치료와 물리치료, 스테로이드 약물을 디스크 탈출 부위에 주사하는 주사요법 등이 있다. 고려대 안산병원 신경외과 김범준 교수는 “발병 후 4~6주가 지나도 통증이 여전히 심한 환자는 수술을 고려해야 한다"며 "만약 발 처짐과 같은 운동신경 마비, 대소변을 보는 힘이 약해지는 배뇨장애 등의 증세가 있다면 조기에 수술적 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술은 미세현미경 또는 내시경을 통한 디스크절제술이 많이 시행된다. 평상시 구부정하게 앉거나 바닥에 양반다리로 오래 앉아있는 자세는 허리에 부담이 된다. 허리를 숙여 무거운 물건을 드는 동작도 좋지 않다. 무거운 물건을 들 때는 무릎을 구부려서 다리 힘을 사용하여 드는 게 좋다. 누워서 쉴 때는 무릎 밑에 베개를 받치는 것이 허리를 편하게 할 수 있다. 바닥 생활을 피하고 의자에 바르게 앉는 생활 습관이 도움이 된다. 운동도 중요하다. 하체를 바닥이나 운동기구에 고정하고 상체를 뒤로 들어 올리는 신전운동이 허리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이다. 복근 운동도 도움이 될 수 있는데 윗몸일으키기와 같이 허리의 반동을 많이 사용하는 것은 허리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무릎을 굽힌 채 상체를 들어 올리는 방식이 적절하다. 김 교수는 “잘 발달된 허리근육은 허리 관절의 부담을 줄여 디스크 예방에 도움이 된다”며 “다만 급성 통증이 있을 때에 무리한 운동은 금물이며 평소 통증이 없을 때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camila@fnnews.com 강규민 기자
2023-08-23 09:41:48[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옛날, 어느 겨울날 한 부인의 옆구리에 내종(內腫)이 생겼다. 내종이란 복부의 안쪽에 난 혹의 일종으로 배 안쪽에서 살덩이처럼 만져지면서 마치 아주 큰 종기처럼도 보였다. 부인의 남편은 고종사촌지간인 친척 의원에게 진찰을 부탁했다. 친척 의원은 벌써 몇몇 의원들이 치료에 실패했다는 소리를 들었던 바라 탐탁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촌 형님이 자신을 일부러 부른 것을 알기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친척 의원이 도착했다. 그곳에는 사촌 형님과 일가친척들이 모여 있었다. 형수의 병세를 물어보니 대소변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벌써 20일이 다 되었다고 했다. 창만(脹滿)도 심했는데, 특히 아랫배는 더 볼록했다. 더군다나 왼쪽 옆구리에 있는 장문혈 근처에는 주먹만 한 혹이 튀어나와 있었다. 의원이 손으로 혹을 만져 진찰을 하려고 하자 형수는 정신이 있는 듯 없는 듯 손사래를 치면서 손도 못 대게 했다. 형수는 숨을 쉬는 것도 힘들어 했다. 창만 때문인 것 같기도 했지만 폐장과 명치 부위에서 가래가 들끓은 듯했다. 의원이 한숨을 쉬면서 멍하니 보고 있자니 갑자기 형수의 아랫배 배꼽근처에서 ‘꾸룩~’하고 돼지 울음소리 같은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숨이 턱하고 막혔다. 덩어리진 가래가 올라오다가 숨길을 막는 듯했다. 형수는 가래를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고 컥컥거리면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의원은 어쩔 줄을 몰라했다. 이런 증상은 본 적이 없었기에 진맥을 할 엄두도 나지 않고 멀뚱거릴 뿐이었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내 이런 병증은 평생....”이라면서 나지막이 내뱉었다. 분명 독백이었으나 주위 사람들도 모두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형수의 괴증(怪症) 앞에서 의원의 넋이 나간 모습을 보고서는 주변의 친척들은 이 참담함을 견딜 수가 없어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촌 형님이 울먹이며 물었다. “자네. 형수는 어찌 되는 것인가? 대체 어떤 병증인가? 살릴 수는 있겠는가?” 그러나 의원은 “형님, 내 이런 병증은 지금껏 본적도 없고, 의서에서조차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찌 손쓸 방도가 있겠습니까. 형수님을 살릴 희망이 없습니다.”라고 답을 했다. 이 말을 들은 친척들은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분명 곡소리였다. 그때 가까운 친척으로 보이는 한 여인이 부인의 손을 잡고 울면서 한탄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형님, 이것이 뭔일이다요. 내가 그렇게 말렸건만, 그렇게 추운 날 차가운 대청마루에서 삼베옷만 입고 하루종일 솜을 타니 병이 나지 안 나겠소. 평소에도 냉증으로 고생을 하던 양반이 그렇게 추운 날 몸을 혹사시켰으니.... 흑흑~ 내 형님이 죽거든 볕이 드는 따뜻한 양지바른 곳에 묻어 드리리다. 죽어서는 냉증으로 고생하지 마시오. 아이고~ 아이고~”라고 하는 것이었다. 여인의 말을 듣고서는 의원은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 깜짝 놀랐다. ‘대소변을 오랫동안 보지 못하는 것은 장에 적취(積聚) 등이 있을 때 간혹 생길 수 있다. 그런데 어찌 이렇게 창만(脹滿)하면서 가래를 뱉어내지 못하고 싸늘함이 이리 극심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여인의 말이 옳구나. 참으로 옳구나. 이것은 냉적(冷積)이 분명하다. 소변을 보지 못한 것도 산기(疝氣)로 인한 것이었구나.’라고 생각했다. 냉적(冷積)은 냉증(冷症)이 오래돼서 쌓인 것을 말하고, 산기(疝氣)란 냉증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하복부가 켕기는 증상과 비뇨기질환을 통틀어 말하는 병증이다. 의원은 이제야 형수의 맥을 잡았다. 촌구맥은 미세(微細)하게 느껴지면서도 간간이 유력(有力)하고 현삭(弦數)했다. 맥을 보니 아직도 양기(陽氣)가 끊기지 않고 작은 불씨처럼 남아 있는 것으로 여겨졌기에 의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의원은 사내에게 “형님, 형수님을 살릴 수 있겠습니다. 형수님의 병은 분명 냉증(冷症) 때문입니다. 지금 이 방에 있는 화로에 있는 숯불을 가져와서 손을 덥힌 후에 뜨거워지면 그 손으로 형수님의 가슴을 계속해서 문질러 주십시오.”라고 했다. 남편은 의원의 말대로 덥혀진 손으로 아내의 흉골 가슴부위를 이리저리 문질러 주었다. 그랬더니 목에서 ‘꾸루륵~’하고 소리가 나는 것 같더니 가래와 거품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입안에 가득 찬 뭔가를 명주천으로 급히 집어서 빼내 보니 3~4촌 정도 되는 낫자루같은 누렇게 뭉친 가래였다. 형수는 전보다 좀 편하게 숨을 쉬는 것 같았는데, 아직 정신은 들지 않았다. 한 식경(食頃)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의원은 큰 쑥뜸을 가져다가 명치 아래에 있는 거궐혈에 뜸을 떴다. 가래소리는 조금씩 가라앉았고 정신이 조금 드는 듯 신음소리를 냈다. 의원은 다행스러워하면서 이제야 침을 놓을 생각을 했다. 날이 어두워져서 불을 밝히게 하고, 울고 있는 아이들에게 울음을 멈추게 한 후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서는 옛 침법을 따라 먼저 합곡을 보(補)하고 그 다음 태충, 삼음교, 해계를 사(瀉)하였다. 합곡과 태충은 사관혈로 막힌 기운을 뚫고자 함이고, 해계는 비위의 기운을 풀어주고 삼음교로 간비신(肝脾腎)의 기운을 동시에 다스리고자 한 것이다. 침을 놓고 나서 의원은 방금 전 형수의 손을 잡고 통곡을 했던 여인에게 부탁을 해서 작은 솥과 명주천 그리고 대파 한단과 굵은 소금을 준비해 오라고 했다. 여인이 부탁한 것들을 가져오자 의원은 대파의 흰뿌리 부분과 소금을 함께 섞어서 솥에 넣고 화로 위에서 살짝 노릇한 연기가 날 때까지 볶기 시작했다. 이것을 명추천으로 감싸서 배꼽과 아랫배에 찜질을 하게 했다. 찜질을 하는 도중에도 새로운 대파와 소금을 볶아서 식으면 바로 뜨거운 것으로 교체했다. 이 찜질법은 냉증으로 인한 제반 증상이나 냉증으로 인해 소변을 보지 못하는 전포증(轉脬證)을 치료하는 찜질법이다. 의서에는 총위법(蔥熨法, 파찜질법)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의원은 찜질을 충분하게 한 후에는 또다시 신궐(배꼽)과 아랫배에 있는 기해, 관원혈에 뜸을 떴다. 시간은 이미 한밤중을 지나 벌써 새벽이 되었다. “꼬끼오~ 꼬끼오~” 닭이 두번 울자 형수에게서 대소변이 일시에 쏟아져 나왔다. 의원은 가족들에게 옷을 새로 갈아입히게 한 후 급히 따뜻한 죽과 물 한 사발을 먹이고자 준비를 시켰다. 그리고 죽을 먹이려고 형수를 일으켜 세우려고 하자, 형수가 벌떡 일어나 놀라며 말하기를 “내가 왜 이렇게 누워 있습니까? 친척들은 왜들 이렇게 다들 모여 있습니까?”하는 것이다. 말하는 것도 또렷해졌고 숨도 편안했다. 혹처럼 부풀어 있던 곳을 만져보니 다시 평평하게 되었으며 처음처럼 통증도 호소하지 않았다. 의원이 생각하기에 이렇게 좋아진 것을 보니 형수의 옆구리 혹은 벽음(癖飮)으로 여겨졌다. 벽음(癖飮)은 수기(水氣)가 옆구리에 고여 있다가 한기(寒氣)를 받아서 엉키고 뭉쳐서 덩어리가 생긴 것이다. 쉽게 말하면 찬 자극으로 인한 장경련이나 내장근육의 뭉침으로 나타난 냉적(冷積)이었던 것이다. 의원은 사촌 형님에게 “이제야 병이 물러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형수님은 오랫동안 냉적(冷積)을 앓고 계신 것입니다.”라고 했다. 의원은 냉증에 명방인 부자이중탕(附子理中湯)을 처방해 주고서는 잘 조리하기를 당부했다. 벌써 아침이 되어 해가 떴고, 집안의 친척들은 안심하고 각자 제집으로 돌아갔다. 냉증(冷症)은 단지 단순한 수족냉증으로 시작하지만 관리되지 않고 만성화되는 경우 냉적(冷積)이 되면 실로 이해할 수 없는 다양한 병증으로 나타난다. 수족냉증도 문제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특히 여성의 경우 기해혈과 단전이 위치한 아랫배가 차가워짐을 경계해야 한다. 냉증은 만병의 근원이다. * 글 제목의 ○○은 ‘냉적(冷積)’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 명의경험록> 醫案. 冷結似肉腫. 余之內從兄李某, 以其妻內腫請我, 去見病症, 則大小便不通, 已至二十日, 胸腹皆極鼓脹, 右過章門穴, 腫核突出如拳, 痛不近手, 而氣息惟存, 眼睛突出胞外. 俄見, 痰氣自臍而上, 聲如猪, 嘔而直上塞喉. 時蒼黃之狀, 不能自忍, 擧家號哭, 余亦無所用手之望. 門外有一婦人, 聞哭聲顚倒而來入於後門, 高聲曰, 叔主叔主, 不知病源, 徒稱內疽, 可訝可訝. 此人本有冷病, 而向日極寒, 以單衣坐於冷地, 終日彈花, 得此病狀. 何不以此早言乎醫而治之云云. 余聞此言, 頓然覺悟曰, 大小便塞, 雖內腫或有, 其然腹胸之脹, 奚如此極也. 婦人之言, 是哉是哉. 適於其時炭火極好, 卽招內從父子言曰, 此病必是冷也, 持此炭火而去, 以手灸火乘熱, 掌熨膈上云云, 如其言熨之, 須臾似有喉聲, 而痰沫照出齒外, 急鑷而拨之, 鎌柄如焉黃痰, 長三四寸許. 自此似通呼吸, 而猶未知也. 食頃之間, 又有痰聲如初, 自臍漸上, 急取大艾炷, 灸巨闕穴分, 而使不得上沮, 以手尤勤摩熨, 則痰聲稍止. 時已夜半, 使兒輩止哭聲明火燭, 銘念持針, 用手提揷, 依古人之鍼法, 先補合谷, 次瀉太沖ㆍ三陰交ㆍ解溪矣. 至雞二鳴, 大小便一時俱下, 急取溫粥水, 呑飮一甫兒, 病人忽然起坐曰, 吾何如此, 以何事多會云云. 氣息晏然, 更見其腫處, 則核至平平, 雖猛按無痛處, 有若病虛. 日出, 一家皆大笑而罷歸.(의안. 냉결은 육종과 비슷하다. 우리 고종 사촌형 이 아무개가 아내의 내종 때문에 나를 불렀다. 가서 증세를 살펴보니 대소변이 모두 나오지 않은 채 이미 20일이 되어 흉복부가 대단히 팽팽해져 있었고 오른쪽 장문혈 근처에 주먹만한 종기가 튀어나와 있는데 아파서 손도 못 대게 했으며 숨은 겨우 쉬고 있었지만 눈알은 눈꺼풀 밖으로 돌출되어 있었다. 잠시 보고 있으니 담기가 배꼽에서부터 올라와 돼지 같은 소리가 났고 구역질하자 곧장 올라와 목구멍을 막았다. 당시의 참담한 상황을 참을 수 없어 온 집안사람들이 소리 내어 울었고 나도 손을 쓸 수 있다는 희망이 없었다. 그때 문 밖에 한 부인이 곡소리로 전도된 것을 듣고 뒷문으로 들어와서는 큰 소리로 질책하는 말이 “아저씨, 아저씨, 병의 원인은 알지 못하고 겨우 내저라고만 하니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이 사람은 원래 냉병이 있었는데 얼마 전 매우 추운 날 얇은 옷을 입고 찬 곳에 앉아서 종일토록 솜을 타다가 이 병을 얻은 것입니다. 어찌 이런 말을 의원에게 미리 말하여 치료하게 하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내가 이 말을 듣고 문득 깨달아 말하였다. “대소변이 막힌 것은 내종이 있을 때 간혹 생길 수 있긴 하지만 흉복의 창만이 어찌 이리도 극심한가? 부인의 말이 옳구나. 참으로 옳구나.” 때마침 숯불이 잘 만들어졌기에 고종 사촌형과 조카를 불러 “이 병은 분명 냉증 때문입니다. 이 숯불을 가지고 가서 손으로 불을 쬔 다음 뜨거워진 손으로 가슴을 문질러 주십시오.”라고 말하니 그대로 하였다. 잠시 후에 목에서 어떤 소리가 나는 것 같더니 가래와 거품이 입 밖으로 새어나와서 급히 집어서 빼내니 3~4촌 정도 되는 낫자루같은 누런 가래였다. 이때부터 숨은 잘 쉬는 것 같았지만 아직 정신은 들지 않았다. 한 식경 동안 또 아까처럼 가래 소리가 들리며 배꼽부터 점점 위로 올라갔는데 급히 큰 쑥뜸을 가져다가 거궐에 뜸을 뜨고 막힘없이 위로 갈 수 있도록 손으로 더욱 부지런히 문질러 따뜻하게 해주니 가래소리가 조금 가라앉았다. 때는 이미 한밤중에 되어서 아이들에게 울음을 멈추고 불을 밝히게 한 후 정신을 집중하여 침을 잡았다. 손으로 잡아당기며 꽂으면서 옛 사람의 침법을 따라 먼저 합곡을 보하고 그 다음 태충, 삼음교, 해계를 사하였다. 닭이 두번 울자 대소변이 일시에 쏟아져 나와서 급히 따뜻한 죽과 물 한 보시기를 먹였더니 환자가 벌떡 일어나 “내가 왜 이렇게 있습니까? 왜들 이렇게 많이 모여 있습니까?” 하고 숨도 편안해졌다. 종기가 있던 곳을 다시 보니 평평하게 되었으며 비록 빨갛기는 했지만 눌렀을 때 아픈 곳이 없었으므로 병이 물러난 것 같았다. 해가 뜨자 집안사람들이 크게 웃으며 돌아갔다.) < 동의보감> 洗熨法. 小便難, 小腹脹, 不急治殺人. 葱白三斤, 細剉炒熱, 以帕子包分兩裹, 更替熨臍下卽通. 又炒鹽半斤, 囊盛, 熨臍下亦通.(소변을 누기 어렵고 아랫배가 불러 오를 때 급히 치료하지 않으면 죽는다. 총백 3근을 가늘게 썰어 뜨겁게 볶은 후 수건으로 싸되 두 꾸러미로 만든 후 번갈아 배꼽 아래를 찜질하면 소변이 나온다. 볶은 소금 반 근을 주머니에 채워서 배꼽 아래를 찜질하여도 소변이 나온다.) ○ 冷極脣靑, 厥逆無脉, 陰囊縮者, 急用葱熨法, 或吳茱萸熨法, 幷艾灸臍中, 與氣海, 關元 各三五十壯.(냉기가 극심하여 입술이 퍼렇고 손발이 싸늘하며, 맥이 없고 음낭이 오그라들 때는 급히 파찜질법, 오수유찜질법을 쓰고, 아울러 배꼽과 기해, 관원에 각각 30~50장 쑥뜸을 뜬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2-12-19 15:5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