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9일(현지시간) 자신의 고향인 미국 조지아주 플레인스에 안장된 지미 카터전 미 대통령이 퇴임후 43년간 거주했던 집이 화제다. 지난 2018년 시세가 16만7000만달러(약 2억4300만원)로 나타난 이 주택은 1961년 카터가 직접 지었으며 그는 이곳에 있는 2년전 먼저 타계한 부인 로절린 여사의 묘 옆에 안장됐다. 카터는 지난 1980년 대선에서 재선에 실패한후 애틀랜타에서 자동차로 2시간반 거리에 위치한 이 주택에서 지내왔다. 경제전문방송 CNBC는 방 2개짜리 주택의 가격은 퇴임후에도 그를 지켜준 백악관 경호대의 방탄 차량 보다도 더 싸다고 보도했다. 온라인 부동산 정보사이트 질로우에 따르면 현재 시세는 23만9700달러(약 3억4950억원)로 조지아주 평균 중간 가격인 32만6280달러(약 4억7600원)에 못미친다. 퇴임후에도 검소한 생활을 했던 카터는 주말에는 이웃들과 같이 종이 접시에 음식을 담아 먹고 요구르트는 직접 만들었다. 옷도 1달러 저가 매장에서 종종 구매했으며 비행기 이동도 자주 일반 항공편을 이용했다. 퇴임후 전직 대통령으로 1년에 받는 연금 24만6400달러(약 3억6000만원) 외에 주로 출간한 저서가 소득원이었다. 그는 회고록 외에 어린이 책등 66권을 출간했다. 카터는 연설로 받을 수 있는 돈을 대부분 사양했으며 받을 경우는 자신의 자선 재단에 주로 기부했다. 카터는 대통령 퇴임후의 활동으로 더 존경을 받았으며 모범적인 삶을 보였다. 카터와 달리 다른 전직 대통령들은 큰 부를 쌓고 고가의 주택을 구매하곤 했다. 퇴임후 저서 출판과 넷플릭스 계약으로 거액을 챙긴 버락 오바마 부부는 부촌인 매사추세츠 해안의 마서스비니어드와 워싱턴DC에 각각 1200만달러(약 176억원), 810만달러(약 118억원)짜리 주택을 구매했다.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은 순자산이 1000만달러(약 146억원)로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추정하고 있으며 퇴임 당시 빚 1600만달러를 지었던 빌 클린턴은 연설과 책 출간으로 빠르게 갚아 퇴임 첫해에만 연설 57회로 1370만달러를 거뒀다. 클린턴 부부는 1999과 2016년에 미 뉴욕주 채퍼콰 주택 두채를 총 280만달러(약 40억8600만원) 어치 매입했으며 2000년에도 수도 워싱턴DC에도 285만달러(약 42억원) 짜리 주택을 샀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퇴임 직후 2년동안 1500만달러를 거뒀으며 텍사스주 코로퍼드에 645만㎡ 면적의 목장을 주 거주지로 지내왔다. 이외 2009년 퇴임후 댈러스에 방 4개짜리 250만달러(약 36억원) 주택을 구매했다. 오는 20일 다시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은 억만장자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 답게 현재 주 거주지인 대지 6만8000㎡ 면적의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의 시세가 지난 2023년 포브스지 기준으로 3억2500만달러(약 4744억원)로 알려졌다. jjyoon@fnnews.com 윤재준 기자
2025-01-10 09:04:10[파이낸셜뉴스]"녹고 있는 원자로 속에서 89초 동안 견뎠고, 재임 기간 첫 흑인 여성 장관을 임명하고, 57명의 소수인종 판사와 41명의 여성 판사를 임명한 병원에서 태어난 첫 대통령…" 지난해 12월 29일(현지시간) 100세를 일기로 타계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여러 신기록들을 세운 전임들과 다른 '특별한' 미국 대통령이었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지미 카터에 관한 놀랄만한 11가지 사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카터 전 대통령에 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들을 전했다. 해군 중위 시절, 캐나다 원전 폭발 처리 위해 녹고 있는 원자로에서 89초 동안 작업 그는 해군 중위로 복무하던 1952년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원자로 폭발 사고 당시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는 긴급 임무에 투입된 일이 있었다. 당시 28세였던 카터는 보호장비를 착용한 채 원자로에 들어가 89초 동안 있었다. 일반인이 1년 동안 흡수하는 양과 같은 방사선에 피폭된 카터 전 대통령은 6개월 동안 소변에서 방사능 양성 반응이 나왔다고 나중에 밝혔다. 진보주의자인 그는 임기 동안 57명의 소수인종 판사와 41명의 여성 판사를 임명했다. 이는 그 이전 미 대통령들의 소수인종 및 여성 판사 임명 횟수를 모두 합한 것보다 많았다. 최초의 흑인 여성 장관도 그의 내각에서 탄생했다.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에 이어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퍼트리샤 로버츠 해리스였다. 해군사관학교를 나와 해군 장교를 지냈던 카터 전 대통령은 신기술과 과학에 대해서 앞선 혜안이 있었다. 임기 3년 차인 1979년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백악관 웨스트윙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재임 당시 이란 정권 교체로 인한 석유 수급 불안정으로 고유가와 인플레이션에 시달린 그는 외국산 석유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계획을 세우며 그 의지를 보여줬다. 이 태양광 패널은 후임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철거돼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등으로 보내졌다. 2000년까지 미국 에너지 수요량의 20%를 태양광으로 전환하겠다는 그의 꿈도 실현되지 못했다. 선거운동 비행기에서 지상과 컴퓨터로 연결해 선거운동 한 '얼리 어답터' 해군을 나와 가업인 땅콩 농장을 운영하던 그가 1976년 대선 선거운동을 할 때 이용하던 비행기 이름은 '땅콩 1호기'(Peanut One)였다. 이 비행기에는 3만피트(9144m) 상공에서도 지상과의 연결 하에, 선거 관련 전략을 짤 수 있도록 컴퓨터 장비가 설치돼 있었다. 당시로는 첨단이었다. WP의 정치부 기자였던 데이비드 브로더는 이 컴퓨터에 대해 "애틀랜타 선거운동 본부의 일정과 미디어, 직원들과 정교한 회로망으로 연결돼 있다"라고 전했다. 본명이 '제임스 얼 카터 주니어'(James Earl Carter Jr.)인 그는 실제 이름 '제임스'가 아닌 '지미'(Jimmy)라는 별칭으로 취임 선서를 한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빌 클린턴(본명 윌리엄 제퍼슨 클린턴)·조 바이든(본명 조세프 로비니트 바이든 주니어) 대통령도 취임 이후 '빌'과 '조' 등 별칭으로 불렸지만, 취임 선서 때는 본명을 사용했다. 부인 로절린 여사와의 결혼 생활은 역대 미 대통령의 혼인 지속 기간 중 가장 길었다. 무려 77년간 부부로 지냈다. 로절린 여사와 1945년에 처음 만난 카터 전 대통령은 이듬해 결혼했고, 지난해 로절린 여사가 향년 96세로 작고할 때까지 부부생활을 유지했다. 로절린 여사는 결혼 당시 카터 전 대통령보다 3살 어린 18세였다. 77년 동안의 결혼 생활, 동성 결혼은 찬성하면서도 낙태 반대한 독실한 기독교인 퇴임 후 고향인 조지아주 플레인스로 돌아온 카터 부부의 침실 2개짜리 목장 주택은 집 밖에 세워진 비밀경호국(SS)의 방탄 차량보다 가격이 저렴했다. 그는 취임 4개월 후인 1977년 5월 런던 방문 당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버킹엄궁에서 주최한 만찬에 참석해 여왕의 모친 엘리자베스 대비의 입술에 작별 입맞춤을 했다는 영국 언론의 보도가 나오면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대비는 "남편 사후에 뻔뻔스럽게 내 입술에 입맞춤을 한 사람은 그(카터)가 유일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회고록에서 이를 부인하면서 작별 입맞춤을 대비의 뺨에 가볍게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보주의자이면서도 독실한 기독교인이던 카터는 낙태 문제에서는 보수적이었다. 그는 1973년 연방 차원의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 개인적으로 낙태를 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퇴임 후에는 동성 결혼에 찬성하기도 했다. 그는 2015년 미 대법원이 동성결혼 합헌 판정을 내린 뒤 인터뷰에서 "예수님도 동성결혼을 승인하실 거라 믿는다"라고 말했다. 그가 1982년 세운 카터센터는 4년 뒤부터 아프리카 기니벌레 박멸 운동을 펼쳐 이를 박멸하는 데 공을 세웠다. 기니 애벌레는 고인 물속에 있다가 인체에 들어오면 극심한 통증을 동반하는 궤양을 만든다. 병원에서 태어난 첫 미국 대통령, 기니벌레 박멸 운동 등 성과 카터 전 대통령은 1977년 취임 직후 엘비스 프레슬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회상한 적이 있다. 그는 당시 통화에 대해 "그(프레슬리)는 완전히 취해 있었고,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같은 해 8월 프레슬리가 별세하자 그는 성명에서 "20여년 전 그는 전례 없는 영향력을 지니고 등장했고, 아마 그와 동일한 영향력을 지닌 이는 없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그는 또 병원에서 태어난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그는 1924년 10월 1일 조지아주 플레인스의 60병상 규모의 병원에서 태어났다. 20세기 초반에는 거의 모든 출산이 가정에서 이뤄졌는데, 그가 병원에서 태어난 것은 모친인 릴리안이 그 병원의 간호사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편, 그의 장례식은 1월 9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립성당에서 거행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부고 성명을 내고 카터 전 대통령의 장례일을 국가 애도일로 지정했다. june@fnnews.com 이석우 기자
2024-12-31 10:17:06[파이낸셜뉴스]제39대 미국 대통령을 역임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조지아주 고향 마을 플레인스 자택에서 호스피스 돌봄을 받던 중 별세했다. 향년 100세. 카터 전 대통령이 이날 자택에서 가족들이 있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카터재단은 성명을 통해 밝혔다. 고인은 이날 오후 오후 3시45분께 별세했다고 미국 현지 매체 애틀랜타저널컨스티튜션(AJC)는 전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과거 암 투병을 했으며 이후에도 여러 가지 건강 문제를 겪었다. 지난해 2월에는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가정에서 호스피스 완화 의료 서비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2022년 10월 98번째 생일을 맞으면서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최장수 기록을 세웠다. 자원봉사 등 평화 활동 등으로 퇴임 후에 빛난 미국 대통령으로 평가 재임 기간 미국 안팎에서 어려움을 겪고 재선에도 실패했지만, 퇴임 후 평화 해결사로 활약해 '가장 위대한 미 전직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며 한반도와도 오랫동안 깊은 인연을 맺었다. 카터 전 대통령은 1962년 조지아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경쟁자가 부정선거로 낙마, 극적으로 의원직을 거머쥐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이어 조지아주 지사를 거쳐 1976년 대선에서 단기간에 인지도를 높이며 민주당 후보로 선출됐고, 현직인 공화당 소속 제럴드 포드 당시 대통령을 누르며 대통령이 됐다. 재임 기간 대표적 치적으로는 '캠프데이비드 협정'으로 불리는 중동 평화 협상 중재 성공이 꼽힌다. 1978년 9월 안와르 사다트 당시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를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로 초청, 협정 체결을 주선했다. 이 역사적인 협정은 이듬해 3월 양국이 적대행위를 끝낸다는 조약 체결로 이어져 수십년간 이어져 온 중동 갈등을 막고 중동 평화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태그플레이션 등 경제 정책 및 인권 외교 실패 비판 속에 연임 실패 그러나 1970년대 경기 침체에도 물가가 오르고 실업률이 올라가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잡지 못했다는 비판에 시달렸고, 인권을 앞세운 도덕주의 외교 정책도 발목을 잡았다.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후 강경파 대학생들이 미국 대사관을 점거, 대사관 직원 등 52명을 444일간 억류한 사건이 대표적 외교 실패 사례로 거론된다. 당시 특수부대를 투입한 구출 작전이 미국인 8명만 숨진 채 실패로 끝나면서 지지율은 추락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1980년 대선에서 '위대한 미국' 건설을 내건 공화당의 레이건 후보에게 대패해 연임에 실패, 단임 대통령으로 그치게 됐다. 그러나 퇴임 이듬해 세운 카터 센터를 바탕으로 평화·민주주의 증진과 인권 신장, 질병 퇴치를 위한 활동에 나서며 재임 기간 때보다 퇴임 후 더 빛나는 전직의 시대를 구가했다. 한국 인권 상황 문제 삼아 주한미군 철수 시도 등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갈등 퇴임 후 더 많은 인기를 누리며 '가장 위대한 전직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도 얻었다. 그는 열악한 주거 환경에 놓인 사람들의 주거 문제를 돕는 봉사단체 '해비타트 프로젝트'(사랑의 집짓기)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카터 전 대통령은 한반도와도 인연이 깊은 대표적인 미국 대통령으로 꼽힌다. 박정희 군사정권 하의 한국 인권 상황을 문제 삼아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대선공약으로 제시, "내정간섭을 중단하라"고 반발한 박정희 정권과 각을 세웠다. 그는 2018년 3월 펴낸 회고록 '지미 카터'에서 주한미군 철수, 한국의 핵무장 등을 둘러싸고 박 전 대통령과 충돌한 1979년 6월 방한 당시 한미정상회담을 두고 "동맹국 지도자와 가진 토론 가운데 아마도 가장 불쾌한 토론"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퇴임 후인 1994년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탈퇴를 선언한 '1차 북핵 위기' 때 직접 평양으로 날아가 김일성 주석과 담판, 북미 협상의 물꼬를 트는 등 평화의 사절로 나섰다. 이후 미국인 억류 사안이 불거진 2010년 8월, '디 엘더스' 소속 전직 국가수반 3명과 함께 한 2011년 4월 등 총 3차례 방북을 했다. 흑색종과 낙상 등 건강 문제로 고생, 연명 치료 중단 속에 평화로운 임종 이외에도 에티오피아, 수단, 아이티, 세르비아, 보스니아 등 국제 분쟁 지역에서 평화적 해결책을 찾기 위해 중재자로 나섰다. 이런 공로로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노년기에 여러 건강 문제를 겪었다. 2015년 8월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이 간과 뇌로 전이됐다는 진단을 받았다가 그해 말 완치됐다고 밝혔다. 이후에도 합병증을 앓았으며 2019년에는 낙상으로 뇌 수술을 받기도 했다. 1946년 로잘린 여사와 결혼 한 그는 2021년 7월10일 결혼 75주년 기념식에서 평생 산전수전을 함께 겪어온 아내에게 "(결혼생활 내내 내게) 꼭 맞는 여성이 돼 줘서 특별한 감사를 표하고 싶다. 정말 많이 사랑한다"라고 말했다. 로잘린 여사는 지난해 11월 향년 9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카터 전 대통령 부부 슬하에는 4명의 자녀가 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생전 워싱턴DC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고향 플레인스에 있는 집 앞에 묻히고 싶다고 2006년 미 의회방송 C스팬과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june@fnnews.com 이석우 기자
2024-12-30 07:04:38[파이낸셜뉴스] 제39대 미국 대통령을 역임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호스피스 돌봄을 받던 중 세상을 떠났다. 향년 100세. 카터 전 대통령은 이날 별세했다고 미국 현지 매체 애틀랜타저널컨스티튜션(AJC)을 인용해 CNN 등이 보도했다. 1924년 10월 1일생으로 고령이던 카터 전 대통령은 과거 암 투병을 했고 여러 가지 건강 문제를 겪었다. 지난 2월에는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가정에서 호스피스 완화 의료 서비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미국 안팎에서 어려움을 겪고 재선에도 실패했지만, 퇴임 후 국제 평화 해결사로 활약해 '가장 위대한 미 전직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며 한반도와도 오랫동안 깊은 인연을 맺었다. june@fnnews.com 이석우 기자
2024-12-30 06:25:58[파이낸셜뉴스] 암 투병 중이던 지미 카터(98) 전 대통령이 암 집중 치료보다 고향에서 삶의 마지막을 준비키로 했다. 카터 전 대통령이 이끌어온 인권단체 '카터센터'는 18일(현지시간) 성명에서 카터 전 대통령이 가정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암 환자 등 중증 말기 환자를 치료하기보다 고통을 경감해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에 집중하는 의료서비스다. 남은 시간을 조지아주 고향 마을 '플레인스'에서 가족과 함께 여생을 보내겠다는 계획이다. 카터 전 대통령은 흑색종(피부암 일종)이 간·뇌까지 전이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작년 10월 98번째 생일을 맞이한 카터 전 대통령은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최장수 기록을 쓰고 있다. 1924년 플레인스에서 태어난 카터 전 대통령은 1960년 민주당 소속 주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1년에는 주지사에 당선됐고 그 5년 뒤인 1976년 대선에서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을 제치고 미국의 제39대 대통령 뽑혔다. 1978년 '캠프데이비드 협정'은 카터 행정부의 대표적인 외교 성과로 꼽힌다. 카터 행정부가 중재한 이 협정으로 이집트 정부는 이스라엘을 독립된 국가로 인정했다. 이 협정은 수십 년 간 이어진 중동의 갈등을 억제하는 데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아이티, 보스니아 등 국제 분쟁 지역에서 평화적 해결책을 찾기 위해 외교력을 발휘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오랜 기간 암과 싸웠다. 2015년에는 간암 발병 사실을 알린 지 7개월 만에 '완치'를 선언하기도 했다. 당시 실험적 단계였던 '면역 항암제'를 투여한 결과였다. 그러나 결국 피부암이 다시 발병하고, 다른 장기로 전이까지 되면서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선택하게 됐다. khj91@fnnews.com 김현정 기자
2023-02-19 21:35:33[파이낸셜뉴스] 최장수 미국 전 대통령 타이틀을 갖고 있는 지미 카터가 1일(이하 현지시간) 98세 생일을 맞았다. CNN은 카터가 미 역사상 가장 장수한 전 대통령이라면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 H 부시 전 대통령이 2018년말 94세로 사망하면서 그가 최장수 전 대통령이 됐다고 전했다. 카터센터 대변인은 카터 전 대통령이 생일을 맞은 이날 자택에서 조용히 자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신 카터센터는 그의 생일을 축하하고, 업적을 기리기 위한 다양한 온라인 행사들을 개최할 계획이다. 카터는 대통령 재임 시절에는 지지율도 낮고, 온갖 비판에 시달리며 무능한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썼지만 퇴임 뒤 국제사회 갈등을 조정하고, 빈곤 퇴치에 앞장서는 등 활동이 두드러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는 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주한 미군 철수를 들고 나와 한반도를 격랑으로 몰아 넣기도 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공식 활동은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오랜 정치적 동기인 민주화에 대한 목소리는 낮추지 않고 있다. 전세계 민주주의 위기에 관해 자주 언급하고 있다. '땅콩 농부' 출신인 카터는 정치에 입문하기 전 미 해군에서 복무했고, 중위로 예편했다. 조지아 주지사를 거쳐 1977~1981년 미 대통령을 지냈다. 민주당 대통령으로 그는 재임 시절 인권을 최우선 정책 순위에 올려뒀다. 재임 시절 가장 큰 업적은 미 워싱턴 인근 캠프데이비드에서 당시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메나힘 베긴 이스라엘 총리 사이의 협상을 중재해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합의'를 이끈 것이다. 카터가 재임 시절인 1978~1979년 이란 혁명이 일어나 그는 정치적으로 상당한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이때문에 현직 대통령으로 연임에 실패한 몇 안되는 대통령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카터는 되레 퇴임 후 빛이 났다. 인권 목소리를 더 높였고, 아내 로절린과 함께 비영리재단인 카터센터를 설립했다. 세계 평화와 공중보건을 증진한다는 목표로 만들어진 단체다. 카터센터는 지난 수십년간 각국 선거를 모니터링해 민주주의를 고양하고, 개발도상국들의 질병을 줄이는데 공을 세웠다. 또 카터는 저소득 국가에서 무료로 집을 지어주는 '인류애를 위한 주거(해비태트)' 사업에 오랫동안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 있다. 그는 2002년 전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카터는 병마와의 싸움에서 이긴 인물이기도 하다. 2015년 뇌종양을 극복했다. 그러나 2019년 뇌압이 올라가 이를 낮추는 수술을 받는 등 나이가 먹으면서 건강에 이상 신호가 계속 나타나고 있다. 카터는 건강이 예전만 못해 수십년간 이어왔던 자신의 고향 조지아주 플레인스의 마라나타침례교 주일학교 교사직을 그만두기도 했다. 카터의 아내 로절린 여사는 지난달 95세 생일을 맞았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2022-10-02 04:19:23[파이낸셜뉴스] 지미 카터(95) 전 대통령이 이마에 14바늘을 꿰메는 수술을 받고도 봉사활동 현장에 등장했다. 7일(현지시간) 미국 타임즈 등은 카터 전 대통령이 테네시주 내쉬빌 집짓기 자원봉사 현장에 이마에 붕대를 감은 채 자리했다고 보도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전날 자택에서 쓰러져 이마에 14바늘이나 되는 봉합 처치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카터 전 대통령은 이날 연단에 올라 "너의 삶이 평화와 기쁨, 감사로 충만하지 않다면, 그건 너의 잘못이다"라며 신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었지만 기본적인 결정은 우리 각자가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내 자신이 어떤 종류의 인간이 되도록 스스로 선택할 것인지가 중요하다”라고 연설했다. 이어 그는 “모든 사람의 한명 한명은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완전히 성공한 인생일 수 있다"라며 “예수는 가난하고 젊어서 죽었고 가장 가까운 친구들로부터 버림받았는데도 "하느님의 뜻에 따랐기 때문에 완벽한 삶이었다"라고 강조했다. 카터 전 대통령의 연설에 자원봉사 참가자들은 박수 갈채를 보냈다. 한편 이날 봉사 현장에는 카터 전 대통령 부부를 비롯해 빌리 테네시 주지사 부부, 가수 가스 브룩스, 에릭 파슬레이 등이 참석했다. 에릭 파슬레이는 카터 전 대통령에게 “술집에서 주먹다짐을 하고서도 봉사활동을 하러 오다니, 당신을 죽을만큼 사랑한다”라며 농을 쳤다. #지미카터 #대통령 #봉사 hoxin@fnnews.com 정호진 기자
2019-10-08 15:09:02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대북문제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22일(현지시간) 마켓워치 등 외신에 따르면 카터 전 대통령은 이날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도와 북한과의 외교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 언제든 가능하다"고 밝혔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원한다면 북한을 직접 방문해 긴장관계를 해소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카터 전 대통령은 "나 역시 현 상황이 두렵다"면서도 "북한이 무엇을 할 지 모르겠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북한, 특히 김정은에 대한 중국의 영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다. 내가 아는 한 그는 중국에 간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또 카터 전 대통령은 김정일 보다 김정은이 예측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더 우려된다고도 언급했다. 그는 허버트 맥마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필요하다면 내가 도와줄 것'이라는 의사를 표명했지만 여전히 트럼프 행정부 측으로부터 답변이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한편, 카터 전 대통령은 지난 1994년 제 1차 북한 핵 위기 당시에 평양을 방문해 중재 역할을 했으며, 2010년에도 방북해 북한에 억류돼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은 아이잘론 말리 곰즈를 미국으로 데려오기도 했다. nvcess@fnnews.com 이정은 기자
2017-10-23 10:32:57▲ 지미 카터 암 완치는 아냐/사진=YTN뉴스캡처지미 카터 암 완치는 아냐 암이 완치된 것으로 알려졌던 지미 카터(91) 미국 전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암 완치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카터 전 대통령은 이날 고향 조지아 주 플레인스에서 온라인 연예매체 ‘엔터테인먼트 투나잇’과 한 인터뷰에서 “의사들이 (새로운) 암을 찾아낸 것은 아니지만, 종종 뇌를 포함한 부위에 암이 돌아온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의사들이 더 이상 필요가 없다고 할 때까지 치료를 계속할 것”이라며 “면역체계는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앞서 카터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초 머라나타 침례교회에서 열린 ‘카터 성경교실’에서 암의 완치를 공개로 선언했다고 미 언론은 전한 바 있다. /news@fnnews.com 온라인편집부 김선정 기자
2016-01-27 10:02:36▲ 지미 카터 암 완치는 아냐 지미 카터 암 완치는 아냐 지미 카터 미국 전 대통령이 여전히 암 치료 중이라고 말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고향 조지아 주 플레인스에서 온라인 연예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암을 찾아낸 것은 아니지만, 종종 뇌를 포함한 부위에 암이 돌아온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의사들이 더이상 필요가 없다고 할 때까지 치료를 계속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앞서 미 언론은 카터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초 머라나타 침례교회에서 열린 '카터 성경교실'에서 암의 완치를 공개로 선언했다고 보도했다. /news@fnnews.com 온라인편집부 한인우 기자
2016-01-27 08:1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