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 정기공연 '탄호이저'가 관객들의 환호 속에 막을 내렸다. '탄호이저'는 베누스와 엘리자베트로 상징되는 육체적 쾌락과 영적 사랑 사이의 갈등을 깊이 탐구한 작품이다. 이번에는 '탄호이저'에서 한 축을 담당한 볼프람의 시각으로 이 작품을 바라보면 어떨까. 그는 엘리자베트를 신앙과 구원의 상징으로, 베누스를 일시적인 쾌락의 허상으로 바라봤다. 탄호이저와 달리 이들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이 아니라 엘리자베스의 헌신적인 사랑만이 구원의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여겼다. 그의 신념은 신의 은총과 사랑을 통해서 구원될 수 있다는 기독교적 진리와 닿아있다. 또 음악과 시는 인간의 영혼을 고양시켜 구원으로 가는 도구로 봤다. 그런 볼프람은 엘리자베트를 사랑했다. 그의 사랑은 헌신적이고 순수한 사랑이었다. 이번 프로덕션에서 볼프람은 엘리자베스를 안고 싶어 하고 쓰다듬으려는 제스처를 취하다가도 멈췄다. 그 역시 인간의 본능을 갖고 있지만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다. 엘리자베트가 탄호이저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묵묵히 그녀의 곁을 지키고 탄호이저가 다시 돌아오길 바라고 기도한다. 특히 오페라 마지막 장면에서 엘리자베트가 탄호이저를 위해 기도하다 죽음을 맞는 장면에서 볼프람은 그 희생을 깊이 받아들이고 엘리자베트의 영혼이 구원받기를 바라는 노래를 부른다. 결국 볼프람의 입장에서 '탄호이저'는 인간의 죄와 신성한 사랑의 궁극적 힘을 상징하며 예술과 신앙을 통해 구원의 길을 찾는 여정으로 해석된다. 특히나 볼프람에 관해서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탄호이저' 속 음유시인들은 대부분이 실재인물인데, 볼프람은 그 당시 유명한 시인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파르지팔(Parzival)'이 그의 작품이다. 하지만 이런 훌륭한 작품을 쓴 천재 작가가 문맹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볼프람은 자신이 글을 읽지 못한다고 주장했는데, 다른 학문적 저술을 읽지 않고 오로지 그의 상상력과 구술을 통해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이 그를 다른 시인들과 구분 짓는 독특한 인물로 만들고, 중세 궁정의 음유시인으로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게 했다. 이 일화는 오페라 속 볼프람 캐릭터에게도 상징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오페라 속에서 볼프람은 탄호이저에게 단순한 신앙과 도덕적 충고를 넘어서 인간의 내적 갈등을 이해하고 그것을 예술과 음악을 통해 승화시키려 한다. 그가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예술적 통찰력을 가진 시인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며 그의 문맹에도 불구하고 깊은 지혜와 영적 통찰을 지닌 인물로 볼 수 있게 한다. 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
2024-10-28 18:28:02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는 중세 독일에 실존했던 음유시인 탄호이저와 독일에 내려오던 전설을 음악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제작 과정에서 수많은 에피소드와 역사를 품고 있는 음악적 걸작이다. 이번 글에선 여신 베누스(비너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 한다. 베누스는 고대 로마신화에서 사랑과 미의 여신으로 모성, 아름다운 여성성의 상징이다. 바그너의 '탄호이저'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매혹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녀는 탄호이저를 자신의 마법동굴, 베누스베르크로 유혹해 쾌락과 무한한 사랑을 제공한다. 이 장면은 관객들에게 장식적임과 동시에 강렬한 베누스의 매력을 전달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일화는 1861년 파리 초연 때 발생했다. 당시 베누스 역을 맡은 가수에게 등장 장면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도록 주문했는데, 상당한 피로감을 호소했다고 한다. 이에 바그너는 베누스를 우아하고 고요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여러 번의 수정과 연습을 토대로 관객들에게 오히려 신비로운 베누스를 보여주게 됐다. 탄호이저는 베누스와의 관계를 알게 된 사람들로부터 분노를 사게 되고 용서를 구하고자 로마로 순례길을 떠난다. 용서를 받지 못한 탄호이저는 다시 베누스에게 돌아가는 것을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그를 오랜 시간 사랑해온 정숙한 여인, 엘리자베트의 희생을 통해 구원받게 된다. 결국 신성한 사랑을 선택하지만 바그너 본인은 베누스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실제로 바그너는 작곡 과정에서 자신의 영감이 베누스의 무한한 사랑과 열정에서 나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베누스는 이처럼 엘리자베트와 반대되는 쾌락의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오늘날 '탄호이저'는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일부 연출가들은 베누스를 단순한 유혹자가 아닌, 여성의 자율성과 권력을 상징하는 인물로 해석하기도 한다. 또 예술과 사랑, 인간의 열망을 상징하는 존재로 그려낸다. 이런 현대적인 시도는 관객들에게 오페라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2025년 '트리스탄과 이졸데', 2027년 '니벨룽의 반지'로 이어지는 국립오페라단의 바그너 시리즈는 '탄호이저'(10월 17~20일)로 그 첫 막을 올린다. 이번 '탄호이저'에선 어떤 베누스를 만날 수 있을지 극장에서 직접 확인해보셨으면 한다. 최상호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2024-08-26 17:58:06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는 중세 독일에 실존했던 음유시인 탄호이저와 독일에 내려오던 전설을 음악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제작 과정에서 수많은 에피소드와 역사를 품고 있는 음악적 걸작이다. 이번 글에선 여신 베누스(비너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 한다. 베누스는 고대 로마신화에서 사랑과 미의 여신으로 모성, 아름다운 여성성의 상징이다. 바그너의 '탄호이저'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매혹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녀는 탄호이저를 자신의 마법동굴, 베누스베르크로 유혹해 쾌락과 무한한 사랑을 제공한다. 이 장면은 관객들에게 장식적임과 동시에 강렬한 베누스의 매력을 전달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일화는 1861년 파리 초연 때 발생했다. 당시 베누스 역을 맡은 가수에게 등장 장면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도록 주문했는데, 상당한 피로감을 호소했다고 한다. 이에 바그너는 베누스를 우아하고 고요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여러 번의 수정과 연습을 토대로 관객들에게 오히려 신비로운 베누스를 보여주게 됐다. 탄호이저는 베누스와의 관계를 알게 된 사람들로부터 분노를 사게 되고 용서를 구하고자 로마로 순례길을 떠난다. 용서를 받지 못한 탄호이저는 다시 베누스에게 돌아가는 것을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그를 오랜 시간 사랑해온 정숙한 여인, 엘리자베트의 희생을 통해 구원받게 된다. 결국 신성한 사랑을 선택하지만 바그너 본인은 베누스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실제로 바그너는 작곡 과정에서 자신의 영감이 베누스의 무한한 사랑과 열정에서 나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베누스는 이처럼 엘리자베트와 반대되는 쾌락의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오늘날 '탄호이저'는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일부 연출가들은 베누스를 단순한 유혹자가 아닌, 여성의 자율성과 권력을 상징하는 인물로 해석하기도 한다. 또 예술과 사랑, 인간의 열망을 상징하는 존재로 그려낸다. 이런 현대적인 시도는 관객들에게 오페라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2025년 '트리스탄과 이졸데', 2027년 '니벨룽의 반지'로 이어지는 국립오페라단의 바그너 시리즈는 '탄호이저'(10월 17~20일)로 그 첫 막을 올린다. 이번 '탄호이저'에선 어떤 베누스를 만날 수 있을지 극장에서 직접 확인해보셨으면 한다. 최상호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2024-08-26 12:28:32한때 오페라극장에서 중요한 직업 중에 하나는 바로 프롬프터였다. 프롬프터는 오케스트라 피트 바로 위에 자리 잡은 상자에서 성악가들에게 첫 단어를 알려주는 이들이다. 독일어로는 수플뢰(Souffleur), '숨을 불어넣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이탈리아 오페라가 한창이던 18세기부터 존재하던 프롬프터는 이제 많은 극장에서 사라졌지만 그들의 역할은 성악가들에게 숨을 불어넣는 요정이자 전설로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프롬프터를 떠올리면 성악가들과 함께 긴장하며 그들의 뜨거운 입김과 침 세례를 받아야 하는 중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던 라이프치히극장의 프롬프터, 잉그리드가 생각난다. 어느 날 인사를 나누며 "보통 낮에는 뭐 하세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잉그리드는 "개인적인 시간을 내기 어려워서 요가를 배우고 싶어도 못해요"라고 했다. 오전에는 성악가들과 함께 4시간 정도 연습하고, 저녁 공연에 바로 투입되어 늦은 밤에 귀가하는 일이 일 년 내내 반복된다고 했다. 또 공연에 일어나는 수많은 변수로 인해 공연마다 신경이 곤두선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프롬프터는 첫 마디를 던져주는 것 뿐만 아니라 박자와 리듬을 놓치지 않게 도와준다. 대타 성악가가 올 때면 빠르게 성악가의 성향과 준비 정도, 긴장감, 호흡 등을 분석한다. 짧은 시간 동안에 엄청난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계속해서 프롬프터 상자를 떠나지 않았던 이유는 지독하게 긴 바그너 오페라도 견딜 수 있게 했던 몇 개의 커피콩과 성악가들에게서 "당신이 오늘 나를 20번이나 구해줬어요"라는 말 한마디 덕분이었다. 그녀는 다른 직업을 선택할 생각을 한 적이 없을 만큼 프롬프터가 멋진 직업이지만, 이런 종류의 일은 언제나 숨어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다면 많은 스태프, 성악가 등이 만들고자 한 무대 위 세계에 대한 배신일 것 같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수많은 청중 앞에서 어느 날은 러시아어로, 그 다음 날은 프랑스어로 노래한다고 상상해 보자. 한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가사가 기억나지 않고 음악은 무자비하게 흘러간다. 아찔한 상황에서 프롬프터가 던져주는 한 글자, 리듬, 박자는 말 그대로 공연에 다시 숨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성악가들이 무대 위에서 안심하고 날아다닐 수 있게 하던 잉그리드가 27년 동안 해오던 상자 속 요정 역할에서 은퇴한다. 가끔은 성악가의 호흡이자 언어였던 그녀가 그리울 것 같다. 고마운 요정, 잉그리드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최상호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2024-07-15 18:00:41한때 오페라극장에서 중요한 직업 중에 하나는 바로 프롬프터였다. 프롬프터는 오케스트라 피트 바로 위에 자리 잡은 상자에서 성악가들에게 첫 단어를 알려주는 이들이다. 독일어로는 수플뢰(Souffleur), ‘숨을 불어넣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이탈리아 오페라가 한창이던 18세기부터 존재하던 프롬프터는 이제 많은 극장에서 사라졌지만 그들의 역할은 성악가들에게 숨을 불어넣는 요정이자 전설로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프롬프터를 떠올리면 성악가들과 함께 긴장하며 그들의 뜨거운 입김과 침 세례를 받아야 하는 중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던 라이프치히극장의 프롬프터, 잉그리드가 생각난다. 어느 날 인사를 나누며 “보통 낮에는 뭐 하세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잉그리드는 “개인적인 시간을 내기 어려워서 요가를 배우고 싶어도 못해요”라고 했다. 오전에는 성악가들과 함께 4시간 정도 연습하고, 저녁 공연에 바로 투입되어 늦은 밤에 귀가하는 일이 일 년 내내 반복된다고 했다. 또 공연에 일어나는 수많은 변수로 인해 공연마다 신경이 곤두선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프롬프터는 첫 마디를 던져주는 것 뿐만 아니라 박자와 리듬을 놓치지 않게 도와준다. 대타 성악가가 올 때면 빠르게 성악가의 성향과 준비 정도, 긴장감, 호흡 등을 분석한다. 짧은 시간 동안에 엄청난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계속해서 프롬프터 상자를 떠나지 않았던 이유는 지독하게 긴 바그너 오페라도 견딜 수 있게 했던 몇 개의 커피콩과 성악가들에게서 “당신이 오늘 나를 20번이나 구해줬어요”라는 말 한마디 덕분이었다. 그녀는 다른 직업을 선택할 생각을 한 적이 없을 만큼 프롬프터가 멋진 직업이지만, 이런 종류의 일은 언제나 숨어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다면 많은 스태프, 성악가 등이 만들고자 한 무대 위 세계에 대한 배신일 것 같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수많은 청중 앞에서 어느 날은 러시아어로, 그 다음 날은 프랑스어로 노래한다고 상상해 보자. 한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가사가 기억나지 않고 음악은 무자비하게 흘러간다. 아찔한 상황에서 프롬프터가 던져주는 한 글자, 리듬, 박자는 말 그대로 공연에 다시 숨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성악가들이 무대 위에서 안심하고 날아다닐 수 있게 하던 잉그리드가 27년 동안 해오던 상자 속 요정 역할에서 은퇴한다. 가끔은 성악가의 호흡이자 언어였던 그녀가 그리울 것 같다. 고마운 요정, 잉그리드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최상호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2024-07-15 10:34:04지난 5월 26일 국립오페라단이 준비한 국내 초연작 '죽음의 도시'가 막을 내렸다. 공연이 끝나고도 멈출 줄 모르는 박수 소리에 단장 겸 예술감독으로 작품을 준비하는 동안의 근심과 걱정이 눈 녹듯 사라졌다. '죽음의 도시'는 벨기에의 도시 브뤼헤를 배경으로 주인공 파울이 죽은 아내 마리를 닮은 마리에타를 만나면서 아내와 마리에타, 현실과 망상을 혼동하게 되는 매우 독특한 스토리의 작품이다. 특히나 이번 프로덕션의 특이한 점은 죽은 아내를 시각화했다는 점이다. 무대 위에 마네킹을 세워 관객의 이해를 도왔다. 하지만 단순한 마네킹이 아니다. 파울이 마리에타를 보며 마음이 흔들리자, 서운한 마음을 표현하기라도 하듯 음악에 맞춰 갑자기 마네킹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네킹으로 분장한 무용수라 생각하지 못했던 관객들은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기획자로서 기분 좋은 비명이었다. 또 파울이 도시를 떠나기로 결심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마네킹은 살짝 손을 흔든다. 파울의 선택을 응원하는 듯한 모습에 관객들이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죽음의 도시'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죽음, 그리고 남아있는 자들이 가진 사라지지 않는 그리움에 대한 작품이다. 이 복잡한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 성악가들은 지난 두 달간 연습에 매진했으며 그 지난한 과정에서 때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들의 노력 덕분에 작품을 보는 내내 앞서 가신 분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고 그리움이 몰려왔다. 관객들이 남긴 후기를 통해서 많은 분들이 비슷한 감정을 느꼈음을 알 수 있었는데 이는 성악가들이 똘똘 뭉쳐 열정을 다해 작품을 공부하고 작품이 가진 본연의 매력을 잘 살려낸 것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젊은 성악가들과 경험 많은 주역들이 함께 애썼던 이번 작품이 많은 분들에게 이 작품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정서적 풍요로움을 선사했다. '죽음의 도시'가 한국 오페라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 되길 희망하며 앞으로도 오페라를 통해 예술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죽음의 도시'를 사랑해주신 관객들을 포함해 모든 이들에게 파울의 마지막 아리아 속 가사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내게 머문 행복인 내 진실한 사랑이여, 이제는 안녕!" 최상호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2024-06-10 19:04:46【양산(경남)=전상일 기자】 지난 8일 에이원CC에는 눈을 뜨기 힘들 정도의 폭우가 몰아쳤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이슬비 수준이었으나 정오를 넘어서면서 강한 비로 바뀌었다. 이런 상황에서 6언더를 몰아치며 스코어를 줄여나간 선수가 바로 김한별이었다.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에서 6년째 뛰면서 3차례나 우승을 거머쥔 김한별은 3라운드 6언더파 65타를 작렬하며 공동 35위에서 공동 6위로 순위가 껑충 뛰어올랐다. 비가 오는 날씨에도 계속 스코어를 줄여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특별한 비결은 없다. 오늘은 퍼트가 잘 떨어지는 날이었다. 1, 2라운드 안되던 것이 오늘 보상 받은 느낌이다(웃음). 특히 클러치 퍼트가 잘 됐다. 비가 오는 날씨이다 보니 정신이 없었는데 이런 것도 오히려 복잡한 생각 없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준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한별은 KPGA 투어 통산 43승을 올린 69세 최상호와 함께 돌았다. 그런데 최상호 프로에게 조언을 구하는 내용이 KPGA 공식 SNS에서 화제가 됐다. 이에 대해서 김한별 프로는 “정말 많이 배웠다. 잘 안 풀릴 때나 슬럼프를 겪을 때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물어봤는데 ‘연습만이 살길’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거리를 좀 줄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뜻은 공을 몰고 가서 코스 안에서 쳐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 선수들을 보면 100%의 힘을 다해 공을 멀리 보내는 경향이 많다고 하시면서 PGA투어 선수들을 보면 70~80% 정도 힘으로 경기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3라운드 경기 때 파5홀에서도 힘을 빼고 부드럽게 스윙을 했다. 웬만한 샷들의 적중률이 높아졌다. 느낌에는 거리도 더 증가한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김한별은 “동료 선수나 갤러리, 대회 관계자 분들이 최상호 선수를 대하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다. 같은 세대에 경기를 해본적은 없지만 그 상황을 보면 최상호 선수가 그동안 어떤 길을 걸어오셨는지 볼 수 있었다. 이틀을 같이 경기했는데 만약 최상호 선수와 맞는 코스에 최상호 선수가 출전했다면 오버파라는 스코어는 볼 수 없었을 것 같다. 모든 면에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이날의 활약 더분에 김한별은 우승권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4타차이는 쉽지 않은 스코어지만 충분히 가능한 스코어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김한별 프로는 “기회는 항상 열려 있다. 오늘처럼 치면 1~2타 차 극적으로 역전 우승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무빙데이에 이 정도 스코어를 줄인 것이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라고 우승에 대한 간절함을 내비쳤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2024-06-09 11:31:59최근 출장차 일본 도쿄의 신국립극장을 방문했다. 신국립극장은 1997년 개관한 이후로 750편이 넘는 작품을 공연한 일본 최초의 국립극장이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진행 중이기에 내년에 같은 작품을 하는 입장에서 관람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장장 6시간 동안 이어지는 대작으로, 바그너가 독일에 내려오는 이야기를 오페라로 만든 작품이다. 금지된 관계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사랑에 빠지고, 여기에 더해 하루를 못 만나면 병이 나고, 사흘을 못 만나면 죽는 사랑의 묘약을 마시게 되어 더욱 열정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을 들려주는 이야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절절 끓게 하는 힘을 가진 작품이다. 이런 탓에 평일 낮 2시 공연임에도 객석은 기대감으로 꽉 차 있었다. 하지만 예정된 시간이 되어도 공연이 시작되기는커녕 지휘자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기분에 고개를 출입구 쪽으로 돌려보니, 얼핏 보아도 고령의 관객 한 분이 안내원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 상황을 전달받은 공연장 측은 당연하다는 듯 시작을 늦춘 것이었다. 멋진 오페라를 기대하며 극장으로 향했을 고령의 관객과 그의 걸음에 발맞추는 안내원의 모습을 보니 5분여의 시간은 오히려 달콤한 기다림에 가까웠다. 장시간의 공연이었음에도 막이 내릴 때까지 많은 관객들이 자리를 지켰다. 또 공연이 끝나고 수고한 출연진과 제작진에게 열광적인 환호와 아낌없는 박수가 10분 동안 이어졌다.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철학적인 메시지, 출연진의 기량에 대해서는 논할 필요가 없이 훌륭했지만 나는 다른 의미로 이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신국립극장은 완벽한 서비스와 친절로 관객들을 대했다. 반면 한국의 공연장은 어떠한가. 때때로 불필요할 만큼 큰소리의 안내와 딱딱한 태도를 보이곤 한다. 한국 공연 문화도 점차 성숙해져야 할 때이다. 관객들이 관람 에티켓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객들의 편의와 편안함을 위한 사려 깊은 서비스도 필요하다. 공연은 공연장에 가는 길부터 시작되어 돌아가는 길까지 지속된다는 말이 있다. 공연을 보러 오가는 길에 기대감과 공연을 보고 난 후의 소중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일련의 과정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도록 극장의 세련된 도움이 필요하다. 최상호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2024-04-15 18:05:25최근 출장차 일본 도쿄의 신국립극장을 방문했다. 신국립극장은 1997년 개관한 이후로 750편이 넘는 작품을 공연한 일본 최초의 국립극장이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진행 중이기에 내년에 같은 작품을 하는 입장에서 관람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장장 6시간 동안 이어지는 대작으로, 바그너가 독일에 내려오는 이야기를 오페라로 만든 작품이다. 금지된 관계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사랑에 빠지고, 여기에 더해 하루를 못 만나면 병이 나고, 사흘을 못 만나면 죽는 사랑의 묘약을 마시게 되어 더욱 열정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을 들려주는 이야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절절 끓게 하는 힘을 가진 작품이다. 이런 탓에 평일 낮 2시 공연임에도 객석은 기대감으로 꽉 차 있었다. 하지만 예정된 시간이 되어도 공연이 시작되기는커녕 지휘자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기분에 고개를 출입구 쪽으로 돌려보니, 얼핏 보아도 고령의 관객 한 분이 안내원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 상황을 전달받은 공연장 측은 당연하다는 듯 시작을 늦춘 것이었다. 멋진 오페라를 기대하며 극장으로 향했을 고령의 관객과 그의 걸음에 발맞추는 안내원의 모습을 보니 5분여의 시간은 오히려 달콤한 기다림에 가까웠다. 장시간의 공연이었음에도 막이 내릴 때까지 많은 관객들이 자리를 지켰다. 또 공연이 끝나고 수고한 출연진과 제작진에게 열광적인 환호와 아낌없는 박수가 10분 동안 이어졌다.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철학적인 메시지, 출연진의 기량에 대해서는 논할 필요가 없이 훌륭했지만 나는 다른 의미로 이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신국립극장은 완벽한 서비스와 친절로 관객들을 대했다. 반면 한국의 공연장은 어떠한가. 때때로 불필요할 만큼 큰소리의 안내와 딱딱한 태도를 보이곤 한다. 한국 공연 문화도 점차 성숙해져야 할 때이다. 관객들이 관람 에티켓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객들의 편의와 편안함을 위한 사려 깊은 서비스도 필요하다. 공연은 공연장에 가는 길부터 시작되어 돌아가는 길까지 지속된다는 말이 있다. 공연을 보러 오가는 길에 기대감과 공연을 보고 난 후의 소중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일련의 과정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도록 극장의 세련된 도움이 필요하다. 최상호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2024-04-15 13:53:31매년 7월 말이면 독일 바이에른주의 소도시 바이로이트로 전 세계 바그너 팬들이 모여든다. 오직 바그너의 음악과 작품만을 연주하는 특별한 축제인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을 관람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바그너의 오랜 팬으로서 이곳을 방문해 오페라 '파르지팔'을 감상했다. 해당 공연은 오페라에 증강현실(AR)을 처음 도입한 작품으로, 쇠퇴해가는 종합예술의 고통과 구원의 모티브를 다룬 공연이었다. 일부 관객은 AR 안경을 쓰고 관람했는데 관객들의 머리 위로 달과 움직이는 구름을 볼 수 있고, 발밑으로는 갈라진 표면도 볼 수 있었다. 관객은 자신이 인식하는 극장이라는 공간을 뛰어넘어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에 대해 '레지테아터(시대에 맞춰 재해석한 연출)의 극단적인 사례' '오페라의 전통을 무너뜨렸다' 등 비판적인 의견도 나왔다. 오페라인으로서 안타깝지만 세대가 변할수록 오페라는 관객들에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영화, 뮤지컬 등에 열광하는 관객들을 보면 관객들이 기대하는 스펙타클을 오페라에서도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고민이 든다. AR 기술과 같이 혁신적인 도구를 활용해 미래지향적인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또 다양한 매력의 오페라를 경험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예컨대 성인들에게 어려운 음악으로 여겨지는 현대음악은 교육을 통해 어린이들이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이 된다. 그들은 익숙하지 않은 소리에 호기심을 가지고 받아들이게 되고. 첼로를 긁고 두드릴 때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교육으로 현대음악은 색다른 경험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음악적 욕구를 자극하고 충족하는 경험은 청각적으로 원하는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성숙한 청중이 되게 한다. 그렇기에 다양한 경험을 선사하고, 즐길 수 있는 교육적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것이다. 오페라는 모든 예술 형식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혁신적인 기술과 음악, 연기가 조화롭게 결합하고 교육적 경험이 뒷받침된다면 더욱 감동적인 무대가 될 것이다. 앞으로의 오페라는 소수를 위한 예술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예술 장르가 되었으면 한다. 최상호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2024-03-11 18:2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