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슈퍼카 브랜드 페라리가 에든버러 공작상(The Duke of Edinburgh’s Award)을 지지하기 위해 특별한 이벤트를 진행했다고 19일 밝혔다. 에든버러 공작상은 만14~25세 사이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자기계발, 신체단련, 사회봉사, 탐험 등 4가지 영역의 활동을 통해 체계적으로 역량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성취도에 따라 금·은·동상을 포상하는 국제청소년 성취포상제도이다. 이는 1956년 영국 에든버러 공작이 설립하였으며, 현재 전세계 140여개국에서 운영 중이다. 페라리 회장이자 CEO인 세르지오 마르키오네(Sergio Marchionne)는 영국 왕실 에드워드 앤서니 리차드 루이스(Edward Anthony Richard Louis) 왕자와 에든버러 공작상 대표단들을 엔초 페라리 박물관(Museo Enzo Ferrari)으로 초대했다. 페라리는 에든버러 공작상에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F1 드라이버 세바스찬 베텔(Sebastian Vettel)과 키미 라이코넨(Kimi Räikkönen)의 친필 사인이 담긴 2013년형 페라리 F1머신 F138의 날개 부분을 증정했다. F138은 페라리가 만든 마지막 자연흡기 F1 머신이다. 이번 행사는 엔초 페라리 박물관이 위치한 도시 이탈리아 모데나의 지안 카를로 무짜렐리(Gian Carlo Muzzarelli) 시장과 피에로 페라리(Piero Ferrari) 페라리 부회장이 공동으로 개최했다. 또한 1964년 F1에서 시즌 챔피언을 지낸 영국 출신 F1 드라이버 존 서티스(John Surtees)가 자동차 사고로 상해를 입은 사람들의 일상생활 복귀를 지원하는 헨리 서티스 재단(Henry Surtees Foundation)을 대표해 참석했다. 한편 에드워드 왕자는 페라리 공장을 방문하여 클래식 자동차부터 현재 모델 라인업까지 살펴보고, 페라리 차량을 직접 도로와 트랙에서 시험 운행하는 시간을 가졌다. sijeon@fnnews.com 전선익 기자
2016-05-19 10:23:21영국 에드워드 왕자(앞줄 오른쪽)이 지난 2일 대우조선해양 경남 옥포조선소를 방문해 고재호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와 함께 군수 지원함 생산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영국의 에드워드 왕자가 영국 해군과 긴밀한 협력을 이어가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경남 옥포조선소를 방문했다. 4일 대우조선해양에 따르면 지난 2일 에드워드 왕자가 대우조선해양이 건조중인 영국 해군 군수지원함(MARS 프로젝트) 4척에 대한 점검차 거제도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를 찾았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2012년 영국 해군이 최초로 해외에 발주한 MARS 프로젝트를 수주해, 군수지원함 4척을 건조 중이다. 첫 호선의 인도 예정일은 오는 2015년 10월이며, 총 4척의 군함은 2017년까지 인도 완료될 계획이다. 대우조선해양은 군수지원함 해외 건조 프로젝트를 계기로 영국 해군과 밀접한 협력관계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 예가 대우조선해양이 2013년 6월 수주한 노르웨이 군함 수주 계약이다. 프로젝트 수행력에 만족한 영국정부가 대우조선해양을 추천했고, 이는 노르웨이 해군 역사 상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인 군수지원함 수주에 큰 도움이 됐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막내아들이자 왕위계승서열 8위인 에드워드 왕자는 대학 졸업 후 해병대에 복무하기도 했으며 현재는 영국왕실 명예 해군사령관 직을 맡고 있다. kjw@fnnews.com 강재웅 기자
2014-11-04 13:17:47[파이낸셜뉴스] 영국 찰스 3세 국왕의 대관식에서 왕실 인사 등이 앉은 의자가 경매에서 수천만원에 팔렸다. 왕실은 판매대금을 노숙자 지원 등을 위한 자선단체에 전달할 예정이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영국 BBC에 따르면 찰스 3세의 5월 대관식을 위해 제작된 의자 4개가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총 3만2760파운드(약 5400만원)에 팔렸다. 한 쌍은 1만8900파운드(약 3108만원), 다른 한 쌍은 1만3860파운드(약 2280만원)에 팔렸는데, 이는 모두 경매회사가 설정한 추정가 4000파운드(약 658만원)보다 훨씬 높은 가격이다. 앞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대관식에선 왕실 가족과 고위 인사 등을 위한 의자 100개가 특별 제작됐다. 의자는 파란색 벨벳 커버에 국왕과 왕비의 표시가 박혀있는 나무 의자로, 영국 가구업체 NEJ 스티븐슨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대관식에 참석한 약 2200명 중 이 의자에 앉은 참석자는 윌리엄 왕세자 부부와 해리 왕자, 에드워드 왕자 부부, 앤 공주 등으로 전해졌다. 다만 구매자들은 누가 앉았던 의자인지는 알 수 없다. 왕실은 판매대금을 노숙인과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 등을 위한 자선단체 4곳에 전달할 계획이다. 한편 이번 주 미국 뉴욕과 프랑스 파리에서 의자 8개가 추가로 경매에 나올 예정이며, 나머지 의자 대부분은 개인 판매될 예정이다. newssu@fnnews.com 김수연 기자
2023-11-01 08:12:11[파이낸셜뉴스] 왕세자에 오른 지 65년 만에 왕위에 오른 영국 찰스 3세(74)가 6일(이하 현지시간) 수도 런던에서 대관식을 치렀다. 선왕이자 모친이었던 엘리자베스 2세의 즉위 이후 70년만에 열린 이번 행사는 삼엄한 경비 속에서 비교적 소규모로 치러졌다. 70년 만에 거행된 영국 국왕 대관식 이날 런던에는 대관식 직전에 비가 내렸다. 과거 찰스 3세의 할아버지인 조지 6세, 모친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 당시에도 비가 내렸다. 1953년 이후 처음 열리는 대관식을 보기 위해 수천명의 인파가 런던으로 몰려들어 왕이 지나는 길목에 자리를 잡았다. 찰스 3세는 지난해 9월 선왕의 서거 직후 영국 윈저 왕조 5대 왕에 즉위했지만 공식 대관식을 치를 때 까지 반년 넘게 기다려야 했다. 이번 대관식은 특히 왕가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센 가운데 진행됐다. 지난달 국제 여론조사업체 유고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영국 성인 가운데 군주제에 대해 우호적으로 답한 응답자는 53%에 달한 반면 18~24세 젊은층에서는 긍정 답변이 26%에 그쳤다. 4년 전 실시된 같은 조사에서 군주제를 옹호하는 젊은층 여론은 48%였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런던 경찰은 이날 대관식이 열리기 3시간 30분 전에 런던 트래펄가 광장에서 대관식 관련 시위를 준비하던 ‘리퍼블릭’의 그레이엄 스미스 대표를 체포했다. 해당 조직은 군주제 반대 시민단체로 시위 예상 지점은 찰스 3세 부부가 지나가는 중요 길목 중 하나였다. 영국 왕실은 이번 대관식을 선왕의 행사에 비해 비교적 조촐하게 구성했다. 영국 왕실은 1953년에 국내외 약 8000명을 초청했지만 이번에는 숫자를 대폭 줄였다. 한국의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미국 영부인 질 바이든 여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등 203개 국가 및 단체를 대표해 약 2300명의 내빈이 초청장을 받았다. 찰스 3세는 커밀라 왕비와 함께 6일 오전 10시 20분에 버킹엄 궁전에서 왕실 마차인 '다이아몬드 주빌리 코치' 마차를 타고 대관식이 열리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출발했다. 국왕 부부는 더몰, 트래펄가 광장, 화이트홀(정부중앙청사)을 경유해 웨스트민스터 사원까지 약 2.1㎞ 구간을 행진했다. "섬김받지 않고 섬길 것" 즉위 선서 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도착한 찰스 3세는 영국 국교회 최고위 성직자인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의 환영에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의 본보기로서 나는 섬김받지 않고 섬길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곧 성경에 손을 얹고 즉위 선서를 진행했다. 그는 "나는 하나님 앞에서 개신교 신자이며, 개신교 신자에게 왕위 승계를 보장하는 법률의 의도에 따라, 법에 따라 내가 가지는 권능을 다해, 이 법률을 지지하고 지켜낼 것을 엄숙하고 성실하게 고백하고, 간증하고, 선언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모든 믿음과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구절을 덧붙였다. 현지 매체들은 모든 믿음과 신앙이라는 구절에 대해 엘리자베스 2세가 대관식 당시 밝혔던 선언과 다른 언급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대관식에서는 영국 왕실 역사상 처음으로 불교, 힌두교, 유대교, 이슬람교, 시크교 등 다른 종교 지도자들이 대관식에 참석해 찰스 3세에게 비종교적인 대관식 물품을 전달했다. 아울러 식장에서 영어와 함께 웨일스어, 스코틀랜드 게일어, 아일랜드어로 찬송가가 울려 퍼졌으며, 여성 사제가 처음으로 성경을 낭독하고 흑인 여성 상원 의원, 카리브해 출신 여성 남작이 대관식에서 역할을 맡았다. 찰스 3세는 즉위 서약을 마친 뒤 715년 된 대관식 의자에 앉아 웰비가 수여한 ‘성 에드워드 왕관’을 머리에 썼다. 1661년 제작된 왕관은 순금 틀에 루비 자수정 사파이어 같은 각종 보석으로 장식돼 있다. 무게는 2.23kg으로 보석만 444개가 박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찰스 3세 부부는 대관식을 마친 뒤 다시 마차를 타고 왔던 길을 거슬러 버킹엄 궁전으로 돌아갔다. 영국 및 영연방 군인 약 4000명이 왕의 행차를 뒤따랐으며 에든버러 등 영국 13개 지역에 배치된 해군 함정에서는 즉위 축하 예포를 쏘아 올렸다. 서먹했던 왕실 식구들 모두 모여 이번 대관식에는 그동안 왕실 행사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왕실 식구들이 대거 모였다. 장남인 윌리엄 왕세자는 아버지의 볼에 입을 맞췄으며 커밀라 왕비는 왕비의 관을 썼다. 찰스 3세는 1981년에 다이애나와 결혼했으나 6년이 지나지 않아 당시 남편이 있었던 커밀라와 불륜 관계를 시작했다. 이후 1996년에 다이애나와 이혼했다. 커밀라는 2005년에 찰스 3세와 결혼했지만 왕세자빈 칭호를 받지 못했고 남편이 왕위에 오른 다음에야 공식적으로 왕비 칭호를 받았다. 왕실의 인종 차별을 주장하며 왕실과 결별한 뒤 2020년 미 캘리포니아로 떠났던 차남 해리 왕자는 이번 대관식에 참석했다. 그러나 인종 차별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부인 메건 마클과 아들 아치, 딸 릴리벳은 아치의 생일이 대관식 날짜와 같다는 이유로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해리 왕자는 올해 1월 자서전 '스페어'를 출간하면서 아버지 및 형과 사이가 더 나빠졌다. 해리 왕자는 대관식에서 윌리엄 왕세자보다 두 줄 뒤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찰스 3세의 동생인 앤드루 왕자도 대관식에 등장했으나 대중의 야유를 받았다. 앤드루 왕자는 미성년자 성추행 의혹으로 인해 2020년 이후 왕실의 모든 직위에서 물러났다. 이날 행사에는 존 메이저, 토니 블레어, 고든 브라운, 데이비드 캐머런, 테리사 메이, 보리스 존슨, 리즈 트러스 등 전직 총리와 리시 수낵 현 총리 등 생존 중인 전현직 영국 총리 8명이 모두 참석했다. 질 바이든 여사는 손녀와 동행했으며 캐나다의 트뤼도와 프랑스의 마크롱은 부부 동반으로 도착했다. 이밖에 대관식 콘서트 무대에 서는 미국의 유명 가수 케이티 페리, R&B 거장 라이오넬 리치, 호주 가수 닉 케이브 등 연예인도 참석했다. 중국은 한정 국가 부주석을 대관식 사절로 파견했으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6일에 부인과 공동 명의로 찰스 3세에게 축전을 보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2023-05-06 22:05:24데이비드 린 감독의 1962년 작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세기의 명화로 꼽을 만하다. 한 개의 점에서 시작돼 3분간 롱테이크로 펼쳐지는 사막 속 낙타를 탄 남자의 등장 신은 압권이다. 여러 번 감상했지만 영화의 등장 장면 중 가장 숨 막힌다는 찬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중동지역에서 영국군 정보장교로 활약한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1888∼1935)의 30대 시절 이야기다. 영화를 본 사람은 많지만 영화 속 시대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오늘날 중동의 비극, 전쟁과 테러의 씨앗은 서구 제국주의가 정한 3개의 틀에서 잉태됐다. 후세인·맥마흔 서한은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영토인 팔레스타인에 아랍인들의 국가를 세우는 데 찬성한 영국의 책략이다. 사이크스·피코 비밀협정은 영국과 프랑스의 오스만 제국 영토 나눠먹기였다. 영국 외무장관 밸푸어 선언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을 위한 민족국가 수립을 지지해 분란의 원인을 제공했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파 갈등이나 무슬림의 역사·문화·종교는 무시됐다. 영화 한 편으로 중동의 현실을 파악하긴 어렵다. 로렌스를 중심으로 한 영웅 담론과 오리엔탈리즘은 한계가 분명하다. 후에 로렌스는 자신이 제국주의의 앞잡이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게 된다. 환멸에 빠진 로렌스는 훈장을 반납하고, 젊은 날의 치기를 후회했다. 대령 예편 후 군대를 들락날락하다 오토바이 사고로 47살 때 숨졌다. 37살 무함마드 빈 살만이 17일 서울에 온다. 이슬람 수니파의 종주국이자 석유 부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왕세자 겸 총리 신분이다. 그는 로렌스 이후 중동이 낳은 최고의 유명인사이다. 별명이 '미스터 에브리싱'인 그는 영화에서 로렌스로 분했던 피터 오툴 못지않은 출중한 외모에 추정 재산 2조달러에 이르는 '비공인' 세계 최대 부호이다. 숱한 이복형제들 중 존재감 없고, 과묵하며, 차가운 성격의 왕자에 불과했던 그는 2015년 최연소 국방장관에 오른 뒤 2017년 왕세자로 즉위하면서 개혁 성향의 독재자로 거듭났다. 승계 과정에서 뿌린 피 때문에 "무한한 자원을 가진 살인자이며, 감정이 없는 사이코패스"라는 악평을 얻었다. 2018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자말 카슈끄지 살해사건의 배후로 지목되기도 했다. 빈 살만의 서울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그가 결정권을 쥔 700조원짜리 도시 건설과 12조원짜리 원전사업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 5대 그룹 총수가 그와의 만남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찾아오면 얼마나 바쳐야 하는지 고민하지만 빈 살만에게선 얼마나 얻어낼지 궁리한다는 점이 다르다. 빈 살만은 할리우드 영화 '블랙팬서'에 나오는 미래 왕국 와칸다의 실현을 꿈꾼다. 그가 세우려는 네옴시티는 서울의 44배에 이르는 SF 공상영화 속 미래도시이다. 사우디 수도 리야드가 부산과 2030년 세계엑스포 유치를 두고 각축 중이란 점이 최대의 걸림돌이다. 항간에는 빈 살만이 엑스포 개최권 양보를 네옴시티 건설 참여의 지렛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설이 떠돈다. 엑스포 개최냐, 중동 특수냐, 두개 다냐가 문제다. 속을 알 길 없는 야심만만한 빈 살만이 '제2의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실장
2022-11-16 18:01:45[파이낸셜뉴스] 이달 초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사망 원인이 드러났다. 30일 가디언 등 해외 언론은 영국 스코틀랜드 국립기록원이 29일(현지시간) 엘리자베스 여왕의 사망진단서를 공개했다고 전했다. 기록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공식 사망원인은 '노환'이다. 진단서에는 96세의 여왕이 발모럴성에서 9월 8일 오후 3시 10분 사망했다고 나와 있다. 기록에 따르면 버킹엄 궁전이 여왕의 서거를 발표하기 3시간 전이다. 사망 시각으로 봤을 때 앤드루 왕자와 에드워드 왕자, 윌리엄 왕세자는 여왕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스코틀랜드 북동부 애버딘 공항에 오후 3시 50분에 도착했고, 오후 5시가 넘어 발모럴성에 들어갔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사망 장소는 스코틀랜드 '발모럴성'으로, 평소 거주지는 잉글랜드 '윈저성'으로 기재됐다. 사망 신고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유일한 딸인 앤 공주가 9월 16일에 한 것으로 적혀있다. 앤 공주는 "엄마(엘리자베스 여왕)가 세상과 작별하기 전 마지막 24시간을 함께 했다"고 밝힌 바 있다. 1952년 25세에 국왕에 즉위한 엘리자베스 여왕은 70년이라는 세계 최장 군주 기록을 쓰고 지난 8일 96세에 영면에 들었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2-09-30 10:48:44[파이낸셜뉴스]25년 전 오늘, 영국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자의 어머니이자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들 찰스 왕세자의 전부인인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유명을 달리했다. 31일(이하 현지시간)은 다이애나비의 25주기다. 다이애나비는 1981년 7월 29일 찰스 왕세자와 결혼했다. 슬하에 윌리엄과 해리 두 아들을 두었으나, 순탄하지 못한 왕실 생활과 불화로 1992년부터 별거에 들어간 후 1996년 이혼했다. 이혼 후에도 자신이 가진 대중적 영향력을 통해 봉사와 자선활동에 헌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이혼 다음 해인 1997년 8월 31일 프랑스 파리 알마 터널에서 파파라치를 피해 고속 질주하던 중 차가 터널 안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사고로 36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였지만 많은 여성들의 워너비로 전세계적인 애도를 받고 있는 다이애나비의 짧은 일생 36년을 되돌아본다. 불행했던 어린시절 다이애나는 1961년 7월 1일 영국 샌드링엄에서 훗날 스펜서 백작 7세가 되는 올소프 자작 에드워드 존 스펜서와 퍼모이 남작 4세의 딸 프랜시스 사이에서 셋째 딸이자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시절은 대체로 불행했다. 다이애나의 부모님은 후계자가 될 아들 출산, 성격 차이 등으로 매일 다투었고 그녀가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사이가 좋지 않았다. 결국 그녀의 부모는 이혼했다. 다이애나는 9살 때까지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자택에서 가정교사로부터 홈스쿨링을 했다. 이후 노퍽에 있는 킹스 린 실 필드 학교, 리들워스 홀, 웨스트 히스 여자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을 돌보고 봉사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자신감이 없고 소극적인 성격으로 성장했다. 찰스와의 만남과 약혼 다이애나가 찰스 왕세자를 처음 본 것은 그가 언니 사라의 남자친구였던 17살 때였다. 언니 사라와 8개월간 만남을 이어가던 찰스 왕세자는 사라와 멀어지면서 자연스레 다이애나의 눈에서도 사라졌다. 다이애나는 가까스로 부모의 허락을 받아 1979년 런던으로 갔다. 이곳에서 다이애나는 친구들과 함께 살며 가사도우미, 보모, 유치원 보조교사 등의 일을 하며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시기를 보냈다. 1980년 찰스 왕세자를 다시 만났다. 찰스 왕세자는 다이애나의 자상함과 아름다움에 호감을 가지며 교제를 시작했다. 다이애나는 1981년 2월 6일 찰스 왕세자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찰스 왕세자는 다이애나와 12번 만난 후 청혼했다고 한다. 다이애나는 2월 24일 약혼을 공식 발표했다. 1981년 7월 29일 세기의 결혼식 1981년 7월 29일 전세계에 생방송되는 가운데 다이애나는 런던의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세기의 결혼식'을 치렀다. 수천 개의 진주가 달린 아이보리색 웨딩드레스와 7m 길이의 트레인(머리에 쓰는 베일)으로 치장한 다이애나는 젊고 청순하고 아름다웠다. 성당 앞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도, 그녀의 결혼식을 생중계로 지켜보던 전 세계 7억의 사람들도 모두 찰스 왕세자 부부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것을 기대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다이애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2004년 NBC가 방영한 테이프에서 다이애나비는 “결혼식날이야말로 생애 최악의 날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순탄하지 못한 왕실 생활과 파경 결혼 직후부터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비는 카밀라 파커볼스로 인해 불화했지만, 그들은 왕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자신들의 갈등을 감추어야만 했다. 원래 소극적이고 수줍은 성격이던 다이애나비는 언론과 세간의 관심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어려서부터 언론에 노출되면서 성장한 찰스 왕세자는 다이애나비의 고통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카밀라에 대한 질투와 남편에 대한 불신, 대중 앞에서의 가식적인 연기까지 모든 것이 다이애나비에게는 고통이었다. 그런 중에도 그녀는 윌리엄과 해리 두명의 왕자를 낳아 왕실의 대를 이어야 하는 왕세자비로서의 의무는 다했다. 그러나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비의 결혼생활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면서 1996년 2월 이혼 합의를 공식 발표한 뒤 8월 28일에 이혼했다. 파경설 파다하던 1992년 방한다이애나비는 지난 1992년 11월 2일부터 5일까지 3박 4일간 찰스 왕세자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 1883년 한·영 우호통상조약을 체결한 지 109년 만에 영국 왕실 인사로선 첫 공식 한국 방문이었고, 이들 부부의 마지막 외국 방문이었다. 당시 이 부부는 이미 파경설이 전세계에 파다했다. 방한 당시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비는 한동안 공식석상에 부부동반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다이애나비는 11월 3일 오전에 찰스 왕세자와 함께 청와대를 방문했다. 이혼 후에도 자선·봉사활동 이혼 이후에도 다이애나비는 자선·봉사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전개했다. 짧은 숏커트 헤어스타일에 심플한 정장을 차려 입은 그녀는 세계 여기저기를 누비며 봉사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AIDS 퇴치·아프리카 빈민 구호·적십자 활동·대인지뢰 제거 운동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이어갔다. 특히 대인지뢰 추방 국제캠페인에 적극 관여해 앙골라·보스니아·르완다 등을 방문하기도했다. 열성적이고 진심어린 다이애나비의 사회 활동을 두고 전 세계가 감동했고, 다이애나비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비극적인 죽음, 36세의 짧은 인생 왕세자비의 지위를 잃었지만 봉사활동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다이애니비. 그녀는 1997년 8월 31일 교제 중이던 이집트 출신 재벌 2세 도디 알 파예드와 함께 파리 알마 터널에서 파파라치를 피해 고속 질주하던 중 차가 터널 안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사고로 36세의 짧은 나이로 생을 마쳤다. 당시 윌리엄 왕세손은 15세, 해리 왕자는 12세였다. 장례식은 다이애나가 숨진 지 엿새째 되던 9월 6일 영국 왕실장으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됐다. 다이애나는 스펜서 가문의 영지에 안장됐다. 다이애나비가 숨진 8월 31일을 앞두고 그가 생전 거주하던 켄싱턴 궁에는 매년 추모 인파가 몰려든다. ssahn@fnnews.com 안삼수 기자
2022-08-29 15:13:091952년 2월 6일 즉위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 70주년을 맞았다. 25세에 왕이 돼 올해 95세다. 1000년가량 이어진 영국의 왕 중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기록을 세웠다. 세계를 통틀어도 프랑스의 루이 14세(1643~1715년), 태국의 푸미폰 국왕(1946~2016년), 리히텐슈타인의 요한 2세 대공(1858~1929년) 등 3명만 재위 70년을 채웠다. 살아있는 왕 중 최장수 기록이다.윈스턴 처칠부터 14명의 영국 총리를 겪었고 옛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마오쩌둥 등 역사를 뒤흔든 주요 인물들을 겪었다. 미국의 해리 트루먼부터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14명 중 린든 존슨만 제외하곤 모두 면담했다. 우리나라 11명의 전직 대통령도 거쳤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은 직접 만났다. 여왕은 적통 계승자가 아니었다. 큰아버지 에드워드 8세가 미국 평민 출신의 월리스 심프슨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버리는 바람에 왕위를 승계한 아버지의 뒤를 이은 것이다. 심한 말더듬증을 갖고 있던 조지 6세는 영화 '킹스 스피치'(2010년, 톰 후퍼 감독, 콜린 퍼스 주연)의 주인공이다.전 세계 53개국 영연방의 수장인 여왕은 자식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이혼한 1순위 후계자 찰스 왕세자를 향한 여론의 차가운 반응이 불안하다. 미성년자 성폭행 의혹으로 고소를 당한 아들 앤드루 왕자의 군 직함을 박탈하는 결정을 내렸다. 미국인 메건 마클과 결혼한 손자 해리 왕자는 물의 끝에 왕실을 떠났다.한동안 잠잠하던 입헌군주제 폐지론마저 부활해 왕실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여왕 사후 영국 왕실은 껍데기만 남을 것이며, 찰스 왕세자가 최선이 아니라는 군주제 폐지운동이 거세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는데 70년은 긴 세월이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실장
2022-02-07 16:40:23해리 왕자 부부의 TV 인터뷰가 방영된후 영국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해리 왕자와 부인인 미국 출신 매건 마클의 사전에 녹화된 인터뷰는 지난 7일과 8일(현지시간) 각각 미국과 영국에서 방영돼 주목을 받았다. 영국 언론 중 데일리 미러는 이번 인터뷰로 영국 왕실이 지난 1936년 에드워드 8세가 미국 여성과 결혼하기 위해 스스로 왕에서 물러난 이후 최대 고비를 맞고 있다고 보도했다. 데일리 메일는 지난 8일자 전면에 “그들은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라는 제목과 함께 “영국 왕가의 심장을 무자비하게 찔렀다”라고 비난했다. 이 신문은 인터뷰가 “매우 거칠고 계산된 행동”이라며 “더 나은 세계를 위해 한걸음씩 연민을 추구한다”는 해리 왕자의 평소 정신과는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반면 더 가디언은 부부의 발언 내용은 영국 사회의 문제를 지적한 충격적인 것이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매일 벌어지고 있는 인종차별, 과거 노예와 제국주의가 부인되고 있는 가운데 영국 사회에는 스스로 돌이켜 볼 줄 모르는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대서양 건너 미국 언론들은 매건 마클이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은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해리 왕자가 그동안 자유롭게 인종문제를 언급할 수 없었으나 앞으로 인종차별 철폐에 전념할 것이라며 영국 왕가에도 새로운 역사를 쓸 것으로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해리 왕자 부부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캘리포니아주의 유력 일간지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매건 마클과 왕실 모두를 비판했다. 이 신문은 마클이 1450만달러(약 166억원)를 받고 모테시토에 7에이커(2.8ha) 규모의 저택에 거주하면서 넷플릭스와도 대형 계약을 맺고 있는 공인이 정신 치료를 왜 받지 못했냐는 식으로 비꼬았다. 프랑스 매체 르 파리지엔은 전면에 “전쟁이 선포됐다”며 이번 사태로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호감은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녀의 후계자들이 쓸 왕관이 무거워지게 됐다”라고 보도했다. jjyoon@fnnews.com 윤재준 기자
2021-03-10 15:49:40[파이낸셜뉴스] 해리 왕자 부부의 인종차별 등의 폭로로 영국이 발칵 뒤집힌 가운데 영국 왕실이 사태 진화에 나섰다. 지난 7일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 왕자비의 인터뷰가 전파를 탄지 약 40시간 지나 엘리자베스 여왕은 성명을 발표하고 "해리와 메건에게 지난 몇 년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완전히 알고 난 뒤 온 가족이 슬퍼하고 있다"며 "특히 인종(차별)과 관련해 언급된 이슈는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왕실은 "몇몇 기억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것들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으며 가족들에 의해 개인적으로 다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와의 인터뷰에서 해리 왕자와 마클 왕자비는 메건에 대한 언론의 인종차별적 대우 때문에 부부가 영국을 떠났는지 묻는 질문에 그렇다는 취지로 답했다. 해리 부부는 마클이 언론에 시달림받을 때 왕실의 지지가 부족했다고도 여러 번 강조했다. 해리 왕자는 군주제에 대해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자신은 시스템의 덫에 잡혀 있었지만 자신이 잡혀 있는 것도 몰랐다면서 다른 왕실 가족들도 덫에 걸려 있는 신세라고 설명했다. 한 외신은 해리 왕자의 인터뷰가 이번 세기에 영국 군주제가 맞은 가장 큰 도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군주제 폐지같은 극단적인 해결이 이뤄지는 것보다 조용한 변혁만이 일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그간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영국 국민들은 여왕을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으며, 심지어 공화당 의원들조차 엘리자베스 여왕이 군주인 한 헌법상의 변혁이 일어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보고 있다. 왕실은 1936년 에드워드 8세가 미국 이혼녀 윌리엄 심슨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포기한 것, 1997년 다이애너 왕세자비의 사망 등을 겪은 뒤에 조용히 개혁하려고 노력했다. 이번 위기에서 벗어나는 계획을 짜는 데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찰스 왕세자, 윌리엄 왕자 뿐 아니라 여왕의 개인 비서인 에드워드 영, 찰스 왕세자의 개인 비서인 클리브 앨더튼 등의 소규모 자문단도 함께 할 것이라고 외신은 내다봤다. 최종 결정은 엘리자베스 여왕과 찰스 왕세자, 윌리어 왕자가 할 것이지만 보리스 존슨 총리와 상의하게 될 수도 있다고 보았다. 서열 3위까지인 세 왕족은 이미 2020년 초에 해리 왕자와 마클 왕자비의 독립 후 타협점을 찾기 위해 여왕의 샌드링엄 별장에 모인 적이 있다. camila@fnnews.com 강규민 기자
2021-03-10 13:2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