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한갑수 기자】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은 인천문화재단 창립 20주년을 맞아 인천전시실을 온라인에서도 관람할 수 있는 온라인문학관(VR) 전시를 구축·개통했다고 16일 밝혔다. 한국근대문학관은 전자책과 고화질 사진자료, 인천 근대문학 전문(全文) 열람, 온라인 도슨트 감상 등 온라인 특화 콘텐츠를 마련했다. 한국근대문학관은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인천을 형상화한 근대의 시와 소설, 인천이 배출한 근대 문인, 인천에서 발행된 근대 문예지를 만나볼 수 있도록 했다. 또 전시실 내부의 여러 체험 장치와 동영상, 음원 콘텐츠 등을 온라인에서 구현할 수 있고 상설전시실 온라인문학관(VR)과도 연결해 한국근대문학관의 상설 전시 전체를 편리하게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온라인문학관(VR) 전시는 한국근대문학관 홈페이지 메인페이지(온라인 상설전시)에서 웹과 모바일로 접속할 수 있다. 한국근대문학관 관계자는 "이번 인천전시실 온라인 전시로 한국근대문학관 전시 콘텐츠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하고 소장 콘텐츠의 효율적 확산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kapsoo@fnnews.com
2024-12-16 19:00:34【파이낸셜뉴스 인천=한갑수 기자】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은 인천문화재단 창립 20주년을 맞아 인천전시실을 온라인에서도 관람할 수 있는 온라인문학관(VR) 전시를 구축·개통했다고 16일 밝혔다. 한국근대문학관은 전자책과 고화질 사진자료, 인천 근대문학 전문(全文) 열람, 온라인 도슨트 감상 등 온라인 특화 콘텐츠를 마련했다. 한국근대문학관은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인천을 형상화한 근대의 시와 소설, 인천이 배출한 근대 문인, 인천에서 발행된 근대 문예지를 만나볼 수 있도록 했다. 또 전시실 내부의 여러 체험 장치와 동영상, 음원 콘텐츠 등을 온라인에서 구현할 수 있고 상설전시실 온라인문학관(VR)과도 연결해 한국근대문학관의 상설 전시 전체를 편리하게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온라인문학관(VR) 전시는 한국근대문학관 홈페이지 메인페이지(온라인 상설전시)에서 웹과 모바일로 접속할 수 있다. 한국근대문학관 관계자는 "이번 인천전시실 온라인 전시로 한국근대문학관 전시 콘텐츠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하고 소장 콘텐츠의 효율적 확산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kapsoo@fnnews.com 한갑수 기자
2024-12-16 10:56:11[파이낸셜뉴스]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은 한국근대문학관에서 활동할 문학관해설사(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고 14일 밝혔다. 한국근대문학관 문학관해설사는 우리 근대문학을 학생 및 일반 시민들에게 알기 쉽고 재미있게 해설하는 국내 유일의 근대문학 전문 해설사이다. 한국근대문학관 문학관해설사는 상설전시 및 기획전시 해설을 담당하고, 관람 안내 등 문학관 내 각종 안내 역할을 수행한다. 문학관해설사 하루 활동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문학관 해설사는 문학관 주최 각종 교육프로그램 및 행사에 우선 참여할 수 있으며 교통비 및 중식비를 실비 보상한다. kapsoo@fnnews.com 한갑수 기자
2019-10-14 10:27:01인천문화재단은 한국근대문학관에서 활동할 문학관해설사를 5명 내외 모집한다고 9일 밝혔다. 한국근대문학관 문학관해설사는 한국 근대문학을 학생과 일반 시민들에게 알기 쉽고 재미있게 해설하는 전문 해설사이다. 문학관해설사는 상설전시·기획전시 해설을 담당하고, 관람 안내 등 문학관 내 각종 안내 역할을 수행한다. 활동은 평일과 주말·공휴일 관계없이 주 1~2일이고, 하루 활동비로 4만3000원을 지급받는다. 활동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이다. 자격은 인천시에 주소를 둔 만 20세 이상 성인이면 누구나 지원 가능하다. 접수는 10∼17일까지로 이메일로만 받는다. 서류 심사와 면접(23일)을 거쳐 최종 선정자 발표는 오는 28일에 이뤄진다., 3월 7∼8일, 10일에 걸쳐 이뤄지는 3일간의 해설사 전문교육을 모두 수강할 수 있어야 한다. 기타 자세한 사항은 10일부터 인천문화재단이나 한국근대문학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kapsoo@fnnews.com 한갑수 기자
2017-02-09 10:43:06【 인천=한갑수 기자】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은 문학관에서 근무할 도슨트를 모집한다고 16일 밝혔다. 한국근대문학관 도슨트는 상설전시 및 기획전시 해설을 담당하며, 관람 안내 등 문학관 내 각종 안내 역할을 수행한다. 모집 접수기간은 22일까지이며 근무일수는 평일과 주말·공휴일 관계없이 주 2~4일이다. 문학을 사랑하는 모든 시민은 누구나 지원할 수 있으며, 모집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인천문화재단이나 한국근대문학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kapsoo@fnnews.com
2014-05-16 09:48:09【 인천=한갑수 기자】인천문화재단은 국내 근대문학 자료를 전시하는 종합문학관인 한국근대문학관을 오는 27일 인천 중구 인천항 인근에서 개관한다고 20일 밝혔다. 인천문화재단은 일제 강점기에 지은 중구 해안동의 창고 4채를 개조해 한국근대문학관으로 사용키로 했다. 문학관은 그동안 특정 유파의 작품과 자료를 수집해 전시하는 곳은 있었지만 근대 문학 작품과 자료를 종합적으로 전시하는 문학관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천문화재단은 문학관에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수장고 등을 마련하고 이광수, 최남선, 김소월 등 국내 근대 문학을 이끈 중요 작가의 작품과 자료를 시대별로 전시할 계획이다. 인천문화재단은 문학관 개관을 기념해 기획전, 낭독 공연, 세계문학특강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방침이다. kapsoo@fnnews.com
2013-09-20 12:38:06【 인천=한갑수 기자】인천문화재단은 27일 중구 해안동 인천아트플랫폼 C동 공연장에서 한국근대문학관 개관 준비 심포지엄을 개최한다고 26일 밝혔다. 내년 개관 예정인 한국근대문학관은 한국 근대문학 전반을 관장하는 국내 최초의 종합문학관이다. 이번 심포지엄은 '문학 교육과 문학관-한국 근대문학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근대문학 교육에 대한 현황과 한국근대문학관의 역할 등에 대한 학교 현장 및 교사들의 고민과 목소리를 듣는 자리로 마련된다. 이번 심포지엄은 '중국인 거리'로 유명한 오정희 소설가의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주제발표 및 종합토론으로 진행된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등의 저자 고미숙 작가가 '고전에서 배우는 미래의 공부법'을 주제로 발표한다. 고 작가는 '운수좋은 날'과 '삼대' 등의 근대문학작품을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교수할 것인가 하는 근대문학 교수법에 대한 현역 국어 교사의 현장 고민이 발표할 예정이다. 또 인천 국어교사들을 대상으로 문학관 및 한국근대문학관에 대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된다. 이날 인천문화재단은 한국근대문학관의 개관 준비 상황과 운영계획 등도 발표할 계획이다. kapsoo@fnnews.com
2012-10-26 06:35:48【파이낸셜뉴스 목포=황태종 기자】전남 목포 원도심이 근현대 문학의 숨결을 간직한 전국 유일의 '문학마을'로 거듭난다. 목포시는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남부권광역관광개발 문학치유 관광루트 연계 명소화 사업인 '목포문학마을 조성 사업'에 선정됐다고 10일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 근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배출한 문학의 고장으로서, 문학자원을 관광자원으로 연계해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방침이다. 목포시에 따르면 '문학마을'이 조성될 목원동 일원은 목포 원도심의 심장이자 마을 자체가 하나의 지붕 없는 문학관이다. 김우진(극작가), 박화성(소설가), 차범석(극작가), 김현(문학평론가) 등 한국 문학을 빛낸 작가들이 태어나거나 창작 활동을 펼쳤던 곳으로, 이번 사업에는 국비와 지방비 등 총 144억6000만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목포시는 그동안 문학마을 조성과 관련한 종합 계획 수립 등 행정절차를 이행하고 올해 부지 매입 등 본격적으로 사업에 착수해 오는 2027년 완료할 계획이다. 특히 이 지역을 문학과 관광이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변화시켜 문학적 가치와 지역 고유의 역사성을 동시에 살릴 방침이다. '문학마을'은 △골목길 문학전시관 조성 △문학마을 디자인 △문학 플랫폼 구축 등의 사업으로 조성된다. 먼저, 현재 갓바위문화타운에 있는 목포문학관이 기존의 김우진, 박화성, 차범석, 김현의 4인 복합문학관에서 개인별 문학전시관으로 탈바꿈해 목원동으로 옮겨온다. 더불어 김지하(시인), 최하림(시인), 천승세(소설가), 황현산(문학평론가) 등 목포 출신 작가들의 전시관도 추가로 조성해 국내에서는 최초로 '문학마을' 일대에 총 8인의 작가 전시관이 탄생한다. 이는 한국문학사의 큰 획을 그은 작가를 다수 배출한 목포이기에 가능한 전국 최초의 유일한 사례로, 문학의 도시로서 목포의 위상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아울러 불종대, 남교소극장, 북교동 성당까지 이어지는 주요 길목을 작가 이름을 딴 문학골목으로 조성한다. 마을 곳곳에는 문학을 테마로 한 포토존과 야외 갤러리가 마련되며, 문학디자인 거리, 문학공원, 문학마을센터와 홍보관도 들어설 예정이다. 또 '문학마을 플랫폼' 구축을 통해 방문객을 위한 관광안내소 및 온라인 홈페이지를 개설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문학마을'을 찾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문학마을' 내에서는 시민과 관광객이 참여하는 문학 전시 및 공연, 문학축제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원도심 근대역사문화 공간과 연계해 새로운 관광상품으로 발전시켜 나갈 예정이다. 박홍률 목포시장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목포의 풍부한 문학적 자산을 활용해 전국 최초의 '문학마을'을 조성하고, 이를 차별화된 관광자원으로 발전시켜 '문학의 도시 목포'를 만들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hwangtae@fnnews.com 황태종 기자
2025-03-10 13:37:47한국 현대문학의 선구자인 춘원 이광수(1892~1950)는 국토를 기행하면서 국가의 미래 발전을 위한 많은 생각과 의견을 기행문으로 기록한다. 춘원은 일제강점기 당시 최남선, 홍명희와 함께 '조선 3대 천재'로 꼽혔다. 전래로 조선의 선비들과 학자, 관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세계와 국토를 기행하면서 기행문과 감상문 등을 많이 남기고 있다. 춘원의 대표적인 기행록으로는 '금강산유기'(金剛山遊記·1922), '오도답파여행'(五道踏破旅行·1913~1919), '남유잡감'(南遊雜感·1913~1931) 등이 있다. 금강산유기는 서울에서 금강산으로 가는 여정과 금강산을 기록한 것이다. 오도답파여행은 한국의 충남·전북·전남·경남·경북 5도를 둘러본 여행기이고, 남유잡감은 일본·중국·연해주 등 해외여행기다. 오도답파여행은 1917년 6월 '매일신보'에 연재한 글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다음 해에 다시 정리해 육당 최남선이 운영하는 '청춘' 잡지에 매호 실었다. 여기서 춘원은 각 지역의 모습을 간단히 설명하고, 지역의 발전을 위한 의견을 제시하거나 미래의 기대하는 상상적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의 기행문을 간략하게 정리하면서 가능하면 춘원 특유의 말투를 그대로 살리고자 한다. 오도답파여행의 일부를 살펴보자. 1913년 6월 26일 서울역에서 경부선을 타고 조치원역에 내려 자동차로 공주로 달아난다. 도로가 좋다. 질풍같이 달려도 요동이 없다. 조치원에서 공주로 가는 길에는 거의 '빨간산'뿐이다. 그리고 바싹 마른 개천, 쓰러져가는 오막살이 집을 보면 비관이 생긴다. 금강(錦江)은 3~4년 전만 하더라도 공주, 부강까지 선박이 통행하였다 하나, 점차 수량이 감소하여 지금은 소선박도 운행이 어렵다. 이러한 현상은 원래가 아닌 주민들의 부족함 때문이라 본다. 자각하고 개선해야 할 것이다. 충남도청을 들러 식림대책을 물으니 '25년 예정으로 충남에 식목을 하고 벌채를 금지하며 각 군면에서 묘목을 기르도록 할 예정으로 대전, 연기, 천안 등 철도변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실행할 것'이라 하니 그런대로 안심을 가진다. 산업에 대해서도 들어본다. 본도는 역시 농업이 주산업이다. 관계설비와 종자개량에 적극 노력하여 경지면적과 수확고가 증가하여 간다. 또한 잠업과 저포업(苧布業·모시옷 제조)을 적극 장려한다. 본도는 기후와 토질은 잠업에 적당하므로 10년 계획으로 뽕나무를 심을 것이라 한다. 유해무익했던 금강의 수리를 응용하여 공주에 대규모 제사 공장을 세우고 부를 증진하여 철도로 발전한 대전, 논산, 조치원에 빼앗긴 공주에 신생명을 부여하려 한다. 공주라고 부름은 시가지를 두른 산들이 공자형(公字形)을 띄는 까닭이라 한다. 다음 날 공주산성을 오른다. 금강의 남안에 돌출한 고지상에 있는 성으로 북문인 공북루(拱北樓), 울창한 송림의 산길을 걸어서 과거 승병의 총본산인 영은사(靈隱寺)를 들른다. 법당문을 반쯤 잘라내고 유리창을 단 것과 계하(階下)에 석유 광명등을 켠 것이 '아나크로니즘(시대착오)'으로 보인다. 진남문을 통해 공산성에서 나왔다. 조선의 제일의 평야요, 제일의 미(米) 산지인 전북평야에 들어섰다. 일망무제다. 평야 중에는 조산(造山) 같은 조그마한 산들이 있고, 산이 있으면 반드시 그 밑에 촌락이 있다. 마치 바위에 의지하여 굴이 붙어 있는 것 같다. 들에 나가 먹고 산에 들어와 자는 것이 이 지방의 특색이다. 그러나 어떤 촌락은 그만한 산도 얻지 못하여 광야에 길 잃은 자 모양으로 벌판에 있는 자도 있다. 퍽 산이 귀하다. 이 평야는 고래로 수재(水災)와 한재(旱災)가 겸수(兼修)하므로 농민의 생활이 극히 불안정하였다. 만일 수리(水利)가 정리되면 농민의 생활이 안정되고 넉넉히 3할 이상의 증수(增收)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군산에 도착하였다. 군산은 전북 유일의 개항장이요, 조선 제일의 곡물 수출항이다. 가구의 정연함과 가옥의 정제함이 꽤 미관이다. 이리역(裡里驛)에 하차하여 경철로 전주로 항하였다. 이름은 경철이라 하지만 차창도 훌륭하고 속도도 어지간히 빠르다. 전주의 수려한 봉만(峰巒)이 가까워진다. 산은 참으로 수려하다. 전주의 특색은 산이라 하였다. 대장촌, 삼례 등지의 농장이며 송림이 울창한 건북산릉의 승경은 귀로에 찾기로 했다. 전주는 백제시절에 완산 혹은 비사벌이라 하였다 하며, 견훤의 후백제의 왕도라 한다. 전주 금융기관으로는 금융조합이 있으나 중농 이상 이용이 가능하여 뒤에 소농도 가능한 전주농사조합을 시험적으로 설립하였다. 전주에 제지공업을 기계공업적으로 가능하도록 시험 중이라 한다. 전주는 죽기, 목기, 지류, 선자(扇子) 등은 전부터 유명하였다. 당국의 장려로 더욱 발전하였다. 이를 위해 전주공립간이공업학교 생도들의 죽기와 목기, 장수의 석기, 운봉의 목기는 세계 어느 시장에 내어도 부끄럽지 아니한 것이다. 이상의 춘원답사기는 '오도답파'의 충남과 전북의 일부를 담은 것이다. 위의 글은 1963년에 나온 이광수전집 18권에서 인용했다. 그의 전집은 방대한 분량의 작품집으로 소설, 시, 수필, 기행문, 서간문 등 다양한 글들의 모음이다. 편집위원으로는 주요한, 박종화, 백철, 정비석, 박계주 등 당대 한국 최고의 문학인들이 참여했다. 이 전집에서 춘원은 우리 한글과 어려운 한자, 당시의 일본식 한자, 일본어, 영어 등을 혼용하여 쓰고 있다. 춘원의 대단한 문학 수행의 결과일 것이다. 후대에 춘원의 의식과 사상에 대한 비판론도 많이 나왔지만, 당시 근현대 교육이 매우 부족했던 조선의 백성들에게 많은 지리정보와 함께 개인적 삶의 개선과 국가발전에 기여한다는 뜻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춘원의 친일론으로 전국 50여곳에 이런저런 문학관이 있지만 이광수문학관은 없다. 다만 인천 한국근대문학관의 11인의 문학인에 춘원의 이름이 들어 있다. 춘원이 북한 평북 정주 태생이고, 자강도 강계에서 별세한 영향도 있는 것일까. 아무튼 춘원의 기행문은 문학적인 표현과 함께 당대의 지리와 역사, 그리고 미래 의견을 함께 보여준다.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5-02-24 18:28:22한국 현대문학의 선구자 춘원 이광수(1892~1950)는 국토를 기행하면서 국가의 미래 발전을 위한 많은 생각과 의견을 기행문으로 기록한다. 춘원은 일제강점기 당시 최남선, 홍명희와 함께 조선 3대 천재로 꼽혔다. 전래로 조선의 선비들과 학자, 관료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세계와 국토를 기행하면서 기행문과 감상문 등을 많이 남기고 있다. 춘원을 사례로 기행록을 살펴본다. 그의 대표적인 기행록은 '금강산유기'(金剛山遊記, 1922), '오도답파여행'(五道踏破旅行, 1913~1919), '남유잡감'(南遊雜感, 1913~1931) 등이 있다. 금강산유기는 서울에서 금강산으로 가는 여정과 금강산을 기록한 것이다. 오도답파여행은 한국의 충남, 전북, 전남, 경남, 경북 5도를 둘러본 여행기이고, 남유잡감은 일본, 중국, 연해주 등 해외여행기다. 오도답파여행은 1917년 6월 ‘매일신보’에 연재한 글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다음해에 다시 정리해 육당 최남선이 운영하는 ‘청춘’ 잡지에 매호 실었다. 여기서 춘원은 각 지역의 모습을 간단히 설명하고 지역의 발전을 위한 의견을 제시하거나 미래의 기대하는 상상적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의 기행문을 간략하게 정리하면서 가능하면 춘원 특유의 말투를 그대로 살리고자 한다. 오도답파여행의 일부를 살펴본다. 1913년 6월 26일 서울역에서 경부선을 타고 조치원역에 내려 자동차로 공주로 달아난다. 도로가 좋다. 질풍같이 달려도 요동이 없다. 조치원에서 공주로 가는 길에는 거의 ‘빨간산’ 뿐이다. 그리고 바싹 마른 개천, 쓰러져가는 오막살이 집을 보면 비관이 생긴다. 금강(錦江)은 3~4년 전만 하더라도 공주, 부강까지 선박이 통행하였다 하나, 점차 수량이 감소하여 지금은 소선박도 운행이 어렵다. 이러한 현상은 원래가 아닌 주민들의 부족함 때문이라 본다. 자각하고 개선해야 할 것이다. 충남도청을 들러 식림 대책을 물으니 ‘25년 예정으로 충남에 식목을 하고 벌채를 금지하며 각 군면에서 묘목을 기르도록 할 예정으로 대전, 연기, 천안 등 철도변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실행할 것’이라 하니 그런대로 안심을 가진다. 산업에 대해서도 들어본다. 본도는 역시 농업이 주산업이다. 관계설비와 종자개량에 적극 노력하여 경지면적과 수확고가 증가하여 간다. 또한 잠업과 저포업(苧布業, 모시옷 제조)을 적극 장려한다. 본도는 기후와 토질은 잠업에 적당하므로 10년 계획으로 뽕나무를 심을 것이라 한다. 유해무익했던 금강의 수리를 응용하여 공주에 대규모 제사공장을 세우고 부를 증진하여 철도로 발전한 대전, 논산, 조치원에 빼앗긴 공주에 신생명을 부여하려 한다. 공주라고 부름은 시가지를 두룬 산들이 공자형(公字形)을 띄는 까닭이라 한다. 다음날 공주산성을 오른다. 금강의 남안에 돌출한 고지상에 있는 성으로 북문인 공북루(拱北樓), 울창한 송림의 산길을 걸어서 과거 승병의 총본산인 영은사(靈隱寺)를 들린다. 법당문을 반쯤 잘라내고 유리창을 단 것과 계하(階下)에 석유 광명등을 켠 것이 ‘아나크로니즘(시대착오)’으로 보인다. 진남문을 통해 공산성에서 나왔다. 버들 그늘에 모옥(茅屋, 띠집)으로 된 주점이 있어 막걸리를 메기 안주로 한잔을 마셨다. 여주인에게 물은 즉, 여기 지명은 왕자터요, 부여서 20리라 한다. 문앞에 청강(靑江)이 있어 메기가 많이 잡힌다고 한다. 부여군 현내면 가증리(佳增里)에 유명한 유사이전(有史以前)의 묘지가 있다. 일본인 전문가 감정으로는 4천년 전이라 한다. 백제의 서울이 어떠한 것이론고 하는 생각에 걸음이 빨라진다. 부소산 동편 모퉁이를 돌아 초갓집 20~30여채가 적적이 누워있는 부여 읍내에 도달했다. ‘이것이 부여런가’ 사비(泗沘) 서울이라 누가 믿으리오. 부소산 동쪽 영월대 넘어 있는 창고터를 보았다. 아직도 쌀과 밀과 콩이 까맣게 탄화하여서 남아있다. 백마강 물소리 들리는 절벽 밑 반석 위에 있는 것이 유명한 고란사(皐蘭寺)이다. 아마도 불법을 존중한 백제왕실의 수호사일 것이다. 연화를 아로새긴 주춧돌이며 빤빤히 닳아진 섬돌에는 당시의 귀인의 발자욱이 있을 것이다. 낙화암상에서 방혼(芳魂)이 스러진 궁녀들도 아마도 이 법당에서 최후의 명복을 빌었을 것이다. 우리 배는 규암진(窺岩津)을 떠났다. 옛날 백제의 상선과 병함이 떠났던 데요, 당·일본·안남의 상선이 각색(各色) 물자를 만재하고 복진하던 데다. 자온대(自溫臺)의 기암은 의자왕이 일유(逸遊)하던 명성이 전하지만, 당시에는 이별암(離別岩·삼천궁녀 바위)으로 유명했을 것이다. 조선의 제일의 평야요, 제일의 미(米) 산지인 전북평야에 들어섰다. 일망무제다. 평야 중에는 조산(造山)같은 조그마한 산들이 있고, 산이 있으면 반드시 그 밑에 촌락이 있다. 마치 바위에 의지하여 굴이 붙어 있는 것 같다. 들에 나가 먹고 산에 들어와 자는 것이 이 지방의 특색이다. 그러나 어떤 촌락은 그만한 산도 얻지 못하여 광야에 길 잃은 자 모양으로 벌판에 있는 자도 있다. 퍽 산이 귀하다. 이 평야는 고래로 수재(水災)와 한재(旱災)가 겸수(兼修)하므로 농민의 생활이 극히 불안정하였다. 만일 수리(水利)가 정리되면 농민의 생활이 안정되고 넉넉히 3할 이상의 증수(增收)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군산에 도착하였다. 군산은 전북 유일의 개항장이요, 조선 제일의 곡물 수출항이다. 가구의 정연함과 가옥의 정제함이 꽤 미관이다. 이리역(裡里驛)에 하차하여 경철로 전주로 항하였다. 이름은 경철이라하지만 차창도 훌륭하고 속도도 어지간히 빠르다. 전주의 수려한 봉만(峰巒)이 가까워진다. 산은 참으로 수려하다. 전주의 특색은 산이라 하였다. 대장촌, 삼례 등지의 농장이며 송림이 울창한 건북산릉의 승경은 귀로에 찾기로 했다. 전주는 백제시절에 완산 혹은 비사벌이라 하였다 하며, 견훤의 후백제의 왕도라 한다. 전주 금융기관으로는 금융조합이 있으나 중농 이상 이용이 가능하여 뒤에 소농도 가능한 전주농사조합을 시험적으로 설립하였다. 전주에 제지공업을 기계공업적으로 가능하도록 시험중이라 한다. 전주는 죽기, 목기, 지류, 선자(扇子) 등은 전부터 유명하였다. 당국의 장려로 더욱 발전하였다. 이를 위해 전주공립간이공업학교 생도들의 죽기와 목기, 장수의 석기, 운봉의 목기는 세계 어느 시장에 내어도 부끄럽지 아니한 것이다. 이상의 춘원답사기는 ‘오도답파’의 충남과 전북의 일부를 담은 것이다. 본 글은 1963년에 나온 이광수전집 18권에서 인용했다. 그의 전집은 방대한 분량의 작품집으로 소설, 시, 수필, 기행문, 서간문 등 다양한 글들의 모음이다. 편집위원으로는 주요한, 박종화, 백철, 정비석, 박계주 등 당대 한국 최고의 문학인들이다. 이 전집에서 춘원은 우리 한글과 어려운 한자, 당시의 일본식 한자, 일본어, 영어 등을 혼용하여 쓰고 있다. 춘원의 대단한 문학 수행의 결과일 것이다. 후대에 춘원의 의식과 사상에 대한 비판론도 많이 나왔지만, 당시 근현대 교육이 매우 부족했던 조선의 백성들에게 많은 지리정보와 함께 개인적 삶의 개선과 국가발전에 기여한다는 뜻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춘원의 친일론으로 전국 50곳이 넘는 문학관이 있지만 이광수문학관은 없다. 다만 인천의 한국근대문학관의 11인의 문학인에 춘원이 들어 있다. 춘원이 북한 평북 정주 태생이고 자강도 강계에서 별세한 영향도 있는 것일까? 아무튼 춘원의 기행문은 문학적인 표현과 함께 당대의 지리와 역사, 그리고 미래 의견을 함께 보여준다.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5-02-18 15:2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