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5주기인 18일 여야 지도부가 한자리에 모여 고인을 기렸다. 야당은 김 전 대통령의 저항 정신을 강조하며 현 정부를 비판했고, 여당은 고인이 진영과 시대를 초월한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김 전 대통령 서거 15주기 추모식에서 "오만과 독선의 윤석열 정권 2년 반 만에 민주주의는 무너졌고 민생 경제는 파탄 났으며 한반도 평화와 안보는 깨졌다.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헌법 정신을 파괴하는 반민족적 역사 쿠데타까지 감행하고 있다"며 "(김 전) 대통령께서 굳건히 세운 대한민국이 지금 총체적 위기에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박 직무대행은 "대통령 말씀처럼 불의와 타협하지 않겠다. 정의의 역사와 지혜로운 국민을 믿고 윤 정권 폭주를 막아 내겠다"며 "민주당이 '행동하는 양심'의 최선봉에 서겠다"고 덧붙였다. 반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추도식에서 김 전 대통령이 진영과 시대를 초월한 혜안을 보여 줬다고 평가했다. 한 대표는 '상인적 현실 감각과 서생적 문제 인식을 같이 갖춰야 한다', '정치는 국민보다 반보 앞서야 한다', '현미경처럼 치밀하게 보고 망원경처럼 멀리 봐야 한다', '정치는 진흙탕 속에서 피는 연꽃과 같다' 등 김 전 대통령 어록을 열거하며 "이 말씀들을 실천하면 분명히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glemooree@fnnews.com 김해솔 기자
2024-08-18 18:31:50【파이낸셜뉴스 무안=황태종 기자】전남도는 16일 목포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에서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정의와 민주, 인권과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 15주기를 맞아 추모식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날 추모식은 김영록 전남도지사와 전남도의회 이광일 부의장과 도의원, 김대중 전남도교육감, 도민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헌화, 추모사, 추모공연 순으로 진행됐다. 특히 노벨평화상기념관 화합의 광장에 김대중 대통령의 사진과 어록을 미디어 타워를 통해 전시해 김대중 대통령의 삶과 정신을 돌아보는 시간도 마련해 관람객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김영록 지사는 추모사를 통해 "대통령님께서 서거한 지 15년이 흘렀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기후 변화, 지방 소멸 등 새로운 위기까지 더해져 국민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면서 "전남도는 대통령님의 화합과 상생, 통합과 공존의 정신을 다리 삼아 도민과 함께 이 위기의 강을 건너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미래를 내다보는 대통령님의 탁월한 통찰과 혜안을 본받아 세계가 주목하는 전남, 사람이 모여드는 전남 행복시대를 열겠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전남도는 김대중 대통령의 신안 하의도 생가를 전남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생가 주변에 조성 중인 '한반도 평화의 숲'과 연계해 하의도 일원을 동북아 평화의 성지로 만들고 있다. 오는 11월 목포와 영암 일원에서 세계적 석학의 강연과 다양한 문화행사로 구성된 '김대중 100년 특별 평화 페스티벌'도 계획하고 있다. hwangtae@fnnews.com 황태종 기자
2024-08-16 11:40:02[파이낸셜뉴스] 부산시 동래구는 우장춘 박사 서거 65주기를 맞아 우장춘기념관에서 추모주간을 진행한다고 5일 밝혔다. 이번 추모 주간은 오는 7일부터 11일까지 5일간 진행되며, 오는 9일 기념관 야외마당에서 추모식을 갖는다. 부산과학기술협의회가 주관하는 이번 추모식은 묵념, 고인 약력 소개, 분향과 헌화, 기념관 해설 순서로 진행된다. 추모 주간에는 시민 분향소가 운영되며, 기념관 2층 전시실에서는 매일 과학 문화해설사가 교육 체험 프로그램을 연다. 한편 구와 부산과학기술협의회는 우리나라 농업의 선구자인 우장춘 박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6년부터 추모식을 열고 있다. 1898년 도쿄 태생인 우 박사는 1950년 귀국해 부산원예교등학교(현 부산전자공업고등학교)에 근무했으며,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부산시 문화상과 대한민국 문화포장 등을 수상하고 1959년 8월 10일 생을 마감했다. 425_sama@fnnews.com 최승한 기자
2024-08-05 16:09:54[파이낸셜뉴스] 국가보훈부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 서거 제59주기 추모식’이 19일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다고 밝혔다. 이날 추모식에는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을 비롯한 각계 인사와 기념사업회 회원, 시민 등 7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이승만 대통령은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서 강한 대한민국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온 몸을 던지신 분”이라며 “정부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비롯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신명을 바쳐 희생·헌신하신 모든분들이 제대로 예우받을 수 있도록 성심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은 1954년 11월 17일, 외교적 역량을 발휘해 대한민국에 대한 미국의 경제·군사적 지원계획을 담은 한미합의의사록 조인과 동시에 '한미상호방위조약' 비준서 교환을 통한 공식 발효로 한미동맹을 제도적으로 완성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남한의 토지개혁 성공이 꼽힌다. 1875년 황해도 출생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1896년 서울에서 협성회를 조직하고 협성회보와 매일신문을 발행해 주필로 활동했다. 1898년 독립협회가 해산되자 고종황제 폐위 음모 사건에 연루돼 1904년 8월까지 5년 7개월간 한성감옥에 투옥됐으며, 감옥에서 청일전기(淸日戰紀)를 편역하고 독립정신(獨立精神)을 저술했다. 1904년 11월, 미국으로 건너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조지워싱턴 대학, 하버드 대학, 프린스턴 대학에서 각각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1910년 귀국 후 1912년 세계감리교총회 한국 대표로 임명돼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하와이에 근거를 두고 '태평양잡지' '태평양주보'를 발간했으며, 박용만·안창호와 협력해 독립운동에 전념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고 4월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되었으며, 1921년 5월에는 워싱턴 군축회의, 1933년에는 제네바 국제연맹회의에 참석하여 일본의 침략을 폭로했다.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 구미위원장으로 미국 대통령과 국무성을 상대로 임시정부 승인을 요구하는 외교활동을 벌였으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고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정부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공적을 기려 194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한 바 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4-07-18 10:12:00[파이낸셜뉴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낸 6·25전쟁 영웅 故 백선엽 장군 4주기 추모식이 10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거행됐다. 이번 추모식은 조국수호와 굳건한 한미동맹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백선엽 장군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고 안보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마련됐다. 백선엽장군기념재단과 육군 공동 주관으로 열린 추모식에는 유가족과 강대식 국회의원, 김재욱 칠곡군수, 고창준 2작전사령관, 크리스토퍼 라네브 미8군사령관과 김관진 백선엽장군기념재단 이사장(전 국방부장관) 및 박형수 다부동전투구국용사회장이 참석했다. 권영해 국가원로회의 고문(전 국방부장관), 권오성 육군협회장(전 육군참모총장), 임호영 한미동맹재단 회장(전 연합사 부사령관) 등 안보단체 주요직위자와 역대 합참의장·육군참모총장·연합사 부사령관 등 군 원로들을 포함하여, 유관기관 및 보훈단체 관계관 총 300여 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유가족을 포함한 행사 참석자들은 다부동 구국용사충혼비에서 헌화·분향하고 백 장군 등 호국영령의 넋을 기렸다.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환영사를 통해 "국가와 군을 위해 일평생 바치신 백선엽 장군님의 위대하신 삶은 자유대한민국의 산 역사"라며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라고 하셨던 장군님의 결기와 투혼이 어린 말씀을 가슴에 새겨 적들이 다시는 이 땅을 넘보지 못하도록 강한 힘으로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겠다"고 말했다. 백 장군의 장녀 백남희 여사는 "아버지는 생전에 '내가 살아오면서 한시라도 잊을 수 없는 것은 6·25전쟁 기간 수많은 전우의 고귀한 의생과 유족들의 아픔이다. 6·25전쟁의 진정한 영웅은 나와 함께 싸운 전우들이었다'라고 말씀하셨다"라며 "아버지의 평생 염원이었던 조국수호와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애쓰고 계신 많은 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추모공연에서는 경상북도 도립국악단의 연주와 2작전사 군악대의 중창곡으로 추모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어서 참석자들은 백 장군이 생전에 가장 사랑한 군가 '전우야 잘 자라'를 제창하며 고인의 뜻을 되새겼다. 행사자에는 6·25전쟁 주요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오늘날 한미동맹의 기틀을 닦은 백 장군의 생전 인터뷰 장면을 질의응답 형식으로 소개한 추모영상이 상영되기도 했다. 백 장군은 1950년 6·25전쟁 발발시 국군 1사단장으로 낙동강 최후방어선인 대구 북방 경북 칠곡 다부동 전투에서 미 27연대, 미 23연대와 국군 최초의 합동작전으로 북한군 3개사단의 공세를 저지시킴으로서 초기 6·25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는 3년여의 전쟁기간 동안 주요 직위를 거치면서 국군 최초의 4성 장군이 됐고, 1953년 정전협정을 전후로 두 번의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하면서 오늘날 국군의 근간을 구축한 6·25전쟁의 영웅으로 평가 받고 있다. 2023년 국가보훈부는 백선엽 장군을 6·25전쟁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 중 한 사람으로 선정한 바 있다. 백 장군은 2020년 7월 99세의 나이로 별세해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4-07-10 14:01:19[파이낸셜뉴스] 국가보훈부는 백범 김구 선생 제75주기 추모식이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26일 오전 11시 엄수된다고 25일 밝혔다. 보훈부에 따르면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주관으로 열리는 이번 추모식엔 강정애 보훈부 장관과 각계 인사와 기념사업협회 회원, 독립유공자 유족 등 3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강 장관은 "보훈부는 조국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치셨던 선열들의 고귀한 생애와 뜻을 우리 후손들도 영원히 기억하고 계승할 수 있도록 성심을 다하겠다"며 "오늘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신명을 바치신 김구 선생을 비롯한 애국선열들의 피와 땀 위에 서 있다"고 말했다. 1876년 8월 황해도 해주 출신인 백범 선생은 1894년 동학군의 선봉장으로 활동했고 1905년 일제에 의해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된 뒤엔 이준·이동녕 선생 등과 함께 구국운동에 앞장섰다. 백범은 1919년 '3·1운동' 직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한 백범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과 내무총장·국무령·주석 등을 거쳤다. 앞서 1908년엔 비밀 결사 '신민회'에 가입해 조국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며, 의병활동과 계몽운동 등 다양한 항일투쟁에도 관여했다. 1945년 8월 광복 후 그해 11월 개인 자격으로 귀국한 백범은 1949년 6월 26일 사저 '경교장'에서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서거했다. 정부는 백범 선생의 생전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4-06-25 10:38:32신협중앙회가 신협 창립 64주년을 맞아 지난 10일 대전 유성구 신협중앙연수원에서 '신협 선구자 추모식'을 열었다고 13일 밝혔다. 중앙회는 추모식에서 한국 신협운동의 개척자인 메리 가브리엘 수녀와 장대익 신부를 기억했다. 추모식에는 김윤식 중앙회장과 전국 신협 임직원 220여명이 참석했다. 중앙회는 신협이 자산규모 기준 아시아 1위 국제 신협 공동체의 강자로 성장하는데 신협운동 정신이 발판이 됐다면서 선구자들의 헌신과 열정을 이어나가자고 다짐했다. 신협은 1926년 선교활동을 위해 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고 메리 가브리엘 수녀가 1960년 5월 부산에 '성가신협'을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가브리엘 수녀는 당시 궁핍이 극에 달했던 한국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선과 구호가 아닌 자립과 자활이라는 신조 아래, 서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신협운동을 전파했다. 한국신협연합회(現 신협중앙회)의 설립을 주도하는 등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982년 정부로부터 '한미 수교 100주년 기념 감사패'도 받았다. 장대익 신부는 지난 1960년 6월 국내 두 번째 신협인 서울 '가톨릭중앙신협'을 세웠다. 박문수 기자
2024-05-13 18:17:26[파이낸셜뉴스]신협중앙회가 신협 창립 64주년을 맞아 지난 10일 대전 유성구 신협중앙연수원에서 ‘신협 선구자 추모식’을 열었다고 13일 밝혔다. 중앙회는 추모식에서 한국 신협운동의 개척자인 메리 가브리엘 수녀와 장대익 신부를 기억했다. 추모식에는 김윤식 중앙회장과 전국 신협 임직원 220여명이 참석했다. 중앙회는 신협이 자산규모 기준 아시아 1위 국제 신협 공동체의 강자로 성장하는데 신협운동 정신이 발판이 됐다면서 선구자들의 헌신과 열정을 이어나가자고 다짐했다. 신협은 1926년 선교활동을 위해 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고 메리 가브리엘 수녀가 1960년 5월 부산에 ‘성가신협’을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가브리엘 수녀는 당시 궁핍이 극에 달했던 한국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선과 구호가 아닌 자립과 자활이라는 신조 아래, 서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신협운동을 전파했다. 한국신협연합회(現 신협중앙회)의 설립을 주도하는 등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982년 정부로부터 ‘한미 수교 100주년 기념 감사패’도 받았다. 장대익 신부는 지난 1960년 6월 국내 두 번째 신협인 서울 ‘가톨릭중앙신협’을 세웠다. 김윤식 회장은 추모식사에서 “지난날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곳을 향해 첫걸음을 뗀 선구자들의 개척정신과 신협운동에 대한 열의는 우리의 앞길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이라며 “신협운동 정신을 우리만의 고유한 경쟁력으로 삼아 서민과 약자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지역사회의 동반자로서 나아가자”고 말했다. mj@fnnews.com 박문수 기자
2024-05-13 09:26:37[파이낸셜뉴스] 국가보훈부는 7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민족정신을 일깨운 고하 송진우 선생 탄신 제134주년 및 서거 제79주기 추모식이 오는 8일 오후 2시 30분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서 엄수된다고 밝혔다. 행사는 국민의례와 약전봉독, 추모사, 추모 강연, 헌화·분향, 추모의 노래, 유족대표 인사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보훈부에 따르면 고하송진우선생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리는 이번 추모식엔 이희완 보훈부 차관과 각계 인사, 기념사업회원, 독립유공자 유족 등 4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강정애 보훈부 장관은 "송진우 선생을 비롯한 독립유공자들의 애국정신을 잊지 않고 미래세대에 계승하기 위해 성심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 선생은 1890년 전남 담양 출신으로 1919년 3.1 운동 당시 민족 대표 48인의 1명으로 3.1 운동을 주도했다. 천도교 측과 기독교 측의 연합을 주선하는 일을 담당했으며, 이로 인해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6개월여 동안 옥고를 치르던 중 모친의 사망 소식을 접하였다고 한다. 그는 1921년 9월 동아일보가 주식회사로 개편 이후 사장, 고문, 주필 등을 역임하면서 1928년 문맹퇴치운동 추진, 1929년 제3차 범태평양회의 참석, 1931년 학생들의 방학을 이용한 '브나로드 운동' 추진 등을 통해 항일운동에 힘썼다. 동아일보의 사상적 바탕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송 선생은 1926년엔 국제농민회 본부에서 조선농민에게 전하는 3·1운동 제7주년 기념사를 3월 5일자 동아일보에 게재했다가 무기 정간 처분을 받고 재판에 회부돼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특히 동아일보는 1936년 8월 독일 베를린 올림픽대회 당시 마라톤 종목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 사진을 가슴에 붙은 일장기를 지운 채 게재해 네 번째 무기 정간을 당했고, 송 선생은 당시 조선총독부의 압력으로 같은 해 11월 사임하기도 했다. 송 선생은 1945년 8월 광복 뒤엔 한국민주당을 조직해 수석총무로 활동하다 같은해 12월 30일 한현우에 의해 암살당했다. 정부는 송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4-05-07 11:03:57[파이낸셜뉴스] 한독이 4월 30일 한독퓨처콤플렉스에서 창업주 고(故) 제석 김신권 회장 10주기를 맞아 추모식을 진행했다. 10주기 추모식은 한독 김영진 회장과 유가족을 비롯해 임직원 대표와 퇴직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신뢰경영의 선구자이자 개척정신으로 국내 제약산업의 선진화를 이끈 김 회장을 기리고 그의 유지를 되새기는 자리로 마련됐다. 한독 임직원들은 지난 24일부터 1주일간 서울 본사와 연구소, 충북 생산공장과 한독의약박물관 제석홀에서 추모주간을 가졌다. 김 회장은 1922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나 20세에 중국 만주에서 약방을 개업하고 1954년에 한독(옛 한독약품)을 설립했다. 따뜻한 성품의 존경받는 경영인으로 70년간 약업 외길 인생을 걸었으며 지난 2014년 4월 30일 향년 92세로 타계했다. 추모식에서 김영진 회장은 “아버님이자 한독의 창업주인 김신권 회장이 세운 한독이 올해로 창립 70주년을 맞았다”며 “긴 세월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한독을 존경받는 기업으로 일궈 가시고자 했던 창업정신을 한독의 변치 않는 뿌리로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신권 회장은 한국전쟁 이후 불모지와 다름없던 상황에서 불굴의 개척정신으로 한국 제약산업의 선진화를 이끌고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이바지했다. 세계적으로 뛰어난 제약기술을 가진 독일 훽스트와 1957년 기술제휴와 1964년 합작을 맺으며 일찍이 글로벌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또, 사람을 중시하는 '신뢰경영'과 품질과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 ‘품질경영’으로 한독을 대표적인 제약회사로 성장시켰다. 직원을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로 여기며 1975년 직원들을 권유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자녀 학자금 지원, 무료 사내식당 운영 등을 일찍이 도입했다. 이와 더불어 김 회장은 사회공헌활동에 앞장서며 1961년 한독장학회를 설립해 의약학 분야 우수 인재 양성을 지원하고 다양한 연구지원사업을 펼쳤다. 사라져 가는 의약학 사료를 보존하고자 1964년 국내 최초로 기업박물관이자 전문박물관인 한독의약박물관을 설립했다. 김 회장은 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도 2006년 ‘제석’이란 아호를 딴 공익법인 한독제석재단을 출범시켜 문화사업, 장학사업, 연구지원사업 등 사회에 기여하는 활동들을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vrdw88@fnnews.com 강중모 기자
2024-04-30 15:2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