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일본 판로가 막히는 위기에도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문구를 지킨 쌀과자 업체가 미국 수출길에 올랐다. 7일 전남 장성군 등에 따르면 장성에서 유아용 쌀과자를 생산하는 업체인 '올바름'은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 오렌지카운티의 한 유통점에 입점했다. 첫 수출 규모는 약 1000만원 상당으로, 이번 수출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본사를 둔 한국 상품 도매 전문점을 통해 성사됐다. 해당 업체는 식품과 생활용품 등 다양한 한국산 상품을 미국 전역에 공급하고 있어 향후 더 많은 물량을 미국 소비자에게 선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올바름은 2021년부터 자사 제품 포장지 뒷면에 독도 지도와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문구를 표기해 왔다. 올해 초 일본의 구매자로부터 독도를 지우는 조건에 연 매출 15%에 달하는 수출 제안이 들어왔지만 올바름은 이를 거절하고 소신을 지켰다. 사연을 접한 많은 소비자가 '독도 쌀과자'라는 별칭을 붙여주며 올바름을 응원했고, 지난 추석 명절을 앞두고는 전 제품 품절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정광 올바름 대표는 "많은 분이 관심과 지원을 보내주신 덕분에 독도가 그려진 저희 쌀과자를 미국으로 수출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도 좋은 소식으로 보답하겠다"라고 말했다.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2024-11-07 14:17:10[파이낸셜뉴스] 제품 포장지에 독도 그림을 넣은 한 쌀과자 업체가 ‘독도는 빼달라’는 일본의 요구를 거절해 수출이 무산된 사연이 알려졌다. 유아용 쌀과자 업체 올바름은 2021년부터 제품 뒷면에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문구와 함께 독도가 포함된 한반도 지도를 넣어 판매해왔다. 올바름은 제품을 출시한 후 지난해 12월부터 일본 수출을 추진했다. 당시 예상 발주 물량은 연 매출의 15%에 달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 바이어 측은 “거래하려면 독도를 지우라”고 요구했고, 업체는 대출금 상환과 불경기 등으로 경영난에 빠진 상태였음에도 이 요구를 거절했다. 결국 거래는 최종 무산됐다. 김정광 대표는 전남매일과의 인터뷰에서 “사실 일말의 고민도 없이 거절한 건 아니다”며 “하지만 당장 눈앞의 개인적 이득을 위해 국가의 자부심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더 컸다”고 밝혔다. 이런 사연이 언론에 소개되고 소셜미디어(SNS)에서 퍼지면서 과자 주문이 급증했다. 주문이 폭주하자 결국 업체 측은 긴급 공지까지 내걸었다. 올바름은 16일 홈페이지를 통해 “방송 이후 저희 제품을 ‘독도 쌀과자’라고 불러주신 점 깊이 감사드린다”며 “예상치 못한 주문 폭주로 인해 모든 팀원들이 최선을 다해 작업하고 있다. 다만 이번 주에는 공휴일과 택배 휴무일이 겹쳐 배송에 다소 지연이 발생할 수 있음을 양해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8-16 11:08:13한국과 중남미 공산국가 쿠바의 수교가 부른 나비효과일까. 올해 3월에 쿠바 예술대학(ISA)에 한국어 강좌가 신설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달 양국 간 극적 수교 발표 이후 지구 반대편 카리브해 섬나라에서 한류 확산 기운이 이처럼 완연하다. 쿠바가 한국의 193번째 수교국이 됐다는 건 엄청난 함의를 지닌다. 수교국 한 나라를 더하는 차원 이상이다. 쿠바는 피델 카스트로가 공산혁명에 성공한 뒤 1960년 북한과 국교를 맺고 한국과 교류를 끊었다. 이후 카스트로는 반미를 코드로 김일성 주석과 죽이 잘 맞았다. 소련·중국이 참가한 1988년 서울올림픽도 북한과의 의리를 들어 보이콧할 만큼. 1980년대 개혁·개방을 택한 소련은 쿠바의 무기지원 요청을 거절했다. 하지만 김일성은 카스트로에게 AK소총 10만정 등을 무상 지원했다. 그래서 김정은 정권으로선 '형제국' 쿠바의 변심은 충격이었을 법하다. 한·쿠바 수교 발표 다음 날 그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 북·일 관계 개선 여지를 거론했다. 일본인 납치와 북핵 문제를 거론 말라는 전제조건과 함께 "기시다 총리의 평양 방문도 가능하다"고 했다. 실제 성사시키겠다는 의지라기보다 서울 주재 쿠바대사관 개설이 임박한 데 따른 초조감이 잔뜩 묻어나는 대목이다. 탈냉전과 함께 노태우 정부는 사회주의권을 상대로 북방외교를 추진했다. 1989년 헝가리와의 수교가 첫발이었다. 그 성과를 토대로 김대중 정부는 2000년 쿠바와의 관계정상화를 노크했다. 노무현·이명박 정부도 같은 기조였고, 박근혜 정부는 더 적극적이었다. 유독 김정은 정권의 눈치를 보는 데 급급했던 문재인 정부만 소극적이었을 뿐이다. 한·쿠바 수교는 윤석열 정부 들어 성사됐지만, 북방외교의 화룡점정인 셈이다. 쿠바는 미국과 사이가 틀어지기 전 사탕수수 수출과 관광으로 먹고사는 나라였다.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럼주와 설탕을 뒤섞은 칵테일 모히토를 즐겨 마셨던 데서 보듯이. 그는 쿠바 수도 아바나에 오래 체류하면서 '노인과 바다' 등을 썼다. 52년 집권한 카스트로 정권은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았지만, 북한 3대 세습정권처럼 막무가내로 쇄국을 택하진 않았다. 정치·군사적으론 북과 손잡았지만, 2005년 현대중공업의 진출을 반기는 등 한국에 경제 빗장을 열었다. 10페소짜리 지폐에 현대중공업이 수출한 이동식 발전설비 도안을 집어넣었을 만큼. 물론 피델과 라울 등 카스트로 형제가 물러난 이후에도 쿠바의 경제난은 지속됐다. 하지만 곤궁하기론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에 무기를 팔아 연명하는 북한이 몇 배 더할 것이다. 그러니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의 현 쿠바 정부가 더는 북한의 심기를 살필 계제가 아니라고 보고 한국에 다가온 것이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가 말한 '소프트 파워'는 한·쿠바 수교의 숨은 동인이었다. 소프트 파워는 쉽게 말해 타국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힘)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양국 간 문화·관광 교류가 북한의 견제를 넘어 양국 수교에 불을 댕긴 기폭제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까지 연간 약 1만4000명의 한국 관광객이 쿠바를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 등이 지구촌 아이돌로 부상하면서 쿠바 내 최대 한류 커뮤니티 아르코르의 회원 수가 1만명을 넘었다. 결국 쿠바 경제에 도움이 되는 한국 관광객 증가와 한류 확산이 선순환하면서 양국 간 이념장벽을 허문 격이다. 나이 교수가 "1989년 베를린장벽이 포화가 아니라 서구 문화와 방송에 노출됨으로써 변화된 (동독)사람들의 마음이 휘두른 망치와 불도저에 무너졌다"고 갈파한 그대로. 앞으로 K컬처의 놀라운 힘이 핵무장으로 '글로벌 왕따'를 자초하고 있는 북한마저 개혁·개방의 대도로 이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kby777@fnnews.com
2024-03-19 18:11:24유럽연합(EU)으로 수출하는 제품에 탄소세를 부과키로 한 시한이 2년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국내 기업과 출연연구기관에서 건식개질 탄소포집활용(CCU) 플랜트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이 플랜트 시설은 공장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모아서 가져와 석유화학제품 원료로 만든다. ■연간 8000t 일산화탄소 생산한국화학연구원 장태선 박사는 21일 "정부가 오는 2030년 탄소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는 내용을 담은 감축목표(NDC) 시기가 6년 앞으로 다가왔지만 아직까지 이에 대한 뚜렷한 방안이 없는 상태"라며 "이 때문에 석유화학, 제철, 자동차, 시멘트, 정밀화학 등 국내 대기업들 상당수가 이 시설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아직까지 탄소세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탄소배출 감축에 대한 방안을 마련하면 곧 EU처럼 같은 제도를 만들어 시행할 것"이라며 "미국 정부가 우리에게 함께 연구개발하자고 했지만 거절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부흥산업사가 화학연구원의 기술을 이전받아 울산산업단지 내에 세계 최대 규모 CCU 플랜트를 구축했다. 이 플랜트는 이산화탄소 활용 규모가 연간 약 8000t으로 현재 운전 최적화 과정 중이다. 일산화탄소는 전혀 새로운 물질이 아니라 지금도 여러가지 석유화학제품을 만들때 사용하고 있다. 원유를 수입해 연료가 되는 가솔린, 경유 등을 분리한 뒤 많이 남는 물질이 납사(Naphta)다. 이 납사를 분해해 다양한 화학제품 원료를 만들게 되며, 합성가스도 그 과정에서 얻게 된다. 예를 들어 방음벽·여행가방 등 용도의 폴리카보네이트, 자동차 내장재·운동화 등 용도의 폴리우레탄 등이 합성가스를 통해 제조되고 있다. 현재 이 시설은 동서발전소에서 모은 이산화탄소와 도시가스(LNG)원료로 사용해 합성가스를 만들고 있다. 향후 울산산업단지의 발전소나 산업체 공장에서 나오는 일산화탄소, 음식물 쓰레기 매립지에서 발생하는 메탄을 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장태선 박사는 "상용화를 위해서는 365일 가동할 수 있어야 하는데, 각 운전 과정에 대한 최적화 및 운전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플랜트에 이산화탄소와 메탄을 넣은 뒤 반응을 거치면서 합성가스가 나온다. 이때 들어간 원료가 100% 만들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어 반복 운전하면서 분리하는 과정을 되풀이해야 한다. 상용화를 위해서는 365일 이런 반복 과정이 이뤄져야 생산 플랜트로서 가치가 있다. ■150년된 석유화학공정 전환 임박정부가 발표한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안'에 따르면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7억2760만t) 대비 40%인 2억9104만t을 감축해야 한다. 특히 산업 부문에서는 철강 공정 전환, 석유화학 원료 전환 등을 통해 총 2억2260만t을 줄이기로 했다. 국내 탄소배출량은 연간 총 7억t 중 철강이 39%로 가장 많고, 석유화학 18%, 시멘트 13%, 정유 7% 순이다. 이에 따라 기후변화를 극복하기 위해 150년간 지속해왔던 석유화학산업이 대전환의 시기에 직면했다.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해왔던 여러 산업 공정이 개선돼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공정이 이산화탄소가 너무 많이 나오다보니 새로운 공정으로 대체하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진행돼왔다. 장 박사는 "의도치 않는 부산물들이 너무 많이 나오다 보니 지금까지 바꾸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대기업은 물론 미국과 사우디, 중국, 일본, 독일 등의 다국적 기업들과 국가들도 CCU 플랜트에 관심이 많다. 장 박사는 "기업들이 탄소배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뚜렷한 해법이 없어 기술성숙도가 높고, 파급효과가 큰 이 기술에 관심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화학연구원은 정부 지원을 받아 전남 여수에 CCU 기술 실증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현재 1차 '석유화학촉매공정 실증시설'이 지난해 말 완공돼 개소를 준비 중이며, 2차 'CCU실증지원시설'은 당초 예정했던 2026년에서 앞당겨 올해말 주요 설비가 구축될 예정이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2024-02-21 18:25:50[파이낸셜뉴스] 유럽연합(EU)으로 수출하는 제품에 탄소세를 부과키로 한 시한이 2년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국내 기업과 출연연구기관에서 건식개질 탄소포집활용(CCU) 플랜트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이 플랜트 시설은 공장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모아서 가져와 석유화학제품 원료로 만든다. 연간 8000t 일산화탄소 생산 한국화학연구원 장태선 박사는 21일 "정부가 오는 2030년 탄소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는 내용을 담은 감축목표(NDC) 시기가 6년 앞으로 다가왔지만 아직까지 이에 대한 뚜렷한 방안이 없는 상태"라며 "이 때문에 석유화학, 제철, 자동차, 시멘트, 정밀화학 등 국내 대기업들 상당수가 이 시설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아직까지 탄소세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탄소배출 감축에 대한 방안을 마련하면 곧 EU처럼 같은 제도를 만들어 시행할 것"이라며 "미국 정부가 우리에게 함께 연구개발하자고 했지만 거절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부흥산업사가 화학연구원의 기술을 이전받아 울산산업단지 내에 세계 최대 규모 CCU 플랜트를 구축했다. 이 플랜트는 이산화탄소 활용 규모가 연간 약 8000t으로 현재 운전 최적화 과정 중이다. 일산화탄소는 전혀 새로운 물질이 아니라 지금도 여러가지 석유화학제품을 만들때 사용하고 있다. 원유를 수입해 연료가 되는 가솔린, 경유 등을 분리한 뒤 많이 남는 물질이 납사(Naphta)다. 이 납사를 분해해 다양한 화학제품 원료를 만들게 되며, 합성가스도 그 과정에서 얻게 된다. 예를 들어 방음벽·여행가방 등 용도의 폴리카보네이트, 자동차 내장재·운동화 등 용도의 폴리우레탄 등이 합성가스를 통해 제조되고 있다. 현재 이 시설은 동서발전소에서 모은 이산화탄소와 도시가스(LNG)원료로 사용해 합성가스를 만들고 있다. 향후 울산산업단지의 발전소나 산업체 공장에서 나오는 일산화탄소, 음식물 쓰레기 매립지에서 발생하는 메탄을 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장태선 박사는 "상용화를 위해서는 365일 가동할 수 있어야 하는데, 각 운전 과정에 대한 최적화 및 운전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플랜트에 이산화탄소와 메탄을 넣은 뒤 반응을 거치면서 합성가스가 나온다. 이때 들어간 원료가 100% 만들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어 반복 운전하면서 분리하는 과정을 되풀이해야 한다. 상용화를 위해서는 365일 이런 반복 과정이 이뤄져야 생산 플랜트로서 가치가 있다. 150년된 석유화학공정 전환 임박 정부가 발표한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안'에 따르면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7억2760만t) 대비 40%인 2억9104만t을 감축해야 한다. 특히 산업 부문에서는 철강 공정 전환, 석유화학 원료 전환 등을 통해 총 2억2260만t을 줄이기로 했다. 국내 탄소배출량은 연간 총 7억t 중 철강이 39%로 가장 많고, 석유화학 18%, 시멘트 13%, 정유 7% 순이다. 이에 따라 기후변화를 극복하기 위해 150년간 지속해왔던 석유화학산업이 대전환의 시기에 직면했다.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해왔던 여러 산업 공정이 개선돼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공정이 이산화탄소가 너무 많이 나오다보니 새로운 공정으로 대체하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진행돼왔다. 장 박사는 "의도치 않는 부산물들이 너무 많이 나오다 보니 지금까지 바꾸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대기업은 물론 미국과 사우디, 중국, 일본, 독일 등의 다국적 기업들과 국가들도 CCU 플랜트에 관심이 많다. 장 박사는 "기업들이 탄소배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뚜렷한 해법이 없어 기술성숙도가 높고, 파급효과가 큰 이 기술에 관심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화학연구원은 정부 지원을 받아 전남 여수에 CCU 기술 실증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현재 1차 '석유화학촉매공정 실증시설'이 지난해 말 완공돼 개소를 준비 중이며, 2차 'CCU실증지원시설'은 당초 예정했던 2026년에서 앞당겨 올해말 주요 설비가 구축될 예정이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2024-02-21 09:14:55【파이낸셜뉴스 방콕(태국)=김기석 기자】"태국과 한국의 인연은 생각보다 깊다. 고려 때 태국에서 사신을 보낼 정도로 오래됐고 한국전에도 군인을 파병했다." 박용민 주태국대사에게 태국과 한국의 관계를 묻자 내놓은 답이다. 최근 주태국 한국대사관 집무실에서 가진 파이낸셜뉴스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박 대사는 "태국은 아세안 2위 경제국이자 한국을 가장 많이 찾는 아세안 국가, 한류 열풍이 가장 큰 나라"라며 "성장성과 친밀도에 비해 너무 저평가됐다"고 말했다. 그는 "태국인들의 한국 입국과 관련해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다"면서 "한국 법무부와 잘 협의해 최선의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K박람회, 코트라 ICT데이 등 태국에서 정부 및 기업 활동이 활발한데. ▲우리 정부는 인도태평양전략과 한·아세안 연대구상(KASI)이라는 전략적 목표와 정책을 기반으로 아세안 지역에 적극적으로 진출했다. 이전에는 한국과 태국 양국 간 협력이 인적 교류, 문화·관광 분야에 집중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태국의 지역적 중요성과 파트너십 강화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콘텐츠, 농산, 교통, 친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태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많은 정부 기관과 기업들이 진출하고 있다. K박람회는 콘텐츠뿐만 아니라 소비재 등 연관 산업의 해외판로를 개척하는 사업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중소벤처기업부가 공동으로 주최했고 한국콘텐츠진흥원,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등이 주관했다. 지난해 2회째를 맞이한 관계부처 합동 K박람회는 콘텐츠뿐 아니라 소비재 등 연관 산업의 해외판로를 개척하는 사업이다. 지난해 11월에는 태국 방콕에 콘텐츠진흥원 태국비즈니스센터가 개소했다. 콘진원 비즈니스센터는 동남아에서 인도네시아·베트남에 이어 세 번째 개소한 것으로 현재 법인 설립을 진행 중이다. 올해 안에 정상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태국에서 가장 성장성이 큰 산업은. ▲태국의 아세안 내 경제적·지정학적 위상에 비해 베트남, 싱가포르 등 다른 아세안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리와의 협력이 미약하다. 그러다 보니 태국의 관광산업 외에는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태국은 아세안 내 국내총생산(GDP) 2위, 무역규모 3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우리의 아세안 내 교역은 5위, 투자 8위국 수준이다. 한태 교역규모는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2010년 이후 꾸준히 100억달러를 상회해왔으며, 2022년 기준 한태 교역액은 165억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22년을 기준으로 태국 입장에서 한국은 교역 12위이며, 외국인투자는 7위 국가다(한국 입장에서 태국은 교역 19위). 2022년 한국과 태국의 교역액(165억달러)도 한국·베트남 교역규모의 6분의 1, 누적 투자액은 아세안 전체의 3%에 불과하다. 그러나 태국은 아세안 최대 자동차 생산국이자 식품(쌀, 과일, 가공식품 등) 수출국이다. 또 전기·전자 산업이 발달했다. 태국 산업은 1차산업 8%, 2차산업 35%, 3차산업 57%로 구성되며 제조업 비중은 27%로 아세안 1위다. 한국 제조업 비중 27.5%와 비슷한 수준이다. ―국내 기업들의 태국 진출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우선 일본 기업이 밸류체인을 선점했다는 인식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된다. 일본은 1960년대부터 대태국 제조업 투자·ODA를 통해 경제협력을 확대, 일본 자동차·전기전자 업체 중심의 공급망을 이미 형성했다. 우리 기업들은 다수 대기업 및 협력업체 진출로 우리 산업과 밀접한 밸류체인이 이미 형성된 베트남·인도네시아 등에 주로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태국은 ①상대적으로 높은 소득으로 소비시장이 활성화됐으며, ②인근 메콩지역(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진출의 교두보로 활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메콩국가들이 주요 소비·산업재, 방송 등 문화 분야도 태국에 의존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태국은 메콩 진출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아직 밸류체인이 일본 기업에 편중되지 않은 신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우리 기업이 진출한다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내연차는 이미 일본이 90%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으나 최근 태국 정부가 육성하고자 하는 전기차의 경우 최근 중국(BYD, MG 등), 대만(폭스콘) 등이 적극 진출하여 밸류체인이 변화하고 있다. ―태국에 진출할 때 유의할 점은. ▲태국에 진출한 기업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소비재 시장의 경우 전 세계 대부분의 브랜드가 태국에 이미 진출해 있는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이에 타깃수요층에 대한 철저한 시장분석을 바탕으로 진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또 금융분야도 잘 검토해야 한다. 태국은 외국계 은행 신설을 불허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계 은행이 없는 상황이다. 이에 자금조달·운용 방안에 대한 사전 대비가 필요하다. 최근 태국 정부는 가상은행 중심으로 신규 허가를 검토 중이며, 우리 대사관에서도 희망하는 우리 금융기관이 태국에 진출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있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3개 은행이 철수한 후 영업허가를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 태국인 고용규제도 알고 진입해야 한다. 현재 태국에는 외국인을 한 명 고용할 경우 태국인 4명 고용 의무 등 노동 관련 규제가 있다. ―한국에 대한 태국인들의 인식은. ▲기본적으로 한류가 태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태국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인식은 우호적이다. 특히 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블랙핑크 리사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국 중심부가 아닌 지방 출신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예인이 되어 태국인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됐다. 한국 연예계 활동을 통해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만큼 태국인들에게 한국은 세계무대로 나아가는 관문이 됐다. 또 전 세계 초중고에서 가장 많이 한국어 정규수업을 받는 나라가 태국이다. ―태국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 브랜드와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브랜드는? 글로벌 브랜드와 격차는. ▲태국에서는 K콘텐츠, K팝 등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고 이와 관련해 한국 음식 등 소비재가 성장하고 있다. 세타 정부는 지난해 9월 국가소프트파워전략위원회(위원장 총리)를 설치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 등을 벤치마킹하여 태국콘텐츠진흥원(THACCA) 설립을 추진 중이다. 이와 연계해 한국 드라마·영화 등에 등장하는 한식, 그중에서도 한국 라면의 인기가 상당히 높다. ―지난해 태국인 입국 문제로 갈등이 있었다. 원인은. ▲태국은 우리나라와 1981년 사증면제협정을 체결한 국가로, 그간 태국인은 비자 없이 한국을 방문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 내 태국인 불법체류자가 15만명을 넘으면서 전체 태국인 체류자 중 불법체류가 77%에 달하자 우리 법무부에서 불체율을 낮추기 위해 태국인에 대한 ETA 거절률을 높이고, 입국심사도 엄격하게 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사랑이 깊으면 배신감도 커지듯이 비자면제국이었던 한국이 다시 사실상 태국인에게 비자를 요구하는 것처럼 비치자 그간 수시로 한국을 방문했던 태국인들 사이에서 불만이 커진 것이다. 태국 정부는 일본도 태국과 무비자인데 일본에는 불법체류 태국인이 적은 것을 근거로, 불법체류자를 고용하는 한국 기업들의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 부임 전 우리 법무부를 방문하여 논의도 했고 개선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면서 국내 관계부처와도 협의해 나갈 예정이다. 아울러 대사관 차원에서도 현지 태국인들 사이에 반한감정이 확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공공외교를 더욱 강화해 나갈 예정이다. ―태국에 거주하는 한국인 수는. ▲현재 태국 내 우리 동포 규모는 약 2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우리 기업 약 400개사가 태국에 진출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동포 규모는 코로나19 당시 1만8000명가량으로 감소했다가 이후 증가하는 추세다. ―향후 주요 계획은. ▲태국은 잠재력이 뛰어난 공장인 동시에 시장이다. 우리 기업 진출 확대와 양국 간 교역증대를 우선과제로 여기고 있다. 태국의 별명이 '미소의 나라'다. 태국 사람들의 성향이 별명이 된 것이다. 심각한 교통체증 속에서도 클랙슨을 울리지 않을 정도로 태국인들은 타인에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친절함이 몸에 배어 있다. 그런 태국 사람들에게 '한국인 특유의 친화력과 뚝심'을 보여주면서 진심으로 다가갈 예정이다. ■ 박용민 주태국 한국대사 약력 △1966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영국 케임브리지대 국제관계 석사 △주미국일등서기관 △북핵협상과장 △주일본참사관 △주유엔공사참사관 △주르완다대사 △아프리카중동국장 △주센다이총영사 △국립외교원 경력교수 △다자외교조정관 △주태국대사 kkskim@fnnews.com 김기석 김윤호 기자
2024-01-07 18:33:35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과 노선을 달리했다. 문 정부가 친중 행보를 보였다면, 윤 대통령은 미국을 중심으로 일본 등과 관계를 강화하는 새로운 틀을 짜는 형태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생존전략을 잡았던 그간의 '전략적 모호성'을 버리고, 미국으로 기울어진 외교를 구축해 나가는 셈이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이처럼 한국의 바뀐 외교노선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윤 대통령은 취임 1주년을 즈음한 올해 4월 주요 외신과 인터뷰에서 "(대만해협에서의 긴장 고조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국제사회는 함께 이러한 변화(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상대로 중국은 "내정간섭"이라며 곧바로 반발했다. 한국 정부는 환구시보 등 관영매체와도 설전을 벌였다. 환구시보가 한국 정부 외교를 놓고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비판하자 "우리 정부의 외교정책을 매우 치우친 시각에서 객관적 근거도 없이 일방적으로 폄훼했다"고 맞섰다. 6월에는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데 베팅하는 것 같은데, 이는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라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외교부는 중국 당국에 싱하이밍 대사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으나 사실상 거절당했다. 윤 대통령까지 나서 "싱 대사의 태도를 보면 외교관으로서 상호존중이나 우호증진의 태도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직접 경고했다. 한국 정부의 외교방식은 지지도 받았으나, 상대적으로 우려도 많았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의 국방부문 선임연구원인 데릭 그로스먼은 일본 닛케이 기고문에서 "베이징과 서울 간의 설전이 격화되고, 한국 기업과 수출품에 대한 중국 보복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더 큰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최근 들어선 최영삼 외교부 차관보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중국을 다녀가며 소통재개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오는 13~14일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 등을 계기로 중국 외교수장과 양자회담을 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한중 관계가 미·중 관계를 능가하는 극도의 대립으로 치닫기 전에 대화와 교류의 물꼬를 튼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다만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의 방중 직전에 한중 소통이 시작됐다는 점은 아쉽다. 표면적인 갈등과 달리 물밑에선 꾸준히 외교전을 펼쳤다고 해도, 미·중 화해 분위기에 부랴부랴 전략을 수정했다고 인식할 수 있을 만큼 시점이 공교롭다. 중국을 겁낼 이유는 없다. 상호주의에 맞춰 당연히 중국으로부터 존중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또 다른 강대국에 맞춰 살아갈 필요 역시 없다. 외교에선 영원한 적군도, 동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jjw@fnnews.com 정지우 베이징특파원
2023-07-11 18:07:12[파이낸셜뉴스] 라면 종주국 일본의 라면 회사들이 최근에는 한국의 유명 라면을 대놓고 베낀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특히 전세계 최초로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한 일본의 '닛신'은 누가봐도 삼양식품의 '까르보불닭볶음면'을 베낀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과거 6·25 전쟁 이후 삼양식품은 '닛신'에 라면 제조 기술 전수를 부탁했으나 닛신은 이를 거절했다. 당시 삼양식품은 닛신의 경쟁사인 '묘조식품'으로부터 기술을 전수 받아 지난 1963년 한국 최초의 라면을 출시했다. 한글 넣고, 포장 디자인도 따라해 10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일본의 라면 회사들은 한국 라면의 맛과 향은 물론 포장에 한글을 넣고, 포장의 디자인까지 한국식 라면을 본딴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일본에 살면서 현지의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는 구독자 46만명의 유튜브 채널 '박가네'는 최근 "일본 기업들이 한국제품을 베끼는 이유"라는 제목의 영상을 통해 일본 라면 회사들의 한국 제품 베끼기에 대해 비판했다. 박준식(오상)씨는 영상에서 "예전에는 한국 식품회사들이 일본을 따라했는데 이제는 일본 라면회사가 한국을 따라하다니 오래 살고 볼일"이라며 "일부 라면은 한글이 일본어 보다 크게 쓰여있어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한국에서 파는 라면인줄 착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지 마트와 슈퍼 등에서는 최근 한국 라면의 인기로 인해 신라면, 너구리, 비빔면, 불닭볶음면 등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관세 등이 붙어 한국보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한국 인기라면 대다수를 갖추고 있다. 한국 라면의 인기를 등에 업고 일본 라면 회사들이 한국식 라면을 따라하거나, 아예 한국 라면으로 착각이 들 정도로 유사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대놓고 베끼기...라면 종주국 무색 한 수입식품점이 자체브랜드(PB) 상품으로 개발한 한 컵라면은 뚜껑에 아예 '양념볶음면'이라는 한글이 적혀 있다. 한국 회사가 만든 라면처럼 보인다. 또 다른 컵라면의 경우 '신면(辛麵)'이라는 한자가 쓰여 있는데 누가봐도 농심의 '신라면'을 따라한 듯한 디자인이다. 특히 닛신이 출시한 야키소바 컵라면의 경우 삼양식품의 까르보불닭볶음면을 복사, 붙여넣기 한 수준이다. 박준식 씨는 "6·25 전쟁 이후 라면 기술을 알려달라고 찾아갔을 때 이를 거절했던 닛신이 누가봐도 불닭볶음면을 따라한 제품을 낸 것 같다"며 "(삼양식품에 라면 기술을 전수해 준) 명성식품(묘조식품)이라면 이해할텐데 닛신이라는 것이 신기하다"고 말했다. 과거 한국의 식품회사들이 일본을 따라했다면 반대로 일본이 한국 라면을 따라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실제로 새우깡, 허니버터칩, 꼬북칩 등 국내 유명 과자 제품의 경우 출시 후 일본의 제품과 유사하다는 논란이 있었다. 한편 한국 'K 라면'의 인기는 수출로도 반영되면서 사상 최초 기록을 만들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와 관세청 등에 따르면 올해 3월까지 라면 수출액은 2억800만달러로 잠정 집계됐다. 1분기 라면 수출액이 2억 달러를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2023-04-09 14:27:03올해는 미·중 패권 다툼을 비롯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등 국제질서 재편을 둘러싸고 주요 강대국들간 본격적인 경쟁이 펼쳐졌다. 특히 반도체를 비롯해 원자재를 둘러싼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놓고 미·중간 사활을 건 힘겨루기가 어느때보다 치열했다. 2차 대전 이후 핵무기 보유국인 미·중·러가 '군사적으로 직접 충돌'하는 전쟁(War) 리스크는 줄어든 반면 '영향력 확대(Expansion of influence)'를 통한 국제질서 재편 양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게 특징이다. 2022년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해 일본의 대규모 군사력 강화로 막을 내리고' 있다. 미·중 갈등의 심화와 대만해협 위기의 고조, 중공 20차 당대회와 시진핑 총서기의 3연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마찰, 콜롬비아와 브라질의 대선, 중·러를 뒷배로 잇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 등을 통해 끊임없이 핵 위협을 고도화하는 북한까지 많은 사건이 발생했다. 올해 발생한 개별적인 사건들을 모두 묶어 통찰하긴 쉽진 않지만 이를 토대로 향후 국제질서가 어떻게 재편될 지 조망해보고자 한다. ■유럽의 역내 질서 재편 전망 올해 국제질서의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난 지역은 유럽으로 지난 2월 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 순식간에 키이우 함락과 우크라이나를 점령할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완강한 저항을 직면해 10개월째 전쟁 중이다. 전쟁은 대규모의 인명 피해와 난민을 발생시켰고, 식량 생산과 에너지 수급을 포함해 세계 군사·경제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럽은 이를 계기로 미국과 함께 고강도 대러 제재를 부과하고 빠르게 규합해 북유럽의 오랜 중립국 스웨덴과 핀란드가 NATO에 가입했고, 덴마크도 30년만에 EU 공동방위정책에 참여했다. 유럽 주요 국가들은 국방비 증액과 무기 도입 확대를 천명했으며, 반면 중국은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오히려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확대함으로써 전쟁은 진영 간 대결 양상을 띠게 됐다. NATO는 새로운 전략개념을 채택해 러시아는 '위협'으로, 중국은 '도전'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그 속내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진영과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권위주의 진영 모두 견고하지 않으며, 모두 균열 요인을 내포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유럽 주요 국가들은 러시아의 위협에 대해선 미국과 유사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지만, 중국에 대해선 그렇지 않으며, 미국 우선 일방주의 정책에 갖는 불만이 커지고 있으며, 러-우 전쟁에 대한 피로감도 계속해서 쌓이고 있다. 한편 중국도 러-우 전쟁에 과도한 연루를 원치 않으며, 동시에 러시아의 힘이 약화돼 미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손대권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진영간 대립이라는 구심력과 개별 국가들의 이익이라는 원심력 간의 상호작용 결과에 따라 2023년 유럽 역내 질서가 재편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사우디간 균열..러·중엔 기회, 이란 카드로 지속 불투명 중동 지역에선 전통적 친미 노선의 사우디아라비아가 빈살만 왕세자의 주도하에 점차 미국과의 거리두기에 나섰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오바마 행정부 시기의 이란 핵합의(JCPOA)를 파기, 2020년 아브라함 협정을 중심으로 중동 질서를 재편하고자 했고 사우디는 그런 트럼프의 중동 정책에 협력, 배후 지지 역할을 맡았었지만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후, 미국은 중동 정책을 다시 오바마 시기로 돌려놓고자 시도하고 사우디의 예멘 내전 개입에 반대하기도 하는 등 미국과 사우디 간의 지속적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을 둘러싸고 바이든 대통령은 빈살만 왕세자를 강력히 비난해, 국가 간 관계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우디와 미국의 균열은 러·중국에는 중동 지역에서 미국을 견제하는 좋은 기회다. 2016년 OPEC Plus에 초청받은 러시아는 사우디와 석유 증산 계획과 관련하여 논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군사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사우디 역시도 이에 응해 대러 제재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중국도 사우디와의 관계 증진에 나서 시진핑 주석은 최근 사우디를 방문해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체결했으며 석유와 가스 거래에 위안화 사용을 추진할 것을 밝힘으로써 페트로 달러 질서를 흔들어보겠다는 야심을 내비쳤다. 현재 사우디는 에너지 의존형 경제구조를 벗어나 첨단산업을 육성하고자 시도하고 있으며, 사우디도 미국의 중동 내 영향력 견제 전략을 굳혔다면 중국은 좋은 협력 대상이다. 카타르 월드컵에 세계가 정신이 팔려있던 사이, 중국은 카타르와 610억 달러 규모의 LNG 수입 계약을 맺었다. UAE도 중국산 5G 장비를 구매하지 말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고 중국과의 산업 협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다만 사우디의 대미 거리두기가 지속될지는 불투명하다. 중국과 러시아가 사우디에 제공해줄 수 있는 보상은 제한적이며 빈살만의 반감은 미국이라기보다는 바이든이라는 개인을 향해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손 교수는 "무엇보다 사우디가 반미 노선을 지속할 경우, 미국에는 '이란 카드'가 있다"며 "현재 이란은 반정부 시위와 JCPOA 재협상 난항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매우 많은 상황이지만 2023년에는 이러한 불확실성이 일정 수준 제거될 전망에 따라 중동 정세의 변화 방향도 더욱 명확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중남미 지역서 '핑크타이드' 상시 재교체 가능 중남미 지역은 2018년 멕시코 선거를 시작으로, 2019년 아르헨티나, 2020년 볼리바아, 2021년 페루와 칠레, 온두라스, 2022년 콜롬비아와 브라질도 모두 좌파 정권이 승리함으로써 중남미 지역 내 경제규모 상위권 국가들에서 모두 좌파 정권이 들어섰다. 중남미 국가들은 미국에 지리적·경제적으로 많이 의존하고 있는 반면 정치적, 경제적 갈등을 겪은 바 있다. 33개 중남미 국가들 중 절반 이상이 냉전기 미국의 비밀공작으로 정권이 전복된 경험이 있고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반감의 정서가 있다. 이들 국가는 미국의 정책에 협조하기보단,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책을 추진한다. 브라질을 비롯한 다수의 중남미 국가는 미국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고, 쿠바·니카라과·볼리비아·엘살바도르·베네수엘라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2022년 6월 미국은 1994년 이후 28년 만에 자국에서 첫 미주 정상회의를 개최했지만 바이든 정부는 '비민주 국가'의 정상들은 초대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내세워 쿠바·니카라과·베네수엘라 정상은 초청하지 않아 중남미 일부 국가들은 미국의 이 같은 정책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멕시코는 대통령은 회의 보이콧을 선언했고 과테말라·온두라스·엘살바도르 등 국가는 국가 정상 대신 대리인을 회의에 파견한 바 있다. 지난 2010년 중남미 국가들은 라틴아메리카 카리브 국가 공동체(CELAC)를 설립, 미국 주도의 미주기구(OAS·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를 견제하고 있다. 그러나 브라질은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하고 있으며 중국은 브라질의 최대 수출국 관계로 지난 10월 정권을 잡은 룰라 정부이 이 같은 역할을 지속할 수 있을지는 의구심이 있다. 최근 중·러는 브라질과의 유대 강화의 플랫폼으로 BRICS의 외연을 확대하는 BRICS plus를 추진해 이란과 아르헨티나도 가입 의사를 밝혔다. 손 교수는 "중남미의 핑크타이드'('분홍색 물결' 중남미에서 좌파 세력이 다수 집권하는 현상)는 상당 부분 우파 정권의 무능과 코로나19로 인한 사회 불안정, 빈곤과 실업 등 구조적 문제에 대한 대중적 분노의 발호였기 때문에 좌파 정권들은 언제든 재교체될 수 있다"고 봤다. 이어 "하지만 중남미의 경제적 불안은 상당 부분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것으로 중남미 국가들은 미국 주도의 IMF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자 하고 있어 중남미 국가들에 영향력의 확대를 추구하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고자 하는 미국, 자국 이익이 최우선인 중남미 국가들 간의 치열한 수 싸움이 지속할 전망이다. ■인도·태평양, 북·중·러 對 한·미·일 대치속 일본 군사력 강화 미·중 간의 전략경쟁이 가장 치열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AUKUS나 IPEF 등 다양한 소다자주의 협의체를 구축해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특히 대만해협을 둘러싼 미·중 갈등은 위기의 상시화 형태를 띠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여러 차례 대만 유사시 미국 개입과 전략적 모호성 포기 가능성을 시사했다. 특히 지난 8월 낸시 펠로시 하원의원의 대만 방문으로 인해 양안 간 사실상 '제4차 대만해협 위기' 정도의 긴장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시진핑 주석은 3연임에 성공한 20차 당대회 연설에서 대만 독립 반대와 대만에 무력 사용 포기 약속을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천명했다. 미·중 경쟁 구도 격화는 북한 운신의 폭을 넓혀 주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 미·중 사이의 완충지대인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커지지만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레버리지가 줄어들어 북한에 유리한 국면으로 작용한다. 북한도 이러한 계산을 바탕으로 지난 1년간 김정은 정권은 마음 놓고 도발을 감행할 수 있었다. ICBM을 포함해 일상적으로 미사일 실험발사 도발과 9월 핵무력정책법 재정, 고체연료 미사일 발사 실험 등 '핵무력 확보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북한의 도발은 앞으로도 지속 상승할 전망이다. 한편 미국은 유럽 전역에서 러시아를 상대하고, 동시에 세계 도처에서 확대되고 있는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로 인해 북한 문제 해결에 전력을 투사할 여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한미동맹의 확장억제 강화에 나서고 있지만 일각에선 면피하듯 중국이 북한 문제 해결에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촉구할 뿐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2021년 출범한 일본의 기시다 내각은 그해 10월 중의원 선거와 2022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를 바탕으로 중·러의 공세적 외교와 군사력 강화, 우크라이나 전쟁·대만해협 위기·북한 미사일의 일본 상공 통과 등을 겪으며 국가안전보장전략, 방위계획대강, 중기방위력정비계획 등 세 개의 문서 개정하여 반격능력을 확보하고, 방위비를 GDP 대비 2퍼센트 수준으로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이와 관련, 손 교수는 "향후 일본은 동아시아 국제질서 구축에 있어 더 큰 역할을 하려고 할 것이고, 중국은 이를 견제하고자 군사력 강화를 더욱 가속할 가능성이 커, 북한의 도발과 이에 대한 한국의 대응이 한 데 엮여 동북아 지역에서 군비경쟁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2-12-26 18:21:13[파이낸셜뉴스] 올해는 미·중 패권 다툼을 비롯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등 국제질서 재편을 둘러싸고 주요 강대국들간 본격적인 경쟁이 펼쳐졌다. 특히 반도체를 비롯해 원자재를 둘러싼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놓고 미·중간 사활을 건 힘겨루기가 어느때보다 치열했다. 2차 대전 이후 핵무기 보유국인 미·중·러가 '군사적으로 직접 충돌'하는 전쟁(War) 리스크는 줄어든 반면 '영향력 확대(Expansion of influence)'를 통한 국제질서 재편 양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게 특징이다. 2022년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해 일본의 대규모 군사력 강화로 막을 내리고' 있다. 미·중 갈등의 심화와 대만해협 위기의 고조, 중공 20차 당대회와 시진핑 총서기의 3연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마찰, 콜롬비아와 브라질의 대선, 중·러를 뒷배로 잇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 등을 통해 끊임없이 핵 위협을 고도화하는 북한까지 많은 사건이 발생했다. 올해 발생한 개별적인 사건들을 모두 묶어 통찰하긴 쉽진 않지만 이를 토대로 향후 국제질서가 어떻게 재편될 지 조망해보고자 한다. ■유럽의 역내 질서 재편 전망 올해 국제질서의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난 지역은 유럽으로 지난 2월 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 순식간에 키이우 함락과 우크라이나를 점령할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완강한 저항을 직면해 10개월째 전쟁 중이다. 전쟁은 대규모의 인명 피해와 난민을 발생시켰고, 식량 생산과 에너지 수급을 포함해 세계 군사·경제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럽은 이를 계기로 미국과 함께 고강도 대러 제재를 부과하고 빠르게 규합해 북유럽의 오랜 중립국 스웨덴과 핀란드가 NATO에 가입했고, 덴마크도 30년만에 EU 공동방위정책에 참여했다. 유럽 주요 국가들은 국방비 증액과 무기 도입 확대를 천명했으며, 반면 중국은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오히려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확대함으로써 전쟁은 진영 간 대결 양상을 띠게 됐다. NATO는 새로운 전략개념을 채택해 러시아는 '위협'으로, 중국은 '도전'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그 속내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진영과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권위주의 진영 모두 견고하지 않으며, 모두 균열 요인을 내포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유럽 주요 국가들은 러시아의 위협에 대해선 미국과 유사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지만, 중국에 대해선 그렇지 않으며, 미국 우선 일방주의 정책에 갖는 불만이 커지고 있으며, 러-우 전쟁에 대한 피로감도 계속해서 쌓이고 있다. 한편 중국도 러-우 전쟁에 과도한 연루를 원치 않으며, 동시에 러시아의 힘이 약화돼 미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손대권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진영간 대립이라는 구심력과 개별 국가들의 이익이라는 원심력 간의 상호작용 결과에 따라 2023년 유럽 역내 질서가 재편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사우디간 균열..러·중엔 기회, 이란 카드로 지속 불투명 중동 지역에선 전통적 친미 노선의 사우디아라비아가 빈살만 왕세자의 주도하에 점차 미국과의 거리두기에 나섰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오바마 행정부 시기의 이란 핵합의(JCPOA)를 파기, 2020년 아브라함 협정을 중심으로 중동 질서를 재편하고자 했고 사우디는 그런 트럼프의 중동 정책에 협력, 배후 지지 역할을 맡았었지만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후, 미국은 중동 정책을 다시 오바마 시기로 돌려놓고자 시도하고 사우디의 예멘 내전 개입에 반대하기도 하는 등 미국과 사우디 간의 지속적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을 둘러싸고 바이든 대통령은 빈살만 왕세자를 강력히 비난해, 국가 간 관계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우디와 미국의 균열은 러·중국에는 중동 지역에서 미국을 견제하는 좋은 기회다. 2016년 OPEC Plus에 초청받은 러시아는 사우디와 석유 증산 계획과 관련하여 논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군사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사우디 역시도 이에 응해 대러 제재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중국도 사우디와의 관계 증진에 나서 시진핑 주석은 최근 사우디를 방문해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체결했으며 석유와 가스 거래에 위안화 사용을 추진할 것을 밝힘으로써 페트로 달러 질서를 흔들어보겠다는 야심을 내비쳤다. 현재 사우디는 에너지 의존형 경제구조를 벗어나 첨단산업을 육성하고자 시도하고 있으며, 사우디도 미국의 중동 내 영향력 견제 전략을 굳혔다면 중국은 좋은 협력 대상이다. 카타르 월드컵에 세계가 정신이 팔려있던 사이, 중국은 카타르와 610억 달러 규모의 LNG 수입 계약을 맺었다. UAE도 중국산 5G 장비를 구매하지 말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고 중국과의 산업 협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다만 사우디의 대미 거리두기가 지속될지는 불투명하다. 중국과 러시아가 사우디에 제공해줄 수 있는 보상은 제한적이며 빈살만의 반감은 미국이라기보다는 바이든이라는 개인을 향해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손 교수는 "무엇보다 사우디가 반미 노선을 지속할 경우, 미국에는 '이란 카드'가 있다"며 "현재 이란은 반정부 시위와 JCPOA 재협상 난항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매우 많은 상황이지만 2023년에는 이러한 불확실성이 일정 수준 제거될 전망에 따라 중동 정세의 변화 방향도 더욱 명확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중남미 지역서 '핑크타이드' 상시 재교체 가능 중남미 지역은 2018년 멕시코 선거를 시작으로, 2019년 아르헨티나, 2020년 볼리바아, 2021년 페루와 칠레, 온두라스, 2022년 콜롬비아와 브라질도 모두 좌파 정권이 승리함으로써 중남미 지역 내 경제규모 상위권 국가들에서 모두 좌파 정권이 들어섰다. 중남미 국가들은 미국에 지리적·경제적으로 많이 의존하고 있는 반면 정치적, 경제적 갈등을 겪은 바 있다. 33개 중남미 국가들 중 절반 이상이 냉전기 미국의 비밀공작으로 정권이 전복된 경험이 있고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반감의 정서가 있다. 이들 국가는 미국의 정책에 협조하기보단,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책을 추진한다. 브라질을 비롯한 다수의 중남미 국가는 미국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고, 쿠바·니카라과·볼리비아·엘살바도르·베네수엘라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2022년 6월 미국은 1994년 이후 28년 만에 자국에서 첫 미주 정상회의를 개최했지만 바이든 정부는 '비민주 국가'의 정상들은 초대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내세워 쿠바·니카라과·베네수엘라 정상은 초청하지 않아 중남미 일부 국가들은 미국의 이 같은 정책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멕시코는 대통령은 회의 보이콧을 선언했고 과테말라·온두라스·엘살바도르 등 국가는 국가 정상 대신 대리인을 회의에 파견한 바 있다. 지난 2010년 중남미 국가들은 라틴아메리카 카리브 국가 공동체(CELAC)를 설립, 미국 주도의 미주기구(OAS·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를 견제하고 있다. 그러나 브라질은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하고 있으며 중국은 브라질의 최대 수출국 관계로 지난 10월 정권을 잡은 룰라 정부이 이 같은 역할을 지속할 수 있을지는 의구심이 있다. 최근 중·러는 브라질과의 유대 강화의 플랫폼으로 BRICS의 외연을 확대하는 BRICS plus를 추진해 이란과 아르헨티나도 가입 의사를 밝혔다. 손 교수는 "중남미의 핑크타이드'('분홍색 물결' 중남미에서 좌파 세력이 다수 집권하는 현상)는 상당 부분 우파 정권의 무능과 코로나19로 인한 사회 불안정, 빈곤과 실업 등 구조적 문제에 대한 대중적 분노의 발호였기 때문에 좌파 정권들은 언제든 재교체될 수 있다"고 봤다. 이어 "하지만 중남미의 경제적 불안은 상당 부분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것으로 중남미 국가들은 미국 주도의 IMF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자 하고 있어 중남미 국가들에 영향력의 확대를 추구하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고자 하는 미국, 자국 이익이 최우선인 중남미 국가들 간의 치열한 수 싸움이 지속할 것"으로 분석했다. ■인도·태평양, 북·중·러 對 한·미·일 대치속 일본 군사력 강화 미·중 간의 전략경쟁이 가장 치열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AUKUS나 IPEF 등 다양한 소다자주의 협의체를 구축해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특히 대만해협을 둘러싼 미·중 갈등은 위기의 상시화 형태를 띠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여러 차례 대만 유사시 미국 개입과 전략적 모호성 포기 가능성을 시사했다. 특히 지난 8월 낸시 펠로시 하원의원의 대만 방문으로 인해 양안 간 사실상 '제4차 대만해협 위기' 정도의 긴장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시진핑 주석은 3연임에 성공한 20차 당대회 연설에서 대만 독립 반대와 대만에 무력 사용 포기 약속을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천명했다. 미·중 경쟁 구도 격화는 북한 운신의 폭을 넓혀 주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 미·중 사이의 완충지대인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커지지만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레버리지가 줄어들어 북한에 유리한 국면으로 작용한다. 북한도 이러한 계산을 바탕으로 지난 1년간 김정은 정권은 마음 놓고 도발을 감행할 수 있었다. ICBM을 포함해 일상적으로 미사일 실험발사 도발과 9월 핵무력정책법 재정, 고체연료 미사일 발사 실험 등 '핵무력 확보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북한의 도발은 앞으로도 지속 상승할 전망이다. 한편 미국은 유럽 전역에서 러시아를 상대하고, 동시에 세계 도처에서 확대되고 있는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로 인해 북한 문제 해결에 전력을 투사할 여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한미동맹의 확장억제 강화에 나서고 있지만 일각에선 면피하듯 중국이 북한 문제 해결에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촉구할 뿐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2021년 출범한 일본의 기시다 내각은 그해 10월 중의원 선거와 2022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를 바탕으로 중·러의 공세적 외교와 군사력 강화, 우크라이나 전쟁·대만해협 위기·북한 미사일의 일본 상공 통과 등을 겪으며 국가안전보장전략, 방위계획대강, 중기방위력정비계획 등 세 개의 문서 개정하여 반격능력을 확보하고, 방위비를 GDP 대비 2퍼센트 수준으로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이와 관련, 손 교수는 "향후 일본은 동아시아 국제질서 구축에 있어 더 큰 역할을 하려고 할 것이고, 중국은 이를 견제하고자 군사력 강화를 더욱 가속할 가능성이 커, 북한의 도발과 이에 대한 한국의 대응이 한 데 엮여 동북아 지역에서 군비경쟁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2-12-26 14:50: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