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봉화(경북)=정순민 기자】 'BYC'라는 말이 있다. 내의로 유명한 BYC백양이 아니라, 교통 오지로 불리는 경북 봉화, 영양, 청송 얘기다. 이들 지역에 비하면 바로 옆에 있는 경북 영주는 인구도 많고 교통도 비교적 좋은 편이지만, 이곳 역시 큰 맘을 먹어야 갈 수 있는 곳이다. 경북 영주에 간다고 하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한 부석사를 이야기한다. 그게 아니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으로 알려진 소수서원을 첫 손가락에 꼽는다. 하지만 영주에 부석사와 소수서원만 있는 건 아니다. 산과 들이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초여름, 선비의 기품이 살아있는 두 고장, 경북 영주와 봉화를 다녀왔다. ■영주, 선비촌 찍고 무섬마을로 영주는 예로부터 학문과 예(禮)를 숭상했던 선비문화의 중심지다. 그런 영주에 일종의 선비문화 테마공원이라고 할 수 있는 '선비촌'이 있는 건 매우 자연스럽다. 고려 후기 문신이자 순흥 안씨 시조인 안향(1243~1306)의 고향인 영주 순흥면 청구리 일대에 지어진 선비촌에는 선조들이 실제로 살았던 생활 공간이 그대로 복원돼 있어 그들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해우당 고택, 인동장씨종택, 두암고택, 만죽재 등 실제 건물을 옮겨 놓은 이곳에선 숙박도 가능해 하룻밤 머물며 옛 선비들의 생활상을 직접 체험해 볼 수도 있다. 자동차로 1~2분 거리에 소수서원과 또 다른 선비 테마파크 '선비세상'이 있어 함께 둘러보기에도 좋다. 자연의 정취와 고즈넉함이 살아있는 무섬마을도 영주의 DNA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라 하여 '무섬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에는 조선시대 지어진 다양한 구조의 전통가옥이 많아 조상들의 자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특히 경북 북부지역의 전형적인 양반집 구조인 'ㅁ'자형 전통가옥이 늘어서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선비촌에 재현돼 있는 무섬마을 입향 시조 종택 만죽재 실물도 이 마을에서 볼 수 있다. 무섬마을을 찾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마을로 들어가는 외나무 다리 때문이다. 수도교가 놓이기 전까지 무섬마을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 역할을 했던 이 외나무다리는 길이가 무려 150m에 달하지만 폭이 고작 30㎝에 불과해 조심조심 건너야 한다. 지금의 다리는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 예전 모습으로 재현해 놓은 것으로, 이곳에선 매년 10월이면 '무섬외나무다리축제'가 열린다. 영주 순흥면 태장리 소백산 자락에 있는 여우생태관찰원은 새로운 볼거리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국립공원공단 야생동물보전원이 운영하는 이곳은 멸종 위기 야생동물 1급 토종여우 복원 사업을 하는 곳으로, 사고를 당하거나 병든 여우를 보호하고 회복시켜 자연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소백산 토종여우는 지리산 반달곰, 설악산 산양과 함께 국립공원공단이 증식·복원 사업을 펼치고 있는 멸종위기종으로 현재 100여마리의 여우가 소백산 일대에 서식하고 있다. 다리를 다치거나 병들어 행동이 굼뜬 여우들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봉화, 정자문화관과 미슐랭 경관길 영주에 선비촌과 선비세상이 있다면 봉화에는 정자문화생활관이 있다. 음풍농월(吟風弄月)을 즐겼던 옛 선비들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정자를 지어 자연을 벗 삼아 놀았다. 선비의 고장으로 유명한 봉화에는 무려 103개 누각과 정자가 있다. 전국에서 누정이 가장 많고 또한 잘 보존되고 있는 곳이 바로 봉화다. 지난 2020년 문을 연 봉화정자문화생활관은 국내 유일의 누정 테마공원으로, 이곳에는 봉화뿐 아니라 경향 각지에 흩어져 있는 유명 정자와 누각을 실물 크기로 복원해 놓았다. 청암정, 계서당, 성암재 등 봉화에 있는 것들은 물론, 광풍각(전남 담양), 한벽루(충북 제천), 세연정(전남 보길도) 등 전국에 있는 국보급 정자들도 여기서 다 볼 수 있다. 또 이곳에는 '솔향촌'이라는 이름의 숙박시설이 있어 솔향기를 맡으며 자연 속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도 있다. 물야면 오전리에 있는 오전약수관광지도 빼놓으면 아쉬울 봉화의 명소다. 조선 성종 때 어느 보부상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 오전약수는 소수서원을 건립한 풍기군수 주세붕(1495~1554)이 즐겨 마셨다는 명수(名水)로 "마음의 병을 고치는 좋은 스승에 비길 만하다"는 칭송이 자자하다. 약수탕 주변에는 지금도 약수로 밥을 짓고 닭백숙을 끓여 파는 집들이 많은데, 약수에 철분 성분이 많아 밥과 닭이 검푸른 빛을 띈다. 한데 요즘 이곳에서 더 유명한 음식은 닭백숙이 아니라 화덕피자다. 관리사무소를 리모델링해 오픈한 봉화객주 카페에선 화덕에 갓 구워낸 피자를 파는데, 주말이나 휴일이면 긴 줄이 생길 만큼 인기라고 한다. 주 메뉴는 루꼴라를 잔뜩 얹은 비스테카 루꼴라 피자로 선비의 고장에서 맛보는 서양음식의 맛이 이색적이다. 봉화에는 이곳 사람이 아니라면 잘 모르는 비경이 있는데, 바로 미슐랭 그린가이드 한국 편에서 별 하나를 받은 35번 국도다. 흔히 '미슐랭 경관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길은 과거 퇴계 이황(1502~1571)이 젊은 날 입신을 위해 즐겨 걷던 옛길로, 자동차로 달리기 좋은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도 이름이 나있다. 특히 길 중간에 만나게 되는 범바위전망대는 봉화의 숨은 사진 명소로, 곡선으로 흐르는 낙동강 물줄기와 겹겹이 이어지는 산세가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5-06-05 18:34:42【영주·봉화(경북)=정순민 기자】 'BYC'라는 말이 있다. 내의로 유명한 BYC백양이 아니라, 교통 오지로 불리는 경북 봉화, 영양, 청송 얘기다. 이들 지역에 비하면 바로 옆에 있는 경북 영주는 인구도 많고 교통도 비교적 좋은 편이지만, 이곳 역시 큰 맘을 먹어야 갈 수 있다. 경북 영주에 간다고 하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배흘림 기둥'으로 유명한 부석사를 이야기한다. 그게 아니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으로 알려진 소수서원을 첫 손가락에 꼽는다. 하지만 영주에 부석사와 소수서원만 있는 건 아니다. 산과 들이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초여름, 선비의 기품이 살아있는 두 고장, 경북 영주와 봉화를 다녀왔다. 영주, 선비촌 찍고 무섬마을로 영주는 예로부터 학문과 예(禮)를 숭상했던 선비문화의 중심지다. 그런 영주에 일종의 선비문화 테마공원이라고 할 수 있는 '선비촌'이 있는 건 매우 자연스럽다. 고려 후기 문신이자 순흥 안씨 시조인 안향(1243~1306)의 고향인 영주 순흥면 청구리 일대에 지어진 선비촌에는 선조들이 실제로 살았던 생활 공간이 그대로 복원돼 있어 그들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해우당 고택, 인동장씨종택, 두암고택, 만죽재 등 실제 건물을 옮겨 놓은 이곳에선 숙박도 가능해 하룻밤 머물며 옛 선비들의 생활상을 직접 체험해 볼 수도 있다. 자동차로 1~2분 거리에 소수서원과 또 다른 선비 테마파크 '선비세상'이 있어 함께 둘러보기에도 좋다. 자연의 정취와 고즈넉함이 살아있는 무섬마을도 영주의 DNA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라 하여 '무섬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에는 조선시대 지어진 다양한 구조의 전통가옥이 많아 조상들의 자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특히 경북 북부지역의 전형적인 양반집 구조인 ‘ㅁ’자형 전통가옥이 늘어서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선비촌에 재현돼 있는 무섬마을 입향 시조 종택 만죽재 실물도 이 마을에서 볼 수 있다. 무섬마을을 찾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마을로 들어가는 외나무 다리 때문이다. 수도교가 놓이기 전까지 무섬마을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 역할을 했던 이 외나무다리는 길이가 무려 150m에 달하지만 폭이 고작 30㎝에 불과해 조심조심 건너야 한다. 지금의 다리는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 예전 모습으로 재현해 놓은 것으로, 이곳에선 매년 10월이면 ‘무섬외나무다리축제’가 열린다. 영주 순흥면 태장리 소백산 자락에 있는 여우생태관찰원은 새로운 볼거리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국립공원공단 야생동물보전원이 운영하는 이곳은 멸종 위기 야생동물 1급 토종여우 복원 사업을 하는 곳으로 사고를 당하거나 병든 여우를 보호하고 회복시켜 자연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소백산 토종여우는 지리산 반달곰, 설악산 산양과 함께 국립공원공단이 증식·복원 사업을 펼치고 있는 멸종위기종으로 현재 100여마리의 여우가 소백산 일대에 서식하고 있다. 다리를 다치거나 병들어 행동이 굼뜬 여우들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봉화, 정자문화관과 미슐랭 경관길 영주에 선비촌과 선비세상이 있다면, 봉화에는 정자문화생활관이 있다. 음풍농월(吟風弄月)을 즐겼던 옛 선비들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정자를 지어 자연을 벗삼아 놀았다. 선비의 고장으로 유명한 봉화에는 무려 103개 누각과 정자가 있다. 전국에서 누정이 가장 많고 또한 잘 보존되고 있는 곳이 바로 봉화다. 지난 2020년 문을 연 봉화정자문화생활관은 국내 유일의 누정 테마공원으로, 이곳에는 봉화뿐 아니라 경향 각지에 흩어져 있는 유명 정자와 누각을 실물 크기로 복원해 놓았다. 청암정, 계서당, 성암재 등 봉화에 있는 것들은 물론, 광풍각(전남 담양), 한벽루(충북 제천), 세연정(전남 보길도) 등 전국에 있는 국보급 정자들도 여기서 다 볼 수 있다. 또 이곳에는 ‘솔향촌’이라는 이름의 숙박시설이 있어 솔향기를 맡으며 자연 속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도 있다. 물야면 오전리에 있는 오전약수관광지도 빼놓으면 아쉬울 봉화의 명소다. 조선 성종 때 어느 보부상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 오전약수는 소수서원을 건립한 풍기군수 주세붕(1495~1554)이 즐겨 마셨다는 명수(名水)로 “마음의 병을 고치는 좋은 스승에 비길 만하다”는 칭송이 자자했다. 약수탕 주변에는 지금도 약수로 밥을 짓고 닭백숙을 끓여 파는 집들이 많은데, 약수에 철분 성분이 많아 밥과 닭이 검푸른 빛을 띈다. 한데 요즘 이곳에서 더 유명한 음식은 닭백숙이 아니라 화덕피자다. 관리사무소를 리모델링해 오픈한 봉화객주 카페에선 화덕에 갓 구워낸 피자를 파는데, 주말이나 휴일이면 긴 줄이 생길 만큼 인기라고 한다. 주 메뉴는 루꼴라를 잔뜩 얹은 비스테카 루꼴라 피자로 선비의 고장에서 맛보는 서양음식의 맛이 이색적이다. 봉화에는 이곳 사람이 아니라면 잘 모르는 비경이 있는데, 바로 미슐랭 그린가이드 한국 편에서 별 하나를 받은 35번 국도다. 흔히 '미슐랭 경관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길은 과거 퇴계 이황(1502~1571)이 젊은 날 입신을 위해 즐겨 걷던 옛길로, 자동차로 달리기 좋은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도 이름이 나있다. 특히 길 중간에 만나게 되는 범바위전망대는 봉화의 숨은 사진 명소로, 곡선으로 흐르는 낙동강 물줄기와 겹겹이 이어지는 산세가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5-06-04 17:11:40'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헤드카피를 내세운 카드회사 광고가 있었다. 이 카피와 나란히 놓인 이미지는 차창 밖으로 쭈욱 내민 손이다. 사람들은 통상 드라이브만으로도 힐링의 순간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속도가 주는 쾌감과 내차를 타고 훌쩍 떠날 수 있는 즉흥성·편의성 때문이다. 대지가 깨어나고 봄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는 이 봄, 자동차를 타고 드라이브 여행을 떠나보자. 때마침 한국관광공사가 '설레는 봄 드라이브 여행지' 5곳을 선정, 발표했다. ■인천 경인아라뱃길 정서진 서울 광화문을 기준으로 서쪽 끝에 인천이 있다. 이른바 정서진(正西津)이다. 정동진 일출이 희망과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면, 정서진 일몰은 낭만과 그리움을 대변한다. 해질 무렵 정서진은 드넓은 서해가 넉넉한 품을 벌리고, 주홍빛 수평선 위로 크고 작은 섬들이 그림처럼 떠있다. 조약돌 모양을 본뜬 '노을 종'과 고즈넉한 아라빛섬, 아라타워 전망대 등 볼거리도 풍성하다. 이국적인 경인아라뱃길을 끼고 달리는 길에 정서진의 노을까지 더해 낭만적인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힌다. 언제든 자동차를 멈추고 쉬었다 갈 수 있는 공원도 많다. 경인아라뱃길을 발 아래 두고 걸을 수 있는 아라마루전망대와 국내 최대 규모의 인공 폭포인 아라폭포가 특히 볼만하다. 저녁이면 알록달록한 조명이 훤히 불을 밝혀 아름다운 야경을 만들어낸다. 자동차에서 바라보는 경인아라뱃길도 아름답지만, 유람선을 타고 상쾌한 강바람을 직접 느껴보는 것도 좋다. 아이와 함께라면 녹갈색 유약을 발라 구워내는 녹청자의 매력을 엿볼 수 있는 녹청자박물관도 추천한다. ■강원 정선 연포분교 가는길 강원도 정선에서 연포마을로 가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정선읍에서 동강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신동읍 예미리에서 물레재를 넘는 길이다. 후자가 연포마을 주민들이 다니던 오래된 길로, 봄철 드라이브 코스로 제격이다. 예미역에서 출발하면 유문동, 고성터널, 물레재 등을 차례로 지나는데, 첩첩산중 오지 마을에 찾아가는 기분이다. 험준한 물레재를 넘는 길에는 동강 일대 최고봉인 백운산이 있다. 소사마을에 닿으면 동강의 상징인 뼝대(바위로 된 높고 큰 낭떠러지)가 나타난다. 세월교를 건너면 동강이 휘감는 지점에 연포마을이 폭 안겨 있다. 연포분교는 지금은 폐교돼 캠핑장으로 바뀌었지만, 푸른 동강과 웅장한 뼝대가 어우러진 모습이 여전히 아름답다. 동강 주변의 명소도 둘러보자. 정선고성리산성은 동강과 백운산 일대 산세를 감상하며 느긋하게 산책하기 좋다. 동강전망자연휴양림은 이름은 휴양림이지만, 캠핑장만 운영한다. 널찍한 전망대에 서면 백운산 아래로 흐르는 동강이 장관이다. ■충북 보은 말티재 충북 보은 말티재는 꽤 험준한 길이다. 당진영덕고속도로 속리산IC에서 국도25호선을 타고 장재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열두굽이 말티재가 나온다. 이름부터 산의 꼭대기를 의미하는 마루의 준말인 '말'과 고개를 뜻하는 '재'를 합쳤다. 속도를 즐기는 운전자도 말티재에선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말티재에선 지금 황매화 1만8000그루가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 속리산 법주사로 향하는 이 험준한 고갯길을 신라 사람도, 고려 왕건도, 조선의 세조도 걸었다. 돌고 도는 굽잇길마다 켜켜이 쌓인 역사를 알면 드라이브가 새롭다. 전망대 역할을 하는 백두대간속리산관문이 말티재가 한눈에 보이는 지점에 있다. 10년에 걸쳐 완성된 속리산테마파크도 둘러볼 만하다. 모노레일을 타고 목탁봉 정상에 오르면 속리산 풍경이 장대하게 펼쳐진다. 말티재에서 자동차로 10분 남짓이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법주사와 속리산 정이품송(천연기념물)을 만날 수 있다. 인근에 있는 난공불락의 백제 요새 삼년산성까지 보은에는 볼거리가 많다. ■경북 봉화 국도 35호선 경북 안동 도산서원에서 태백 초입에 이르는 국도35호선 구간은 세계적인 여행 정보서 '미슐랭 그린가이드'가 일찌감치 별 하나를 부여한 길이다. 그 가운데 봉화 법전~명호 구간은 꾸밈없이 아름다워 마치 계절의 전령이 숨겨둔 비밀의 장소 같다. 익숙해서 놓치고 지난 우리 산하의 비경이 잠시나마 숨가쁜 일상을 잊을 수 있게 한다. 이 길을 맘껏 즐기기 위해선 사미정계곡 부근에서 남하하는 것이 좋다. 호젓한 도로는 낙동강과 황우산, 만리산, 청량산 등이 주거니 받거니 열어놓은 여로를 지나며 새봄을 실감케 한다. 샛길로 접어들어 만나는 마을과 사람 풍경 또한 고향의 향취를 닮아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범바위전망대는 낙동강을 조망하기에 안성맞춤이고, 낙동강시발점테마공원과 예던길 선유교는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 산책로다. 또 무인 카페 '오렌지꽃향기는바람에날리고'는 이 길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 맛집'이다. 백두산 호랑이를 만나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봉화의 누정 문화를 감상할 수 있는 봉화정자문화생활관 역시 반가운 여행지다. ■경남 남해 물미해안도로 "누구나 이동의 절대적 필요성을 느낀다. 그것도 특정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필요성을." D H 로렌스가 '바다와 사르디니아'라는 책에 남긴 이 문장은 해마다 봄이면 하릴없이 '남쪽'이 떠오르는 한 가지 이유가 된다. 볕이 좋고, 산의 초목이 산뜻하며, 꽃이 가장 먼저 피는 남쪽. 남녘의 여러 도시 중 경남 남해는 이국적이면서도 소박한 아름다움이 돋보여 전국의 상춘객이 모여드는 곳이다. 남해는 또 드라이브를 즐기기에도 좋은 장소다. 지난 2010년 국토교통부가 선정한 해안누리길에 이름을 올린 물미해안도로가 있어서다. 이 길은 물건리와 미조리를 잇는 약 15㎞의 드라이브 코스로, 일부 가파른 암벽을 끼고 도는 해안도로와 굽이진 길을 지나 망망대해를 배경으로 마주하는 크고 작은 섬이 인상적이다. 초전몽돌해변과 항도몽돌해변, 남해보물섬전망대, 남해 물건리 방조어부림(천연기념물) 등 스치고 만나는 곳이 여행의 재미를 더한다. 금산 보리암을 비롯해 남해보물섬전망대, 남해독일마을 등도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3-03-30 18:43:17'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헤드카피를 내세운 카드회사 광고가 있었다. 이 카피와 나란히 놓인 이미지는 차창 밖으로 쭈욱 내민 손이다. 사람들은 통상 드라이브만으로도 힐링의 순간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속도가 주는 쾌감과 내차를 타고 훌쩍 떠날 수 있는 즉흥성·편의성 때문이다. 대지가 깨어나고 봄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는 이 봄, 자동차를 타고 드라이브 여행을 떠나보자. 때마침 한국관광공사가 '설레는 봄 드라이브 여행지' 5곳을 선정, 발표했다. ■경인아라뱃길 정서진 드라이브 코스 서울 광화문을 기준으로 서쪽 끝에 인천이 있다. 이른바 정서진(正西津)이다. 정동진 일출이 희망과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면, 정서진 일몰은 낭만과 그리움을 대변한다. 해질 무렵 정서진은 드넓은 서해가 넉넉한 품을 벌리고, 주홍빛 수평선 위로 크고 작은 섬들이 그림처럼 떠있다. 조약돌 모양을 본뜬 ‘노을 종’과 고즈넉한 아라빛섬, 아라타워 전망대 등 볼거리도 풍성하다. 이국적인 경인아라뱃길을 끼고 달리는 길에 정서진의 노을까지 더해 낭만적인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힌다. 언제든 자동차를 멈추고 쉬었다 갈 수 있는 공원도 많다. 경인아라뱃길을 발 아래 두고 걸을 수 있는 아라마루전망대와 국내 최대 규모의 인공 폭포인 아라폭포가 특히 볼만하다. 저녁이면 알록달록한 조명이 훤히 불을 밝혀 아름다운 야경을 만들어낸다. 자동차에서 바라보는 경인아라뱃길도 아름답지만, 유람선을 타고 상쾌한 강바람을 직접 느껴보는 것도 좋다. 아이와 함께라면 녹갈색 유약을 발라 구워내는 녹청자의 매력을 엿볼 수 있는 녹청자박물관도 추천한다. ■동강 샹그릴라, 정선 연포분교 가는 길 강원도 정선에서 연포마을로 가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정선읍에서 동강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신동읍 예미리에서 물레재를 넘는 길이다. 후자가 연포마을 주민들이 다니던 오래된 길로, 봄철 드라이브 코스로 제격이다. 예미역에서 출발하면 유문동, 고성터널, 물레재 등을 차례로 지나는데, 첩첩산중 오지 마을에 찾아가는 기분이다. 험준한 물레재를 넘는 길에는 동강 일대 최고봉인 백운산이 있다. 소사마을에 닿으면 동강의 상징인 뼝대(바위로 된 높고 큰 낭떠러지)가 나타난다. 세월교를 건너면 동강이 휘감는 지점에 연포마을이 폭 안겨 있다. 연포분교는 지금은 폐교돼 캠핑장으로 바뀌었지만, 푸른 동강과 웅장한 뼝대가 어우러진 모습이 여전히 아름답다. 동강 주변의 명소도 둘러보자. 정선고성리산성은 동강과 백운산 일대 산세를 감상하며 느긋하게 산책하기 좋다. 동강전망자연휴양림은 이름은 휴양림이지만, 캠핑장만 운영한다. 널찍한 전망대에 서면 백운산 아래로 흐르는 동강이 장관이다. 휴양림에서 내려오면 가수리까지 동강을 끼고 쌩쌩 달릴 수 있다. ■열두굽이 봄을 깨워 달리는 보은 말티재 충북 보은 말티재는 꽤 험준한 길이다. 당진영덕고속도로 속리산IC에서 국도25호선을 타고 장재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열두굽이 말티재가 나온다. 이름부터 산의 꼭대기를 의미하는 마루의 준말인 ‘말’과 고개를 뜻하는 ‘재’를 합쳤다. 속도를 즐기는 운전자도 말티재에선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말티재에선 지금 황매화 1만8000그루가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 속리산 법주사로 향하는 이 험준한 고갯길을 신라 사람도, 고려 왕건도, 조선의 세조도 걸었다. 돌고 도는 굽잇길마다 켜켜이 쌓인 역사를 알면 드라이브가 새롭다. 전망대 역할을 하는 백두대간속리산관문이 말티재가 한눈에 보이는 지점에 있다. 10년에 걸쳐 완성된 속리산테마파크도 둘러볼 만하다. 모노레일을 타고 목탁봉 정상에 오르면 속리산 풍경이 장대하게 펼쳐진다. 말티재에서 자동차로 10분 남짓이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법주사와 속리산 정이품송(천연기념물)을 만날 수 있다. 인근에 있는 난공불락의 백제 요새 삼년산성까지 보은에는 볼거리가 많다. ■국도 35호선 봉화 법전~명호 구간 경북 안동 도산서원에서 태백 초입에 이르는 국도35호선 구간은 세계적인 여행 정보서 '미슐랭 그린가이드'가 일찌감치 별 하나를 부여한 길이다. 그 가운데 봉화 법전~명호 구간은 꾸밈없이 아름다워 마치 계절의 전령이 숨겨둔 비밀의 장소 같다. 익숙해서 놓치고 지난 우리 산하의 비경이 잠시나마 숨가쁜 일상을 잊을 수 있게 한다. 이 길을 맘껏 즐기기 위해선 사미정계곡 부근에서 남하하는 것이 좋다. 호젓한 도로는 낙동강과 황우산, 만리산, 청량산 등이 주거니 받거니 열어놓은 여로를 지나며 새봄을 실감케 한다. 샛길로 접어들어 만나는 마을과 사람 풍경 또한 고향의 향취를 닮아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범바위전망대는 낙동강을 조망하기에 안성맞춤이고, 낙동강시발점테마공원과 예던길 선유교는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 국도35호선의 대표적인 산책로다. 또 무인 카페 ‘오렌지꽃향기는바람에날리고’는 이 길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 맛집’이다. 백두산 호랑이를 만나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봉화의 누정 문화를 감상할 수 있는 봉화정자문화생활관 역시 반가운 여행지다. ■미조항서 물건항까지, 남해 물미해안도로 “누구나 이동의 절대적 필요성을 느낀다. 그것도 특정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필요성을.” D H 로렌스가 '바다와 사르디니아'라는 책에 남긴 이 문장은 해마다 봄이면 하릴없이 ‘남쪽’이 떠오르는 한 가지 이유가 된다. 볕이 좋고, 산의 초목이 산뜻하며, 꽃이 가장 먼저 피는 남쪽. 남녘의 여러 도시 중 경남 남해는 이국적이면서도 소박한 아름다움이 돋보여 전국의 상춘객이 모여드는 곳이다. 남해는 또 드라이브를 즐기기에도 좋은 장소다. 지난 2010년 국토교통부가 선정한 해안누리길에 이름을 올린 물미해안도로가 있어서다. 이 길은 물건리와 미조리를 잇는 약 15㎞의 드라이브 코스로, 일부 가파른 암벽을 끼고 도는 해안도로와 굽이진 길을 지나 망망대해를 배경으로 마주하는 크고 작은 섬이 인상적이다. 초전몽돌해변과 항도몽돌해변, 남해보물섬전망대, 남해 물건리 방조어부림(천연기념물) 등 스치고 만나는 곳이 여행의 재미를 더한다. 또 물미해안도로 주변에 있는 금산 보리암을 비롯해 남해보물섬전망대, 남해독일마을 등도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3-03-28 15:5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