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좌절이 우리를 감싸며, 더 이상 삶을 이끌어 가는 힘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순간은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한계를 넘어, 찬란한 인생의 순간을 찾아가는 이들의 여정을 담았습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역경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편집자주> 사근사근한 말투, 질문에 답할 때는 2초 가량 멈춘 후 상황과 개요부터 설명하는 남자. 멘사 최고점을 받은 그의 지능지수는 '156 이상'이다. 하지만 기자가 준비한 '두뇌 테스트' 책에 출제된 문제 세 문제 중 무려 두 문제를 틀리는 기록을 달성하고 사람 좋게 '허허' 웃어 보인다. 입시에 무려 6번이나 낙방한 '천재 치과의사' 박현석 씨를 만났다. '지니어스' 2010년도 중반 당시, 방송 예능가에는 두뇌 서바이벌 프로그램 열풍이 불었다. 2013년 tvN '더 지니어스 : 게임의 법칙'이 흥행하면서 프로그램에서 활약을 펼쳤던 홍진호, 장동민, 이상민 등의 인기가 급상승하는가 하면 '뇌섹남'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고 '문제적 남자' 등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다. 소개가 늦었지만 박 씨는 사실 이 같은 두뇌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우승자 출신이다. 박 씨는 '더 지니어스'를 탄생시킨 정종연 PD와 연출진들이 2017년 제작한 '소사이어티 게임2'에 출연, 20여명의 쟁쟁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펼치며 우승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 전 시즌을 통틀어 최다 상금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이렇게 머리 좋은 박 씨도 '공부'만큼은 상당히 못했다는데, " 대학교 삼수, 치전원(치의학전문대학원) 삼수했어요. 공부하는 법을 모르겠더라고요. 사회 과목 45점, 가정 과목은 29점…앉아서 문제집은 푸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도저히 감이 안 잡히더라고요. 그런데 수학에는 소질이 있었어요. 어떤 형태의 문제이든 '풀기만 하면 맞더라'고요. 중학교 때는 교내 수학 영재 경시대회 전체 1등이었고, 고등학교 때는 대학교에서 주최한 대회에서 입상한 적도 있습니다. 몇 차례 고배를 마셨던 입시에서도 수학만큼은 100점이었어요" 타고난 머리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TV출연에 학업에, 이 밖에도 누가 시키지도 않은 스포츠 브랜드 광고 활동에 잡지 촬영까지 했다는(참고로 그는 184㎝의 장신이다) 박 씨. 어찌됐든 다사다난한 일상 끝에 치전원을 졸업한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사람이 좀 산만한가 싶은 의문이 드는데…아니나 다를까, 치과의사가 된 후에도 박 씨는 '다른 것'에 손을 댄다. '겜블러' '소사이어티 게임2' 우승 이후 유사 프로그램의 러브콜이 쏟아졌지만 박 씨는 군에 입대하는 길을 택했다. 유명세를 탈 수 있는 기회는 놓쳤지만, TV출연이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당시 함께 출연했던 방송인 장동민의 권유로 포커(텍사스 홀덤)에 입문하게 된 것이 그것이다. 현재 박 씨는 치과의사인 본업 외에도 포커 플레이어로 국내외 대회에 참가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포커라는 게임이 단순한 카드놀이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간단히 설명하자면 예상하는 결과나 확률값에 따라 머리 속 계산기를 돌려보고, 가능한 유추를 한 뒤 내가 취한 액션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매커니즘을 가진 게임인데요. 배팅을 하거나 폴드(포기)를 해서 결과가 내 계산과 맞아 떨어지는 순간, 수학문제를 풀어 답을 맞혔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아요. 뭐랄까, 제가 두뇌를 회전하는 상황 자체를 굉장히 즐기는 사람이라, 결과가 좋을 때 얻는 만족감, 일종의 쾌감 같은 게 드는 거죠" 포커 외에도 매주 쉬지 않고 지인들과 농구활동을 하고 있다는 박 씨. 끊임없이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박 씨는 일견 두뇌든 몸이든 가만히 두는 것을 견딜 수 없어하는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절대, 게임을 통해 쾌락을 좇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저의 플레이 스타일은 무료할 정도로 '안정적'이에요.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요. 어느 한 게임에서 엄청난 배팅을 해서 큰 성적을 이루는 타입이 아닌 거죠. 포커를 좋아한다고 해서 본업인 치과의사와 바꿀 일 또한 결코 아닙니다. 저는 무모한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바보' 그는 '안 아프게 마취하는 치과의사'라며 자기 본업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많이들 치과 치료 무서워하잖아요. 대부분이 따끔하고 아픈 마취주사 때문인 건데, 우리가 마취주사를 사용하는 근본적인 목적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따끔한 순간보다 더 큰 아픔을 주지 않고자' 하는 것이잖아요? 근데 역설적으로 마취주사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란 말이에요. 환자들이 무서워하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진료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마취를 하는 시간이 조금 더 길어질 지언정, 제가 조금 더 시간과 노력을 들일 지언정, 아프지 않게 마취를 해주고자 하는 게 저의 마음이에요" 다시 포커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일반적인 세상의 시선은 아마도 '왜 멀쩡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굳이 겜블(포커)을 해?', '저 착한 사람이 포커 치는 걸 좋아한대' 등 다소 부정적인 게 사실이다. 최근 홀덤펍들이 성행하면서 술 내음 가득한 밤거리 사이 네온사인을 빛내고 있지만, 포커(홀덤)에 대한 세상의 시선은 엄밀히 말해 '어둡다'. "포커는 기본적으로 마인드 스포츠이긴 하지만 중독성이 강하죠. 큰 참가비를 내고 더 큰 상금을 받는다는 게임의 특성상 사행성도 무시할 수 없고요. 포커 테이블에 앉은 플레이어 중, 게임 결과에 따라 자제력을 잃고 흥분한다든지, 이성을 놓은 채 게임에 빠져드는 분들도 계세요. 그런 분들을 보면 제가 '잘못되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는 게 사실이고요. 너무 좋아하는 포커이지만, 은퇴를 고민했었어요" 이 즈음, 박 씨는 어린이날을 맞아 평소 봉사활동을 다니던 보육원에 방문했다. 그러던 중 그의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 당시 출전했던 포커대회에서 얻은 상금을 전액 보육원에 기부하기로 마음 먹었어요. 면죄부랄까…플레이를 하면서 생기는 사행적인 마음에 대한 보상심리일 수도 있고요. 포커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포커에 대한 대중의 시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고. 그렇게 하니 저 자신도 플레이를 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임하게 되더라고요. 향후 포커를 통해 수령하는 금액의 10%를 매번 기부할 생각입니다. '십일조' 같은 거죠" 천재적 두뇌를 가졌지만 공부를 못해 삼수를 하고, 환자들이 무서워하지 않도록 안 아프게 마취를 해주려 노력하고, 본인 돈으로 쓰는 취미 생활에 굳이 느끼지 않아도 될 회의감까지 느끼며 수 백 만원의 상금을 아이들에게 내어주는 박 씨. "나는 내가 똑똑한 걸 알고 있다"라고 말하지만 기자가 준비한 문제를 모양 빠지게 세 번이나 틀리는 그의 삶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진달까. IQ 156 사나이지만, 인터뷰 내내 '딱 이거다' 하는 명언(?)은 나오지 않았다. 그는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말하면서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아, 저는 정말 왜 이렇게, 사람이 멋이 없을까요" 대충 기자가 마무리하겠다. 충분히 멋있고, 당신의 인생은 제법 아름다워 보인다. rainbow@fnnews.com 김주리 기자
2024-10-08 10:23:34고통과 좌절이 우리를 감싸며, 더 이상 삶을 이끌어 가는 힘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순간은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한계를 넘어, 찬란한 인생의 순간을 찾아가는 이들의 여정을 담았습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역경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편집자주> “수학 8등급 받고 대학 다 떨어지니까 아부지가 포천 기숙학원으로 보내버리드라고예. 정신무장하라고 머리는 삭발을 해가 빡빡 밀어서 학원에 갇혔는데 다다음날인가 다군 추가합격했다 다시 부산으로 오라는 거 아임니까. 삭발 머리 그 카고 신입생환영회 갔더니 사람들이 험악스러워가 말을 안 시켜요.” 수학 8등급에 물리 3점(한 문제 빼고 다 틀림). 토익은 정확히 기억 안나는데 230점인가 240점인가 그랬더란다. 반에서 꼴찌 2·3등을 다퉜지만 지금은 약사 가운을 입고 있는 34살 부산 청년, 이수환 씨의 이야기다. 그는 젊은 사람들에게 "지금이 결과가 아니다. 가슴 속에 야망을 품어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며 기자와 마주 앉았다. 편의상 사투리는 서울말로 풀어 쓰겠다. 재주껏 상상하며 읽어주시라. 군대에서 접한 그 이름 '피트(PEET)', 삶의 변곡점이 되다 딱히 목표가 없었던 부산 토박이 소년은 공부보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했다. 30명 남짓 반 인원 중 28등이냐 29등이냐를 걱정할 정도로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비행 청소년은 아니었다. 대학은 전부 탈락하나 싶더니 부산사립대 중 다군에 겨우 추가합격해 대학생이 됐다. "대학성적은 나쁘지 않았어요. 1학년 때야 놀러다니느라 우수한 학점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하다보니 공부 잘하는 친구들하고 무리가 형성됐고 자연스럽게 학업에 흥미를 붙이긴 했습니다. 그렇게 2년 뒤 운전병으로 입대했어요." 그런 그에게 삶의 변곡점이 찾아왔다. 군 생활 중 '피트(PEET)'라는 말을 들은 순간이다. Pharmacy Education Eligibility Test의 약자로, 2011학년도부터 2023학년도까지 국내 약학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응시해야했던 시험이다. "하루는 군 동기들끼리 얘기하는데, 한 녀석이 자기 여자친구가 피트 시험 본다고 자랑하더라고요. 그게 뭐냐고 물었죠. '약사되는 시험'이라고 하더라구요. 당시에는 '그런 게 있구나'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은데, 이 순간이 희한하게 잘 잊혀지지가 않아요." 군대생활 이후 조금은 성숙해져 사회로 돌아온 이수환 씨. 이때부터 자신의 삶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뭐하고 살지, 난 뭘 잘하지, 이대로 괜찮을까. 대학생활도 재미없고 어쩐지 의미가 없다. 그 순간 다시 떠오른 단어 '피트'. "한 번 해볼까? 싶었죠" 한 번의 실패, '좌절' 대신 '질문'을 택하다 당시 '피트'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가 요구됐다. ▲대학교 2학년 이상 과정을 수료한 자 ▲토익/토플/테스 등 공인영어성적을 확보한 자. 여기에 수학 3학점을 이수해야 했으며 일부 학교는 물리학, 화학, 생물학, 유기화학 등의 학점 이수를 요구하기도 했다. 수학 8등급·물리 3점·토익 240점 전적의 이수환 씨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응시자격이다. 더군다나 상기 설명한 조건은 말 그대로 '시험볼 수 있는 자격'이고, 시험 과목은 화학추론(일반화학)·화학추론(유기화학)·물리추론·생물추론이었다. "물리 수업을 처음 들어보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무슨 말인지 하나를 못 알아듣겠더라고요. 토익 점수는 내 신발 사이즈보다 작게 나오지, 교수님은 '안 될 거다'라며 뜯어 말리지, 이거 어떡하나 싶은 기분이 드는데 미묘하게 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으로 마음 속에서 뭔가 이글이글 끓어오르는데, '그래 내가 한 번 보여주겠다'라는 각오가 들면서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하루 수면 6시간,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복습할 시간이 부족해 잠을 1시간 더 줄였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아무도 없는 학원으로 향했다. 3시간을 복습하고 다음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실패한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떨어지더라고요. 모든 시간을 다 투자했는데 안돼요. 왜 안되지? 뭐가 문제지? 일단 슬프고 서러운 건 둘째치고 할 수 있는 걸 다 했는데 왜 안 됐을까를 중점적으로 파고들어서 분석을 해봤습니다. 모든 방법으로 생각을 동원해보고 아는 형들한테 자문도 구하고…가만히 들여다보니 딱 답이 나와요. '방법이 잘못됐다'" 인터뷰를 진행한 기자 본인이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가장 훌륭했던 부분이 여기다. 실패는 일단 '아프다'. 나 자신에게 실망스럽고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면서 '나는 이정도였다'라는 자기비하에 빠지게 만든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그 패배감을 일평생 가슴 속 가시마냥 품고 원하지 않았던 삶을 살아간다. 이수환 씨의 성공비결을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스스로 '왜?'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공부라는 게 무턱대고 시간 들여서 하는 게 아니었다는 걸 그 때 깨달은 거에요. 외우는 것도 중요하긴 한데 사실 외울 필요가 없어요. 끝없이 탐구하고, 생각하고, 사고하고 '이렇기 때문에 그렇다'고 이해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게 탐구하며 다시 도전한 이수환 씨. 모의고사 전국 37등까지 올라가기도 하며, 약대에 합격해 약사가 된다. "사람은 바뀔 수 있다고 믿어…'지금'은 '결과'가 아니에요" 드라마였다면 이쯤에서 해피엔딩일텐데, 삶은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 약대에 입학한 이수환 씨는 잘 지내던 학교 친구들과 1년 반 동안 사이가 소원해지기도 하고, 쉬는 날 없이 페이약사로 일하며 고된 삶을 되풀이했다. 한 달 수입은 또래 직장인들에 비해 높았지만 반복되는 일상에 또 한 번 자기 삶을 되돌아본 뒤, '더 큰 세계'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열망에 서울로 상경해 '내 약국'을 차리게 된다. "힘들었던 것들 전부 다 자양분 됐고 거기서 많은 것들 배운 거죠. 지금 부평에서 조그맣게 약국하고 있고요. 약사들끼리 모여서 사업도 하고 그러고 있습니다. 신문에도 몇 번 실렸어요." 멋쩍게 웃으며 잠시 사업 자랑을 늘어놓나 싶더니 '이 얘기는 여기서 할 게 아닌 거 같다'며 머리를 긁적인다. "제가 뭐 성공한 사람도 아니고, 그냥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약사로서의 신념이 있다면 '절대 장사꾼은 되지 말자'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생각하길 약장수다, 약 팔아서 돈 버는 직업이다 하는데, 실제로 그런 약사님들 그렇게 많이 없어요. 남들보다 그냥 조금 더 아는 사람으로서 아픈 사람들, 안 아픈 사람들에게 이로운 일을 하고 싶다 생각하는 약사들이 훨씬 많습니다. 저는 정말 제 직업을 좋아하고, 또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인터뷰에 응한 이유, 그리고 인생과 삶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주변 보면 서울대에서 공부하고 피트 쳐서 약사 되고 이런 친구들 많아요. 처음부터 머리가 좋아서 잘 풀린 친구들. 근데 저는 완전히 노력파에 언더독이라, 뭔가 제 얘기를 듣고 젊은 사람들이 가슴 속에 열정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사람은 충분히 바뀔 수 있다. 지금이 결과가 아니다. 가슴 속에 야망을 품어라', 이런 얘기 해주고 싶어요. 인생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아름답지 않은 면들이 굉장히 많아요. 하지만 내가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고자 마음을 먹고 행동하는 게 중요하지, 뭐 그렇다면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지 않나 싶어요." rainbow@fnnews.com 김주리 기자
2024-09-25 11:18:38고통과 좌절이 우리를 감싸며, 더 이상 삶을 이끌어 가는 힘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순간은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한계를 넘어, 찬란한 인생의 순간을 찾아가는 이들의 여정을 담았습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역경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편집자주>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도통 결혼을 안한다. 일하느라 바빠 이성을 만날 시간도 없고, 연애니 결혼이니 신경쓰면 머리 아프고 피곤하고 스트레스 받아 차라리 혼자가 편하다고 한다.역대 최저 혼인율의 시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애정을 주고받으며 요구되는 희생과 갈등은 '불필요한 감정소모'로 전락했고 헌신하는 삶에 대한 가치도 사라진 지 오래다. 모두가 사랑이 부재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2024년의 대한민국에,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내던진 남자가 있다. 연인과의 결혼, 그리고 그 결실로 맺어진 딸의 탄생은 그에게 있어 뮤지컬 속 음악과 스토리보다 더 감미로운 기적이라고 그는 말한다. 나이 많은 외국인 '돌싱' 사위, 외로웠던 1년의 설득 수려한 외모, 186㎝의 훤칠한 키, 국제 어워드 수상경력에 빛나는 세계적인 뮤지컬 배우인 브래드 리틀 씨. 예술가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란 그는 브로드웨이를 비롯한 월드투어를 포함해 <오페라의 유령>에 약 2800회 이상 출연한 세계 최고의 '팬텀'이다. 어느 여자라도 반할 만한 '스펙'을 가진 리틀 씨는 다만, 요즘말로 '돌싱(돌아온 싱글, 사별이나 이혼 따위로 다시 혼자가 된 사람)'이었다. 리틀 씨는 첫 번째 결혼을 '실패'했다. "아, 제가 결혼 경험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시는군요. 솔직하게 얘기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부인과는 서로 일정이나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너무 맞지 않았었어요. 제 직업적인 영향도 있겠죠. 항상 떨어져 지내야 하는 생활이 계속되다 보니, 잘 될 수가 있겠나요. 서로 인생의 타이밍, 공유하는 시간이 맞지 않아 결국 이별을 선택했습니다. 어쩔 수 없었어요. 나쁜 기억이죠" 실패한 결혼 이후 홀로 작품활동을 이어오던 리틀 씨는 한국인인 현재 아내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어 그녀와 남은 인생을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적극적으로 구애를 펼쳤다. 아내 또한 그를 반려자로 맞이하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아내의 부모님이었다. 중년의 미국인 돌싱 사위, 장인과 장모는 리틀 씨를 딸의 연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완고하게 반대했다. "지금 아내와 저는 나이차도 많이 납니다. 아내는 아주 전형적이고 전통적인 한국 가정에서 자랐고요. 그렇다 보니 장인 어른이 결혼을 완전히 반대하셨어요. 저와 아내의 관계를 알고 나서도 받아들이지 않으시더군요. 결혼 뿐만이 아니라 아내와 저의 사이 자체를 인정해주지 않았어요" 그래도 리틀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하기에, 리틀 씨는 아내를 너무 사랑했다. "1년 여의 시간 동안 정말 열심히 처가댁을 설득했고, 공연이라도 한 번 보러 오시라 부탁을 드렸어요. 마침내 가족들이 공연을 보러 왔죠. 그 날 장인 어른께 드릴 손편지를 한국말로 직접 한 글자 한 글자 적어서 전해드렸어요. '최고의 남편이 되겠다', 진심을 담았죠. 편지와 함께, 저의 공연을 감명깊게 본 장인과 장모께 결혼을 허락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느꼈어요. 국경과 언어를 초월한 사랑이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그들은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 끝에 웨딩마치를 울렸다. 고달픈 타지생활, '당신'이 있어 버틸 수 있다 결혼 이후 아내를 위해, 리틀 씨는 한국으로 이주해 정착하는 것을 선택했다. 더 많은 것을 함께 공유하고 더 많은 것을 함께 경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타지생활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리틀 씨에 따르면 그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매번 좌절감을 느꼈다. 식재료를 사기 위해 들른 대형마트에서, 배가 아파 방문한 약국에서, 화장실 부품이 고장 나 수리를 맡기기 위해 전화한 고객센터에서, 그는 늘 당황하고 헤매고, 곤혹스러워야만 했다. 세계 최고의 뮤지컬 배우지만, 타지에서는 주차권 한 장 받는 것조차 버거웠다. "때로는 제가 가진 남성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어떤 일이 생기든 언제나 언어적, 문화적 벽에 가로막혀 약자가 되지요. 억울한 상황도 생깁니다. 제가 잘못하지 않았는데 숨죽여야만 하는, 이를테면 취객의 시비따위가 그렇지요. 저도 답답하니 제 주장을 굽히지 않고 싸우고 싶지만 싸울 수도 없어요. '외국인'이니, 무엇 하나 잘못 연루되면 추방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려야 하거든요. 항상 억눌려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제 주체성이 사라진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궁지에 몰릴 때마다 리틀 씨를 구원해준 건 그의 아내였다. 일상 속 사소한 문제부터 비자 발급과 관련된 일까지, 아내는 언제나 그를 위해 대변하고 항변해 모든 것을 해결해줬다. 항상 그를 위해 필요한 곳에 있어줬다. "아내가 아니었다면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생활을 하고 있죠. 그녀는 나의 보스(Boss), 나의 구원, 나의 기적입니다" 두 사람 슬하에는 4살배기 딸이 있다. 어둠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완벽한 커플 아냐…굉장히 사랑하는 사이, 그게 전부" 리틀 씨는 자신과 아내에 대해 '완벽하지 않은 커플'이라고 설명한다. 모국어가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른 만큼 서로가 온전한 천생연분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되레 리틀 씨는 '언어의 벽'이 장점이 됐다고도 말한다. "언어가 다르니까 서로 생채기를 낼 수 없는 경우도 있어요. 이를 테면 말다툼이 있을 때, 물론 톤과 감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서로가 사용하는 날선 단어들에 즉각 반응하지 않으니 시간이 지나면 감정은 가라앉지요. '화'라는 것은 풀리기 마련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각자의 단어들은 그저 사라지고 말죠" 이러한 과정에서 리틀 씨는 '기다림의 미학'을 배웠다고 한다. 다른 문화권에서 자란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려 하다 보면 시간적 차이가 존재하게 되고, 자연스레 '기다림의 시간'이 발생한다. '빨리빨리', '편하게' 소통을 하려다 보면 많은 것들을 1차원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지만,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서로의 언어를 깨달아가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스며드는 감정을 익히게 됐다는 것이다. "기다림 속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어려움을 뚫고 나가고 있어요. 우리는 서로 굉장히 사랑하는 사이에요. 그렇지만 결코 쉬운 사랑이 아니죠.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값진 사랑과 삶이 됩니다" 리틀 씨의 인생은 아름다울까? 그는 이렇게 답한다. "저의 인생 철학 중 하나인데요. '당신이 사랑받고 싶은 만큼, 누군가를 사랑하라'는 말이에요. 저는 사랑을 믿어요. 사랑을 믿기 때문에 저는 항상 승리(Victory)합니다. 사랑하기에, 인생은 아름다워요" rainbow@fnnews.com 김주리 기자
2024-06-19 05:48:56고통과 좌절이 우리를 감싸며, 더 이상 삶을 이끌어 가는 힘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순간은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한계를 넘어, 찬란한 인생의 순간을 찾아가는 이들의 여정을 담았습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역경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편집자주> 그는 돈이 벌고 싶었다고 했다. 서울의 명문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잘 나가는 기업에 입사해 7년의 직장생활을 하며 괜찮은 삶을 살았지만, 돌연 모든 것을 그만두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서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그리곤 사업에 실패했다. 30대의 나이에 120억원이라는 빚을 지게 됐고 완전히 파산했다. 이후 운 좋게 다시 회사에 입사해 평범한 직장인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었지만, 형편이 나아지자 또, 사업에 손을 댔다. 그리고 또 실패했다. 이제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의 그는, 그 시절의 자신을 '잡히지 않는 나비'를 쫓던 청년이었다고 말한다. 충족되지 않은 마음 속에서 타오르던 정체불명의 열망과 욕망이 자신을 괴롭혔고 평화로운 일상과의 관계를 끊임없이 이간질했다. 시니어모델 김용훈 씨의 삶은 돈과 권력이라는, 어쩌면 허황된 욕망을 좇는 파도치는 풍랑 속 계속되는 방황이었다. 한번은 IMF, 한번은 리먼사태... 두번의 좌절 "골프는 아직도 칠 줄 모릅니다. 골프를 칠 만한 상황이 찾아왔다 하면 곧바로 골프채도 살 수 없는 형편이 됐거든요."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시니어 연기자 전문 소속사에서 만난 김용훈 씨는 젊은 날을 회상하며 털털하게 웃었다. 따지고 보면 꼭 그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혈혈단신으로 시작한 가죽 의류 무역회사는 국내에 100명의 직원을 두고 매출액 200억원을 달성할 만큼 크게 성장했고, 한중수교 이전 중국에 공장을 설립할 정도로 비대해졌다. 하지만 목표했던 성공을 목전에 두고 그가 바랐던 '더 큰 돈'을 벌 수 있을 줄 알았던 그 때, 하필이면 IMF사태(1997년 외환 위기)가 터졌다. "나라 전체가 난리가 났으니 제 사정을 누가 봐주겠어요. 은행은 차입금 회수에 들어갔고, 투자자들도 독촉하니 회사 내실이 흐트러졌어요. 내실이 무너지니 해외 바이어들의 컴플레인도 증가하고 그러니 수출액은 줄어들고…인건비도 밀린 데다, 결국 회사는 도산했습니다. 제 앞에 빚이 당시 돈으로 120억원이었어요. 신용불량자가 됐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1년 가까이 원치 않던 휴식을 취하던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무역회사를 운영하던 지인이었다. 김 씨와 막역했던 그는 김 씨에게 부사장 자리를 제안했다. 이에 김 씨는 직접 회사를 운영하고 확장시켰던 능력을 바탕으로 업무에 매진했고, 거액의 빚도 차근차근 갚아나갔다. 그렇게 김 씨의 삶도 다시금 정상화되는 듯 보였다. "욕망이라는 게 참 무서워요. 제 능력을 힘에 업고 회사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 속에서 무언가 꿈틀대더군요. 결국 다시 사업해보고 싶다며 또 한 번 그만뒀습니다. 이번엔 바이크 용품 수출입 회사를 차렸어요. 나쁘지 않았어요. 영업이익도 순수익도 천천히 증가하고 있었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지더군요. 버텨보려 정말 아등바등했는데, 결국 접어야 할 상황이 됐고 백기를 들었습니다" '팔자' 탓을 하기엔 애매하다. 김 씨는 어쨌든 또 실패했다. 인생의 후반전, 시니어 모델로 또 다른 삶을 시작하다 그러던 김 씨가 TV에 등장한 건 2020년의 일이다. 시니어(Senior) 스타일의 아이콘을 찾는 시니어 모델 오디션 프로그램에 '강서구 감우성'으로 도전장을 내밀며 대중 앞에 선 것이다. 이번에는 돈을 더 벌겠다던지, 더 큰 성공을 하겠다는 '욕망'과는 관계 없었다. 김 씨를 움직인 건 다름 아닌 그의 딸이었다. "막내 딸이 어느 날 TV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보라고 권유하더군요. 처음에는 질색 팔색을 했습니다. 평생 무역업만 하던 사람이 모델에 대해 뭘 알았겠어요. 사람들 앞에 설 생각하니 쑥스럽고 민망했죠. 딸의 성화에 일단 지원을 하기는 했는데…서류 전형을 통과하고 2차까지 넘어가 프로그램에 출연을 하게 되더라고요? 너무 어색하고 자신도 없는 와중에, 매번 살아남고 있는 거예요. 결국 4개월을 전부 출연했고, 최종 멤버로까지 올라갔습니다" MBN '오래살고볼일'에 출연했던 당시 김 씨는 마지막 라운드까지 살아남는 것을 넘어 시청자 인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훤칠한 키와 외모, 새로운 것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으로 네티즌들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남긴 것이다. 이후 2022년에는 SBS '슈퍼모델 선발대회 : 더 그레이스'에 출연을 했고, 현재 소속사인 제이액터스로부터 제안을 받아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 김용훈의 '모델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45세 이후로 시니어 모델 활동에 나서는 분들도 있고요, 본업을 갖고 계시다 전환을 하시는 분도, 본업과 더불어 일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처럼, 인생의 고난을 겪은 후 어쩌다 도전을 하는 사람들도 있죠. 단순히 '늙은 후' 모델을 시작하게 된 사람들이 아닌, '인생의 후반전'에서 모델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꾸준한 활동으로 '2021 제3회 KMA 시니어모델 선발대회' 대상을 수상한 김 씨는 현재 모델 활동에 국한하지 않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단편 영화 등에 출연하며 배우로까지 영역을 넓혀 활동하고 있다. "'강서구 감우성'으로 시작했지만, 이제 '강서구 김용훈'이 되고 싶습니다. 나아가 '제2의 김용훈', '제3의 김용훈'이 계속해서 나오기를 희망합니다." "'잡히지 않는 나비'를 쫓던 나, 이제는 스스로가 꽃밭이 되고 싶다" 모델 활동을 시작한 이후 김 씨는 매일 웨이트 트레이닝과 유산소 운동을 하며 몸을 가꾸고 있다고 한다. 삶을 바라보는 태도도 달라졌다. 받아들이고, 순응하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언제 다시 찾아 올지 모를 위기와 실패에 대응하는 마음으로 매일에 임하고 있다. "이상하죠? 젊었을 때는 돈과 권력을 쟁취해야만 마음 속의 갈증이 해소될 거라 생각했는데, 유명하지 않아도 때로는 적은 출연료를 받아도 과한 욕심이 생기지 않아요. 무대에 설 때,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할 때 '살아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요즘은 이런 생각까지 합니다. '돈만 갖고 사는 게 아니구나. 삶에서는 내 마음 안에서의 성취가 더 가치있구나. 그게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구나'라고요" 물불 안 가리고 사업에 뛰어들었던 과거 자신의 모습에 대해 '잡히지 않는 나비'를 쫓았다고 비유한 김 씨는, 나비를 좇는 것보다 더 의미있는 일은 '자기자신을 꽃밭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스스로의 꽃을 키우고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순간 나비들은 자연스레 그 향기를 향해 날아올 것이라는 것이다. '인생은 아름다운가'라는 질문에 김 씨는 이렇게 답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장미와 같죠. 가시도 돋혔기에 함부로 움켜쥐려했다 상처가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마침내 꽃을 피운 그 모습이 아주 멋지잖아요" 김 씨의 꽃밭에는 가시 돋힌 장미도 피었을 것이며 시련과 고난을 견뎌낸 후 천천히 꽃망울을 피우는 '늦깍이 꽃들'도 피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꽃밭에는 몇 마리의 나비가 날아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또다시 비가 내리고 차가운 겨울이 찾아올 지도 모른다. 순탄치 않았던 그의 과거 삶이 그러했 듯. 그러나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그래서 아름답다. rainbow@fnnews.com 김주리 기자
2024-05-09 04:09:18고통과 좌절이 우리를 감싸며, 더 이상 삶을 이끌어 가는 힘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순간은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한계를 넘어, 찬란한 인생의 순간을 찾아가는 이들의 여정을 담았습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역경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편집자주> 때때로, 삶은 잔인하다. 행운이라 여겼던 일이 모습을 바꿔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들 때, 삶의 이면이 어둠 속에서 매서운 이빨을 드러낼 때,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감당할 수 없는 불운과 불행이 찾아올 때 우리는 어떤 자세로 고통을 맞아야 할까. 심연같던 산후 후유증, 몸도 마음도 아팠다 '다솔맘' 최보영 씨의 삶도 그랬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해 아이를 임신했지만 원인 모를 지독한 소양증으로 인한 전신 질병으로 가장 축복받아야 할 시기, 뜬 눈으로 통증과 싸워가며 길고 긴 밤을 고통 속에 견뎌야만 했다. “온 몸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간지러웠어요. 진물이 나고 피가 날 정도로 긁어야 하는 정도였는데 임신 상태이다 보니 어떤 약도 먹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간지럼증을 완화하기 위해 얼음을 몸에 문지르기까지 했는데, 임산부는 또 몸이 따뜻해야 하잖아요. 몸을 데우면 땀이 나고, 그러면 또 가려움이 심해지고,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인고의 시간이 지나 무사히 출산을 마쳤지만, 이후에는 지독한 산후 우울증이 찾아왔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 저주 받은 듯한 하루를 맞이하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또 시작이구나. 이 징글맞은 하루가 또 시작되는구나. 모든 것이 밉고, 또 모든 것이 싫었다. “제 자신을 둘러싼 상황과 사람들이 저를 괴롭히는 느낌이었어요. 남편도 싫고, 시댁도 싫고, 친정조차도 지긋지긋했습니다. 그냥 제가 다 피해자인 것 같았어요. 극한의 우울과 무기력함이 찾아오니, 그러면 안되지만, 나쁜 생각까지 할 정도. 일단 몸이 안 좋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렇다보니 사랑하는 아이한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고, 더 우울해지고, 악순환인 거죠." 견딜 수 없는 우울에 최보영 씨는 결국 병원을 찾았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해 상담을 하고, 항우울제로 보이는 약도 처방받아 복용했다. 이대로라면 사랑하는 아이와의 매순간을 고통스럽게 지나쳐야 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런데 약을 먹었을 때 오히려 컨디션이 나빠졌어요. 몸이 축 쳐지고 기력이 빠지고 졸리고. 몇 번 먹지 않았지만 이 약들이 내 몸에 안 좋은 작용을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두운 감정을 잠시 잠재울 뿐, 결과적으로는 내 몸에 이롭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시가 떠오르는 듯 최보영 씨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때 울고 있는 다솔이를 봤어요.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저 아이는 아무 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저 아이는 무슨 죄지? 내가 다솔이를 보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기적처럼 들었어요. 이대로는 안 돼. 달라져야겠다. 그리고 약을 모두 버렸습니다." 육아와 함께 시작한 '틈새운동', 80만 인플루언서로 도약하다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하고 스포츠 심리학 석사를 받은 최 씨는 자신의 건강에 대해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고 한다. 트레이너 생활을 시작하며 수강생들을 가르치는 데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며 집중했다는 최 씨. 하지만 그는 정작 자신의 신체를 돌보지 못한 걸 깨닫게 됐다고 회상했다. "어떻게 건강해질까를 가르치는 법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제 몸은 병들어가고 있었어요. 아이를 낳고 산후풍이 심해 병원을 찾으니 뼈 나이가 70대라고 하더라고요. 근력을 키우지 않으면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라는 말까지 들었어요. 트레이너 생활을 해왔는데, 근력을 키워야한다니… 그래서 그 날 이후, 수강생들에게 알려주던 것들을 차근차근 제 몸에 대입시켜 운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으로 내 신체를 아껴주고 챙겨주기 시작한 거에요." 이후 최 씨는 육아와 병행하며, 자신을 위해 '틈새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설거지를 하면서 하체의 근력을 기르는 동작, 아이를 안은 채로 간단한 스쿼트 동작들을 하면서 몸을 다져나갔다. 다솔이가 잠에 들었을 때는 플랭크를 하며 몸을 키웠다. 육아라는 제한적인 환경 속에서 자신을 가꾸기 시작한 것이다. 최 씨가 '홈트 여신'으로 떠오른 시작점이다. "인스타그램을 적극적으로 시작하게 된 건 육아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였어요. 아이를 키우는 많은 이용자들이 남긴 게시글을 보고, 또 DM(개인 메세지)를 보내 물어보기도 하면서 시작했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일상을 공유하다 보니까 운동하는 모습이 노출이 된 거에요. 저에게 육아 조언을 주시던 분들이 반대로 운동에 대해 물어보시고, 저는 또 답변을 드리고. 그렇게 운동하는 모습을 영상으로까지 올리게 됐습니다." 평화로운 일상이 곧 기적…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다 인스타그램 80만 구독자를 보유한 최보영 씨의 '기적'이 하루 만에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홈트(홈 트레이닝)를 시작한 건 다솔이가 두세 살이 된 후에서의 일이다. "한 순간의 각성으로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기독교를 따르는 저의 경우, 정말 많은 기도의 시간이 있었고, 그 와중에 눈물도 많이 흘리고, 모든 것들이 쌓이고 쌓인 거에요. 육아 외 제 시간을 갖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고, 틈새운동을 하면서 몸이 점점 좋아지고, 그러기 위해 이른 시간에 잠들기 시작하니 불면증이 사라졌어요. 그리고 신체가 좋아지니 사람들에게 많이 웃고 상냥하게 대하게 되니까, 그러면서 또 주변인들이 저에게 좋은 영향을 주게 되더라구요. 모든 것이 천천히 차근차근 선순환을 이룬 거예요." 자신을 돌볼 시간적 심적 여유가 없는 현대인들 전부가 의미있는 변화를 꿈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들 모두 시도와 도전을 하지만 번번히 실패하는 것이 부지기수다. 한 번의 실패는 경험이 되고 실패의 경험은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게 만든다. 최 씨는 이러한 이들에게 변화의 핵심은 '조바심 없는 꾸준함'이라고 강조한다. "일반적으로 '살을 빼야겠어, 그러니 운동을 해야지'라고 마음 먹은 사람은 목표 체중에 대한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게 돼있어요. 그러다보면 하루 운동량을 30분이다 1시간이다 정하게 되고, 그 만큼을 채우지 못하면 스스로 자책하며 목표를 향한 걸음이 힘을 잃게 돼요. 좋지 않은 흐름입니다. 단 5분, 아니 1분이라도 좋아요. 내가 설정한 목표를 위한 행동을 하루에 1분이라도 실행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절대 효과가 없는 게 아니에요. 핵심은,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꾸준하게 이어나가는 거에요" 자신을 부정적으로 압박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최 씨는 설명한다. 스스로 도달하고 싶은 골(Goal)을 설정해 나아가는 것은, 실패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고 강박을 갖는 고통의 시간이 아닌, 더 나은 날들과 삶을 위해 정진하는 축복과도 같은 선물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 나 자신이 귀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가꾸고 지키는 거에요. 정성을 들여서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나를 돌아보는 거죠. 종교가 있는 분들이라면 기도와 감사함의 순간을 가져보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최 씨에 따르면, 무료하고 아무 일 없는 하루는 오히려 축복이다. 갖은 슬픈 일과 고통으로 얼룩졌던 과거를 생각하면, 괴로움 없는 하루는 평화이며 지속되는 평화는 기적이라는 것이다. 몸도 마음도 아프고 괴로웠던 나날들의 기억을 가진 다솔맘 최보영 씨.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 고통스러웠던 그에게 물었다. "인생은 아름다운가요?" "그럼요, 너무나 아름답죠." rainbow@fnnews.com 김주리 기자
2024-04-25 06:27:42[파이낸셜뉴스]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여로' 등에 출연했던 원로배우 최정훈씨가 폐렴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11일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폐렴으로 지난 10일 정오쯤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1940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나 1961년 KBS 1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KBS 일일드라마 ‘여로’(1972)에서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 김성준 역을 맡아 배우로서 입지를 다졌고, KBS 대하드라마 ‘대명’(1981), ‘개국’(1983), ‘새벽’(1985), ‘토지’(1987) 등에 출연했다. KBS 특집드라마 ‘오성장군 김홍일’(1985), KBS 주말드라마 ‘다큐멘터리 극장’(1994), EBS 드라마 ‘명동백작’(2004) 등에서 이승만 대통령 역을 여러 차례 맡아 열연을 펼쳤다. 김수현 작가와도 호흡을 맞췄다. 2007년에는 최고 시청률 36.8%(닐슨코리아 제공)를 기록한 SBS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에서 홍준표(김상중 분)의 아버지 홍회장 역을 맡았고,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2010)에도 출연했다. 고인의 공식적인 마지막 작품은 SBS ‘여인의 향기’(2011)다. 고인의 둘째 형은 영화 ‘얄개전’(1965) 등 50여편의 작품을 연출한 고(故) 최훈 감독(2005년 별세)이다. 빈소는 경기도 안양시 한림대 성심병원장례식장 VIP 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2일 오전 9시다. 함백산 추모공원을 거쳐 이천 에덴낙원에서 잠들 예정이다. yuhyun12@fnnews.com 조유현 기자
2023-05-12 05:22:46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감독 최국희)는 자녀를 키우며 살아온 평범한 중년 부부에게 아내가 말기 암 판정을 받으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유쾌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잊고 지냈던 1970년대부터 2000년대 대중음악으로 추억을 자극하는 것 같습니다. 작품 속에서, 민원인이 동사무소에서 근무 중인 진봉(류승룡 분)에게 불만을 표시하며 쌀을 뿌립니다. 이와같이 공무 수행 중인 공무원에게 폭력인 유형력을 행사하면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할까요? 공무집행방해죄는 보통 술 마시고 가게 등에서 시비가 생겨 다투다가 출동한 경찰관까지 폭행, 협박하여 성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되면 형사처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입은 공무원에게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도 받을 수 있습니다. 공무집행방해죄는 직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에 대하여 폭행 또는 협박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즉, 국가의 공권력 행사를 방해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범죄로서 방해받는 공무원의 수를 기준으로 범죄의 수도 결정됩니다. 공무원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및 이에 준하는 공법인의 사무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그 노무의 내용이 단순한 기계적, 육체적인 것에 한정되어 있지 않은 사람을 말합니다. 외국 공무원은 공무원에서 제외됩니다. 직무집행이라 함은 공무원이 자신의 지위, 권한에 따라 처리하도록 위임된 일체의 사무를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원칙적으로 직무집행을 개시하여 종료되기 이전일 것을 의미하지만 직무집행에 착수하기 전의 준비행위나 대기행위와 같은 직무집행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행위도 직무집행에 포함됩니다. 공무원의 직무집행은 적법해야 합니다. 위법한 직무집행에 대해서는 국민에게 복종의무가 없고, 형법은 적법한 직무집행만 보호하므로 공무원의 직무집행이 적법한 경우에만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합니다. 즉, 경찰관이 현행범이나 준현행범도 아닌 사람을 영장도 없이 체포하려고 할 때, 이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경찰관에게 경미한 상해를 가했다고 하더라도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는 불법체포로 인한 신체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벗어나기 위한 정당방위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폭행이란 공무원에 대한 직, 간접의 유형력의 행사를 말합니다. 즉, 의사전달수단으로서 합리적 범위를 넘어서 상대방에게 고통을 줄 의도로 음향을 이용하였다면 폭행으로 인정될 수도 있습니다. 협박이란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일으킬 목적으로 해악을 고지하는 행위로서 고지하는 해악의 내용이 행위 당시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객관적으로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느끼게하는 것을 말합니다. 민원인이 동사무소에서 근무 중인 공무원 진봉에게 쌀을 뿌리는 행위는 유형력의 행사로서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민원인은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 진봉에게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도 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생명은 영원하지 않듯 우리의 삶도 유한합니다. 몇 개월의 시한부 선고받은 사람보다 먼저 사망하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삶이 몇 개월 남지 않았다고 한다면 많은 생각이 스치는 것 같습니다. 인생은 알 수 없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데 자신만 모르는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법무법인 태일 변호사 이조로 zorrokhan@naver.com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2022-11-18 13:56:52[FN스타 이승훈 기자] 배우 박세완, 염정아, 류승룡이 1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언론시사회에 참석하고 있다. 배우 류승룡, 염정아, 박세완이 출연하고 최국희 감독이 연출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자신의 생일선물로 첫사랑을 찾아 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한 아내 ‘세연’(염정아)과 마지못해 그녀와 함께 전국 곳곳을 누비며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게 된 남편 ‘진봉’(류승룡)이 흥겨운 리듬과 멜로디로 우리의 인생을 노래하는 국내 최초의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로 오는 28일 개봉한다. totopurdy_star@fnnews.com fn스타 이승훈 기자
2022-09-13 17:40:57[FN스타 이승훈 기자] 배우 박세완, 염정아, 류승룡이 1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언론시사회에 참석하고 있다. 배우 류승룡, 염정아, 박세완이 출연하고 최국희 감독이 연출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자신의 생일선물로 첫사랑을 찾아 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한 아내 ‘세연’(염정아)과 마지못해 그녀와 함께 전국 곳곳을 누비며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게 된 남편 ‘진봉’(류승룡)이 흥겨운 리듬과 멜로디로 우리의 인생을 노래하는 국내 최초의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로 오는 28일 개봉한다. totopurdy_star@fnnews.com fn스타 이승훈 기자
2022-09-13 17:39:24[FN스타 이승훈 기자] 감독 최국희가 1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언론시사회에 참석하고 있다. 배우 류승룡, 염정아, 박세완이 출연하고 최국희 감독이 연출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자신의 생일선물로 첫사랑을 찾아 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한 아내 ‘세연’(염정아)과 마지못해 그녀와 함께 전국 곳곳을 누비며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게 된 남편 ‘진봉’(류승룡)이 흥겨운 리듬과 멜로디로 우리의 인생을 노래하는 국내 최초의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로 오는 28일 개봉한다. totopurdy_star@fnnews.com fn스타 이승훈 기자
2022-09-13 16:3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