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남해의 고즈넉한 섬, 해말도. 그곳에 살던 평범한 소녀 ‘미래’는 어느 날 갑작스레 들이닥친 악령 ‘이매신’과의 대결로 인해 평화롭던 일상을 잃고, 자신이 저주받은 운명을 지닌 존재임을 깨닫는다. 그렇게 시작된 여정은 단순한 ‘공포’를 넘어, 한국형 오컬트 판타지의 새 지평을 여는 이야기로 펼쳐진다. 웹툰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독자를 매 회차마다 예측 불가능한 신비로운 세계로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시즌1에서 시작된 이 대서사는 섬을 떠난 미래가 한반도의 모든 귀혼백의 이름이 적힌 ‘명부록’을 찾기 위해 육지로 향하며 본격화된다. 신비한 골동품 가게 ‘도겁당’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며 퇴마 활동에 나서는 미래의 이야기는, 선과 악의 대립 너머 인간 본성과 삶의 본질까지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 작품은 단순한 판타지 장르가 아니다. 바리공주 설화, 십왕경, 천지팔양신주경 등 동양 고전과 무속 신앙을 치밀하게 엮어내며 현대에서 점점 잊혀가는 한국 전통 문화의 깊이를 시각적으로 복원해냈다. 부적, 굿, 주술, 그리고 악귀와 창귀, 그 하나하나가 허구가 아니라 고증된 전통에 기반하고 있어 현실감이 남다르다. 특히 시즌3에서 절정을 이룬 ‘이매신’ 에피소드는 실제 조선 말기의 '진령군 사건'을 재해석해 눈길을 끈다. 역사와 판타지를 절묘하게 결합해 "이런 게 진짜 한국형 오컬트”라는 평가도 받았다. 지난 2022년 부천만화대상에서 대상과 인기상을 동시에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시즌4가 연재 중인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세계관이 정립된 시즌1, 운명과 사명을 깨닫는 시즌2·3을 지나, ‘명부록’을 찾아 나선 미래의 본격적인 행보를 그린다. 수많은 인연과 과거의 그림자가 얽히며, 이야기는 점점 더 깊어졌다. 작가 구아진은 이미 전작 '연' 등을 통해 뛰어난 스릴러 감각을 입증한 바 있다. 이번 작품에선 작가 특유의 감각에 동양적 미감과 철학이 더해졌다. 그림체 역시 극찬을 받는다. 섬세한 펜터치와 한국적 채색감, 그리고 때로는 ‘경고문구’가 붙을 만큼 강렬한 그로테스크한 악귀 묘사는 웹툰의 시각적 완성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마치 고전 회화를 보는 듯한 몰입감이 웹툰이라는 형식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다. 이 작품은 단지 귀신을 물리치는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도 특이점이다. 조선 말기부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산업화 시대까지 200년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악귀의 배후에 도사린 인간의 욕망과 역사적 비극을 풀어낸다. "죽음은 육신이 겪는 것이다." 주요 인물인 연화 만신의 이 한 마디는, 작품이 가진 철학적 깊이를 대변한다. 네이버웹툰 평점 9.98점에 달하는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수많은 자료 조사를 기반으로 쌓아올린 탄탄한 스토리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진짜 무서운 건 귀신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일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미래는 자신만의 길을 찾고, 우리는 잊고 있던 한국의 정서와 마주하게 된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2025-06-27 15:36:52[파이낸셜뉴스] 장재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한국형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 '파묘'가 개봉 첫 주말 200만을 돌파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업적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의 김덕영 감독이 '파묘'를 두고 "좌파들이 몰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감독은 26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항일독립? 또다시 반일주의를 부추기는 '파묘'에 좌파들이 몰리고 있다"며 "'건국전쟁'에 위협을 느낀 자들이 '건국전쟁'을 덮어버리기 위해 '파묘'로 분풀이를 하고 있다"고 했다. '파묘'는 전통적인 풍수지리와 무속신앙을 결합하면서 일제강점기 역사 이야기를 녹여냈다. 이를 두고 김 감독이 '반일주의'로 규정해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감독은 이승만 전 대통령 유해를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는 도올 김용옥의 과거 발언을 인용하며 "영화 '파묘'에 좌파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진실의 영화에는 눈을 감고, 미친 듯이 사악한 악령들이 출몰하는 영화에 올인하도록 이끄는 자들은 누구일까"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이 어디서 왔고, 누구 덕분에 이렇게 잘살고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대한민국의 '파국'을 막을 수 있도록 모두가 고민해야 할 상황이란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또 오는 28일 개봉 예정인 티모테 샬라메 주연의 할리우드 판타지 '듄 2'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파묘'와 '듄 2'로 관객이 몰리면 가장 큰 타격은 ('건국전쟁'의) 극장 수, 스크린의 감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걸 극복하는 대안은 오직 하나, 단결이다. 뜻있는 기업, 사회단체, 기독교 교회가 마지막 힘을 내달라"며 "이 고비를 넘어야 185만명 관객을 동원한 '노무현입니다'를 넘어설 수 있다. '건국전쟁'의 200만 고지 달성을 위해 애써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건국전쟁'은 지난 1일 개봉 이후 전날까지 누적 관객 수 96만6000여명을 기록했다.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으로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건국전쟁'의 박스오피스 순위는 '파묘'의 개봉으로 2위에서 3위로 내려갔다. 김 감독은 오는 29일 기자회견을 열어 속편 제작 계획 등을 밝힐 방침이다. newssu@fnnews.com 김수연 기자
2024-02-26 13:41:39[파이낸셜뉴스] 1000만부의 베스트셀러 ‘퇴마록’을 이제 웹툰으로 만나볼 수 있다. 네이버웹툰은 이우혁 작가의 판타지 소설 원작의 웹툰 ‘퇴마록’을 12일부터 ‘매일+’ 웹툰으로 새롭게 선보인다고 밝혔다. 웹툰 ‘퇴마록’은 각자의 사연을 지닌 퇴마사들이 인간의 영적, 정신적 세계를 지배해 사회를 혼란과 범죄의 온상으로 몰아가는 악한 마귀들을 퇴치해 나가는 내용을 담은 오컬트 판타지물이다. 1994년 출간한 이우혁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 소설은 누적 부수 1000만부라는 기록적인 판매부수를 달성한 베스트셀러다. 고대 종교와 밀교, 민담, 신화 등 방대한 이야기와 세계관으로 한국형 장르 소설을 개척했다는 호평을 받으며 국내 대표 판타지 소설로 불린다. 지난 1998년 안성기, 신현준 주연의 동명의 한국 영화로도 제작됐으며, 지난해 애니메이션 제작이 확정돼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원작자 이우혁 작가는 “‘퇴마록’이 웹툰화 되어 기대반 설렘이 반이다”라며, “2차 창작은 각색작업에서의 창의성도 중요한 만큼 새로운 기분으로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고 웹툰 공개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웹툰 ‘퇴마록’은 네이버웹툰의 신규 연재 코너 ‘매일+’에서 공개된다. ‘매일+'는 다양한 장르의 웹툰 작품들이 자유로운 연재주기로 제공되는 네이버웹툰의 신규 서비스 영역이다. ‘퇴마록’을 포함해 인기 웹소설 ‘밑 빠진 용병대에 돈 붓기’,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멸망급 빌런들의 선생님’, 오리지널 마블 코믹스 ‘어벤저스:지구 최강의 영웅들’ 등을 기반으로 한 40여 편의 웹툰의 감상이 가능하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2021-11-12 18:03:59[파이낸셜뉴스] tvN ‘방법’이 초자연 유니버스 스릴러로 한국 장르물의 신기원을 열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tvN 월화드라마 ‘방법’ 최종회(12회)는 케이블, IPTV, 위성을 통합한 유료플랫폼 시청률에서 가구 평균 6.7%, 최고 7.7%를 기록,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갈아치우며 퍼펙트 엔딩을 선사했다. tvN 타깃인 남녀 2049 시청률에서도 자체 최고인 평균 4.5%, 최고 5.1%로 지상파를 포함한 전 채널에서 동 시간대 1위를 수성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유료플랫폼 전국기준/닐슨코리아 제공) 이 날 방송은 ‘악귀공동체’ 진종현(성동일 분), 백소진(정지소 분)의 목숨 건 엔드게임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강탈했다. 특히 이 날의 백미는 진종현과 전세계 무속인들이 펼친 대규모 굿으로 이는 백소진이 ‘악귀’ 진종현을 방법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장엄한 분위기 속 진종현에게 저주의 살을 날리는 백소진과 육신에 깃든 악귀가 폭주하는 진종현의 맞대결은 보는 이의 손에 땀을 쥐게 하며 긴장감을 증폭시켰다. 결국 포레스트 주식 상장을 알리는 신호와 함께 ‘저주의 신’ 이누가미는 진종현의 육신에서 포레스트 앱으로 몸을 옮겼고 이와 함께 시간이 멈춘 듯 ‘저주의 숲’ 태그에 걸려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방법당하기 시작, 백만볼트 전율의 충격을 선사했다. 이후 백소진은 자신을 방법하라는 ‘운명공동체’ 임진희(엄지원 분)의 부탁에 의해 그를 역으로 방법했고 임진희의 무의식에서 “사람들은 왜 그렇게 남을 미워할까요? 왜 그렇게 저주를 하고 싶어 하는 거예요? 제 마음에 있는 악귀가 사람들의 저주를 좋아해요. 사람들을 저주하면 제 마음속에서 즐거워하는 소리가 들려요”라는 말과 함께 악귀와 연결을 시도, 모든 사건의 시작점에 대한 책임을 지듯 포레스트 앱으로 옮겨진 이누가미를 품었다. 이와 함께 이누가미가 숙주로 삼았던 진종현은 스스로 생명이 끊어져 자연 발화하며 극의 긴장감을 절정으로 치솟게 했다. 더욱이 방송 말미 혼수상태에 빠진 백소진의 모습이 담겨 눈길을 끌었다. “소진아 이제 너는 평범한 아이로 돌아가야 돼. 아마도 너한테는 지금까지 살았던 날하고는 다른 평범한 날이 계속 될 거야. 그러니까 네가 혼자 안고 있으려 하지마”라는 임진희의 진실된 마음이 전해진 듯 백소진이 임진희가 선물한 옷과 함께 자취를 감추며 마지막까지 강렬한 엔딩으로 궁금증을 높였다. 이처럼 사람을 저주로 해하는 주술 ‘방법’이라는 독특한 소재, 한국의 토착신앙을 기반으로 한 독창적 세계관 위에 반전을 거듭하는 미스터리, 눈을 뗄 수 없는 악의 사투를 녹여내 장르물의 새 역사를 쓴 ‘방법’. 마지막까지 센세이셔널 그 자체였던 ‘방법’이 남긴 것을 짚어봤다. ■성동일-조민수-엄지원 ‘소름 甲’ 연기력+정지소 ‘괴물 신예’ 입증 ‘방법’은 소름 돋는 열연으로 드라마의 몰입도를 한층 높였다. 엄지원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선악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사건을 해결해가는 기자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그려내 눈길을 끌었다. 또한 이전의 수더분하고 선한 이미지를 삭제한 성동일과 신들린 굿 연기로 강렬한 임팩트를 전한 조민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화면 장악력을 제대로 뽐냈다. 두 사람이 아닌 진종현, 진경을 상상할 수 없게 하듯 방법을 당해 사지가 뒤틀리는 파격까지 선보이는 등 ‘명배우는 어떤 연기를 하더라도 명품으로 보여준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한국 드라마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명연기로 안방극장 1열을 탄성으로 가득 채웠다. 그런가 하면 정지소의 발견 역시 빛나는 성과다. 영화 ‘기생충’에 이어 ‘방법’까지, 육신에 깃든 ‘저주의 신’ 이누가미의 악랄함과 10대 소녀의 순수함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베테랑 연기자 속에서도 괴물 신예의 존재감을 입증시켰다. 이외에도 김민재(이환 역), 이중옥(천주봉 역), 김신록(석희 역), 정문성(정성준 역), 김인권(김필성 역), 고규필(탁정훈 역)는 물론 특별 출연한 최병모(김주환 역), 권율(이정훈 역)까지 배우들의 명품 연기가 완벽한 시너지를 만들며 ‘방법’의 시청률 상승세를 견인했다. ■클리셰 깬 캐릭터+본 적 없는 초자연 소재 ‘방법’은 지금껏 한국 드라마에서 본 적 없는 독특한 초자연 소재 ‘방법’으로 시청자를 강렬하게 끌어당겼다. 특히 동양의 굿, 부적 같은 토속신앙과 SNS을 결합한 참신한 세계관은 그 자체만으로도 센세이셔널했다. 또한 저주의 숲, 리얼타임 같은 디지털과 한자이름 등 아날로그의 결합으로 현실성을 확보하면서 기존에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변주로 외연을 확장했다. ‘열혈 기자’ 엄지원, ‘악귀의 영적 조력자’ 조민수, ‘10대 소녀 방법사’ 정지소를 전면에 내세워 ‘장르물은 남성 중심’이라는 고정관념을 탈피하면서 남성 해결사 클리셰를 깬 신선함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여기에 저주의 살을 날리고 사지가 뒤틀리는 방법을 파격적인 영상미로 구현한 김용완 감독, 미스터리와 한국형 공포를 엮어낸 연상호 작가의 흡인력 넘치는 대본과 변화무쌍한 전개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흡인력으로 감탄을 자아냈다. 이에 한국 장르물의 진화를 이끈 ‘방법’은 마지막까지 압도적인 몰입감으로 더할 나위 없는 마침표를 찍었다. ■역대 tvN 월화드라마 시청률 5위 ‘방법’은 기존 오컬트의 틀에서 벗어나 한국 드라마에는 없던 초자연 유니버스 스릴러로 매회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특히 ‘방법’을 향한 뜨거운 화제성과 인기는 전 연령층 남녀 시청자들을 사로잡았기에 가능했다. 나쁜 마음으로 거악을 처단하는 스토리가 주는 짜릿한 카타르시스, 코피에서 사지 뒤틀림까지 상대에 대한 분노의 세기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형태의 방법, 액션 스릴러를 보는듯한 리얼타임 저주의 흥미진진함 그리고 누군가를 향한 혐오, 증오, 분노를 통해 사회의 어두운 면을 비췄던 ‘방법’의 공포가 남녀 10대에서 50대까지, 전 연령층의 판타지를 충족시키면서 공감의 재미까지 안겨준 것. 이에 ‘방법’은 역대 tvN 월화드라마 시청률 5위를 갈아치우는 위엄을 뽐냈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2020-03-18 08:14:35처음 만났지만 왠지 좋은 사람이 있다. 어떤 것이든 처음 만났을 때는 어색하다. 하지만 이 어색함은 끝까지 어색한 것만으로 끝날 수도 있고 큰 충격을 줄 수도 있다. 2015년 영화계도 신 장르, 새로운 소재들의 영화가 관객들을 찾아왔다. 2015년 한 해는 8월 한 달 동안 2편의 천만 영화가 탄생됐고, 인구 5천만인 대한민국에서 한국영화를 보는 관객수만 1억 명이 넘었다. 그래서일까. 다양한 장르 또는 새로운 연출법을 사용한 낯선 영화라도 영화의 질만 높다면 외면 받지 않고 관객들은 응답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유난히 한국 관객들에게 인기 있는 범죄물(‘베테랑’, ‘내부자들’등), 스릴러 장르(‘더폰’, ‘특종’, ‘성난변호사’등) 역시 이번 한해도 인기를 끌었지만, 우리에게 낯선 장르도 인기를 끌었던 것. 아무리 낯선 장르라도 영화가 옳으면 관객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덕분에 우리나라 영화 장르 역시 더욱 풍성해지고 있다. # '검은사제들' (감독 장재현) ‘검은 사제들’은 위험에 직면한 소녀를 구하기 위해 미스터리한 사건에 맞서는 두 사제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한국형 오컬트 영화로, 기존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소재와 장르적 시도를 통해 신선하고 독창적 재미를 갖춘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 냈다. 덕분에 ‘검은 사제들’은 영화계에 비성수기라 불리는 11월에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수 540만 명을 가뿐히 넘기며 비성수기와 새 장르라는 한계를 모두 극복하기도 했다. 외국에는 엑소시즘 영화가 있으며, 대부분이 가톨릭 국가인 만큼 그들에게는 낯익은 소재이다. 하지만 한국은 가톨릭 국가가 아니다. 작품 속에 나오는 구마예식이라든가 장미십자회에서 쫓는 12형상 등 낯선 단어들과 가톨릭 음악은 난생 처음 듣는 낯선 것들이다. 하지만 묵직한 강렬함을 뿜어내는 김윤석, 끊임없이 빠른 속도로 라틴어를 되뇌이며 분위기를 압도하는 강동원, 악령이 박소담인지 박소담이 악령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악령이 됐던 신예 박소담, 그리고 이들의 팽팽한 기싸움까지. 이 모든 요소들은 관객들을 집중시켰다. 오묘하고 기괴한 분위기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펼쳐지는 두 사제와 악령의 모습은 호기심을 자아냈던 것. 남들에게 보이지 않지만 끝까지 가야 했던 이들처럼 한국 영화계도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꿈틀거리는 존재들이 있다. # '뷰티인사이드' (감독 백감독) ‘뷰티인사이드’는 자고 일어나면 모습이 바뀌는 남자 우진과 그가 사랑한 여자 이수(한효주 분)의 판타지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다. 우진이 남자든 여자든 아기든 노인이든 외국인이든 어떤 모습으로 바뀌더라도 이수가 사랑하는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는 사실을 잔잔한 감동으로 그려냈다. 이 작품은 멜로에 판타지적인 요소를 가미해 관객들이 그동안 상상하지 못했던 즐거움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뷰티인사이드’는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올 한 해 로맨스 영화 중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다. 또한 신선한 설정, 새로운 장르뿐만 아니라 새로운 연출 방법으로 눈길을 끌었다. 무려 21인 1역으로, 21명의 배우가 우진을 연기하며 한효주와 호흡을 맞췄던 것. 게다가 유연석, 박서준, 이진욱, 이범수, 이동욱, 이현우, 천우희, 우에노주리 등 21명의 주연급 배우들이 한꺼번에 출연한 것도 한국 영화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들은 이수에게 첫 눈에 반하는 우진, 이수에게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우진, 그녀의 고백을 듣는 우진 등 각자에 맞는 하루를 담당했고, 백감독은 배우 한 명 한 명에 초점을 맞췄다. 매일 모습이 바뀌기 때문에 배우 한 명 당 분량은 많지 않았고 백감독은 이를 자연스럽게 이어냈다. 이 방법은 짧은 시간 안에 승부를 보는 CF 감독 출신다운 편집 기법이기도 했고, 이에 ‘뷰티인사이드’는 ‘제 36회 청룡영화제’에서 편집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마션' (감독 리들리 스콧) ‘마션’은 NASA 아레스3탐사대가 화성을 탐사하던 중 모래폭풍을 만나고 팀원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 분)가 사망했다고 판단, 그를 남기고 떠났지만 극적으로 생존한 마크 와트니가 남은 식량과 기발한 재치로 화성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험 SF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를 단순히 SF로만 보기엔 아쉽다. ‘화성판 삼시세끼’라는 애칭이 붙은 것처럼 와트니는 화성산 무공해 유기농 감자를 키우며, 본격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더불어 이 영화는 SF가 아니라 사실 디스코영화였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대장이 남기고 간 화려한 올드 디스코 음악은 와트니가 외로움과 두려움과 싸울 때 그의 정신 상태를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SF와 디스코라는 전혀 접점 없는 두 가지가 황당하게 만나면서 비관적인 상황은 아이러니하게도 흥겨워진 것. 또한 와트니는 화성에 혼자 남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발견한 디스코 테이프를 보며 대장의 음악 취향이 끔찍하다느니, 앞 창문도 없는 우주선에 탑승한 채 우주로 발사되는 두려움 속에서도 아이언맨처럼 날아가겠다는 발언을 하며 절망 속에서도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는다. 광활한 우주에서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던 그에게서 우리는 유머와 휴머니즘, 그리고 도전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아직 개봉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대작의 냄새가 물씬 나는 특별한 작품도 있다. # '히말라야' (감독 이석훈) ‘히말라야’는 히말라야 등반 중 생을 마감한 동료(정우 분)의 시신을 찾기 위해 목숨을 건 여정을 떠나는 대한민국 대표 산악인 엄홍길 대장(황정민 분)과 원정대의 실화를 그린 휴먼 감동 스토리다. ‘히말라야’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된 산악영화로, 대한민국의 대표 영화인들이 뭉쳐 많은 관심을 받았다. 올 한 해 최다 관객을 모은 영화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이 제작을 맡고,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댄싱퀸’으로 남다른 스케일과 감동 스토리를 만들어냈던 이석훈 감독이 연출을, 쌍천만 배우 황정민과 ‘응답하라 1994’의 주역 정우 등이 주연을 맡아 엄홍길 대장의 실화를 진정성 있게 그려냈다. 해발 8,700m 히말라야 에베레스트는 데스존(Death Zone)이라 불리는 곳이다. 자신을 허락하지 않는 대자연 히말라야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들의 모습은 긴장감을 자아내며 제대로 된 산악 영화를 그려냈다. 더불어 이 영화는 한국식 산악영화답게 단순히 모험영화, 재난영화를 뛰어 넘어 휴먼 감동 스토리를 적절하게 버무렸다. 이들이 산을 오르는 이유는 일반적인 산악영화와 달리 산을 정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기록도 명예도 보상도 없이 동료인 무택의 시신을 데리고 오기 위해 목숨을 내던지고 사투를 벌인다. 이외에도 관객수로는 아쉬웠지만 도전한 것만으로 의미가 있었던 작품들이 있다. # ‘돌연변이’ (감독 권오광) ‘돌연변이’는 약만 먹고 잠만 자면 30만원을 주는 생동성 실험에 참여한 청년 박구(이광수 분)가 신약의 부작용으로 생선인간이 된 후, 스타 생선에서 순식간에 세상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처하는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돌연변이’이고, 카피 문구는 ‘올해 가장 획기적인 영화의 탄생’이다. 모든 사람들이 예상한 것처럼 이상해 보이는 캐릭터와 그보다 조금 더 이상한 사회를 그린 한국형 극현실 재난영화다. 일단 소재부터 독창적이고 참신하다. 한 편의 우화로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현재 우리의 모습을 빗댄 가장 특별하면서도 가장 평범한 돌연변이 이야기를 선보여 공감을 이끌어냈다. 예능인 이광수가 자칫 웃겨보일 수 있는 생선인간 캐릭터를 현실성 있는 진솔한 청년으로 표현해냈으며, 국민 여동생 박보영이 박구를 팔아 인터넷 이슈녀가 되려는 주진 역을 맡아 캐스팅만으로도 많은 눈길을 모았으며, 개봉 전부터 부산국제영화제에 초대되며 “기발한 영화적 상상을 통해 다양한 한국 사회 현실을 재치 있게 풍자한 작품”이란 극찬을 받은 바 있다. /fnstar@fnnews.com fn스타 이주희 기자
2015-12-21 08: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