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제주공항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은 여성이 포착돼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20일 JTBC '사건반장'에 따르면 제보자 A씨는 지난 10일 제주공항 여자 화장실을 찾았다가 머리를 감은 여성을 목격했다. A씨가 보내온 영상을 보면 노란색 상의에 초록색 체크무늬 치마를 입고 크로스백을 멘 여성이 세면대에 머리를 푹 숙이고 양손으로 마구 문지르는 모습이 담겼다. A씨는 "여성이 처음에는 핸드워시를 한번 짜서 세수하길래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한번 핸드워시를 길게 짜서 머리까지 감기 시작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이 뒤에서 수군거리고 놀라서 쳐다봤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머리를 감더라"며 "수건이 있어 보이진 않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고 나왔을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우리나라 사람 아닌 게 분명하다" "기괴하다" "머리카락 빠져서 세면대 수챗구멍 막힐 텐데", "공공질서는 지키면 좋겠다", "손 말리는 기계로 머리카락 말렸을 것 같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편 지난해 8월에는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대관령휴게소 화장실에서 샤워와 빨래를 하는 이들이 포착돼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시 대관령휴게소 시설을 관리하는 평창군시설관리공단은 차박·캠핑족이 화장실에서 급수·샤워·빨래 등을 하자 야간에 화장실 문을 잠그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또한 경남 창원시와 통영시는 조례를 통해 공공 수도를 무단으로 사용할 경우 과태료 5만원을 부과하고 있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5-05-22 05:41:02<53> 룩셈부르크-프랑스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아이슬란드에서 비행기를 타고 다시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와서 기차를 타고 친구집이 있는 슈투트가르트로 돌아왔다. 친구와 아이슬란드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우리는 까브리를 타고 다시 길을 떠났다. 룩셈부르크는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있는 작은 나라다. 베네룩스 3국 중 하나다. 이 작은 나라가 GDP 세계 1위라고 하는데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들렀다. 날이 흐리고 비가 오는 날씨라 거리는 우중충해보였다. 높은 빌딩은 찾기 힘들고 현대적인 10층 아래의 낮은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는 것이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고,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다. 시내의 건물과 다니는 차들, 사람들 모두 유럽 여느 도시들과 느낌이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가 20대때 많이 듣던 크라잉넛의 룩셈부르크 노래가 떠올랐다. 룩, 룩, 룩셈부르크에 왔다. 제주도의 1.4배 크기이고 인구는 약 64만명으로 경기도 안산시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서비스업, 금융업의 비중이 높으며 비밀보장, 절세 등의 이유로 다국적 기업들이 이곳에 자회사를 설립한 경우가 많아 GDP가 그렇게 높다고 한다. 한국이 3만5000불, 룩셈부르크는 13만 5000불, 거의 4배가까운 차이가 나는데 길에 다니는 미래에서 온 것 같은 고급스러운 트램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물가까지 서너배 비싼건 아니라 다행이다. 유럽 다른 나라에 비해 룩셈부르크에서는 '휘발유·담배·술' 등 3가지가 싸다고 한다. 휘발유는 독일이 1.7~2.1유로 정도였는데 여기는 1.4 유로 정도로 저렴하다. 기름이나 빵빵하게 넣고 프랑스로 넘어가야겠다. 만날 친구도 없고 딱히 볼 것도 없어 우리는 계속해서 남쪽 프랑스로 향했다. 지방도로로 다니면 고속도로보다 속도는 느리고 길을 잘 찾아야 하지만 길가 풍경과 사람 사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어서 좋다. 멋진 가로수가 길게 이어진 길을 지나고 유럽의 농가를 구경한다. 노란 꽃밭도 지나고 오늘의 쉴 곳 캠핑장에 도착했다. 유럽은 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숙소를 잡을 엄두를 쉽게 못낸다. 대신 캠핑장이 잘돼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여행 후 처음으로 캠핑장을 찾아왔다. 넓은 캠핑장에 캠핑카들이 띄엄띄엄 자리잡고 있고 우리도 예약된 사이트를 찾아 잘 주차했다. 조용하고 쉬기에 좋았지만 역시 씻거나 세탁을 하기에는 많이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자연 속에서 조용히 하루를 보내고 나왔다. 프랑스는 남한의 5배크기라고 한다. 산도 많고 숲도 우거지고 마을도 많아 참으로 풍요로워 보인다. 내가 나무를 이렇게 좋아하는 줄 몰랐다. 나무들이 많이 보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리옹(Lyon)에서 가까운 스키리조트에 저렴한 숙소를 찾아내어 그곳으로 향한다. 아이슬란드에서 걸린 감기가 낫지를 않아 숙소를 잡고 몇일 쉬고 싶었다. 하지만 프랑스 물가가 워낙 높아서 겨우 찾은 저렴한 숙소는 시즌이 끝나 사람들이 잘 찾지않는 스키리조트의 콘도였다. 산길을 차로 오르고 올라 해지기 전 무사히 도착했다. 우리 숙소는 19층이었는데 아주 작은 원룸 스타일로, 방은 작아도 있을 것은 다 있었다. 최대 4명이 잘 수 있는 이층침대와 싱크대, 욕조가 있는 화장실과 세탁기 등 부족함이 없는 좋은 곳이었는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창밖으로 보이는 뷰가 예술이었다. 기대하고 온 것이 아니라 더 놀라운, 산 위에 지어진 높은 리조트 19층에서 내려다보이는 산의 풍경이 너무너무 아름다웠다. 가까이 작은 스위스풍의 집들에서 저 멀리 설산이 겹겹히 보이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자연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것 같다. 몸도 마음도 편안해지는 것 같아 잘 회복할 수 있었다. 프랑스 남부의 안티베(Antibes)로 카우치 서핑 친구를 만나러 간다 맥도날드에 아침을 먹으러 들렀다. 우리나라에선 아침엔 맥모닝 메뉴만 가능한데 프랑스의 맥도날드에서는 아침에도 빅맥을 먹을 수 있다. 프랑스는 어느 곳을 다니던 풍경이 참 아름다웠는데 남부의 국립공원을 지나는 드라이브를 할 때 특히 멋진 바위 산과 숲과 나무들 그리고 시골 마을 등 볼 것이 많아 더 기억에 남았다. 탄이 카우치서핑에서 호스트를 검색하다가 한국을 여행했다는 베르나르씨를 발견하고 메세지를 보냈더니 감사하게도 우리 요청을 받아주셨다. 베르나르씨가 사는 안티베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작은 도시로 니스와 매우 가깝다. 안티베가 가까워지자 '오늘 오후에 도착하겠다'고 베르나르씨께 문자를 보냈다. 생각지 않은 저녁을 준비해주신다고 한다. 감사한 마음에 가게에 들러 와인을 한 병 샀다. 프랑스인이니 와인을 좋아하시겠지 하는 마음이다. 베르나르씨 집앞에 도착하자 거대한 철문 앞으로 마중을 나오셨다. 이곳에 차를 주차하기가 쉽지 않다며 베르나르씨의 차를 옮기고 그 자리에 우리 까브리를 주차하라고 배려해주신다. 호스트가 주차까지 신경써주시는 것은 처음이다. 너무너무 감사했다. 베르나르씨는 철문 안쪽 주차장에 차를 주차할 자리가 있는데도 우리 자리를 맡아주기 위해 바깥에 차를 대셨던 것이다. 알고보니 우리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이신 머리가 하얀 노인이셨다. 외국 사람은 다 키크고 코가 크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베르나르씨는 탄이보다도 아담한 키에 귀여운 노인이셨다. 주차를 한 후에 우리는 함께 철문을 지나 넓은 정원 끝 빌라에 갔다. 방이 하나밖에 없는데 우리에게 더블베드가 있는 방을 내주시고 자신은 거실 쇼파에서 주무신다고 한다. 우리가 말도 안된다고 만류하고 "카우치 서핑이란 쇼파를 빌리는 건데 왜 주인이 쇼파에서 자냐"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끝끝내 그렇게 잠자리를 정하셨다. 할아버지를 쇼파에서 주무시게 하는 것이 편치 않았지만 워낙 뜻이 확고하셔서 친절을 감사히 받기로 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사흘정도 머물기로 했다. 첫날엔 베르나르씨가 만든 라따뚜이로 저녁을 먹었다. 프랑스 가정식 라따뚜이라는 것을 처음 먹어보았는데 몸도 마음도 편해지는 좋은 음식이었다. 재료도 훌륭하고 맛도 있었다. 여행을 매우 사랑하는 베르나르씨는 일본과 한국을 가장 좋아한다 베르나르씨는 비행기를 매우 사랑하는 굉장한 여행가였다.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젊은 시절 프랑스항공에 다니셔서 여행할 기회가 무척 많았다고 한다. 세계 여러나라를 다니셨지만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는 일본과 한국이라고 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일본과 한국은 자꾸 가고 싶은 곳이라고 한다. 어떤 여행지는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고 어떤 여행지는 새로운 것은 없어도 자꾸 가고싶어지는 곳이 있는데 한국과 일본이 그렇다고 했다. 한국에는 총 5번인가 방문하셨다는데 다행히 한국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기억들을 가지고 계셨다. 베르나르씨의 거실에 한국 돗자리가 깔려있었는데 전라도를 여행할 때 숙소에 깔려있는 돗자리가 마음에 들어서 호스텔에 구입방법을 물어보고 사오셨다고 한다. 프랑스인이 사는 집 거실에 한국 돗자리가 깔려있다니, 무척 반가웠다. 우리처럼 베르나르씨도 대도시보다 소도시 여행을 좋아하신다고 한다. 한국의 소도시 여행을 하며 겪은 에피소드를 몇가지 이야기해주셨는데 25년 전 첫 한국여행 때도 서울을 거쳐서 국내선 환승으로 바로 부산에 가셨다고 한다. 지금은 부산도 큰 대도시이지만 당시에는 그렇게까지 번잡하지 않아보였다고 했다. "산위에 있는 어떤 큰절에 갔어요. 그때 그 곳에 외국인 관광객은 나 혼자 밖에 없었지요. 그 절에 어떤 문이 열려있는 것을 보았고 사람들이 들어가려고 줄을 서있었어요.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 저도 줄을 섰습니다. 줄을 따라가다가 입구에 다다랐을 때 정원은 없고 복도가 나왔어요. 그 곳에서 음식을 나눠주고 있더라구요. 얼떨결에 안내를 받았습니다. 그 줄이 음식을 받는 줄인줄 몰랐었어요. 저는 자리를 잡고 음식을 받았습니다. 노인과 은퇴한 사람들이 음식을 받으러 왔던 것 같아요. 평일이었고 젊은 사람들은 일하러 간 시간이었습니다. 밥을 먹고 있는데 아주머니들의 수다가 시작되었어요. 아주머니들의 이야기 소리에 졸음이 몰려오더군요. 그곳에서 잠이 들었어요. 몇 분 후에 잠에서 깨고 나서 행복함을 느꼈습니다." 베르나르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때의 상황이 어땠을지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눈에 그려지는 그 상황이 너무도 재미있었고 작은 외국아저씨가 절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음식을 먹고 잠이 든 것을 본 부산아지매들이 어땠을지 상상이 가서 계속 웃음이 났다. 이야기를 나누는 베르나르씨도 그때를 회상하며 다시한번 행복해 하시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는 베르나르씨의 집에 머물며 다른 어디에서보다 더 많은 대화와 깊은 마음을 나누었다. 베르나르씨는 손수 만든 음식으로 우리를 정성껏 대접해주셨고 전세계를 여행한 그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1층에 위치한 베르나르씨의 집에는 집보다 더 넓은 정원이 있어서 잔디며 나무들이 자연스럽게 자라나고 있다. 매일아침 그의 정원에 비둘기 비슷한 새가 찾아온다. 가끔 여러 마리가 오기도 하는데 특히 목 뒤에 무늬가 있는 새는 베르나르씨의 친구였다. 그 새를 위해 모이와 예쁜 그릇을 준비놓고 매일 조금씩 주는 것이 일과의 하나라고 한다. 우리는 매일 그 새가 날아와서 모이를 먹는 모습을 보고 정말 신기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NUkqBFtVuUc?si=tZUeB5xZ8DkV6uTO>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5-03-06 11:10:37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항카 호숫가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6시도 안 된 이른 새벽에 눈이 떠졌다. 밥 먹고 할 게 없어 일찍 자서 그런가보다. 사방이 조용하고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만 들린다. 주변에 텐트 치고 자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 조용조용 호숫가로 걸어갔다. 날이 흐려서 하늘이고 호수고 온통 회색빛인 것이 마치 수묵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호수 위에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물 위를 날아다니는 새들이 평화롭고 운치 있어 보인다. 하바롭스크의 천사, 이반네 식객이 되다 어제 저녁 마음 졸이며 지나온 비포장 길을 다시 나와 북쪽으로 향한다. 도로 상태가 우리나라 같지 않아서 길이 갑자기 안 좋아지곤 한다. 바퀴가 빠지도록 큰, 푹 패인 포트홀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은 다반사이고 아예 비포장인 도로도 자주 만난다. 다음 목적지인 하바롭스크에서는 이반이라는 러시아친구를 카우치서핑을 통해 알게 되어 그의 집에 묵기로 했었다. 새벽길을 달려 6시반쯤 하바롭스크에 도착했다. 너무 이른시간이라 일단은 우리끼리 하바롭스크를 구경하기로 했다. 하바롭스크는 극동 러시아에서 가장 큰, 인구 130만의 대도시이다. 몇일간 집구경, 사람구경을 거의 못하다가 대도시로 들어오니 신호등과 사람들, 거리의 상점들 등 익숙한 도시의 풍경이 반가왔다. 커다란 몰과 마트를 보고 들어가보았다. 한국은 밤이건 낮이건 어디서건 차가 고장이 나거나 문제가 생기면 전화 한통으로 보험서비스가 출동하기때문에 이제는 사람들이 찾지 않아 구하기 힘들었던 자동차 자키(타이어 교체 등을 위해 차를 드는 도구)와 복스세트(타이어 교체공구)를 여기에서는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탄이 나에게 사고싶은 것들의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한다. 직원에게 물어보려고 필요하다고 한다. 11년전 우리는 스페인어권 나라들에서 자주 그림을 그려 의사소통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인터넷이 되는 스마트폰이 있는데 왜 그림이 필요한지 의아한 마음에 “구글에서 사진 검색해서 보여주면 되잖아?”라고 되물었더니 깜짝 놀라며 “아! 그러면 되는구나. 굿아이디어~”하며 머쓱해서 도망간다. 직원을 찾아 물어보았더니 다행히 그 역할을 하는 제품이 있다고 한다. 우리 까브리도 들 수 있는지 사용법은 어떤지 이것저것 스마트폰 번역기를 통해 물어보자 직원 두 분이 사용법도 직접 시연해 보이며 알려주신다. 러시아에도 친절한 사람이 있다! 필요한 도구를 기분좋게 구입한 후 중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나니 반가운 이반의 메세지가 와있었다. 이제 일어났다며 집주소를 알려주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완전 올빼미형 인간이었다. 우리는 신이나서 이반네 집으로 향했다. 스탈린 시대 지어진 저층아파트.. "옛날 생각 나네" 이반이 사는 집은 스탈린 시대에 지어진 60여년이 된 저층아파트이다. 단지가 매우 넓어서 똑같은 건물이 많은데다 우리나라처럼 건물에 번호 같은건 없어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한참을 헤메다 겨우 발견했다. 비가 오면 거대한 물웅덩이가 생기는 흙바닥이었지만 그래도 까브리를 안전하게 주차할 수 있는 공간도 있고 건물입구와 집 현관이 항상 잠겨있어 안전하게 느껴졌다. 갈색 고수머리에 흰피부의 서양인 같은 이반은 2층에 혼자 살고 있었다. 맨 안쪽방을 우리가 머물도록 해주었는데 그가 침실로 쓰던 더블베드가 있는 큰방이었다. 그리고 이반은 그 옆에 방겸 복도같은 공간에 컴퓨터와 간이침대같은 것을 놓고 잤는데 우리가 화장실을 가거나 외출하려면 그곳을 지나가야해서 프라이버시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 곳이었다. 그후 여러번 아침에 외출하다가 이반이 여자친구와 그 작은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보고 조용히 나가려다 눈이 마주쳐 어색하게 모른척한 적이 많았다. 참 미안하고 고마운 일이었다. 이반네 아파트의 특이한 점은 창이 홑창이고 층고가 매우 높았다. 겨울엔 우리나라보다도 무지무지 추울텐데 괜찮나 싶었다. 겨울에 오지 않아 다행이다. 엘레베이터가 없는 건물이었지만 다행히 2층이어서 걸어오를만 했고 방에는 에어컨도 있어 쉬며 밀린 유튜브 작업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오면서 더위에 허덕이던 우리는 더위가 한풀 꺾일 때까지 이 곳에 머물고 싶었다. 원래는 3~4일간 머무르는 예정으로 카우치 요청을 했었는데 혹시 몇 일 더 있어도 되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이반은 시원스럽게 너희 원하는 만큼 있어도 된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우리는 기뻐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반네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의 직업은 중고차 부품유통업이라고 한다. 한국음식을 좋아하며 매운 것도 잘 먹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음식이 매운 해물탕이며 가끔 시내의 한국식당에 먹으러 간다는 말에 우리는 무척 놀랬다. 매운걸 전혀 못먹을 것 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집에 함께 살며 육개장, 짜장면, 김치찌개 등 여러 가지 한국음식을 이반에게 해주었는데 다 좋아하며 잘 먹었다. 심지어 매운 것은 탄이보다 더 잘 먹었다. 몇일 지나 이반이 감기에 걸려 매우 기운이 없을 때가 있었는데 탄이랑 멀리 큰 마트에서 장을 봐와서 킹크랩과 문어, 새우, 관자 등 여러 해산물을 넣은 해물탕을 해주었다. 이반은 “내 부엌에서 해물탕이 만들어지다니 너무 신기해!”라면서 눈에 생기가 도는 모습에 매우 뿌듯했다. 탄에게 “정말 맛있어. 탄 너는 좋은 쉐프야”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러시아 여행은 9월이 가장 좋다는 팁까지.. 우리는 이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러시아 여행은 9월이 가장 좋다고 한다. 러시아어에 대해서도 많이 물어보고 배웠는데 발음을 따라하기가 무지무지 어려웠다. 이번 생에 러시아어 발음까지는 힘들 것 같아 미안해 이반... 저녁식사 중에 보드카 이야기가 나왔는데 독한 술을 싫어하는 시로가 유일하게 마실 수 있는 것이 ‘루스키 스탠다드’라는 보드카라는 이야기를 했다. 회사 출장으로 모스크바에 갔을 때 얼굴 찡그리며 한잔 억지로 마시다가 “어?”했던것이 보통 40도 넘는 독주는 목이 타들어가 듯이 불편함이 있었는데 전혀 그런 것이 없이 마시기 좋은 느낌이었던 기억이 났다. 말이 나온김에 집에 가는 길에 한병 사서 이반네 집에서 다같이 마시기로 했다. 집에 와보니 정전이다. 한국에선 열살 이후로는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지만 핸드폰 불빛을 손전등처럼 비추니 오히려 분위기 있어 좋았다. 이반이 러시아에서 보드카 마시는 법이라며 안주로 해바라기씨유에 겨자와 소금을 섞어 빵을 찍어 먹어보라고 했다. 작은 보드카 한병으로 모두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 차 타고 세계여행' 365일]은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com/@user-hb5up3dh1o?si=4LHlTLkQKDiU4cLz>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2-27 15:47:56날씨가 추워지면서 나타나는 반갑지 않은 일 중 하나가 노인 골절사고다. 나이가 들면 관절과 뼈, 근육 등이 약해져 힘이 떨어진다. 균형 잡는 능력도 저하돼 쉽게 넘어진다. 또 시력과 청력이 현저히 감퇴돼 외부 자극에 둔감해진다. 이로 인해 불의의 사고에 대처하는 민첩성이나 순발력도 많이 저하된다. 게다가 겨울철엔 영하의 기온에 몸이 움츠러들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자세는 균형 유지에 방해가 되는데, 자칫 부주의하면 빙판길에서 미끄러져 넘어지기 쉽다. 이은주 서울아산병원 교수(노년내과)는 "노인은 젊은이에 비해 골밀도가 줄어 가벼운 낙상에도 대퇴부 골절이나 척추 압박골절, 전완부 골절 등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낙상에 대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65세 이상 낙상 환자 4년새 52% 증가 질병관리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 동안 낙상으로 인해 23개 응급실손상환자심층조사 참여 병원의 응급실에 내원한 전체 환자 수는 27만 6158명이다. 낙상 손상환자는 2015년 대비 2018년에 약 13.8% 증가(2015년 6만 3200명→2018년 7만1931명)했고, 연령별로는 65세 이상 노인(7만2647명, 26.3%), 6세 이하 어린이(5만7206명, 20.7%) 순으로 많이 발생했다. 또한 겨울철 낙상사고로 응급실에 내원하는 환자는 2015년 대비 2018년에 약 17.2% 증가(2015년 1만5457명→2018년 1만8121명)했고, 이 중 65세 이상 어르신의 경우 약 52.1%로 급증(2015년 3647명→2018년 5546명)했다. 노인이 낙상으로 인해 골절을 입으면 회복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기능 감소, 간병과 의료비용과 같은 경제적인 부담도 뒤따라온다. 회복된다 해도 넘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다. 이러한 두려움은 노인의 일상생활을 위축시킨다. 특히 낙상으로 대퇴골 근위부가 골절되면 대부분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회복까지 약 6∼12개월이 소요된다. 회복되더라도 약 3분의 1만이 이전 상태와 같이 몸을 움직일 수 있다. 대부분은 골절이 발생하면 골절부위 통증으로 인해 못 움직이고 누워만 있게 돼 욕창, 폐렴, 폐색전증, 근육 위축 등 전신적인 합병증을 얻는다. 수술 후 회복되더라도 장시간의 재활치료가 필요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요양시설 신세를 지는 경우가 많다. 이 교수는 "집안에서 낙상사고가 나면 별 거 아닌 걸로 생각하고 아무 치료 없이 넘기는 경우가 많다"면서 "하지만 노인은 가벼운 엉덩방아에도 쉽게 허리뼈나 엉덩이뼈가 부러질 수 있다. 노인 낙상을 간단한 타박상 정도로 쉽게 생각하면 안 되는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가벼운 운동으로 낙상 예방 낙상의 내적 요인으로는 균형 감각이 떨어지고 근력이 약해지는 것이다. 노인들이 많이 복용하는 고혈압 약이나 신경안정제, 겨울철 흔히 사용하는 감기약은 부작용으로 어지럼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평소 균형감각을 높이고 근력을 키울 수 있도록 걷기와 같은 가벼운 운동을 꾸준히 시행하는 것이 좋다. 특히 겨울엔 빙판길을 조심하고 무리한 활동을 하지 않는다. 노인은 화장실에서 넘어지지만 않으면 오래 산다는 속설이 있다. 집안에서 넘어지기 쉬운 환경을 미리 막아야 한다. 발에 걸리기 쉬운 전기 플러그나 기타 장애물은 걷는 데 방해되지 않는 곳으로 치워둔다. 집안 조명은 너무 어둡지 않게 항상 적당한 밝기로 유지한다. 노인은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추운 날에는 외출을 삼가는 것이 좋다. 다만 날씨가 춥다고 운동을 전혀 하지 않거나 거동을 줄이면 오히려 심폐기능이 저하되고 근육이 위축될 수 있으니, 기온이 올라가는 낮 시간을 이용해 걷기와 같은 운동을 가볍게 하는 것이 좋다. 운동시 준비운동은 평소보다 2~3배로 늘려 몸을 충분히 풀어준다. 운동 중 외상 입는 걸 막기 위해서다. 장갑과 모자 등으로 보온을 유지하고, 또 운동 전 10분 이상 스트레칭을 해야 부상이 적다. 추운 날씨에 운동할 때는 손과 코, 귀, 머리에 찬바람이 닿지 않도록 장갑이나 모자, 마스크 등을 반드시 착용한다. 운동을 심하게 한 뒤에는 잠깐 동안 체내 면역력이 크게 떨어진다.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쉬운 조건이다. 운동 후 샤워를 해 빨리 땀을 씻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몸을 따뜻하게 하고 따뜻한 물을 마셔서 수분을 충분히 보충하는 것이 좋다. 또 날씨가 추워지면서 작은 충격에도 뼈에 금이 가거나 부러지는 경우가 많다. 이 교수는 "뼈 밀도가 낮은 노인은 겨울철 골절에 특히 주의해야 하며 가벼운 외상 정도로 쉽게 생각해 치료가 늦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hsk@fnnews.com 홍석근 기자
2021-11-18 17:21:58장마는 보통 6월 말에서 7월 말까지 이어진다. 우리나라의 평균 장마기간은 32일이다. 장마철에는 습도가 최대 90%까지 높아진다. 각종 균이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다. 음식물이 상하기 쉬워 식중독이 많이 발생한다. 올해는 코로나19 감염증도 유행하고 있어 위생에 특히 신경을 써야 한다. 서울아산병원 감염내과 정지원 교수는 25일 "장마 기간에만 사는 세균은 없지만 장마철에는 고온다습한 날씨의 영향으로 세균의 번식 속도가 빠르다"며 "살균효과가 있는 햇빛의 자외선 양이 장마철에 줄어들어 세균이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장마철, 감염형 식중독 발생 높아 감염형 식중독은 살아있는 유해세균을 다량으로 섭취해 발생한다. 주로 계란, 우유, 어패류 등에서 증식한 살모넬라, 장염비브리오, 대장균 등이 원인이다. 오염된 음식을 먹고 일정시간이 지난 다음날 혹은 이틀 후에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증상은 발열과 혈변, 점액변이며, 항생제 복용을 통한 치료가 필요하다. 경희의료원 감염면역내과 이미숙 교수는 "감염형 식중독균은 열에 의해 사멸되기 때문에 조리 시 음식을 충분히 익힌 후 섭취해야 한다"며 "다만, 끓여도 없어지지 않는 '독소'의 특성을 고려해 음식이 조금이라도 상했다고 생각이 들면 무조건 버리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식중독의 원인은 세균에 의한 세균성 식중독, 식품 속 미생물이 생산하는 독소에 의한 식중독, 동·식물성 독소에 의한 자연독 식중독, 화학 물질에 의한 화학성 식중독으로 나눌 수 있다. 세균성 식중독을 유발하는 세균은 포도상구균, 살모넬라균, 이질균, 장염비브리오균 등이 있다. 무더운 여름과 장마철에 많이 발생한다. 증상이 가장 빨리 나타나는 건 포도상구균에 의한 식중독이다. 이 균의 독소에 오염된 음식물을 먹으면 1시간에서 6시간 내에 구토와 설사를 하게 된다. 이 경우 항생제나 지사제 복용보다는 충분한 수분공급과 같은 대중요법을 쓰는 게 좋다. 장티푸스에 감염되면 1~2주 정도 잠복기를 거쳐 섭씨 40도 안팎의 고열과 두통, 설사 증세가 나타난다. 오들오들 떨리고 머리와 팔다리 관절이 쑤시는 등 감기와 비슷한 증상이 먼저 나타난다. 심하면 장출혈, 뇌막염 등 합병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국내 발생 원인은 70~80%가 오염된 물을 통한 전염이다. 병이 심해지면 2~3주 뒤부터는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고열과 탈진상태에 들어가며, 몸에 열꽃이 생기고 피가 섞인 변이 나온다. 장티푸스 환자라고 모두 설사를 하는 것은 아니며 변비 증상이 나타나는 환자도 있다. 장티푸스를 예방하려면 미리 예방접종을 해두는 것도 좋다. 과거 장티푸스를 앓았던 사람은 장마철에 특히 손을 깨끗이 씻고 주방 행주나 도마를 수시로 소독해야 한다. 살모넬라균은 닭과 오리와 같은 가금류가 가장 흔한 감염원이다. 계란이 감염원이 될 수 있다. 살모넬라균은 열에 취약해 62~65도에서 30분 가열해도 사멸된다. 달걀을 익히면 감염을 피할 수 있지만, 음식 조리 과정에서 다른 식품에 의한 2차 오염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콜레라는 장마 끝에 주의해야 할 대표적인 전염병이다. 콜레라는 분변, 구토물, 오염된 물이나 음식을 통해 감염된다. 오염된 손으로 음식을 만들거나 밥을 먹을 때 감염될 수 있다. 콜레라균에 감염되면 보통 2~4일간의 잠복기가 지난 뒤 심한 설사와 함께 탈수현상으로 갈증을 느끼는 증상이 나타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혈압이 떨어지면서 피부가 푸른색으로 변하고 정신상태가 불안해진다. ■탈수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식중독에 의한 설사가 지속될 경우 '탈수증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탈수상태가 지속돼 각종 합병증 유발은 물론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이 때 물 섭취량을 평소보다 늘리거나 병원을 찾아 수액을 맞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설사를 멈추게 하기 위해 지사제를 임의로 복용하면 안된다. 이는 오히려 독소의 배설을 막아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벼운 식중독은 별다른 치료 없이 시간이 지나면서 호전되는 경우가 많다. 충분히 수분을 섭취한 후,미음이나 죽 같은 부드러운 음식부터 부담스럽지 않은 범위에서 식사량을 천천히 늘려가는 것이 좋다. 이 때 당분이 많은 음식이나 섬유질이 많은 음식, 맵고 기름지거나 튀긴 음식, 커피 등 카페인이 함유된 음식, 음주와 흡연은 증상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피해야 한다. ■손씻기 등 개인위생 잘 지켜야 식중독 예방의 지름길은 음식의 선택·조리·보관 과정을 관리하는 것이다. 세균은 주로 섭씨 0~60도에서 번식한다. 저장은 4도 이하에서, 가열은 60도 이상에서 해야 한다. 60도 이상으로 가열해도 식중독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포도상구균, 바실루스균, 클로스트리디움균의 독소는 가열해도 증식이 가능하다. 따라서 조리된 음식은 가능한 즉시 먹는 게 좋다. 철저한 개인위생도 중요하다. 외출하거나 더러운 것을 만지거나 화장실에 다녀온 뒤에는 손 씻기가 필수다. 또 손에 상처가 있는 사람은 음식을 조리해선 안 된다. 황색포도상구균에 오염돼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식중독 사고가 빈발하는 여름에는 지하수나 약수, 우물물을 마시지 않도록 한다. 수돗물과 달리 염소 소독을 안 한 상태이므로 각종 식중독균 오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0-06-25 17:10:25불과 몇 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쌀쌀한 날씨에 연탄불을 갈기 위해 잠시 나갔다 들어왔을 뿐인데 자고 있어야 할 갓난아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생후 76일 만에 소중한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이후 자식 둘을 더 낳고 32년이 지났어도 잃어버린 아들을 향한 죄책감과 그리움에 어머니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다. 5일 경찰청과 중앙입양원 실종아동전문기관에 따르면 최모씨가 아들 김성근군을 낳은 것은 1986년 6월 30일. 당초 출산 예정일은 8월이었지만 예상보다 일찍 세상에 나온 김군은 황달 증상을 보였다. 결국 김군은 약 2개월간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은 후에야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있는 따뜻한 보금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힘겹게 아들을 품에 안았지만 최씨 부부의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추석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9월 13일 부슬부슬 비가 내리면서 유난히 싸늘한 날이었다. 최씨는 생후 76일된 김군이 행여 감기에 걸릴까 걱정된 마음에 연탄불을 피워 방을 데웠다. 남편의 귀가가 늦어지면서 혼자 집에서 아기를 돌보던 최씨는 깜빡 잠이 들었다. 밤 11시께 한기를 느낀 최씨는 잠에서 깼고 연탄불을 갈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갔다. 최씨는 “아기하고 같이 있다가 잠깐 졸았는데 연탄불이 꺼지면서 방이 차가웠다”며 “상가건물 2층에 살고 있었는데 연탄불을 갈려면 1층으로 내려가야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부랴부랴 연탄불을 갈고 2층으로 올라간 최씨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얌전히 자고 있어야 할 아기가 포대기만 남긴 채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서둘러 집밖을 나서 아기를 찾아 다녔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집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아주버님 댁으로 뛰어가 경찰에도 신고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최씨는 전했다. 순간 충격에 휩싸인 최씨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있었다. 연탄불을 갈 때 보일러실 바로 앞에 있던 화장실에서 누군가 나가는 인기척을 느꼈던 것이 떠올랐다. 주변 이웃들 증언도 아들의 유괴를 의심케 했다. 최씨는 “당시 자가용도 거의 없던 동네였는데 연탄불을 갈고 조금 있다가 근처에 있던 검정색 자가용이 출발했다고 하더라”며 “일주일 전부터 의심스런 30대 여성이 우리 집 주변을 배회하고 1층 슈퍼마켓에도 들렀는데 아기를 잃어버리고 난 후에는 보이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최씨 부부는 김군의 동생 둘을 더 낳았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모두 장성했지만 최씨 마음 한 구석 허전함은 달랠 길이 없었다. 32년이 지났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최씨 부부는 여전히 상계동에 살고 있다. 최씨는 “동네가 많이 바뀌었는데 당시 집 앞에 있던 제일교회와 집에 들어오는 길목에 있던 소방서는 여전히 그대로”라며 “성근이가 처음엔 곱슬머리인 줄 알았는데 동생들을 보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혈액형만 A형이고 다른 특징이 될 만 한 점은 없다”고 설명했다. jun@fnnews.com 박준형 기자
2018-02-05 14:29:12계속된 집주인과의 분쟁때문에 집에 살기를 포기하고 기차에서 생활하는 독일의 한 20대 여성이 화제다. 23일(현지시간) 영국 미러에 따르면 여대생인 레오니 물러(23)는 지난 봄부터 기차를 타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기차 안에서 생활하고 있다. 물러가 기차속에서의 삶을 선택한 이유는 집주인과의 분쟁도 있지만 기차 티켓비가 월세보다 저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러가 그 동안 낸 아파트 월세는 290파운드(약 55만원)이지만 전국호환교통카드를 이용하면 240파운드밖에 들지 않는다. 물러는 옷과 각종 소지품, 노트북 등을 항상 가지고 다니며 머리감기는 기차 안 화장실을 이용한다. 물러는 "모든 시작은 집주인과의 문제 때문이었다"며 "어느 정도 즉흥적으로 결정하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이 되니 내가 더 이상 어느곳에서도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제는 기차가 정말 내 집 같은 느낌이 든다"며 "더 많은 도시도 갈 수 있고 더 많은 친구들도 만날 수 있다. 항상 휴가를 가는 기분"이라고 덧붙였다. 물러는 기차안에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며 인생에 대해 배우고 있고 말한다. 기차에서의 삶이 어떤 공부보다도 더 많은 배움과 경험을 준다는 것이다. 물러는 "기차 안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존재한다"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한번 쯤 살아보길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기차에서 생활을 하다 종종 부모님집이나 남자친구 또는 다른 친구들집에서 머물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녀의 기차에서의 삶을 응원하는 것은 아니다. 물러는 "내 생활방식에 대해 정상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면서 "그렇지만 세상에는 많은 기회가 있고 나는 계속해서 모험을 하고 싶다"며 자신의 졸업논문 역시 '기차 노마드'에 대한 연구를 다룰 예정이라고 말했다. kjy1184@fnnews.com 김주연 기자
2015-08-24 10:08:43보존제 파동으로 몸을 움츠렸던 물티슈 업계에 '윤도현 훈풍'이 불고 있다. 지난 4일 가수 윤도현은 SBS 예능 프로그램 '매직아이' 출연해 물티슈 예찬을 펼치고, 자신만의 물티슈 사용 노하우를 전했다. 방송에서 윤도현은 아기 용변처리로 물티슈를 쓰기 시작해 이후 물티슈에 대해 눈을 떠, 해외 장기 공연은 물론 평소에도 물티슈를 휴대하고 다닌다고 말했다. 특히, 방송에서 가벼운 휴대용이 아닌 대용량 제품을 들고 다니는 모습에 다른 게스트들이 의아해 했을 정도였다. 윤도현이 밝힌 물티슈 사용법은 상상을 초월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영유아 뒷처리'는 기본이고 해외 장기 공연 땐 머리 감기와 빨래, 화장실 청소와 곰팡이 제거 등 일일이 열거 할 수 없을 정도다. 또 다 쓴 물티슈 뚜껑(캡)을 활용해 과자 보관과 콘센트 덮개까지 쓰는 노하우를 공개했다. 윤도현은 방송 말미에 "물티슈는 형 같은 존재"라며 "물티슈가 곁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의지가 된다"고 털어놨다. 방송은 물티슈 업계에 호재로 작용했다고 5일 업계 관계자들은 밝혔다. 친환경 물티슈 '순둥이' 생산기업인 호수의나라 수오미(www.suomi.co.kr)의 최건영 이사는 "매직아이 방송 이후 고객센터로 전화가 평균 24% 정도 늘었다"며 "고객들이 사용 노하우를 문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문의전화 10건 중 2건은 윤도현이 방송에 들고 나온 물티슈 제품명과 크기에 대한 질문도 전화 10통 중 2통 이다. 호수의나라 수오미가 운영 중인 쇼핑몰 순둥이몰(mall.suomi.co.kr) 접속자도 전날 보다 약 34% 가량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최 이사는 "지난 9월 보존제 파동으로 얼어 붙은 심리를 녹이는 훈풍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안전한 물티슈 사용요령을 소비자에게 적극적으로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lionking@fnnews.com 박지훈 기자
2014-11-05 17:49:33서울 군자동 광진데이케어센터에서 사회복무요원들이 치매노인들을 돌보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5일 오전 8시30분께 서울 군자동 광진노인종합복지관 내 치매·중풍 등을 앓고 있는 어르신들을 돌보는 광진데이케어센터에 사회복무요원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70대를 훌쩍 넘은 어르신 15명이 오전 9시께 집을 나와 오후 8∼9시까지 머무르는 곳으로, '노치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사회복무요원인 전영천(22)·최태웅(22)·전진우(21)·원준호씨(24)는 이곳에서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를 도와 하루 종일 어르신들을 돌보고 있다. 이들은 이곳으로 출근 후 간단한 청소를 끝낸 다음 오전 9시30분께 어르신들을 태운 버스가 도착하면서 본격적인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어르신들을 4층으로 모시는 것이다. 대다수 어르신이 거동이 불편한 탓에 일일이 부축하고 때로는 업어서 모시기도 한다. 관련기사 ☞ 기획연재 [대한민국 빛과 소금,공복들] ■복지관서 치매노인 돌보미 어르신들이 소파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가운데 전진우씨가 한 할머니를 붙잡고 큰 소리로 날짜와 시간, 이름을 외쳤다. 치매에 걸린 분들의 인지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으로, '지남력(指南力) 강화훈련'이란다. 한두 번으로는 성공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고 적어도 대여섯 차례는 반복해야 한다. 한 분 한 분을 상대하고 나니 금세 30분이 훌쩍 지났다. 이어 운동시간. 운동이라고 해야 30m 남짓한 센터 내 통로를 따라 천천히 걷는 것이 전부지만 넘어져 다칠 우려가 있어 늘 곁을 지켜야 한다. 서너 바퀴를 돌자 할머니·할아버지들의 숨이 가빠온다. 이때 스피커에서 '아리조나 카우보이'라는 1950년대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전진우씨는 "트로트를 싫어해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됐다"며 "매일 듣다보니 웬만한 트로트 노래는 따라부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제부터 체조시간까지는 쉬는 시간이다. 지난해 3월 이곳으로 배치받은 최태웅씨가 할머니들 사이에서 연방 싱글벙글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자세히 들어봤지만 무슨 내용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최씨는 "어르신들이 정신이 온전치 못한 경우가 많아 사실 아무런 내용은 없다"면서 "얘기를 들어드리는 것만 해도 위안이 되시는지 좋아들하신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사 조수아씨는 "어르신들에게는 정서적인 친밀감이 중요하기 때문에 얘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며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저게 무슨 일이냐'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직접 해보면 그리 쉽고 만만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20대 초반인 사회복무요원들에게는 더욱 힘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전 10시30분께 체조를 함께 할 강사가 도착했다. 앉은 자리에서 스트레칭을 하는 정도지만 다리를 들어올리기도 버거운 어르신들에게는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반 이상은 강사의 작은 동작조차 따라하지 못했다. 한 달 경력의 원준호씨가 한 할아버지의 팔과 다리를 붙잡고 운동을 도왔다. 그는 "친할머니가 7∼8년 넘게 치매로 고생하다 지난해 돌아가셨다"며 "할머니께 잘해 드리지 못한 게 후회로 남아 이곳을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전진우씨는 "가끔 폭력적 성향의 할아버지로부터 맞은 적도 있다"며 "'차라리 몸이 힘든 곳에 지원할 걸'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해주시고 휴가가거나 자리를 비웠을 때 저를 찾으셨다는 말을 들으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회복무요원들을 관리하는 박현희씨는 "처음에는 거부감 때문에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적응이 되면 더 열심히 한다"며 "소집해제 후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 봉사활동을 하러오는 전직 사회복무요원이 지금도 서너명 있다"고 설명했다. 체조가 끝나자 최고참인 전영천씨가 화장실을 가려는 두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일어선다. 다른 쪽에서는 점심식사 준비가 한창이다. 사회복무요원들의 머리에는 하얀 모자, 가슴에는 핑크색 앞치마가 둘러졌다. 파킨슨병, 뇌경색으로 고생하시는 할아버지 두 분은 수저도 제대로 들지 못해 사회복무요원들이 식사 도우미를 자처하고 나섰다. 전씨는 "사실 친할머니·친할아버지의 식사 수발도 들어본 적이 없다"며 "지난 1년 반 동안 어르신들과 함께 하면서 스스로 어른이 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현역병이나 또래 친구들이 볼 때는 편해보일 수도 있겠지만 마냥 쉽고 편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사회 한쪽에서 사회복무요원을 바라보는 부정적 시선과 편견이 제일 힘들다"고 애로를 토로했다. 서울 구의동 정립회관에서 사회복무요원들이 장애인들과 골판지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장애인의 '손발' 역할도 광진노인종합복지관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에 위치한 구의동 정립장애인보호작업장에서는 사회복무요원 신동준씨(22)가 장애인들의 손과 발이 돼주고 있다. 신씨는 당초 신체검사에서 현역 판정을 받았다가 망막박리 수술을 하는 바람에 재검에서 4급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9월 배치돼 6개월 경력에 불과하지만 김목겸 원장은 "우리 직원들의 손이 부족한 부분을 맡아줘 얼마나 소중한 자원인지 모른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신씨는 "장애인과 정식으로 접촉한 것이 처음이어서 낯설었지만 겪어보니 일반인보다 더 착하고 잘 대해줘서 이제는 '가족'이라고 부를 만큼 익숙해졌다"며 "개인적으로 장애인에 대해 갖고 있던 잘못된 편견을 깨는 기회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씨가 하는 일은 장애인 26명을 돕는 것이다. 이날 3개 작업장에서는 '골판지 감기 공예' 제품을 만들고 있었다. 고무줄로 골판지를 묶고 이를 비닐 포장지에 넣는 아주 단순한 작업이었으나 이들 장애인에게는 쉽지 않았다. 신씨는 건물 1층과 3층에 분산돼 있는 작업장을 오가면서 장애인들이 하기 힘들 일을 도맡아 했다. 그는 "한 손이 자유롭지 못한 분이 7명이나 돼 진행이 느리고 지적장애인들이 많아 아무리 단순한 작업도 열 번, 스무 번을 가르쳐줘야 한다"며 "그래도 '귀찮고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보람있게 병역의무를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신씨는 "모두 열심히 하는 데도 집중력 저하로 오래 일하지 못하고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해 복무기간 장애인 형님·누나들을 도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병무청 사회교육복무과 윤웅섭 사무관은 "정부의 예산이 한정돼 있는 탓에 사회복무요원들이 복지서비스 분야에 투입되지 않을 경우 도움의 손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어르신들이나 장애인들에 대한 서비스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대다수 사회복무요원들은 맡은 바 임무에 충실히 임하고 있는 만큼 일부 '일탈 사회복무요원'에 대한 편견으로 사회복무요원 전체가 매도되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기자
2014-03-05 17:42:18'성추행,차량털이,전화금융사기 연루….' 이따금씩 언론에 비춰지는 공익요원(현재 사회복무요원)들의 일탈 사건들이다. 이 때문에 공익요원들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쌓였고 사회의 '음지'에서 묵묵히 버팀목 역할을 하는 4만여 공익요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대다수 사회복무요원들은 각종 사회복지지설이나 공공기관 등 공공서비스 및 복지 '사각지대'에서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하며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5일 오전 8시30분께,서울 군자동의 광진노인종합복지관 내 치매·중풍 등을 앓고 있는 어르신들을 돌보는 광진데이케어센터에 사회복무요원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70대를 훌쩍 넘은 어르신 15명이 오전 9시께 집을 나와 오후 8∼9시까지 머무르는 곳으로, '노치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사회복무요원인 전영천(22), 최태웅(22), 전진우(21), 원준호씨(24)는 이 곳에서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를 도와 하루종일 어르신들을 돌보고 있다. 이들은 이 곳으로 출근 후 간단한 청소를 끝낸 다음 오전 9시30분께 어르신들을 태운 버스가 도착하면서 이들의 본격적인 하루 일과가 시작됐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어르신들을 4층으로 모시는 것이다. 대다수의 어르신이 거동이 불편한 탓에 일일이 부축 하고 때로는 업어서 모시기도 한다. ■복지관서 치매노인 돌보미 어르신들이 소파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가운데 전진우씨가 한 할머니를 붙잡고 큰 소리로 날짜와 시간, 이름을 외쳤다. 치매에 걸린 분들의 인지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으로,'지남력(指南力) 강화훈련'이란다. 한 두 번으로는 성공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고 적어도 대여섯 차례는 반복해야 한다. 한 분 한 분을 상대하고 나니 금새 30분이 훌쩍 지났다. 이어 운동시간.운동이라고 해야 30m 남짓한 센터 내 통로를 따라 천천히 걷는 것이 전부지만 넘어져 다칠 우려가 있어 늘 곁을 지켜야 한다. 서너 바퀴를 돌자 할머니·할아버지들의 숨이 가빠온다. 이 때 스피커에서 '아리조나 카우보이'라는 1950년대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전진우씨는 "트로트를 싫어해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됐다"며 "매일 듣다보니 웬만한 트로트 노래는 따라부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제부터 체조시간까지는 쉬는 시간이다. 지난해 3월 이 곳으로 배치받은 최태웅씨가 할머니들 사이에서 연신 싱긍벙글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자세히 들어봤지만 무슨 내용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최씨는 "어르신들이 정신이 온전치 못한 경우가 많아 사실 아무런 내용은 없다"면서 "얘기를 들어드리는 것만 해도 위안이 되시는지 좋아들하신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사 조수아씨는 "어르신들에게는 정서적인 친밀감이 중요하기 때문에 얘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며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저게 무슨 일이냐'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직접 해보면 그리 쉽고 만만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20대 초반인 사회복무요원들에게는 더욱 힘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10시30분께 체조를 함께 할 강사가 도착했다. 앉은 자리에서 스트레칭을 하는 정도지만 다리를 들어올리기도 버거운 어르신들에게는 여간 힘든게 아니다. 반 이상은 강사의 작은 동작조차 따라하지 못했다. 한 달 경력의 원준호씨가 한 할아버지의 팔과 다리를 붙잡고 운동을 도왔다. 그는 "친할머니가 7∼8년 넘게 치매로 고생하다 지난해 돌아가셨다"며 "할머니께 잘 해 드리지 못한게 후회로 남아 이 곳을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전진우씨는 "가끔 폭력적인 성향의 할아버지로부터 맞은 적도 있다"며 "'차라리 몸이 힘든 곳에 지원할 걸'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해주시고 휴가가거나 자리를 비웠을 때 저를 찾으셨다는 말을 들으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회복무요원들을 관리하는 박현희씨는 "처음에는 거부감 때문에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적응이 되면 더 열심히 한다"며 "소집해제 후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 봉사활동을 하러오는 전직 사회복무요원이 지금도 서너명 있다"고 설명했다. 체조가 끝나자 최고참인 전영천씨가 화장실로 가려는 두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일어선다. 다른 쪽에서는 점심식사 준비가 한창이다. 사회복무요원들의 머리에는 하얀 모자, 가슴에는 핑크색 앞치마가 둘러졌다. 파킨슨병, 뇌경색으로 고생하시는 할아버지 두 분은 수저도 제대로 들지 못해 사회복무요원들이 식사 도우미를 자처하고 나섰다. 전영천씨는 "사실 친할머니·친할아버지의 식사 수발도 들어본 적이 없다"며 "지난 1년 반 동안 어르신들과 함께 하면서 스스로 어른이 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현역병이나 또래 친구들이 볼 때는 편해보일 수도 있겠지만 마냥 쉽고 편한 것은 아니다"면서 "사회 한켠에서 사회복무요원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과 편견이 제일 힘들다"고 애로를 토로했다. ■장애인의 '손발' 역할도 광진노인종합복지관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에 위치한 구의동 정립장애인보호작업장에서는 사회복무요원 신동준씨(22)가 장애인들의 손과 발이 돼주고 있다. 신씨는 당초 신체검사에서 현역 판정을 받았다가 망막박리 수술을 하는 바람에 재검에서 4급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9월 배치돼 6개월 경력에 불과하지만 김목겸 원장은 "우리 직원들의 손이 부족한 부분을 맡아줘 얼마나 소중한 자원인지 모른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신씨는 "장애인과 정식으로 접촉한 것이 처음이어서 낯설었지만 겪어보니 일반인보다 더 착하고 잘 대해줘서 이제는 '가족'이라고 부를 만큼 익숙해졌다"며 "개인적으로 장애인에 대해 갖고 있던 잘못된 편견을 깨는 기회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씨가 하는 일은 장애인 26명을 돕는 것이다. 이날 3개 작업장에서는 '골판지 감기 공예' 제품을 만들고 있었다. 고무줄로 골판지를 묶고 이를 비닐 포장지에 넣는 아주 단순한 작업이었으나 이들 장애인에게는 쉽지 않았다. 신씨는 건물 1층과 3층에 분산돼 있는 작업장을 오가면서 장애인들이 하기 힘들 일을 도맡아 했다. 그는 "한 손이 자유롭지 못한 분이 7명이나 돼 진행이 느리고 지적장애인들이 많아 아무리 단순한 작업도 열 번, 스무 번을 가르쳐줘야 한다"며 "그래도 '귀찮고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보람있게 병역의무를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을 더 많이 같게 된다"고 말했다. 신씨는 "모두 열심히 하는 데도 집중력 저하로 오래 일하지 못하고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해 복무기간 동안 장애인 형님·누나들을 도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병무청 사회교육복무과 윤웅섭 사무관은 "정부의 예산이 한정돼 있는 탓에 사회복무요원들이 복지서비스 분야에 투입되지 않을 경우 도움의 손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어르신들이나 장애인들에 대한 서비스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대다수 사회복무요원들은 맡은 바 임무에 충실히 임하고 있는 만큼 일부 '일탈 사회복무요원'에 대한 편견으로 사회복무요원 전체가 매도되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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