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게찹쌀구이탕’과 ‘섬마을 비빔밥’이 각각 인천 옹진군 연평도와 자월도를 대표하는 대표음식으로 선정됐다. 인천시는 26일 시청앞 샤펠드미앙에서 ‘I(섬) FOOD 프로젝트 사업’(부제 : ‘그 섬 가면, 그 맛 있다’)의 옹진군 연평도 및 자월도 개발 메뉴 품평회를 개최했다고 27일 밝혔다. 시는 2016년부터 섬 특색 음식을 개발하고, 상품화 과정을 거쳐 차별화된 먹거리 환경을 조성하고자 ‘I(섬) FOOD’ 메뉴 개발을 시작했다. 시는 섬 대표 음식으로 2016년 강화군 볼음도 상합죽과 옹진군 장봉도, 신도·시도·모도에 소라비빔밥, 해산물찜밥을, 2017년 덕적도 간재미찜과 백령도 해초비빔밥을 대표음식으로 선정했다. 이러한 섬지역 대표음식 메뉴 상품화를 통해 섬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고 매출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는 올해에도 섬 지역 가치 창출의 기반을 마련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해당지역 영업주와의 간담회 및 시식회 등을 통해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12개 품목의 섬 음식을 개발하고 메뉴개발에 따른 품평회를 개최, 섬별 대표메뉴 각 1개 품목을 선정했다. 시 관계자는 “선정된 대표음식에 대해 해당 지역별 일반음식점을 대상 으로 메뉴 컨설팅, 조리 및 친절서비스 교육 등을 실시하여 빠른 시일 내 음식업소에서 상품화하여 영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kapsoo@fnnews.com 한갑수 기자
2018-11-27 09:23:57【파이낸셜뉴스 인천=한갑수 기자】 인천시와 인천관광공사는 인천 섬만의 차별화된 프로그램과 음식을 즐길 수 있어 지난 해 높은 만족도를 보였던 섬 여행상품 ‘인천 섬 도도(島島)하게 살아보기’를 올해도 출시한다고 13일 밝혔다. 1회당 최대 20명만 모집하는 소규모 여행 상품으로 섬 주민이 직접 섬 역사와 관광지 설명해주고 섬 특산물을 이용한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또 숙박비를 지원 받아 정가 대비 약 40% 저렴한 가격으로 상품을 이용할 수 있다. 올해 ‘인천 섬 도도하게 살아보기’는 장봉·신시모도 상품이 추가돼 2박 3일 상품(소이작, 볼음, 덕적, 장봉·신시모도), 3박 4일 상품(백령·대청도) 등 총 5개 상품으로 운영된다. 관광객은 인천 섬에서 친환경 청정 섬 자원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주민과 함께 섬 일상을 즐길 수 있다. 이번 상품은 오는 18일부터 10월 21일까지 운영되고 주중(월, 수)에만 출발한다. 자세한 상품 일정 및 예약은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선착순으로 예약 가능하다. 한편 인천관광공사는 오는 9월 ‘옹진군 섬 도도하게 살아보기’를 2가지 2박 3일 상품(연평도, 승봉·자월도)을 관광객들에게 추가로 선보일 계획이다. 해당 상품은 개별 관광객은 물론 단체 관광객도 함께 모객 할 예정이다. 김성우 인천관광공사 섬발전지원센터장은 “올해는 지난해 만족도가 높았던 배낚시, 갯벌체험, 단호박 제빵체험과 함께 서해에서도 해양레저를 즐길 수 있도록 패들보드, 노르딕워킹, 카약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가로 도입해 관광객에게 보다 풍성한 체험거리를 제공할 것” 이라고 말했다. kapsoo@fnnews.com 한갑수 기자
2022-07-13 17:02:08【파이낸셜뉴스 인천=한갑수 기자】 생활쓰레기와 음식물쓰레기 등을 고형연료로 만들어 연소시키는 과정에서 전기에너지를 생산하는 자원순환에너지 생산설비가 세계 최초로 개발돼 수도권쓰레기매립장 종료로 인한 서울·인천시·경기도의 갈등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14일 ㈜아시아에코에 따르면 가정과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생활쓰레기, 음식물쓰레기, 산업쓰레기를 처리하고 에너지화 하는 최첨단기술 설비(MSW HC-SWF 융복합 발전설비)를 개발하고 양산체제를 갖췄다. 현재 쓰레기 처리는 대개 보조연료를 투입해 소각하는 단순 소각방식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고 소각 후 잔재회분(재)도 많이 남아 또다시 매립해야 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새로 개발된 기술은 가연성 생활쓰레기와 해양쓰레기, 스치로폼 등 각종 쓰레기를 분쇄해 고형연료로 만들고, 이 고형연료를 연소시키는 과정에서 스팀을 만들고 전기터빈을 가동해 전기를 생산하게 된다. 이뿐 아니라 가연성 물질과 음식물쓰레기의 동시 처리가 가능하고 잔재회분 등이 극소량 발생하지만 재를 식물의 발육촉진제로 사용하기 때문에 직매립이 필요하지 않아 매립장도 필요없게 된다. 또 돌, 흙 등 불연성 물질은 잘게 부수어 건설현장에 재활용할 수도 있다. 특히 기존 매립 완료된 매립장을 재활용도 가능하다. 이미 매립이 완료된 매립장의 쓰레기를 꺼내 다시 가연성 물질 선별작업 후 고형연료로 만들고,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자원순환에너지 생산설비 1기에서 하루 최대 400t의 쓰레기(가연성 물질을 50% 기준) 처리와 168MW의 전기를 생산한다. 이에 따라 쓰레기를 매립할 매립부지가 필요치 않기 때문에 기존 수도권매립지 등 매립지를 임대아파트나 테마파크 등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현재 코리아에너지가 만든 자원순환에너지 생산설비는 인천 검단 오류동에 설치돼 중견기업이 운영하고 있다. 서해5도 연평도와 백령도 등에 설치가 추진되고 있다. 이 자원순환에너지 생산설비는 해외에도 알려져 해외 자원순환 관련 기업이 설비 구입을 추진하고 있다. 멕시코의 누가시스사는 지난 2016년 한국을 방문해 쓰레기발전시설을 직접 확인하고 쓰레기 처리시설 도입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으로 한국 방문이 어려워지면서 본 계약 체결이 지연, 쓰레기 처리시설의 수출이 늦어지고 있다. (사)한국기업정책연구소는 폐기물을 활용한 고형연료화 기술 및 이 기술을 이용한 신재생 에너지 전력화 사업에 대한 기술평가 보고서에서 ‘기 매립 완료된 매립장의 재활용뿐만 아니라 고형연료의 사용으로 인한 경제성 및 배기가스의 친환경적 배출 등 우수한 기술을 기반으로 한 자원재생화 시스템’이라고 평가했다. 김형주 아시아에코 회장은 “쓰레기뿐만 아니라 매립 완료된 쓰레기까지 재활용 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로 비용감소,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수출창출까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kapsoo@fnnews.com 한갑수 기자
2020-09-14 15:17:19정부가 지난 10년 간 백령도, 연평도 등 서해 5도 발전에 투자한 결과 주민수는 358명, 관광객수는 4만6800명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올해 말 종료될 10개년 발전계획을 5년 더 연장하면서 국비 1000억여원을 추가 투입키로 했다. 주민 4%, 관광객 48% 증가 국무조정실과 행정안전부는 정세균 국무총리가 20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0차 서해 5도 지원위원회'를 주재한 자리에서이같은 내용의 '서해 5도 종합발전계획 변경계획'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2010년 북한 연평도 포격 도발을 계기로 '서해 5도 지원 특별법'을 제정했다. 법에 따라 수립된 종합발전계획(2011년~2020년)을 통해 서해 5도 주민들의 정주여건 개선에 힘썼다. 그 결과 인구는 2010년 8348명에서 2020년 8706명으로 4% 늘었다. 관광객도 9만6618명에서 2019년 14만3418명으로 48% 증가했다. 이 발전계획은 올해 종료될 예정이었지만, 정 총리의 특별지시로 정부가 변경계획을 마련해 향후 5년 간 추가 지원을 약속했다. 먼저 기존에 계획됐던 국비 4599억원에 958억원을 더해 총 5557억원을 투입키로 했다. 반면 현실화 가능성이 낮고 주민 효용이 적다고 판단된 국제관광휴양단지 사업은 제외했다. 백령도에 컨벤션센터, 대형호텔, 골프장 등 휴양시설을 건립한다는 계획을 백지화 한 것이다. 주민 삶 밀접한 사업으로 개편 대신 실제 투자가 가능한 사업 위주로 개편했다. 매달 5~10만원을 지급하는 정주생활지원금, 노후주택 개량사업, 해상운송비 지원, 슬레이트 지붕개선, 방과 후 돌봄학교 운영 등을 지속 지원한다. 의료시설이 열악한 서해 5도 지역을 선회하는 200t급 병원선도 신규 건조한다. 대청도 복합커뮤니티센터도 신축하고 조림사업 등도 추진한다. 주민 생활편의를 위해 공공하수도를 건설하고 소각시설도 증설한다. 생활자원 회수센터, 음식물 쓰레기 처리시설 등도 확충하기로 했다. 농·어업 분야 소득 증대를 위해 노후 농기계 교체, 노후어선 장비 개량, 해저 쓰레기 수거, 꽃게 등 수산종자 생산시설 구축 사업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백령공항 건설, 연평도항 건설, 백령항로 대형 여객선 도입 지원 등 지역 주민의 숙원사업이지만 추가 검토가 필요한 과제는 중장기적으로 검토·추진키로 했다. 이승우 행안부 지역발전정책관은 "부처간 이견에도 불구하고 총리실의 조정을 통해 어렵게 마련되 계획인 만큼 향후 5년간 부처별 당초계획이 충실히 이행되도록 계속해서 관리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2020-07-20 18:00:00[파이낸셜뉴스] 정부가 지난 10년 간 백령도, 연평도 등 서해 5도 발전에 투자한 결과 주민수는 358명, 관광객수는 4만6800명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올해 말 종료될 10개년 발전계획을 5년 더 연장하면서 국비 1000억여원을 추가 투입키로 했다. ■10년 투자..주민 4%, 관광객 48% 증가 국무조정실과 행정안전부는 정세균 국무총리가 20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0차 서해 5도 지원위원회'를 주재한 자리에서이같은 내용의 '서해 5도 종합발전계획 변경계획'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2010년 북한 연평도 포격 도발을 계기로 '서해 5도 지원 특별법'을 제정했다. 법에 따라 수립된 종합발전계획(2011년~2020년)을 통해 서해 5도 주민들의 정주여건 개선에 힘썼다. 그 결과 인구는 2010년 8348명에서 2020년 8706명으로 4% 늘었다. 관광객도 9만6618명에서 2019년 14만3418명으로 48% 증가했다. 이 발전계획은 올해 종료될 예정이었지만, 정 총리의 특별지시로 정부가 변경계획을 마련해 향후 5년 간 추가 지원을 약속했다. 먼저 기존에 계획됐던 국비 4599억원에 958억원을 더해 총 5557억원을 투입키로 했다. 반면 현실화 가능성이 낮고 주민 효용이 적다고 판단된 국제관광휴양단지 사업은 제외했다. 백령도에 컨벤션센터, 대형호텔, 골프장 등 휴양시설을 건립한다는 계획을 백지화 한 것이다. ■주민 삶 밀접한 사업으로 개편 대신 실제 투자가 가능한 사업 위주로 개편했다. 매달 5~10만원을 지급하는 정주생활지원금, 노후주택 개량사업, 해상운송비 지원, 슬레이트 지붕개선, 방과 후 돌봄학교 운영 등을 지속 지원한다. 의료시설이 열악한 서해 5도 지역을 선회하는 200t급 병원선도 신규 건조한다. 대청도 복합커뮤니티센터도 신축하고 조림사업 등도 추진한다. 주민 생활편의를 위해 공공하수도를 건설하고 소각시설도 증설한다. 생활자원 회수센터, 음식물 쓰레기 처리시설 등도 확충하기로 했다. 농·어업 분야 소득 증대를 위해 노후 농기계 교체, 노후어선 장비 개량, 해저 쓰레기 수거, 꽃게 등 수산종자 생산시설 구축 사업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백령공항 건설, 연평도항 건설, 백령항로 대형 여객선 도입 지원 등 지역 주민의 숙원사업이지만 추가 검토가 필요한 과제는 중장기적으로 검토·추진키로 했다. 이승우 행안부 지역발전정책관은 "부처간 이견에도 불구하고 총리실의 조정을 통해 어렵게 마련되 계획인 만큼 향후 5년간 부처별 당초계획이 충실히 이행되도록 계속해서 관리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2020-07-20 14:07:48경기도 부천시는 오는 28일 오후 3시 시청 어울마당에서 ‘제3회 부천 종교음악제’를 개최한다고 25일 밝혔다. 종교음악제는 종교간 소통과 화합을 위해 열리는 행사로 기독교, 불교, 천주교, 원불교 등 부천지역 4대 종단 종교지도자들과 시민들이 참석한다. 이날 행사에는 내동교회, 석왕사, 천화사, 소사본3동성당, 원불교오정교당 등 5팀 280여명의 성가대와 합창단이 참가한다. 또 서도소리보존회가 ‘야월선유가’와 ‘연평도난봉가’로 행사의 개막을 알리고 CTS부천소년소녀합창단이 ‘나는 알아요’와 ‘뚱보새’ 등 주옥같은 노래를 선사한다. 부천시립합창단은 ‘음악은 언제나 당신곁에’, ‘Ritmo’, ‘부천’ 등 멋진 하모니로 대미를 장식한다. 부대행사로 시청 로비와 출입구에서는 박물관 전시회, 전통음식(꽃차, 꽃떡)과 전통공예(단청, 목공)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kapsoo@fnnews.com 한갑수 기자
2017-10-25 10:14:20"재해·재난 구호활동을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국내 자연재해 피해 구호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정부로부터 유일하게 권한을 부여받아 활동하고 있는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의 박영진 사무총장(58·사진)은 24일 "민간 구호단체들을 제대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고 보기 힘들다"면서 "커다란 공공장소에 수많은 사람이 장기간 머무는 재해 현장에서는 체계적인 관리가 안 되면 구호활동도 중구난방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도 사고 발생 초기에는 민간 봉사단체들의 활동에 혼선이 있었다. 박 사무총장은 "민간기구들이 밥차, 세탁차 등을 가지고 현장에 몰려들었지만 통제가 되지 않았다"면서 "담당 구역이 나뉘어 있지 않아 주차 공간을 찾기 위해 주위를 배회하기도 했고 필요 이상의 음식이 만들어지기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후에는 진도군청 공무원들이 나서 현장관리가 이뤄졌지만 초기부터 구호활동을 진두지휘할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생존자 구조활동의 체계를 갖추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이 박 사무총장의 설명이다. 그는 자원관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구호물품도 바로 현장에 보내는 것이 아닌 정해진 물류기지에서 조절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 박 사무총장은 "현장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비정부기구(NGO) 활동도 있다"면서 "열악한 환경에서 누구도 돌보지 않는 자원봉사자들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는 지난 1961년 신문사와 방송사, 사회단체가 함께 만든 민간 구호기관이다. 국내 자연재해 피해 구호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정부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아 활동을 하고 있다. 박 사무총장은 주한 유니세프 대표부 상무관을 거쳐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대외담당관, 기업제휴국장을 역임했다. 이후 지난 2012년부터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몸담고 재해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다. 박 사무총장은 협회의 주요 활동에 대해 "재난을 당한 이재민에게 물질적 지원을 한다. 물질적 지원 가운데 가장 중요한 현금은 물론 대피기간 생활의 편의와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정한 규격에 맞는 응급구호키트도 제공한다"고 말했다.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는 최근엔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에게 임시주택 지원 사업도 하고 있다. 임시주택은 지난 연평도 포격 때 이재민들을 위해 처음 사용됐다. 박 사무총장은 "주로 이재민이 발생하는 농촌지역에서는 주민들이 거주지를 떠나려 하지 않아 임시주택을 지었다"며 "약 18㎥ 크기의 조립주택으로 성인 2~3명이 생활할 수 있고 화장실·부엌 등의 생활시설도 갖췄다. 최대 1년까지 사용한 후 반납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5월 15일부터 오는 10월 15일까지 6개월은 여름철 자연재난 대책기간으로, 협회가 가장 분주해지는 기간이다. 이때 협회 직원들은 주말 당직근무를 하며 비상사태에 대비한다. 지난번 태풍 '너구리'가 북상했을 때도 워크숍을 취소하고 비상근무를 했다. 30년 가까이 유니세프에서 근무했던 박 사무총장은 이제 국내 재해구호단체들도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우리나라는 지난 1960~1970년대와 달리 자연재해로 인한 인명피해가 현저히 줄어든 만큼 어느 정도 기반을 갖췄기 때문에 해외 지원활동 폭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박 사무총장은 "우리나라도 과거 전쟁이나 수해를 입었을 때 해외 구호단체들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던 만큼 이제는 피해를 당한 해외 이재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gmin@fnnews.com 조지민 기자
2014-07-24 17:37:22김연아가 지난 2010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서 환상적인 연기를 펼치고 있다. 김연아는 한국 피겨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 역사상 최고 점수인 78.50을 기록했다. 현 채점 제도에서 세계신기록이다. 올댓스포츠 제공 2000년 이후 대한민국은 큰 변화를 겪어 왔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미국발 금융위기, 정보기술(IT) 버블 붕괴, 9·11테러, 가계 부실, 집값 하락, 내수경기 침체, 세월호 참사 등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다사다난했다. 이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도 명멸했다. 파이낸셜뉴스는 창간 14주년을 맞이하여 창간 이후 21세기 대한민국을 움직였던 사람들의 어제와 오늘을 14회에 걸쳐 조명해본다.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 따고 싶어요." 지난 2000년 11월 30일 방영된 한 방송사의 뉴스에서 앳된 소녀가 말했다. 인터뷰는 처음인 듯 시선은 카메라를 쳐다보지 못했다. 자막에는 '김연아 신흥초등 4년'이라고 나왔다. 10년 뒤인 2010년 그 소녀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피겨계에 한 획을 그으며 밴쿠버 올림픽에서 역대 최고 기록으로 '피겨 여왕'에 등극한다. ■2010년 대한민국을 녹였다 "78.50. 쇼트프로그램 역사상 최고의 점수입니다. 현 채점제도에서 세계신기록입니다." 2010년 '007 메들리'에 맞춘 김연아의 연기가 끝나고 점수가 발표되자 미국 NBC의 해설위원은 마치 자국 선수가 우승이라도 한듯 목소리를 높였다. 김연아는 프리스케이팅 종목에서도 150.06점을 받으며 합계 228.56점이라는 전무후무한 점수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피겨 여왕, 피겨계의 신, 피겨계의 비욘세, 퀸 연아 등. 세계 각국 외신들은 지난 5월 김연아의 은퇴를 아쉬워하며 경쟁적으로 경의를 표했다. 앞서 '비엘만 스핀'의 창시자인 스위스의 데니스 비엘만은 영국의 로빈 커슨스, 러시아의 예브게니 플루셴코 그리고 김연아를 역대 가장 완벽한 스케이터로 꼽았다. 미국 피겨 전문 칼럼니스트인 제시 헬름스도 최근 한 칼럼을 통해 "소냐 헤니, 페기 플레밍, 자넷 린, 도로시 해밀, 김연아가 역대 최고의 피겨 전설이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일부 팬은 김연아를 '전설 위의 전설'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김연아는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 피겨계에 한 획을 그은 별이 됐다. 김연아는 가장 듣기 좋은 수식어로 '2010 밴쿠버 올림픽 챔피언'을 꼽았다. 가장 싫어하는 별명은 '피겨 요정'으로, 그 이유는 '손발이 오글거리기 때문'이란다. ■꿈과 노력으로 일군 성취 김연아는 1996년 여섯 살에 처음 스케이트를 신었다. 김연아는 피겨와의 첫 만남을 '세렌디피티(전혀 뜻밖의 행운)'라고 회상했다. 군포 신흥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선수의 꿈을 키워 남다른 재능을 나타냈다. 한국 피겨 스케이터로서는 처음으로 열두 살에 트리플 점프 5종을 모두 완성했다. 처음 출전한 국제대회인 2002년 슬로베니아 트리글라브 트로피 대회 13세 이하 부문에서 우승했다. 중학교 1학년 때 국가대표가 된 김연아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ISU 주니어 그랑프리와 세계선수권에서 1위, 2위의 성적을 거뒀다. 이후 김연아는 은퇴하기까지 수많은 기록과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며 피겨의 여왕으로 군림했다. 김연아의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단어는 '꿈'과 '노력'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가장 영감을 준 책으로 호주의 전직 TV 프로듀서인 론다 번이 쓴 '시크릿'을 꼽았다. 책의 메시지는 이렇다. 세상에서 성공을 한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비밀이 있으며 그 비밀은 '끌어당김의 법칙', 즉 생각이 현실이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생각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생각이 장차 현실이 될 것이라고 믿으며 끊임없이 노력할 때 소망은 현실이 된다. 김연아는 자신의 재능과 노력은 '반반'이라고 밝혔다. 타고난 재능을 뒷받침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김연아의 식단만 해도 그렇다. 체중 조절을 위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빵과 떡볶이 등은 입에 대지 않는다. 하루 3시간씩 10년,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필요하다는 '1만시간'도 김연아가 빙상 위에서 보낸 시간과 비교하면 절반도 되지 않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발목 인대 부상, 2006년 말부터 이어진 고질적인 허리 통증, 2008년의 고관절 부상 등 여왕의 화려함 뒤에는 김연아가 감내한 고통의 시간이 함께 있다. ■인생 제2막 IOC위원 꿈꾼다 김연아는 지난 6월 3일 고려대학교 대학원 체육교육학과에 합격했다. 오는 9월 등록을 마치면 대학원생으로서 새출발하게 된다. 소치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싱글 판정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으나 큰 변수가 없는 한 결과가 바뀌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향후 거취에 대해 김연아가 구체적인 발언을 한 적은 아직 없다. 2018년 IOC 선수위원에 도전할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올해 러시아 소치올림픽에 출전한 이유도 IOC 선수위원이 되기 위한 자격을 얻기 위해서였다. 2018년 선수 투표를 통해 상위 1·2위에 들면 IOC 선수위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2016년 하계올림픽에서 진종오나 장미란 선수가 선수위원으로 선출되면 규정상 자격을 잃게 된다. 만약 IOC 선수위원의 꿈이 무산되면 현재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수행하고 있는 IOC 일반위원 자리를 노려볼 수도 있다. 이 회장의 임기는 2022년까지이지만 이 회장의 건강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대학원 졸업 후 피겨 해설가나 후진 양성에 전념하거나 혹은 김연아의 방송계 진출도 가능한 대안 중 하나로 보인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2014-07-07 17:02:432000년 이후 대한민국은 큰 변화를 겪어 왔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미국발 금융위기, 정보기술(IT) 버블 붕괴, 9·11테러, 가계 부실, 집값 하락, 내수경기 침체, 세월호 참사 등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 이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도 명멸했다. 파이낸셜뉴스는 창간 14주년을 맞이하여 창간 이후 21세기 대한민국을 움직였던 사람들의 어제와 오늘을 14회에 걸쳐 조명해본다. "나는 성실과 신용을 좌우명으로 삼고 오로지 일하는 보람 하나로 평생을 살았다. 좋은 옷이나 음식, 물건에 한눈 팔 겨를도 없이 그저 일이 좋아 일과 함께 살았다. 타고난 일꾼으로서 열심히 일한 결과가 오늘의 나일 뿐이다. 이 땅에 태어나서 내가 물려줄 유산은 노동에 대한 소박하다면 소박한 내 생각이다. 우리 젊은이들이 앞날을 개척해 가는 데 이러한 내 생각과 지나온 삶이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장강은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듯 나아간다)이라 하지 않는가. 내 후대는 앞으로 나보다 더 나아질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그것이 내 간절한 희망이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 자서전(이 땅에 태어나서·1997년)의 마지막 글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도전과 열정, 개척정신은 세월이 지날수록 단단해진다. 대한민국 경제사에 실천가로서 그가 그은 획은 크고 깊다. 성장 동력을 잃어가는 오늘의 대한민국에 그의 울림이 목덜미를 내리친다. 2001년 3월 21일 정주영 전 명예회장은 타계했다. 향년 86세. 당시 서울중앙병원(현 서울아산병원)에서 아들인 몽구, 몽헌, 몽준씨가 임종을 지켰다. 장례는 그가 한평생 검소하게 살았던 서울 청운동 자택에서 가족장으로 치렀다. 파란만장한 삶을 뒤로하고 경기도 하남 창우리 양지 바른 곳에 잠들어 있다. 그의 호는 아산(峨山)이다. ■아산이 남긴 가치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나 맨손으로 기업을 일으켜 세우기까지 수많은 도전과 시련이 그의 삶이었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대한민국 경제의 기틀을 놓은 아산의 삶을 두고 "스스로 땅을 찾아 말뚝을 박은 사람"이라고 했다. 아산의 기업가정신은 산업보국(産業報國)으로 요약된다. 세계 조선사에 한국인의 기상을 심어준 울산조선소(현대중공업) 건설,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긴 중동 대역사(大役事), 서해안 지도를 바꾼 서산 간척사업 등은 그가 이뤄낸 역작들이다. 불가능할 것이라 여겼던 88서울올림픽도 그가 유치위원장을 맡아 1981년 '바덴바덴의 기적'을 이뤄냈다. 아산은 "이 나라 경제가 지극히 어려워서 내일 부도가 날까, 모레 부도가 날까 할 때, 우리는 중동의 미개척 지역에 나갔다. 하나로 뭉쳐 사력을 다해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 나라의 어려운 외채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조를 했다"고 했다. 통일을 바라며 마지막 열정을 쏟은 대북사업은 미완으로 남아 있다. 1998년 6월 16일 소 500마리를 싣고 군사분계선을 넘은 '소떼 방북'은 남북 민간교류의 물꼬를 텄다. 그의 나이 83세였다. 3개월 뒤에 금강산을 오가는 현대 금강호가 출항했다. 하지만 정권 교체 이후 남북 긴장관계가 고조되면서 6년째 멈춰서 있다. 아산은 한평생 검소한 삶을 살았다. 아산은 인왕산 아래 지은 청운동 새집에 들면서 "옛날 쌀가게 시절 남의 집의 좁은 방에서 엉덩이와 무릎이 구멍 난 옷을 누벼 입고 살던 시절을 생각하면 이 얼마나 큰 호사인가"라고 했다. 청운동 집에 있는 '금성(GoldStar)' 상표의 20년 된 낡은 TV와 닳고 닳은 책장 등 소박한 살림살이는 그를 닮았다. 구두 밑창은 몇 번을 고쳐서 신고, 와이셔츠는 깃, 소매 등을 기워서 입었다. 아산의 집에 든 도둑이 도리어 부인에게 화를 내고 돌아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현대가의 변화 아산이 타계한 지 13년이 지났다. 거인(巨人)은 쓰러졌지만, 그가 이뤄낸 가치는 단단한 뿌리가 되었다. 아산은 1946년 4월 수차례 실패를 딛고 서울 중구 초동에 '현대자동차공업사'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그것이 '현대'라는 상호의 시작이었다. 이후 현대는 건설,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에 뛰어들어 그룹을 일으켰다. 아들들이 장성하자, 아산은 1992년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그해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낙마했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현대그룹은 시련을 맞았다. 2000년 3월, 이른바 '왕자의 난'을 겪으며 형제들은 반목했다. 정몽구, 몽헌 회장은 경영권 다툼을 벌였다. 그러는 사이 모기업과 다름없는 현대건설은 유동성위기를 맞았다. 아산이 타계하고, 더 큰 아픔이 찾아왔다. 2003년 8월 4일 이른 아침, 대북송금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던 정몽헌 회장이 돌연 타계했다. 현대가(家)는 비극을 이겨냈다. 범(汎)현대의 이름으로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그룹은 각자의 길에서 본격적인 2세 경영을 꽃피웠다. 현대차그룹은 10여년 만에 글로벌 5대 자동차회사로 성장했다. 중국, 브라질, 인도, 미국 등에 자동차 생산기지를 구축했다. 부친의 숙원이었던 종합제철소의 꿈도 이뤘다. 지난해 충남 당진에 쇳물을 생산하는 제철소를 완공, 자동차사업과 함께 성장의 기틀을 갖췄다. 우여곡절 끝에 잃어버렸던 현대건설도 다시 품에 안았다. 1972년 3월, 울산 앞바다 모래사장에서 기적을 일궈냈던 현대중공업은 현재 세계 1위의 조선사로 성장했다. 울산 조선소 착공 40년 만인 2012년, 선박 인도 1억t(1805척) 돌파라는 대기록을 세계 최초로 이뤘다. 아산이 세웠던 정유사업(현대오일뱅크)도 되찾았다. 현대그룹은 정몽헌 회장의 갑작스러운 타계 이후 사세가 위축됐다. 해운사업(현대상선)이 장기침체를 겪고 대북사업은 멈춰 섰다. 현대증권, 현대상선 액화천연가스(LNG) 운송사업 매각 등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창업주의 뜻이 담긴 대북사업에 대한 현대그룹의 의지는 변함이 없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 ■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삶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삶은 한국 경제사와 맥을 같이한다.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정주영은 1915년 강원 통천군 아산리에서 가난한 농군의 6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정주영은 생계를 위해 농사일을 도와야 했다. 일제의 수탈이 극에 달하면서 죽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늘 배가 고팠다. 이곳에선 꿈이 없다는 생각에 무작정 가출을 시도했다. 원산으로, 서울로 두 차례 집을 나갔지만 아버지에게 붙들려 돌아와야 했다. 정주영은 세 번째 가출에 성공한다. 소 판 돈 70원을 손에 쥐고서였다. 인천에서 막일꾼으로 품을 팔던 그는 복흥상회라는 쌀가게에 점원으로 취직했다. 그는 성실하게 일했다. 쌀가게 주인의 신뢰를 얻으면서 그 가게를 인수한다. 그의 첫 홀로서기였다. 1938년 쌀가게 이름을 경일상회로 바꿨다. 고등학교 기숙사에 쌀을 대면서 돈을 벌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조선총독부의 쌀 배급제로 가게는 문을 닫았다. 이때 서울 최대의 경성서비스공장 직공이던 이을학씨를 만난 게 전기가 됐다. 정주영은 1940년 현대자동차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 정비업체인 아도서비스공장을 설립했다. 하지만 1943년 일본이 강제 합병시키는 바람에 문을 닫게 됐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1946년 서울 초동에 현대자동차공업사 간판을 걸고 자동차 수리공장을 다시 시작했다. 이듬해인 1947년 건설업체인 현대토건사를 세워 3년 후 현대자동차공업사와 합병했다. 현대그룹의 모체가 된 현대건설의 탄생이었다. 6·25전쟁 때 미군 숙소를 짓는 일로 큰돈을 벌었다. 전쟁이 끝난 뒤 한강 인도교 복구 공사 등을 수주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낸다. 정주영은 1965년 태국 나라티왓고속도로 공사를 따내며 해외 건설시장에 진출했다. 국내 처음이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1968년 경부고속도로 건설도 주도했다. 2년5개월이라는 세계 최단시간 완공 기록을 세운다. 1976년 20세기 최대 건설사업으로 불린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따내며 중동 대역사의 꽃을 피운다. 이에 앞서 1966년 현대자동차를 설립한 정주영은 1975년 최초의 국산차 모델인 '포니'를 만들어 수출을 시작했다. 1986년 국내 처음으로 자동차의 본고장인 미국시장에 '엑셀'을 수출, 대성공을 이뤘다. 1972년 정주영은 울산 미포만의 백사장 사진을 들고, 거북선 그림이 있는 500원권을 내밀며 유럽에서 26만t급 대형 유조선 2척을 수주했다. 현대중공업의 출발이었다. 조선소도 없이 배를 수주한 그의 뚝심은 세계 조선사에서도 전무후무한 신화로 남아있다. kim091@fnnews.com 김영권 기자
2014-06-24 17:19:01대통령 소속 문화융성위원회는 27일 오후 청와대 안뜰인 녹지원에서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아리랑 공연'을 개최했다. 이날 공연은 아리랑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1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박근혜 대통령도 관람석에 앉아 끝까지 공연을 지켜봤다. 공연은 우리 민족 고유의 음악인 아리랑을 국악 뿐만 아니라 재즈, 클래식, 힙합, 케이팝(K-POP) 등 다양한 장르로 연주하는 형태로 진행됐으며 공연에 참여한 인사들도 장르별로 다양했다. 국악인 황병기 교수를 비롯해 인간문화재 안숙선·이춘희, 국악인 박애리, 가수 김장훈·김재중·아이유·팝핀현준, 재즈보컬리스트 웅산,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 강원도 인제남초등학교의 아카펠라 그룹 한샘가온, 다문화 자녀합창단 레인보우 등이 다채로운 아리랑 연주와 노래를 이어갔다. 공연 마지막 순서로 오케스트라와 모든 출연진, 객석의 모든 참석자들이 함께 합창하는 '우리의 아리랑'이 진행됐다. 박 대통령도 무대에 올라 함께 노래를 불렀다. 박 대통령은 록 버전의 아리랑을 부르던 김장훈씨가 무대에서 내려와 마이크를 건네자 20초 가량 노래를 불렀으며, 김씨의 하이파이브 요청에 손을 들어 호응했다. 또 김씨가 자신의 앞으로 오며 "위험한 것 아니니 경호원 분들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말하자 크게 웃기도 했다. 이날 공연에는 문화계 인사와 주한외교사절, 나눔실천자, 천안함·연평도 사건 피해 가족, 외국인 유학생, 예술계 고등학생, 자율방범대, 파독광부, 지역풀뿌리 언론 관계자, 생활공감모니터링단 등이 초청됐다. 또 청와대 주변 주민과 문화융성위·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23∼25일 신청을 받아 선정된 국민까지 1200여명이 녹지원을 가득 메웠다. 한편 공연이 시작되기에 앞서 녹지원에서는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이사장이 마련한 한식 궁중요리전시전이 열려 구절판, 홍시죽순채, 신선로, 색방울증편, 각색다식, 꽃약과, 오색쌀강정 등 궁중음식이 소개됐다. haeneni@fnnews.com 정인홍 기자
2013-10-27 21:3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