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내란 혐의 재판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을 증거로 채택할지를 두고 검찰과 김 전 장관 측 사이에 이견을 보였다. 검찰은 국헌문란 목적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로 결정문을 신청했지만, 김 전 장관 측은 형사소송에서의 증거능력을 문제 삼으며 강하게 반발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는 24일 내란 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장관과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김용군 전 대령의 공판기일을 열었다. 검찰은 이날 "국헌문란 목적 등을 입증하기 위해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을 증거로 신청한다"고 밝혔다. 이에 김 전 장관 측은 즉각 반발에 나섰다. 김 전 장관의 변호인은 "헌법재판소도 (탄핵심판을) 형사소송하고 다르게 취급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며 "헌재가 헌법소송의 특수성을 감안해 형사소송과 다르게 완화된 증거 능력을 부여한다고까지 이야기를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헌재라는 이름으로 이 사건이 진행됐다 해도 형사소송에서는 절대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는 것을 헌재가 천명한 거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고도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증거 능력을 다투는 취지가 아닌 것 같은데, 보통 그렇게 되면 입증 취지 부인으로 정리하지 않냐"며 "의견을 검토해달라"고 김 전 장관 측에 요청했다. 한편, 이날 재판은 시작 14분 만에 국가 안전 보장을 이유로 비공개로 전환됐다. 이후 정보사 소속 김봉규 대령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어졌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25일 재판부에 비공개 재판 신청서를 제출했고, 재판부는 지난달 27일, 이달 10일과 18일에도 관련 증인신문을 비공개로 진행한 바 있다. 검찰은 이날 합동참모본부, 특전사령부 707특임단 소속 군인 등에게도 비공개 재판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추후 증인신문 역시 비공개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재판부는 오는 9월까지 매달 4회씩 추가로 공판기일을 지정했고, 모든 재판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종일 진행될 예정이다. scottchoi15@fnnews.com 최은솔 기자
2025-04-24 16:06:51[파이낸셜뉴스] 지난 4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 결정문이 온라인에서 회자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엔 선고요지를 프린팅 한 티셔츠를 내세워 펀딩 이벤트를 진행하는가 하면, 헌재 결정문을 필사(筆寫)해 인증 사진을 올리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요지를 두고 법학자와 정치권에선 계엄부터 탄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쉽고 간결한 언어로 작성했다는 등 '명문'이었다는 찬사가 이어졌다. 숙고 끝에 나온 '명문' 대한법학교수회는 지난 4일 성명을 내고 "헌재의 판단은 선택과 집중이 명확하게 표명됐다"며 "장기간의 평의와 숙고를 통해 그 결정문을 국민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쉽고 유연한 논리로 무리함이 없이 작성함으로써 모든 권력의 원천이 되는 주권자 국민을 존중한 점은 칭찬받아 마땅하다"라고 밝혔다. '헌정회복을 위한 헌법학자회의'도 "직무수행상 중대한 법 위배를 구성해 탄핵사유를 충족한다고 명쾌하게 선언했다"며 "헌법수호 의무는 물론 국민 신임을 배반했음을 인정해 파면을 충분히 정당화함을 논증했다"는 논평을 내놨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페이스북에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다. 마디 마디, 조목 조목 짚었다. 헌재 재판관들의 노고와 수준에 경의를 표한다"고 극찬을 쏟아냈는가 하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임재성 변호사 역시 페이스북을 통해 "법률 문서에서 '저항'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긍정적인 문장으로 만나다니"라고 감탄했다. 유시민 작가도 같은 날 오후 유튜브 방송 '매불쇼'에 출연해 "오늘 (헌재의) 발표문은 보통사람의 언어로 쓰여있었다"며 "헌재의 진일보한 면모"라고 평가했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역시 "법학개론서에 실릴 만한 '명문'이다. 헌법재판관들이 고심한 게 나타난다"고 전했다. 되새겨보는 명문 선고요지 다양한 사회적 부조리를 패션으로 승화시킨다는 콘셉트의 패션 브랜드 '앱솔루션024'는 SNS를 통해 '탄핵 판결문 티셔츠 - 인용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 이벤트는 헌재에서 탄핵심판이 내린 직후 시작돼 지난 6일 마감했다. 앱솔루션024는 X(옛 트위터) 계정에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문에 감명을 받고 전문을 담은 티셔츠를 계획했다"라며 "최소 두께 맞춰 넣으니 로제타스톤 같아 멋지다"라고 설명했다. 로제타스톤은 이집트의 도시 라쉬드(로제타)에서 발견된 비석으로, 고전 이집트어 해독의 시발점으로 꼽히는 발굴품이다. 해당 티셔츠는 일회성 펀딩을 진행해 거기서 발생한 수익금은 전액 산불 피해에 기부할 계획이다. 기성 제품에 프린팅하는 방식이 아니라 디자이너가 직접 패턴과 실루엣을 설계했다는 게 앱솔루션024의 설명이다. 해당 이벤트가 올라온 뒤 500명 넘는 네티즌들이 '좋아요'를 눌렀다. SNS엔 탄핵 결정문의 선고요지를 필사한 사진과 함께 "피청구인의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 법률을 위반했는지, 그 사유가 파면 할 만큼 중대한지 알아보는 소추 사유 필사"라거나 "필사 처음부터 끝까지 탄핵의 이유"라는 감정을 남겼다. 또 다른 네티즌은 "선고요지를 필사했으니 요지로 만족해야 하나"라며 결정문 전문 필사를 고민하기도 했다. 앞서 '12·3 비상계엄 사태' 직후엔 헌법 필사 열풍이 불기도 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이 헌법 77조 계엄 선포 요건으로 명시된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라고 판단해 계엄을 선포했다고 주장하고 거대 야당이 대통령 권한대행인 한덕수 국무총리를 탄핵하는 등 이례적인 일이 이어지자 “헌법 조항을 뜯어보자"며 사람들은 필사에 나섰다. 온라인 중고서점 알라딘과 모바일 전자책 플랫폼 리디북스에선 전자책으로 배포된 '대통령 탄핵 결정문'이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7일 현재 알라딘과 리디북스에서 각각 '주간 베스트셀러', '지금 많이 읽고 있는 작품'에 올라 있다. 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
2025-04-07 14:27:54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한 헌법재판소가 결정문에 분 단위까지 선고일시를 분 단위까지 적시한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전날 오전 11시 21분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주문(主文·결론)을 읽었다. 같은 날 오후 공개된 헌재의 결정문에는 '선고일시'란에 이례적으로 '2017년 3월10일 11시21분'으로 시간과 분까지 담겼다. 헌재는 이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을 공직에서 파면하는 시각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전했다. 선고 시점에 대통령이 즉시 파면되기 때문에 정확한 시간이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게 헌재 측 설명이다. 이를 위해 헌재는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주문을 읽는 시각도 정확히 측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결정문에는 발표일인 5월14일 날짜가 기재돼 있을 뿐 발표 시각은 표기되지 않았다. 탄핵심판 결정의 효력발생 시점에 대해 명문 규정은 없다. 그러나 별도의 이의 절차가 있을 수 없으므로 결정 선고 시점부터 효력이 발생한다는 게 헌재의 입장이다. 즉 선고 시점이 결정 확정 시점이 된다. 법조계는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가장 많은 권한을 지닌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결정이라는 점에서 혹시 모를 법률적 논란이나 분쟁의 여지를 차단하기 위해 헌재가 이번 선고에서 선고 시각까지 표기한 것으로 분석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2017-03-11 10:17:53헌법재판소가 4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 대해 잠정결론을 내린데 이어 6일부터 결정문 작성작업에 돌입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잠정 결론이 내려졌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탄핵 기각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고, 한나라당은 ‘헌재결정에 영향을 미치려는 행위는 중단해야 한다’며 벌써부터 은근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열린우리당 “기각 기대”=일단 여권은 총선에서의 민의가 정치적 재신임이었던 만큼 탄핵안이 헌재에서 기각 또는 각하될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5일 “기본적으로 탄핵자체가 상식에서 벗어나고 정략적으로 이뤄졌다”며 “국민의 심판도 이미 있었고, 나라의 주인인 국민 절대다수가 원하는 것인 만큼 당연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본다”고 기대했다. 이평수 수석부대변인도 이날 “탄핵에 대한 정치적 심판은 4·15 총선에서 이미 끝났다고 본다”면서 “헌법재판관들이 잘 판단하겠지만, 국민의 뜻과 어긋나는 결정을 내리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여권은 헌재결정 직후 노대통령의 대국민 회견이나 성명, 열린우리당 차원의 대국민성명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헌재 결정 수용”=박근혜 대표는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한나라당은 거기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한선교 대변인이 5일 전했다. 내부적으로 헌재결정 이후 정국상황에 따른 대책 마련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배용수 수석부대변인은 “최근 여권에서 노 대통령의 복귀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는데 그 자체도 헌재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가 기자회견을 갖고 입장을 밝히는 방안 등 ‘적절한 조치’도 취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동당 “노대통령 사과해야”=김종철 대변인은 5일 “탄핵사태가 정략적, 정치적으로 시작돼 애초부터 탄핵사유가 되지 못하는 만큼 헌재는 조속히 탄핵사태를 마무리짓기 위해 기각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기각판결이 내려진 후 노대통령은 걱정스런 사태를 만든 것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국정 정상화돼야”=장전형 대변인은 이날 “어떤 결론이 나든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고 국정이 정상화돼야 한다”며 “헌재의 판결이 난 뒤에는 무엇보다 시급한 경제와 민생살리기에 정치권과 국민이 합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 sm92@fnnews.com 이진우 서지훈기자
2004-05-05 11:09:23[파이낸셜뉴스]12·3 비상계엄 사태 당일 국회의 '정치인 체포조' 투입을 논의한 경찰 간부들의 통화 녹음 파일이 법정에서 공개됐다. 일부 간부는 통화 중 "국회 가면 누굴 체포하겠냐"는 말을 들은 뒤 한숨을 쉬는 대목도 담겼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는 29일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로 기소된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윤승영 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수사기획조정관 등 경찰 지휘부 사건의 공판기일을 열었다. 조 청장은 혈액암 항암 치료 일정으로 이날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박창균 전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은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계엄 당일 국군방첩사령부(방첩사)의 요청을 받은 이현일 전 국가수사본부 수사기획계장의 연락을 받고 '정치인 체포조'를 지원할 수사관 명단을 보낸 인물로 지목된다. 법정에서는 박 전 과장과 이 전 계장의 통화 녹음 파일이 재생됐다. 통화에서 이 전 계장은 박 전 과장에게 "지금 방첩사에서 국회에 체포조를 보낼 거야"라며 "현장에서 방첩사 2개 팀이 오는데 인솔하고 같이 움직여야 할 형사 5명이 필요하니 명단 좀 짜줘"라고 지시했다. 이어 "경찰 티 안 나게 사복 입어라. 형사 조끼는 입지 말고"라고 덧붙였다. 이에 박 전 과장이 박 전 과장이 "뭘(누구를) 체포하는 거냐"고 묻자 이 전 계장은 "국회 가면 누굴 체포하겠냐"고 답했고, 곧이어 박 전 과장이 크게 한숨을 쉬는 소리도 녹음돼 있다. 검찰은 이후 박 전 과장에게 '국회로 가서 누구를 체포한다고 생각했느냐'고 물었고, 박 전 과장은 "시민들이 많이 몰려든 상황에서 질서유지를 해야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며 "계엄이 어쨌든 발동된 상황에서 집단 폭동 등 시민들이 범죄를 저지르거나 이런 상황에 대비한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또 통화 중 한숨을 쉰 이유에 대해 박 전 과장은 "그 (소수)인원으로 많은 인원들 사이에서 체포활동을 한다는 거 자체가 평소 활동에 비하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그 상황이 너무 힘들거라고 생각해서 한숨을 쉬었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체포조가 국회로 가서 국회의원 체포하라고 할 거라고 해서 한숨쉰 거 아니냐'고 묻자, 그는 "정보를 들은 게 없고 내용을 유추하거나 예측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답했다. 검찰은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을 증거로 제출했다. 함께 군사법원에서 재판 중인 군 장성 5명의 증인신문 조서, 국회 국정조사특위 회의록 등도 증거로 신청했다. 검찰은 앞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군 지휘부 재판에서도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을 제출한 바 있다. scottchoi15@fnnews.com 최은솔 기자
2025-04-29 17:03:41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으로 오는 6월 3일 이른바 '장미 대선'이 치러진다. 애초 이번 21대 대선은 장미보다 새로운 헌법의 싹을 먼저 틔울 낌새였다. 여야 대권 잠룡들이 앞다퉈 개헌론을 제기하면서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이달 초 대선·개헌 동시투표론을 띄웠다. 그러나 열기는 시나브로 가라앉고 있다. 우 의장은 '개딸'들의 문자 폭탄 공세를 받은 탓인지 사흘 만에 자신의 제안을 철회했다. 탄핵 정국을 거친 국민이 현행 헌법의 한계를 알아챈 까닭일까. 지난 3월 7일자 여론조사(한국갤럽)에서 현행 대통령제를 고쳐야 한다는 국민이 54%에 달했다. 4월 12~15일 '트렌드 풍향계' 여론조사(트렌드리서치)에선 응답자의 77%가 "개헌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물론 12·3 비상계엄은 윤 전 대통령 스스로 화를 부른 자해극이었다. 다만 국민은 그 과정에서 거대 야당의 횡포도 한몫했다는 걸 인식했을 법하다. 윤 전 대통령을 파면한 헌법재판소도 결정문에서 이를 인정했다. 즉 "대통령이 야당의 전횡으로 국정이 마비되고 국익이 현저히 저해되어 가고 있다고 인식해 이를 어떻게든 타개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렇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행사를 정당화할 수 없다며 사족을 달았지만. 물론 이는 하나 마나한 훈수였다. 압도적 다수인 야권의 폭주로 인한 국정마비를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해소돼야 할 정치의 문제"라고 했으니…. 건국 이래 84년간 역대 야당이 소추한 탄핵안은 모두 21번이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3년간 탄핵을 무려 30번 시도했다. 그것도 12개 범죄 혐의로 5개 재판을 받는 이재명 전 대표 '방탄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도 소여(小與)는 속수무책이었지 않나. 여야를 떠나 수적으론 현행 헌법을 속히 고치자는 흐름이 대세다. 김문수 홍준표 등 국민의힘 주자들뿐 아니라 김동연 김경수 등 이 전 대표를 뺀 민주당 후보들도 개헌에 적극적이다. 야당 출신 우 의장은 개헌 시기를 놓고 오락가락했지만,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 등 국힘 지도부는 당장 하자는 입장이다. 안철수 의원과 한동훈 전 대표, 그리고 민주당 경선 참여를 포기한 김두관 전 의원도 대통령 임기단축을 전제로 개헌안을 제시했었다. 하지만 말만 무성할 뿐 대선 전 개헌 가능성은 불투명해 보이니 문제다. 유력 주자인 이 전 대표가 부정적이어서다. 그는 우 의장이 권력분산형 임기 4년 대통령 중임제 개헌을 제안하자 "개헌은 필요하지만 내란 종식이 먼저"라고 했다.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과 임기단축을 약속했던 지난 대선 때와 확연히 달라진 태도다. 이는 개헌 이슈에 휘말려 '다 된 밥에 코 빠뜨릴 수 없다'는 차원의 대응으로 해석된다. 즉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등이 수사기관을 오가는 모습이 생중계되는 상황에서 대선을 치르는 게 자신에게 가장 유리하다는 계산인 셈이다. 봇물처럼 제기된 개헌론이 헛다리를 짚고 있다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비상계엄 사태를 부른 배경이 뭔가. '용산 대통령'에 맞서는 '여의도 대통령'이란 구도는 또 왜 나왔겠나. 대통령과 절대 다수당이 "너 죽고 나 살자"며 '오징어게임'을 벌인 탓이었다. 개헌의 초점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손보는 건 물론, 한 정파가 거의 3분의 2 의석을 차지해 '황제급'이 된 국회 권력의 횡포를 막는 데도 맞춰져야 할 이유다. 그렇잖아도 5년 단임 직선 대통령제를 골자로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이 수명을 다했다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임기 동안 안정적 국정 운영을 보장한다는 취지는 빛이 바래면서 제왕적이라는 오명만 남았을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여든 야든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개헌을 외면할 까닭이 없다. 모든 주자들이 대통령과 국회 다수당의 벼랑 끝 충돌을 완충하는 장치를 담은 개헌안과 추진 시기를 공약해 국민의 평가를 받기 바란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고문
2025-04-22 18:35:33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이미선 재판관이 18일 퇴임한다. 헌재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 효력을 정지하면서, 당분간 '7인 체제' 운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대선 전까지 헌법소원 본안 판단이 나올 가능성이 낮은 만큼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의 후임자는 다음 대통령의 몫으로 남게 됐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오는 18일 임기가 종료되는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의 퇴임식을 진행한다. 헌재는 지난 9일 마은혁 재판관 취임으로 6개월여 만에 '9인 체제' 완전체가 됐지만, 다시금 미완성 체제로 돌아가게 됐다. 헌재는 지난해 10월 17일 이종석 헌재소장과 이영진·김기영 재판관의 퇴임 이후 공석을 채우지 못하다 지난 1월 조한창·정계선 재판관 합류로 '8인 체제'를 이어온 바 있다. 헌재가 전날 한 대행의 재판관 지명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본안 헌법소원 결론이 나기 전까지 재판관 임명 절차는 멈추게 됐다. 이에 따라 당분간 7인 체제로 운영해야 하는 상황이다. 7인 체제에서도 본안 심리와 선고는 가능하다. 헌재법 23조는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탄핵심판이나 헌법소원 등 중대한 사안의 경우 2명의 공석이 있는 상태에서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인용 결정을 내릴 수 있는데, 추가로 임명될 재판관 의견에 따라 결과가 뒤바뀔 가능성이 있는 경우 최종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수 있다. 헌재도 전날 가처분 인용 결정문에서 "2인의 재판관이 퇴임한 이후에도 7인의 재판관이 사건을 심리해 결정할 수 있다"며 "나머지 2인의 재판관의 의견에 따라 사건의 향배가 달라질 수 있는 경우에는 그 임명을 기다려 심리 및 결정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헌재가 문형배·이미선 재판관 퇴임 전까지 주요 사건들을 최대한 마무리 지은 만큼 시급하게 결정해야 할 사건이 많지는 않다. 탄핵심판의 경우 조지호 경찰청장과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검사장) 사건이 남아 있는데, 조 청장 사건은 변론준비기일도 잡히지 않았고 손 검사장 사건은 형사재판이 끝날 때까지 중지된 상태다. 통상 본안 판단까지 수개월이 걸리는 만큼, 대선 전 '재판관 임명권 행사 위헌확인' 헌법소원의 결론이 나오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차기 대통령에 따라 재판관 구성도 달라지게 되는 셈이다. 현재 헌재의 재판관 구성은 진보 4명, 중도 3명, 보수 2명으로 평가된다. 문형배·이미선·정계선·마은혁 재판관은 진보, 정정미·김형두·김복형 재판관은 중도, 정형식·조한창 재판관은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정권 교체가 이뤄질 경우 현재 구도가 유지되고, 여당이 재집권할 경우 보수 우위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한 대행이 지명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임명될 경우 진보 2명, 중도 3명, 보수 4명으로 재편될 것으로 예상된 바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선 '사법의 정치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헌재의 이번 결정에 대해 "정치 재판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헌재가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고 보고 가처분을 인용했는데, 침해되는 권리가 없음에도 이를 인정한 것"이라며 "재판을 받는 사람이 재판관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권형둔 공주대 법학과 교수는 "절차적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가처분이 인용된 것인데, 이를 두고 정치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며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재판관을 지명해 헌재를 구성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jisseo@fnnews.com 서민지 기자
2025-04-17 19:10:52#.서울 종로구 경복궁 주차장을 관리·운영하는 A업체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2억여원의 적자를 봤다. 불과 3개월 만이다. 그 이전 6개월간 손해가 1000만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적자폭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직격탄이 됐다. 탄핵 찬반 집회로 광화문 등 경복궁 일대가 몸살을 앓으면서 정상적인 영업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관계기관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별 소득은 없었다. A업체에 남은 선택지는 사업을 접는 것뿐이다. 계엄과 탄핵의 불똥이 애꿎은 중소 업체로 튀었다. 계엄 이후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결정까지 122일간 크고 작은 집회의 직접적인 피해가 확인된 셈이다. 업체는 도로 통제로 차량이 제때 출차하지 못해 손님은 끊긴 데다, 집회 참석자의 무분별한 화장실 이용 등으로 일거리는 오히려 늘어났다고 호소했다. 17일 파이낸셜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아웃소싱 도급 전문 A업체는 지난해 6월 조선의 궁궐 등을 관리하는 궁능유적본부 경복궁관리소와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주차장 운영을 시작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비상계엄이 터지면서 6개월 만에 난관에 부딪혔다. 윤 전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가 광화문과 경복궁 일대에서 열리며 이용객이 크게 줄었다. 피해는 주로 주말에 집중됐다. 업종 특성상 주말 매출이 평일 적자를 보전하는데, 집회 역시 주말마다 그 규모를 키웠다. 경찰은 통상 집회 참가자 수에 맞춰 도로를 통제한다. 광화문과 경복궁 도로가 바리케이드에 막히거나 집회 참가자들에게 점령당하면 이용객은 주차장 진입을 할 수 없고, 차량을 빼는 것도 불가능하다. 업계 관계자는 "사업장 인근의 장기간 집회로 피해가 컸다"며 "주말 영업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토로했다. 업체가 궁능유적본부에 지급해야 하는 사용료는 연간 17억원에 달한다. 업체는 의도와 상관없는 특수한 상황이 발생했다며 이 금액의 일부라도 감면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국유재산법 제34조 제2항은 천재지변이나 사회재난 등으로 행정재산을 사용하지 못하면 사용료를 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이번 사례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궁능유적본부 관계자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조 제1호에서 규정하는 재난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법적인 지원을 받는 것도 장담할 수 없다. 집회에서 대규모 충돌이나 사망·중상, 방화, 폭발, 시설붕괴 등이 발생할 경우 사회재난으로 해석할 여지가 일부 있어도 탄핵 찬반 집회 자체를 국유재산법상 사용료 면제 요건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견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헌법재판소도 2017년 결정문에서 당시 촛불집회는 사회불안 요소가 아니라, 민주주의 구현 수단이라는 취지의 판단을 내렸다. 신민영 법무법인 호암 대표변호사는 "이번 사례는 참고할 선례가 없어서 이야기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며 "사실 재난이라는 게 불가항력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결국에는 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차이인데 어떻게 봐야 할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집회로 업무가 가중됐다고 업체는 호소했다. 도로 통제로 차량이 제때 나가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자 담당 업무와 민원이 늘었다. 한 직원은 "고객들이 주차장에서 10m를 이동하는데 30~40분이 걸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사전 정산한 고객은 20분 안에 나가지 못하면 다시 정산해야 하다 보니 불편함이 많았다"고 전했다. 화장실 관리와 소음 공해 등도 심각해졌다. 시위 참가자들이 화장실로 몰리면서 변기가 막히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한 직원은 "주최 측은 오후 4시로 집회 신고를 했지만, 오전 8시부터 집회를 준비했다"며 "귀마개를 꽂아도 소리가 새어 들어올 정도로 시끄러워서 하루 종일 아무 일도 못할 만큼 고통스러웠다"고 하소연했다. 이 업체는 결국 사업을 포기하기로 했다. 오는 2026년 6월 11일까지 국유재산에 해당하는 경복궁 주차장을 2년간 유상 사용하기로 한 계약 기간을 1년 앞당겨 오는 6월 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궁능유적본부는 A업체에 향후 차질 없이 인수인계할 것을 요구한 상태다. 다만 아예 기대할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기획재정부 고시를 적용받으면 A업체가 회계연도별 국유재산 사용료를 일부 감면받을 가능성은 있다고 했다. '소상공인 등에 대한 국유재산 사용 부담 완화에 관한 고시'에 따르면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의 국유재산 사용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회계연도별로 사용료 최대 2000만원을 경감해 준다. 그러나 최대 금액을 적용받는다고 해도 손해액의 10분의 1에 그친다. jyseo@fnnews.com 서지윤 기자
2025-04-17 19:09:45[파이낸셜뉴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이미선 재판관이 18일 퇴임한다. 헌재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 효력을 정지하면서, 당분간 '7인 체제' 운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대선 전까지 헌법소원 본안 판단이 나올 가능성이 낮은 만큼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의 후임자는 다음 대통령의 몫으로 남게 됐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오는 18일 임기가 종료되는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의 퇴임식을 진행한다. 헌재는 지난 9일 마은혁 재판관 취임으로 6개월여 만에 '9인 체제' 완전체가 됐지만, 다시금 미완성 체제로 돌아가게 됐다. 헌재는 지난해 10월 17일 이종석 헌재소장과 이영진·김기영 재판관의 퇴임 이후 공석을 채우지 못하다 지난 1월 조한창·정계선 재판관 합류로 '8인 체제'를 이어온 바 있다. 헌재가 전날 한 대행의 재판관 지명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본안 헌법소원 결론이 나기 전까지 재판관 임명 절차는 멈추게 됐다. 이에 따라 당분간 7인 체제로 운영해야 하는 상황이다. 7인 체제에서도 본안 심리와 선고는 가능하다. 헌재법 23조는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탄핵심판이나 헌법소원 등 중대한 사안의 경우 2명의 공석이 있는 상태에서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인용 결정을 내릴 수 있는데, 추가로 임명될 재판관 의견에 따라 결과가 뒤바뀔 가능성이 있는 경우 최종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수 있다. 헌재도 전날 가처분 인용 결정문에서 "2인의 재판관이 퇴임한 이후에도 7인의 재판관이 사건을 심리해 결정할 수 있다"며 "나머지 2인의 재판관의 의견에 따라 사건의 향배가 달라질 수 있는 경우에는 그 임명을 기다려 심리 및 결정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헌재가 문형배·이미선 재판관 퇴임 전까지 주요 사건들을 최대한 마무리 지은 만큼 시급하게 결정해야 할 사건이 많지는 않다. 탄핵심판의 경우 조지호 경찰청장과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검사장) 사건이 남아 있는데, 조 청장 사건은 변론준비기일도 잡히지 않았고 손 검사장 사건은 형사재판이 끝날 때까지 중지된 상태다. 통상 본안 판단까지 수개월이 걸리는 만큼, 대선 전 '재판관 임명권 행사 위헌확인' 헌법소원의 결론이 나오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차기 대통령에 따라 재판관 구성도 달라지게 되는 셈이다. 현재 헌재의 재판관 구성은 진보 4명, 중도 3명, 보수 2명으로 평가된다. 문형배·이미선·정계선·마은혁 재판관은 진보, 정정미·김형두·김복형 재판관은 중도, 정형식·조한창 재판관은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정권 교체가 이뤄질 경우 현재 구도가 유지되고, 여당이 재집권할 경우 보수 우위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한 대행이 지명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임명될 경우 진보 2명, 중도 3명, 보수 4명으로 재편될 것으로 예상된 바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선 '사법의 정치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헌재의 이번 결정에 대해 "정치 재판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헌재가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고 보고 가처분을 인용했는데, 침해되는 권리가 없음에도 이를 인정한 것"이라며 "재판을 받는 사람이 재판관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권형둔 공주대 법학과 교수는 "절차적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가처분이 인용된 것인데, 이를 두고 정치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며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재판관을 지명해 헌재를 구성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jisseo@fnnews.com 서민지 기자
2025-04-17 16:25:50지난겨울 뭐든 사나웠다. 습설과 강풍에 꼿꼿하던 나무들이 부러지고 뿌리가 뽑혔다. 새벽 불시착한 여객기가 폭발했다. 국토 허리 산하가 불에 탔다. 많은 사람이 죽었다. 겨우내 수척해진 산에 기어이 봄이 왔다. 매주 오르는 뒷산에 진달래와 산벚, 산목련이 만개했다. 찢긴 민주주의에도 새살이 차오르고 있을까. 윤석열 전 대통령은 벚꽃이 절정이던 며칠 전 "다 이기고 돌아왔다. 어차피 뭐 5년 하나 3년 하나…"라며 관저를 떠났다. 성찰과 사과는 없었다. 그리고 엊그제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내란 우두머리 혐의 공판 피고인석에 앉았다. 90여분간 마이크 앞에서 "비폭력적 몇 시간의 사건을 내란으로 구성한 자체가 참 법리에 맞지 않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온 국민이 가슴을 쓸어내렸던 그날은 "경고성·호소형 계엄"이었다. 내란 모의는 "코미디"였다. 정치인이 국회 담장을 넘어간 것은 "쇼"였다. 비상입법기구 쪽지를 건넨 것은 "난센스"였다. 체포하라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이것이 성에 차지 않는 듯 변호인은 이런 말도 했다. "헌법재판소 결정이 진리는 아니다." 헌법재판관 8명 만장일치로 선고한 탄핵심판 결정문을 다시 읽어봤다. 문장은 명료했고 단단했다. 한자어와 법정 용어를 절제함으로써 이해와 설득의 힘이 더 컸다. 겸손하면서 균형적이었다. 어느 누구도 우월하지 않았다. 최고의 문장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이 대목이다. "대통령의 권한은 어디까지나 헌법에 의하여 부여받은 것이다." '어디까지나'라는 말이 신의 한 수다. 변명과 궤변의 장광설을 하든 간에 어디까지나 대통령은 헌법과 국민 위에 있지 않다고 딱 잘라 한마디하는 것 같다. 결정문의 백미는 단도직입 결론부다. 맨 뒤부터 거꾸로 읽어보면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가 첫머리다. 이어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는 점을 적시한다. 이것은 '민주공화국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한 것'이다. 이유는 첫째,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위반했다. 둘째, 군경을 동원해 국회 등 헌법기관의 권한을 훼손했다. 셋째,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했다. 그러면서 국민을 대신해 엄중히 꾸짖는다. 대통령은 국회를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했어야, 국회는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대화와 타협을 했어야 한다고. 보통의 상식에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있을까. 대통령과 국회, 두 권력은 추악하게 싸웠다. 불통과 횡포의 대립이었다. 관용은 배우자와 측근을 향한 두둔, 충성심으로 변질됐다. '이재명 방탄'의 민주당은 감히 절대권력을 건드린 감사원장과 검사, 국무위원을 무더기 탄핵했다. 입법권을 남발했다. 대통령은 국회를 찾아 설득하지 않았다. 타협도 없었다. 민주당은 나라예산을 일방 삭감해버렸다. 극렬주의자들은 공권력에 분풀이했다. 법원은 폭동에 파괴됐다.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1864~1920)는 정치가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자질 세 가지를 "열정, 책임감, 안목"이라고 했다. 그중 ‘안목‘에 대해 "사물과 사람에 대해 거리를 두는 능력으로, 이를 못하는 것이 정치가가 저지를 수 있는 큰 죄"라고 말한다. 윤 정권의 패착이 이것이다. 헌재는 '법치국가와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위반한 것, 그 자체로 민주공화정의 안정성에 심각한 위해를 끼쳤다'고 일갈한다. 법치를 위배한 대통령과 법치를 조롱한 수권정당, 서로를 존중하지 않은 양대 권력을 향한 질타이자 '파면 선고'다. 고 이어령 선생은 "정치의 정(政)은 채찍을 들어 올바르게 다스린다는 뜻을 갖는다"고 썼다('이어령의 말'). 보수든 진보든 상대에게만 채찍을 들려 했지 자신을 성찰하지 않았다. 그렇다. 대선판이 되자 정치의 뒤끝이 더없이 추잡스럽다. 극성 지지층 앞에서는 무릎도 꿇을 판이다. 침묵하는 다수, 묵묵히 일하며 납세하는 국민 알기는 참으로 우습다. 위선 거짓의 정치언어가 천지사방으로 날뛴다. 민심만은 냉정해야 한다. 논설위원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
2025-04-16 19: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