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영화인들의 공통된 반응은 '기생충=아시아의 자랑'이다. 세계 영화사에서 기존 모든 기록·권위를 넘어선 '기생충'을 부러움과 경이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 18일 폐막하는 프랑스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에 참석 중인 전양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기생충' 오스카 4관왕 이후의 세계 영화계 분위기를 이같이 전했다. 전양준 위원장은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 때보다 더 뜨겁다. 한국의 콘텐츠산업을 배워야 한다고 얘기한다. '기생충'이 한국의 이미지를 아시아 최고로 격상시켰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할리우드 자본이 한국시장을 겨냥할 것이다. 특히 봉준호에게 투자가 봇물처럼 쏟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의 콘텐츠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의 글로벌 사업 담당자는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은 한국 콘텐츠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는 분수령이 됐다"며 "한국 콘텐츠가 미디어 주류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기생충' 책임프로듀서인 이미경 CJ그룹 부회장도 할리우드 리포터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 엔터테인먼트산업에 대단한 기회가 왔다"고 말했다. ■'기생충'이 견인한 오스카의 변화 "미국 영화사의 분수령"(AP통신), "'좀 더 포용력 있는 오스카'를 약속한 것처럼 보인다"(월스트리트저널), "역사적 사건"(허핑턴포스트 프랑스판). '기생충'의 오스카 작품상 수상은 단지 한국·아시아 영화사의 전무후무한 기록만은 아니다. 세계 영화사에 새로운 기록 그 이상의 의미를 새겼다. 세계 영화산업을 대표하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그 심장부에서 '기생충'은 오스카가 새 역사를 쓰도록 견인했다. 더불어 아시아의 자랑으로 거듭났다. 올해 작품상 시상자로 나선 '폴리테이너' 제인 폰다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이)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고 말한 뒤 "패러사이트(기생충)"를 호명했다. 92살 오스카가 이젠 비영어권 영화에도 작품상을 줄 자세가 됐음을 공식화한 것이다. 올해 작품상 후보는 '기생충'을 제외하고 영미권 작품 일색이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말마따나 "'기생충'이 오스카가 필요했던 게 아니고, 오스카가 '기생충'이 필요한 해"였다.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은 지난 10일 기네스북에도 등재됐다.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화니와 알렉산더'와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과 함께 '오스카에서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외국어 영화' 공동 1위에 올랐다. '기생충' 작품상 수상은 미국 아시아계 커뮤니티도 들썩이게 했다. 작품상 수상 당시 한국계 할리우드 배우 산드라 오의 격한 반응과 "한국인으로서 정말 자랑스럽다"는 트위터 소감이 대표적 예다. 이미경 CJ그룹 부회장도 '기생충'의 수상은 "아시아계 미국인 커뮤니티 전체에 매우 기쁜 일"이라며 "이제 아시아인들이 인정받고 우리의 노력이 결실을 거둘 때가 됐다"고 했다. ■"'기생충', 세계 영화산업의 게임체인저"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은 세계 영화계에 비영어·비할리우드 영화의 흥행 가능성과 한국영화 브랜드를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산업적 의미도 크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기생충'이 세계 영화산업의 게임체인저가 될지도 모른다"며 "세계 영화 제작자·배급사들이 '기생충'이 영화산업 전반에 미칠 파급력을 주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양준 위원장은 "할리우드 자본이 한국시장을 겨냥하고 '기생충'을 계기로 다국적 공동제작이 늘어날 것"이라며 "오스카에서 한국 제작자의 모습을 보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고 전망했다. 특히 영화관보다 비디오스트리밍 플랫폼 매출이 증가하는 추세에 주목하며 한국영화의 다국적 협업은 필요한 수순이라고 봤다. "부가 판권 시장을 소홀히 한다면 국내 제작자보다 넷플릭스나 아마존이 더 많은 돈을 벌게 될지도 모른다"며 "이젠 북미의 부가 판권 시장까지 염두에 두고 영화를 기획·제작해야 한다. 이안 감독의 다국적 프로젝트 '와호장룡'처럼 미국 자본과 협업해 세계시장을 겨냥한 다국적 영화제작이 보편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국 콘텐츠산업 새 국면 "대단한 기회" 봉준호 감독의 '옥자'를 투자한 넷플릭스는 최근에 한국의 CJENM, JTBC와 파트너십을 맺고 오리지널 한국 콘텐츠 제작에 열심이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기생충' 이전부터 한류가 있었다"며 "올 초 넷플릭스가 국가별 콘텐츠 인기 순위를 발표했는데, 태국·대만·싱가포르 등지에서 한국의 '킹덤' '호텔 델루나' '좋아하면 울리는'이 미국의 '기묘한 이야기'나 영국의 '블랙 미러'와 함께 톱10에 올랐다"며 한국 콘텐츠의 경쟁력에 주목했다. 스튜디오드래곤은 올해 해외 매출 비중을 전체의 40%로 확대할 계획이다. 스튜디오드래곤의 글로벌 사업 담당자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으로 한국 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스튜디오드래곤의 IP(지적재산권)에 대한 문의나 협업 제의가 늘고 있다. 해외사업을 하는 데 있어 '기생충'이 촉발한 한국 콘텐츠의 인식 변화가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스튜디오드래곤의 해외 판매 매출은 2018년 1102억원에서 2019년 1604억원으로 무려 45.5% 증가했다. 이는 "콘텐츠 경쟁력·브랜드 인지도 강화에 따른 단가 인상, 판매 지역 및 OTT로 사업모델 확대 등 글로벌 전략 강화에 기인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CJENM은 현재 '극한직업' 리메이크를 포함해 17개의 영어 영화를 개발 중이다. 이미경 부회장은 "이번 오스카에서 '기생충'이 거둔 성과로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 콘텐츠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봤다. 그는 CJENM의 할리우드 전략과 관련해 "해외 유통 가능한 콘텐츠를 선별하고 이를 현지화해야 한다"며 "각 지역에 맞는 감독을 찾고, 좀 더 실질적이고 정교한 전략을 짜야 한다. 전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 이상으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2020-02-17 17:18:53[파이낸셜뉴스] 지난 2003년, 두 편의 걸출한 한국영화가 개봉했다. 한 편은 봉준호 감독의 두 번째 상업영화 ‘살인의 추억’이고, 다른 한편은 장준환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였다. 두 편 모두 싸이더스가 제작하고, CJ엔터테인먼트가 투자 배급했다. ‘기생충’으로 세계영화사를 새로 쓴 CJ ENM(CJ엔터테인먼트)이 이번에는 ‘지구를 지켜라’를 미국서 선보인다. 장준환 감독이 직접 할리우드 리메이크작 연출자로 낙점됐다. 7일 미국 매체 데드라인 등에 따르면 '지구를 지켜라' 할리우드 리메이크를 장준환 감독이 직접 맡고, CJ엔터테인먼트가 투자 및 제작을 지휘한다. 이미경 CJ 부회장이 총괄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다. 미국 측 파트너는 '유전' '미드소마'의 아리 애스터 감독과 이 영화들을 제작한 라스 크누두센이다. HBO 드라마 '석세션'의 윌 트레이시가 각색에 참여한다.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은 공식 성명을 통해 “‘기생충’의 성공으로 세계의 관객들은 큰 주제 안에서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작품으로 소통하고 즐거워 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장준환은 이를 표출할 수 있는 감독”이라고 밝혔다. 이미경 부회장은 앞서 '기생충' 수상 이후 할리우드리포터와 가진 인터뷰에서 "지금은 정말 좋은 기회"라며 "우리는 더욱 정교한 전략을 짜고 우선순위를 정할 것이다. 아카데미를 위한 영화만을 만들 순 없지만, 창작자들을 전진하게 독려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고 말했었다. ■ 봉준호, 장준환 두 비상한 감독의 과거와 현재 봉준호, 장준환 감독은 1996년 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을 나란히 내놓았을 때부터 영화판의 '작은' 주목을 받았다. 이는 지난해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폐간된 영화잡지 ‘키노’와 함께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1996년 3월. ‘이상한 영화의 발견’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 ‘지리멸렬’과 ‘2001년 이매진’을 각각 연출한 봉준호 감독과 장준환 감독을 인터뷰한 기사였다. 당시 이 잡지 기자로 일했던 ‘기생충’ 제작자인 바른손이앤에이의 곽신애 대표는 “우리의 눈은 정확했다는 그런 마음이랄까"라며 기뻐했다. "그들의 역사를 알고 꾸준히 지지했기 때문에 장준환 감독이 ‘1987’을 개봉했을 때는 제가 제작한 영화가 아님에도 뿌듯했고, 봉준호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는 마치 내일처럼 기뻤다"고 했다. '지구를 지켜라' 골수팬들도 이 영화의 할리우드 리메이크 소식에 반색했다. 홍수경 영화칼럼니스트는 SNS에 "'지구를 지켜라' 팬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라며 "현재 미국을 날카롭게 반영하는 걸작으로 부활하길 기원한다"며 관련 뉴스를 링크했다. '지구를 지켜라'는 외계인의 지구침공을 믿는 병구가 외계인이라고 믿는 유제화학의 사장 강만식을 납치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관객수는 7만여명에 그친 '비운의 걸작'으로 회자됐다. 장준환 감독은 2013년 10년 만에 두 번째 영화 ‘화이’를 개봉했으나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하지만 2017년 ‘1987’이 700만명 이상이 들면서 흥행감독 대열에 합류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2020-05-08 11:0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