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과거 온라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친일파 훈장' 인증 사건. 최근 들어 해당 이슈가 다시금 화제를 모으면서 국가에서 수여하는 건국훈장과 차이점에 대해 궁금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건국 훈장 받으신 할아버지" 자랑했는데 '대만주국 건국공로장' 건국훈장은 건국의 공로나 국가의 기초를 공고히 하는 데에 이바지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대한민국의 훈장이다. 의미 또한 친일 훈장과 차원이 다른데, 메달의 외형마저 틀이 달라 구분하기가 쉽다. 그러나, 건국훈장 등 국가가 수여하는 훈장에 관심을 갖지 않은 이들은 이를 잘 알기 쉽지 않은데, 실제로 훈장을 구분하지 못해 친일 훈장을 인증하는 웃지 못한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처음 게시물을 접한 이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으나, 얼마 안 가 친일의 증거라는 점을 알게 되면서 누리꾼들의 반응은 점점 차가워졌다. 앞서 해당 이슈들은 지난 2018년과 2019년 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전해졌다. 당시 작성자 A씨는 "이사하다 발견했다"라며 "할아버지의 물건 같다. (훈장 뒤에) 건국이라고 쓰여있는 것 같은데 건국 유공자셨던 건가"라고 질문했다. A씨는 그러면서 할아버지의 훈장으로 보이는 메달을 공개했다. 당시 훈장을 처음 본 누리꾼들은 "멋있다", "조부께서 군인이셨던건가" 등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친일의 증거품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선은 점점 안 좋게 굳어갔다. A씨가 공개한 훈장은 '대만주국 건국공로장'이다. 1931년부터 1934년까지 중국 동부에 있는 만주 식민지화에 공이 있는 사람들을 치하하고자 만든 훈장이다. 약 5만명에게 수여한 것으로 알려진 이 훈장은 일제와 협력해 만주를 찬탈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일종의 '친일파'라는 증거로 해석된다. 또 다른 훈장 공개했다가.. "뼛속까지 나라 팔아먹은 조부" 인증 이듬해 A씨는 자신이 공개한 훈장이 친일의 의미를 갖고 있을 줄 몰랐다며, 친일 관련 명단에서도 할아버지의 성함을 확인해 놀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또 다른 훈장을 공개했는데, 국화 문양 아래 오동나무와 이화(자두꽃)이 새겨진 금빛 훈장 사진을 올렸다. 하지만 해당 훈장 역시 친일의 증거품이었다. 확인 결과, 이 훈장은 한국병합기념장(韓國倂合記念章)으로, 1910년 8월 한일 병합 조약 체결과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12년 수여한 훈장이었다. 수여 대상은 △한국 병합 사업에 직접 및 수반한 중요 업무에 관여한 자 △병합 당시 조선에서 근무하던 관리 및 관리 대우자 및 한국 정부의 관리 및 관리 대우자 △종전 한일 관계에 공적이 있는 자다. 즉, 고위 친일파에게 수여하던 훈장인 셈이다. 최근 해당 사연을 접한 누리꾼들은 "친일파 증거인 걸 안 이상 충격이 장난 아닐 듯싶다", "우리 할아버지가 저랬으면 기분 이상하겠다", "생전에 뼛속까지 나라 팔아먹으셨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우리 건국훈장은 '무궁화엽환'으로 시작 훈장의 구성만 제대로 알면 두 훈장에 대해 혼란을 겪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훈장의 형상은 대체적으로 4~10개 정도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중 메달 테두리의 뾰족한 부분부터 다양한 색깔과 무늬의 모양이 조합돼 있다. 이중 '건국훈장'을 예시로 들면 건국훈장은 맨 위 '무궁화엽환'을 시작으로 '태양지', '대지', '서지', '자옥', '승환', '태극' 등의 7가지의 특징을 갖고 있다. 각 특징마다 '국위 선양', '국민의 높은 기개', '노고가 찬연히 빛남', '노고의 결실', '민족의결속', '대한민국' 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 한편 '건국훈장'은 1949년 4월 27일 대통령령 '건국공로훈장령'이 공포되면서 제정됐다. 다만, '건국공로훈장령'은 1963년 12월 14일 '상훈법'이 제정되면서 폐지됐다. 건국훈장은 1등급 '대한민국장'부터 △2등급 대통령장 △3등급 독립장 △4등급 애국장 △5등급 애족장 등으로 나눠진다. 이중 2021년 1월 기준 대한민국장을 수여받은 인물은 총 59명이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승만, 김구, 안중근, 윤봉길, 엄홍도, 유관순 등이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또한 1983년 수여받았으나 취소됐다. 이외에도 대한민국 훈장으로는 '무궁화대훈장', '국민훈장', '무공훈장', '근정훈장', '보국훈장', '수교훈장', '산업훈장', '새마을훈장', '문화훈장', '체육훈장', '과학기술훈장' 등이 있다. helpfire@fnnews.com 임우섭 기자
2023-11-23 10:19:23정의당 대선주자인 심상정 상임대표는 28일 친일반민족행위자 훈장을 박탈하고 친일반민족역사관을 세우는 것을 골자로 하는 역사바로세우기 정책을 발표했다. 심 대표는 3·1절을 하루 앞둔 이날 서울 서대문형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친일 잔재를 말끔히 청산하고 나라를 되찾기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라를 만들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해방 후 70년이 더 지났지만 아직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왜곡된 역사를 뼈저리게 떠올린다"고 운을 뗀 뒤 "정부 차원의 역사 바로 세우기 노력은 아주 뒤늦게 시작됐지만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이름만 발표됐지 일부 재산환수를 제외하고 후속조치는 전무했다. 정부의 명백하고 충격적인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특히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매달고 있는 훈장은 역사의 치욕이자 우리 스스로 역사를 부정하는 일"이라며 훈장 박탈 필요성을 강조했다. 심 대표에 따르면 국가 서훈(훈장·포장)을 받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수는 정부 공식 집계 기준 44명, 78건이며 한 언론사 취재로는 222명 440여건에 달한다. 심 대표는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한 훈장을 박탈하고 친일파는 서훈 대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한편 헌법유린 행위자의 훈장도 모두 박탈하겠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서훈 박탈기준 변경을 위한 상훈법 개정 △총리실 산하 서훈 재조사위원회 설치 △국가공권력 자행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가칭 친일반민족역사관을 설치해 역사교육을 강화할 계획이다. 심 대표는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됐으나 박근혜 정부가 중단시킨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활동에 이어 친일 행위 피해와 친일행위자를 온 국민이 쉽게 알고 그러한 행위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역사교육 현장을 전국 곳곳에 설치해 운영하겠다"고 강조했다. ehkim@fnnews.com 김은희 기자
2017-02-28 14:13:07우울한 광복절 아침을 맞았다. 이념 논쟁으로 기념식이 두 쪽이 났기 때문이다. 광복절마저 휘감은 이념의 굴레는 언제 벗어날 수 있을지, 답답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먹고살기 힘든 국민들에게 건국절 논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인식이 틀린 것이 아니다. 먹고사는 것만큼 소중한 가치는 없다. 문제는 윤 대통령의 인식과 실제가 다른 데 있다. 김형석이라는, 야권에서 '듣보잡' 소리를 듣는 인물을 굳이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논란을 자초할 필요가 없었다. 필자는 과거에 3년 동안 독립운동가들을 취재한 적이 있는데, 김형석이라는 이름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독립기념관장은 광복회장처럼 대부분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이 맡았다. 전두환 정부 때 만든 독립기념관의 초대 관장은 안중근 의사의 종질인 안춘생이었다. 10명 중 8명이 후손이다. 2명만 독립운동 또는 친일 문제 연구가를 임명했는데 참여정부와 문재인 정부 때였다. 그러니까 역대 우파 정부들은 모두 후손을 임명했다. 차관급 대우를 받는 독립기념관장이 후손을 예우하는 자리는 아니지만, 자격과 의식이 충분한 후손들이 지금도 많다. 독립운동을 친일과 반일로 쪼개 정치적 선동에 활용하는 것은 좌파적 방식이자 시각이다. 지금 야당이 그렇고, 김원웅 전 광복회장이 그랬다. 논쟁을 일으켜 휘말릴 이유가 없다. 좌파라고 할 수 없는 이종찬 현 광복회장이 스스로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뜻밖이다. 물론 그 전에 김형석이라는 인물이 발원지가 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친일인명사전을 만든 좌파의 친일 낙인은 문제가 많다. 백선엽처럼 사실 확인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소극적 참여자를 부역자로 몰아 낙인을 찍는 데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일제 조직에서 일한 한국인들을 모두 친일파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봉선화'를 작곡한 민족음악가 홍난파의 친일 논란도 그 하나다. 홍난파는 일제에 저항한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72일 동안 혹독한 고문을 받고 일제에 굴복, 전향서를 썼다. 항일운동은 묻힌 채 홍난파는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있다. 홍난파처럼 사람이나 일이나 양면성이 있다. 한쪽 단면만 보고 판단하는 오류를 우리는 쉽게 범하고 있다. 이승만이 그렇고 박정희가 그렇다. 두 전임 대통령이 독재를 한 것은 맞지만, 현재의 경제대국 자유 대한민국을 건설한 공적을 비판론자들은 깡그리 무시한다. 독립운동을 하고, 평화선을 그어 일본 선박을 나포하며 우리 바다를 지킨 이승만을 친일파로 내몰기도 한다. 이승만이 친일파와 손잡았다는 이유다. 이승만 초대 내각에 반민족 행위 경력자가 포함되지 않았음은 연구에서 밝혀졌다. 박정희의 과거를 들추어 친일파라고 한다면 홍난파는 독립운동가로 부르는 게 맞다. 대한민국의 정신적 정통성은 임시정부에 있고, 법적 정통성은 이승만 정부에 있다. 그렇게 구별해서 보면 간단하다. 임정의 독립정신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또한 헌법을 제정해 공식 국가체제를 갖추고 유엔에서 합법적 정부를 인정받은 것은 제1공화국이다. 김형석은 이런 문제들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주장을 지금 와서 합리화한 측면도 있지만 학자의 시각에서는 제기할 수 있는 관점이다. 그러나 독립운동은 독립운동으로 받들어야지 정치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광복 후 들어온) 미군은 점령군이었다"는 등의 망언으로 독립운동을 정치화·이념화한 김원웅의 전철을 되밟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형석 임명은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는 게 좋았다. 우파 입장에서 그의 논점이 입맛에 맞을지는 몰라도 부러 문제를 일으킬 하등의 이유는 없었다. 더욱이 '건국절 논쟁이 밥 먹여주느냐'는 생각이라면 말이다. 독립운동만큼은 이념과 정치의 영역에서 분리해 순수한 청정구역으로 남겨 놓는 게 좋다. 광복회를 만들고 독립운동가들에게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사실상 처음으로 주기 시작한 인물이 박정희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tonio66@fnnews.com
2024-08-14 18:36:53[파이낸셜뉴스] 국가보훈부는 제105주년 3·1절을 맞아 모두 103명의 독립유공자에 대해 포상한다고 28일 밝혔다. 이 가운데 현재 생존 애국지사는 없다. 이날 보훈부에 따르면 3·1절 중앙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기념식장에서 건국훈장 17명(애국장 4명·애족장 13명), 대통령표창 86명의 후손에게 각각 포상을 수여할 예정이다. 강정애 보훈부 장관은 "보훈이 미래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핵심 가치가 될 수 있도록 한 분의 독립운동가라도 더 발굴하고 포상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애족장이 수여되는 강달성 선생은 1919년 3·1절 만세시위에 이어 같은해 4월 충남 아산군 신창면 읍내리 학성산에서 독립만세를 외친 뒤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돼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그는 법정에서 "만세시위는 조선 민족의 정의·인도에 기초한 행동이므로 무죄"라며 만세운동의 정당성을 당당히 밝혔다. 애족장을 받는 김화룡 선생은 1920년 3월 친일파 처단에 앞장서는 의열투쟁 단체인 암살단에 가입, 1920년 8월 미국 의원단 내한을 앞두고 조선 전역에 독립의식을 고취하고자 독립운동 격문인 '암살단 취의서' 약 4000매를 인쇄·배포하고 시위를 준비하다 체포돼 징역 1년을 받았다. 대통령표창을 받는 이임창 선생은 학생 신분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내 선전활동에 참여했다. 대통령표창을 받는 한인택 선생은 독립운동 비밀결사 소척대를 결성해 일제에 항거했으며, 애족장을 받는 강증룡 선생은 일본 동경에서 비밀결사 무우단 단원으로 활동해 포상이 이뤄진다. 과거 포상된 독립유공자와 같은 사건으로 활동했지만 포상받지 못했던 독립운동가에 대한 발굴·포상도 이뤄진다. 보훈부가 지난 2019년부터 진행해 온 독립유공자 공적 전수조사 결과, '일본 고베(神戶) 조선인 민족주의 그룹 사건'으로 1990년 애족장이 포상된 신동하 선생의 독립운동 기록에서 그간 포상되지 못한 강석봉 선생의 활동을 추가로 발견해 이번에 대통령표창을 수여하게 됐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이듬해인 1949년부터 이번까지 건국훈장은 1만1738명, 건국포장 1519명, 대통령표창 4761명 등 독립유공자로 모두 1만8018명이 포상되며, 이 가운데 여성은 661명이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4-02-28 16:22:54[파이낸셜뉴스] 영화 ‘파묘’가 흥행하면서 등장 인물 '이름'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끈다. 개봉 첫날 33만명을 동원하며 ‘서울의 봄’과 '곡성'의 오프닝 스코어를 뛰어넘는 이 영화는 ‘검은 사제들’ ‘사바하’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의 신작이다. ‘파묘’는 땅을 찾는 풍수사, 원혼을 달래는 무당, 예를 갖추는 장의사, 경문을 외는 무당까지, 일명 ‘묘벤져스’로 불리는 과학과 미신의 경계에 서 있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다. 미국에 사는 한 재미교포 집안에서 현지 대형병원에서도 어린 자식의 기이한 병을 고칠 수 없자, 무속의 힘을 빌리게 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파묘'는 오컬트 장르를 꾸준히 만들어온 감독의 명성에 걸맞게 처음부터 묘를 판 관에서 이상한 것이 나오기 까지 음산하고 불길한 기운을 내뿜으며 관객의 오감을 집중시킨다. 그리고 조상의 묫자리를 이장하게 되는 과정에서 겪는 기이한 일이 일제 쇠말뚝설(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한반도의 정기를 끊고자 쇠말뚝을 산간벽지 이곳저곳에 꽂아뒀다는 현대전설)과 연결되면서 영화적 재미와 함께 뼈아픈 역사도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극중 등장 인물들의 이름이 독립운동가의 이름과 일치하면서 한 네티즌은 “알고보니 항일영화”라는 감상평을 내놨다. 또다른 네티즌도 "항일퇴마영화"라고 부연했다. 먼저 최민식이 맡은 풍수사의 이름은 상덕이다.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었던 김상덕(1892~1956)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해방 이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서 친일파 청산에 앞장섰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았다. 유해진이 맡은 장의사의 이름은 영근. 고영근(1853~1923)은 대한제국의 군인이자, 개화파 정치인이었다. 그는 명성황후 암살 사건에 가담한 조선인 출신 제3대대장 우범선을 암살한 인물이기도 하다. 김고은이 맡은 무당 화림 역시 독립운동가 이화림과 연결된다. 이화림(1905~1999)은 1919년 14세의 나이로 3·1 운동에 참여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조선의용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다. 한인 애국단에 들어가 이봉창, 윤봉길 등과 활동했다. 극중 김고은의 제자이자 이도현이 연기한 무당 캐릭터 이름은 봉길. 윤봉길(1908~1932)은 25세의 짧은 생을 조국광복에 바친 홍커우공원 투탄의거 독립운동가다. 조연으로 출연한 김선영이 맡은 무당 이름은 광심. 오광심(1910~1976)은 광복군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며, 김지안이 맡은 자혜는 독립운동가인 단재 신채호의 부인 박자혜(1895~1943) 이름과 연결된다. 극중 보국사는 나라를 지키는 절을 뜻한다. 보국사를 창건한 스님의 법명은 원봉이다. 김원봉(1898~1958)은 일제강점기 의열단장을 역임했다. 한편 장재현 감독은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외세에 당한 역사와 그 잔재가 곪아 지금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며 “그걸 '파묘' 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우리 과거의 아픈 상처와 두려움 같은 걸 뽑아버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또 주인공들 작명 비하인드와 관련해선 “노코멘트” 입장이라고 영화 관계자 측은 전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2024-02-23 13:02:48[파이낸셜뉴스] 국가보훈부는 3일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일제강점기 의열활동을 이끈 이종암·이강훈·엄순봉 선생을 선정했다. 1896년생인 이종암 선생은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를 거쳤으며, 1919년 일본 고관 암살과 관공서 폭파 등을 전개하는 의열단을 창설해 투쟁했다. 1925년 비밀리에 귀국해 경북 달성군에 은신하다 일제 경찰에 체포돼 살인미수 등 혐의로 징역 13년형을 선고받아 옥살이를 했으며, 고문 후유증으로 1930년 5월 숨을 거뒀다. 정부는 선생에게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1903년생인 이강훈 선생은 1926년 김좌진 장군의 지시를 받아 백두산 근방의 신창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젊은이들에게 조국광복을 위한 민족정신을 고취했다. 1933년 일제의 주중(駐中)공사 아리요시 아키라(有吉明) 암살을 도모하다 체포돼 일본 도쿄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조국 광복으로 출소했다. 선생은 광복 이후 재일한국거류민단 부단장으로 일하다 1960년 귀국해 한국사회당 총무위원으로 활동했으나 1961년 5·16군사쿠데타 세력에 의해 사상을 의심받아 체포돼 다시 2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선생은 1969년 독립운동사 편찬위원, 1977년 독립운동유공자 공적심의위원으로 활동하다 그해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고, 1988년부터 5년간 제10대, 제11대 광복회 회장을 역임한 뒤 2003년 10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06년생인 엄순봉 선생은 중국으로 망명해 아나키스트 단체인 남화한인청년연맹 등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다. 일본영사관 밀정 이종홍을 처단하고 독립운동에 방해물이 되는 옥관빈을 사살했으며 1935년에는 친일파 이용로를 처단했다. 이후 일본영사관 경찰로 넘겨져 모진 고문을 받은 선생은 종로경찰서로 압송돼 취조받은 후,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등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결국 1938년 4월 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형이 집행돼 33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헌신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3-10-03 15:29:19[파이낸셜뉴스] 국가보훈부는 제78주년 광복절을 계기로 광복군의 한・영 연합작전을 도운 윌리엄스 선생 등 100명을 독립유공자로 예우한다 보훈부는 14일 광복군의 한・영 연합작전의 상징 프랭크 얼 크랜스턴 윌리엄스 선생이 건국포장을, 만세시위에 앞장선 통영 기생 함복련 선생이 대통령표창 등 정부 포상을 받는다고 밝혔다.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30명(애국장 8·애족장 22), 건국포장 5명, 대통령표창 65명이며, 포상자 중 생존 애국지사는 없고, 여성은 13명이다. 건국훈장.포장과 대통령표창은 제78주년 광복절 중앙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기념식장에서 후손에게 수여된다. 윌리엄스 선생은 1908년 미국 선교사로 입국해 충남 공주군에서 영명학교를 설립한 후 30여 년간 교장으로 재직하며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1943년 인도 전선에서 한국광복군 인면(印緬)전구공작대 대원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한국 독립의 불씨를 살리고자 애썼다. 함복련 선생은 1919년 4월 경남 통영군에서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기생 신분에도 동료 기생들과 함께 통영의 중심부인 부도정 장터에서 만세시위에 앞장서 거족적 독립운동인 3.1운동의 열기가 통영 전역에 확산되는 데 기여했다. 보훈부는 "3·1운동이 나이와 계층을 불문한 거족적 독립운동이었음을 보여준다"며 "특히 통영은 기생·상인·어민들이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지역으로 알려져 선생의 포상이 더욱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3.1운동 1주년인 1920년 3월 일본 신사를 훼손한 남상홍 선생(대통령표창), 부산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광주학생운동을 지지하는 동맹휴교를 주도한 박재선 선생(대통령표창), 경남학도 전력증강 국방경기대회에서 민족 차별적 편파 판정을 일삼은 일본인 장교 노다이 겐지를 응징한 김영조 선생(애족장), 중국 상하이에서 친일파 수괴인 상해조선인민회 회장 이갑녕을 처단한 김현수 선생(애국장) 등 광복절을 계기로 모두 100명에게 독립유공자 포상이 이뤄진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광복절을 맞아 조국 독립은 물론 ‘자유’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분들께 독립유공자 포상을 할 수 있게 되어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며 “국권 상실이라는 엄혹한 상황 속에서도 오직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온몸을 바친 선열들의 고귀한 생애와 정신이 우리 후손들에게도 온전히 계승될 수 있도록 선양하는 것은 물론, 앞으로도 한 분의 독립운동가라도 더 찾아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3-08-14 10:21:20[파이낸셜뉴스] 국가보훈부는 24일 법적 검토 결과 고(故) 백선엽 장군의 국립대전현충원 홈페이지 내 안장자 정보에서 '친일' 문구 게재에 문제가 있음을 확인해 삭제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보훈부는 "백 장군은 '장성급 장교'로서 국립묘지법에 따라 적법하게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며 "그러나 어떤 법적 근거도 없이 안장자격이 된 공적과 관계없는 문구를 (관련 기록에) 기재하는 건 국립묘지 설치 목적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보훈부는 또 "'안장자 검색·온라인 참배'는 사이버 참배 서비스 등을 제공해 안장자 명예를 선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라며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는) 이와 반대로 오히려 명예를 훼손할 여지가 있는 것으로 봤다"고 부연했다. 현행 '국립묘지법'은 제1조에서 '국가·사회를 위해 희생·공헌한 사람을 안장하고, 그 충의와 위훈 정신을 기리며 선양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동안 대전현충원 홈페이지 내 '안장자 검색' 및 '온라인 참배'란에서 '백선엽'을 검색하면 안장자 정보 비고란에서 '무공훈장(태극) 수여자'란 사실과 함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2009년)'이란 문구를 볼 수 있었다. 보훈부가 이번에 삭제한 '친일' 문구는 노무현 정부 당시 대통령 직속 기구였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정한 명단을 기준으로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등재했던 것이다. 반민규명위는 백 장군이 '1941~45년 만주국군 장교로서 침략 전쟁에 협력했다' 등의 이유로 2009년 그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했다. 그러나 백 장군 유족 측은 이번 탄원서에서 '백 장군이 친일 행적을 했다는 객관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 2월 백 장군 유족 측은 해당 문구가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국립묘지법)에 위배될 뿐아니라 사자·유족에 대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며 삭제를 요청하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했고, 보훈부도 이를 수용한 것이다. 보훈부는 특히 다른 국립묘지 안장자에 대해선 범죄경력 등 안장자격과 관계없는 정보를 기재하지 않으면서 백 장군 등 특정인에 대해서만 특정 사실을 선별 기재하는 것 또한 "안장자 간 균형성을 간과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보훈부는 "('친일' 문구 기재과정에서) 유족의 명예훼손 등 여지가 있음에도 유족 의견을 청취하지 않았고 면밀한 법적 검토 또한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절차적 정당성 역시 확보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를 종합 고려했을 때 법적 근거 없이 이뤄진 결정을 계속유지하는 건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이번 '친일' 문구 삭제 결정에 대해 "백 장군은 최대 국난이었던 한국전쟁(6·25전쟁)을 극복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워 대한민국 최고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최고 영웅"이라며 "친일파 프레임으로 백 장군 명예를 실추시키는 건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박 장관은 "앞으로도 법적 근거 없이 국립묘지 설치 목적에 맞지 않는 사항을 임의로 기재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 안장자 명예를 지켜갈 것"이라며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일류보훈을 실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3-07-24 17:52:47[파이낸셜뉴스] 국가보훈부가 고(故) 백선엽 장군의 국립현충원 안장 기록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문구를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공부를 해보면 해볼수록 이분(백선엽 장군)은 친일파가 아니다. 제가 제 직을 걸고 이야기를 할 자신이 있다”고 밝혔다. 박 장관 "국난 극복한 영웅.. 친일파 프레임 옳지않다" 박 장관은 6일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백선엽 장군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 삭제와 관련해 “마무리 수순”이라며 “곧 결론을 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 장관은 “6·25는 우리 최대의 국난이었다. (백선엽 장군은) 그 국난을 극복한 최고의 영웅”이라며 “표현이 좀 거칠지만 정말 가당치도 않은 친일파 프레임으로 그렇게 공격하는 것은 저는 옳지 않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박 장관은 이어 “오히려 아까 말한 그러면 김원봉하고 예를 들면 김원봉은 6·25 때 김일성의 최측근으로서 우리 국민 수백만의 목숨을 앗아간 사람”이라며 “오히려 그런 사람한테는 최고의 독립 훈장이라도 주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백 장군,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건 사실.. 그때 나이 22살" 박 장관은 “회의록을 보면 (백선엽 장군이) 독립군을 토벌했다고 두루뭉술 넘어가는데 그 당시에 1942년부터 1943년까지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때 나이가 22살인데, 22살이면 지금으로 쳤을 때 육군 소위다. 그런데 그 당시에 역사적인 증거를 쭉 보면 만주에는 독립군이 없었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이미 독립군들은 다 이산이 되고 거기에 있었던 사람들은 중국, 그러니까 항일하던 홍군 내지는 비적들이었다”며 “그래서 토벌했다는데 그 대상이 독립군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전쟁 때 육군참모총장으로 국군 이끌어 한편 6·25 전쟁에서 1사단장을 맡아 개전 초기 지연전과 낙동강 방어선 다부동 전투를 지휘했던 백 장군은 전쟁 후기에는 육군참모총장으로 국군을 이끌었었다. 그러나 현재 국가보훈부와 국립현충원 홈페이지에서 백선엽 장군의 안장 기록을 검색하면 비고란에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문구가 기재돼 있다.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으면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표기된 인물은 백선엽 장군을 포함해 신태영 전 국방부 장관, 신현준 전 해병대 사령관, 이응준 전 체신부 장관 등 총 12명이다. 박 장관은 5일 연합뉴스에 “백선엽 장군을 비롯해서 12분이 그런 수모를 겪고 있다”며 “이 문구를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조만간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선엽 장군의 유족 역시 수개월 전부터 해당 문구를 삭제해 달라고 국가보훈부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sanghoon3197@fnnews.com 박상훈 기자
2023-07-06 14:07:56【파이낸셜뉴스 울산=최수상 기자】 울산시가 광복회 총사령 고헌 박상진 의사의 순국 100주년을 맞아, 그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다양한 시민 참여형 기념사업을 펼친다. 울산 출신 독립운동가로 광복회를 창설해 항일운동을 이끌었던 박상진 총사령 기념사업을 통해, 시대를 초월하는 독립의 진정한 가치를 일깨우고 그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전국에 널리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다. 9일 울산시에 따르면 고헌 박상진 순국일인 오는 11일이다. 울산시는 고헌 박상진 순국일을 전후한 8월 9일~15일을 ‘박상진 총사령 순국100주년 기념주간’으로 공식 선포한다. 선포식은 첫날 오후 2시 울산박물관에서 진행된다. 순국일 오후 3시 30분에는 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순국100주년 추모식’이 열린다. 같은 날 오후 7시 북구 송정동 박상진 생가에서는 추모제례도 진행한다. 이와 함께 독립운동 공적 재조명, 박상진 의사 발자취 따라 걷기, 박상진 의사 브랜드화, 순국 100주년 위상 제고의 4대 분야 26개 기념사업을 추진한다. 박 의사의 독립운동은 오는 10일부터 12월 19일까지 열리는 울산박물관의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특별기획 전시를 통해 보다 상세히 알 수 있다. 오는 27일에는 일제강점기 울산의 독립운동사와 박상진 의사 활동을 다각적으로 연구한 ’고헌 박상진 학술대회’도 열린다. 박 의사에 대한 국민 관심을 높이고 친근감을 향상시키기 위한 ‘박상진 총사령 캐릭터 공모전’도 개최했다. 선정된 캐릭터는 울산시 기념품 제작 등에 활용된다. 울산시는 박상진 의사 서훈등급 상향을 활발하게 추진 중이다. 정부는 지난 1963년 상훈법을 제정하고, 고헌 박상진 의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서훈 3등급)을 추서한 바 있다. 울산시는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의 공적에 맞는 재평가와 상훈등급 상향조정을 촉구하고 있으나, 현행법상 심사과정에서 공적이 과대 혹은 축소평가 됐더라도 서훈이 확정된 이상 이를 바꿀 수 있는 규정이 없다. 울산시는 서훈등급 상향 서명운동을 추진해 나가면서, 정부에 상훈법 개정도 함께 촉구하고 있다. 대한광복회 총사령 고헌 박상진은 1884년 12월, 울산 송정에서 태어나 양정의숙에서 신학문을 배웠고, 1910년 강제 합일합방이 되자 판사임용을 포기하고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15년 7월 최초의 전국단위 항일단체 대한광복회를 조직하고 독립자금 모집과 친일파 처단과 활동을 펼치다 1918년 2월 일본군에 붙잡혀 4년여의 옥고를 치렀고, 1921년 8월 11일 교수형에 처해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울산시 관계자는 “박상진 총사령의 강인하고 위대한 독립정신은 이후 3·1운동 촉발로 이어졌고, 독립운동 전체를 관통하며 광복 이르기까지 계승되었다”면서 “순국100주년 기념사업을 시민과 함께 추진해 나가면서 울산의 독립정신을 전국에 널리 알리고 시민의 자긍심도 높이겠다”라고 말했다. ulsan@fnnews.com 최수상 기자
2021-08-09 10:5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