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렌터카를 빌려 떠난 근교 도시에서의 하루는 후쿠오카 도심에서 보낸 3일과도 바꾸지 않을 만큼 더 풍성했다. 근교 도시에서 2박은 온천과 료칸의 도시 유후인, 규슈의 '작은 교토'라 불리는 히타에서 각각 1박씩 묵었다. 특히 목적지로 이동간 중간중간 들렸던 '지온노타키 폭포'나,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에 나왔던 '분고모리 역', 지상 173m에 아찔하게 펼쳐진 '코코노에 꿈의 대현수교' 등은 렌터카 여행이 아니었다면 보지 못했을 장소였다. 이 밖에도 구글 지도에서 우연히 찾아 들리게 된 작은 공원에서 보게 된 히타의 석양, 공원 연못에서 만난 초대형 잉어와 철갑상어 등도 이색적인 볼거리 였다. ■날씨는 비, 온천의 도시 유후인으로 향하다 "방금 위험한 여자라고 생각했지?" "그게..." "괜찮아. 어차피 인간이라는 건 모두 조금씩은, 어딘가 이상한 생물이니까." 마치 그녀가 세계의 비밀, 그 자체인 것처럼 보인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 '언어의 정원'의 한 장면이다. 구두공이 꿈인 15살 남자 고등학생과 미각 장애를 가진 27살의 고전문학 여선생은 비오는 날 공원에서 우연히 만나 서서히 가까워진다. 후쿠오카에서의 3일째 아침에는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카타 인근의 렌터카 회사에서 경차를 빌려 목적지인 유후인으로 향했다. 당초에는 유후인에 도착하기 전 중간 중간 다양한 명소들에 들릴 계획이었으나 쏟아지는 비로 계획을 변경했다. 하필 여행 중에 만난 비는 불청객이었지만, 좋게 생각하면 장거리 이동이 있는 날 비가 와서 다행이었다. 오후 1시쯤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imi ola house'라는 이름의 독립 별체형 숙소였다. 유후인에서는 대부분 당일 저녁 가이세키 요리와 다음날 조식까지 나오는 료칸에서 묵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굳이 료칸에서 값 비싼 가이세키 요리를 먹느니 보다 유명한 식당에서 따로 먹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또 해당 숙소의 평점은 다른 곳이 7~9점인 것과 달리 거의 만점에 가까웠다. 홈페이지에서 본 주인장이 기르는 고양이 역시 귀여워 보였다. 집 주인은 30대 후반의 일본인 여성이었다. 얼리 체크인이 가능한지 문의했으나 집 청소 등으로 오후 3시에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비닐 우산 2개를 빌려 차를 몰고 긴린코 호수로 향했다 유후인에 오면 누구나 찾는 긴린코 호수는 수온과 공기의 온도 차로 인해 물안개가 떠 있는 경치로 유명하다. 호수의 온도도 온천수가 흘러들어가 미지근하거나 따뜻한 편이라고 한다. 긴린코 호수부터 시작해서 유후인 역으로 가거나 반대 방향으로 도보 투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길을 따라 '금상고로케'를 비롯해 '닭튀김', '벌꿀아이스크림', '치즈푸딩' 등 먹거리가 넘쳐난다. 또 이색적인 상점과 기념품 샵도 많아 어디에 들리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부모님과 형 등 가족으로 구성된 우리 일행은 비가 왔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 구경하지는 못했다. 가장 먼저 들린 곳은 '하나 요리'라는 카페로 경단과 인절미떡, 녹차 아이스크림, 커피 등을 파는 곳이었다. 이후 거리를 따라 펼쳐진 다양한 상점을 구경하고 금상고로케와 닭 튀김을 먹었다. 숙소로 가기 전 편의점에 들려 도시락과 아사히 캔 맥주, 음료, 간식, 초밥 등을 싸왔다. 숙소는 4명이 묵기에도 충분히 넓었다. 온천은 숙소 내부에 작게 마련돼 있었다. 가족탕으로 쓰기엔 좁았고 1명이나 2명 정도가 적당한 사이즈였다. 온천수 샤워를 하고 넷플릭스로 한국 방송을 틀어 놓고 간단하게 저녁을 먹었다. 주인장은 사보오 군이라는 고양이와 둘이 살고 있었다. 숙소에 들어오고 간단하게 규칙을 알려주는데 고양이가 거실에 있을 때는 절대로 외부로 나가는 창문이나 들 창을 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호스트는 미국과 호주 등 다양한 곳에서 외국 생활을 하고 몇 년 전부터 꿈이었던 전원 생활을 위해 이 곳에서 고양이와 둘이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조만간에 유기묘 1마리를 더 입양할 생각이라고 한다. 다음날 조식 준비를 위해 밥을 얹히는 그녀에게 부모님은 궁금한 게 많았던지 이것저것 물어보셨고 나는 중간중간 말을 전달했다. 'imi ola house'의 뜻을 물어보자 "물고기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했다. 외할아버지가 쓰시 던 집을 수리해 현재는 게스트하우스로 쓰고 있으며 한국 관광객은 물론 일본, 다양한 국적의 손님이 찾는다고 했다. 그녀의 남동생은 현재 한국인 아내를 만나 한국에 살고 있다고도 했다. 의례적인 인사로 "다음에 한국에 놀러와라"고 물어봤지만 "사보오 군(고양이) 때문에 외국을 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다. ■벳푸 지옥온천 보고 히타로 가는 길 다음날 아침 8시30분, 조식은 숙소의 호스트가 직접 만들어서 대접해 줬다. 계란말이와 연어구이, 미소국과 매실 짱아찌, 당근채 무침, 연두부 등 소박하고 정갈한 일본 가정식이었다. 아침을 먹고 짐을 싸서 벳푸로 향했다. 벳푸에는 총 7가지 주제로 '지옥온천 투어' 상품이 유명하다. 호스트에게 물어보니 '바다 지옥'을 추천한다고 해서 그 쪽으로 향했다. 바다 지옥의 입장료는 1인당 450엔, 7가지 모두를 보는 입장권은 2500엔 정도였다. 하지만 굳이 비슷한 컨셉의 온천을 모두 둘러보기 보다 바다 지옥을 찬찬히 둘러보기로 했다. 바다 지옥은 말 그대로 중앙의 메인 온천이 푸른 빛깔로 보였다. 온천 근처에 갤러리와 상점이 있고 온천으로 가는 호수와 주변의 산책로도 꽤나 방대한 넓이 였다. 온천을 보고 나오는 길에는 족욕을 할 수 있는 곳도 별도로 마련돼 있어 뜨끈한 온천 물에 발을 담그고 20분 정도 휴식을 취했다. 바다 지옥을 보고 다시 렌터카를 탔다. 다음 목적지는 사기리다이 전망대. 사기리다이 전망대는 유후인에서 벳푸로 넘어가는 고개 중턱에 있다. 국도 한 켠에 차를 세우고 내려다 보면 유후인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전날과 달리 날씨가 맑아 반대편 하늘 끝까지 보일 듯 했다. 전망대를 지나 이동을 하는 동안에는 창문을 열고 달렸다. 시원한 산 공기와 눈 앞에 펼쳐진 6월의 푸른 녹음은 그 자체로 힐링이 됐다. 산 길은 대관령을 오르는 국도처럼 꼬불꼬불하고 휘어졌으나 그것 역시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 다음으로 들린 곳은 '코코노에 꿈의 대현수교' 였다. 400엔인가 500엔의 입장료가 있었다. 벳푸에서 온천 2곳을 둘러 보는 것보다 확실히 온천 1곳과 현수교를 보는 편이 훨씬 더 나은 선택이었다. 현수교 위에서는 건녀편의 절벽과 폭포가 한눈에 보인다. 현수교 이 쪽과 저 쪽에서 각각 도장을 찍는 인증 이벤트도 있다. 현수교를 둘러보니 시간은 점심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식당이 문을 닫거나 먹을 만한 메뉴가 없어서 슬슬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코코노에마치의 한 우동집을 검색하고 도착했지만 식당은 영업 종료 시간보다 1시간 빠른 2시에 이미 장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중간에 'A 쿠프'라는 대형 마트에 들려 도시락과 간식을 사서 늦은 점심을 떼웠다. 이후 도착한 곳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에 나왔던 분고모리 역사였다. 수십년 전 역사의 모습을 간진학 폐건축물과 검은색 철도가 놓여 있는 장소다. 특별하게 다른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동 중에 들려 한숨을 돌리기엔 좋았다. 역사를 지나는 철길이 현재도 작동하고 있는데 시간이 맞으면 슬랭덩크에 나왔던 한 장면처럼 경고음이 울리며 열차 가림막이 올라가고 실제로 열차가 지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2023-07-01 14:4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