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딸 살리고 싶으면 제발 학교에 보내지 마세요." 이란의 한 어머니가 병원 침대에 멍하니 누워있는 딸을 옆에 두고 호소했다. 그의 딸은 '묻지마 독가스 공격'에 팔과 다리에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하는 마비 상태로 석달째 누워 있다. 지난해 9월 '히잡 의문사'를 계기로 이란 전역으로 확산된 반정부 시위가 6개월째 이어지는 가운데 여학생들을 노린 '독가스 테러'가 잇따르고 있다. 여학교를 폐쇄하려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테러의 배후라는 의혹도 커지고 있다. 3일 영국 BBC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이란 주요 도시에선 지난해 11월 말부터 3개월간 30여개 학교에서 의도적으로 보이는 '독성 가스' 공격이 발생해 약 700여명의 10대 여학생이 중독됐다. 아직 사망자 수는 확인되지 않은 가운데 피해 여학생들은 호흡기 질환, 메스꺼움, 현기증, 피로감, 마비 등의 크고 작은 증상을 겪고 있다. AP통신은 "일부에선 여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를 폐쇄하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면서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이후 사상 처음으로 여학생들이 교육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독살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란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테러 공격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여성에 대한 교육을 반대하는 움직임은 없었다. 이번 가스 테러가 히잡 의문사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에 대한 보복성 공격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들이 은밀한 맞대응에 나선 것이란 해석이다. 이란인권센터(CHRI)의 하디 가에미 국장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사회 전반에 퍼진 근본주의 사고가 수면으로 올라온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여학생들을 노린 독가스 테러가 처음 발생한 것은 지난해 11월 30일 수도 테헤란에서 남쪽으로 125㎞가량 떨어진 이슬람 시아파 성지인 콤에서다. 이곳은 보수 성향 성직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이란의 주요 종교학교들이 있는 대표적인 종교 도시다. 이곳의 한 음악학교에서 독성 가스 공격이 발생했고, 18명이 병원으로 실려 갔다. 피해 학생들은 병원 치료 이후에도 수일간 어지럼증과 팔다리 마비 증세를 호소했다고 한다. 일부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공포에 떨며 학교 수업의 온라인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보루제르드의 최소 4개 학교에서 194명의 여학생이 중독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최근 일어난 독성 가스 사건은 지난 28일 테헤란 인근 파르디스의 하이얌 여학교에서 벌어졌고, 최소 37명이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SNS에는 수많은 여학생이 하이얌 여학교 건물에서 밖으로 뛰쳐나와 땅바닥에 쓰러지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올라왔다. 피해 여학생들은 학교 내에서 염소 등 세정제 냄새가 난다고 설명했다. 콤의 한 학교에 다니는 엘라헤 카리미는 "복도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썩은 생선, 계란 냄새 같은 악취가 강하게 났다"며 "눈이 붉게 충혈됐고 구역질이 나서 보건실로 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당초 경찰 당국은 독성 가스 중독을 고의성이 있는 사건으로 보지 않았다. 많은 학교가 영하권으로 떨어지는 겨울철에 천연가스로 난방을 하기 때문에 단순한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로 추정했다. 하지만 가스 테러가 여러 도시로 확산되자 사법 당국은 의도적인 공격 가능성을 인정하며 수사에 착수했다. 유네스 파나히 보건부 차관은 "일부 세력들이 전국의 학교, 그중에서도 여학교를 폐쇄하려 한 것으로 파악됐다"라며 "여학생들의 교육을 막으려는 악마가 존재한다는 것은 심각한 위험"이라면서 "배후에 누가 있는지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학생만 공격하는 이유와 배후에 대해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선 지난해 발생한 '히잡 시위'에 대한 보복성 공격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BBC가 전했다. 이란 주요 도시에서는 지난해 9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가 체포돼 경찰서에서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 사건을 계기로 광범위한 히잡 시위가 이어졌다. 특히 많은 여학생이 히잡을 벗고 긴 머리를 늘어뜨리며 반정부 구호를 외쳤다. 공격의 배후로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나이지리아의 보코하람 등과 같은 이란 내 극단주의 강경 보수파 소행 가능성이 제기된다. 2021년 재집권한 탈레반은 여학생들의 중고교, 대학 교육을 전면 금지했다. 또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산하 바시즈 민병대원들이 화학 가스가 담긴 통을 여학교에 던졌다는 주장도 나왔다고 현지 매체 이란인터내셔널은 전했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3-03-03 09:04:12[파이낸셜뉴스] 이란에서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독극물 공격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앞서 히잡 의문사가 발생함에 따라 이란 내에서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여학교에서만 연쇄적으로 독극물 테러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범죄가 여학교 폐쇄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6일(현지시간) AFP 통신 등은 지난해 11월 말부터 이란의 성지 도시인 쿰(Qum)을 비롯한 여러 지역 여학교에서 수백 건의 독성물질 중독 사건이 발생해 학생 수십 명이 치료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독극물 공격으로 인해 다친 학생들은 호흡기를 통해 독성물질을 흡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네스 파나히 이란 보건부 차관은 이날 이란 국영 IRNA 통신 등을 통해 "누군가가 모든 학교, 특히 여학교 폐쇄를 노렸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파나히 차관은 상세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으나 이 사건들에는 '화합물'이 사용됐다고 덧붙였다. 이란 의회 보건위원회 소속 호마윤 사메 나자파바디도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은 누군가 의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AFP 통신은 현지 신문 에테마드를 인용해 이란 수도 테헤란과 남부의 쿰, 북서부의 아르데빌, 서부의 보루제르드 등 4곳의 최소 14개 학교에서 이 같은 일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이란 매체 '이란 인터내셔널'은 지난해 11월30일 쿰의 한 고등학교에서 18명이 증세를 보인 것을 시작으로 여학교 12곳에서 학생 최소 200명과 교사 1명이 메스꺼움, 두통, 기침, 호흡곤란 등 증세를 호소했다고 보도했다. 이란 인터내셔널은 "학생 대부분 짧게 치료를 받았지만, 일주일간 입원한 학생들도 있으며 일부는 수개월간 증상이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4일 피해자 학부모들이 쿰시 청사 밖에 모여 "학교는 안전해야 한다", "당국은 응답하라"며 사건 원인 규명과 당국의 해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모하마드 자파르 몬타제리 검찰총장은 수사를 지시했지만 현재까지 체포된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외신들은 이 사건이 지난해 9월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의 의문사 이후 이란 곳곳에서 반정부 시위가 확산하는 와중에 발생했으며, 인접국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이 여성의 교육을 금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테헤란 알자흐라 대학의 이슬람 연구원인 나피세 모라디도 "탈레반의 여학생 교육 금지 조치를 본 쿰의 광신적 집단들이 여학생들을 집에 가두려는 목표로 공격을 감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newssu@fnnews.com 김수연 기자
2023-02-28 09:20:16미국 역사상 가장 길었던 전쟁으로 남게 된 20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났다. 다민족 국가인 아프간은 다시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으로 우려된다. 이슬람 무장정파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은 중앙집권 정부 탄생이 그동안 쉽지 않았다. 일례로 1901년 이후 현재까지 아프간의 국기는 20회 이상 바뀌었다. 1~2년 만에 국기가 바뀐 경우도 수두룩하다. 가장 큰 이유는 민족적 다양성 때문이다. 아프간에는 열네개 부족이 있고, 언어도 20개에 달한다. 아프간은 국제소수민족권리단체(MIR)가 집계한 '민족 위협지수'에서 세계에서 네 번째로 위험한 국가였다. 아프간은 5000~7000m급 산맥이 널리 퍼져 있고, 해발 2000m 이상 고산 지역이 전 국토의 절반이다. 경작지는 10%에 불과하다. 국민 대부분이 목축을 하면서 산다. 아프간에선 전 세계 양귀비 생산량의 87%가 재배되고 있다. 먹고살 게 없으니 양귀비를 재배해서 수출하는 것이다. 아편은 양귀비에서 추출된다. 이슬람에선 원래 술과 마약 등 사람을 취하게 하는 물질은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탈레반은 직접 아편을 먹지 않고 비이슬람권에 수출하니까 율법을 어긴 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탈레반 휘하의 아프간은 여성인권 탄압과 함께 마약이 판치는 나라가 될 우려가 크다. ■아프간 14개 민족 간 갈등 극심 아프간에선 과반을 차지하는 민족이 없다. 아프간 내 최대 민족은 전체 인구의 42% 이상을 차지하는 파슈툰족이다. 주로 수니파이고, 파슈토어를 사용하며, 18세기 이후 아프간 정치를 지배해 왔다. 1996~2001년 정권 이후 두 번째로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은 파슈툰족이 지배하는 집단이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전 정부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과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도 파슈툰족이었다. 지난 수년간 많은 파슈툰 지도자가 아프간을 통치할 권리를 강조해 왔다. 이로 인해 다른 민족들의 반감을 샀다. 아프간 인구의 27% 이상을 차지하는 두 번째로 큰 민족은 타지크족이다. 주요 언어는 아프간 방언의 일종인 다리어다. 주로 북부와 서부에 분포하며 판지시르 계곡, 서부 도시 헤라트, 일부 북부 지방에 거점을 두고 있다. 타지크족은 1980년대 소련군뿐 아니라 최초의 탈레반 정권에 저항한 것으로 유명하다. 정치적으로 우세한 것은 아니지만, 최근 수십년 동안 다수의 저명한 타지크족 출신 지도자들이 등장했다. 소련군과 싸웠던 존경받는 반군단체 무자헤딘의 지도자 아흐마드 샤 마수드, 즉 '판지시르의 사자'는 아프간인 중 가장 유명하다. 그 밖에 하자라족은 중앙아시아와 투르크족에 기원을 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인구의 약 10%를 차지하고, 주로 아프간 중부에 거주한다. 다리어 방언을 사용한다. 주로 시아파 회교도인 하자라족은 1세기 이상 아프간에서 종교적·인종적 탄압과 차별을 받았다. 탈레반은 대부분 수니파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최근 수십년 동안 여러 아프간 정부들 사이에서 학살을 겪었다. 특히 시아파를 이단자로 규정하는 강경 수니파인 탈레반 정권하에서 고통을 겪었다. 또 다른 수니파인 이슬람국가(IS) 등 아프간에서 활동 중인 다른 무장단체들도 학교와 병원을 가리지 않고 치명적 폭탄 공격으로 하자라족을 테러의 표적으로 삼았다. 우즈베크족도 있다. 아프간계 우즈베키스탄인은 또한 인구의 약 10%다. 주로 우즈베키스탄과의 국경과 가까운 북쪽에 거주하고 있다. 주로 투르크 민족인 이들은 주로 수니파다. 가장 유명하고 악명 높은 아프간의 우즈베크족은 군벌인 압둘 라시드 도스툼이다. 그는 소련과 함께 무자헤딘에 맞서 싸웠고, 사실상 북부 도시 마자르이샤리프를 중심으로 자신의 거점을 마련했다. 그는 2001년 미국의 침공 이후 탈레반 통치를 종식시키는 데 도움을 준 북부동맹의 유력 인사였다. 이후 가니 행정부에선 초대 부통령으로 합류했다. 그는 이달 마자르이샤리프가 탈레반에 함락되자 우즈베키스탄으로 피신했다. 4대 민족 외 유목민족인 아이마크족, 투르크멘족, 발록족, 누리스타니족 등 다양한 소수민족도 있다. 게다가 아프간에는 극단 이슬람단체인 IS-호라산(IS-K)까지 활동 중이다. IS가 2015년 1월 아프간에 일종의 지방정부 성격으로 설립했다. IS는 2014∼2015년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그 세력을 확장하고, 서방국가를 상대로 테러 공격을 자행하며 악명을 떨쳤으나 현재는 상당 부분 세력을 잃고 잔존 지부들이 테러를 이어가고 있다. ■IS-K 등 테러단체와 탈레반 갈등 IS-K 조직원 대부분은 아프간 탈레반 정권에 불만을 품고 이탈한 과격주의자들이다.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단체로 꼽힌다. 지하디스트가 한국에 알려진 것은 2004년 이라크에서 있었던 김선일씨 사건과 2007년 샘물교회 선교단 피랍사건이다. 이라크에서 가나무역이라는 회사 직원으로 일하던 김선일씨는 한국군 파병 철회를 요구하던 무장단체 알타우히드 왈지하드에 의해 참수당했다. 그리고 2007년 7월 19일 아프간에 자원봉사를 갔던 샘물교회 선교단원 23명이 탈레반 무장세력에 납치됐다. 자신들의 동료인 죄수 27명의 석방을 요구하던 탈레반은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를 살해했다. 나머지 21명은 피랍 42일 만에 풀려났다. IS-K 조직 명칭의 호라산(Khorasan)은 현재의 아프간과 파키스탄, 이란 동부 등을 아우르는 옛 지명이다. IS-K는 창립 직후 미군과 아프간 정부군의 공습으로 아프간 내 거점을 상실했는데, 현재 파키스탄과 인접한 아프간 동부 낭가하르주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들은 자살폭탄 테러와 표적 암살 등으로 악명이 높다. 2017∼2018년에만 민간인 대상 테러 공격을 100건가량 자행했다. 2021년 5월에는 카불의 한 여학교에 자살폭탄 테러를 자행, 5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지난달 26일에는 카불공항 인근에서 자살폭탄 테러를 자행, 아프간 현지인과 미군 등 200명에 달하는 인명 피해를 냈다. IS-K와 탈레반은 경쟁적 적대 관계로, 이들은 이슬람 교리에 대한 이해 차이는 물론 아프간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다. 탈레반은 서방과 타협을 통해 아프간에 이슬람 정권을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IS-K는 전 세계의 이슬람 신정국가화를 목표로 서방세계와 타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2020년 3월 미국과 탈레반이 평화협정을 체결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탈레반 대원 일부가 IS-K로 옮겨간 것으로 알려졌다. camila@fnnews.com 강규민 기자
2021-09-05 18:1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