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두통을 이유로 한방 병원을 찾으면 처음 방문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처방이 나오곤 합니다. 아픈 곳은 머리인데 팔뚝에 침을 꽂거나 어깨에 부항을 뜨는 식이죠. 나중에 연유를 들어보면 머리가 아픈 이유가 어깨 근육이 긴장한 탓이라거나, 팔에서 올라오는 혈류가 막혀있기 때문인 경우들입니다. 아픈 부위를 직접적으로 두들기거나 주무르는 것은 종종 어린 아이들의 단순한 처방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심지어 때로 증상을 악화시키기도 하죠. 부동산은 우리 인류가 오래전부터 앓아온 열병입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는 이미 1879년에 저서 '진보와 빈곤'에서 "땅을 사고 10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부자가 돼있을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15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현대의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통용되는 법칙이죠. 우리나라는 특히 '아파트'에 대한 열병이 오래도록 지속되는 중입니다. '불패 신화'를 써내려가던 아파트 가격은 2021년 폭등 후 잠시 조정을 겪는가 싶더니 최근 다시 오름세를 보이며 신화를 연장 중입니다. '연착륙'을 고심하던 정부가 지난 8월 8일 드디어 '부동산 공급 확대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공공주택을 2년간 11만호 공급하는 가운데 특히 비(非)아파트 임대를 되살리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다만 나랏돈을 풀어 매입임대하는 대상에서 '아파트'는 제외하겠다고 못을 박았죠. '아파트 열병'을 앓는 환자 입장에서는 다소 엉뚱한 처방처럼 보일 수 있는 상황입니다. 무너진 빌라 시장...'중간' 없는 주거 지난달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빌라 등 비아파트를 11만호 이상 신축매입임대로 신속히 공급하겠다"며 "이에 더해 서울의 경우 비아파트 시장이 정상화될 때까지 신축 매입임대를 무제한 공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실상 빌라를 짓기만 한다면 정부에서 임대시장의 공증을 서주겠다고 선언한 셈이죠. 자칫 과도한 조치처럼 보일 수 있지만 빌라 시장은 사실상 고사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지난해 아파트 거래 비중이 '신고점'을 찍은 반면 빌라, 주택 등은 곤두박질을 치게 됐죠. '빌라왕' 등 전세사기 공포가 커지며 비아파트 거래를 아예 기피해버리는 현상이 일어나서입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과자가 단종을 맞는 것처럼, 빌라 역시 우리 시장에서 추가적인 생산이 이뤄지지 않는 모양새입니다. 빌라 착공건수 역시 지난해 2만 4910가구로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올해 상반기까지 착공건수도 1만7366가구에 그치며 지난해보다도 적은 숫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제는 그간 빌라가 아파트 마련이라는 최종 목표에 이르기까지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는 점입니다. 사실상 당장 아파트를 사지 못하면 아무 곳에서도 살 수 없는 역설이 일어났습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택에서 돈을 모으기보다 당장 무리한 '영끌'을 해서라도 아파트를 사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처럼 떠올랐습니다. 개발도상국 시절 수준으로 고금리를 처방해도 약효가 없다는 것이 드러나는 중입니다. 주택담보대출은 지난달에만 9조3000억원이나 급증했고 서울 아파트 가격은 55주 연속 오름세를 보였습니다. 정부의 처방은 명확합니다. 아파트로의 쏠림 현상이 극심해지는 이유가 오히려 전 단계인 비아파트 시장의 붕괴로 인한 것이라는 인식이죠. 모두가 아파트만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더 많은 아파트를 공급하는 것은 두통에 머리를 두드리는 꼴이라는 판단입니다. 빌라 기피를 촉발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은 전세사기였습니다. 정부가 진정한 의미의 선한 '빌라왕' 역할을 자청하고 나서며 빌라 거주에 대한 인식은 다소 개선될 전망입니다. 다만 '2년간 11만호'라는 거창한 목표치가 발목을 붙잡을 우려도 있습니다.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야 할 공공임대주택이 아파트 청약처럼 운좋은 소수에만 주어진다면 더 큰 행운을 찾아 아파트로 떠날테니까요. 2019년 이후 지난 5년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급한 매입임대주택은 총 10만가구 수준으로 연 평균 2만호 꼴입니다. 당장 거주가 가능한 후보로 빌라를 내세우려면 기존 노력의 2배 이상을 정부가 기울여야 하는 셈입니다. chlee1@fnnews.com 이창훈 기자
2024-09-13 09:06:45[파이낸셜뉴스] 국민연금이 만약 최근 시중은행에서 출시한 상품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상품 가입을 위한 '은행 오픈런'까지 벌어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직장인 기준 월 4.5%를 납입하면 65세부터 45%를 되돌려주는 엄청난 수익률을 자랑하는 상품이니까요. 정말로 '손해 보고 파는' 금융 상품이 있다면 국민연금이 독보적인 후보가 될 것 같습니다. 시중 상품이었다면 초반에 가입자는 꽤 몰리겠지만 결국 약속한 돈을 돌려줄 때가 되면 그 은행은 망해버릴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정부는 이런 상품을 1988년부터 전 국민에게 팔아오고 있습니다. 심지어 출시 당시에는 '소득의 3%, 대체율은 70%'라는 지금보다 더 엄청난 조건을 내걸었죠. 시장에서 보면 정말로 '사장님이 미친' 수준의 보장성 상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정부도 시장의 논리를 거스르지 못했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추계시산에서 현행을 유지할 경우 2055년이면 기금이 고갈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1년간의 민·관 논의를 거쳐 개혁안을 발표했습니다. '조금 내고 많아 받는' 환상은 깨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결국 정부도 인정한 셈입니다. 밥값 올라도 연금은 제자리...'자동안정화장치' 국민연금의 원형으로 불리는 영국의 공적연금은 사실 약 10~15년을 기준으로 설계된 모델입니다. 1946년 도입 당시 퇴직 후 사망까지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소득을 보장하는 취지였죠. 그리고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우리는 근로시기보다 훨씬 더 길어진 노후를 맞이하게 됐습니다. 은행 상품으로 치면 수익 반환 시기가 출시 당시 예상보다 훨씬 길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국민연금은 매년 1월 전년도 소비자 물가상승률만큼 금액을 올려서 연금을 지급합니다. 일반 회사원의 월급이 수십만원 수준이었던 과거의 가입자에게 그 때 당시 월급의 45%를 돌려주는 것은 사실 말이 되지 않으니까요. 반세기 동안 우리는 눈부신 기술발전과 경제성장을 이뤘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재앙과 같은 일이 동시에 벌어진 것과 같습니다. 수명은 엄청나게 길어진 데다 물가도 순식간에 뛰어올랐거든요. 몇백원짜리 짜장면을 아껴 연금을 가입하던 세대가 몇천원짜리 커피를 마셔야 하는 시대에 연금을 받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사망시기도, 물가도 바꿀 수 없다면 결국 지급액을 바꾸는 길밖에 없습니다. '자동안정화장치'는 물가만큼 올려주기로 한 연금을 얼마나 '덜 올려줄 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정부는 간단하게 "직전 3년치 평균 가입자 수 변화와 기대여명 증감률 2가지를 감안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가입자가 적어지거나, 수명이 늘어나면 지급액의 '증가분'을 줄이겠다는 말입니다. 물가 상승률이 2%라면 2%가 올라야 할 연금에서, 기대여명 증가율이 0.2%, 가입자 감소율이 0.3%라면 이 두 개를 뺀 1.5%를 올려 지급합니다. 수익률을 건드리는 것이 아닌 만큼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연금이 온전히 물가를 따라잡지 못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최근과 같은 고물가와 인구감소가 계속된다면, 언젠가 일상 속에서 '몇만원 짜리 커피'를 사먹지 못하는 세대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죠. 핵심은 '받는 돈' 물론 우리가 내는 돈도 늘었습니다. 현행 9%인 보험료율은 2040년까지 13%를 향해 나아갈 예정입니다. 연금을 받아야 할 시기가 나이별로 다른 만큼 가입 시점에서 남은 시간이 길수록 천천히 오르는 등 속도에는 차등을 뒀죠. 다만 일본 18%, 영국 26%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여전히 낮은 수준의 보험료율입니다. 보건복지부는 "한달에 커피 한 잔 수준의 부담이 오를 것"이라고 우려를 무마했죠. 적게 오르는 대신 기금에 대한 기여도 미미한 수준입니다. 보험료율을 4%p 올린 것만으로는 2055년 고갈이 예상됐던 국민연금 기금의 수명을 1년 연장하는데 그쳤습니다. 대신 '자동안정화장치'를 2036년 도입할 경우 기금 고갈 시기는 2056년에서 2088년으로 늦춰집니다. 이론적으로 지금 당장 도입하면 2093년까지 70년간 기금을 유지한다는 계산도 나옵니다. 국민연금이 '사장님이 미친' 상품인 이유는 내는 돈이 적어서기 보다 돌려주는 돈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받는 돈에 대한 조정이 있어야 국민연금의 수명을 확실하게 늘려줄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chlee1@fnnews.com 이창훈 기자
2024-09-05 10:23:43[파이낸셜뉴스] 10년 가는 권세가 없다는 고사성어가 수백년을 내려오는데는 이유가 있는 모양입니다. 한 해에 20만명 이상이 응시하던 '9급 공무원'의 인기가 10년이 지난 지금 반토막이 났습니다. 정부 인사혁신처 집계에 따르면 올해 9급 공무원 4749명을 뽑는 공개채용에 지원한 인원은 10만3597명입니다. 2016년 22만2650년의 반절도 되지 않는 숫자죠. 합격만 하면 밥 굶을 일이 없다는 '철밥통'의 위세가 고사성어처럼 10년을 가지 못한 셈입니다. 준비생들 사이에서도 "밥통에 밥이 없다"거나 "아무도 안 잘리는 것이 오히려 단점"이라는 불만이 나오던 차, 지난해에는 "누가 공무원 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느냐"는 조롱까지 나오는 신세가 되기도 했죠.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일 수 있습니다. 사실 공무원들의 상황 자체는 10년 전과 변한 것이 거의 없거든요. 월급과 복지를 포함해서 하는 말입니다. 공무원 인기는 경기에 반비례?올해 '9급 공무원'의 경쟁률은 21.8대 1. 1992년 19.3대 1 이후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현재 공무원에 대한 취업 수요가 1992년으로 회귀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1992년은 어떤 시기였을까요? 1988년 '88올림픽' 이후 우리 경제가 상승세를 타던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90년은 9.9%, 1991년은 10.8%라는, 지금으로서는 신화같은 성장률을 보이던 시기입니다. 민간 일자리는 넘쳐나고, 기업에서 고용을 위해 마구 돈을 살포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인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공직은 민간에 비해 보수가 낮게 책정됩니다. 90년대에도 민간 대비 공직의 급여는 90%대에 머물러 있었죠. 민간에 더 높은 급여의 일자리가 넘치게 있다면 굳이 공직에 발을 들일 필요가 없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반대로 공무원 인기가 치솟은 2015년은 기나긴 침체에 들어선 시기였습니다. '청년실업'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사오정', '오륙도'와 같은 정리해고의 불안감이 사회를 뒤덮던 시기입니다. 민간에서의 기회가 줄어드는 만큼 그 수요는 공무원으로 불붙듯이 옮겨갔습니다. 민간에 돈이 많이 몰릴 수록 공직의 인기는 떨어진다고 단순화할 수도 있겠습니다. 침체기에 소소한 만족을 주는 '립스틱'처럼, 공직 역시 사회가 어려울 수록 빛을 발하는 직업에 가까웠다는 이야기입니다. 공무원 인기는 '물질주의'에 반비례그렇다면 논리적으로 당연한 의문이 따라붙게 됩니다. 지난해부터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우리 경제 속에서 공무원의 인기는 왜 폭발적인 성장세의 1992년을 따라가고 있는 걸까요?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1.4%에 그쳤고, 올해는 상향조정을 거친 뒤에야 2.7%를 바라보는 중입니다. 반도체 기업이 '역대 최고 실적'을 바라보는 후광을 업고도 개발도상국 시기의 성장세에는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죠. 2024년의 우리와 1992년의 선대 사이에는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돈의 가치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유는 슬프게도 1992년과 다릅니다. 높은 성장으로 통화량이 늘어나서가 아니라, 인플레이션과 투자자산 가치가 높아지며 근로소득의 의미가 많이 퇴색돼서입니다.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오르는 만큼 '벼락거지'와 '벼락부자'가 속출했고, 민간보다도 더 적은 근로소득을 얻는 공무원은 기피직업에 가까워지는 중입니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짜면서 "MZ 공무원의 퇴사를 막겠다"는 목표로 2017년 이후 최대폭의 급여 인상을 결정했습니다. 자그마치 3%를 올리는 중차대한 결정이지만 현재 공무원의 민간대비 보수는 80%대 까지 떨어진 상태입니다. 일각에서는 공무원들이 지나치게 돈을 쫓는 세태가 잘못됐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공무원 본연의 사회에 대한 봉사를 지나친 물질주의가 갉아먹고 있다는 것이죠. '과거급제'처럼 여겨지던 공무원 시험이, 정말로 조선시대의 청렴한 선비만이 치를 수 있는 시험이 돼가는 모양새입니다. 다만 2024년의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보수를 포기한 봉사를 요구하는 것은 어려울 전망입니다. chlee1@fnnews.com 이창훈 기자
2024-08-29 09:46:37[파이낸셜뉴스] "죽은 고양이가 뛰어오른다"는 뜻의 '데드캣 바운스'는 주식시장의 일시적 반등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아주 높은 곳에서 고양이를 떨어뜨리면 고양이가 죽더라도 시체나마 한 번은 땅에 튀기지 않겠느냐는 무시무시한 말이었죠. 시장이 죽더라도 일시적인 반등 정도는 가능하다는 희망적인 구석을 찾을 수도 있지만 시체가 또다시 도약을 해낼 리는 없다는 절망적인 전망을 내포하기도 합니다. 오히려 고양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시체와 함께 다시 바닥으로 향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죠. 여기서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진다'는 전제는 더욱 직관적으로 '데드캣 바운스'를 이해하는 배경입니다. 떨어지는 곳이 높을 수록 반작용으로 튀어오르는 높이도 커지는 것이 순리니까요. 단적인 예로 "도쿄 땅을 모두 팔면 미국 전체를 살 수 있다"고 자부하던 일본의 버블은 잔인할만큼 고양이의 시체를 여러번 높이 튀기면서 꺼져갔습니다. 우리나라 땅값은 2008년에 이미 캐나다 2개를 사고도 남을 정도였습니다. 고금리에 신음한 지난해에도 한국의 전체 땅값(토지가액)은 1경2093조원으로 그 때에 비해 2배 가량 늘어난 상태입니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고양이'의 위치가 이미 꽤 높이 올라가 있는 셈입니다. 죽었나 살았나...고양이 진단 어려워고금리 이후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부동산 호황기였던 2021년 6월을 100으로 놓고 보면 지난해 6월까지 2년간 아파트 가격은 92.7까지 낮아졌습니다. 한 번 살 때 목돈을 써야 하고, 가격 변동이 크지 않은 '안전자산' 취급을 받는 부동산에 있어서 어마어마한 폭락을 겪은 셈입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반등세가 이어졌습니다. 고금리에 익숙해진 시장이 오히려 주택담보대출 규모를 더 늘리며 매수를 결심했던 것입니다. 아파트 가격이 저점을 다졌다는 판단이 어느 정도 공감을 샀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는 시장의 판단을 배신하는 기간이었습니다. 다시 연속해서 가격 하락이 이어지며 '데드캣 바운스' 이론을 한 번 더 증명한 셈이 됐죠. 부동산 부진은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은행 등 경제기관에서 지속해서 지목하는 내수부진의 주요 원인으로 떠올랐습니다. 문제는 최근 부동산 가격이 다시 한 번 반등을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은 5월부터 이달까지 단 한번의 하락도 없이 유지·상승을 기록 중입니다. 시장에서는 지금 고양이가 죽은 채로 튀어오르는 지, 다시 살아나 뛰어오르는 지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고양이 마릿수만 여러개...'목숨' 늘려줘야'부동산 고양이' 한 마리의 생사를 알아보는 가운데 사실 각자 쳐다보는 고양이가 다르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애꿎은 캐나다를 여러 번 살 수 있는 한국 땅값은 사실 대부분 '수도권 땅'이죠. 지난해 1경이 넘는 토지자산 가운데 65.3%는 서울·경기·인천에 몰려 있습니다. 부동산 충격으로 토지자산이 줄어드는 동안 오히려 수도권 토지자산 규모는 늘어나기도했습니다. 도시 고양이와 시골 고양이가 동시에 뛰어내렸는데 생사 여부가 각자 다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부동산원의 주간 아파트가격 추이 역시 지방과 서울을 나눠서 보면 충돌하는 바닥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달 2주차까지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세는 0.32%로 지난 5년11개월 가운데 최고폭으로 올랐습니다. 특히 강남 3구로 불리는 송파구(0.58%), 서초구(0.57%), 강남구(0.46%)는 평균 이상의 증가폭을 보였죠. 반면 지방 아파트 가격은 여전히 0.02% 하락을 유지 중입니다. 미분양이 많은 대구(-0.11%)와 제주(-0.06%), 광주(-0.05%), 부산(-0.03%) 등의 하락세를 서울이 메꾸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결국 반등세를 이끄는 힘은 부동산 시장의 활력보다 수도권 지역에 공급 이상의 수요가 몰리는 것에서 주로 기인하고 있습니다. 고양이의 생사 여부와 관계 없이 사람들의 손으로 고양이를 억지로 위로 던져대는 것과 비슷합니다. 고양이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는 가장 유명한 실험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입니다. 물리학자 슈뢰딩거는 죽을 확률이 50%인 상자 속에 고양이를 넣은 뒤 생사 여부를 알려면 상자를 여는 수밖에 없다고 했죠. 정부는 공급 확대 대책을 내고 역대 최대 수준의 주택 물량을 공급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공공주택 20만호 이상을 시장에 풀고 3기 신도시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는 방침입니다. '데드캣 바운스'를 일으키는 일시적인 공급부족을 우선 해결해보겠다는 취지죠. chlee1@fnnews.com 이창훈 기자
2024-08-22 09:59:06[파이낸셜뉴스] 어린 아이에게 학교나 유치원에서 미래의 모습에 대한 상상도를 그려보라고 하면 대부분이 비슷한 분위기의 그림을 그려냅니다. 평소 아이들이 귀찮아 하던 일들을 기계가 대신 하고 있고, 사람들은 모두 웃고 있는 모습이죠. 기술 발전의 장점은 아이들의 눈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어른들은 그림 속에서 다른 부분들을 봅니다. 아이들이 귀찮고 어렵고 힘들다고 느끼는 일들은 사실 우리 사회 속에서 어른 하나 하나가 담당하는 일들이기도 하죠. 아이들의 그림 속에서 로봇의 비중이 늘어나는 만큼 사실 인간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1900년대에 프랑스의 삽화가 장-마크 코테가 그린 100년후의 모습까지는 그래도 인간들이 그림을 더 많이 채우고 있었습니다. 최근의 인공지능(AI) 관련 이미지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최근에는 아예 인간 모습의 로봇이 그림을 가득 채우고 있거든요. 사라지는 정규직..."신입 필요 없어"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AI에 의한 일자리 대체는 다가올 미래가 아니라 이미 일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KDI는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일자리의 38.8%에서 70% 이상의 업무를 AI와 로봇이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당장 6년 뒤인 2030년에는 AI가 70% 이상 대체할 수 있는 일자리의 비율이 99%에 이른다. 사실상 모든 일자리에서 인간의 자리는 30%가량만이 남게 되는 셈입니다. 바느질을 재봉틀이 대체하던 것과는 다른 개념의 일자리 대체가 진행 중입니다. 로봇이 대신하는 업무는 단순 노동이 아닌 '단순 사유'까지 확장됐습니다. 대표적으로 기초적인 프로그램, 이미지, 전산업무 등 기본적인 인간의 '아이디어'가 들어가는 영역을 넘보는 중이죠. 바꿔 말하자면 직원 가운데 '생각의 중요도'가 적은 직무부터 차례대로 사라지기 시작할 것이라는 얘기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인턴, 신입사원, 단순 사무직 등입니다. 예로 프로그래밍의 경우 막내 직원들의 주된 업무는 가장 기초적인 단계의 단순한 코딩을 수없이 반복하는 작업입니다. 전단계가 마무리되면 그 위의 관리자가 방향을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최종 실무자가 작업을 마무리하게 되겠죠. 이 가운데 첫 단계는 이미 AI가 상당부분 담당하고 있는 작업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신입을 뽑기보다 더 높은 수준의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는 숙련자 채용에 힘을 쏟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일자리 늘어도 소용無...新구조 적응해야이상한 일입니다. AI 기술은 계속해서 발전 중인데 최근의 고용흐름은 견조하거든요. 통계청이 발표한 최근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수는 1년 전보다 오히려 17만2000명 늘어났습니다. 사실 올해 들어 고용률은 거의 매월 역대 최고기록을 경신 중입니다. 실업률은 반대로 역대 최저치를 써내려가는 중이죠. 사실 들여다보면 증가하는 방향이 우리가 원하는 구직 방향과는 살짝 어긋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간별로 보면 36시간 미만 취업자가 35만7000명 늘었습니다. 1∼17시간 취업자가 14만3000명, 18∼35시간 취업자가 21만4000명이죠. 반면 36시간 이상 취업자는 19만4000명 줄었습니다. 연령대로 봐도 여전히 고령층의 증가세가 고용률을 끌어올리는 중입니다. 새롭게 취업을 해야 하는 청년층(15~29세)의 고용은 14만9000명 줄었습니다. 21개월째 이어지는 감소세입니다. 늘어나는 것은 고령층도 할 수 있는 단순 노무, 서비스업, 공공일자리 등이죠. 로봇이 대신 해줄 것이라고 믿었던 직무에 오히려 인간이 몰리는 모습입니다. 인간이 비(非)인간에게 경쟁에서 밀리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과거에도 산업화·기계화 과정에서 수많은 직업이 사라졌습니다. 다만 최근의 AI가 촉발하는 산업 전환은 새로운 직업이 태어나기를 기다려주지 않을만큼 빠를 뿐입니다. AI로 인한 사태인 만큼 AI 관련 직업이 생겨날 것이라는 전망도 높지만, 우리나라의 산업은 아직 구시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전세계 AI 유니콘 기업 가운데 한국 기업은 '0개'거든요. 결국 우리나라의 인간들은 AI보다 '가격이 싸고', '단순한' 일자리로 점차 밀려나는 중입니다. 아이들의 그림 속에서 로봇은 우리의 친절한 도우미였는데요. 정작 우리 사회는 인간들이 AI가 지시하는 '머슴'일을 맡게 되는 중입니다. chlee1@fnnews.com 이창훈 기자
2024-08-14 10:36:39[파이낸셜뉴스] 고금리에도 흔들리지 않던 미국 경기가 드디어 주춤하는 기색을 드러냈습니다. 전 세계는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입을 바라보는 중입니다. 가계부채 1000조원을 돌파한 우리나라 역시 이자부담 경감을 위해 제롬 파월 의장의 '옥음'을 기다리는 처지입니다. 9월 '빅컷'(-0.5%p)에 대한 가능성도 높게 점쳐지며 시장의 기대는 커지는 중입니다. 꽤 길게 이어지던 '초저금리 시대'에 행복한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적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1%에도 못미치는 기준금리를 유지했죠. 가산 금리 등을 제쳐 놓고 단순하게 계산해보면 1억원을 빌려도 연 이자가 100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이율입니다. 월 10만원도 안되는 돈으로 당장 자산을 1억원 늘릴 수 있는 마법을 부릴 수 있던 시대였습니다. 불현듯 고금리 못지 않게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고물가의 체험이 지금의 사태와 겹쳐 보이기도 합니다. 러·우 전쟁과 중동 불안 등으로 물가는 무섭게 올랐습니다. 유럽에서 넘어오는 유통경로가 막히고, 우크라이나의 옥토가 생산을 멈추는 등 '원자재 가격'이 올랐다는 이유였죠. 시간이 지나고 불안정성이 어느정도 해소된 이후에도 물가는 여전히 높았습니다. 한 번 오른 가격은 '할인 이벤트' 등으로 잠깐 잠깐 내려올 뿐 결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한 번 올라간 이자는 과연 다시 내려올까요? 아마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원자재' 담당 제롬 파월 의장이 아닌 우리나라의 은행에게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국제 가격' 반영했는데..."예금보다 대출 많이"미국의 기준금리가 우리나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에 영향을 주면, 이것을 시중 은행에서 반영해 우리에게 금융상품으로 제공합니다. 우리가 돈을 맡기면 예금과 적금, 빌리면 대출 형태의 상품을 주고받는 셈이죠. 여기서 은행은 통상 예금과 대출의 이자율에 약간의 차이를 둬서 자신들의 이익으로 삼게 됩니다. 이 차이가 클수록 '예대마진'도 늘어나고 은행의 수익도 늘어납니다. 미국을 시작으로 고금리 시대가 오며 시중은행도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대출 금리의 인상폭이 조금 더 컸죠. 많은 사람들이 1998년 외환위기 당시를 떠올리며 '예금 이자 10%'의 추억으로 위안을 삼았지만, 얄궂게도 위기는 절반만 돌아왔습니다. 대출금리는 체감상 10%에 가까워졌지만 에금 금리는 여전히 5%를 밑돌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금리 기조 속에서도 대출 잔액이 늘어나는 기묘한 현상이 일어났죠. 2021년에 비하면 분명한 고금리에도 조금만 금리가 낮은 상품이 나오면 즉시 대출을 받아 부동산·주식·가상화폐 등에 돈을 돌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은행으로서는 상품 가격을 올렸는데도 고객이 늘어나는 호황이 지속된 셈입니다. 은행은 기준금리에 각종 가산금리를 더해 시중금리를 책정합니다. 정부가 과자 가격에 개입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은행이 책정하는 대출상품의 가격을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미국의 금리가 낮아지더라도, 대출 금리가 이전 수준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우리의 기대에 불과하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한계 닥친 '가계부채'...銀 상생방안 찾아야월 10만원이 되지 않는 돈으로 1억원을 만드는 마법이 이뤄지는 시기에,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이미 2000조원을 넘어섰습니다. 2010년 1000조원, 2020년 2000조원, 올해 1·4분기 기준으로는 2250조원 수준입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99% 수준으로 고금리를 시작한 미국보다 높은 수준입니다. 우리나라가 지난해부터 유지하고 있는 금리 상단은 3.5%, 유럽중앙은행(ECB) 4.25%와 비교해도 한참 낮은 수준입니다. 초저금리를 유지하는 일본이나 아직 개도국 상태에 머무른 중국을 제외하면 사실상 선진국 가운데 우리나라의 금리 격차가 가장 큰 셈이죠. 미국보다 낮은 금리를 유지하며 국내의 달러가 미국으로 흘러 들어가는 위험을 우리는 왜 감수했을까요? 간단히 말하면 그보다 더 큰 위협이 우리 경제에 이미 오랫동안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은행의 호황을 떠받치던 국민들의 여력도 3년여의 고금리 시기 동안 대부분 고갈된 상태입니다.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1개월 이상 연체된 개인사업자 대출총액은 지난 1·4분기 기준 1조3560억원으로 1년 전(9870억원)보다 37.4% 급증했습니다. 대출은 많이 팔았지만, 이제 미정산 위협을 떠안게 된 셈이죠. 수많은 리스크 속에서, '국제 금리'와 다름없는 미국이 드디어 가격 인하에 들어설 전망입니다. 가격이 오르는 이유와 동일한 논리로 가격이 내릴 수 있다는 선례를, 모든 소비자가 바라는 중입니다. chlee1@fnnews.com 이창훈 기자
2024-08-08 09:48:12[파이낸셜뉴스]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격언이 등장한 시대가 언제인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보통 19세기 구한 말부터 6·25 전쟁 즈음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다소 범위가 넓지만 예측되는 시기 모두 '어렵고 힘들던' 그 때라는 점은 같습니다. 너도나도 공짜를 찾는 시대라는 것은 바꿔 말하면 우리 모두 힘든 시기라는 말과 일맥상통하기도 합니다. 티몬과 위메프가 대금 정산이 불가능하다는 '티메프' 사태가 공식화되자 거시경제 지표가 움직이지 않겠냐는 수준의 충격이 우리 사회에 퍼져나갔습니다. 당장 밝혀진 금액만 2100억원이고, 아직 정산일이 다가오지 않은 거래건을 포함하면 피해액이 1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티·메프는 특정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회사가 아닙니다. 수많은 회사의 재화를 '조금 더 싼 값에' 중개하는 플랫폼 사업에 가깝습니다. 이런 플랫폼에 조단위의 돈이 물려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양잿물을 마실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양잿물일 수도 있다는 의심 정도는 우리가 해볼 수 있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싸면 그만?...알쏭달쏭 수익구조현명한 소비자의 덕목은 끝없는 의심입니다. 할인을 제공하면 그 가격이 원래의 합리적인 가격이 아닐지 의심하고, 유독 싼 가격이 있다면 제품이나 서비스에 하자가 있을 것이라는 식으로 균형을 맞추는 식입니다. 도대체 언제 할인을 안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이벤트'가 많은 시대에, 유독 티몬과 위메프에 소비자들이 몰려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연히 기본값이 돼버린 다른 회사들의 이벤트보다 티몬과 위메프가 더 싼 가격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현명한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게 "왜 티몬과 위메프에서만 더 싸게 팔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기 마련입니다. 다른 곳의 가격이 굉장히 불합리한 수준이 아니라면, 분명히 티몬과 위메프는 팔수록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일 수밖에 없습니다. 답은 사실 이미 나와있습니다. 실제로 손해를 보면서 팔고 있던 것이 맞았습니다. 티몬과 위메프는 2010년 창사 이래로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습니다. 티몬은 2022년 인수 당시에는 '완전자본잠식' 수준까지 재무상태가 나빠진 상태였습니다. 아마존이나 이베이 등 외국의 성공한 오픈마켓 플랫폼들은 자체적인 광고와 마케팅, 입점수수료 등으로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업계 1위 쿠팡은 적자손실을 메워줄 수 있는 투자처를 찾은 곳이고요. 물론 이들 역시 '조금 더 싼 가격'의 출혈 경쟁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늘리고 기업 규모를 키웠지만 그 다음 단계로 올라서는데 성공한 플랫폼들이죠. 티몬과 위메프는 전 단계에서 출혈만을 계속하고 있던 셈입니다. 할인율이 곧 금리...소비자 모르는 '사채'현명한 소비자의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티몬과 위메프는 왜 그렇게 출혈을 감수해가면서 물건을 팔았던 것일까요. 미정산 사태가 불거지고 환불 절차가 밝혀지며 이 수수께끼 역시 어느 정도 해답을 드러냈습니다. 물건을 산 고객과 판매자 사이에, 생각보다 많은 단계와 시간이 소요되고 있던 것입니다. 판매자가 부랴부랴 물품을 취소하기 전까지 소비자가 미정산 사실을 모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티·메프가 판매를 마친 이후에도 실제 대금이 정산이 완료되기까지 약 40일 가량이 소요됩니다. 일단 고객이 낸 돈은 티·메프가 쥐고 있는 셈이죠. 티·메프의 월별 거래 총액은 수천억원 수준으로 단순 예금 이자만으로도 적지 않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목돈'입니다. 오픈마켓의 주력 상품으로 '상품권'이 떠오른 것 역시 같은 이치입니다. 정산 불가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6월에도 'e쿠폰서비스' 부문은 전년에 비해 1269억원(21%) 늘어났습니다. 발행업체가 5%, 판매업체가 3%의 할인을 적용해 마진을 남기는 것이 일반적인데 티·메프는 통상 7~10% 할인율을 적용했거든요. 고객 입장에서는 현금을 10% 싸게 사는 횡재같은 상품이었지만, 실상을 알고보면 티·메프 입장에서 2~5% 금리로 어음을 발행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티·메프는 '할인 중개 플랫폼'이 아니라 상품과 서비스를 담보로 돈을 빌려쓰는 사채업의 형태에 더 가까웠던 것입니다. 당장 물건을 받아볼 수 있었던 소비자나, 우선 매출을 올릴 수 있는 판매자 모두 모르는 새 티·메프에 돈을 빌려준 셈입니다. 결국 티·메프의 어음이 부도가 나자 피해는 고스란히 채권자의 몫이 됐습니다. 정부는 유동성 5600억원을 공급해 급한 불을 끄고 온라인 플랫폼의 불합리한 정산 구조에 법적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습니다. 정작 어음을 돌린 티·메프만 '공짜돈'을 쓴 모양새입니다. chlee1@fnnews.com 이창훈 기자
2024-08-01 10:26:13[파이낸셜뉴스] "약자를 존중하고 지킨다" "부정과 악에 맞서라" "레이디의 명예를 존중하라" 모두 듣기만 해도 낭만이 넘치는 유럽 기사도의 준칙들입니다. 오늘날에도 기사는 영화·드라마 속 정의로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비율이 높고, 이들이 외치는 신념 역시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 통용될 수 있는 정의에 가깝습니다. 불편한 진실은 사실 '기사도'라는 수칙을 세우기 전까지는 정작 그 내용들을 지독하게 지키지 않는 것이 기사들의 행태이기도 했다는 점입니다. 약자를 무시하는 기사, 부정을 저지르거나 여성을 비하하는 기사가 많았기 때문에 오히려 '기사도'에는 제발 지켜줬으면 좋겠는 점들을 빼곡히 적게 됐다는 것입니다. 한국 주식시장이 부르짖고 있는 '밸류업'은 우리 기업들의 '기사도'와 같습니다. 한국의 개미투자자들은 왜 자꾸 미국을 향해 '탈조선' 하는 걸까요? 왜 정부까지 나서서 배당을 늘리고 주주환원을 확대하는 것부터 시작해보라고 갖은 인센티브를 들고 오는 걸까요? 아직 '밸류업'이 지켜지지 않고 있어서일 것입니다. '배고픈 IMF 시절' 머무른 韓 주식시장한국 주식의 저평가를 일컫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입니다. 우리 기업들의 부실한 자본구조에서 세계 1위 규모의 분식회계까지 드러나며 당연히 가치 평가는 수직 하락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었습니다. '디스카운트'라기보다 일정 부분 제자리를 찾아가는 '햐향조정'의 의미가 컸습니다. 문제는 위기 당시 등장한 '디스카운트'가 20년이 흐르는 동안 회복기와 호황기에도 계속해서 남아있다는 점입니다. 글로벌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경쟁할 만한 기업들이 다수 생겨났지만 주식 가치는 경쟁자에 비해 놀랄만큼 작은 수준이죠. 주식의 가치를 가늠할 때 주로 쓰이는 것이 주가순자산비율(PBR)입니다. 주당순자산은 기업이 당장 문을 닫을 경우 주식 1주당 떨어지는 돈을 의미합니다. 주가는 시장에서 주식이 팔리는 가격이죠. PBR이 1이라는 의미는 주식을 산 회사가 갑자기 망해도 최소한 본전은 찾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당연히 당장 문을 닫을 회사의 주식을 사는 사람은 없죠. PBR은 투자가치가 높게 평가되는 시장일 수록 높게 나타납니다. 이 회사가 당장 망하지 않고 앞으로 성장할 것이기 때문에 주가가 순자산보다 높게 형성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우리나라의 PBR은 지난해 결산 기준 간신히 1을 맞췄습니다. 사실 2012년부터 2021년까지 평균치를 봐도 1.2 수준으로, 계속해서 '본전' 안팎을 왔다갔다만 하는 중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주식을 산 기업은 세계 선진국의 최고 기업들과 경쟁 중인데 주식 가치는 겨우 본전 수준의 평가를 받고 있는 셈입니다. '밸류업' 주체는 '소수'...자율참여 이뤄질까우리나라 기업들의 PBR이 유독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통상 PBR을 올리려면 기업 이익을 더 크게 만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기업이 수익을 많이 낼 수록 PBR은 올라가는 것이 공식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은 조금 다릅니다. 이미 세계 어느 기업에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 수익을 내는 중입니다. 그렇다면 PBR이 낮은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합니다. 수익이 고정돼있다면 PBR에서 남은 변수는 '기업의 순 자산'입니다. PBR 계산식에서 분모와 관련된 부분이죠. 기업이 혹시 몰라 손에 쥐고 있는 돈이 많을 수록, PBR은 낮아지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정부가 기업에게 '주주환원'을 독려하는 것 역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기업들은 수익이 아무리 많이 나더라도 주주들과 쉽게 공유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외국에 비해 수익성이 낮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상하게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주주는 기업의 수익과 무관한 존재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굳이 돈을 내고도 주인행세를 할 수 없는 기업에 투자를 하지 않습니다. 추가적인 투자 채널의 문은 닫히고 PBR은 더 낮아지는 악순환 구조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정부는 이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첫 단추로 '주주환원'을 들고 왔습니다. 수익이 충분하다면 이제 주주에게도 이익을 공유하라는 말이죠. 단기적으로 보면 기업의 자산을 줄이는 행위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기업의 가치가 올라가며 충분한 환원이 이뤄진다는 계산입니다. '실질적인 주인'인 주주들도 환영할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주식을 산 기업의 주인은 따로 있습니다. 블룸버그 통신은 “한국 기업은 취약한 기업 지배 구조와 소액주주에 대한 비우호적 태도로 인해 낮은 평가를 받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죠. 우리 증시는 소액주주 수만명의 합보다 소수의 지배주주를 위해 아예 이익을 공유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사례가 빈번한 시장이기도 합니다. 결국 정부까지 나서서 주주환원을 늘리는 증가분만큼 세제 혜택을 주겠다는 인센티브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개미'들에게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에 가까운 인센티브지만, 누군가에게는 크게 매력적인 선택지임에 틀림 없습니다. chlee1@fnnews.com 이창훈 기자
2024-07-25 09:56:39[파이낸셜뉴스] 할리우드 스타 안젤리나 졸리의 아들 매덕스가 우리나라 대학에 진학한 것이 화제가 된 일이 있습니다. 매덕스의 자취를 위해 광화문 아파트를 '전세'로 계약한 것이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과연 안젤리나 졸리가 전세제도를 이해할 수 있을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죠. 미국인 입장에서는 보증금을 내고 자기 집처럼 남의 집을 쓰다가, 계약 기간이 끝나면 고스란히 돈을 돌려준다는 개념이 이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일반적인 시장논리에 비춰보면 다소 납득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야 한다는 대전제를 무시하고 언뜻 세입자에게만 한없이 유리해 보이기도 합니다. 전세를 이해하려면 제도의 틀을 '주거'에서 '투자'로 갈아 끼워야 합니다. 안젤리나 졸리 역시 우리나라 아파트 가격 추이를 들여다 봤다면 금방 'OK'를 외쳤을 지도 모릅니다. '부동산 불패'가 만든 기형적 제도한 푼도 빠짐없이 돌려줄 돈을 받고 2년간 집을 빌려주는 집주인의 심보는 무엇일까요. 사실 우리가 보증금을 내는 대상은 '집주인'이 아니라 '투자자'에 가깝습니다. 부동산을 돌아다니다 보면 심심치 않게 '집주인이 한 번도 살지 않았던' 방을 둘러보게 됩니다. 애초에 집을 구매한 사람의 목적이 주거가 아니었다는 의미입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전세보증금은 2년 후 돌려줘야 할 빚이지만, 집값이 계속해서 빠르게 올랐기 때문에 결코 손해 보는 일이 없었던 것"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합니다. 6월 기준 우리나라의 아파트의 전국 평균 전세가율은 67.5%입니다. 단순히 얘기하자면 매매가격의 절반 이상의 자금을 보증금의 형태로 무이자 대출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수억, 수십억원의 상품을 절반 이하의 자본만 갖고도 투자가 가능해지는 마법이 일어납니다. 가격 단위가 큰 만큼 조금만 올라도 자본 대비 큰 수익을 얻게 되는 셈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불패' 신화는 장기적으로 깨진 적이 없습니다. 집주인의 마음이 어떻든 세입자는 '주거'의 개념에 머물러 있는 만큼 년 단위의 장기계약 중에서 꾸준히 아파트 가격은 우상향을 기록했습니다. 집 주인도, 세입자도, 이자를 받는 은행도 모두가 행복했던 제도가 다시 '기묘함'을 띄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간단히 말하자면 "집값이 계속해서 빠르게 오르는" 대전제가 최근 무너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깡통전세', '역전세' 등 전세의 부작용이 지난해 들어서야 새롭게 나타난 현상은 아닙니다. 전세가 엄연한 투자 상품인 만큼 가격 하락기에는 여지없이 등장하는 고질병에 가까웠습니다. 그럼에도 최근 들어 공공연하게 '전세의 종말'이 언급되는 것은 과거와 달리 부동산 시장의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어서입니다. 전세제도가 없는 선진국에서는 '잃어버린 30년'이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으로 이미 경험해본 일이기도 합니다. 이자보다 비싼 월세...전환 쉽지 않아적은 자본을 가진 집주인이 보증금을 '레버리지'처럼 쓰는 전세 제도는 '부동산PF사태'와 비슷한 위험 요인을 갖고 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전세가율 67%를 메우고 있는 보증금 역시 대부분 세입자의 빚이라는 점입니다. 사실상 집이라는 상품에 대한 대금이 거의 다 빚으로 메워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2000조원 돌파를 눈앞에 둔 가계부채가 보증금을 더하면 3000조원을 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너무 당연하게 '돌려받을 돈'이라고 인식한 나머지 우리가 부채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돈입니다. 정작 돌려받지 못하는 위기가 오면 고스란히 우리 경제의 폭탄으로 돌아올 돈이기도 합니다. 선진국 대열에 이름을 올린 우리나라 역시 앞으로 장기적인 저성장 국면을 대비해야 합니다. 과거와 같은 '부동산 불패'가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도 옅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신화에 기대온 전세제도 역시 다른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월세에 자리를 비켜줘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전세의 품을 벗어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도가 작동하는 동안에는 집주인과 임차인, 돈을 빌려줬던 은행마저도 모두 행복한 상태였거든요. 폭탄이 터지는 것은 미래의 일이고, 행복한 꿈을 깨는 것은 지금 당장의 일입니다. 고수익 투자 상품을 버려야 하는 집주인도, 안정적인 대출 상품을 접어야 하는 은행도 이를 원하지 않습니다. 특히 내 집 마련의 꿈을 위해 목돈을 쟁여둬야 하는 세입자는 월세가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꿈을 깨고 싶지 않은 주체 가운데 집을 '주거'로 바라보는 이들은 집이 없는 세입자들 뿐입니다. 집이 상품으로 남아있는 한 전세 제도가 사라지기는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chlee1@fnnews.com 이창훈 기자
2024-07-18 15:10:03[파이낸셜뉴스] '상속'이란 단어가 부자들의 전유물에서 우리 가까이 내려온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비교적 최근 드라마였던 '상속자들' 역시 별다른 수식어 없이 주인공 가운데 부잣집 2세가 등장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최고 수준이라는 상속세 부담 역시 우리 일상과는 거리가 먼 얘기였습니다. 부모님의 아파트를 물려받을 때가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는 말입니다. 여전히 '국민의 정부' 시절 세율...'부자세' 유명무실우리나라는 현재 총 5구간의 상속세 과표구간을 갖고 있습니다. 1억원 미만의 금액에서는 사실 체감도가 크지 않습니다. 10% 가량의 세율은 당장 우리가 늘상 마주하고 있는 부가가치세(VAT)와 비슷한 수준에 불과합니다. 다만 1억원이 넘는 순간부터 갑자기 세율이 두 배인 20%로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10억원이 넘어가면 절반에 가까운 40%가 세금으로 부과됩니다. 30억원부터는 실제로 절반을, 주식회사의 최대주주가 주식을 상속할 때는 20%의 프리미엄을 붙여 60%까지 세율을 매기기도 합니다. 손에 쥘 돈의 '절반 이상'까지 세금으로 떼어가는 무시무시한 제도지만 사실 마지막 개정안이 발표될 때까지만 해도 '노블리스 오블리주'에 가깝게 여겨졌습니다. 많이 물려받는 만큼 세금을 많이 내야한다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던 시대였습니다. 당시 짜장면 가격은 2500원이었고, 서민·중산층이 최소 과표구간인 1억원을 넘기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뒤로 24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10억원 이상부터 40%의 세금을 내야한다는 말은 곧 수도권 아파트 한 채를 물려받으려면 방 2개 정도의 금액은 세금으로 내야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우상향하는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2035년에 수도권 아파트의 60%가 상속세 40% 과표구간에 들어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마지막 개정인 2000년은 김대중 정부 들어 이제 막 디지털 산업이 태동하던 시기였고, 2024년에는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석권하는 나라 중 하나가 됐습니다. 1억원이라는 기준 역시 은퇴를 앞둔 부모세대가 자식을 위해 마지막으로 모아둔 돈이라고 생각하면 오늘날에는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는 금액입니다. 학계에서는 명목 GDP의 생산성을 단순 계산해 3배 이상 과표구간을 늘리자는 급진적인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경제 수준을 고려하면 적어도 30억원 이상을 물려줄 것이 아닐 경우 절반 수준의 세금을 떼는 처사는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세수감소 진행중...'개인사'에 공제 어려워그럼에도 세율이나 과표구간을 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부 조건에 한해 세금을 공제하는 것에 비해 근본적인 구조를 건드리는 만큼 줄어드는 세금의 규모가 훨씬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줄어드는 인구 역시 세금을 깎는 방향으로 징세의 틀을 바꾸는 것을 가로막는 요인입니다. 굳이 구조를 바꾸지 않아도 정부가 걷을 수 있는 세금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전체 풀이 좁아지고 있어서입니다. 정부가 가업상속공제 한도를 늘리는 등 기업 사장님들의 세부담을 줄여주는 것 역시 같은 이유입니다. 기업 가치의 절반 가량을 세금으로 내기보다 폐업을 택하게 되면 기업의 법인세와 임직원의 소득세까지 한 번에 사라지게 됩니다. 세부담을 줄여서라도 기업활동을 유지하는 것이 '상속세 완화'의 본질적인 목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장기적으로 세수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 곳에 한해 세율을 조금씩 깎아주는 '공제'의 활용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서민·중산층은 '부의 대물림'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목적을 갖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사실 개인이 보기에는 사장님의 목표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공제'에 포함될 수 없는 우리에게 상속세 공제가 편파적인 수단으로 보이는 이유기도 합니다. chlee1@fnnews.com 이창훈 기자
2024-07-12 10:5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