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모로코 '탕헤르·카사블랑카·에사우이라'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시로는 겁이 없는 편이다.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나 귀신의 집도 아무렇지 않게 통과하고 쥐도 뱀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끔찍하게 싫어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바로 곤충. 곤충에 관해서는 포비아(공포증)가 있다고 할 정도로 비명을 지르게 된다. 특히 모기에 관해서는 밤에 귀에서 "애앵~"소리가 한번이라도 들렸다 하면 바로 온 집안의 불을 다 켜고 사람이 죽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로 살충제를 뿌리거나 기어이 모기를 찾아내 죽인 후에야 다시 잠을 잘 수 있다. 그런 시로에게 어젯밤 눈앞이 캄캄한 징조들이 보였으니 바로 숙소에 들어가기 전 복도 구석 이곳저곳에서 뒤집혀 죽어있는 커다란 바퀴벌레 사체들. 그리고 숙소 안 주방 문 뒤쪽에서도 그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불안감이 커져왔다. 하지만 열흘치 숙박비를 내고 밤늦게 도착한 상황에 다른 선택지가 없어 할 수 없이 침대에 누웠다. 불안한 마음으로 쉽게 잠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너무 피곤했는지 그날 밤은 넘길 수가 있었다. 다음날이 밝았다. 편히 쉬려고 스페인 관광도 마다하고 달려왔는지라 아무데도 안나가고 밥이나 해먹으며 집에만 있었는데 대낮부터 부엌 찬장에, 거실 바닥에, 거대한 그 녀석들이 하나둘씩 출몰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쇼파까지 올라오는 것을 보고는 기겁을 하고 비명을 지르며 집을 뛰쳐 나와야 했다. 탕헤르 숙소는 그야말로 바퀴벌레 천국이었다 크기가 어른 손가락 두 세개를 겹친 것 만한 거대한 크기로 빠르게 움직이지도 않는다. 눈물이 날만큼 싫고 끔찍하고 공포스러웠다. 그길로 까브리에 올라가 문을 꼭 닫고 밖에 나가지 않았다. 집 앞 대형 쓰레기통이 그 녀석들의 본거지였나보다. 길가에도 스물스물 기어다니는 그 것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파랗게 질려 차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시로를 걱정한 탄이 왔다. "나 그 열흘치 숙박비 그거 그냥 줘버려도 되니까 제발 여기서 나가자.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여기서 일분일초도 더 못 있겠어" 하며 결국 눈물이 나왔다. 탄이 환불 이야기를 해보겠다며 갔다. 이야기를 하고 온 탄은 집주인이 자기가 관리하는 다른 숙소가 마침 비었다며 그 곳은 괜찮을 거라고 보고 결정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동네는 치가 떨려 너무 싫어서 당장 멀리 떠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사실 돈 낸 것이 아까워서 일단은 가보기로 했다. 계단으로 4층을 올라와보니 새로운 집은 처음 것보다는 컨디션이 나아 보였다. 일단 복도에 벌레사체가 없었고 샤워실과 화장실, 주방과 보일러 등이 무난해보였다. 방도 깔끔하고 가구가 별로 없어서 바퀴벌레가 나오지는 않을 것 같아 보였다. 이곳도 역시 세탁기는 없었지만 며칠 지내기는 가능할 것 같아 보였다. 결국 남은 기간을 여기서 묵기로 결정했다.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쪼그라든 시로를 위해서 탄이 스페인에서 사온 돼지고기를 구워주었다. 시로의 신경은 여전히 날카로워진 상태여서 작은 것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불안했었지만 하루 이틀 지나며 이곳은 안전하다는 확신이 생기며 조금씩 나아졌다. 유럽에 비해 모로코는 훨씬 저렴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숙박비며 물가가 그리 저렴하지 않았고 환경이 열악해서 휴식은 커녕 집안에서 매일 불안해하며 긴장속에 지내야했다. 일년 내내 온화한 날씨로 건물의 만듦새가 한국과 많이 다르다 새로운 곳에 가는 것이 무척 설레고 즐거울 때가 있었는데 긴 여행으로 지친 우리는 낯선 환경에서 오는 긴장과 불안, 어려움들 때문에 더 이상 여행이 즐겁지가 않았다. "거기까지 갔는데 그 곳을 안가고 왔다고?"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위한 여행을 하지는 말자고 서로에게 이야기 했다. 남들이 좋다는 유명한 곳을 도장깨기하 듯 다니는 것 보다 "사람"을 만나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로코에서는 만날 사람이 없었고 이집트에서의 나쁜 기억때문에 카우치서핑을 하기도 겁이나서 우리가 가보고 싶은 몇군데만 가보기로 했다. 한국에서 이번 여행계획을 세울 때는 모로코에서 남아메리카로 차를 보내서 남미로 갈 생각도 했었지만 실제로 일년 가까이 걸려 모로코까지 와보니 이제 이 여행을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옮긴 집에서 며칠을 더 머물렀다. 창문에 방충망이 없어 모기나 바퀴벌레 같은 곤충이 들어올것이 두렵다고 탄에게 말했더니 인터넷으로 저렴한 모기장을 주문해주었다. 모기장 속에 들어가서야 시로는 벌레에 대한 불안을 이기고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렇게 그 곳에서 밀린 영상작업도 하고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봐와서 맛있는 것도 만들어 먹고 하면서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동 없이 며칠 쉴 수 있었다. 여행을 통틀어 가장 큰 충격을 받은 탕헤르를 떠나는 날이 왔다. 드디어 이곳을 벗어나는 구나 싶고 두번 다시 오고싶지 않았다. 우리는 남쪽의 '에사우이라'를 향해 출발했다. 남쪽으로 가는 길에 우리는 수도 라바트를 거쳐 카사블랑카에 왔다. 카사블랑카는 우리에게 아주 특별한 도시이다. 우리 여행에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하얀색 포터 시티밴에게 스페인어로 '하얀 집'이라는 뜻의 까사-블랑카의 앞글자를 따 "까브리"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하얀 색깔과 우리의 집과 발이 되어주고 있으니 딱 맞는 이름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이름을 가진 까브리가 드디어 자기 이름을 따온 도시에 온 것이다. 까브리가 고향에 온 듯 기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곳은 프랑스에서 만난 귀한 친구 베르나르씨의 고향이기도 했다. 모로코가 프랑스의 식민지였을때 이곳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이곳 까사블랑카에서 보냈다고 들었다. 어릴적 프랑스로 이주하기는 했지만 까사블랑카를 고향같이 느끼는 듯 했다. 프랑스에 함께 있을 때 이곳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베르나르씨가 이야기한 빵집, 시장 등을 찾아다니며 그가 좋아한 풍경을 우리도 볼 수 있어 좋았다. 까사블랑카를 떠나 남쪽으로 쭉 내려가서 에사우이라에 도착했다. 나는 해산물을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새우나 게 같은 갑각류를 무척 좋아하는데 이곳 시장에서 게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다는 영상을 보고 큰 기대를 하며 찾아왔다. 근처에 까브리를 잘 세워두고 성문같은 높은 문으로 걸어갔다. 근처에 배낭을 메고있는 여행자들이 많이 보였다. 문을 지나 시장으로 들어가자 양옆에 늘어선 오래돼 보이는 상점들과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이국적이어서 마치 인디애나 존스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시대,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아 너무 신기했다. 에사우이라 시장으로 들어가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모로코에서 납작복숭아며 애플망고 등 한국에서 무지 비싼 과일들이 엄청 저렴하고 좋아서 실컷 먹을 수 있었는데 시장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시장 안쪽에 수산물 파는 곳을 찾아왔다. 대서양에서 잡힌 각종 해산물들이 가득가득하다. 커다란 생선들과 새우, 크랩 등 다양한 종류가 진열되어 있었다. 그 중 한 가게에서 큰 게를 두마리 샀다. 2만원에 쪄주고 위층의 테이블에서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올라가서 기다리고 있으니 곧 잘 찐 게를 가져다주었다. 엄청 큰 킹크랩 크기의 게 두마리라 푸짐은한데 게 껍질이 두꺼워서 먹기가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 먹을 때는 웬만한 것은 손으로 깔 수 있었는데 여기 게는 종류가 완전 다른 것인 것 같다. 톱니가 있는 쇠집게 비슷한 장비도 있었지만 어림없었다. 우리가 낑낑대고 못 먹고 있으니 보다 못한 종업원이 깨줄까 물어보고는 가져가더니 망치로 깼는지 다리며 껍질을 부숴서 다시 가져다 주었다. 게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긴 했지만 세척이 안되었는지 모래같은 것이 씹히기도 하고 파리가 너무 덤벼서 맛있게 먹기는 좀 힘들었다. 기대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아 조금 아쉬웠다. 역시 비싼 건 비싼 이유가 있고 싼건 싼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식당을 나와 입가심으로 길가 쥬스가게에서 생과일 주스를 샀다. 다양한 과일을 즉석에서 갈아준다. 오렌지주스는 15, 복숭아주스는 20디르함으로 두 잔에 약 4500원 정도였다. 갓 짠 생과일주스를 마시니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동쪽으로 약 3시간을 달려 마라케시에 도착했다. 콘도에 숙소를 잡았는데 바퀴벌레도 없고 시설이 좋아 더 묵고 싶었지만 다른 손님이 바로 예약이 돼 있다고 해서 하룻밤만 지낼 수 있었다. 마라케시는 야시장도 유명하고 모로코의 관광도시 중 하나였지만 둘러볼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아 우리는 그냥 하루 쉬고 다시 동쪽의 사막으로 떠났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https://youtu.be/XwR3jS5eHYc?si=jmEmcSdq5b22ZUQk>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5-04-24 12:50:58<56>프랑스 '세인트 마거릿 섬'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다음날 아침 일찍 베르나르씨와 함께 골프 주엉에 다시 왔다. 베르나르씨가 자신의 차로 배 선착장에 데려다주시고 매표소에 함께 와서 표사는 것까지 도와주셨다. 현지 친구와 함께하니 헤메는 것도 없이 바로 찾을 수 있어 너무 감사했다. 매표소가 한참 안쪽에 있어서 우리끼리 왔을때 못 찾았던 것도 그럴만 했다. 일찍 왔지만 손님이 몇명 안와서 첫배 출항 시간에 배가 안뜬다고 한다. 10명 이상 모여야 출발한다고 한다. 한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 뭐 급할 것 없으니 느긋하게 자리를 깔고 앉아 드론 촬영이나 하기로 했다. 하늘에서 보는 골프 주엉은 지중해의 해변 휴양지다운 모습이었다. 바다에 드문드문 요트들이 떠있고 항구의 요트정박지에도 수많은 요트들이 줄지어 있는 풍경이 장관이다. 하늘에서 보기엔 안티베나 니스나 골프 주엉이나 비슷비슷해 보인다. 니스와 다른 점은 고운 모래사장이라는 점! 이곳은 안티베의 서쪽이므로 해변이 모래로 되어있다. 참 특이하다. 날이 맑아 지중해가 투명하게 빛났다. 한참을 기다리자 우리 뒤로 손님들이 더 왔고 한시간이 지나 드디어 승선할 수 있었다. 깨끗하고 좋은 보트 위층에 파란 의자에 앉았다. 작지않은 보트에 손님들이 가득 탔다. 한 20~30명은 돼보인다. 배가 출발하자 바닷바람에 기분이 좋아졌다. 지중해에서 배를 타보다니. 웬지 낭만적이다. 베르나르씨 아니었으면 올 생각도 못했을 섬에 배를 타고 간다. 현지 친구 덕분이다. 배에서 세인트 마거릿 섬에 대한 안내가 나온다. 칸에서 매우 가까운 섬으로 길이는 약 3km, 폭은 900m로 섬에는 요새 감옥이 있는데 17세기에 철가면을 쓴 사나이가 수감되었다고 전해진단다. 소설 '삼총사'에 나오는 그 철가면일까. 긴 선착장에 배가 멈췄다. 나무 선착장을 지나 섬에 오른다. 숲속의 오솔길같은 흙길을 걷자니 그냥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흙을 밟은 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무성하게 서있고 새소리가 청량하게 울려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같은 기분까지 든다. 한가롭게 거닐며 자연을 만끽하기 좋은 곳이다. 자연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던 세인트 마가렛섬 미리 받아온 종이 지도를 보며 섬을 탐험해보기로 했다. 섬의 서쪽 끝으로 가니 바다 건너 '칸'이 보인다. 정말 가깝구나. 다시 길을 따라 걷다보니 돌로 견고하게 지어진 성이 나왔다. 철가면이 갇혔었다는 요새 '포트로얄(Fort Royal)' 이다. 호기심에 들어가보려 했지만 입장료를 따로 받아서 그냥 성 앞에서 외부만 구경했다. 유럽의 성은 이미 많이 가봐서 비슷비슷할 것 같아 굳이 돈을 내면서 까지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철가면은 프랑스의 미스테리로 남아있는 역사적 인물로 루이 14세의 쌍둥이 형제였는데 왕위계승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한 왕실에서 어릴 때부터 유폐시켰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확인된 것은 아니다. 섬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가는 길을 따라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다. 잎사귀가 그리 맛있어 보이지는 않는데 코알라들은 왜 이것만 먹는 걸까? 코알라는 보이지 않는데 이 나무들은 어떻게 여기 자라고 있는지 궁금하다. 남쪽 해변에 도착하니 맑은 바다에 동글동글 자갈이 깔려있다. 여유가 더 있었으면 근처에 있다는 수중 박물관에도 가봤을텐데 물에 들어가기엔 옷이며 씻어야 하는 등 일이 커져서 그냥 해변 적당한 곳에 자리를 깔고 바다를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수영복을 입고 바다에 들어가 놀고있는 꼬마들을 보고는 나도 바지를 걷어올리고 살짝 발을 담가보았는데 으아, 생각보다 물이 차서 금방 나왔다. 저 꼬마들은 어떻게 이런 차가운 물에서 노는지 대단하다. 좀 더 들어가면 온도가 따뜻한걸까? 물어보고 싶지만 불어가 안된다. 가족단위 나들이객들이 많이 보였다. 해변에서 태닝을 하며 한가로이 햇빛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그늘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즐겼다. 해변의 나무그늘에 누워서 바라보는 하늘과 바다는 마냥 평화롭고 보아도 보아도 싫증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철가면 이야기때문에 방문하게 되었으나 숲길을 걷고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좋았던 세인트 마거릿 섬. 한적하고 평화로운 섬에서 잘 즐기고 갑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베르나르씨와 여행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A2사이즈의 세계지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자신이 여행하고 다녀온 나라와 도시에 색깔 스티커를 붙여놓았다. 빼곡하게 붙어있는 스티커들을 보니 전세계 안가본 곳이 거의 없어보인다. 특히 빨간 점은 카우치서핑을 했던 곳이라고 한다. 우리가 카우치서핑을 알고 시작한 것은 약 12년 전이었는데 베르나르씨는 카우치서핑이 시작한 초창기부터 멤버이셨던 거였다. 한국과 일본에서도 카우치서핑을 하셨다고 한다. 좋은 분들을 만나셨나보다. 한국에 대한 기억이 좋으신걸보니. 남극과 가장 가까운 남미의 파타고니아, 우수아이아의 빙하까지 보고 오셨다고 한다. 남아프리카에서 기린과 코끼리들도 보고 그러나 아직 아이슬란드는 안가보셨다고 한다. 하하 우리는 얼마 전 다녀왔다고 꼭 가보시라고 추천해드렸다. 우리가 떠나기로 한 날이 다가오자 베르나르씨가 우리를 붙잡으셨다. 몇일 더 머물다가라고 조르신다. 손님은 오면 좋고 가면 더 좋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렇게 더 있다 가라고 하는 호스트는 참 드문데 너무 감사하다. 안티베에 숨겨진 산책로를 보여주겠다고 유혹하셔서 넘어가드렸다. 그리고 우리뿐 아니라 대만에서 베르나르씨를 호스트했던 다른 서퍼도 만났다. 그분은 베르나르씨가 운영하는 에어비앤비에 몇일 묵으며 우리와도 친분을 나누었다. 카우치서핑으로 만났지만 알고보니 같은 회사(Air France)에서 일하고 있었다고 한다. 참 신기한 인연이다. 베르나르씨의 인도로 대만친구와 함께 안티베 시내로 가서 커다란 귀족저택같은 집들을 지나니 작은 숲길이 나왔다. 이 일대의 땅의 소유주가 이 넓은 땅을 시에 기증해서 공원이 되었다고 한다. 도시안에 나무가 우거진, 굽이굽이 이런 오솔길이 있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이곳은 관광지는 아니고 현지 사람들만 아는 산책로인듯 하다. 중간에 멋진 바위 동굴도 나오고 바닷가옆 절벽도 지나고 프라이빗 해변도 있다. 이곳이 누구나 올 수 있는 공원이 되었다니 좋은 일이다. 숨겨진 자연을 탐험을 하는 기분으로 즐겁게 산책했다. 베르나르씨께 식객으로 있은지 벌써 6일. 이제는 정말 떠날 때가 되었다. 베르나르씨는 잊지않고 작은 도자기 인형들을 가득 가지고 나와 원하는 만큼 가져가라고 주셨다. 나는 달모양 등 귀여운 인형 5개를 골라가졌다. 그 외에도 에어프랑스에서 일하실 때 받아 가지고 있던 귀한 기념품이며 여러가지를 자꾸자꾸 선물해주셨다. 너무 감사해서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마지막으로 짐을 챙겨 차로 가는데 짐까지 함께 날라주시고 우리가 떠나는 것이 못내 서운하신 것이 역력하셔서 우리도 마음이 참 안타까왔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백명도 넘는 카우치서퍼들이 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몰래 눈물을 훔치시는 것 같았다. 가장 어려운 작별이라고 하신다. 정말 마음을 다 내어주신 베르나르씨께 어떻게 감사를 해야할지 몰랐다. 만나서 행복했다고 서로 진심이 담긴 인사를 하고 긴 포옹으로 인사를 마쳤다. 다음에 한국에 또 오시게 되면 반드시 우리집에 초대하겠다고 몇번이고 다짐했다. 베르나르씨는 우리 차가 안보일때까지 길에서서 손을 흔들어주셨다. 베르나르씨와 함께한 시간, 그의 배려와 맛있는 프랑스 가정식들 모두 하나하나 절대 잊지않고 기억할 것이다. 베르나르씨 한국에서 만나요!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ujDNwuYg8V0?si=MwZtzQJ8HhGqibK->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5-03-27 17:54:24<53> 룩셈부르크-프랑스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아이슬란드에서 비행기를 타고 다시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와서 기차를 타고 친구집이 있는 슈투트가르트로 돌아왔다. 친구와 아이슬란드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우리는 까브리를 타고 다시 길을 떠났다. 룩셈부르크는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있는 작은 나라다. 베네룩스 3국 중 하나다. 이 작은 나라가 GDP 세계 1위라고 하는데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들렀다. 날이 흐리고 비가 오는 날씨라 거리는 우중충해보였다. 높은 빌딩은 찾기 힘들고 현대적인 10층 아래의 낮은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는 것이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고,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다. 시내의 건물과 다니는 차들, 사람들 모두 유럽 여느 도시들과 느낌이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가 20대때 많이 듣던 크라잉넛의 룩셈부르크 노래가 떠올랐다. 룩, 룩, 룩셈부르크에 왔다. 제주도의 1.4배 크기이고 인구는 약 64만명으로 경기도 안산시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서비스업, 금융업의 비중이 높으며 비밀보장, 절세 등의 이유로 다국적 기업들이 이곳에 자회사를 설립한 경우가 많아 GDP가 그렇게 높다고 한다. 한국이 3만5000불, 룩셈부르크는 13만 5000불, 거의 4배가까운 차이가 나는데 길에 다니는 미래에서 온 것 같은 고급스러운 트램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물가까지 서너배 비싼건 아니라 다행이다. 유럽 다른 나라에 비해 룩셈부르크에서는 '휘발유·담배·술' 등 3가지가 싸다고 한다. 휘발유는 독일이 1.7~2.1유로 정도였는데 여기는 1.4 유로 정도로 저렴하다. 기름이나 빵빵하게 넣고 프랑스로 넘어가야겠다. 만날 친구도 없고 딱히 볼 것도 없어 우리는 계속해서 남쪽 프랑스로 향했다. 지방도로로 다니면 고속도로보다 속도는 느리고 길을 잘 찾아야 하지만 길가 풍경과 사람 사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어서 좋다. 멋진 가로수가 길게 이어진 길을 지나고 유럽의 농가를 구경한다. 노란 꽃밭도 지나고 오늘의 쉴 곳 캠핑장에 도착했다. 유럽은 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숙소를 잡을 엄두를 쉽게 못낸다. 대신 캠핑장이 잘돼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여행 후 처음으로 캠핑장을 찾아왔다. 넓은 캠핑장에 캠핑카들이 띄엄띄엄 자리잡고 있고 우리도 예약된 사이트를 찾아 잘 주차했다. 조용하고 쉬기에 좋았지만 역시 씻거나 세탁을 하기에는 많이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자연 속에서 조용히 하루를 보내고 나왔다. 프랑스는 남한의 5배크기라고 한다. 산도 많고 숲도 우거지고 마을도 많아 참으로 풍요로워 보인다. 내가 나무를 이렇게 좋아하는 줄 몰랐다. 나무들이 많이 보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리옹(Lyon)에서 가까운 스키리조트에 저렴한 숙소를 찾아내어 그곳으로 향한다. 아이슬란드에서 걸린 감기가 낫지를 않아 숙소를 잡고 몇일 쉬고 싶었다. 하지만 프랑스 물가가 워낙 높아서 겨우 찾은 저렴한 숙소는 시즌이 끝나 사람들이 잘 찾지않는 스키리조트의 콘도였다. 산길을 차로 오르고 올라 해지기 전 무사히 도착했다. 우리 숙소는 19층이었는데 아주 작은 원룸 스타일로, 방은 작아도 있을 것은 다 있었다. 최대 4명이 잘 수 있는 이층침대와 싱크대, 욕조가 있는 화장실과 세탁기 등 부족함이 없는 좋은 곳이었는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창밖으로 보이는 뷰가 예술이었다. 기대하고 온 것이 아니라 더 놀라운, 산 위에 지어진 높은 리조트 19층에서 내려다보이는 산의 풍경이 너무너무 아름다웠다. 가까이 작은 스위스풍의 집들에서 저 멀리 설산이 겹겹히 보이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자연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것 같다. 몸도 마음도 편안해지는 것 같아 잘 회복할 수 있었다. 프랑스 남부의 안티베(Antibes)로 카우치 서핑 친구를 만나러 간다 맥도날드에 아침을 먹으러 들렀다. 우리나라에선 아침엔 맥모닝 메뉴만 가능한데 프랑스의 맥도날드에서는 아침에도 빅맥을 먹을 수 있다. 프랑스는 어느 곳을 다니던 풍경이 참 아름다웠는데 남부의 국립공원을 지나는 드라이브를 할 때 특히 멋진 바위 산과 숲과 나무들 그리고 시골 마을 등 볼 것이 많아 더 기억에 남았다. 탄이 카우치서핑에서 호스트를 검색하다가 한국을 여행했다는 베르나르씨를 발견하고 메세지를 보냈더니 감사하게도 우리 요청을 받아주셨다. 베르나르씨가 사는 안티베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작은 도시로 니스와 매우 가깝다. 안티베가 가까워지자 '오늘 오후에 도착하겠다'고 베르나르씨께 문자를 보냈다. 생각지 않은 저녁을 준비해주신다고 한다. 감사한 마음에 가게에 들러 와인을 한 병 샀다. 프랑스인이니 와인을 좋아하시겠지 하는 마음이다. 베르나르씨 집앞에 도착하자 거대한 철문 앞으로 마중을 나오셨다. 이곳에 차를 주차하기가 쉽지 않다며 베르나르씨의 차를 옮기고 그 자리에 우리 까브리를 주차하라고 배려해주신다. 호스트가 주차까지 신경써주시는 것은 처음이다. 너무너무 감사했다. 베르나르씨는 철문 안쪽 주차장에 차를 주차할 자리가 있는데도 우리 자리를 맡아주기 위해 바깥에 차를 대셨던 것이다. 알고보니 우리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이신 머리가 하얀 노인이셨다. 외국 사람은 다 키크고 코가 크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베르나르씨는 탄이보다도 아담한 키에 귀여운 노인이셨다. 주차를 한 후에 우리는 함께 철문을 지나 넓은 정원 끝 빌라에 갔다. 방이 하나밖에 없는데 우리에게 더블베드가 있는 방을 내주시고 자신은 거실 쇼파에서 주무신다고 한다. 우리가 말도 안된다고 만류하고 "카우치 서핑이란 쇼파를 빌리는 건데 왜 주인이 쇼파에서 자냐"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끝끝내 그렇게 잠자리를 정하셨다. 할아버지를 쇼파에서 주무시게 하는 것이 편치 않았지만 워낙 뜻이 확고하셔서 친절을 감사히 받기로 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사흘정도 머물기로 했다. 첫날엔 베르나르씨가 만든 라따뚜이로 저녁을 먹었다. 프랑스 가정식 라따뚜이라는 것을 처음 먹어보았는데 몸도 마음도 편해지는 좋은 음식이었다. 재료도 훌륭하고 맛도 있었다. 여행을 매우 사랑하는 베르나르씨는 일본과 한국을 가장 좋아한다 베르나르씨는 비행기를 매우 사랑하는 굉장한 여행가였다.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젊은 시절 프랑스항공에 다니셔서 여행할 기회가 무척 많았다고 한다. 세계 여러나라를 다니셨지만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는 일본과 한국이라고 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일본과 한국은 자꾸 가고 싶은 곳이라고 한다. 어떤 여행지는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고 어떤 여행지는 새로운 것은 없어도 자꾸 가고싶어지는 곳이 있는데 한국과 일본이 그렇다고 했다. 한국에는 총 5번인가 방문하셨다는데 다행히 한국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기억들을 가지고 계셨다. 베르나르씨의 거실에 한국 돗자리가 깔려있었는데 전라도를 여행할 때 숙소에 깔려있는 돗자리가 마음에 들어서 호스텔에 구입방법을 물어보고 사오셨다고 한다. 프랑스인이 사는 집 거실에 한국 돗자리가 깔려있다니, 무척 반가웠다. 우리처럼 베르나르씨도 대도시보다 소도시 여행을 좋아하신다고 한다. 한국의 소도시 여행을 하며 겪은 에피소드를 몇가지 이야기해주셨는데 25년 전 첫 한국여행 때도 서울을 거쳐서 국내선 환승으로 바로 부산에 가셨다고 한다. 지금은 부산도 큰 대도시이지만 당시에는 그렇게까지 번잡하지 않아보였다고 했다. "산위에 있는 어떤 큰절에 갔어요. 그때 그 곳에 외국인 관광객은 나 혼자 밖에 없었지요. 그 절에 어떤 문이 열려있는 것을 보았고 사람들이 들어가려고 줄을 서있었어요.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 저도 줄을 섰습니다. 줄을 따라가다가 입구에 다다랐을 때 정원은 없고 복도가 나왔어요. 그 곳에서 음식을 나눠주고 있더라구요. 얼떨결에 안내를 받았습니다. 그 줄이 음식을 받는 줄인줄 몰랐었어요. 저는 자리를 잡고 음식을 받았습니다. 노인과 은퇴한 사람들이 음식을 받으러 왔던 것 같아요. 평일이었고 젊은 사람들은 일하러 간 시간이었습니다. 밥을 먹고 있는데 아주머니들의 수다가 시작되었어요. 아주머니들의 이야기 소리에 졸음이 몰려오더군요. 그곳에서 잠이 들었어요. 몇 분 후에 잠에서 깨고 나서 행복함을 느꼈습니다." 베르나르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때의 상황이 어땠을지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눈에 그려지는 그 상황이 너무도 재미있었고 작은 외국아저씨가 절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음식을 먹고 잠이 든 것을 본 부산아지매들이 어땠을지 상상이 가서 계속 웃음이 났다. 이야기를 나누는 베르나르씨도 그때를 회상하며 다시한번 행복해 하시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는 베르나르씨의 집에 머물며 다른 어디에서보다 더 많은 대화와 깊은 마음을 나누었다. 베르나르씨는 손수 만든 음식으로 우리를 정성껏 대접해주셨고 전세계를 여행한 그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1층에 위치한 베르나르씨의 집에는 집보다 더 넓은 정원이 있어서 잔디며 나무들이 자연스럽게 자라나고 있다. 매일아침 그의 정원에 비둘기 비슷한 새가 찾아온다. 가끔 여러 마리가 오기도 하는데 특히 목 뒤에 무늬가 있는 새는 베르나르씨의 친구였다. 그 새를 위해 모이와 예쁜 그릇을 준비놓고 매일 조금씩 주는 것이 일과의 하나라고 한다. 우리는 매일 그 새가 날아와서 모이를 먹는 모습을 보고 정말 신기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NUkqBFtVuUc?si=tZUeB5xZ8DkV6uTO>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5-03-06 11:10:37<51> 아이슬란드 북부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아이슬란드 여행 6일 차. 섬 동부에서 북부쪽으로 이동한다. 간만에 날씨가 맑아 기분이 좋다. 길이 산으로 이어져 지그재그 도로로 올라가다보니 산아래 바다로 이어진 평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 무척 멋있었다. 거의 정상까지 올라왔는데 길 위에 눈이 눈사태같이 쏟아져 막혀있는 곳에 다다랐다. 차를 세우고 내려서 살펴보니 꽁꽁 얼어있어 답이 안 나온다. 아무리 우리 렌트카가 4륜구동 지프라도 빙판에 경사도 무척 가팔라서 그대로 통과하다가 잘못하다 미끄러질지도 모르는 상황. 고민고민하다가 결국 산을 다시 내려가 다른 길로 돌아가기로 했다. 겨울의 아이슬란드에 오면 이렇게 갑자기 갈수 없게 된 도로를 만나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4월이었지만 아직도 산 위에는 눈이 안 녹은 곳이 많았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산을 넘을 수 있는데... 너무 아쉬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아쿠레이리이다. 수도인 레이캬비크에 이어 아이슬란드의 제 2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섬을 시계로 생각하면 12시 방향에 있는데 어제까지 머물렀던 동쪽의 에이일스타디르에서 약 3시간 거리이다. 에이일스타디르에서 아쿠레이리까지 3시간 걸린다 우리의 아이슬란드 여행 계획을 카우치서핑에 올렸더니 감사하게도 아쿠레이리에 사는 친구가 우리를 초대해주었다. 친구를 만날 생각에 마음이 마구 설레었다. 아이슬란드의 어마어마한 물가에 며칠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보다도 바쁘게 여행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좋았고 아이슬란드에 대해 현지 친구에게 많은 것을 물어보고 싶었다. 어젯밤 새벽에 외진 곳으로 차를 몰고가서 한참을 하늘을 바라보고 기다렸는데 오로라를 볼 수 없었다. 친구에게 오로라에 대해서도 물어봐야겠다. 또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 친구가 좋아하는 장소를 알려달라고 해서 찾아가 보고싶다. 여행지에서 현지 친구가 생기면 좋은 것들이 너무너무 많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친구네 집으로 향한다. 회색 구름으로 꾸물꾸물해진 하늘아래 아쿠레이리에 도착했다. 가장 눈에 띈 것이 길가의 빨간 신호등. 하트모양으로 켜진다! 와, 정말 쇼킹하다. 왜 우리는 이런 생각을 못했지? 너무너무 예쁘다. 신호등 불이 동그랗기만 할 필요가 뭐있나. 가는 곳 마다 빨간 하트를 보고는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보통 신호등을 건널 때 빨간불이 켜지면 좀 답답하고 기분이 별로인데 이 하트를 보고 있으면 빨간불이어도 덜 답답하고 심장을 연상하면서 더 주의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쿠레이리가 여러모로 마음에 든다. 친구네 집에 가기 전 핑크색 돼지가 상징인 보너스라는 마트에 들렀다. 살인적 물가의 아이슬란드에서 그나마 식료품 등을 가성비 있게 살 수 있는 곳이다. 높은 물가로 외식이 어려워 식료품 구입이 중요하다 친구와 함께 먹기 위해 고기와 채소 그리고 과일을 잔뜩 샀다. 친구의 집에 도착하니 은색 기아 소렌토 차량이 집 앞에 서있다. 메세지로 대화를 나눌 때 한국차가 있다고 했는데 친구의 차인 모양이다. 친구의 차 기아쏘렌토 아이슬랜드 험로를 다니기에 좋은 선택이었나보다. 친구의 집은 2층 주택이었는데 담도 없고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 안전한 동네 같아 보이고 좋았다. 더부룩한 턱수염에 거의 2미터가 되어 보이는 장신인 비기는 친절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우리가 묵을 방은 커다란 더블배드에 깨끗하고 좋은 환경이었다. 비기는 주로 재택근무를 한다고 한다. 인사후 비기는 다시 일을 하러 방에 들어가고 우리는 저녁을 준비했다. 상추를 닮은 채소를 쌈채소 삼고 돼지고기를 굽는다. 쌀이 없는 것이 조금 아쉽지만 튀르키예 메르신에서 받은 인스턴트 떡국과 한국에서 가져온 고추장, 캔김치까지 한식 한상차림이다. 비기는 여행을 무척 좋아하고 경험도 무척 많았다. 한국에는 아직 안가봤지만 2020년 일본에 갔다가 코로나로 돌아와야 했다고 한다. 한국에 대해 무척 궁금해하며 이것저것 많은 것을 물어보았다. 식사하며 맥주를 마시다가 한국에서는 건배를 할 때 뭐라고 하냐고 물어봐서 "짠!"이라고 대답해주었다. 건배사가 너무 많아서 가장 쉬운 것으로 골라 알려주었다. 서양사람들이 매운 것을 못 먹는다는 것은 선입견일 뿐이다. 물론 잘 못 먹는 사람도 있지만 의외로 매운 것을 좋아하고 잘 먹는 사람들도 많다. 비기도 매운 맛을 좋아해서 고추장을 맛보고는 무척 좋아했다. 고기를 채소에 싸먹는 것을 알려주니 계속 그렇게 먹는다. 절대 한입에 다 넣어야한다고 제대로 가르쳐주었다. 즐겁게 식사를 하며 아이슬란드에 대해서 여러가지를 묻고 들을 수 있었는데 여기도 과거 가난한 나라였다가 2차대전 이후 경제발전을 이루었다고 한다. 한국과 비슷한 것이 흥미로왔다. 아이슬란드 전통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비기가 상어고기를 냉장고에서 꺼내왔다. 딱 보기에 하얀 참치살덩이 같아보이는 것이 시큼한 냄새가 나는 걸 보니 삭혔나보다. 하나 쿡 찍어 입에 쏙 넣은 탄이랑 달리 나는 냄새부터 맡아보고 먹으려 입을 벌리다가 멈칫. "어우, 나는 쉽게 못 먹겠는데?" 하며 웃었다. 탄에게 확인해본다. "괜찮아?" "응~" 탄이 잘 먹고 있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내어 한입에 넣었다. 맛있다기보다는 먹을 수 있을 정도인 것 같다. 아이슬란드에서도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한다. 좋은 경험이었다. 상어도 먹어보고ㅎㅎ 저녁식사 후 비기의 소장품을 구경했다. 어릴 때 삼촌과 새알을 찾아다니는 것이 취미였다고 한다. 멋진 투명케이스에 크기와 색이 다른 여러가지 새알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다 직접 주워온 것이라고 한다. 제일 큰 것이 백조알이라고 하는 얘기에 깜짝 놀라며 "오 나 백조알 처음 봐요!"하자 비기가 갑자기 케이스를 열고 백조알을 꺼내어 내손 위에 올려놓는다. 살짝 당황했지만 깨질까 조심조심 두 손으로 알을 받아 보았는데 달걀의 네다섯배는 되보이는 크기에 무척 단단한 느낌이다. 신기했다. 아이슬란드라서 가능한 취미일 것 같았다. 알 컬렉션이라니. 그렇게 비기네서 3일간 머물면서 그 근처를 여기저기 마음 편히 돌아다니기로 했다. 탄이는 목감기가 빨리 낫지를 않아 힘들어하면서도 여행을 하기 위해 애를 썼다. 다음날은 날씨가 맑아 동네 근처를 드라이브하러 나왔다. 어딜 가나 처음 보는 자연의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삼각형으로 흘러나온 용암이 굳어진 듯한 높은 산맥이 줄지어 있는 모습을 보고 마치 검은 피라미드가 늘어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어젯밤 비기가 해준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다니면서 왜 이렇게 나무가 없다 했는데 역시나 아이슬란드 전체에 나무가 있는 지역이 거의 없다고 한다. 동물들도 여우와 새들이 조금 있을뿐이라 예전에 유럽에서 순록을 데려와 풀어놓고 길렀는데 혹독한 기후에 서쪽에는 다 죽어버리고 동쪽에 조금 남아있다고 한다. 겨울에 얼마나 추운지 경험해보지 않아 잘은 모르겠지만 맑은 물도 이렇게 많고 넓은 땅에 나무와 동물이 거의 없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길을 가다가 일차로밖에 없는 터널을 만났다. 반대편에서 차가 오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중간중간에 잠깐 옆에 댈 수 있는 조금 넓은 곳을 찾아 비키면 된다. 그러니 속도를 절대 높이지 않고 조심조심 가야한다. 워낙 큰 땅에 적은 수의 사람이 살다보니 도로도 일차로인 경우가 많아 한쪽이 지나가기를 기다린 후 가야하는 길도 자주 만난다. 확실히 북쪽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많은 관광객이 레이캬비크를 중심으로 남서쪽에 주로 다녀서 그런가보다. 덕분에 우리는 한적한 풍경을 여유있게 보며 다닐 수 있었다. 북쪽 바다를 볼 수 있는 쉼터에 멈춰서서 북극이 있을 곳을 쳐다보기도 하고 절벽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를 구경하기도 하고 마음 가는대로 다니는 것이 참 좋았다. 비기네 집에 들어가기 전 다시 마트를 잠시 들렀는데 한 구석에 맥주를 무지 싸게 파는 것 같아 놀라서 가보니 논알콜 맥주라고 한다. 맥주는 정부가 운영하는 특별한 가게에서만 비싼값에 판다고. 비기에게 오로라에 대해 물어보니 오로라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페이스북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그리고 앱도 하나 알려줬는데 매일매일 아이슬란드 지역별로 오로라지수가 나오는 앱이어서 오로라헌터들이 반드시 깔고 지수가 높은 날을 확인하고 나온다고 한다. 우리도 페북도 가보고 앱도 깔아두었다. 마침 오로라지수가 조금 높은 KP 4가 떴다. 방해안되게 조용히 새벽 1시에 나가보았지만 그 시각에도 하늘은 완전히 까매지지 않았고 아쉽게도 오로라는 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여러번 시도를 하는 것이 나중에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어두운 곳을 찾아 도시에서 멀리 벗어난 곳까지 갔던 것이 여러차례인데 모두 실패했다. 가기전에 볼 수 있을까? 궂은 날씨에 도착한 온천 '지오씨'...따뜻한 온천욕을 할 수 있겠지? 일어나보니 눈보라가 휘날린다. 비오는 날은 자주 있었는데 눈이 내리는 것은 처음이다. 오늘은 아쿠레이리에서 북쪽으로 한시간거리의 지오씨(Geosea)에 왔다. 남부의 블루라군이 온천 관광지로 유명한데 인당 14만원이 넘는 입장료가 너무 부담이 되어 대신 이곳을 찾아왔다. 넓은 주차장에 차가 몇대 없다. 이곳의 입장료는 약 5만7000원. 알뜰한 탄이가 모바일 쿠폰을 다운받아와서 10%할인도 받았다. 인터넷으로 다운받았는데 진짜 할인해줄까 싶었는데 흔쾌히 해준다. 탄이와 헤어져 탈의실로 들어갔는데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실내가 매우 고급스럽고 깨끗하다. 샤워시설과 비치용품들도 매우 품질이 좋았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가보니 거센 바람에다가 무지 추워서 김이 모락모락나는 물속으로 곧장 들어갔다. 물 온도도 적당하고 너무 좋다. 이곳은 해수 온천이라 짠물이다. 바다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 뜨끈한 온천욕을 하며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 너무너무 매력적이었다. 사람들도 많지않아 편안하게 온천을 즐길 수 있어 좋았다. 탄이도 무척 행복해한다. 얼굴에는 눈송이가 떨어지지만 몸이 따뜻하니 기분이 좋다. 풀도 꽤 넓고 여러개가 있어서 이곳저곳을 다녀보는 재미가 있다. 한 쪽에는 음료와 스낵을 파는 곳이 있는데 가격이 후달달하다. 점심시간이 되어 출출해졌을때 탈의실 라커에 가서 미리 비기네에서 만들어온 샌드위치를 먹었다. 탄이에게도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말고 탈의실 가서 잘 먹으라고 줬다. 조금 궁상스럽기는 했지만 이곳 물가를 보면 기꺼이 그럴만 하다. 온천에 들어가있는데 추운 날씨에 수증기가 머리에 맺힌 것이 얼어버렸나보다. 탄이 보고 안스러워한다. "아니야 괜찮아. 하나도 안추워. 따뜻하고 편하고 너무 좋아." 한쪽에는 습식 사우나도 있었는데 사람이 없어 우리가 전세내고 마음껏 즐겼다. 규모는 크기 않지만 온천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던 지오씨, 아이슬란드에서 최고로 좋았던 경험이다. 바다와 눈 쌓인 산을 바라보며 뜨끈한 온천욕을 즐긴 추억은 평생 갈 것 같다. 아이슬란드 여행 중 최고의 경험이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hN2xDlFg720?si=1fYzN4IZ2Wq1QmUj>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5-02-18 14:02:15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퀼른에서 5시간 걸려서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탄의 동창인 수운씨가 직장인 기아자동차에서 1년간 주재원으로 파견되어 연구소에서 근무 중이다. 수운씨가 퇴근하기를 기다려서 드디어 오랜만에 타국에서의 상봉을 했다. 다음달이면 다시 한국으로 복귀할 예정이었기에 다행히 타이밍이 맞아 독일에서 만날 수 있었다. 학창시절 탄이도 수운씨도 차를 참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어 친해졌고 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고 했다. 수운씨가 사는 집근처는 까브리를 주차할 곳이 마땅치않다고 해서 연구소 옆에 두고 수운씨 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가면서 지금 타고 있는 차가 수운씨가 디자인한 차라는 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집에는 와이프인 유숙씨가 소고기 뭇국에 제육볶음을 차려놓고 우리를 맞아주었다. 오랜만의 한국식 집밥에 좋아서 어쩔줄을 몰랐다. 감사하며 맛있게 식사를 하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함께 독일에서 사는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장 큰 이슈는 역시 여행이었다. 친구부부도 독일에 있는 동안 부지런히 유럽 여기저기를 많이 다녔다고 한다. 특히 아이슬란드가 좋았다며 적극 추천을 한다. 아이슬란드 여행은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친구의 강추에 마음이 흔들렸다. 독일 도착전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었는데 우리가 도착한 후 다음날 친구부부는 스페인의 섬에 놀러갈 예정이라 우리가 편하게 그 집을 사용하라는 고마운 제안을 해주었다. 카우치서핑 말고 한국사람이 이렇게 대해주는 것은 처음이라 정말 괜찮겠냐고 물었더니 "너희 원래 이렇게 다니던데?"하며 오히려 되묻는다. 우리 유튜브를 봤나보다. 너무 감사했다. 다음날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친구부부는 여행을 떠났다. 캬하하, 오늘부터 며칠간은 우리가 이 집을 점령한다! 1층엔 넓은 거실공간과 주방이, 2층에는 침실과 욕실이 있는 구조로 한국에서 거의 복층 원룸 느낌인데 유럽 월세가 비싸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곳 한달 렌트비가 300만원이 넘는다니 정말 살기 무서울 정도가 아닌가 싶다. 다만 가구며 가전제품등이 풀옵션이니 이렇게 일년 살기에는 좋을 것 같았다. 친구네 집이 1층이라 작은 야외공간이 있는데 가끔 놀러오는 청솔모랑도 친해지고 잘 쉬고 잘 해먹고 영상작업도 하며 편안히 지낼 수 있었다. 자동차경주가 열리는 세계 최고 서킷 '뉘르부르크링'을 찾다 하루는 조금 떨어진 뉘르부르크링이란 곳을 찾아갔다. 뉘르부르크링은 자동차 경주가 열리는 세계 최고의 서킷중 하나인데 특히 위험한 것으로 매우 악명이 높았다. 나도 어릴적 TV에서 이곳에서 레이싱을 하다 레이싱카가 불에 휩싸이고 사람이 죽었다는 다큐를 본적이 있었는데 엄청 인상 깊게 봤어서 여태까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코스가 어려워 사고가 잦고 사망사고도 크게 터진 것이 여러번이라 "초록 지옥(Green hell)" 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탄의 꿈 중 하나가 이곳 서킷을 도는 것이었다. 이왕이면 까브리로 직접 서킷을 운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헐, 그 위험한 서킷을 까브리로?" "아 물론 안전하게 천천히 달리겠지. 하핫" 일단 가서 물어보기로 하고 서킷을 찾아갔다. 가까와오자 철조망이 길게 이어진 너머로 쌩~하는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 "오 저쪽이 트랙인가봐." 서킷으로 가는 길에 택배차량을 개조한 까브리가 유독 튈 것이 예상되었다. "사람들이 저 화물차가 여길 왜 왔나 하겠다."라고 하자 탄이 "배달하러 왔나보다 그러겠지."라고 한다. 듣고보니 그렇겠다. 하하하. 서킷 입구쪽에 현대자동차의 깃발과 광고판들 그리고 현대차들이 많이 서있는 걸 발견하고 반가와서 "오 여기 현대!"라고 하자 탄이가 알고 있다는 듯이 "어 지금 현대가 여기 뉘르부르크링에서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하는 중"이라고 한다. 우연히 현대자동차 행사하는 날에 도착했나보다. 입구에서 매표소(Ticket office)를 발견하고 들어갔다. 탄이 전에 유튜브에서 택배차량이 서킷을 주행한 것을 본적이 있다며 한번 물어나 보겠다고 한다. 직원에게 까브리로 서킷을 운전할 수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역시나 너무 커서 안된다고 한다. 이곳 뉘르부르크링을 일반인이 경험해볼 수 있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는데 자기 차를 가져와서 트랙이용료(39유로)를 내고 스스로 운전해서 도는 것과 "택시"라는 방법으로 전문 레이서가 운전하는 레이싱용 차량에 타서 트랙을 돌아보는 것이다. 아쉽게도 첫번째 옵션은 우리 차로 불가능. 빠르게 포기하고 우리는 좀 비싸지만 택시를 타기로 했다. 택시도 장점이 많다. 언제 전문 레이서가 모는 차를 서킷에서 타보랴. 택시도 차 종류에 따라 가격이 100에서 500유로까지 다양했는데 2명이 150유로에 탈 수 있는 현대 N택시를 타기로 했다. 첫 경험에 페라리나 포르쉐를 탈것까지는 없을 것 같았다. 주차장에는 우리차 말고도 멋진 세단과 스포츠카들이 많이 있었는데 오후 5시부터 2시간 반 동안 트랙이 관광객들에게 오픈되어 트랙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이곳에서 드라이빙을 하는 것이 평생의 꿈인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다들 흥분된 표정으로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흥분되고 마구 설레었다. 내 발로 뉘르부르크링 서킷 안으로 한발 들어서는 순간 웬지모를 감동이 느껴졌다. 우리가 탈 차 "현대 i30N 해치백 & 페스트백"이 줄지어 서있는데 멋진 그래픽으로 꾸며져있는 모습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옆에 있는 포르쉐 택시보다 더 멋있는 것 같았다. 현대 N택시 가격은 99유로이고 한명 더 타면 40유로가 더해진다. 차를 좋아하는 탄에게 이 탑승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잘 알기에 나는 당연히 뒷자리에 타고 탄이 동승석에 타라고 권했는데 몇번 사양을 하긴 했지만 좋아하는 것이 보였다. 매우 흐뭇했다. 우리가 탈 차의 레이서는 마크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인사와 악수를 나누었는데 특히 나를 걱정해주었다. 속도가 매우 빨라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같아서 나는 롤러코스터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안심을 시켜드렸다. 앞좌석 중앙의 모니터에 후방카메라 화면을 계속 켜놓을테니 뒤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보라고 설명해주셨다. 계속해서 각 코스와 과정을 친절히 알려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차단기가 올라가고 드디어 트랙위를 달리기 시작하자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와, 내가 드디어 뉘르부르크링을 달리는구나.' 푸른 하늘에 구름이 조금 껴있는 서킷 드라이브하기엔 완벽한 날씨다. 마크가 이곳은 저속구간이라 천천히 가는 것이고 곧 이곳을 벗어날것이다라고 설명을 해주니 탄이 "네 저는 유튜브에서 이곳을 주행하는 영상을 무척 많이 보고 왔어요."라며 대답한다. 마크가 "아 그러면 당신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두 알고 있겠군요."라고 재미있어했다. 저속구간을 지나자마자 마크는 앞에서 꾸물대는 일반 운전자 차량을 무서운 속도로 따돌리며 치고 나갔다. 너무 신이났다. 차를 좋아하는 탄이는 이 뉘르부르크링 트랙을 콘솔게임으로 수백번을 돌아보았다고 했다. 거기다 실제주행영상까지 보고 또 보았으니 직접 온건 오늘 처음이지만 낯익은 곳일 수 있는 재미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뉘르부르크링을 도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겁나게 빠른 속도에 도로의 작은 굴곡을 만나면 그냥 날아가는 느낌이다. 탄성이 안나올 수가 없다. 탄도 실제 레이서의 운전솜씨를 바로 옆에서 보고 느끼며 연신 감탄을 한다. 마크는 자로 잰듯 정확하게 커브에서 인코스와 아웃코스를 돈다. 속도가 거의 줄어들지 않아 몸에 실리는 관성력이 장난이 아니다. 마크가 다음은 슈베덴크로이츠(Schwedenkreuz) 섹션을 빠르게 지나갈거라고 이야기하자 탄은 어디인지 잘 아는 것 같았다. 그리고 포르쉐를 추월할거라고 예고하고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 무척 멋져보였다. 아무리 비싼차를 타고간들 전문 레이서에겐 그저 느린 차일 뿐이다. 하하하. 뉘르부르크링이 악명이 높은 이유는 커브도 격렬하지만 상하로 오르락 내리락하는 구간이 많아 전방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로 속도를 내다가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더더욱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몸이 붕 뜨는 느낌이 계속 되었고 폭발하는 아드레날린을 느끼며 환호성을 질렀다. 마크는 계속해서 여우굴(Fox hole), 미스-히트-미스(Miss-hit-miss) 등 각 코스의 이름과 특징을 알려주었다. 구간마다 이름이 있고 특징이 다 다른가보다. 베어사이판(Wehrseifen) 구간은 가장 느리게 통과하는 곳이라서 기어를 3단으로 변속해야 한다고 하는데 나의 체감에는 여전히 빨랐다. 다음 코너는 유명한 레이서 니키 라우더가 사고로 F1 레이싱카를 잃은 곳이라고 한다. 이야기를 들으며 지나가니 코스가 다르게 느껴진다. 느리게 다니는 비싼 차들을 추월하는 재미가 매우 쏠쏠하다. 마크가 다음 구간은 유명한 카라치올라-카루셀(Carraciola-Karussell)이라고 하자 탄이 반가워하며 아는 척을 한다. 가파른 경사로 180도 커브를 도는 구간이다. 레이싱 경기에서 보던 장면속에 들어온 듯 몸이 기울어지는 경험이 완전 신기하고 특별하다. 탄이가 게임에서 경험한 느낌과 완전히 다르다며 연신 감탄을 한다. 처음에 나를 걱정하던 마크와 탄은 뒷자리에서 신나게 환호성을 지르는 내 소리를 듣고 잘 즐기고 있나보다 안심을 하는 것 같았다. 트랙이 거의 끝나가며 우리는 만족과 체험이 끝나는 아쉬움을 쏟아냈다. 마크에게 더 빨리 운전할 수도 있지만 트랙의 아마추어 차들을 조심하며 안전하게 운전해준 것을 감사했고 그럼에도 충분히 우리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속도를 경험하게 해주어서 더더욱 감사했다. 그는 몇백 몇천번 이 트랙을 돌았을까. 다른 차만 없다면 눈감고 돌수도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모든 코스를 다 외우고 정확하게 운전하는 솜씨에 탄이도 나도 홀딱 반해버렸다. 마크가 주먹치기를 하자고 내게 손을 내밀어주었는데 안전벨트에 걸려서 못해서 아쉬웠다. 정말 자기 차로 트랙을 도는 것이 가능하더라도 전문 레이서의 택시도 반드시 해볼 것을 강추한다. 택시 탑승장으로 복귀해서 차에서 내리면서 마크와 악수를 했다. 그러자 마크가 "어 손에 땀이 났네요. 내가 일을 제대로 했군요."하며 웃는다. 나도 모르게 손에 땀을 쥐고 트랙을 돌았나보다.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해준 마크에게 너무너무 감사했다. 끝나고 마크와 택시 차 앞에서 사진도 함께 찍었다. 서킷을 주행한 시간은 약 5분정도였는데 그 안에 희노애락이 다 들어있는 듯 정말 역동적인 5분이었다. 탄이 놀이기구 타는 것과 비교해서 어떠냐고 물어보았는데 놀이기구는 짧은 레일위를 매번 같은 속도로 도는 것이니 시시각각 변하는 서킷위의 택시와 비할바가 아니라고 했다. 입구 한 편에 기념품 가게가 있어 이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뉘르부르크링 와펜과 차에 붙일 스티커를 샀다. 택시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오래전부터 와보고싶던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에 드디어 와서 서킷을 즐겼다는 사실이 마치 꿈같았다. 짧은 시간의 체험이지만 평생 간직할 멋진 추억이 된 것 같다. 서킷을 벗어나 조금 나오자 한편에 커다란 공터에 많은 차들이 세워진 곳이 있었다. 탄이 보고는 "저기서 서킷을 도는 차들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야. 우리도 가보자."라며 반가워한다. 수십대의 차들이 서있었고 사람들은 와앙~소리를 내는 차들이 서킷을 지나는 것이 잘 보이는 언덕위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알고보니 여기가 뉘르부르그링 서킷을 구경할 수 있는 최고의 스팟이라고 한다. 모터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좋은 기운이 가득 느껴진다. 서서 구경하는 사람, 릴렉스 체어까지 가져와 앉아서 구경하는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이 서킷을 구경하고 있는 틈에 우리도 껴서 한동안 구경할 수 있었다. 다시 까브리로 돌아가보니 비싼 유럽차들 사이에 하얀 까브리가 존재감을 과시하며 서있는 모습이 매우 재미있었다. 그래! 당당하자 까브리~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xRTf394KXYg?si=RUwhx3qUL9hdLkrx> ▶설연휴로 다음주(1월 31일) 트래블노트는 한주 쉽니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5-01-23 16:14:56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앙카라에는 춘천의 지인이 소개해주신 분이 계셨다. 수염을 멋지게 기르신 엄선생님가정을 방문했다. 독일에서 대학을 다니는 딸이 방학중 집에와있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 마리아가 게임그래픽을 전공한다고 해서 평소 게임제작에 관심이 많던 나는 마리아와 게임에관한 이야기를 신나게 나누었다. 엄선생님 부부는 원래 게임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어서 딸과 마찰이 많았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의 대화를 통해 게임이라는 것이 현대사회에 얼마나 중요하고 좋은 영향을 줄수도 있다는 것을 듣고는 게임에 대한 선입견을 바꾸고 딸의 선택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게 되었다며 좋아하셨다. 감사하게도 거실한켠에서 몇일 머물 수 있게 해주셔서 쉬면서 사모님이 해주시는 맛있는 한식도 먹고 근처 고려인국수집에 가서 함께 식사도 나누며 즐거운 만남을 가졌다. 몇일전부터 까브리에서 매우 강한 기름냄새가 나서 선생님의 추천으로 정비소에 들렀다. 여행중 차에 갑자기 냄새가 나서 큰 문제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무척 불안하고 두려웠는데 정비소에서 꼼꼼히 보고 엔진오일을 갈고 필터등을 교체하고나니 좀 안심이 되었다. 앙카라에서의 좋은 만남을 뒤로하고 이즈미트(Izmit)로 향했다. 이즈미트에는 카우치서핑 호스트 야신(Yasin)이 살고 있다. 튀르키예에 처음 들어왔을때 카우치서핑을 통해 대화를 나누고 방문하려고 했었는데 당시 할머니가 아프시다고 해서 그냥 지나쳤었다. 이번에 다시 근처를 지나가게 되어 연락을 해보니 괜찮다고 와도 좋다고 한다. 튀르키예에서 카우치서핑 친구를 만나지 못하나 아쉬운 마음이었는데 기회가 생겨서 좋았다. 특히 야신은 한국어가 가능한 사람이라 한국어로 메세지를 주고받을 정도라서 탄이 무척 좋아했다. 오후 늦게 이즈미트의 한 몰 주차장에서 야신을 만났다. 처음 만나는 야신과 마치 오래 헤어진 형제처럼 반갑게 포옹하는 탄이 나는 신기하기만 하다. 덕분에 나도 얼떨결에 포옹으로 인사를 했다. 야신은 한국어로 농담을 할 정도로 언어능력이 출중하다 이즈미트에는 자동차관련 공장과 회사들이 많은데 야신도 자동차 부품제조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탄은 야신을 만나자마자 그동안 궁금했던 "어떻게 한국어를 배우게 되었냐"고 물어보았다. 야신이 10년전 대학생때 인터넷으로 터키에 대해 관심이 많은 한 한국인 친구를 알게되었고 그 후로 야신도 한국에 대해 알고싶어 한국어를 배웠는데 재미있었다고 한다. 한국에 한번도 온적 없는 친구가 이렇게 유창하게 한국어를 하는 것이 무척 대단해보였다. 우리는 야신과 함께 주차장옆의 큰 몰에 테라스가 있는 식당으로 갔다. 창가에 앉으니 멀리 석양이 아름답게 지고 있었고 어마어마한 넓이의 주차장에 차들이 빽빽하게 줄지어있는 것이 보였다. 야신이 피자 비슷한 피데(Pide)를 사주었는데 전에 처음 튀르키예 리제에서 먹은 적이 있어 반가웠다. 식사를 하며 대화 중 야신이 까브리에 번호판이 앞뒤 다 있냐고 물어본다. 왜 그러나 어리둥절해하며 그렇다고 하자 하나 두고 가라고 하며 웃는다. 한국 번호판이 갖고 싶었나보다. 식사후 함께 까브리를 타고 야신의 집으로 갔다. 언덕위의 방이 세개정도 되는 작은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었다. 우리는 까브리에서 매트리스를 가지고 와서 잠자리를 만들었다. 야신이 출근하면 영상작업도 하고 맛있는 한식을 만들어 그가 퇴근하면 함께 저녁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마침 야신은 올해 6월에 2주간의 한국여행을 계획중이라고 했다. 한국에 온다니 마냥 반가웠는데 알고보니 튀르키예 국적으로 한국에 관광 오는 것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준비하는 서류만 열가지가 넘고 세세한 여행계획까지 첨부해야한다고 한다. 아무 생각없이 국경을 통과하던 우리로서는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작년에도 한번 한국 관광비자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해서 이번에는 준비를 철저하게 하고 있다니 괜히 미안할 정도였다. 야신의 여행계획서를 함께 보다보니 우리가 아는 지명과 교통편등이 나와 반가왔다. "인천공항 1 터미널에서 공항철도타고 공덕역에서 내리고 지하철 6호선으로 갈아타고 동묘역으로 가서..." 뭐 하나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열심히 듣는데 너무나 빈틈없이 세세하게 잘 짜여진 계획에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나보다. 할 수만 있다면 초청이라도 해서 한국에 쉽게 들어올 수 있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때까지도 우리는 떠돌아다닐 예정이라 대신 한국에 가게되면 내 여동생과 지인에게 연락해서 도움을 받으라고 연락처를 주고 한국의 동생과 지인에게는 야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부탁을 해두었다. 또 한국가면 꼭 먹어보라고 한국음식 사진을 이것저것 보여주었는데 알고보니 야신은 예전에 한국식당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웬만한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었다. 야신과 함께 한국말로 이야기하며 편안히 지내고 또다시 떠날 날이 되었다. 생각해보니 이날은 우리가 튀르키예에 입국한지 두달이 되는 날이었다. 새벽같이 출근한 야신의 회사는 다행히 우리가 가는 길목에 있어서 주인없는 집의 문단속을 잘 하고 몇가지 선물을 두고는 마지막 인사를 하러 야신을 찾아갔다. 하늘에서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바람도 엄청 분다. 그의 회사는 시 외곽의 커다란 공장들이 여럿 자리잡은 곳에 있었다. 회사 유니폼을 입고 뛰어나오는 모습이 반갑기도 하고 곧 헤어질 것이 아쉽기도 하다. 그동안 집에 묵게해주어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한국에서 좋은 여행하기를 바란다는 덕담을 나누고 또 포옹으로 헤어지는 인사를 했다. 차에서 탄은 지난 두달간의 튀르키예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튀르키예에 오니 드디어 문명사회에 다시 온 듯 익숙한 느낌이 들었어. 스타벅스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사람들의 운전매너와 사는 모습들이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외국이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다닐 수 있어 좋았어." 나도 여러가지 자연풍경을 다양하게 볼 수 있고 음식이 맛있고 사람들이 친절하고 좋은 튀르키예가 무척 좋았다고 이야기나누었다. 아직도 우리의 튀르키예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다시 이스탄불로 향해 간다. 대도시는 단점이 더 많지만 한국식당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스탄불 중심가에서 언덕위의 한국식당을 찾아가 된장찌개와 냉면을 맛있게 먹었다. 저녁식사 후 잘곳을 찾는데 한참을 뱅뱅 돌아도 차를 댈만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네비에서 근처에 있는 공원을 보고 공원에는 주차장이 있겠지 싶어 찾아갔지만 주차장은 없고 골목을 잘못 들어가서 막다른 곳에 들어갔다가 후진으로 200m를 돌아 나와야했고 고생고생하며 한참을 헤메야 했다. 결국 이 근처에서 잘 곳은 찾는 것을 포기하고 시 외곽으로 나가기로 했다. 한참을 달려 이스탄불 서쪽에 있는 아타튀르크 올림픽 스타디움 경기장이란 곳을 찾아왔다. 잠실 종합운동장같이 큰 경기장이 있었고 주차할 수 있는 공간도 입구를 따로 막아놓지 않은 채 넓게 있어서 다행히 차를 대고 잘 수가 있었다. 그날밤 밤새 비가 내려서 캐빈에 빗방울 맞는 소리에 귀마개를 끼고 잠을 잤다. 새벽에 깼는데 여전히 통통 빗소리가 들린다. 탄이는 뒤통수에 수면버튼이 달려있는지 머리만 베개에 닿으면 잘만 자는데 예민한 편인 나는 잠이 드는 것도 쉽지 않고 작은 소리에도 금방 깨곤해서 힘들었다. 날씨도 꽤 추워서 전기요 덕분에 등은 따뜻했지만 얼굴은 시리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기온이 내려가 있었다. 아타튀르크 경기장에서 차박을 하다 아침에도 계속 비가 내린다. 어제 들른 한인마트에서 산 베이컨으로 아침을 만들었다. 오랜만의 돼지고기에 콧노래까지 나온다. 메르신에서 받아온 구워먹는 치즈와 계란후라이까지 단백질 가득 아침식사다. 까브리에서 차려먹는 아침상 간편하지만 든든하다. 식사 후 오렌지는 튀르키예에서 빠질 수 없다. 한국의 5분의 1가격인 300~500원에 매우 좋은 오렌지를 살 수 있으니 이곳에 있는 동안 많이 먹어둬야겠다고 벼르고 있다. 아침을 먹고 차 상태를 보니 앞유리에 문제가 있었다. 튀르키예에 거의 입국하자마자 트라브존에서 만난 정비사님이 금간 끝을 동그랗게 그어놓고 한국 다시 갔다와도 끄떡없을거라 호언장담했던 곳이 또다른 금을 만들어 뻗어나가고 있다. 두달이 안되었는데 금이 점점 커지고 있어 아무래도 튀르키예를 벗어나기 전에 유리를 교체해야할 것 같다. 튀르키예 서부에서 난민어린이 대상 교육센터를 하고 계신 박선생님을 만나러 왔다. 도시의 화려함 뒤에 난민촌은 무척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아이들의 웃음은 해맑고 까브리에 관심이 쏟아져 우리는 차를 오픈하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구경하도록 했다. 캠핑카를 처음보는 아이들은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무척 신기해했다. 우리는 선생님의 요청에 따라 센터에 한쪽 벽면에 포토존을 예쁘게 꾸미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눈앞의 현실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게 다가 아니라고, 아이들이 꿈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박선생님의 도움으로 자동차 유리 전문점을 찾아왔다. 다행히 바로 새 유리로 교체할 수 있다고 한다. 튀르키예에서 한국산 포터들이 많이 다니는 것을 봤어서 기대했는데 역시 정비가 가능했다. 척봐도 장인이신듯한 정비사님이 능숙한 솜씨로 기존 유리를 탈거하고 새로운 유리창을 끼운다. 9만km 주행후 교체이다. 작업시간은 2시간가량 걸렸고 비용은 170$ 였다. 한국이었으면 훨씬 더 들었을 것이다. 부품 구하는 데에 몇일이 걸리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구해져서 다행이었다. 깨끗한 새 유리를 단 까브리를 타고 이스탄불을 떠나 3시간 거리의 국경마을 에디른으로 향한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zbsJO9Yq44o?si=795qeNMkG6JjmWUD>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12-18 15:40:00이집트 '룩소르③ 왕가의계곡'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숙소에 돌아와 저녁을 해먹고 쉬고 있었는데 마흐멧에게 문자가 왔다. 내용이 매우 충격적이었다. 자기 엄마가 아프다며 400불(약 50만원)을 빌려달라는 이야기였다. 카우치서핑에서는 금전거래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13년동안 카우치서핑을 통해 친구들을 만나고 여행해왔지만 돈이야기가 나온 것은 처음이다. "뭐, 안되겠다고 거절하면 되는거 아니야?"라고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그 문자를 본 순간부터 엄청난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틀 전 같이 저녁을 먹으며 그는 우리에게 룩소르 다음으로 어디로 갈 계획이냐고 물었다. 다음 행선지가 아스완이라고 하니까 갑자기 자기가 같이 가줄 수 있다고 했었다. 당시에는 좀 의외였지만 '이 친구도 아스완에 일이 있어 겸사겸사 같이 가려 하나' 싶었는데 오늘 온 메세지에도 엄마가 아파서 거액의 치료비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우리와 아스완에 여행을 같이 가줄 수 있다는 말을 또 언급한다. 말이 안되었다. 알게 된 지 이틀밖에 안된 사람이 400불이라는 큰 돈을 빌려달라는 것은 그냥 달라는 소리로 밖에 안들렸다. 어떻게 거절하느냐가 큰 문제였다. 사실 마흐멧과 만난 후 처음부터 카우치서핑을 자기 집이 아니라 친구의 집에서 머물도록 하는 것도 이상했고 만나서도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마음으로 여행하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궁금해하기 보다는 무얼 하고싶냐, 룩소르 다음에는 어디에 갈거냐 등 마치 가이드같은 느낌으로 계속 우리를 대했던 것이 쭉 석연치 않았었다. 그러고보니 마흐멧은 마치 가이드처럼 우리를 대했었다.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잘 거절해야 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작정하고 우리에게 돈을 받아내려 한다면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 집에 한시라도 더 있고 싶지 않아 당장 나가자고 했지만 탄은 일단 오늘밤은 늦었으니 내일 새벽같이 집을 나서자고 했다. 하루정도 더 머물며 룩소르 관광을 느긋하게 즐기려던 계획이 다 틀어졌다. 그렇게 나는 불안에 떨며 밤을 보냈지만 다행히 새벽까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침 일찍 우리는 모든 짐을 싸서 그 집을 나섰다. 그리고 마흐멧에게는 "나는 아주 친한 친구와도 돈거래는 하지 않는다. 친구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급하게 일정이 바뀌어 우리는 오늘 아스완으로 가게 되었다. 그동안 감사했다."하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그의 카우치 초대에 대한 후기를 남길때 참 고민을 많이 했다. 무언가 석연치않은 상황이 분명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우리에게 해를 끼친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우리를 그의 친구집에 머물게 했다는 것과 그와 나일강에서 배를 타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것 등 사실 위주로 글을 남겼지만 "다시 그의 집에 머물겠습니까?"라는 항목에서는 No를 선택했다. 그리고 몇달 뒤 한 대만여성에게 메세지가 왔는데 자기도 마흐멧에게 초대를 받았다며 왜 재방문을 거절하는 항목을 남겼냐고 물어왔다. 너무 다행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당신이 그 초대를 받기 전 나에게 질문을 해서 너무 다행이다.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고 이집트 사람들은 아직 카우치서핑 문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있는 것 같다."고 나의 의견을 보내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후기를 그렇게 남기기를 참 잘한것 같고 혹시라도 여행중 피해를 입는 사람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내가 이집트 사람들이 카우치서핑 문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었다고 생각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룩소르 뿐 아니라 아스완에서도 우리를 먼저 초대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또한 프로필에 후기나 다른 사람들의 레퍼런스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가 아스완으로 가기 몇일전 우리가 머물 곳이 본인 집이 아니라는 것과 인터넷과 담요 등을 사용하려면 얼마간의 돈을 내야한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이집트에서는 호텔에서 묵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부터 이집트에서는 호텔에서 묵기로 결정하고 그에게도 사정이 생겨 그의 집에 못가겠다는 답을 보내며 초대를 거절했다. 출발전 이집트의 카우치 홈페이지에 여행계획을 올리고 초대를 받을때에는 이 사이트를 알정도면 이집트에서도 좀 경제력이 있고 여행경험이 많은 수준있는 사람들이겠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예상과는 달리 형편 어려운 사람들이 또다른 돈벌이를 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듯 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도 있겠지만 너무 경제적으로 못사는 나라에서는 카우치서핑 이용은 안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마흐멧 친구의 집을 아무런 제재없이 무사히 나올 수 있어 다행이었다. 룩소르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탄이 꼭 보고싶어했던 왕가의 계곡을 들렀다가 남쪽 아스완으로 가기로 했다. 왕가의 계곡에 들렀다가 남쪽 아스완으로 가기로 왕가의 계곡도 망자의 방향인 강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사막의 구릉을 한참 지나서 꼭꼭 숨은 왕가의 계곡에 도착을 했다. 고대 이집트의 묘역인 피라미드가 도굴꾼의 표적이 되자 BC 1500년 이후의 신왕조부터 이곳 숨겨진 계곡을 파라오의 묘지로 조성한 곳이다. 매표소가 있는 건물안으로 들어오자 계곡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는데 발견 순서대로 묘에 번호가 붙어있는 점이 흥미로왔다. 총 65개의 무덤들이 지금까지 발굴되었다. 표를 사야하는데 종류가 너무 많다. 미리 알아본 바로는 260파운드(약 만원)표 하나를 구입하면 3개의 무덤을 선택해서 들어가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도 그정도면 충분하다 싶어 그것으로 선택했다. 도굴이 안된 유일한 무덤인 투탕카멘의 무덤은 따로 돈을 내야한다. 하지만 안에 부장품은 모두 영국과 프랑스의 박물관으로 옮겨지고 미이라만 있다는 텅빈 무덤을 큰 돈 주고 들어갈 필요 없다는 생각에 패스하기로 했다. 표를 내고 나오니 하얀 전기카트들이 있다. 핫셉수트 장제전때 걸어보니 조금 힘들기도 하고 어제 종일 걸어다녀 피곤이 덜풀린 상태라서 카트를 타기로 했다. 인당 10파운드(약 400원)정도니 탈만하다. 카트이용권을 사고있는데 한 직원이 다가오더니 달러를 큰돈으로 바꿔달라고 부탁해왔다. 보니까 1달러짜리를 뭉텅이로 가지고 있다. 관광객들에게 팁으로 받은 돈인가보다. 우리도 큰 지폐를 가지고 다니며 꺼내기가 부담스러웠는데 나쁘지 않은 거래인듯해서 50달러짜리 하나를 바꿨다. 어디서 왔냐는 질문은 빼놓지 않고 한다. 한국에서 왔다니까 자기차도 한국차라며 연신 한국 좋다고 립서비스를 해주신다. 길에서 환전은 조심해야하지만 달러를 달러로 바꾸는 것이니 숫자만 확인하면 실수할 일이 없다. 단, 반대의 경우 잔돈을 고액 달러의 화폐로 바꾸는 것은 위폐의 가능성이 있으니 하지말아야 한다. 돈을 바꾸고 전기카트에 올라탔다. 다른 손님이 없어 8인승 카트에 둘만 탔는데 바로 출발한다. 운전사분이 매우 친절하다. 길이 오르막에다 1km 정도의 거리라서 타기를 잘했다 싶었다. 중간에 운전사분이 또 1달러뭉치를 보이며 돈을 바꿔달라고 한다. 헉 저희 벌써 다른분께 바꿔드려서 이제 없어요. 아마도 깨끗한 큰 달러화폐여야 이집트돈으로 환전이 되어서 바꾸려고들 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입장권을 받는 입구에 도착해 차에서 내려 들어갔다. 우리 표로는 3개의 무덤에 들어갈 수 있는데 60개가 넘는 것 중 어디를 갈것인가가 문제였다. 사람들 많이 가는 곳에 따라 들어가면 되겠지 막연하게 생각하고 왔는데 너무 일찍 와서인지 우리밖에 사람이 없다. 지도앞에서 번호와 이름을 째려보고 있는데 탄이 청소하고 계시는 분을 붙잡고 추천을 부탁했다. 말은 거의 안통했지만 미소와 손짓발짓으로 3개를 추천받을 수 있었다. 첫번째로 추천 받은 KV.2에 갔다. 입구에서 무척 가까운편이다. 무덤앞에 가자 이집트원피스를 입은 직원분이 표를 받아 펀치로 구멍을 뚫고 돌려주신다. KV2는 람세스4세의 무덤이다. 경사가 완만해서 크게 힘들지 않았고 역시 무덤안이라 채색이 화려하게 살아있다. 무덤 끝까지 깊이가 89m, 가장 큰 공간은 높이가 5.22m라고 한다. 맨 끝에 거대한 석관이 놓여져있고 석관이 있는 방은 노란색과 푸른색으로 아름다운 그림들이 가득 그려져 있었다. 특히 천장에는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고 고대이집트인들이 믿었던 누트여신이 그려져 있었다. 무덤 내부에 발판도 잘 만들어져있고 조명도 잘 설치되어 구경하기 매우 좋았지만 옛 이집트인들이 이곳을 만들때는 대체 어떻게 작업했을지 궁금해졌다. 그을음이 묻으면 안되니 횃불을 가지고 들어오기도 어려웠을테고, 이 어두운 곳에서 어떻게 온갖 그림과 조각을 했을지 의문이었다. 두번째 무덤으로 가는 길. 1월, 오전 8시도 안되었는데 벌써부터 더위가 느껴진다. 한낮에는 30도가 넘는다고 한다. 여름에는 50도이상이라고 하니 역시 이집트여행은 겨울이 적기이다. 카페가 있는 중앙광장 바로 앞에 투탕카멘 무덤이 있다. 역시 등잔밑이 어둡다고 이렇게 입구에서 가까운 곳이니 도굴꾼들도 미처 못찾고 말았지 싶다. 투탕카멘 무덤 옆을 지나 두번째 방문할 KV8로 걸어간다. 아침엔 꽤 쌀쌀해서 두꺼운 옷들을 껴입은 것이 후회될 정도로 햇빛이 따갑다. 밝은 모래와 자갈들에 햇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셔서 썬그라스가 반드시 필요하다. 무덤앞에서 표에 두번째 구멍을 뚫고 KV8 메르넵타(Merenptah)의 무덤으로 들어갔다. 메르넵타는 위대한 파라오 람세스 2세의 13번째 아들이다. 람세스 2세가 장수하며 너무 오랫동안 왕위에 있다보니 위의 형 12명은 모두 죽고 70세가 넘은 메르넵타가 다음 왕이 되었다고 한다. 입구에서 보니 경사가 만만치않다. 한참을 깊이 내려가야한다. 갔다 오려면 꽤나 힘들듯 했지만 이미 표에 구멍을 뚫었으니 갈수밖에 없다. 입구의 세련된 부조가 눈길을 끈다. 파라오와 호루스가 실물크기로 조각되어 채색되있는데 보존상태가 좋고 솜씨가 매우 섬세하고 훌륭하다. 메르넵타의 무덤은 첫무덤의 두배 가까이 되는 164m 길이로, 내려가는 중간에 넓은 큰 방이 두개 있었는데 도굴꾼을 속이기 위한 가짜방이었지 않나 싶었다. 두번째 방에서 현지인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는데 이런 사람에게 카메라를 맡기기도 불안하고 당연히 돈을 요구할거란걸 알기에 웃으며 거절하고 지나쳤다. 그리고 조금 더 내려가면 또다시 가짜 방이 하나 더 있고 끝까지 더 내려가면 무척 넓고 높은 홀 같은 방이 나오는데 그 곳이 진짜 파라오의 미이라가 있는 묘실이었다. 땅속의 무덤은 동굴처럼 시원할 줄 알았는데 무덤 안도 여전히 더웠다. 묘실 천장은 아치형으로 되어있었고 매우 높아 공간감이 있었다. 이 넓은 방 가득히 유물들이 놓여져 있었겠지. 지금은 석관과 돌로만든 뚜껑만이 남아있다. 다시 올라가면서 벽의 그림들을 찬찬히 보았는데 훼손이 심했다. 입구의 부조를 보면 모든 벽의 그림들의 퀄리티가 상당했을것으로 예상되는데 심하게 훼손되어있는 것이 매우 안타까왔다. 깊은 경사로를 다 올라오니 체력소모가 심했다. 덥고 지쳐서 마침 앞에 보이는 카페에서 좀 쉬기로 했다. 관광지에 있는 카페치고 음료수 가격도 좋았고 갓짜낸 신선한 생과일쥬스가 시원하고 맛있었다. 피라미드 뷰 카페에 이어 왕가의 계곡 뷰 카페도 추천할만하다. KV6, 람세스 9세의 무덤..볼거리가 제법 많다 우리의 마지막 선택은 KV6, 람세스 9세의 무덤이었다. 세번째 펀치를 찍고 들어가니 통로가 꽤 넓은 것이 규모가 이전 두개와 차이가 난다.벽 양옆에 유리로 보호를 해놓아 관광객의 혹시 모를 훼손으로부터 안전해보여 마음이 놓인다. 경사가 거의 없어 다행이었고 서너명이 함께 걸을 수 있을정도로 통로가 넓고 천장도 매우 높았다. 망자의 배, 사람들 등 많은 벽화들이 잘 보존되어있는 볼거리가 많은 무덤이었다. 3개의 무덤을 둘러보았지만 사실 비슷비슷해서 다른 50여개를 더 안봐도 될것 같았다. 예전에는 무덤안에서 촬영을 하면 추가돈을 냈어야 했다는데 우리가 갔을때는 아무런 제재없이 플래쉬만 터트리지 않는다면 사진이고 영상이고 촬영이 가능했다. 세번째 무덤까지 다 보고 나오니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역시 일찍일찍 다녀야해. 카트는 왕복이라 표를 잘 간수했다가 내려갈때 다시 보여주었다. 올라올때 태워주었던 같은 운전사의 카트에 타게되었다. 우리를 기억하고 반가와해주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룩소르에서의 마지막 기억이 좋게 마무리 되어 다행이다. 안녕 룩소르~ 앞유리를 뽀득뽀득 닦고 아스완까지 먼길을 떠난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Qf0xQeaqs_Q?si=O1QCTlGjlw1FEglq>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11-07 09:32:39<36> 이집트 '룩소르'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덴데라의 하토르 신전을 출발하여 한시간 거리의 룩소르에 도착했다. 룩소르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굉장한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도시이지만 길거리 풍경은 따스하고 정겹다. 우리는 카우치서핑을 통해 우릴 초대해준 무함맛을 만나기 위해 그의 직장이라는 병원을 찾아갔다. 번화가에 있는 큰 종합병원인듯한 곳 앞에서 조금 기다리자 큰 키의 무함맛이 손을 흔들며 나왔다. 서로 인사를 하고 그는 곧 다시 병원에 들어가봐야 한다며 우리를 집으로 데려갔다. 우리는 당연히 그의 집에 묵으며 교제를 나눌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희안하게도 데려다준 곳은 그의 친구네 집이라고 했다. 작은 마당이 있는 2층 주택이었는데 1층을 우리가 사용해도 좋다고 한다. 무척 이례적인 카우치 제공이었지만 자세한 것을 물어볼 새도 없이 우리만 남겨두고 가버렸다. 친구라고하는 사람도 첫날 잠깐 인사를 한 후 마주치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넓은 거실에 부엌도 있고 침실도 잘만하고 씻을 수 있는 화장실도 있음에 감사히 머물렀다. 다음날 무함맛에게 우리는 이스트뱅크의 유적들에 갈 예정이라고 문자를 남기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나일강을 기준으로 해가 뜨는 동쪽-이스트뱅크는 산자의 땅, 주로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고 서쪽은 웨스트뱅크라고 부르는데 해가 지는쪽이라해서 죽은 자의 땅이라 생각되며 무덤이나 신전들이 주로 위치하고 있다. 동쪽에 있는 숙소를 출발해서 다리를 건너 서쪽 웨스트뱅크로 넘어왔다. 날씨가 매우 좋다. 나일강을 지나 좀 더 들어가자 누런 모래사막이 나온다. 하늘에는 벌룬이 떠있다. "와, 여기 열기구를 타고 웨스트 뱅크를 관광할 수도 있나 봐." 표를 사서 나오니 놀이공원에 흔히 있는 전기카트들이 기다리고 있다. 매표소에서 장제전까지 거리가 조금 있는데 더운 날이나 다리가 불편하신 분들은 타고가면 좋을 것 같았다. 탄이는 공짜면 타고가지 뭐 하며 혹시나 하며 가격을 물어보았는데 10파운드(200원)란다. 해는 내리쬐었지만 아직 더울 때가 아니어서 우리는 그냥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다. 느리게 걸으며 점점 가까워지는 유적의 모습을 충분히 감상하고 싶었다. 핫셉수트 장제전은 천혜의 위치와 풍경이 말문을 막히게 했다 누런 사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싼 아래 포근하게 감싸여진 핫셉수트 장제전은 풍경부터 장관이었다. 3층의 테라스식 신전으로 수많은 열주식 기둥마다 파라오석상이 늘어서있는 모습이 고대 이집트 건출의 최고 걸작으로 불릴만큼 장엄하고 멋있었다. 개장시간에 맞춰 일찍 왔는데 우리처럼 부지런한 사람들이 꽤 많다. 거의가 가이드를 동반한 단체 관광객들이다. 중앙도로 양 옆으로 스핑크스 조각상들이 도열해 있는데 개중 이목구비가 잘 남아 있는 것들도 있었다. 중앙계단을 다 오르자 기둥마다 서있는 석상들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핫셉수트는 여왕이지만 자신의 석상에 턱수염을 만들었다. 남자 파라오 못지않게 위엄 있게 보이고 싶어서였을까. 기록에 따르면 파라오인 남편이 죽은 후 아들을 섭정하다가 스스로 파라오가 되었다고 한다. 이집트 최초의 여성 파라오로 힘있게 이집트를 다스린 여장부인 것 같다. 신전으로 들어가는 문은 확실히 다른 종류의 돌로 만들어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예전에는 거의 다 무너졌던 벽들을 잘 복원해놓아 벽화들을 볼 수 있었는데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한 이집트 아저씨가 신전입구부터 우리에게 말을 걸더니 코리안이냐고 하며 계속 따라다닌다. 이곳저곳 다니는 곳마다 부탁하지 않은 안내를 하는데 같은 관광객 같지는 않고 팁을 바라는 비공식 가이드인 듯. 다행히 우리가 별로 흥미있어 하지 않자 귀찮게 하지는 않고 금새 떨어져 다른 사람을 찾아 갔다. 신전 내부의 작은 방으로 들어가는 통로에 아크릴로 보호판을 만든 것이 너무 반갑다. 사람들이 만지지 못하도록 덴데라신전에도 이런것을 설치해두어야 할텐데. 아크릴 너머의 호루스와 파라오 그림이 매우 아름다왔다. 신전의 가장 안쪽 방은 바위산인 절벽을 파낸 동굴이라고 한다. 위층 신전을 나와 우리가 걸어온 넓은 길을 내려다보자 멕시코에서 본 테오티우아칸(피라미드)이 떠올랐다. 먼 옛날 고대 파라오들이 이곳에서 백성들을 내려다보며 위엄을 떨쳤겠지. 아래로 내려와 둘러본다. 확실히 위층보다는 벽화가 많이 남아있다. 천장에는 남색으로 바탕을 칠하고 노란색으로 팔이 5개 달린 불가사리같은 모양으로 별을 형상화 해놓았다. 홍천에 있는 워터파크에 가면 슬라이드 타는 곳의 천장을 바로 이것과 똑같이 재현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기원전 1500년, 그러니까 3500년도 더된 채색이 아직까지 선명하게 남아있다니.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당시에 사용하던 여러가지 모양의 토기며 식물들을 참 구체적으로 자세하게도 그려놓았다. 이집트 벽화가 비슷비슷한것 같지만 만들어진 시대별로 또 장소의 중요성이나 특성별로 조금씩 다르다. 어제 보았던 덴데라 신전의 화려함과 섬세함의 극치였다면 핫셉수트 장제전은 천혜의 위치와 풍경이 말문을 막히게하는 아름다운 곳이라 할 수 있었다. 신전을 바라보고 왼쪽끝에는 하토르 여신을 위한 장소가 있다. 덴데라신전에서 본것과 비슷한 커다란 여자머리가 있는 기둥들과 하토르 여신의 상징인 소가 많이 새겨져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람세스 3세의 신전 '메디넷 하부(Medinet Habu)' 실컷 여유있게 구경을 하고 공원입구로 걸어나왔다. 다음 목적지는 7분 거리의 메디넷 하부. 메디넷 하부에 도착해서 왼편의 주차장에 차를 잘 세워두고 신전으로 걸어갔다. 단체관광객들 사이에 함께 줄을서서 들어가려다 티켓을 사오라며 쫓겨났다. 매표소가 안에 있는 줄 알았는데 머쓱했다. 주변을 둘러봐도 매표소 같은 곳이 없다. 지키는 경찰 같은 분에게 물어보니 저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알려준다. '매표소가 그렇게 멀리 따로 있다고?', 이해가 안되서 진짜인가 의아했지만 일단 알려준 방향으로 걸어갔다. 입구가 몇개 되나? 그러면 말이 될 수도 있는 것 같고. 암튼 알려준 대로 가는 수 밖에. 사람들이 별로 안다닐 것 같은 흙길을 한 5~6분 걷다보니 현지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나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더 가봤자 매표소가 있을 것 같지 않은 느낌인데 이게 맞나 싶어 머뭇대다가 탄이 마을사람에게 매표소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분도 같은 방향을 가리키며 가라고 한다. 많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다들 저쪽으로 가라고 하니 더 가보자. 그렇게 허허벌판 500미터를 더 걸어가서야 매표소가 진짜 있는 것을 보고 어이없어하며 표를 구입했다. 빠른 걸음으로 왕복 20분거리. 단체여행객들은 아마 가이드가 미리 표를 구해와서 매표소에 들릴 필요가 없으니 바로 입장하는 것 같다. 우리처럼 개인적으로 오는 경우는 이렇게 멀리 떨어진 매표소를 먼저 들러 표를 구입해오거나 이집트정부에서 판매하는 "룩소르 패스"를 이용할 수 있는데 룩소르 패스는 5일간 룩소르의 주요 관광지를 제한없이 입장할 수 있는 자유이용권 같은 것이다. 가격은 100달러이고 적용이 안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우리가 3일간 룩소르에서 낸 입장료는 인당 4만원 정도였어서 룩소르 패스는 패스했다. 어렵게 표를 사서 다시 왔던길로 돌아와 겨우겨우 메디넷 하부 신전에 입장할 수 있었다. 메디넷 하부는 상부, 하부가 아니고 Medinet Habu라는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매우 무안했다. 이곳은 람세스3세의 장제전으로 알려져있는데 람세스 3세는 카이로 문명박물관 지하 미이라실에서 본적이 있던 분으로 고대 이집트가 더 이상 세계 제일의 국가가 아닌 시대에 왕이 되어 마지막 불꽃을 태운 최후의 위대한 파라오로 불리는 왕이다. 장제전의 크기와 규모를 보면 과연 그러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벽에는 람세스 3세가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내용의 벽화가 많았는데 당시 북쪽바다와 중동민족, 남쪽의 누비아, 사막민족등 사방에서 외세의 침략이 매우 잦아 많은 전쟁을 치러야 했었다고 한다. 메디넷 하부는 람세스 3세의 장례신전 뿐만 아니라 여러 세대를 거쳐 증축이 되어 다양한 기능의 여러 건축물들로 구성된 복합신전이라고 한다. 높이 쌓은 탑같은 문을 지나니 안뜰이 나왔다. 건물들이 웅장하고 규모가 굵직한 것이 지금까지 본 여자 파라오들이 만든 두개의 신전과 확연히 비교가 된다. 덴데라와 핫셉수트신전은 섬세하고 화려한 느낌이었다면 이곳은 압도하는 장엄함이 느껴진다. 커다란 두번째 문을 지나 두번째 안뜰에 들어서자 양옆에 높은 기둥들과 그 앞에 선 석상들이 보인다. 핫셉수트 장제전의 석상에 다섯배는 되보이는 커다란 석상들이 열을 지어 서있다. 석상들 옆에는 종아리까지 오는 작은 여자석상들도 있는데 아내인지 딸인지 아니면 하녀인건지 궁금했다. 이곳의 상형문자는 웬만해서는 지워지지 않도록 매우 깊게 조각되어있는 것이 특이했다. 후대의 파라오들이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 많아 고치지 못하도록 깊이 새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세번째 문까지 들어가자 아직 복원이 덜된것인지 기둥들도 밑둥만 남아있고 천장도 훤히 뚫려있었다. 미로처럼 여러개의 방이 있어 하나도 빠짐없이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VR로라도 옛날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구현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9CWNcgV0IFg?si=zgvtiY47CN33zlX8>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10-24 19:12:55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마흐멧네서 이틀을 묵고 또 새벽같이 집을 나선다. 기상시간이 안맞아 마흐멧과의 작별인사는 어제 저녁에 했고 집을 나가기 전 테이블 위에 한국전통 컵받침과 내가 뜬 레이스를 선물로 남겨놓았다. 마흐멧의 동네 자가직은 카이로에서 북쪽으로 100km나 떨어져있다. 사실 위치를 미리 알았다면 우리의 동선과 많이 어긋나서 고민했을텐데 카우치서핑에는 친구의 집이 "카이로"라고만 나와서 그런줄로만 알고 간 것이었다. 이틀간 왔다갔다 거리와 시간 손실은 꽤 있었지만 그래도 현지 친구를 만나고 현지문화를 체험하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았다. 자가직을 출발해서 남쪽으로 내려간다. 그곳의 첫 인상은 공포스러우리만큼 두렵고 위험해 보였지만 그 안에 들어가 지내보니 사는 사람들은 순박하고 친절하기만 했다. 십여년 전 과테말라의 안티구아에 갔었을 때 생각이 났다. 그곳은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였지만 오후 6시만 지나도 길거리에 사람이며 차가 마법같이 싹 사라진다. 밤에는 엄청 위험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겉보기만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어젯밤 우리가 환전을 걱정하자 마흐멧이 굉장히 반가워하며 자기가 바꿔주겠다고 해서 달러와 이집트 돈을 인터넷의 환율로 바꿨다. 카우치서핑 친구와 돈거래는 안하는 것이 불문율인데 국제 환율에 따라 돈을 교환하는 정도는 괜찮겠지 싶었다. 제안을 받았을 때는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서로 만족하는 좋은 거래였다. 이로써 새로운 나라에 오면 해결해야 하는 3가지가 다 풀렸다. 공항에서 산 유심, 친구에게 환전한 현지돈, 그리고 그 돈으로 휘발유도 어렵지 않게 빵빵하게 주유할 수 있었다. 아무 걱정 없이 남쪽으로 향한다. 자욱한 안개가 낀 길을 지나자 도로 옆으로 푸른 밭과 저멀리 야자수들이 안개속에 환상적인 풍경으로 나타났다. 오늘 우리 목적지는 지방의 작은 도시 미냐(Minya)이다. 그곳에는 딱히 볼일이 없지만 룩소르까지 하루에 가기는 힘들어 중간에 하루 묵고 갈 생각이다. 도시의 도로는 운전문화가 엉망이라 운전이 쉽지 않지만 도시밖 고속도로를 타면 노면상태가 매우 훌륭해서 드라이브하기에 좋다. 시베리아나 스탄국가들을 다닐 때와는 전혀 다르다. 도로는 이제 사막을 지나고 있다. 사진으로만 보던 모래사막에 난 도로를 달리다니 기분이 묘하다. 차량이 지나며 모래먼지가 날린다 신기하다 하늘에 구름이 적당히 있고, 길도 널찍하니 좋고, 통행량도 별로 없고. 드라이브하기에 너무 좋았다. 아스팔트위에 모래들이 바람에 춤을 추는 모습이 장관이다. 키르기스스탄에서 겨울에 산을 넘을 때에는 눈보라가 아스팔트에 신기한 무늬를 만들며 휘날렸었는데 모래로 바뀌었을 뿐 비슷한 느낌이 든다. 사막을 지나자 다시 초원이 나타난다. 그리고 곧 미냐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KFC. 오래간만에 먹는 치킨과 코울슬로가 너무 맛있다. 관광지가 아닌 미냐에는 숙소의 선택지가 거의 없다시피해서 두세군데 중 가장 저렴한 곳으로 왔는데 기대 이상으로 괜찮았다. 에어컨도 있는 방이 깨끗하고 편했고 저녁은 룸서비스로 타진을 주문했는데 빵과 야채샐러드도 같이 와서 매우 맛있게 먹었다. 가격도 착하다. 이집트니까 호텔 룸서비스가 가능하지 한국에선 엄두도 못낸다. 다음날 아침 1층 로비의 조식식당에 갔다. 약 6만원의 저렴한 숙박비에 아침도 포함이다. 후무스, 계란, 스프, 치즈 등등 좋은 음식으로 충분히 요기할 수 있었다. 아침도 맛나게 잘 먹고 기분좋게 호텔을 나섰다. 앞으로 벌어질 일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채. 짐을 들고 차로 걸어가는데 호텔로비에 있던 이집트 남자가 따라오며 말을 건다. 줄무늬 니트를 입고 있던 남자는 호텔에서 주는 커피를 들고 "Good morning. Are you Kim?"(좋은 아침, 너 이름이 김 맞지?)라고 했다. 이집트 도착하자마자 수없이 만난 또다른 호객꾼인가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최대한 좋게좋게 보내려고 미소를 띈 얼굴로 최소한의 대답만 하며 차로 갔다. 남자는 계속 따라오며 어디로 가냐, 이 근처의 말라우 박물관은 안가냐, 왜 안가냐, 얼마 안걸린다 등 전형적인 호객꾼 투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역시나 외국인을 상대로 관광지를 안내하며 돈버는 현지인인가 보다. 차에 타려고하자 계속해서 말을 거는 그를 떼놓기위해 탄이 한국말신공을 시전했다. "저희가 시간이 없어서 못가요." 우리가 주차한 곳에서 차를 빼자 그는 갑자기 우리차 뒷문을 열고 타려고 했다. 탄이 놀라서 밖으로 나와 뭐하는 거냐고 그를 막았다. 차에 타는 것을 저지당하자 그는 우리 차가 나가지 못하도록 뒤에 서서 막았다. 그 호텔은 막다른 골목 끝에 있어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후진으로 골목을 빠져나가는 것밖에 없었다. 잠시 후 한패인 듯한 또다른 남자가 어깨에 총을 메고 나타나 뒤에서 길을 함께 막았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 같아 두려웠다. 그때 호텔 직원이 우리차에 다가왔다. 우리는 구세주를 만난듯 그에게 사정을 했다. "우리 빨리 가야해요. 가게 해주세요. 저 사람들 상대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호텔 직원도 그 사람들에게 가더니 무언가 이야기만 하는 모양새가 한패인가 싶었다. 우리를 도와 그들을 내쫓아줄 생각은 전혀 없어보였다. 사람이 점점 늘어나 4~5명이 되었다. 단단히 잘못 걸렸다 싶다. 호텔 직원도 우리를 막는다. 아주 위험한 사람들이다. 대체 얼마를 원하는 걸까? 우리 여기서 무사히 나갈 수나 있는 걸까? 어디로 납치되거나 저 총으로 해를 입게 되는건 아닌지 너무너무 무서웠다. 그렇게 한없이 초긴장 상태로 한참을 기다리다가 드디어 뒤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도 드디어 차를 움직일 수 있었다. 골목 끝에서 호텔 직원이 불러준 건지 제복을 입은 경찰이 와서 말을 건다. 어디로 가냐고 물어 룩소르로 간다고 대답했다. 뒤에 경찰차도 보인다. 경찰이 상황을 정리하는 것 같았다. 경찰차가 에스코트 해준다고 하는 듯했다. 골목을 빠져나와 한시름 놓긴 했지만 그렇게 경찰차를 따라가자니 경찰도 돈을 요구하는게 아닌가 불안해졌다. 이곳 사람들이 워낙 가난해서 외국인이 돈주머니로 보이는 것이 이해가 안되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식으로 위력을 가하는 것이 알려지면 누가 이집트로 관광 오려할까 싶었다. 갑자기 경찰차가 비상등을 켜며 길가에 차를 세웠다. 우리를 쳐다보며 우리도 차를 세우라고 하는 듯했지만 탄은 이때다 싶었는지 그대로 차를 지나쳐 달렸다. "우리는 그냥 갈길을 갈뿐이야. 경찰이 쫓아오고 싶으면 쫓아오겠지. 우리가 굳이 기다릴 것까지는 없지." "비상등을 켜고 굿바이 하는 것 같아서 나도 비상등을 켜고 '안녕' 했어." 우리 마음대로 해석하고 경찰을 떼어놓고 싶어 달려갔지만 하필 기름이 떨어져가고 있었다. 탄이 차를 길옆에 세우고 주유소를 찾아야 겠다고 하고 있을때 경찰이 다시 우리를 따라잡았다. 아예 차를 우리앞에 세워 우리가 못 움직이게 또 막아섰다.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화난 목소리로 자기가 "Genaral police"라고 한다. 무슨 X소리인가 싶었다. 우리는 못알아듣는 척하며 계기판을 가리키며 주유소에 가야한다고 딴청을 피웠다. 서로 자기 할말만 했다. 우리가 먼저 가버려서 화가 몹시 난듯해서 무서웠다. 탄은 분위기를 바꾸려고 스마트폰으로 지도에서 주유소를 찾아 보여주고 우리가 주유해야 한다고 계속 이야기했다. 조금 있자 경찰차 한대가 더 나타났다. 이제 경찰차 2대의 뒤를 따라간다. 일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아 너무 불안했다. 어차피 잡힌거 피해를 최소화할 생각에 집중했다. 계기판에 주행가능 거리 표시가 꺼지고 이제 차가 언제 서버릴지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가까스로 주유소에 도착, 하지만 휘발유가 없다고 하는 것 같다. 할 수 없이 다른 곳을 찾는다. 경찰이 앞서가건말건 70km 연비효율 운전을 하며 갔다. 주유소로 가려면 우측으로 꺾어야 하는데 경찰이 못가게 막고 있다. 이 주유소를 지나치면 정말 차가 서버릴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차에서 내려 저 경찰차를 타고 어디로 끌려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까지 들었다. 탄은 과감하게 유턴을 해서 경찰차를 무시하고 주유소로 내달렸다. 이제 우리의 마지막 희망은 대사관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탄이 주유하는 동안 내가 이집트 주재 한국대사관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우리가 어떻게 대처를 해야하는지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연료가 소진되기 직전 가까스로 주유소에 도착 다행히 더이상의 방해 없이, 연료가 거의 소진된 상태에서 간신히 주유소에 도착했다. 나는 대사관 전화번호를 알아내기 위해 한국에서 이집트에 가면 연락해보라고 소개 받았던 현지교포분께 우선 전화를 했다. 만난적도 없는데 갑작스럽게 전화를 드리게 되어 송구스러웠지만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우리 사정을 말씀드리자 그분은 경찰을 바꿔달라고 하셨다. 아랍어를 하실 수 있으니 우리를 놔달라 안그러면 큰코다칠 것이다 하며 혼구녕을 내주기를 은근 바랬다. 경찰과 아랍어로 통화를 하고 다시 전화를 돌려받자 교포분은 놀라운 이야기를 하셨다. "이 경찰들을 따라가셔야 할거에요." "네?" 놀라서 반문했다. 교포분은 "이집트는 공산국가처럼 통제가 심한 나라인데 외국인이 단체관광이 아니고 렌트를 해서 관광지가 아닌 곳을 맘대로 마구 돌아다니면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관광경찰'이라는 사람들을 두어 그런 외국인을 보면 안전한 고속도로로 에스코트하면서 감시와 보호를 하고 있는 거에요."라고 하셨다. 깡패같던 사람들이 우릴 에스코트 해주는 사복경찰이라니... 세상에. 완전 깡패처럼 보이던 저 사람이 진짜 사복경찰이라니. 지금 상황이 비정상적인 납치나 강탈이 아니었다니. 너무너무 안도가 되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했다. 이분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끝까지 이들을 날강도 무리로 생각했을테고 이집트를 다니는 내내 긴장하며 불편한 기분으로 여행을 즐기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분의 자세한 설명으로 상황을 올바르게 이해한 우리는 그동안의 불안과 걱정을 털어내고 비로소 경찰들을 웃으며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사람들은 우리 돈을 노리는 강도들이 아니라 해야할 일을 하는 사람들일 뿐이었다. 고속도로가 나오자 그들의 관할구역이 끝났는지 차를 세우고 우리에게 와서 잘가라고 인사를 하며 보내주었다. 그들에게 큰 오해를 한것이 미안한 마음에 우리는 그들이 알아듣건말건 사과를 하고 감사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다시 우리끼리 홀가분하게 드라이브를 하게되니 너무 기쁘고 시원했다. 이 나라의 상황과 관습을 몰라 벌어진 해프닝이었지만 평화롭게 잘 끝나 정말 다행이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낯선 나라로 이동할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된 사건이 되었다. 무조건 의심하고 넘겨짚지 말고 가능한 도움을 청해 현지의 상식을 알아내자. 미냐를 나와 룩소르를 향해 가는 도중 만난 작은 도시 입구에서 또 경찰차를 만났다. 이제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당연한 듯 경찰차를 뒤따라간다. 관할구역이 끝난 곳에서 다른 경찰차에게 우리를 인계하기도 한다. 다들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맞아주시니 너무 좋았다. 처음과 달리 여유롭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경찰의 에스코트를 오히려 즐기기까지 할 수 있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_ufYXwYzqZs?si=NcQ5JOHxrciAv4tC>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10-10 10:27:43<33> 이집트 '카이로'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마흐멧 가족은 늦은 밤 도착한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마흐멧의 가족은 아파트의 3층에 살고 있었고, 우리에게는 6층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우선 우리는 3층 마흐멧의 집으로 가서 거실에서 차를 대접받고 소개를 하며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태어난지 6개월 되었다는 누나의 아들인 아기 모하메드가 너무 귀여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잘 안기고 무척 순한 아기였다. 눈이 신기할 정도로 크고 까매서 정말 인형같았다. 물고기 니모인형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늦은 시간이었기에 친구와 길게 이야기도 못하고 곧 6층으로 가서 잠자리를 안내받았다. 사람이 사용한지 좀 되보이는 공간인 듯해서 치우고 정리한 후 대충 이부자리를 깔아 잠자리를 만들었다. 내일 아침 일찍 나가야해서 바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새벽 조심조심 집을 나섰다. 카우치서핑에서 함께 피라미드를 보자고 제안한 미국친구들과의 약속시간에 맞추기 위해 새벽 6시반에 출발했는데 동네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어젯밤 무서워하며 찾아온 동네가 밝을 때 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혀 정비라고는 안되있는 맨 흙바닥에 쓰레기가 굴러다니고 낡은 아파트 건물들이 황량하게 서있는 모습에 이곳이 우범지역은 아닐까 싶어 어젯밤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 우리는 멘붕상태였다. 그래도 친구가 생겼고 하룻밤 잘 수 있는 곳이 있음에 감사하며 피라미드를 향해 갔다. 친구의 집은 카이로 북쪽이고 남쪽의 피라미드를 가기 위해서는 카이로를 관통해서 2시간 반 가량 가야한다. 카이로에 가까이 가자 집이나 사람들이 잘 안보일 정도로 뿌옇게 보이는 것이 안개라기보다는 스모그가 아닐까 싶었다. 운전도 쉽지 않았던 것이 왕복 8차로의 도로 갓길에 사람들이 태연하게 걸어다니고, 차선이 없는 길도 많았으며 차선이 있어도 다들 별로 신경을 안쓰고 자기 가고싶은 대로 차선을 무시해 달리고 있었다. 카이로의 건물들은 누런 흙색으로 거의 다 비슷비슷하게 보였는데 매우 낡아서 지은지 30~40년은 되보였다. 이와중에 탄이는 "지은지 3천년된 아파트는 아니겠지 뭐."라며 농담을 한다. 한참을 달려 드디어 저 멀리 피라미드의 실루엣이 동트는 여명 속에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입구에 도착하니 차를 가져온 경우에는 일단 표를 먼저 구입하고 동승자는 내려서 도보로 입장하고 운전자는 따로 주차권과 함께 본인표를 가지고 주차장으로 들어가야 했다. 아무래도 피라미드를 처음 보는 탄은 많이 신난 모습이다. 사실 나는 28년 전에 이미 와본적이 있어 크게 오고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탄이 꼭 가보고싶다고 해서 오기로 했다. 당시 카이로 시내의 호텔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피라미드에 간다며 출발했는데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얼마 안가 피라미드에 금방 도착한 것이 무척 이상했었는데 이제 카이로시가 점점 커져서 아예 피라미드는 시내 번화가 안에 있게 되었다. 탄은 이런저런 포즈를 하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조른다. 주차장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는데 스모그에 덮여 뿌옇기는 했지만 지대가 높아 카이로가 잘 보였다. 우리는 약속시간인 9시를 맞추기 위해 6시에 일어나 2시간반 전에 출발했는데 미국부부인 타냐와 존은 약속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조금 늦겠다고 왓앱으로 연락을 하더니 10시 30분이 지나서 나타났다. 와서도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인사하는게 끝이었다. 뭐 썩 유쾌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아 우리도 그냥 웃으며 지금부터의 시간이라도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했다. 근데 오자마자 사전에 이야기가 없던 이집트여성 가이드를 소개하며 20달러를 줘야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녀가 피라미드를 안내하며 유적에 대한 설명을 해줄거라고 했다. 우리랑 사귀고 함께 여행을 즐기려는 것 보다는 가이드비 나눠 낼 사람이 필요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많이 찜찜했지만 일단 알겠다고 했다. 한시간 반만에 비로소 입구를 벗어나 피라미드 가까이 이동을 했는데 중간에 이 부부는 또 사라져버렸다. 늦게와서 입구며 여기저기 다니며 사진을 느긋하게 찍고 한참 뒤에 합류했다. 가이드분이 우리에게 이 사람들 어디갔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겨우 다 모여서 드디어 가이드분이 설명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이상한 영어 발음을 탄이는 거의 알아듣지 못했고 나는 웬만한 이집트에 대한 것은 다큐멘터리며 책 등을 통해 많이 알고 있어서 그녀의 이야기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우리 시간만 빼앗기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가 잠시 끊겼을 때 사정을 이야기하고 당신께 사례를 하고 우리는 따로 다니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타냐가 말한 20달러를 줘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양심적인 가이드는 자기가 한 것이 없다며 받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약간의 사례를 하고 헤어질 수 있었다. 오전에 약간의 갈등이 있었지만 그런 일로 오늘 전체의 기분을 망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평생 다시오기 힘든 이집트 피라미드인데, 저 사람들 따라다니며 계속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결단을 내리기 잘했다고 생각하며 우리끼리 기분좋게 피라미드를 구경하며 즐기기로 했다. 제일 큰 푸쿠왕의 피라미드에는 돈을 추가로 더 내면 안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예전에 들어가본적이 있는 나는 탄에게 "들어가봤자 안에 유물이라곤 다 가져가서 볼거 하나도 없고 무지 낮은 통로를 생고생하며 들어가야해."라고 얘기해주었더니 미련없이 포기한다. 두번째 피라미드로 가는 길에 있는 낮은 건물유적이며 길가에 쌓여있는 돌 하나하나가 평범하지 않게 보인다. 피라미드 공원에는 큰 피라미드가 3개, 스핑크스가 하나 있는데 조금 힘들긴 하지만 걸어서 찾아가보기로 했다. 도보가 어려운 사람들은 낙타나 마차를 타기도 했다. 날씨가 매우 맑고 겨울이라 낮에도 햇빛아래에서 걸을 만 한 기온이라 피라미드 사이를 산책하는 것은 매우 기분 좋고 특별한 경험으로 느껴졌다. 한참 걷다가 언덕위에 뭔가 현대적인 건물과 광장같은 것이 있어 궁금해서 가보았다. 피라미드와 잘 어울리는 멋진 석조건물에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었다. 많이 걸어서 피곤하던 차에 커피한잔 하며 쉬기 좋겠다 싶어 들어갔다. 들어가보니 생각보다 인테리어가 너무 예쁘고 메뉴를 보자 가격이 예상보다 그리 비싸지 않아 우리는 아예 점심식사를 이곳에서 하기로 했다. 우리에게 안내된 자리는 피라미드 3개가 한눈에 보이는 야외테라스였다. 날씨도 좋고 고급스러운 레스토랑 의자에 앉아 편안히 피라미드를 보며 이집트 음식을 먹다니 이거야말로 기대하지도 않았던 최고의 호사가 아닐 수 없었다. 주문한 이집트 정식은 빵을 주식으로 하고 콩과 감자, 계란등으로 간단하게 요리한 것들이었는데 아주 맛있지는 않았지만 분위기에 취해 먹을만 했다. 손님도 많지 않아 느긋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종업원들도 모두 매우 친절해서 오전에 상했던 기분이 모두 날아가버리는 듯 했다. 이곳에서의 식사와 피라미드를 앉아서 편히 구경한 기억은 평생 남을 것 같다. 식사 후에는 공원이 생각보다 많이 넓어 계속 걸어다닐 엄두가 안나 주차장에서 차를 가져오기로 했다. 도로도 있고 군데군데 주차할 곳도 있어 차를 가져온 사람들은 공원 내부를 차로 타고 다니는 것을 파악했다. 피라미드를 실컷 구경했으니 이제 스핑크스를 찾아볼 차례. 조금 헤메다가 드디어 어떤 언덕을 내려가는 중 스핑크스 뒤통수를 발견했다. 스핑크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마무리를 했다. 다음 목적지는 어젯밤 마흐멧이 반드시 가보라고 추천해준 2017년 개관한 이집트국립문명박물관이다. 이곳은 나도 한번도 안가본 곳이어서 매우 기대가 되었다. 지하 주차장이 잘 되어있다. 이집트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현대적인 주차장이다. 주차장에서 검색대를 통과해서 계단을 통해 지상으로 올라오자 조형물이며 조경이 너무너무 이집트스럽고 멋지게 잘 되어있는 박물관 광장이 나왔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자 기프트샵 앞의 파라오 상이 나를 유혹했지만 나올때 가기로하고 일단 전시를 구경하러 들어갔다. 내국인과 외국인 표값이 많이 차이가 난다. 외국인은 약 1만원 정도 했고 이집트사람들은 4분의 1가격이었다. 주차비도 함께 계산했다. 터널같은 복도를 지나 드디어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박물관에 들어가면 촬영을 못하게 하겠지 싶었는데 아무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어 "이야, 개꿀!"하며 마음껏 촬영을 했다. 매우 깨끗하고 훌륭한 전시장에는 내가 정신못차릴 정도로 아름답고 역사적인 고대 이집트 유물이 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무덤에서 나온 각종 인형, 장신구, 토기 등 하루종일 보라고 해도 질리지 않을 흥미진진한 물건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자세로 열심히 구경했다. BC1000년경의 어떤 공주의 천 발다킨(제단이나 왕좌 위에 덮어 시각적으로 강조하는 데 사용되는 독립형 캐노피)은 그 색과 질감이 크게 삭지 않고 남아있어 당시의 화려함에 감탄이 나왔고, 나무관, 석상, 부장품등에 섬세하게 조각되고 채색된 그림과 상형문자들에 마음을 빼앗겼다. 문명박물관의 하이라이트는 지하의 미이라관이었다. 인기 장소답게 줄을 서서 천천히 들어갔는데 어두운 전시실에 유리관에 누워있는 실제 파라오와 왕비들의 미이라를 볼 수 있었다. 내가 책으로 영상으로 들어온 유명한 몇천년전 이집트왕들의 미이라를 내 눈으로 볼 수 있다니 놀랍고 신기한 한편, 영원한 생명을 꿈꾸며 최고의 기술로 미이라로 만들어져 오랜 세월을 지나왔는데 결국은 전세계 사람들의 구경거리밖에 안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좀 착잡했다. 카이로 관광을 마치고 다시 마흐멧네로 돌아왔다. 저녁에 친구와 함께 외출을 했다. 마흐멧의 핸드폰을 우리 렌트카에 블루투스로 연결해 그가 좋아하는 이집트 음악을 함께 들었다. 내가 영화에서 본 이집트 옷을 사고싶다고 말하자 마흐멧은 우리를 옷가게 있는 곳으로 데려가주었다. 몇군데를 가보았지만 내가 보았던 옷위에 걸칠만한 샤방샤방 얇은 천으로 된 아랍식 드레스는 찾을 수 없고 매우 두껍고 무거워보이는 긴 원피스만 보였다. 마흐멧에게 이야기하니 보통 아랍여자들은 절대 그런 샤방한 옷을 안입는단다. 영화에서나 나오는 판타지같은거라며 그런 것을 일반적으로 사기는 힘들거라고 했다. 옷구입은 포기하고 식사를 하러 갔다. 마흐멧은 어디서 배웠는지 "환.영.하.다."라는 한국말을 우리에게 자꾸 한다. 스마트 폰 번역기를 활용한 듯 하다. 이집트 시골동네에서도 한국말을 한마디라도 아는 사람이 있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우리는 타진(작은 도기그릇에 고기, 야채, 소스등을 넣고 오븐에 구운 음식)과 마흐멧의 추천음식 몇가지를 시켰다. 현지친구가 있으면 식당에서 헤메지 않아 너무 좋다. 끈적끈적한 초록색 스프가 나왔는데 공중에서 길게 늘이며 섞는다. 이렇게 하면 더 맛있어진다고 한다. 뭔가 메생이같기도 하고 좀 생소했는데 막상 먹어보니 꽤 입맛에 맞았다. 탄은 비둘기요리에 도전했다. 통째로 들고 망설임없이 중간을 '앙' 뜯어먹는 모습이 산적같다. 한입 뜯으니 속이 노란 밥알로 채워져있는 것이 보였다. 맛있게 잘 먹고 근처 카페로 이동해서 차와 흘러내리는 듯한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디저트로 먹었다. 너무 달지않을까 걱정했지만 따뜻하고 찬 온도차와 크게 달지 않은 맛이 조화롭게 느껴져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희안한 담배같은 것을 피우는 것을 보고 우리가 궁금해하자 마흐멧은 주문을 했다. 바로 물담배였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물담배가 좀 두렵기도 했지만 이때 아니면 언제 해보랴 싶어 한모금 훅 들이켰는데 뭔가 희안한 향과 거부감이 들어 두번은 사양했다. 탄이도 별로 안맞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마흐멧 덕분에 현지체험을 제대로 잘한 즐거운 저녁이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AcZAm4-qGqI?si=tWg9xvjqo3vg2O9K>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10-03 16:4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