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토지거래허가제도가 전면 재검토 수순에 들어간다. 서울시가 토허제 실효성을 진단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해 개선 방안 마련에 나서기로 했다. 토허제는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도입된 이후 법정동 단위 규제 등으로 사유재산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는데다 인근 지역 집값은 들썩이는 풍선효과도 적지 않아 그동안 부작용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져왔다. 4일 나라장터 사전규격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난달 31일 '토지거래허가제도 운영에 대한 검토 및 분석' 연구용역 발주 계획을 공개했다. 공공분야 조달시스템 나라장터의 사전규격은 공공기관이 입찰공고 전 해당 내용을 공개해 관련 업체들의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는 제도다. 서울시는 연구용역을 통해 토허제의 효과성을 평가하고, 재산권 침해 및 다른 규제와 중복규제 등 기존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 정책방향에 반영할 예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토지거래허가구역의 가격 안정 효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이어졌고, 지속적인 구역지정에 대한 형평성 등 논란이 적지 않아 다양한 측면에서 실질적인 효과를 확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토허제 지정 전후로 해당구역과 인근지역의 부동산시장 변화 등을 분석한 후 전문가 토론회와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칠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통해 도출된 내용은 시의 운영방향과 정책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아울러 제도의 영향과 평가, 지역의 특성 및 시장 여건을 합리적으로 반영한 운영 개선방안도 도출할 예정이다. 다만, 서울시 관계자는 "구체적인 정책방향을 정해놓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행 제도가 장기간 이어질 수도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현행 토허제에 대한 재검토가 진행돼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신호용 법무법인 윤강 변호사는 "토지거래허가제도의 효과가 재산권 침해를 정당화시킬 만큼 효과가 있는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토지거래허가제는 땅 투기와 부동산 가격 급등을 억제하기 위해 국토교통부장관, 시·도지사가 특정지역을 거래규제지역으로 지정하는 제도다. 일정 면적이상 토지를 취득시 시·군·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하며 주택의 경우 2년 이상 실거주 의무가 적용돼 갭투자 등이 불가능하다. 서울시는 지난 2020년 국제교류복합지구 개발과 영동대로 복합개발사업 추진에 따라 삼성·청담·대치·잠실(잠상대청)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이 외에도 이듬해에는 부동산 과열 우려로 압구정·여의도·목동·성수동(압여목성)을 지정했다. 시는 이들 지역의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을 4년간 연장해왔고, 올 4월에도 압여목성을, 6월에는 잠상대청에 대한 제도를 1년 더 연장했다. west@fnnews.com 성석우 기자
2024-08-02 18:01:28서울상인 박문호는 청나라 상인과 인삼밀무역으로 한참 재미를 보고 있었다. 이번에도 개성에 있는 인삼거래처에서 인삼을 사서 봇짐에 담았다. 막 출발하려는 순간 관가에서 온 사람들이 갑자기 덮치는 바람에 꼼짝없이 붙잡히고 말았다. “나으리, 저는 죄가 없습니다. 단지 봇짐 안에 인삼을 담은 죄밖에 없습니다.” “자네가 서울에서 잠상을 해 온 것을 다 아는 사실이거늘 거짓말을 할 생각인가?” “아닙니다. 나으리.” “잠삼(潛蔘·관의 허가 없이 몰래 만든 홍삼)을 가지고 어디로 갔었는가?” “저희는 잠삼을 가지고 의주로 갔던 사람이옵니다.” “나 보고 그 말을 믿으라 하는가? 가까운 바다 길을 두고 먼 육로로 갈 이유가 없는데도 말인가?” 위의 이야기는 고종 3년(1866년) ‘승정원일기’에 황해감사가 요즈음 말로 시장단속에서 검거된 피의자와 나눈 신문내용이다. 은근히 대화 속에서 해상을 통한 밀무역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풍기고 있다. 의주는 지리적으로 압록강변 국경에 위치해 사신들이 드나드는 관문이었다.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 무척 중요한 곳이다 보니 국제무역이 증대되는 17세기 이후 의주지역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상인들이 크게 성장했다. 이 의주상인을 일명 만상(灣商)이라 부르는데 주로 육로를 통한 국경무역을 주도한 상인이다. 그러던 것이 18세기 초가 되면서 대청 밀무역 루트가 육로뿐만 아니라 수로로 확대된다는 점이다. 일본이 청국과 아메리카산 인삼을 직수입하는 바람에 그동안 활발히 진행되던 대일 인삼수출도 서서히 쇠퇴하고 다시 청나라로 인삼수출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19세기에 접어들어서는 ‘평양과 안주는 역로(歷路)의 요충이고 해주의 수로는 잠삼이 새는 구멍’이라 할 정도로 밀무역 루트가 변화를 보였다. 황해도 장산곶 앞 해상에서 청나라 상인이 타고 온 당선(唐船)과 접선을 해서 홍삼밀거래가 빈번하게 이뤄졌던 것이다. 최근 공·해상에서 이뤄지는 분선(分船·밀수선에서 다른 선박에 밀수품을 옮겨 싣는 행위)과 같은 해상밀수 형태가 전개된 셈이다. 이런 해상밀수에는 개성상인, 즉 송상(松商)이 개입돼 조직적인 홍삼밀무역으로 발전됐다. 이것은 육로로 통하는 길목인 송도, 만부(灣府)를 비롯해 황해·평안 감영(監營) 등에서 기찰(譏察)이 심하다 보니 밀상들이 육로보다 수로를 선호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더욱이 1866년 초에는 중국에 머물고 있는 서양상인까지 이양선(異樣船)을 타고 밀무역에 끼어드는 형편이었다. 한탕주의식 해상밀무역이 이처럼 광범위하게 이뤄지다 보니 박제가가 ‘북학의’에서 서해안에 무역항을 개설, 청과 밀무역을 양성화하자고 주창했는지 모른다. /이용득 부산세관 박물관장 ■사진설명=18세기 말 아국총도(我國摠圖)상의 황해 평안도 부근
2008-11-04 17:05:59지금의 부산 중구 용두산공원 일대는 한때 일본사람이 우리나라와 외교·무역을 하던 초량왜관이 있었다. 자그마치 36만3000여㎡(11만평)에 2m 높이의 돌담을 치고 있어 장사하러 온 일본사람도 왜관 안에 있는 개시대청(開市大廳·장이 서는 대청)에서 장사를 할 수 있을 뿐 마음대로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옛 장터와 같이 매달 3일과 8일에 동래상인이 일본상인과 상품시세를 매기고 무역거래를 했다. 청·일과의 중개무역도 바로 이곳에서 이뤄졌다. 문제는 이곳이 밀무역의 온상이었다는 점이다. 일본상인들이 동래상인과 짜고 우리 국법을 어겨가면서 밀무역을 하는 잠상(潛商·밀수꾼)들과 빈번한 거래를 해 말썽을 부렸다. 그래서 일본과 조선 정부는 잠상을 근절하기 위해 1653년(효종 4년) 계사정식(癸巳定式)을 시작으로 2차례에 걸쳐 엄한 약조를 맺었으나 잘 지켜지지 않았다. 때문에 1683년(숙종 9년) 8월 통신사로 일본에 갔던 윤지완이 이곳의 무역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대마도주와 금제조항(禁制條項) 다섯가지에 대해 조약을 체결하고 돌아왔다. 바로 그 조약이 계해제찰(癸亥制札)이며 그 내용을 간추려 비석에 한문과 일본어로 따로따로 각석(刻石·글자나 무늬 등을 돌에 새김)해 왜관 출입구에 세운 것이 약조제찰비(約條制札碑)다. 약조제찰비는 ①출입을 금한 경계 밖으로 넘어 나온 자는 크고 작은 일을 논할 것 없이 사형으로 다스린다 ②노부세(路浮稅·커미션)를 주고받은 것이 발각되면 준 자와 받은 자를 모두 사형으로 다스린다 ③개시하였을 때 각방에 몰래 들어가 암거래를 하는 자는 피차 사형으로 다스린다 ④5일마다 여러 가지 물건을 공급할 때 아전, 창고지기, 통역 등은 일본인을 붙들고 끌어내어 때리는 일이 없도록 한다 ⑤피차 범죄인은 왜관 문 밖에서 함께 형을 집행한다 등 내용을 담았다. 밀무역에 대해 극히 엄하게 다스린 나라는 고대 로마였는데 반출 금지품목을 밀반출하려다 걸리면 사형에 처했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청나라로부터 무기 밀수입을 하려다 들키는 바람에 역관이 참형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근래에 와서는 5·16 군사정부가 밀수 두목 한국필에게 사형을 선고함으로써 당시 혼란한 분위기를 틈타 활개를 치던 밀수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약조제찰비가 세워진 그 다음해, 분위기는 싸늘했다. 일본사람이 ‘인삼 629근’을 밀무역하려다 잡혀 금제조항에 따라 참형을 당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비석에 새긴 글자가 바래져 가는 것처럼 당시에도 느슨한 분위기를 타고 밀무역은 서서히 고개를 들고 활개를 쳤다. /이용득 부산세관 박물관장 ■사진설명= 지난 1978년부터 부산박물관으로 옮겨져 보존되고 있는 약조제찰비(부산시 지정 기념물 제17호)
2008-10-28 17:14: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