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노상원씨(전 국군 정보사령관)가 무당을 약 30번이나 만나서 내린 결론이 계엄이라고 합니다. 무속신앙에 빠지면 현실을 무시하고 올바른 판단력이 없습니다. 한국교회가 무속신앙과 영적 전쟁을 할 필요가 생긴 것입니다."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가 한국 사회와 정계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마약·무속 등 다양한 중독 예방을 위한 사역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이 목사 "무속신앙과의 영적전쟁 할때 됐다" 큰 울림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11일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정치권에 있는 무속의 영향은 아주 심각하다"며 "기독교계에서는 무속 신앙과의 영적 전쟁을 해야 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 목사는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를 각종 '중독'이라고 판단했다. 마약·온라인·알코올 중독은 물론, 무속신앙에 지나치게 빠진 것도 심각한 중독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강경한 정치적 주장을 종교계 인물이 펼치는 것에 대해서도 "극단으로 가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며 "계엄 사태 때 핵심 인물(노상원 전 국군 정보사령관) 중 한 사람의 예를 보듯이 무속신앙에 빠지면 현실을 무시하고 올바른 판단력이 없어진다. 무속은 미래를 보지 못하고 어두운 길로 이끈다"고 지적했다. "극단 주의 우려해야.. 국민 대통합이 우리의 숙제" 강조 종교계 출신 인물이 정치 활동을 하며 강경한 주장을 펼치는 것에 관해서는 "성경에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했다. 극단으로 가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2·3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을 둘러싼 정치적 대립과 분열에 대해 "국민 대통합이 우리에게 가장 큰 숙제이고 문제 해결의 길"이라고 언급했다. 이 목사는 "우리나라의 망국병이 편 가르기라고 하는 병"이라며 "정권이 바뀌든지 어떻게 되든 간에 양극화된 이 사회를 어떻게 통합할지가 숙제다. 그 숙제를 해결하는 데 기독교계나 종교계가 한 마음 돼 같이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헌재의 탄핵심판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일각에서 이를 부정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해 "우리나라는 법치주의"라며 "어떤 결정이 나든 '악법도 법'이라는 말이 있듯이 법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목사는 정치적 분열 양상과 무속신앙 중독이 최근 교회 안에서도 나타나는 것에 경계했다. 그는 "종교는 사회를 통합하는 역할을 해야지, 극단으로 흐르면 안 된다"며 "그나마 올해 부활절은 의미가 깊은데, 교단 99% 이상이 함께하는 부활절 연합예배가 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교회가 그릇된 무속신앙과 영적 전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오죽하면 기독교인 중에 30%가 점집에 가봤다는 통계가 있다는데, 일단 이 30%만이라도 점집에 가지 않도록 만들어도 유의미하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향후 마약 중독 예방을 위해 다른 유관 기관과 협력해 사회적인 안전망 구축에 나설 방침이다. 이 목사는 "남경필 전 경기지사가 아들의 마약 중독 문제를 계기로 재활시설을 만들고 있다"며 "여의도순복음교회도 이 시설에 금전 및 인력을 전적으로 지원할 것인데, 일단 힘을 한군데 집중해서 재활에 성공한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출생 극복에도 교회가 앞장 이밖에 심각한 저출산 극복을 위한 지원과 다문화 가족 지원도 지속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앞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저출생 극복을 위해 지난 2012~2024년 신도들에게 총 61억원의 출산 장려금을 지급하고, 한부모 가족복지시설에 유모차 120대를 지원한 바 있다. 이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이미 신도가 첫째 아이를 낳으면 200만원을 지급하고, 둘째 아이는 300만원, 셋째 아이는 500만원, 넷째 아이부터는 1000만원 등을 지급하고 있다"며 "올해부터는 난임 부부를 위한 지원도 실시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끝으로 기자간담회에서 "성경에서는 극단으로 치우치지 말라고 했다"며 "교회는 단순한 예배의 공간이 아니라, 이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고 돌보는 사회적 공동체가 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5-03-11 16:18:13[파이낸셜뉴스] 미국에서 30대 여성이 어린 두 자녀를 달리는 차 밖으로 던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고로 생후 8개월 된 아기가 숨졌다. 10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LA) 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LA 경찰국은 이 사건의 용의자를 대니엘 존슨(사망·34)으로 특정하고 그의 소셜미디어(SNS) 등을 조사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존슨은 온라인에서 '대니엘 아요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점성술사다. 그가 운영하던 웹사이트와 연결된 엑스(X, 옛 트위터) 계정 팔로워는 10만4600명에 달한다. 해당 계정 메인 게시물에는 "깨어나라 깨어나라 종말이 왔다(THE APOCALYPSE IS HERE). 귀가 있는 모든 사람은 들어라. 당신이 믿는 것을 선택할 때가 지금이다" 등의 내용이 담긴 글이 고정돼 있다. 이 글은 지난 5일 작성됐다. 존슨은 이보다 앞서 지난 4일에는 일식에 관한 내용을 기록했다. 그는 "이 일식(eclipse)은 영적인 전쟁의 완벽한 본보기(epitome)"라며 "세계는 지금 분명히 변하고 있다. 당신이 한 쪽을 고를 필요가 있다면 당신의 생에서 옳은 일을 할 시간은 지금이다"라고 쓰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존슨은 개기일식이 일어난 당일인 지난 8일 오전 3시40분께 LA 카운티의 자택에서 동거남인 제이엘런 채니(29)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자신의 포르쉐 차량 조수석에 9세와 생후 8개월인 두 딸을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는 도로를 주행하던 중 차 문을 열고 두 딸을 차 밖으로 밀어냈다. 고속도로 한복판에 내던져진 생후 8개월 아기는 뒤에서 오던 차에 치여 숨졌고, 9세 딸은 살아남아 병원으로 이송된 뒤 치료받고 있다. 존슨은 아이들을 밀어내고서 30분쯤 뒤 인근의 시내 도로에서 시속 100마일(약 160㎞)이 넘는 속도로 차를 몰다 가로수와 충돌해 현장에서 숨졌다. 경찰은 이를 극단 선택으로 결론지었다. 존슨은 그동안 운영하던 웹사이트에서 자신이 3세 때 죽음에 가까운 경험을 한 뒤 샤머니즘의 길에 들어섰으며 "주술사(샤먼)와 의녀의 풍부한 혈통을 이어받아 영적인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했다"라고 소개했다. 또 "직관적 안내와 원격 치유, 점성술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어려움에 대한 총체적 치유에 이르는 근거 있는 접근법을 개발했다"라며 한국과 일본, 중국 등 14개 이상 지역의 구독자들을 도와 왔다고 홍보했다. 그는 또 이 사이트를 통해 주간 2.99달러(약 4000원)의 '오라 클렌즈'(aura cleans) 서비스와 월 150달러(약 20만5000원)의 '치유' 서비스를 제공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미국 등 북미 지역에서는 지난 8일 동부시간 기준 오후 2시7분쯤부터 개기일식이 멕시코 서부의 태평양 연안 마자틀란에서 시작돼 미국 남서부에서 북동쪽으로 대륙을 관통하며 파노라마처럼 순차적으로 진행됐다. 개기일식은 달이 지구와 태양 사이를 지나면서 태양 전체를 가리는 현상이다. 북미 대륙에서 약 7년 만에 관측되는 개기일식이었다. yuhyun12@fnnews.com 조유현 기자
2024-04-11 14:39:36전 세계 기독교인의 축일인 성탄절이 다가왔지만 정작 예수의 탄생지로 알려진 베들레헴에는 적막과 침묵이 감돌았다. 이스라엘은 성탄절 직전까지도 가자지구에서 치열한 교전을 벌였으며 미국에게 하마스 제거 전까지 전쟁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성탄절 기념행사 대거 취소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들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의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속해있는 베들레헴에서는 성탄절을 이틀 앞둔 23일(이하 현지시간)에도 축제 분위기를 찾을 수 없었다. 베들레헴에서 서쪽으로 약 70㎞ 떨어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지난 10월 7일 시작된 전투가 아직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들레헴은 해마다 성탄절이면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화려한 트리 점등식과 퍼레이드 등이 진행됐다. 도시의 명소인 구유 광장과 시장에는 관광객과 순례자가 넘쳐났고 예수 탄생 기념성당에는 예수가 태어난 곳으로 알려진 동굴을 보러 온 사람들이 몇 시간씩 줄을 섰다. 현지 팔레스타인 기독교인 모임의 회원인 마제드 이스하크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올해 들어 9월까지만 해도 150만명의 관광객이 베들레헴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이스하크는 10월 7일 사태 이후 "관광객이 정말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며 "관광객이 사라지면서 베들레헴시는 매일 150만달러(약 19억5450만원)의 손실을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나 하나니아 베들레헴 시장은 "경제가 마비됐다"고 말했다. 베들레헴시는 가자 주민들과 연대하는 의미에서 올해 공개 기념행사를 취소하기로 했다. 지난달 예루살렘의 여러 교회 총대주교와 수장들은 성명에서 신도들에게 '불필요한 축제 활동'은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들은 축하 행사 대신 "목회 활동과 성찬 의식에서 성탄절의 영적 의미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의 여정을 기려 예루살렘부터 베들레헴까지 이어지는 가톨릭 총대주교의 행렬도 규모가 크게 줄었다. 같은날 AFP통신은 인구 가운데 기독교도 비율이 40%가 넘는 레바논에서도 축제 분위기가 사라졌다고 전했다. 현재 레바논 남부에서는 가자지구 무장정파 하마스를 지원하는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교전이 이어지고 있다. AFP는 레바논 남부의 기독교인 마을인 클라야의 경우 올해 마을 인구의 60%만 남아있다고 전했다. ■하마스 축출 전까지 전쟁 계속 이스라엘은 성탄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작전을 계속했다. AP통신에 따르면 22일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에서는 2채의 주택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무너졌다. 해당 공습으로 유엔개발계획(UNDP)의 구호 담당 직원이었던 이삼 알 무그라비와 그의 직계가족을 포함해 그와 연관된 친척 76명이 숨졌다. AP는 이삼 가족을 포함하여 이날 공습으로 최소 90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UNDP는 성명에서 "이삼 가족의 죽음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며 "유엔과 가자지구의 민간인들은 표적이 아니다. 이 전쟁은 끝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가자지구 전쟁이 시작된 이후 유엔 직원이 매일 1∼2명씩 모두 130명 숨졌다면서 "유엔 역사상 보지 못했던 일"이라고 주장했다. 가자지구의 하마스 보건부는 23일 기준으로 지난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후 가자지구에서 발생한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누적 2만258명이라고 밝혔다. AP에 의하면 지난 10월 이전 가자지구 거주민 약 230만명 가운데 85%는 피란길에 올랐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를 축출하기 전까지 작전을 멈추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23일 소셜미디에 엑스(X)에 네타냐후가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스라엘은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라고 전했다. 미 백악관은 23일 통화 사실을 공개하면서 두 정상이 이스라엘군의 작전 강도를 낮추는 문제를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미 정부는 가자지구 인명피해를 지적하며 이스라엘군에게 전면전 대신 특수부대를 이용한 소규모·정밀 작전을 요구했다. 백악관은 "미 대통령은 인도주의적 지원 활동을 지원하는 사람들을 포함해 민간인을 보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민간인이 전투가 계속되는 지역으로부터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어 "두 정상은 남아있는 모든 인질 석방의 중요성에 대해 논의했다"며 "두 사람은 직접, 그리고 각자의 국가 안보팀을 통해 정기적인 협의를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바이든은 이날 통화 내용에 대해 "긴 대화"를 했다며 네타냐후에게 "휴전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2023-12-24 18:46:51[파이낸셜뉴스] 전 세계 기독교인의 축일인 성탄절이 다가왔지만 정작 예수의 탄생지로 알려진 베들레헴에는 적막과 침묵이 감돌았다. 이스라엘은 성탄절 직전까지도 가자지구에서 치열한 교전을 벌였으며 미국에게 하마스 제거 전까지 전쟁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성탄절 기념행사 대거 취소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들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의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속해있는 베들레헴에서는 성탄절을 이틀 앞둔 23일(이하 현지시간)에도 축제 분위기를 찾을 수 없었다. 베들레헴에서 서쪽으로 약 70㎞ 떨어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지난 10월 7일 시작된 전투가 아직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들레헴은 해마다 성탄절이면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화려한 트리 점등식과 퍼레이드 등이 진행됐다. 도시의 명소인 구유 광장과 시장에는 관광객과 순례자가 넘쳐났고 예수 탄생 기념성당에는 예수가 태어난 곳으로 알려진 동굴을 보러 온 사람들이 몇 시간씩 줄을 섰다. 현지 팔레스타인 기독교인 모임의 회원인 마제드 이스하크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올해 들어 9월까지만 해도 150만명의 관광객이 베들레헴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이스하크는 10월 7일 사태 이후 "관광객이 정말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며 "관광객이 사라지면서 베들레헴시는 매일 150만달러(약 19억5450만원)의 손실을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나 하나니아 베들레헴 시장은 "경제가 마비됐다"고 말했다. 베들레헴시는 가자 주민들과 연대하는 의미에서 올해 공개 기념행사를 취소하기로 했다. 지난달 예루살렘의 여러 교회 총대주교와 수장들은 성명에서 신도들에게 '불필요한 축제 활동'은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들은 축하 행사 대신 "목회 활동과 성찬 의식에서 성탄절의 영적 의미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의 여정을 기려 예루살렘부터 베들레헴까지 이어지는 가톨릭 총대주교의 행렬도 규모가 크게 줄었다. 같은날 AFP통신은 인구 가운데 기독교도 비율이 40%가 넘는 레바논에서도 축제 분위기가 사라졌다고 전했다. 현재 레바논 남부에서는 가자지구 무장정파 하마스를 지원하는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교전이 이어지고 있다. AFP는 레바논 남부의 기독교인 마을인 클라야의 경우 올해 마을 인구의 60%만 남아있다고 전했다. 하마스 축출 전까지 전쟁 계속 이스라엘은 성탄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작전을 계속했다. AP통신에 따르면 22일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에서는 2채의 주택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무너졌다. 해당 공습으로 유엔개발계획(UNDP)의 구호 담당 직원이었던 이삼 알 무그라비와 그의 직계가족을 포함해 그와 연관된 친척 76명이 숨졌다. AP는 이삼 가족을 포함하여 이날 공습으로 최소 90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UNDP는 성명에서 "이삼 가족의 죽음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며 "유엔과 가자지구의 민간인들은 표적이 아니다. 이 전쟁은 끝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가자지구 전쟁이 시작된 이후 유엔 직원이 매일 1∼2명씩 모두 130명 숨졌다면서 "유엔 역사상 보지 못했던 일"이라고 주장했다. 가자지구의 하마스 보건부는 23일 기준으로 지난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후 가자지구에서 발생한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누적 2만258명이라고 밝혔다. AP에 의하면 지난 10월 이전 가자지구 거주민 약 230만명 가운데 85%는 피란길에 올랐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를 축출하기 전까지 작전을 멈추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23일 소셜미디에 엑스(X)에 네타냐후가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스라엘은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라고 전했다. 미 백악관은 23일 통화 사실을 공개하면서 두 정상이 이스라엘군의 작전 강도를 낮추는 문제를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미 정부는 가자지구 인명피해를 지적하며 이스라엘군에게 전면전 대신 특수부대를 이용한 소규모·정밀 작전을 요구했다. 백악관은 "미 대통령은 인도주의적 지원 활동을 지원하는 사람들을 포함해 민간인을 보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민간인이 전투가 계속되는 지역으로부터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어 "두 정상은 남아있는 모든 인질 석방의 중요성에 대해 논의했다"며 "두 사람은 직접, 그리고 각자의 국가 안보팀을 통해 정기적인 협의를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바이든은 이날 통화 내용에 대해 "긴 대화"를 했다며 네타냐후에게 "휴전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2023-12-24 13:35:06[파이낸셜뉴스] 지난 2020년 서울 성북구에 있는 사랑제일교회의 철거 시도 현장에서 용역 인력에게 화염병을 던지며 저항한 신도 10여명이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서울북부지법 형사4단독(이종광 부장판사)은 1일 특수공무집행 방해와 화염병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랑제일교회 신도 전모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또 정모씨 등 3명에게 징역 2년, 황모씨 등 5명에게 징역 1년 6개월, 박모씨 등 5명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다만 같은 혐의를 받는 이모씨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지난 2020년 11월 26일 사랑제일교회 앞에서 교회를 철거하려는 서울 장위10구역 재개발조합(재개발조합) 측 용역업체 관계자 500여명을 향해 화염병을 던진 혐의를 받는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본질은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법원 판결 집행을 사실상 무력화한 최초 사례로써 법원 판결의 권위 및 법치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라며 "한 종교 단체의 경제적 욕심을 위한 것이고, 우리 공동체의 존립 기초 및 헌법 수호 차원에서 치명적인 위협으로 판단된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전광훈 목사가 담임목사로 있는 사랑제일교회는 2020년 5월 장위10구역 재개발조합과의 명도소송에서 패소했다. 이후 교회 측은 보상금 등 문제로 철거에 반발하며 조합이 강제집행을 시도할 때마다 집행보조원들과 물리적 충돌을 빚었다. 재판부는 "집행보조자들이 교회 측 사람들과 몸싸움 과정에서 상해를 입힌 점은 인정되지만 이 사건에 대한 우선적 책임은 집행을 방해한 교회 측에 있다"고 밝혔다. 또 피고인 절반 이상이 목사·전도사인 점을 거론하며 "우리 사회를 정신적, 영적으로 이끌어간다고 믿어지는 분들이 경제적 욕심이나 다른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전쟁터와 같은 싸움 장면을 벌이는 건 일반 시민들에게 큰 정신적 충격을 줬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에 참석한 신도 10여명 중 일부는 선고가 끝나자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며 항의했다. 일부 신도는 재판장 밖에서 재판부를 향해 '좌파'와 '빨갱이'라 일컬으며 욕설을 내뱉었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기자
2023-11-01 17:21:09"70년간 이어진 적대적 남북 분단 체제의 고리를 끊어내는 결단이 필요하다. 앞으로 70년간의 분단 비용은 이전과 다른 천문학적 규모로 불어날 것이다. '잃어버린 70년'을 뒤로 하고 '새로운 70년'을 맞기 위해 통일에 대한 모멘텀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 달 31일 서울 용산구 한남클럽에서 파이낸셜뉴스가 마련한 '8·15 기념, 한국의 미래와 통일' 간담회에서 통일 전문가들은 이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노동일 파이낸셜뉴스 주필의 사회로 열린 간담회에는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박명규 광주과학기술원 초빙 석학교수,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이영선 통일과나눔 이사장(이상 가나다순)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통일에 대한 인식차를 줄여 한반도 공동체라는 연대의식 아래 통합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정서적 역사적 공동체 복원이라는 통일의 정신을 살릴 것도 주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사회 = 노동일 파이낸셜뉴스 주필―통일은 기성세대뿐만 아니라 미래세대의 중요한 화두다. 젊은 세대의 통일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방안이 있나. ▲윤 이사장=경제적으로도 통일은 큰 이득이 된다.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 사이의 지정학적 딜레마에 처해 있다. 통일이 되면 이런 지정학적 딜레마가 지정학적 축복으로 전환될 수 있다. 한국의 경제 번영은 해양으로 진출해 무역을 통해 이룬 것이다. 통일이 되면 대륙을 향해서도 우리의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다. 두 번째로 통일은 경제적 차원 외에 정신적, 영적인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다. 통일을 경제만의 문제로 보니까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든데 무슨 통일이냐'는 얘기가 나온다. 2013년에 베를린에서 만난 독일인들은 통일이 힘들고 돈도 들지만, 그런 미션이 자기 세대에 주어졌다는 점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얘기했다. 우리는 통일을 돈 문제로만 보는 시각이 본질 아닌가 싶다. ▲박 교수=젊은 세대가 통일에 대한 관심이 없어졌다기 보다는 그것이 가지는 시대적 메시지가 있다고 본다. 단일민족에 기초를 둔 전통적인 통일의 이미지와 요즘 세대의 인식간에 갭이 있다. 다원화·민주화 된 지난 70년의 변화와 발전이 가져온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단일국가·단일민족 개념의 정치공동체 중심으로 사고했던 통일로부터 다원화되고 민주화되고 다층적인 형태의 통일에 대한 사고로 바꿔야 할 시점이다. 그게 제대로 되면 젊은 세대부터 통일에 대한 필요성이나 열정이 더 생겨날 수있다. ▲윤 이사장=젊은 세대를 특정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한국 사회 전반의 추세를 말한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난 70년간 경제 지상주의에 매몰되어 오다 보니 공동체 의식과 후세를 생각하는 역사의식이 약화되고 이것이 통일문제를 보는 시각에도 반영되고 있다. 다원화된 사회에서도 공동체 의식과 역사 의식은 특히 중요하다. ―분단 체제로 인한 리스크가 크다. 통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논의의 장을 어떻게 하면 넓힐 수 있을까. ▲이 이사장=많은 사람들이 분단상태인 현재가 좋은 것처럼 생각한다. 통일은 비용이 많이 들고 힘들 것이라 얘기한다. 그런데 사실 분단 상태에서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통일을 포기할 경우 분단에서 오는 비용은 계속 지불하는 것이며, 장기적인 비전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김 원장=분단 7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앞으로 70년을 생각해보면, 분단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가 훨씬 커진 상태다. 중국과 러시아가 밀착하고 미국 중심으로 서방이 뭉치면서 분단비용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만약 한반도가 나뉘지 않고 천문학적 분단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다면 한국 역사에서 우리가 한 번도 꿈꾸지 못한 전 세계의 키플레이어 역할을 맡았을 가능성이 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 안된 이유는 분단 때문이다. 당장의 비용을 생각하겠지만 지난 70년을 돌아보면 분단으로 잃어버린 게 얼마나 큰가. 앞으로 70년 이후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맥락에서 통일을 보면 좋을 것 같다. ―통일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생각도 중요하다. 북한 주민들이 느끼는 통일에 대한 체감도 혹은 의지가 궁금하다. ▲박 교수= 탈북한 지 6개월이 안된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의식 조사를 한 적이 있다. 그 중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긍정적 답변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문제는 국내에 온 탈북자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 사회에 쉽게 통합되지 못하고 배제되거나 2등시민이 되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당위론 측면에서의 공감대는 높으나 통일의 구체적 과정과 실질적인 내용까지 깊은 생각을 하는 수준은 아닌 것 같다. ▲이 이사장='북한 주민이 하나인가'를 봐야 한다. 정권과 연관 있는 사람들과 일반 주민들의 의식은 큰 차이가 있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사람들은 통일을 반대할 것이다. 하지만 일반 주민들은 (남한에 대한) 상당한 정보를 알고 있다. 많은 후진국들이 체제를 바꾸니 빠른 속도로 경제 성장을 했다. 그렇기에 상당수 북한 주민들은 통일에 대해 염원할 것이다. 탈북자들을 잘 적응시키는 정책을 통해서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면 북한 주민들도 통일을 선호하는 생각을 갖지 않을까 싶다. ▲윤 이사장=북한 주민들이 느끼는 고통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심정적인 연대의 끈이 연결돼 있느냐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에도 서독 정부가 '통일해야겠다'고 해서 동독 정부나 주민들을 도와준 게 아니다. 1970년대 이후 소통하고 협력하고 지원했던 건 동독 주민들의 인간적 존엄성을 존중하고 인간다운 삶을 도와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 원장=동독 주민들도 통일을 하고 싶어했다. 그 이유는 더 잘 산다는 것, 곧 이익에 대한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이 측면에서 북한주민들은 더 강하게 (이익을) 원할 것이다. 이제는 구호가 아니고 탈북민부터 친밀감을 주고 통일이 됐을 때 바람직한 상황에 대한 지식을 쌓아 북한에 전수해주는 게 필요하다. ―남북한 주민들간 문화적 인식의 갭을 줄이기 위한 방안이 있을까. ▲박 교수=역사를 돌아보면 계획과 기획에 따라 진행된 것 못지 않게 우연적이고 예상 못한 변수에 의해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많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기획을 해야 하지만, 천재지변 등 예상치 못한 상황이 작용할 가능성도 많다고 생각한다. 생각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가 비축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중국 관계가 악화 되어도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니까 양국이 기후재앙에 대한 대화를 한다. 한반도 역시 공통의 재난이나 예상치 못한 비상 상황이 있을 것이다. 그런 부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대응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 ▲김 원장=사회주의를 경험한 나라의 국민들은 체제 붕괴 이후에도 기존의 가치관에 오랫동안 지배된다. 북한은 사회주의가 가장 오래된 곳이다. 당연히 가치관 차이가 많이 있을 것이다. 카페에서 일하는 탈북민 청년을 도와준 적이 있다. 그에게 "한국에서는 웃어야 한다"고 말했더니 자신은 커피를 파는 사람인데 왜 억지로 웃어야 하냐고 반문했다. 사회주의는 공급자 중심의 시장이니 판매자가 왕이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 사는 사람을 위해 웃어주기까지 하는 게 이해가 안되는 것이다. ―통일의 과정엔 비핵화가 전제가 된다. 개성공단도 운영해봤으나 현재로선 무위로 돌아갔다. 통일로 가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인가. ▲김 원장=단기 비핵화, 중기 경제협력, 장기 통합, 최종 통일 과정이 있다. 비핵화를 건너뛰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경협과 통합 없이 통일을 하려 들면 막대한 비용이 들 것이다. 전문가 눈에는 회로가 보인다. 어떤 회로를 타고 가면 어떻게 될 것인지 보는 게 전문성이다. 그 동안 대북정책은 전문성이 없어서 회로를 보지 못했다. 어떤 경험을 통해 통합의 문을 열 것인지 각 단계에서 충분히 이뤄지면 남북 관계도 개선될 것이다. ▲윤 이사장=진보 정부의 포용정책은 대부분 비핵화라는 걸림돌에 걸려서 성공을 못했다. 미국이나 국제사회는 북한 핵을 용인할 수 없고 그걸 실현하기 위해 경제적인 압박을 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관계 없이 우리끼리의 남북협력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비핵화에 대한 북한 당국의 결단이 전제되지 않는 한 경제통합의 길은 요원하다. ▲이 이사장=비핵화 문제를 풀지 않고 경제통합 등을 모색하는 게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을 찾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다. 예컨대 어려움에 처한 북한에 결핵약을 보내는 경우들이다. 인도주의적으로 우리가 할 일을 찾아보고 노력하고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통합의 징검다리를 놓을 필요성이 있다. ▲윤 이사장=정치적 리더십 차원에서 대북제재의 예외조항으로서의 인도주의적 지원이라는 틈새를 활용하려는 의지가 있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국제적 차원에서의 비핵화는 공감하고 협력하되,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전개하는 리더십이 더 강했으면 한다. ―보수·진보를 떠나 초당적 통일정책이 가능한가. ▲이 이사장= 지난 대선에서는 안보에 대한 약간의 이슈 외에는 통일이나 대북 정책으로 표를 이끄는 전략을 안 썼다.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 즉, 대북정책에 관한 갈등으로 표를 얻는 행위는 앞으로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 면에서 초당적 통일정책의 기초는 만들어졌다. 사회적으로 초당적 통일정책을 계속 논의해가면 방법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윤 이사장=통일정책과 대북정책으로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통일정책은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 또는 단계적 통일방안에 대해 합의해왔다고 본다. 첨예한 대립을 보인 건 대북 정책과 관련해서 진보는 포용 정책을 주로 강조했고 보수는 포용 정책을 바람직하지 않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런 대결구도는 지금도 진행중이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건 정치다. 1987년 승자독식의 정치 체제에서는 한 표라도 더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면 전권을 갖고 야당은 정책결정 과정에서 100% 소외된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현 정부가 성공하는 걸 상대 진영에서 원치 않는다. 다음 선거 때 정권을 교체해야 되기 때문이다. 대북 정책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벌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승자독식의 정치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초당적 대북정책을 합의하는 건 힘들다. ▲박 교수=통일을 민족문제로 보느냐, 지정학적 이슈로 보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 남북 분단은 우리가 원치 않은 상황이었으며, 이걸 해결하는 것은 남북의 당사자들이라는 민족주의적인 부분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축을 이뤘다. 지금은 우리의 국제적 상황이나 국내 위상 부분에서 더 이상 민족 문제로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한반도의 미래 비전을 민족문제와 지정학적 이슈를 같이 엮는 일종의 그랜드 디자인 혹은 대전략에 우리 사회가 합의하는 게 중요하다. ▲김 원장=대북 정책의 탈정치화를 위해 중립적인 위원회를 제안한 적이 있다. 여야를 떠나 적임자를 추천해서 중립적 위원회에서 중요한 대북정책을 합의하는 것이다. 민족이라든지 지정학적이라든지 상호 대립이 아니라 균형을 이룰 필요가 있다. ―대북 정책의 주무 부처인 통일부의 위상에 대한 논쟁이 있다. 통일부의 위상과 역할을 어떻게 재정립하는 게 좋은가. ▲박 교수=통일부의 지나친 역할 축소는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사회의 많은 제도 중에 소방서, 보험 등 유사시를 대비하는 제도들이 많다. 통일은 중요한 장기 전략 목표가 될 수 밖에 없다. 어떤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는 필수적 제도로서의 통일부를 할 일이 별로 없는 조직처럼 평가하는 부분은 재고했으면 좋겠다. ▲이 이사장=통일부 조직개편 논제는 '북한 지원부'가 아니라 '통일 지향부'를 가리키는 것 같다. 그런 모토라면 유연성 있게 조직을 개편하고 할 일을 찾는다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축소한다는 건 정당성을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필요할 때 행동할 수 있는 조직과 인력을 만드는 역할을 통일부가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인권을 강조하는 건 필요하지만 북한 주민의 인권을 거론하다 보면 북한을 자극해서 남북관계가 더욱 악화되는 딜레마도 있지 않은가. ▲이 이사장=북한 인권은 정권에 관계 없이 초당적으로 재조명해야 한다. 결국 통일의 목적 가운데 인권 문제가 중요한 것이기에 우리의 기본 목표로 삼아야 한다. 다만, 우리가 북한 정부에게 인권을 존중하도록 강제할 순 없다. 서독이 동독과의 관계에서 여러 유인책을 썼는데 우리도 그런 제도적인 방법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게 이산가족 만남과 같은 방식이다. 여러 방안을 정치인들이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을 위해 노력할 상황이 올 수 있다. ▲박 교수=북한 인권만이 아니라 인권 이슈 전반에서 양면이 있다. 인권 문제가 있다는 점을 대외에 알리고 관심을 갖게 만드는 활동은 중요하다. 다른 하나는 실질적으로 인권이 개선되도록 정책적 지원을 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인권의 중요성과 북한의 인권 상황의 부정적 부분을 이슈화하는 동시에 북한이 실제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가능성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 미래에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문제에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김 원장=인권을 수단으로 삼지 않아야 한다. 인권을 바라보는 건 바람직한데 그것이 목적이 되어야지 수단화 시키는 것은 안 된다. 어떤 정부든 북한주민의 인권을 목적으로 봐야 하며 인권은 당위적인 것이다. ▲윤 이사장=북한 내부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려면 북한 내부와 국제사회간의 연결 고리가 있어야 한다. 그 고리를 통해 인센티브 제안과 개선 요청을 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지금은 북한이 고립돼 있다. 결국, 북한 사회가 외부 사회와 연결되는 고리를 형성하는 작업을 시도해야 한다. 지금 모든 사안에 북한 핵문제가 연결돼 있어서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대외적인 관여나 북한 스스로 대외개방을 할 수 있는 정치적 의지는 제로에 가깝다. 결국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결단을 내리고, 외부세계와 연결고리가 강화되면 북한의 인권이 실질적으로 개선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한반도 주변 강국들 속에서 통일의 길을 찾는 과정은 험난하다. '신냉전 시대'에 한반도 통일에 영향을 미칠 국제적인 변곡점이 있는가. ▲윤 이사장=6자회담이 이상적인 매커니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중과 미러 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6자회담의 유용성은 한계에 직면했다. 6자 회담의 부활 가능성은 미중관계나 미러관계가 획기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한 힘들 것이다. 결국 남는 것은 미국과 북한간의 양자 협상 가능성이다. 내년 미국 대선 시기에 북한이 협상장에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때 쯤 되면 북한이 핵이나 미사일 기술에서 그들 나름대로 거의 완성단계에 왔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심각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어서 어떤 식으로든 탈출구를 마련해야 겠다는 생각을 김정은 위원장이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 원장=남북 관계와 북한에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여지들이 있다. 하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지금은 중러가 북한에 관해 우호적인데 (전쟁 결과에 따라) 또 판이 바뀔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로 중국 문제다. 미중 갈등은 오래 갈 것이다. 그런데 3년 내에 중국경제가 얼마나 버티느냐가 관건이다. 지금 중국의 경제활동이 재개 되었어도 경제가 크게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영향이 중국 정치와 대외정책에 중요하다. 북한의 잇단 핵실험 시기와 북한 경제의 자립 가능성 그리고 미국의 대선 결과도 북한 문제의 큰 변곡점이다. ―북한이 협상의 장으로 나오는 게 우선 필요하다. 최소한의 개방이라도 끌어내기 위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할 정책적 제언을 해달라. ▲김 원장=통일 정책을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가선 안 된다. 대북정책은 오케스트라다. 모든 부처가 똑 같은 악기를 가진게 아니다. 통일은 통일만의 의미가 있고 악기가 있다. 국방부가 있고 외교부가 있는 것처럼 독자성과 자율성을 어떻게 조율할지가 중요하다. 중장기적으로 해야할 일 혹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플랜별로 정리하는 복합적인 정책들이 필요하다. 경영 아이템들도 있다. 북한이 남한에 이산화탄소 배출권을 판매하는 방안이다. 남한이 북한에 산림을 조성해주고 북한은 한반도에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산림을 관리하면 된다. 우리가 탄소배출권을 사는 상생적인 아이디어다. ▲윤 이사장=인도주의적인 협력 가운데 보건의료 협력을 획기적으로 추진하는 게 어떨까 싶다. 북한은 병원시설도 취약하고 약이 없어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은 핵 문제와 관련해서도 예외적으로 인정받는 분야다. 북한이 거부할 수도 있지만 좀 더 효율적인 의료 보건협력플랜을 전국적인 단위에서 추진했으면 한다. 환경분야도 마찬가지다. 환경재앙으로 북쪽도 남쪽도 고통받으니까 협력의 여지가 있다. 좀 더 체계적으로 탈북민을 지원하고 포용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그게 남쪽에 온 탈북민들을 품는 게 될 것이며 장기적으로 통일을 연습하는 것이다. ▲이 이사장=북한 주민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지에 주안점을 두고 정책을 만드는 게 통일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독일 통일은 결국 동독 주민이 결정한 것이다. 북한 주민이 통일하자는 생각이 없는 한 우리가 들어갈 순 없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의 생각에 긍정적인 효과가 날 수 있는 정책들이 있어야 한다. ▲박 교수='통합'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한국에 들어온 많은 외국인 거주자들이나 다문화 구성원들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통합의 이슈가 되고 있다. 우리 내부의 통합 이슈와 남북의 통합 이슈가 결코 다를 수 없고 그것을 같이 봐야 한다. 정리=jjack3@fnnews.com 조창원 논설위원, 최아영 기자
2023-08-13 18:35:08[파이낸셜뉴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기독교 지도자로 알려진 빌리그래함 목사는 우리나라가 6·25전쟁의 화염에 휩싸였을 때 미국 트루먼 대통령을 찾아가 눈물로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50여만명의 한국 성도들이 나라를 구해 달라고 기도하는데 포기하십니까?” 이 한마디를 기점으로 UN 16개국이 참전하면서 한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다. 오는 6월 3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빌리그래함 전도대회 50주년 기념대회'를 앞두고 기독계뿐만 아니라 정치권의 관심도 쏟아지고 있다. '빌리그래함 전도대회 50주년 기념대회 준비위원회'는 6월 3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빌리그래함 전도대회 50주년 기념대회'를 개최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축하영상과 오세훈 서울시장의 축사도 이날 예정돼 있다. 이번 대회의 공동대표회장이며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인 이영훈 목사의 개회기도와 일만명찬양대의 특별찬양이 있은 뒤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의 설교와 콜링이 있을 예정이다. 미국의 정재계와도 친분이 두터운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이 성사되도록 도운 이력도 있다 강사로 서게 되는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크리스천 지도자로 손꼽히고 있다. 그는 1952년 7월 14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애슈빌에서 세계적인 전도자 빌리그래함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또한 김장환 목사(극동방송 이사장)의 개최선언과 함께 사랑의교회 담임인 오정현 목사의 합심기도, 공동대회장인 명성교회 김삼환 원로목사의 축도도 예정됐다. '빌리그래함 전도대회 50주년 기념대회'는 범 교단 초교파적으로 한국교회의 연합을 이루기 위해 열린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23개 주요 교단을 비롯해서 여러 기독선교기관도 함께 힘을 모으고 있다. 지난 1973년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5월 30일부터 6월 3일까지 열린 빌리그래함 전도대회에는 연인원 334만여명이 모여 기도했으며, 7만2000여장의 신앙상담 및 결신카드가 수집됐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큰 전도집회라는 기록을 남겼다. 당시 빌리그래함 목사의 영어 설교를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가 통역했다. 현재 김장환 목사는 '빌리그래함 전도대회 50주년 기념대회'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이번 전도대회는 한국교회가 회복을 넘어 대부흥과 복음통일로 나아가는 도약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서대천 홀리씨즈교회 목사는 극동방송에서 주관한 제9차 미스바 기도회 설교와 '빌리그래함 전도대회 50주년 기념대회'를 앞둔 기도회를 지난 23일 극동방송 아트홀에서 가졌다. 서 목사는 "오늘날 한국 교회는 하나님을 잃어버린 영적 암흑기시대에 살고 있다. 빌리그래함을 통해 한국 교회가 다시 복음으로 회복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서 목사는 “대한민국 기독교 역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빌리그래함 전도대회’가 50주년을 맞이했다. 빌리그래함의 헌신적인 전도사역은 한국교회에도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한국 교회와 대한민국과 세계 선교를 위해 헌신하는 데 위대한 초석이 되었다”고 밝혔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 기자
2023-05-25 13:08:42나는 미국 네브래스카주 남동부에 위치한 오마하라는 도시 근처에 살고 있다. 토네이도 경보기가 울릴 때마다 지하실로 달려간다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할 그런 곳이다. 그래서 아버지날을 이틀 앞둔 6월의 금요일에 토네이도 경보기가 요란하게 울렸을 때도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열두살 손자 애셔가 집요하게 울려대는 경보기 소리에 움찔 놀라 물었다. "우리 지하실로 가는 거예요?"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초저녁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할머니는 남은 일 좀 더 할게. 그런 다음에 간식 챙겨서 지하실로 내려가자꾸나." "저희 기도해야 하지 않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손은 고집스럽게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고백하자면 근래 나는 영적으로 정체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전에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의 첫 30분을 기도와 성경 읽기에 바쳤다. 하지만 요 몇 달은 의도적으로 기도를 했고, 성경책은 거의 열어보지 않았다. 하나님께 화가 나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내 페이스북에 업데이트된 콘텐츠와 메일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남편 제이크와 아침 식사할 시간이 되었고, 애셔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집안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요란한 경보기 소리 너머로 또 다른 소리가 들렸다. 희미하지만 분명히 들렸다. 빠르게 달리는 화물 열차 소리. 집 근처 어디에도 철로는 없었다. "뛰어! 지하실로! 당장!" 나는 애셔에게 소리쳤다. 우리는 쏜살같이 지하실 계단을 뛰어내려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는 애셔를 내 옆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주먹을 꼭 쥔 애셔의 손이 떨렸다. "할아버지는 괜찮으실까요?" 아이가 물었다. 남편은 아버지날을 맞아 남자들만 참여하는 행사가 있어 교회에 가고 없었다. "할아버지랑 교회에 있는 사람들 모두 안전하실 거야. 아마 기도하고 계시겠지." 나는 콘크리트 블록으로 된 벽에 난 조그만 두 개의 창문을 보았다.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은 섬뜩한 녹색을 띠고 있었다. 입이 바싹 타 들어갔다. 어째서 경보기 소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거야? 애셔와 나는 집 안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에 있었다. 하지만 저 창문이 깨지기라도 한다면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튈 것이다. 나는 떨리는 다리를 일으켜 창문을 가릴 만한 단단한 물건을 찾아보았다. 허사였다. 울부짖는 바람 소리는 이제 우리 머리 바로 위에서 들렸다. 집이 흔들렸다. 창문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덜컹거렸다. 나는 '오즈의 마법사'를 생각했다. 도로시는 자신의 집이 깔때기 모양 구름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랐던가. 집이 우리 위로 무너져 내리면 어떡하지? 못지않게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더 짙어지고 더 불길해진 녹색 빛은 사악하고 치명적인 기운을 내뿜으며 지하실에 스며들었다. "나를 찬양하고 내 가르침을 말하라!" 대혼란을 관통해 들린 목소리는 너무나 선명했다. 그것은 제안이 아니었다. 명령이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낮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오, 위대하신 주여, 당신을 찬양합니다!" 나는 양팔을 높이 든 채 토네이도의 포효 위로 크게 고함치며 말했다. 폭풍은 무자비하게 우리를 공격했다. 하지만 내 두려움은? 사라지고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가져가신 것이다. 마치 하나님께서 나와 애셔를 그의 강력한 손으로 붙들고 있는 것 같았다. 애셔조차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손자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자신감에 찬 발걸음으로 지하실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성경에 나오는 보호에 대한 약속과 관련된 구절을 아는대로 낭송했다. 하나님이 노아와 하신 약속. 사자굴 속의 다니엘. 갈릴리 바다를 길들이신 예수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나는 믿음을 몸에 두르는 망토와 같은 거라고 늘 생각했다. 어떤 경우에도 나를 결코 저버리지 않을 물리적인 보증 같은 것 말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되는대로 내버려 두었을 때 그 망토는 벗어졌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우리와 토네이도 사이에 있는 유일한 것은 믿음뿐이었다. "오 신실하신 주." 나는 소리쳤다. 토네이도가 더 크게 비명을 지를수록 내 자신감도 점점 더 커졌다. "아버지, 당신을 찬미합니다!" 그때 폭풍이, 시작도 그랬듯이, 갑자기 뚝 그쳤다. 창문으로 희미한 빛이 비쳤다. 서서히 지하실이 고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휴대폰 벨 소리가 적막을 깼다. 남편이었다. "여보, 당신하고 애셔는 괜찮아요?" "네, 우린 안전해요. 조심히 오세요." 애셔와 나는 계단을 올라갔다. 주방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니 마당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거대한 나뭇가지들, 쓰레기, 테라스 의자들, 지붕 조각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폭풍은 집 안의 가구를 거의 15㎝나 옮겨 놓았지만 다행히 집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 자신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폭풍은 오마하 전 지역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지만 다행히 사망자는 생기지 않았다. 시속 170㎞ 이상의 토네이도가 두 차례나 지역을 강타했다. 남편이 차로 금방이면 있는 교회에서 집까지 오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린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집 앞 진입로에서 나는 남편의 품에 와락 안겼다. 이웃이 서로 복구 작업을 도와주느라 전기톱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이틀 뒤면 아버지의 날이다. 그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그날 아침은 가장 먼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축하하는 일로 시작할 것이다. 글·사진=가이드포스트
2021-11-02 17:41:25[파이낸셜뉴스]삼육대는 개교 115주년을 맞아 고(故) 김종화 학장, 장수돈(Robert M. Johnston) 박사, 하정식(George S. Haley) 교수 등 세 명의 선구자를 기념하는 회고집을 발간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들은 1906년 평안남도 순안에서 개교한 삼육대가 1949년 현재 부지(서울시 노원구 화랑로 815)로 터전을 이전한 직후인 이른바 ‘삼육동 시대 초창기’, 대학의 영적, 재정적, 행정적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된다. 고 김종화 학장은 1965년부터 1990년까지 교수, 학감, 교무처장, 학장(3·6대)으로 봉직하면서 삼육대가 단과대학에서 종합대학으로 승격 발전하기 위한 내적·외적 면모를 갖추는 일에 크게 기여했다. 장수돈 박사와 하정식 교수는 6·25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1950년대 후반 삼육대에서 청춘을 바친 미국인 선교사들이다. 장수돈 박사는 1958년부터 1969년까지 11년간 삼육대 신학 교수로서 수많은 목회자와 신학자를 양성하며, 대학과 한국 재림교회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하정식 교수는 1959년부터 1981년까지 22년간 삼육대 농업교육과 교수이자 실업부 책임자로 봉사했다. 특히 우유가공 사업을 창업·발전시켜 대학 재정 확보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삼육대는 올해 개교 115주년을 맞아 ‘역사 세우기 사업’의 일환으로 이들 세 선구자의 행적을 기록으로 남겨 기념하기 위해 회고집 발간을 추진했다. 김종화 학장의 회고집은 오만규 교수가 편집 책임을 맡았다. 오 교수는 평전을 집필하고, 후배교수, 제자, 가족들이 쓴 회고담을 모아 함께 엮었다. 장수돈 박사와 하정식 교수의 회고집은 남대극 전 총장이 편집 책임을 맡아, 장 박사와 하 교수가 미국에서 써서 보내온 회고록의 번역을 감수하고 편집했다. 김일목 총장은 “삼육대의 역사를 한 켜 한 켜 정성껏 쌓아온 선배들의 노고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회고집을 발간하게 됐다”며 “삼육동 곳곳에 스며있는 선배들의 헌신의 정신은 우리 대학의 자랑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앞서가신 충성된 인물들의 경험이 삼육대의 풍성한 영적, 정신적 자산으로 기억되길 소원한다”고 말했다. 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
2021-10-20 16:09:291936년 2월 14일 경상남도 울산 울주군에서 태어난 고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는 한학과 전통적인 종교문화에 익숙한 가정에서 자랐다. 어수선한 해방정국이 이어지던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한 부친(조두천 장로)이 낙선한 뒤로는 가난한 사춘기를 보냈고 곧 6·25전쟁이 터지면서 부산에서 피란살이를 했다. 하지만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부산공고에 입학했고 학교에 주둔해 있던 미군부대에서 학교장과 미군 부대장 사이의 통역을 맡으면서 영어 실력을 키웠다. 모두가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 그 가운데서도 조 목사는 더 힘든 인생의 위기를 10대 때 맞이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폐결핵 선고를 받은 것이다. 현대에 비해 낙후된 의료 상황 속에서 당시 폐결핵에 걸렸다는 것은 사망선고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병상에서 누나의 친구로부터 처음 복음을 접한 뒤 부산에서 미국의 오순절교단인 '하나님의성회' 소속 켄 타이스 선교사를 만나 집회 통역을 하면서 회심을 하고 이 과정에서 폐결핵이 치유되는 신유의 경험을 하면서 신학교 입학을 결심하게 된다. ■1958년 대조동서 천막 교회로 시작 이후 1956년 9월, 20세 때 하나님의성회 순복음신학교에 입학해 후에 장모이자 목회 동역자가 되는 최자실 목사와 만난다. 두 사람은 1958년 신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5월 18일 서울 대조동에 천막 교회를 개척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시작이었다. 그 후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면서 조용기 목사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위상은 국내를 넘어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64년 조용기 목사는 한국 하나님의성회 대표 자격으로 미국에서 열린 '미국하나님의성회 교단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다. 이후 조 목사는 미주 지역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고 이를 바탕으로 이곳에 순복음 한인교회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3년 후인 1967년 5월에는 세계오순절총회 아시아 대표 자격으로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센트럴홀에서 열린 부활절 예배에 참석하면서 유럽을 대상으로 한 복음 행보를 펼쳤다. 1973년 9월에는 제10차 세계 오순절 대회를 한국에서 주최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아시아 국가가 주최한 첫 오순절 세계 대회였다. 1973년 여의도로 교회를 옮긴 뒤 성장세는 더욱 가팔라져서 1979년에 10만명, 1981년에 20만명을 넘어섰다. 특히 1976년에는 세계교회성장기구인 'CGI(Church Growth International)'를 설립해 세계 교회 성장의 발판을 만들었다. ■지구 120바퀴 돌며 71개국서 부흥회 인도 1980년대부터는 아시아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1980년 복음화율이 1% 미만인 일본의 복음화를 위한 '일천만 구령 운동'을 시작했다. 도쿄와 오사카, 나고야 등 주요 도시에서 연이어 부흥성회를 인도하고 그해 7월부터 일본 깅키TV에서 '행복으로의 초대'라는 타이틀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예배 실황을 방송했다. 1982년에는 필리핀 마닐라 아라네타 국립경기장에서 '마닐라 대부흥 성회'를 개최했는데 3만명 이상의 성도들이 참석했다. 이는 필리핀 기독교 역사상 최대 규모의 성회였다. 조 목사는 1992년부터 2008년까지 세계하나님의성회 총재를 역임하면서 제3세계 선교에 박차를 가했다. 이때부터 아프리카와 남미 등에서 대규모 성회를 인도하고 강력한 성령운동을 전개했다. 구 소련의 붕괴 후인 1992년 6월에는 모스크바에서 성회를 가졌고, 1997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가진 성회에서는 150만명이 운집해 두 나라에서 모두 개신교 사상 최대의 집회라는 기록을 세웠다. 조 목사는 1975년부터 2019년까지 지구를 120바퀴 돌며 71개국에서 최소 370차례 이상 부흥회를 인도했다. 조 목사는 국내에서 민족복음화운동에도 헌신하며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을 다니며 성회를 인도했다. 특히 사회 구원을 위해 1998년에는 일간지 국민일보를 설립해 기독교의 목소리를 우리 사회에 전하기 시작했다. 1999년에는 비정부기구(NGO)인 사단법인 선한사람들(현 굿피플)을 세워 국내 및 해외에서 인권·환경·보건 및 아동복지 등의 증진에 앞장섰으며 그 공로로 1982년 '대통령 표창'(홀트 학교 건립기금 및 장애아동 복지사업)을 수상했다. 또 1994년에는 대한적십자사부터 '적십자헌혈유공자 금장', 1996년에는 심장병어린이 무료시술 지원 및 소년소녀가장 돕기 헌신으로 '국민훈장 무궁화장(보건복지부)'을 받았다. 2005년에 미국 뉴욕기독교교회협의회로부터 '더 패밀리 오브 맨 메달리온'을 수상했고 2007년 미연방의회에서 '자랑스런 한국인 인증서'도 받았다. 또 2009년에는 캄보디아 정부가 주는 훈장을 수상했다. ■담임목사직 세습않고 '아름다운 은퇴' 조 목사는 한국 교회사 가운데 아름다운 세대 교체를 이뤄낸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2005년 조 목사는 "만 70세가 되면 은퇴하겠다"고 공표하고 후임자 선임을 민주적이고 교회법에 따라 공평하게 처리하고자 했다. 하지만 성도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시무 연장을 수락하고 2006년 1월 "시무 연장을 3년으로 하고 후임목사를 선출회 공동목회 한 후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제2대 담임목사 선정을 위한 준비위원회가 구성됐고 후임 담임목사 후보들의 민주적 절차에 따른 추천과 성도들의 투표 과정을 거쳐 2009년 2월 이영훈 목사에게 담임목사직을 승계했다. 조 목사는 저술가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의 저서로는 '4차원의 영성' '4차원의 영적 세계' '나의 교회성장 이야기'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성령론' '신유론' '나는 이렇게 기도한다' '이것이 믿음이다' '희망목회 45년' 등 수백권이 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2021-09-14 18:1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