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등 새 지도부가 28일 평양 금수산기념궁전 앞에서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영결식에서 영구차 옆을 호위하며 걸었다. 영구차 오른쪽에선 김 부위원장 뒤로 장성택, 김기남, 최태복이, 김 부위원장 건너편 쪽에서는 리영호, 김영춘, 김정각 등이 영구차를 호위했다. 이들은 김 위원장의 사망으로 공백이 생긴 북한 권력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검은 코트를 입고 차량의 오른쪽 맨앞에서 걸은 김 부위원장은 거수경례를 하면서 의장대 사이를 지났다. ktitk@fnnews.com 김태경 기자
2011-12-28 15:04:56▲ 29일 오전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대통령 영결식을 마치고 권양숙여사와 노건호씨가 영구차를 따라나서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09-05-29 15:27:42[파이낸셜뉴스] 폴란드에서 장례식장 영구차로 운구되던 시신이 도로에 떨어져 일대가 교통 체증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21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 가디언 등 복수의 언론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 18일 오후 7시께 폴란드 스탈로바볼라시 도심에서 벌어졌다. 최초 목격자인 남성은 운전하던 중 도로 한복판에 누워있는 여성을 보고 처음에는 교통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오해했다. 그러나 그는 이내 그 여성이 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경찰 조사 결과, 해당 시신은 폴란드의 한 장례식장의 영구차가 시신을 운구하는 과정에서 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장례식장 관계자는 이후 성명을 통해 "고인의 시신을 운구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기술적 결함으로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라고 설명했다. 장례식 차량의 전기식 테일게이트 래치(잠금장치)에 기술적 고장이 발생해 시신이 도로에 떨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어 "사건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이번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겠다“라며 "이런 사건이 우리 회사에서 발생한 것은 처음이며, 향후 이와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차량 점검과 직원 교육을 재실시하는 등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라고 강조했다.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2024-10-23 06:52:43[파이낸셜뉴스] 영국에서 가장 무거운 남성이 이달 초 사망한 가운데 시신의 크기가 너무 커 제대로 된 장례식을 치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더선에 따르면 몸무게가 약 318㎏에 달하던 제이슨 홀턴(33)은 이달 초 장기부전과 비만으로 숨졌다. 제이슨 어머니 레이사(55)에 따르면 제이슨은 자신의 시신을 화장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시신이 너무 큰 탓에 현재 안치실에도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레이사는 “만약 제이슨이 땅속에 묻히게 된다면 단일 묘지가 아닌 이중 묘지를 써야 한다”며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많은 돈이 든다”고 토로했다. 제이슨이 자택에서 사망한 뒤 소방대원 6명은 특수 구급차를 이용해 제이슨의 시신을 병원으로 이송했다. 레이사는 “한 장례식장에서 제이슨의 몸무게를 물어봤는데, 시신 자체가 너무 크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며 “제이슨이 영구차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다행히 한 장례업체가 제이슨을 위해 더 큰 관을 제공하며 시신을 운구할 방법을 알아냈다고 연락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생전 제이슨은 몸무게가 약 412.7㎏였던 칼 톰프슨이 2015년 사망한 뒤 영국에서 가장 ‘무거운 사람’으로 알려졌다. 그는 10대 시절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며 과식하기 시작하면서 살이 쪘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 2020년에는 병원에 가기 위해 대형 크레인에 의해 집 밖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당시 그는 침대 2개를 이어 붙여 누워서만 생활하다 림프부종을 앓기도 했다. 제이슨은 집 밖으로 나가기 위해 대형 크레인과 소방대원 30명의 도움을 받았다. 대원들은 제이슨이 살던 건물 3층 창문을 제거, 그를 크레인에 고정한 뒤 지상으로 옮기는데 7시간을 쏟아부었다. 병원으로 옮겨진 제이슨은 더선과 인터뷰에서 “계속 먹다 보니 체중이 불었고 한치도 움직이지 못할 정도가 됐다”며 “내 삶에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꼈고, 집 안에서 그냥 죽기를 기다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2024-05-07 13:32:1219일(현지시간) 거행되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은 지난 8일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은 스코틀랜드 밸모럴 성부터 시작해 영면에 들어갈 윈저 궁까지 총 280km를 이동하면서 진행될 예정이다. 19일 오후 6시 44분(이하 한국시간) 여왕의 관은 런던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영국 해군 수병 142명이 끄는 수레로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옮겨지며 찰스3세 국왕과 왕세손 윌리엄, 해리 왕자가 뒤따르게 된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군악대, 영국 공군과 구르카 병사들이 행사를 이끈다. 수레는 1952년 여왕의 부친인 조지 6세의 장례식에 사용됐다. 지난 1979년 여왕의 남편인 필공의 외삼촌 마운트배튼 경의 장례식에 마지막으로 등장했다. 7시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 예배가 열린다. 여왕은 이곳에서 1947년 결혼식, 1953년 즉위식을 가졌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군주의 장례식이 열리는 것은 18세 이후 처음인 것으로 전해졌다. 8시15분부터 여왕의 군은 런던 시내에서 버킹엄궁 앞을 거쳐 하이드파크 코너로 이동하며 시민들은 지정된 장소에서 운구행렬을 볼 수 있다. 캐나다 기마경찰이 이끌게 되며 영국과 영연방 소속 군과 경찰도 동참한다. 찰스 국왕을 비롯한 왕가는 도보 또는 차량으로 같이 이동한다. 여왕의 관은 9시경 웰링턴 아치에서 새 영구차로 옮겨져 그녀가 생전에 좋아하던 윈저 궁으로 향하게 된다. 여왕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이곳으로 피신했으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도 여기서 주로 지냈다. 20일 자정 윈저 성내 성 조지 교회에서 예배가 열린다. 이 교회는 해리 왕자 부부가 2018년 결혼식을 올렸던 곳이며 지난해 먼저 세상을 떠난 여왕의 남편 필립 공 장례식도 이곳에서 거행됐다. 약 800명으로 줄어든 추모객이 모인 가운데 관은 지하로 내려지며 여왕이 생전에 요청한 파이프 연주와 영국 국가를 제창하게 된다. 새벽 3시30분경 가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여왕의 관은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 필립 공과 나란히 안장될 것이라고 BBC는 전했다. jjyoon@fnnews.com 윤재준 기자
2022-09-19 16:25:58[파이낸셜뉴스] 지난 8일(현지시간)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 절차가 개시됐다.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영국 왕실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 절차를 ‘유니콘 작전’으로 이름 짓고 스코틀랜드에서 런던으로 관을 옮기며 열흘 간 장례미사 및 조문 등을 치른다. 영국 왕실은 이미 여왕의 서거 상황을 가정해 대응 계획을 준비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니콘 작전은 여왕이 런던이 아닌 장소에서 서거할 경우를 대비해 세웠던 작전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왕의 서거 소식이 저녁 시간대인 점을 감안, 영국 왕실은 이튿날인 9일(현지시간)부터 열흘간의 장례일정을 치르기로 했다. 장례 일정 첫 날 여왕의 관은 그가 생을 마감한 밸모럴성에 머물 예정이다. 10일에는 여왕의 장남이제 왕세자였던 찰스 3세가 공식 군주로 선포된다. 이후 11일에는 여왕의 관이 스코틀랜드 의회가 있는 에딘버러 홀리루드 궁전으로, 12일에는 성 자일스 대성당으로 옮겨진다. 성 자일스 대성당에서는 장례 미사가 거행된다. 여왕의 관은 대성당에서 24시간 동안 대중에 공개된 뒤 12일 늦은 밤 런던으로 이동, 13일에는 버킹엄궁에 도착한다. 14일에는 버킹엄궁 웨스트민스터 홀에 관이 놓여지고 나흘간 일반인들이 조문을 받는다. 16일부터 18일까지는 찰스 3세가 해외 왕가 인사들을 맞이할 예정이다. 국장이 치러지는 날은 19일이다. 여왕의 관은 이날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사원으로 옮겨지고 전국에서는 2분 동안 묵념이 실시된다. 1시간 예식 후 여왕의 관은 영구차에 실려 윈저성에 도착하고 윈저성 내 성조지 교회에서 예식과 함께 영면에 들게 된다. kjh0109@fnnews.com 권준호 기자
2022-09-10 00:57:17[파이낸셜뉴스]고 백선엽 장군이 15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앞서 육군은 이날 서울아산병원에서 고(故) 백선엽 장군의 영결식을 거행했다. 이날 영결식은 장의위원장인 서욱 육군참모총장이 주관했다. 영결식에는 서 총장을 비롯, 고인의 유가족과 정경두 국방부장관, 박한기 합동참모본부 의장,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 역대 육군참모총장, 보훈단체 관계자 등 70여 명이 참석했다. 특히 고 백선엽 장군을 '영웅'으로 칭송해 광복단체로부터 비판받고 있는 로버트 에이브럼스 연합사령관도 참석했다.에이브럼스 사령관은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리는 안장식에도 참석했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 국회 국방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 등도 자리했다. 서 총장은 조사에서 "작년 5월 장군님을 예방했을 때 더 강한 육군을 만들어 달라시던 그 말씀은 아직도 제 귓가에 맴돌고 있다"며 "장군님이 사랑하는 전우들과 함께 피와 땀과 눈물로 지킨 대한민국을 굳건하게 지켜나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1사단장을 지낸 송영근 예비역 중장은 추도사에서 "6·25 전쟁 당시 다부동 전투 승리를 이끌었던 고인의 공로를 상기시켰다. 그는 "당시 패배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고 저나 여러분도 이 자리에 없었다"며 "국가장으로 동작동 서울현충원에 모시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조의를 표했다. 1사단은 고인이 6·25 당시 이끈 부대다. 이어 에이브럼스 사령관도 추도사에서 "철통같은 (한미)동맹의 창시자 중 한 분이다"며 "한국전쟁 지상 전투의 가장 절망적이고 가장 암울한 순간에서 유엔군 전력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한국군을 이끌었고, 한국군의 기초를 다진 분"며 고인을 기렸다. 그는 고인에게 "전우여, 안녕히 가시라(Farewell, friend)"고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역대 연합 사령관들도 추모 영상을 통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존 틸러리 전 사령관은 고인이 "한미동맹을 지원하고 장병들을 사랑하는 군인 중의 군인이었다"며 "백선엽 대장의 전설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월터 샤프, 제임스 셔먼, 빈센트 브룩스 등 다른 전임 사령관들도 잇따라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부인 노인숙 여사를 시작으로 주요 참석자들의 헌화 및 분향이 끝난 뒤 영구차는 봉송대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안장식이 열리는 대전현충원으로 향했다. 대전현충원 장군 2묘역에 도착한 고인의 안장식도 서 총장 주관으로 열렸다. 안장식에는 고인의 유가족과 박삼득 국가보훈처장,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 에이브럼스 사령관, 역대 육군참모총장, 보훈단체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허토 의식에서는 6·25전쟁 당시 다부동 등 8대 전장터의 흙이 쓰였다. 육군은 빈소 내부에 헌정 영상과 추모사진을 게시했다. 또 각급 부대에 추모 공간을 구성하고 인터넷·인트라넷(내부망)에 사이버 추모관을 개설했다. dikim@fnnews.com 김두일 기자
2020-07-15 14:31:27[파이낸셜뉴스]고(故) 백선엽 장군의 영결식이 15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엄수됐다. 이날 영결식은 장의위원장인 서욱 육군참모총장이 주관했다. 영결식에는 서 총장을 비롯, 고인의 유가족과 정경두 국방부장관, 박한기 합동참모본부 의장,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 역대 육군참모총장, 보훈단체 관계자 등 70여 명이 참석했다. 특히 고 백선엽 장군을 '영웅'으로 칭송해 광복단체로부터 비판받고 있는 로버트 에이브럼스 연합사령관도 참석했다.에이브럼스 사령관은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리는 안장식에도 참석한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 국회 국방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 등도 자리했다. 서 총장은 조사에서 "작년 5월 장군님을 예방했을 때 더 강한 육군을 만들어 달라시던 그 말씀은 아직도 제 귓가에 맴돌고 있다"며 "장군님이 사랑하는 전우들과 함께 피와 땀과 눈물로 지킨 대한민국을 굳건하게 지켜나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1사단장을 지낸 송영근 예비역 중장은 추도사에서 "6·25 전쟁 당시 다부동 전투 승리를 이끌었던 고인의 공로를 상기시켰다. 그는 "당시 패배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고 저나 여러분도 이 자리에 없었다"며 "국가장으로 동작동 서울현충원에 모시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조의를 표했다. 1사단은 고인이 6·25 당시 이끈 부대다. 이어 에이브럼스 사령관도 추도사에서 "철통같은 (한미)동맹의 창시자 중 한 분이다"며 "한국전쟁 지상 전투의 가장 절망적이고 가장 암울한 순간에서 유엔군 전력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한국군을 이끌었고, 한국군의 기초를 다진 분"며 고인을 기렸다. 그는 고인에게 "전우여, 안녕히 가시라(Farewell, friend)"고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역대 연합 사령관들도 추모 영상을 통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존 틸러리 전 사령관은 고인이 "한미동맹을 지원하고 장병들을 사랑하는 군인 중의 군인이었다"며 "백선엽 대장의 전설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월터 샤프, 제임스 셔먼, 빈센트 브룩스 등 다른 전임 사령관들도 잇따라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부인 노인숙 여사를 시작으로 주요 참석자들의 헌화 및 분향이 끝난 뒤 영구차는 봉송대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안장식이 열리는 대전현충원으로 향했다. dikim@fnnews.com 김두일 기자
2020-07-15 11:23:32[파이낸셜뉴스]고(故) 백선엽 장군(예비역 육군 대장)이 6·25전쟁 당시 전투복을 입고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한다. 육군에 따르면 백 장군은 발인(15일) 하루 전인 14일 오후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리는 입관식에서 6·25전쟁 당시의 전투복을 수의로 입는다. 당시 국군은 자체 전투복이 없어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 전투복을 입고 전쟁을 치렀다. 유족측은 골동품 시장에서 1944년 미군 전투복을 직접 구매한 것으로 전해졌다. 백 장군은 유가족의 뜻에 따라 15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영결식에는 서욱 장의위원장(현 육군참모총장)이 주관, 오전 7시 30분 서울아산병원에서 유가족과 역대 육군참모총장 등이 참석한다. 또 백 장군이 과거 근무했던 합동참모본부, 육군본부, 1야전군(지상작전사령부), 1·2군단, 1·5사단 등의 부대기가 걸린다. 육군은 코로나19를 고려해 참석 인원을 최소화했다고 전했다. 서 총장의 조사에 이어 백 장군이 6·25전쟁 당시 지휘했던 1사단의 사단장이었던 송영근 예비역 중장이 추도사를 낭독한뒤 유가족 등 참석자 헌화 뒤 군악대의 조악을 끝으로 영결식은 끝난다. 이어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 차량을 따라 영구차는 오전 11시 30분 장지인 국립대전현충원에 도착, 장군 2묘역에서 서 총장 주관으로 백장군이 안장된다. 김판규 전 육군참모총장이 추모사를 낭독하고, 다부동 참전용사 4명과 육군 장병 4명이 백 장군 묘에 허토한다. dikim@fnnews.com 김두일 기자
2020-07-14 12:52:08【파이낸셜뉴스 울산=최수상 기자】 고 심완구 울산시장에 대한 시민 영결식이 11일 오전 9시 울산시청 햇빛광장에서 열린다.울산시는 울산광역시 승격을 주도하고 울산 발전의 초석을 다진 고 심완구 시장을 시민들과 함께 기리고 애도하기 위해 시민 영결식을 치른다고 10일 밝혔다.장의위원회는 송철호 울산시장과 황세영 시의장, 전 울산시장들, 국회의원, 교육감, 울산큰두레 의장단, 울산민주화동지화 회장 등 16명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문중, 민주화동지회, 민우회, 구청장, 군수, 구군의회 의장, 울산큰두례 회원 등 159명이 위원으로 참여했다.장의집행위원회는 울산시 김석진 행정부시장과 조원경 경제부시장, 심규화 전 울산시체육회 사무처장, 이수석 전 울산시의회사무처장이 공동위원장을 맡아 유족들과 함께 영결식을 주도한다.영결식은 오전 9시 영구입장과 개식에 이어 국기에 대한 경례, 고인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해 약력 소개, 추모영상 상영으로 이어지며 송철호 울산시장의 조사와 황세영 울산시의장의, 김덕룡 ‘김영삼 민주센터 이사장’의 영결사가 있을 예정이다.영구차는 유족대표와 추모시 낭송, 조문객 도열 후 울산시청을 떠나 장지로 향하게 된다. 장지는 울산시 북구 선영이다. 심 전 시장의 빈소가 마련된 울산 동강병원 장례식장에는 연일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민선 초대 울산시장을 지내고 울산광역시 승격 후 첫 울산광역시장까지 역임한 고 심완구 전 시장은 향년 82세로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1938년 울산에서 태어난 심 전 시장은 부산고와 성균관대를 졸업했으며 1972년 신민당 총재 보좌역을 역임하며 정치에 입문했다.제12, 13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1985년 12대 총선에서는 울산 울주에서 민한당 후보로 출마해 당시 YS계 좌장 최형우 전 의원을 누르고 당선됐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는 울산 남구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이후 3선에 실패한 심 전 시장은 한국전력 경영 고문으로 일하다 1995년 7월 울산시장으로 취임해 2002년 6월 퇴임까지 민선 1·2대 시장직을 맡았다.이어 1997년 기초자치단체인 울산시가 경남도에서 분리돼 7월 15일 울산광역시로 승격되면서 첫 울산광역시장이 됐다.이듬해 시장 재선에도 성공한 심 시장은 울산 도시기반 시설을 확충에도 심혈을 기울였다.2002년 한일 월드컵 경기를 울산에 유치하고 신항만 개발사업도 이끌었다. 현재 100만 울산시민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도심 속 최대 생태공원인 울산대공원도 심 시장의 작품이다. 심 전 시장은 시장 재선 후인 1998년 11월 무릎육종암(살코마)을 앓아 미국에서 수술을 받기도 했으며 2001년 폐암으로 전이돼 다시 미국으로 치료를 받으러 가면서도 2002년 한일 월드컵 울산경기 등 지역 현안을 챙겨 눈길을 끌었다. 심 전 시장은 1998년 토지구획정리사업 인가 결정 등과 관련해 평창종합건설로부터 청탁과 함께 3억 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로 2002년 검찰에 구속 기소됐다. 그의 됨됨이를 아는 사람들은 심 시장의 결백을 인정하지만 2004년 11월 대법원은 징역 5년에 추징금 3억 원을 확정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 4주년 특별 사면된 심 전 시장은 지난해까지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현 송철호 울산시장이 이끄는 시정에 고견을 전하는 등 지역 정치와 행정계 원로로 활동해왔다. ulsan@fnnews.com 최수상 기자
2020-06-10 16:2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