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내가 알던 러시아는 북한을 도와 우리나라를 갈라놓은 나쁜 나라, 덩치 큰 불곰국형님들이 보드카를 마셔대는 나라, 차갑고 무뚝뚝한 사람들의 나라였다. 두달 가까이의 여행 후 러시아는 백인, 황인 등 다양한 인종과 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 어마어마하게 큰 광활하고 비옥한 땅을 가진 나라, 우리와 다르지 않은 희노애락을 느끼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로 보였다. 우리가 여행을 시작할 때는 러-우크 전쟁이 막 발발하던 때였다. 러시아에 대한 감정이 안좋아 같이 출발한 혹자는 러시아는 그냥 지나가는 곳으로 빠르게 패스할거라고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하지만 우리는 전쟁의 책임과 상관없는 평범한 러시아 사람들과 문화가 궁금했다. 그래서 열심히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전쟁의 책임과 상관없는 평범한 러시아인들의 문화가 궁금했다 러시아의 도로가 안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다녀보니 과연 비포장도 많고 아스팔트도 누더기처럼 덧대거나 깊은 구멍이 갑자기 나타나는 경우도 많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서쪽으로 갈수록 도로사정은 조금씩 좋아진다. 아무래도 수도인 모스크바의 재정과 관리가 멀리 시베리아 동쪽까지 닿기가 힘든것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 서울과 춘천 2시간거리를 달리려면 십여개의 터널을 지나야 한다. 하지만 러시아의 그 넓고 광활한 땅을 한달간 달리며(약 7000km) 단 한개의 터널도 만나지 않았다. 큰 다리도 건넌적이 없다. 험한 산지가 없이 대부분이 평지였다. 도로는 거의 편도 1차로가 대부분이었다. 주유소는 100~150km마다 자주 있는 편으로 너무 바닥나지 않도록 잘 관리하면 낭패볼 일은 없을것 같았다. 우리는 계기판의 남은 디젤이 4분의1이 되기전 주유소를 들어갔었다. 우리가 흔히 보았던 러시아의 사람들은 무표정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차갑거나 화가나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우리나라도 20여년 전까지만해도 잘 웃지 않는 사람들로 여겨졌었다. 내 가족이나 친구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웃으며 이야기해도 모르는 사람에게 굳이 처음부터 웃어줄 필요를 못 느끼는 문화인 것일 뿐이었다. 한국에서 접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기사는 매우 자극적이고 러시아를 나쁘게 묘사하는 것들 위주로 되어있다. 러시아군인에게 그 아내가 우크라이나 여자는 강간해도 된다는 전화통화 내용을 보도한 기사 등 러시아 사람들을 싸잡아 파렴치한 나쁜 인간들처럼 여기도록 하는 내용이 많다. 하지만 직접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 러시아 사람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고 오히려 친절하고 정이 많았다. 몇몇은 작은 나라를 침략한 사실을 매우 마음 아파했고 푸틴 정부가 "군사적 특별작전"정도로 이 전쟁을 왜곡해 축소하려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탄압으로 반대의견을 낼 수 없는 사회 시스템에 안타까워했다. 평화롭게 공존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언론에서는 러시아는 전쟁의 피해를 전혀 못느끼고 잘만 지내는 듯 그렸지만 경제제재의 피해는 고스란히 물자의 부족과 급등한 가격으로 서민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었다. 물론 폭격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우크라이나인들에 비하면 큰 피해도 아니겠지만... 억압과 가부장적 분위기에 무겁고 심각해 보이는 러시아 사람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러시아의 자동차들은 나라의 크기에 비해 작은 차들이 주를 이루었다. 동쪽에는 거의 폐차해야할 수준의 차들이 금가고 깨진 유리창을 달고 범퍼도 없이 시꺼먼 매연을 뿜으며 다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역시 서쪽으로 갈수록 점점 차의 상태도 좋아지고 제법 큰차도 볼 수 있었다. 특이했던 점은 운전대가 우측에 있는 일본차가 전역에 많다는 점. 금지법이 없어 일본의 중고차가 저렴하게 많이 들어오는것 같았다. 스페인어권인 중남미의 사람들과 경제수준은 비슷해보였지만 중남미사람들은 낙천적이고 즐거워보이는 반면 러시아어권 사람들은 억압과 가부장적 분위기에 무겁고 심각해보였다. 얼마전까지만해도 나는 우리나라보다 못사는 듯한 나라에 가게되면 어리석게도 '아, 이나라는 몇년이나 지나야 우리처럼 잘살게 될까?'하는 오만한 생각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러시아를 다니며 한국과는 달리 길에서 많은 어린이들을 볼 수 있음을 깨닫고는 한국이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아 아이를 낳아 키우고싶지 않은 나라이고, 자살률이 가장 높으며, 사회 각계각층의 갈등이 극도로 치닫고 있음이 떠올라 과연 한국처럼 되는 것이 바람직한가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인프라가 한국보다 덜 되있건 GDP가 한국보다 낮건 각 나라 사람들은 그 나라에 맞게 적응하며 나름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결코 멱살잡고 "한국처럼 발전해"라고 끌어당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지나며 보아온 풍경은 거의가 장대한 나무들이 울창한 푸른 숲과 풍부한 강과 비옥해보이는 검은 흙등이었다. 이 넓고 좋은 땅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옆나라 작은 땅마저 빼앗지 못해 안달인가 이해되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우리가 시베리아의 겨울을 만나지 못해서였을 지도 모르겠다. 나쁜나라 좋은나라는 없다. 탐욕스런 사람이 정치를 하는 나라가 있을 뿐. 어느 나라건 대부분의 서민들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그냥 사람들일 뿐이다. 내가 만난 러시아친구들을 떠올려보니 이탈리아와 멕시코친구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나그네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조금이라도 돕고자하는 선한 마음을 가진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된 것에 너무너무 감사드린다. 러시아에 대해 가졌던 나의 편견을 보기좋게 깨준 것에 더 깊은 감사를 드린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08MiC7LKf0Y?si=K9Pkju7LlUlNPGKv>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5-05 10:57:17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노보시비르스크로 가는 길. 날이 흐렸다 비가왔다 오락가락 하다. 중간에 네비게이션이 이상한 길로 안내해서 출렁다리로 강을 건너고 잠시 당황했지만 덕분에 못보던 시골길을 달리게 되어 나쁘지 않았고 곧 다시 메인도로로 수월하게 잘 돌아왔다. 노보시비르스크까지는 빨라야 이틀길이다. 너무 어두울때 도시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첫째날은 좀 늦게까지 이동을 했다. 9시가 못되서 길 안쪽에 있는 넓은 쉼터를 발견하고 들어갔다. 헛, 우리차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한 러시아 아저씨가 다가온다. 100루블을 내라는 말에 나는 거부감이 좀 들었는데 탄은 여기는 울타리도 있고 도로와 떨어져서 차 지나가는 소리도 덜들리고 2000원에 지켜준다는데 땡큐지 하며 선뜻 지불한다. 다른 대형트럭들도 몇대 주차되어있고 재래식이지만 냄새 거의 안나는 변소도 있고 안전에 안심이 되어 잘 왔다 싶었다. 잘 자고 새벽 6시 다시 이동한다. 하늘은 아직도 흐리다. 구름이 낮고 넓게 깔려있어 하늘에 큰 구름이불이 덮인 것 같다. 숲길도 지나고 케메보로라는 좀 큰 도시도 지나고 부지런히 이동하며 주위 풍경을 만끽한다. 시야 가득 펼쳐진 하늘에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을 보는 것 만으로도 지루할 새가 없다. 주행중에는 대형트럭을 많이 만나는데 앞서가는 트럭뒤에 75라는 숫자가 쓰여있다. "자체 제한속도가 75라는거 아니야?" 하고 농담하며 웃었는데 뒤따라 가다보니 정말 75km/h로 달린다. 점심때는 쉼터에 차를 세우고 짜장면을 해먹었다. 탄이 운전만 하고 앉아있기 지겹다며 서서 요리하기를 자청해서 스파게티면에다 스팸과 양파를 추가해서 짜장가루로 맛을 낸 요리를 만들었는데 그럴듯하다. 맛있게 잘 먹었다. 이케아가 있는 도시.. 연어와 미트볼 잔뜩 기대했는데 '휴업'이네 오후 5시경 대도시 노보시비르스크에 도착했다. 러시아에서 몇 안되는 이케아가 있는 도시라고 들어서 이케아 식당에들러 미트볼과 연어샐러드를 먹을 생각에 나는 몇일전부터 들떠있었다. 그러나 주차장이 막혀있고 뭔가 썰렁하고 싸한 느낌. 휴업중이라고 한다. 아마도 전쟁여파인듯... 실망이 컸지만 할수 없지 하고 대신 Aura라는 대형 몰을 찾아갔다. 하남의 스타필드 같은 느낌의 어마어마하게 크고 현대적 시설을 갖춘 쇼핑센터였다. 식당가도 무척 넓고 여러 종류의 식당이 있었다. 쇼핑몰 1층에는 큰 마트도 있어 계란 등 식료품을 잔뜩 샀다. 아쉽게도 노보시비르스크에서는 카우치요청에 답이 없어서 시 외곽의 저렴한 숙소를 예약했다. Apostol이라는 호스텔이었는데 가보니 카톨릭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시설인듯 했다. 특이하게 오후 7시부터 체크인이 가능한 곳이었는데 어차피 일찍 들어갈 일이 없어 상관없었고 3만원정도로 착한 가격에다 깨끗한 침상과 시설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노란 방안의 벽에는 예수님의 그림과 십자가가 걸려있었다. 매우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차고도 있고 밤에는 문을 잠그는 철제울타리도 있어 안심이 되었다. 공용주방에서 편안하게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아침에 커피와 크림스프, 계란과 소세지샌드위치를 만들어 든든히 먹었다. 호스텔 복도에 걸린 사진들을 보니 여러 구호사업등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이곳에서 편히 쉴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또 하시는 일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소량의 러시아 돈을 기부함에 넣었다. 러시아의 마지막 대도시 노보시비르스크를 떠난다. 보통 대다수의 러시아 횡단 자동차 및 바이크 여행자들은 모스크바를 향해 계속해서 서쪽으로 가지만 우리는 스탄국가들에 가기 위해 여기부터 남쪽으로 방향을 꺾어 내려가기로 했다. 국경통과는 오전에 하는 것이 좋다고 해서 국경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인 카라숙으로 가서 밤을 보낼 계획이다. 한참 러시아에서 보기드물게 노면상태가 좋은 도로를 기분 좋게 드라이브를 하다가 탄이 갑자기 왼쪽 샛길로 들어선다. 앞에 길을 막아놓은 것을 보았다고 한다. 공사 중인걸까? 왼쪽의 작은 길로 들어갔다가 얼마간 진행되면 다시 큰 길로 돌아올 생각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노란 파이프들이 줄지어 있는 작은 마을로 들어왔다. 마을을 지나니 비포장길이 점점 좁아지고 길을 잘못 들어 작은 마을을 한바퀴 빙 돌아 나오기도 하고 차가 다닌 자국은 있지만 길이라고 할 수도 없는 곳을 계속해서 가다가 급기야 차가 더이상 갈 수 없을듯한 푹 패인 곳에 다다랐다. 탄이 내려서 앞에 길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온다고 나갔다. 겁이 더럭났다. 주변에 차는 커녕 사람 한명 다니는 것을 못본지 오래였고 만약 차가 빠져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나 불안했다. 러시아말을 전혀 모르는 데다 시골이라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다. 탄이 돌아와서는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과연 가능할지 너무 걱정이 되었다. 겨우 하나를 지나가면 또 비슷한 구간이 나와 수차례 멈추었다 쿵덕거리며 아슬아슬하게 지나가기를 반복했다. 나는 긴장해서 팔걸이를 꽉 잡은 손에 땀이 범벅이 되고 말수를 잃었다. 그저 속으로 아무 사고없이 이 구간을 지나가기를 바랄 수 밖에 없었다. 느릿느릿 한시간 넘게 이런 길을 지나 겨우 큰 길이 눈앞에 보였다. "어휴 살았다."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안도하는 것도 잠깐이고 산너머 산이다. 지금까지 러시아를 한달 넘게 다니면서 한번도 본적 없던 중앙분리대가 떡하니 있어 좌회전을 할 수가 없다. 다시 온방향으로 우회전해서 가야한다. 한시간을 넘게 헤매며 온 방향으로 다시 10여km를 되돌아가서 겨우 유턴하는 곳을 찾아 돌아갈 수 있었다. 카라숙에 도착하면 러시아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식당에 가서 아직까지 못 먹어본 보르쉬, 블린 등을 먹자고 격려하며 계속해서 달려갔다. 눈앞의 석양이 유난히 따가워 바라보며 달리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길에서 허비한 시간을 버느라 오후 9시가 되도록 달려서 어두워지기 직전 겨우 카라숙에 닿았다. 시간이 너무 늦어 식당들은 모두 문을 닫은 상태여서 외식은 포기하고 겨우 마트를 하나 찾아 식료품을 사서 저녁을 해결했다. 마을 지도에 작은 호수같은 것이 몇개가 보여 예전처럼 호숫가 차박을 꿈꾸며 찾아봤지만 차를 대고 잘만한 곳은 없었다. 다시 시내로 돌아와 어느 아파트의 주차장에 들어가 마치 주민인 듯 차들 옆에 우리 차를 세우고 몰래 차박을 했다. 쉽지 않은 하루였지만 별 탈 없이 조용하고 안전하게 잘 잘 수 있었다. 6시경 일어나 아침은 건너뛰고 바로 국경으로 출발했다. 되도록 일찍 가고싶기도 했고 긴장되어 뭘 먹을 생각이 없었다. 카라숙에서 국경인 App 까지는 약 2시간 정도 걸렸다. 아침 일찍인데도 벌써 많은 차들이 와있었다. 대형트럭들이 줄줄이 서있는 것이 너무 길어 "헉, 저 차들을 다 기다려야 하나?" 당황스러웠는데 다행히 작은 승용차나 우리같은 캠핑카는 훨씬 짧은 옆줄에 세우면 되었다. 아마도 절차가 다른 모양이다. 그래도 꽤 긴 줄에 차를 세우고 기다리는 동안 탄이는 한국말을 할 줄 아는 트럭기사 아저씨들과 떠들썩하게 여행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비행기 여행때 농수산물은 국경통과가 안되서 버려야했던 기억이 떠올라 남은 감자를 급히 삶기 시작했다. 익힌 것은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신경쓸 필요가 없었던 것이 여행내내 차로 국경을 지날때에 과일이며 농수산물이 문제가 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우리 차례가 되어 차를 안쪽으로 이동시키고 내려서 사무소에 들어가 출국심사를 받았다. 우리 앞의 러시아 사람들은 금방금방 끝나 지나가는데 탄이 차례가 되자 이야기가 길어진다. 긴장되는 출국심사..말이 통하지 않아 더욱 답답하고 떨린다 차량의 짐을 모두 내려야한다. 말이 안통하니 서로 답답하다. 자동차등록증을 달라는 것일까? 우리가 가져온 것들을 보이며 "이게 다예요" 라고 아무리 말해도 안 통한다. 조금 있다가 상관인듯한 군인이 와서 우리 서류를 살펴보더니 심사관한테 이거면 된다고 하는 듯 해서 한시름 놓고 한참만에 겨우 여권에 도장을 받았다. 다음은 차 검사. 방바닥TV를 보고 이곳 국경이 까다롭지 않다고 들어 일부러 찾아왔는데 참, 사람마다 다른가보다. 까브리에 있는 거의 모든 짐을 몽땅 다 바닥에 내려서 하나하나 열고 속까지 샅샅이 파보고 나서야 됐다는 사인이 났다. 전에는 내 살림이 여러 모르는 사람들 앞에 까발려지는 것이 창피하고 속상했던 때도 있었지만 한두번 겪고나니 그저 이 사람들도 자기 일을 할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러시아 출국에 3시간이 넘게 걸려 겨우 나왔다. 이번엔 카자흐스탄 입국심사가 기다리고 있다. 또 긴 줄을 기다려서 우리 차례가 되었다. 또 차량등록증이 문제다. 자기들이 익숙한 뭔가 작은 종이를 달라고 하는 것 같은데 우린 그런 것을 본 적이 없다. 영문차량등록증이랑 러시아 입국시 받은 증서가 다일뿐. 기다리라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이 오고, 왔다갔다 몇번을 하고난 후에야 드디어 40여분만에 우리 여권에 입국 도장이 찍혔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여권을 받아 차를 타고 출입국 너머로 이동하려하자 또다시 차를 세우는 카자흐스탄군인. '후, 또 짐을 몽땅 빼야하는건가?' 다행히 이번엔 4~5개정도만 빼고 살펴보더니 가라고 했다. 이렇게해서 약 5시간 만에 국경을 넘고나니 둘다 진이 쏙빠져서 국경사무소가 안보이는 곳으로 얼마간 이동하고는 차를 세우고 한동안 맘을 추스려야했다. 국경 넘는 것은 정말 긴장되고 힘이 들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WoAEJASdzWk?si=6clXQ_AqDO5EDx_m>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5-05 10:52:18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바이칼에서 두번째로 가고싶은 곳은 1시간반 거리의 붉은 모래(Red sands). 바이칼의 호숫가는 거의 자갈강변인데 특이하게 이곳만 보석류인 석류석모래로 이루어져 붉은 색을 띄고 있다는 정보를 보고 궁금해져서 보러 가기로 했다. 고장난 차 발견.."오, 우리가 러시아 청년 도와줄 차례" 레드 샌드로 가던 중, 길옆에 비상등을 켜고 서있는 차와 청년들이 보였다. 설까말까 망설일 새도 없이 탄이 그 앞에 차를 세웠다. 사실 우리차를 보고 한국번호판을 달고 있는 것과 캠핑카 여행자인줄 알아차리는 러시아 사람들이 와서 말을 거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일일이 친절히 응대하지는 못해도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면 무조건 돕자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딱 그런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일행 중 마침 알렉산더라는 영어를 하는 친구가 있어서 소통이 가능했다. 차를 견인해 가까운 마을의 정비소까지 이동시켜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다행히 그 친구들에게 견인줄이 있어서 까브리 뒤쪽에 줄을 매달 곳을 찾아 연결할 수 있었다. 다른 차를 달고 운전하기는 탄이도 생전 처음이라고 한다. 한국은 워낙 시스템이 잘 돼있어 이럴 일이 없지만 여기선 흔한 일인것 같다. 이들은 이르쿠츠크에 사는 4명의 친구들이었는데 함께 여행을 하려고 출발한 지 3시간 만에 차가 갑자기 멈춰버려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고 한다. 작은 차에 4명이 타고 짐까지 가득 싣고 있었다. 우리차 앞자리에는 붙어 앉으면 3명까지 탈 수가 있어서 고장차와의 소통을 위해 알렉산더가 우리차에 동승했다. 안전을 위해 40km이하로 천천히 이동해야 했다. 시간은 두배 이상 걸렸지만 도울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즐거웠다.(고장 차량분들은 아니었겠지만--;) 가는 동안 알렉산더와 왓츠앱등록도 서로하고 우리의 여행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한국에 가보고 싶다고 하길래 오게 되면 우리에게 꼭 연락하라고 하며 카우치서핑도 추천해주었다. 한참을 달려 호수 근처의 작은 마을 바이칼스크의 한 정비소에 도착했다. 정비소에서 견인해온 차의 시동을 걸어보니 고장났던 차가 다시 움직이는 듯해 모두 기뻐했다. 하지만 또 주행중 멈출 수 있으니 일단 정비를 받아야 할 것 같았다. 헤어지기 전 우리차와 같은 모터홈이 꿈이라는 네명의 친구들에게 차를 구경시켜주었다. 다들 너무 좋아했다. 친구들은 감사의 의미로 다차에서 만든 쨈을 우리에게 선물해주었다. 함께 사진을 찍고 이렇게 또 하나의 추억이 만들어졌다. 다행히 레드샌즈가 그곳에서 멀지않아 바로 찾아갔다. 들어가는 길이 울퉁불퉁했는데 어찌어찌 잘 도착했다. 호수옆에 약간의 공터가 있어 이곳에서 차박을 했어도 괜찮았겠다 싶었다. 호숫가에 가보니 역시나 붉은 모래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른 곳과 달리 약간 따뜻한 색계통의 잔 모래가 많이 있긴 했는데 보고싶던 쨍한 붉은모래는 사람들이 가져가고 파도가 쓸어가 일이년 전부터 보기 힘들다더니 정말 보통 강변같아 보인다. 환경이 더 파괴되기 전 여기저기 열심히 돌아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그런데 몇일 후 알렉산더로부터 메세지와 사진이 왔는데 우리가 레드샌드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차를 고친 후 그들도 레드 샌드를 찾아가 보았는데 발견했다는 것이다. 지도에 나온 곳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남아있었다고 했다. 보내준 사진의 붉은색 모래가 신기하고 아주 예뻤다. 직접 보지못해 좀 아쉬운 마음이 있었지만 아직 붉은 모래가 남아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알려준 알렉산더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바이칼에서 서쪽으로 두시간 거리에 이르쿠츠크가 있다. 아마도 바이칼호수를 구경오는 사람들이 도착하는 곳이 이곳일 것이다. 여기도 꽤 큰 도시라 마트에 들러 장을 볼 생각이었는데 소통의 부재로 탄이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어두워질 때쯤 길 옆 한 카페주차장에서 밤을 보냈다. 도로 바로 옆이라 차 지나가는 소리가 커서 걱정이 되었는데 탄이 준 말랑한 귀마개가 아주 효과적이었다. 처음엔 거부감이 좀 있었는데 한번 해보니 이물감도 별로 없고 소음을 꽤 잘 막아줘서 수면에 도움이 되었다. 다시 이틀길을 달려 크라스노야르스크에 도착했다. 가는 길 위에서는 인터넷이 안되서 미리 카우치 요청을 보낼 수가 없었다. 도시에 도착해서야 급히 검색해보고 바실리라는 친구에게 당일 묵어도 되는지 요청을 보내보았다. 하지만 너무 급작스러운 요청이라 무리겠지 하며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답이 없으면 대충 길가에서 일찍 자고 내일 새벽에 또 이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내를 구경하며 밥을 먹고 있었는데 웬걸 바실리에게 답이 왔다. 그는 "No problem"이라며 시원스레 주소를 알려주었다. 너무 반갑고 감사한 마음으로 찾아갔는데 그는 시내 서쪽의 좋은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었다. "No problem" 카우치서핑으로 만난 바실리 우리가 그의 아파트 앞에 도착하자 바로 내려와서 우리 까브리에 큰 관심을 보이며 차내부를 구경하고 무척 흥미로워했다. 함께 계단을 올라가며 우리 짐을 들어주는 등 무척 친절했다. 우리는 신나게 서로의 여행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도 표트르처럼 히치하이킹으로 러시아를 돌아다닌 경험이 있어 여행자의 힘듦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바실리는 20대 후반의 IT쪽 일을 하는 청년이다. 그러나 그의 원래 꿈은 야마카시, 파쿠르같은 익스트림 스포츠를 하며 촬영하고 편집하는 방송쪽 일을 하고싶어 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에게 그가 1년동안 제작한 영상과 사진들을 보여주었는데 놀라서 감탄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우리가 하루만 머무르고 가겠다고 하자 바실리는 매우 아쉬워하며 저녁에 시간이 있으면 크라스노야르스크 시내를 구경시켜주고 싶다고 한다. 사실 차박에 지쳐 쉬고자 들른 것이었지만 친구의 성의에 감사하며 저녁시간에 함께 외출을 나섰다. 차가 있는 폴이란 친구를 불러 우리를 태우고 크라스노야르스크의 야경을 볼 수 있는 "콘카"라는 곳에 올라갔다. 예니세이강과 불빛이 아름다운 다리가 보이고 도시의 불빛이 별처럼 반짝였다. 강때문인지 도시에 구름이 내려앉은듯 안개가 낀 풍경이 더욱 신비로워 보였다. 친구 덕분에 이런 풍경을 보는구나 싶어 정말 고마웠다. 다음엔 시내의 차가 다니지 않는 거리인 미라, 레닌, 마르크스 거리로 갔다. 그곳에서 바실리의 여자친구 크리스가 합류했는데 마침 광장의 커다란 무대에서 무료콘서트가 진행 중이어서 운좋게 구경할 수 있었다. 처음 듣는 음악이었지만 사람들 틈에 섞여 잠깐의 흥겨움을 느낄 수 있었다. 단 하룻밤 머물렀지만.. 아름다웠던 크라스노야르스크의 추억 걷다보니 전망대에서 봤던 불빛이 아름다운 다리에 왔다. 솜씨 좋은 바실리가 적극적으로 우리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포즈를 취하라고 열심이다. 친구들 모두 어찌나 사려깊던지 춥지않냐며 괜찮다고 해도 옷을 빌려주고 계속해서 필요한 것이 없는지 살피고 물어봐주어서 너무 고맙고 황송할 지경이었다. 멋진 밤외출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크리스의 엄마가 만드신 케이크를 같이 먹었는데 과일이 들어있어 새콤달콤 너무 맛있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웃고 떠들며 좋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바실리가 아니었으면 차타고 그저 스쳐가는 지역중 하나였을텐데 비록 단 하루였지만 그의 덕분에 크라스노야르스크는 러시아의 아름다운 도시로 기억에 강하게 남았다.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바실리는 뭘 도와줄까 물어보고 엄마의 다차에서 가져온 양파며 감자 등을 가져가라며 잔뜩 주었다. 편하게 쉬고 씻고 세탁도 할 수 있게 해주고 커다란 추억을 만들어준 바실리에게 너무너무 감사하다. 지금 생각하면 뭐 그리 급한 일이 있다고 하루만에 나왔을까, 아쉬워하는 친구와 하루라도 더 같이 보내며 여유 있게 이야기도 나누고 할걸 하는 마음이 든다. 여행 초반이라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에게 몇가지 선물을 했는데 그중 한국에서 사간 눈오리 집게가 있었다. 그런데 몇달후 겨울에 바실리는 그가 직접 만든 눈오리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잘 활용하고 있는 것같아 반갑고 기분 좋았다. 아쉬운 마음에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지만 우린 다음날 노보시비르스크를 향해 출발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osoydnMxZsg&t=375s>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4-15 10:16:30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차에서만 지내기 5일째, 러시아 카우치 서핑 친구 문코네서 겨우 샤워는 한번 했지만 제대로 된 숙소에서 건강도 회복하고 쉬고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다음 도시에서는 꼭 편히 쉴 수 있겠지 하는 희망을 품고 치타를 떠나 부랴트 공화국의 수도라는 울란우데를 향해 간다. 넓은 초원에 풀 뜯는 말들.. "여기는 몽골 같네" 울란우데가 가까와지자 도로옆을 따라 "셀렝가"라는 예쁜 강이 흐른다. 넓은 초원에 풀을 뜯는 말들도 여러마리 보인다. 도로면도 좋아져 운전하기가 한결 편해졌고 지금껏 보아온 작은 마을들과는 다르게 잘 사는 동네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울란우데에 들어서니 과연 큰 도시였다. 중심가에는 꽤 높은 빌딩도 여럿 보이고 몽골풍의 건물과 육교, 벽화 등이 무척 이국적인 분위기였다. 길에 다니는 사람들이 모두 한국인 같아보여 여기가 러시아라는 사실이 잘 안 믿겨질 정도였다. 오랜만에 도시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제대로 된 숙소를 잡아 하루이틀 푹 쉬어보기 위해 검색을 했다. 러시아에서는 에어비앤비나 구글은 제기능을 하지 못했다. 대신 슈퍼스타의 장사장님이 알려준 "오스트로복(Ostrovok)"이라는 숙박앱으로 주차가능, 와이파이, 주방이 있는 숙소를 찾았다. 러시아에서 우리끼리 숙소를 예약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앱을 통해 숙박비까지 지불하고 나니 달랑 전화번호를 하나 알려준다. "헉, 상세주소도 없이 전화번호만 나오네?" 좀 당황했지만 제발 주인이 영어를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전화를 해보니 자동응답 러시아어만 반복해서 나온다. 아마도 없는 번호라는 듯하다. 돈은 이미 지불되었는데 날린걸까, 여기서도 못쉬고 또 차에서 자야하나 낙심해서 어쩔줄 몰랐다. 한참을 고민하다 하바롭스크의 이반이 생각났다.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메신저 '왓츠앱(whats)으로 예약한 스샷과 전화번호를 보내며 "이게 어떻게 된건지 좀 알아봐달라"고 도움을 청해보았다. 고맙게도 이반이 바로 답을 보내주었다. 역시나 잘못된 번호란다. 아마도 집주인이 숙소등록을 할때 번호를 잘못 입력한게 아닐까 싶었다. 기다리라고 한 후 한참을 알아봐주더니 너무 반가운 답이 왔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인과 연락이 닿았고 예약은 잘되서 주인이 우리 문자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반의 도움으로 체크인시간보다 이른시간에 잘 안내받아 숙소에 찾아갈 수 있었다. 엘레베이터가 있는 8층 높이의 아파트였는데 생각보다 매우 좋았다. 러시아식 에어비앤비인듯 일반 아파트에 주방, 테이블, 소파, 침대, 넓은 방과 거실, 깨끗한 화장실과 욕실. 그리고 멋진 욕조까지!!! 아파트의 넓은 발코니에서는 울란우데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바로 옆에는 1965년에 지어진듯한 전차 종점이 있었는데 아직도 사용되는듯 전차들이 오가는 모습을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러시아식 에어비앤비에서 '풀충전' 새 길을 갈 힘을 얻었다 꽤 큰 욕조에 물을 받아 몸을 담그니 피로가 한순간에 날아가는듯 행복했다. 이틀간 잘 쉬고 풀충전을 하고 새 길을 갈 힘을 얻었다. 카우치 친구네집에 묵는 것이 좋은 경험과 인연을 만들 수 있어 감사하고 기쁜일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문화차이가 큰, 처음만난 사람과 함께 지낸다는 것이 서로 마냥 쉬운일은 아니다. 매사에 조심하고 배려하느라 신경쓸 일이 아주 많은 편이다. 그래서 숙소를 잡는 것은 누구 눈치볼 것 없이 우리끼리 편안하게 쉬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 이튿날 낮 12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한국식당을 찾아 오랜만에 비빔밥과 국수로 기분좋게 배를 채웠다. 무엇하나 부족함 없고 오히려 넘쳤던 울란우데에서 잘 먹고 잘 쉬고 다시 서쪽으로 이동한다. 시간변경선을 두세개 지나온 듯하다. 한참 이동하다보면 스마트폰 시간이 자동차의 시계와 다른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비행기여행과는 달리 이동하며 한시간씩 시간이 빨라지는 경험이 희안하다. 시차는 걱정할 일이 없다. 바이칼 호수가 점점 가까워 온다. 세계에서 가장 큰 호수라는 바이칼. 유명한 이름만큼 기대가 컸다. 드디어 나타난 바다같은 커다란 호수를 발견하고 "와!" 소리를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절대 호수라는 상상도 못할듯한 끝없는 수평선. 우리가 바이칼에 왔구나! 이것이 세계 최대호수 바이칼! 우리는 바이칼 호수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싶어 호수 남쪽에 있는 "바이칼 자연사 박물관"을 찾아갔다. 시간변경선 덕으로 한시간을 벌었고 꽤 늦은 7시까지 한다고 해서 여유있게 입장할 수 있었다. 이곳은 아마도 우리가 러시아를 여행중에 방문하게 될 유일한 관광지일듯 싶었다. 입장료는 인당 200루블(약 4000원). 박물관에는 바이칼에 사는 동-식물들, 구전되는 이야기들, 환경생태등에 대한 전시를 하고 있었고 특히 안쪽에 '사람들과 바이칼(People and Baikal)'이라는 전시공간에는 바이칼의 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하는 콘텐츠가 있었는데 무척 인상적이었다 안내하는 직원분이 본인 휴대폰으로 영어번역을 해가며 열심히 시범도 보이고 우리가 그곳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히 도와주셨다. 사람이 살게되면 자연은 오염될 수밖에 없는걸까? 깨끗하다고만 알고있던 바이칼이 이렇게 심각한 오염이 진행중이고 수중생물들이 위협을 받고있다니 마음이 착잡했다. 한가지 놀랐던 것은 박물관 시설이 여태껏 우리가 러시아에서 봐온 모든 것과 너무도 수준차이가 났던 것이었다. 서울이라고 해도 믿어질 정도의 최첨단 관람시설에 화장실도 고급스럽고 청결하고 휴지와 비누 등이 잘 갖춰져 있었다. 박물관 2층에 쇼파와 로비공간이 있어서 엄청난 바람에 거센 파도가 치는 바이칼호를 한동안 편하게 바라보았다. 야외에도 어린이들이 놀수있는 시설들이 공원처럼 예쁘게 조성되어 있었다. 관람을 마친 우리는 그곳의 시설수준에 반해서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에서 하루 머물 생각으로 멋진 주차장에서 차박준비를 다 하고 저녁을 먹고있는데 누가 차를 두드린다. 관리하시는 직원이 이곳에서 차박은 안된다고 하시는듯ㅠㅠ... 서둘러 먹던것을 정리하고 차를 이동하니 마지막으로 나가는 우리차 뒤에서 주차장 차단기가 내려간다. 쫓겨나 풀이 죽은 나는 여기서 멀리 도망가고 싶었는데 탄이 나가자마자 있는 호수옆 작은 공터에 차를대면 어떻겠냐고 한다. 괜찮을까 걱정했지만 차가 많이 다니는 길이 아니고 차를 세울만한 공간이 있어 그러기로 했다. 그날밤 거센 바람에 차가 흔들리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장대비와 호수의 파도소리는 귓가를 때렸고 그 와중에 또 누가 여기서도 자면 안된다며 차를 두드리는 건 아닌가 신경이 곤두서 한참을 잠을 이루지 못했다가 죽은듯 잠들었다. "일어나자마자 최고의 뷰라는게 바로 이런거구나." 다음날 깨어보니 거짓말처럼 날이 개어있었다. 바다같은 호수에 아침해가 떠서 구름사이로 몽환적인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차박의 진수를 맛보았다. 바이칼 호수위를 해리포터처럼 빗자루를 타고 날고싶은 내마음을 담아 드론을 띄웠다. 최대한 낮게 띄워달라고 탄에게 부탁했다. 대리만족이었지만 찍힌 영상을 보니 어떤 느낌일지 생생히 상상이 되어 마음이 두근두근했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바이칼호수의 두번째 목적지인 레드샌드를 향해 출발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0PgyJHksakw>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4-15 10:14:33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기나긴 시베리아 횡단도로를 달려 드디어 치타에 도착했다. 4일간의 횡단에 지칠대로 지친 우리는 우리 카우치요청을 받아준 문코의 집에서 쉴 생각에 기대가 컸다. 4일 간의 시베리아 횡단.. 우릴 맞아준 건 카우치 친구 문코 약속시간인 오후 6시까지 시간이 좀 있어서 간만에 패스트푸드를 먹기로 했다. 러시아에는 맥도날드가 없다. 대신 찾아간 곳은 마스터(Master)버거. 케찹 가득 뿌려 크게 한입 베어먹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햄버거는 여행에 지치고 힘들 때 먹으면 힘이 솟는 나의 소울 푸드가 되었다. 요기를 하고 시내의 창고형 할인매장 같은 곳에 가서 물과 식료품 등을 샀다. 특히 고기는 시원한 별도의 공간에 커다란 덩어리째 진열돼 있었는데 한국처럼 썰어주거나 포장해주는 서비스가 없어 약간 당황했지만 있는 게 어디야 하며 친구와 함께 먹을 생각으로 통 크게 구입했다. 마트안엔 참새 여러마리가 날아다니는 등 매우 친환경적인 곳이었다. 아마도 쌓여있는 곡식을 먹으러 들어온 것일 듯 싶었다. 장을 보고 문코를 만나기로 한 부자바오라는 카페에 갔는데 그의 가족이 운영하는 곳이라고 한다. 문코는 카페를 무척 자랑스러워하며 보여주었고 우리는 매장 인테리어가 예쁘다고 칭찬했다. 우리에게 만두 등 카페음식을 시켜주려 했지만 하필 오기 바로 전 커다란 햄버거를 배불리 먹은 상태여서 감사하다고 마음만 받았다. 음료수를 마시며 이야기 중 가고싶은 곳이 있냐고 물어봐서 치타에 커다란 호수가 있는 것을 지도에서 봤는데 가보고 싶다고 했다. 문코는 내가 거길 왜 가고싶어 하는지 의아해 하는 것 같았지만 친절히 안내해주었다. 가보니 왜 그런 태도였는지 알만했던 것이 정말 호수 말고 아무것도 없었다. 뭔가 오리배라던가 호수옆 공원 산책로 같은걸 기대했었나보다. 하지만 나는 강이건 호수건 물을 바라보는 것을 참 좋아한다. 항카호수보다는 작았지만 그래도 너른 호수를 바라보며 석양을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치타 시내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고 해서 함께 올라가 보았다. 러시아 정교회 건물인 듯한 예쁜 탑이 있는 전망대에서 치타를 내려다보니 러시아식 낮은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시내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는 길에 건널목에서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기다려야 했었는데 엄청 길어서 나중에 세어보니 자그마치 76량이나 되었다. 전망대에서도 선로와 기차들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주요 길목인가보다. 컨테이너 박스들도 무척 많이 보이고 마치 공업도시같은 느낌이 들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문코의 집으로 함께 갔다. 문코는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외곽에 살고 있었다. 시내에서 조금 벗어나니 완전 시골이다. 대문이 높고 커다린 판넬같은 것이었는데 활짝 열고 까브리를 안쪽 마당에 주차하도록 해주었다. 지금까지 길가에 러시아집들의 이런 담을 많이 봤는데 안쪽이 어떻게 되있는지 처음 보게되어 신기했다. 탄의 멋진 주차실력으로 쏙 들어왔다. 쇠젓가락이 신기했던 문코.. "두벌 뿐이지만 하나는 너에게 줄게" 알고보니 오늘이 마침 문코의 생일이라고 한다. 우리는 깜짝 놀라 가족이나 다른 친구와 약속이 없냐고 물어봤는데 딱히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잘되었다 싶어 오늘 장본 고기와 음료로 문코의 생일축하 파티를 해주기로 했다. 문코의 집에 주방이 없는 것이 아쉽긴 했지만 수돗가에서 상추를 씻고 우리 휴대용 가스버너를 꺼내 돼지고기를 한국 삼겹살처럼 맛있게 구웠다. 햇반도 데우고 쌈장과 양파까지 차려놓으니 그럴듯했다. 식사는 항상 밖에서 사먹어서 집에서 밥을 먹는건 처음이라고 한다. 탄이 문코에게 한국식 쌈 싸먹는 법을 알려주자 따라해보더니 맛있다며 너무 좋아한다. 고기를 다 먹을 때까지 계속 그렇게 쌈을 싸서 먹었다. 좋아하는 모습에 우리도 마냥 흐뭇하고 기뻤다. 식사 중에 문코는 우리가 가져온 쇠젓가락을 보고는 나무젓가락은 많이 봤는데 쇠로 만든건 처음 본다며 신기해 했다. 그래서 단 두벌 밖에 없는 귀한 쇠젓가락이었지만 과감히 한벌을 문코에게 선물했다. 생일선물로 꽤 괜찮겠다 싶었다. "해피버스데이~투유~" 생일축하송도 불러주고 서로에게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 문코를 만나 알게된 것은 러시아가 다민족 국가라는 것이었다. 그는 만약 한국에서 만났다면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을만큼 한국사람처럼 생겼다. 러시아 안의 몽골계 민족이 많이 모여사는 부랴트 공화국사람이라고 한다. 인구는 약 100만명이고 다음 목적지인 울란우데가 수도라고 한다. 러시아인 하면 레닌이나 스탈린같은 서양사람만 있는 줄 알았는데 다양한 인종이 있었다. 문코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우리를 초대한 그 집을 사옥개념으로 지어 우즈벡 노동자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카페가 있는 시내에서 살 수도 있었지만 우즈벡 사람들에게 살 곳을 제공하기 위해 비교적 땅값이 저렴한 외곽에 집을 지은거라고 했다. 마당에서 돼지고기를 구우려 할때도 냄새가 안나게 방에서 먹자고 하는 문코의 말에서 그의 세심한 배려심이 느껴졌다.(우즈벡 사람들은 무슬림이라 돼지고기를 안먹음) 그가 카우치 친구를 초대하면 자신의 여권과 친구의 여권을 같이 찍곤한다는 이야기에 우리도 좋은 생각이라며 같이 사진을 찍었다. 붉은 색에 멋있는 문장이 박혀있는 러시아 여권도 꽤 근사해보였다. 야외에 공용으로 샤워하는 곳이 있어 오래간만에 씻을 수 있어 좋았다. 샤워커튼 외에 문 같은 것이 없어 탄이 앞에서 지켜주었다. 작은 세탁기도 있어 옷가지도 조금 세탁을 부탁했다. 울타리 하나 있다고 마음이 푸근.. 깊고 달콤한 '꿀잠' 문코가 방에서 함께 자자고 권했지만 싱글침대 하나에 이부자리도 없어 작은 방에서 셋이 자기보다는 우리차가 낫겠다 싶어 오늘도 그냥 차에서 자기로 했다. 그날 밤 까브리에서 깊이 푹 꿀잠을 자고 일어났다. 다른날과 같이 차에서 잤지만 울타리 안 마당에 있다는 것이 안심되고 편안했나보다. 아침에 일어나 빈 20리터 청수통에 물을 채울 수 있냐고 물어보니 마을 공동 우물로 안내해주었다. 작은 집같은 낡은 건물에 파이프 두개가 튀어나와있다. 시설이 낡아 수질이 어떨지 조금 불안했지만 있는게 어디냐 싶다. 아래쪽 파이프를 당기자 위쪽에서 물이 콸콸 나온다. 지하수인가 했는데 파이프로 수돗물을 공급해준다고 한다. 덜마른 빨래를 캐빈 빨랫줄에 널고 문코와 작별인사를 했다. 사실 몇일 더 있을 생각을 하고 온 것이었지만 사정을 보니 우리도 편히 쉬기 힘들고 그 친구에게도 폐가 많이 될듯해 바로 떠나기로 했다. 문코도 이해한다며 웃는 얼굴로 그러나 아쉬워하며 우리를 보내주었다. 돈을 많이 벌면 여권을 가지고 세계여행을 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우리는 문코에게 꼭 한국에도 오라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표트르도 그랬지만 문코도,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우즈벡 사람들을 품고 또 우리같은 여행자들을 도우려는 마음을 가진 것이 참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문코로 인해 치타라는 도시에 좋은 추억이 생겼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TZiM3yo9fZs?si=J1vYswp_pXMPTPaW>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4-01 15:14:24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8월 중순의 날씨는 뜨거운 폭염을 벗어나 다닐만 했다. 다음 목적지인 치타까지 약 2100㎞안에는 특별한 것이 없어 시베리아 횡단도로를 쭉 달려갈 예정이었다. 우리가 달리는 도로와 길 따라 줄지어 서있는 송전탑 외엔 인공적인 것이 거의 보이지 않는 평원과 언덕을 달리고 달린다. 하루에 700km 달리겠다는 욕심..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끝없는 지평선도 보이고 푸른 나무가 울창한 숲과 들판, 습지와 강을 지난다. 이 넓은 땅에 아무것도 안하다니 좁은 한국 생각에 러시아가 부러워진다. 열흘 넘게 쉬고 출발한 첫날이라 그랬는지 탄이 욕심을 냈다. 이미 깜깜해졌는데도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린다. 10년 전에도 10시간 이상 차로 이동하면 죽을 맛이었는데 벌써 12시간이 넘어간다. 도로상태가 아주 좋더라도 화물차의 승차감으로는 장시간 주행이 쉽지 않은 일인데 이곳 시베리아 횡단도로의 아스팔트는 정비가 잘 안되어 울퉁불퉁하고 누더기같이 기워놓은 자국이 거미줄같다. 툭하면 포트홀을 차가 쿵쾅거리며 지나가 엉덩이가 뻐근하게 배기고 허리가 뼛속까지 아프고 머리까지 흔들려 지끈대는 것이 너무 괴로왔다. 마을같은 곳이 나올때까지 참고 있었는데 그곳도 쌩하니 지나쳐버린다. 계속 저기선 멈추겠지, 멈추겠지 하고 참다가 끝내 언제 잘거냐고 그만 좀 가자고 말했다. 그러자 탄은 그제서야 알겠다며 차세울만한 곳을 찾기 시작했는데 주변엔 아무것도 없어 또 한참을 가야했다. 깜깜한 길을 차의 헤드라이트빛만 의지해 달리다가 겨우 외진 길가 안쪽의 카페를 발견하고 더듬더듬 들어와서 기절하듯 잠을 청했다. 다음날 눈을 뜨자 나는 심한 몸살로 몸이 완전 나빠진 것을 느꼈다. 편도선이 부어 목소리가 거의 안나오고 기운이 하나도 없어 몸이 축축 쳐졌다. 출발전에 탄에게 아프다고 살살 운전해달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탄은 왠지 내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어제와 다름없이 그저 빠르게 이동하기에만 열중했다. 몸은 부서질듯 뼈마디마디가 아팠다. 너무 괴로워서 아스팔트 구멍이 보이면 피해가달라고 다시 이야기를 했는데 알았다고만 하고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계속 빠르게 가다보니 미처 피하지 못하고 쿵쾅쿵쾅 차가 빠지기 일수였다. 참다참다 이러다 정말 죽겠다 싶어 차를 세우라고 한 뒤 안나오는 목소리를 쥐어짜내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그제서야 깨달은 탄은 매우 미안해하면서 자기 혼자 머리속으로 치타까지 2100km를 3일만에 가야겠다는 목표를 정해두고 하루에 700km넘게 가야한다는 생각에 그랬다고 한다. 한국에서 무슨 일이건 목표를 세우고 숙제하듯이 달성하곤 했던 패턴이 몸에 배어버린 탓이었다. 3일안에 치타에 도착해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도, 빨리 갈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그냥 무리를 한 것이다. 이 후로 우리는 다시한번 "느린 여행"을 하자고 되새겼다. 이번 여행에서 만큼은 스피드, 생산성, 효율성에 사로잡혀 주변의 많은 것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피할 것을 다짐했다. ★느린 여행의 좋은 점① 몸에 무리가 덜하다 ② 차에 무리가 덜 간다 ③ 유류비가 덜 든다 ④ 앞유리에 곤충사체가 덜 생긴다 ⑤ 차창 밖 풍경을 여유 있게 볼 수 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스코보로디노에 가서 쉴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스코보로디노는 작은 소도시였는데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몇군데 숙소가 있었다. 처음엔 그래도 저렴한 곳을 찾아갔는데 방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가격을 막론하고 두세군데를 더 가봤지만 모두 빈방이 없다고해서 결국 숙소에서 쉬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눈물이 났다. 조금이라도 기운나게 밥이라도 잘 먹으려고 길가의 작은 식당에서 초밥과 피자를 시켰다. 한국에서였다면 돈주고 안사먹었을 부실한 계란말이초밥과 밍숭맹숭한 피자였지만 탄도 나도 음식을 만들 기운도 없고 방금 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것만으로도 감사하며 먹었다. 정차하고 까브리를 보니 유리와 차 앞쪽에 수많은 곤충사체 흔적이 가득한 것이 얼마나 빨리 달려왔는지를 보여주었다. 기차역 앞 주차공간에 차를 세우고 잠을 청하기로 했다. 자기 전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하바롭스크에서 만나서 도움드렸던 김병복님이 우리와 같은 날, 같은 도시에 묵고있다는 메세지가 와있는 것을 발견했다. 김병복님은 바이크 여행자이신데 러시아는 도시와 도시사이 도로에 인터넷이 안되는 구간이 많아 오프라인 지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을 몰라서 큰 어려움을 겪으셨다고해서 우리가 이반네로 오시라고 해서 이반의 와이파이로 오프라인 지도를 다운 받아준 일이 있었다. 여행 중 길 위에서 만나면 밥한번 같이 먹자고 하고 헤어졌더랬다. 하지만 이미 잘준비를 마친 상태에다 몸이 천근만근이라 만나거나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아 내일 연락하면 되겠지 하고 그냥 누웠다. 빗소리에 깨어버린 새벽, 또다시 나서는 여행길 또다시 새벽에 길을 나선다. 일찍 차를 멈추고 휴식을 취한 덕분인지 컨디션이 조금은 나아진 기분이다. 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바로 앞차도 겨우 보일 지경이었지만 빗소리에 깨어버린터라 이동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스코보로디노를 빠져나오며 온도계를 보니 외부온도가 13도이다. 가을이 다가와서인지 북쪽으로 올라와서인지 모르겠지만 주행하기도 훨씬 편하고 차에서 잠도 잘만하다. 참 다행이다. 길 위에서 병복아저씨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아침 일찍 출발했노라고 같은 길을 가니 어디서든 만나지 않겠냐고 이야기를 했다. 한참 달리다가 점심때쯤 오토바이 여행자들의 스티커가 잔뜩 붙어있는 한 카페 주차장에 들렀다. 혹시 병복아저씨도 오시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좀 있었지만 아쉽게도 보이지 않았다. 휴게소 없는 시베리아 도로... 어쩌다 만난 재래식 화장실 "으악, 냄새" 장시간 운전을 하다보면 반드시 쉬어야 하는데 시베리아 도로에 휴게소같은 것은 없고 우리나라 졸음쉼터 같이 길 옆에 약간 평평한 공간을 만들어 놓은 곳이 뜨문뜨문 있긴 하다. 하지만 그저 차를 세울 수 있는 공터가 있다는 정도이고 어쩌다 화장실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지독하게 냄새나는 재래식이고 거의 다 청소 관리가 전혀 안되어 있는 상태라서 마음을 굳게 먹고 볼일을 후딱 보고 오곤했다. 상태가 너무 안좋아 차라리 밖에서 볼일을 보는게 나을 때는 지나가는 차들을 피해 수풀에 숨거나 탄이 차량용 햇빛가리개로 뒤돌아서 나를 가려주었다. 하바롭스크를 떠난지 3일째 되는 새벽, 해가 안떠 어두컴컴한 길을 달린다. 탄에 의하면 우리 차 외엔 다니는 차들이 없어 상향등을 맘편히 켜고 달릴 수 있어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어두울 때 주행이 할만하다고 한다. 동 터오자, 안갯 속의 풍경.. 이 세상 풍경이 아니었다 동이 터오며 점차 밝아지자 안개 낀 주변 풍경이 환상적이다. 이런 풍경을 놓칠 수 없다고 감탄하며 탄이 차를 세웠다. 탄이 드론 촬영을 하는 동안 주변의 안개속 풍경을 감상했는데 정말 비현실적이었다. 나중에 드론이 찍어온 영상을 보자 몽환적인 안개속에서 점점 커지며 다가오는 나무들의 실루엣이 기가막히게 아름다왔다. 이세상 풍경이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이 곳은 한번도 사람이 밟아본 적이 없는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더 신비하게 느껴졌다. 같은 길을 가더라도 당시의 날씨, 시간대, 상황에 따라 느끼고 경험하게 되는 것이 다 다르다. 그것이 우리가 유튜브를 하게 된 이유중 하나였다. 처음엔 이미 많은 사람이 갔었고 유튜브영상도 많은데 우리까지 올리는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적도 있었다. 하지만 같은 것을 보더라도 백사람이 느끼는 것이 다 다를 수 있으니 우리가 보고 느낀 것을 담백하게 담자는 마음이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은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qKioUEV2Iwg?si=48euvPkp3QHQXnH2>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3-07 15:31:29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우리는 러시아 친구 이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러시아여행은 9월이 가장 좋다고 한다. 러시아어에 대해서도 많이 물어보고 배웠는데 발음을 따라하기가 무지무지 어려웠다. 하루는 이반이 자기 친구들이 다차에서 모여 바베큐파티를 하는데 같이 가겠냐고 물어보았다. 눈이 휘둥그래졌다. 러시아사람들의 리얼한 삶을 볼 수 있는 멋진 기회다. "그럼~ 너무너무 가고싶지!" 비가 보슬보슬 오고 있었지만 그깟 날씨가 대수랴. 우리는 이반에게 초대 받으면 빈손으로 갈수는 없다며 중간에 과일 파는 곳에 들러달라고 부탁했다. 작은 시장에서 수박과 이반이 좋아하는 처음보는 베리류를 샀다. 과일값이 한국의 반의반이다. 시내를 조금 벗어나자 금새 시골풍경이 나온다. 어떤 시골 길가에 차를 세우고 진흙탕길을 꽤 걸어들어가자 이반 친구 니콜라이의 다차가 나왔다. 나무집 옆에 텃밭 키우는 어르신들 "우리와 똑같네" 다차란 소비에트 시절 부족한 배급과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개인에게 작은 땅과 나무집을 나눠준 것을 말한다고 한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별로 없고 주로 나이드신 분들이 다차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자식들을 위해 채소와 곡식 등을 농사지어 열심히 나누어주신다고 한다. 우리네 시골 부모님들과 다를 바 없다고 느꼈다. 오래 보이는 2층 나무집이 있었고 주변에 채소들이 이것저것 자라고 있었다. 마당에는 친구들이 일찌감치 도착해 피운 모닥불과 페치카에서 바베큐가 익어가고 있었고 테이블에는 벌써 음식이 한상 가득 차려져 있었다. 근육질이지만 상냥한 빅토르, 다정한 이고르와 베카부부, 덩치 크고 산적같은 인상의 니콜라이, 그리고 많은 꼬맹이들. 다 모이니 열댓명이 다 되는 대가족이다. 너무 친절한 그들.. '러시아 사람' 선입견 확 깨는 순간 다들 처음 봤지만 너무너무 친절하게 우리를 환영해주고 마치 오랜 친구처럼 마음을 열어 대해주었다. 러시아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이 완전히 깨지는 순간이었다. 특히 릴리아라는 11살 소녀는 계속 내 주변을 맴돌며 나와 이야기를 하고싶어 했는데 번역기로 소통하기엔 한계가 있어 안타까웠다. 계속 나를 따라다니며 먹을 것과 모기약 등을 챙겨주고 흙바닥에서 덤블링을 하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를 많이 좋아해주는 것이 느껴져 내가 뭐라고 이리 잘해주나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음식도 좋고 사람들도 다 좋았는데 한가지 시로의 취약점 곤충, 특히나 질색하는 모기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릴리아가 가져다준 몸에 뿌리는 모기기피제를 온몸에 잔뜩 뿌리고 연기나는 모닥불 앞에만 딱 붙어있었지만 새로온 동양인의 피맛 소문이 쫘악 퍼졌는지 모기들은 맛집을 찾아 몰려왔다. 내가 모기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을 눈치챈 아이들이 돌아가며 열심히 연기를 퍼트리거나 해서 모기를 쫓아주려 해서 무척 고마웠다. 마당 한켠에는 도끼와 모닥불에 사용하는 나무들이 쌓여있었는데 탄이 장작을 패보겠다며 도전한다. "익!, 잇!" 기합만 잔뜩 들어가고 나무는 도끼에 박혀 콩콩 찧기만 한다. 그걸 본 빅토르가 뛰어들어 도끼를 넘겨받고 자기가 하는 것을 보라는 듯 친절하게 시범을 보인다. 두번만에 시원스레 쩍 갈라지는 나무토막. 역시 경험이 중요하다. 탄이 요령을 배운뒤 다시 도전했는데 다섯번 찍은 후에 겨우 성공했다. 괜찮아, 처음인데 그만하면 잘했어!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은 이반 밖에 없어서 주로 그가 통역해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중, 니콜라이가 "왜 이런 여행을 하기로 결심했냐?"고 물어왔다. 순간 머리속에 '한살이라도 어릴때 하려고?, 원래 여행을 좋아해서?, 배울 것이 있어서?' 등등 여러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갑자기 내 입에서 불쑥 "Why not?" 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왜 이런 여행을 하기로 결심했냐?" "Why not?" 왜 이런 여행을 하기로 결심하지 않겠어. 라는 대답이었지만 그 안에 여러 의미가 함축되있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이 여행을 하지못할 이유가 없었다. 많지 않지만 여행이 가능할 만큼의 돈이 있었고 직장과 자녀에 매어있지도 않았고 둘다 여행에 문제없을 만큼의 건강도 있었고 여러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일 마음이 있었고 매일 생길 문제들을 감당할 각오도 되어있었다. 갑작스런 질문에 즉흥적으로 한 대답이었지만 꽤나 만족스러운 답변이었고 이 말을 들은 친구들 모두 환호하며 멋지다고 말해주었다. 마음이 통한것 같았다. 저녁 늦게 깜깜해지도록 샤슬릭, 바베큐, 샐러드등 먹을 것과 보드카, 맥주등 술도 배가 터지도록 맛있게 먹었다. 어두워지자 스파클라(손에 드는 작은 불꽃놀이)를 들고 즐겁게 놀았다. 정말 돈주고 살 수 없는 너무도 따뜻하고 멋지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샤슬릭을 비롯 다양한 음식이 차려졌다. 팔뚝보다 큰 연어로 만든 요리.. 운 좋게 '카나페'까지 몇일 후 이반이 팔뚝보다 큰 연어를 한마리 사왔다. 러시아 생선요리를 맛보게 해준다고 한다. 직접 커다란 연어를 손질하는데 섬세한 정성이 느껴졌다. 연어를 얇게 잘라 해바라기씨유, 소금, 그리고 양파를 켜켜이 쌓아 냉장고에 몇시간 둔다. 일부는 식초물을 제조해서 연어살을 덩어리째 담궈둔다. 두가지 방법으로 만든 연어를 맛보고 맛을 비교해보라고 했는데 초절임도 나쁘지 않았지만 양파와 함께 먹는 것이 더 입맛에 맞았다. 운이 좋게도 연어가 암놈이어서 연어알 카나페도 만들어 먹었다. 이반의 여자친구인 아냐도 함께 요리하고 같이 식사를 즐겼다. 아냐는 영어를 못해 소통은 어려웠지만 수줍어하면서도 우리에게 예의있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이 느껴져 참 고마왔다. 남친집에 온 군식구때문에 더블침대를 못쓰고 간이침대에서 둘이 불편하게 자야하는게 불만스러울 수도 있을텐데 그런 내색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민망해서 모른척 지나가는 우리를 발견하고는 씨익 웃어주기도 했다. 집에 손님만 두고 여행 떠난 이반.. 놀랍도록 서로 믿는 '카우치서퍼'들 밀린 유튜브영상작업도 하고 잘 쉬며 일주일쯤 되었을 때 이반이 갑자기 다른 손님이 더 온다고 한다. 예전에 카우치서핑으로 알게 된 부인과 아이들이 하바롭스크에 오는데 재워달라고 요청을 해서 그러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우리가 있는 큰 방 바닥에서 자고 자기가 쓰던 공간을 그들에게 빌려준다고 하는 것이었다. 우리 상식으로 잘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이 친구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을 재워주곤 하는 것 같았다. 처음엔 잠깐 '우리에게 이만 나가라고 하는 건가?'하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런게 아니었다. 그래서 주인이 바닥에서 자는건 표트르때로 충분하다 싶어 "아니야 네가 이 집의 주인이잖아. 우리는 차에서 매트리스를 가져올테니 네가 침대를 사용해."라고 했다. 그렇게 한지붕 세가족의 희안한 동거가 이틀정도 지났을때 이반이 또 갑자기 여행을 떠난다는 이야기를 했다. 늦은 여름휴가로 블라디보스톡에 간다고 하는 것이다. "어? 그럼 우린? 우리는 그 다음날 떠날 예정이었는데?" 이반은 아무렇지 않은듯 예정대로 하라며 집에 우리와 새 손님가족만 남기고 기차를 타고 떠났다. 카우치서퍼들의 신기하리만큼 서로를 신뢰하는 일들을 예전에도 겪어본 적이 있지만 이반은 정말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를 믿어주고 여행자를 돕고 하는 모습이 그냥 살아있는 천사 같았다. 이반이 여행가는 날 까브리로 역까지 바래다주었다. 이반은 집을 낯선이들에게 맡기고 떠나는 데 마냥 해맑았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믿어주는지 고마울 따름이다. 이별의 포옹을 하고 언젠가 한국에서 꼭 다시 만나자고 하자 우리에게 "좋은 여행이 되기를, 너희가 계획한 세계의 모든 나라들을 방문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해주었다. 러시아에서 참 신기한 좋은 친구가 생겼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com/@user-hb5up3dh1o?si=4LHlTLkQKDiU4cLz>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2-28 15:54:02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우리는 가능하면 블라디보스톡에서도 카우치서핑을 통해 현지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다. 카우치서핑은 17년 역사의 여행자와 현지인을 연결해주는 시스템이다. 여행자는 묵을 곳을 구할 수 있고 현지인은 여행자를 초대해 대리경험을 하며 친구를 사귈 수 있다. 공유숙박과는 달리 돈은 절대 받지 않는다. 대신 작은 선물이나 음식을 나누며 감사함을 표시하면 된다. 우리는 11년 전 여행에서 처음 이 사이트를 알게 되어 이곳을 통해 여러 외국친구들을 사귀었는데 현지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곳의 진짜 삶을 경험하고 관광객은 모르는 곳을 방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너무도 좋은 기억이 많았다. ★블라디보스톡에서도 러시아 친구를 사귈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 우리의 여행계획을 카우치서핑에 올려놨는데 이를 보고 몇몇의 친구들이 감사하게도 연락을 주었다. 쏘냐는 여행을 무척 좋아하는 친구였다. 처음엔 우리를 자기 집에 게스트로 초대했었는데 갑자기 여행계획이 생겨 취소되었지만 대신 페루 식당에서 그의 친구들 라다, 사샤와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르바트 거리에서 걸어갈 수 있는 곳에 있는 리마라는 이 식당은 엔칠라다가 매우 맛있었다. 다들 한국과 여행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러시아 청년들이어서 공통된 관심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무척 즐거웠다. 식당벽에 사진과 차키가 붙어있어 관심을 끌어서 우리 중 한명이 식당주인에게 물어보았더니 세계여행을 하고 온 영국사람이 차키를 여기 두고 간 것을 걸어놓은 것이라고 한다. 뭔가 운명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춤과 사진촬영을 좋아하는 엘레나라는 친구도 만났는데 매우 톡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마치 모델이 된듯한 기분으로 그녀의 요청에 이리저리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는데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특별히 유리는 우리가 출발 약 6개월 전에 곧 갈 수 있을 줄 알고 미리 여행계획을 올려놓은 글을 일찍 보고 메세지를 주고받던 친구였는데 자꾸 미뤄져서 미안한 마음에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친구였다. 그런데 우리가 한국을 떠나기 직전 그가 "한국에서 블라디보스톡 오는 배가 다시 다닌다고 하더라" 하는 메세지를 보내왔다. '와 그 소식을 듣고 우리를 떠올려주다니!' 고맙고 감동이었다. 우리는 바로 "맞아! 우리가 그 배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으로 갈꺼야! 곧 만나자."라고 답을 보냈다. 우리는 언덕 위의 한 카페에서 그의 두 딸 마리아, 달리아와 유리를 만났다. 영어가 서툴렀던 유리는 주로 딸들을 통해 이야기를 했다. 간접적인 소통이 답답하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에 우리와 정말 친해지고 싶고 알고싶어하는 마음이 전해져 너무도 따뜻하고 좋았다. 집이 작아서 우리를 초대하기는 힘들다며 오히려 미안해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잔뜩 주었다. 초콜렛이 씌워진 전통간식과 연유, 그리고 콰스라는 러시아 전통음료였다. 콰스는 맛을 보니 우리나라의 맥콜과 비슷한 것이 매우 마음에 들어 러시아 여행 내내 마트에서 종종 사다 마셨다. 마지막으로 밝은 미소가 멋진 에너지 킹, 표트르를 아르바트 거리에서 만났다. 아르바트 거리에는 매일 락, 발라드, 클래식 등의 음악을 바이올린, 플루트, 기타 등 다양한 뮤지션들이 버스킹을 한다. 우리와 함께 거리를 따라 걷던 표트르가 기타치며 노래하는 버스커를 보자 갑자기 옆에 걸터앉아 같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놀란 토끼눈이 된 우리는 '헉 이래도 되나? 연주자에게 무례한 행동은 아닌가?' 싶어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는 심지어 버스커보다 더 큰소리로 신나게 노래를 했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자 그 버스커는 열심히 박수치는 우리는 제쳐두고 표트르에게 무척 고마와했다. 신기한 광경이었다. 우와 이런 것이 문화의 차이인가보다. 계속해서 우리는 아래쪽 바닷가를 함께 걸었다. 해양공원과 놀이기구들이 있었는데 우리끼리였다면 긴장하고 다녀야해서 못보고 지나칠 것들을 친구와 함께다니니 마음이 편해 기발한 화장실 픽토그램 등 많은 새롭고 재미있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어릴 때부터 태권도, 쿵푸, 가라데 등을 접하며 아시아 문화를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히치하이킹으로 동러시아를 몇달간 여행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청년때 전국 무전여행을 하셨다는 나의 아버지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제 우리나라에선 생각하기 힘든 히치하이킹이 가능하다니 러시아는 아직도 50년 전의 정이 남아있는 나라인가 싶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지자 불쑥 "우리 집에 게스트로 올래?" 하고 제안해준다. 예정에 없었지만 현지친구의 집에 묵는 좋은 기회를 놓칠소냐. 우리는 짐을 가지고 그의 집으로 갔다. 그곳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6층건물 맨위층이었는데 충격적이었던 것은 주방에 싱크대가 없어 화장실에서 물을 써야했고 원룸에 접이식소파배드가 하나 있었는데 우리에게 침대를 양보하고 표트르는 바닥에서 잤다. 그가 누우면 바닥이 꽉 찰 정도로 좁았다. 덜컥 초대를 받고 왔지만 한방에서 이렇게 지낼줄은 몰랐어서 미안스럽고 당황스러우면서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보통 집이 넓고 많은 것들을 갖추어야 손님을 초대할 수 있고 제대로 대접하는 것이 라 생각하고 그렇지 못하다면 아예 누구를 초대하거나 하는 것을 피하는데 표트르는 풍족하지 않아도 가진 것을 나누고 함께하며 즐거워하였다. 그의 모습에 무언가 커다란 것을 배운 것 같았다. 그가 일하고 있는 시내에 새로 지은 39층 빌딩에 따라가 보았다. 아직 시멘트벽 상태였지만 통유리창 너머 블라디보스톡 항구와 바다를 가로지르는 대교가 보이는 상상초월의 황홀한 뷰에 말문이 막혔다. "와아! 미쳤네! 환상적이다! 내 눈앞에 펼쳐진 이 풍경이 정말 현실이라고? 말도 안돼!" 한동안 푹 빠져 창앞을 떠나지 못하던 나는 표트르에게 호기롭게 말했다. "표트르, 여기 인테리어를 퍼펙트하게 해주길 바래. 우리 여행이 끝날때쯤 유튜브로 돈 많이 벌면 이곳을 살꺼니까!" 이 집에 들어올 사람이 너무너무 부러웠다. 우리는 표트르네서 그가 해준 아크로슈카(러시아음식)도 먹고 북한식당도 같이 가보고 하며 즐겁게 이틀을 함께 보냈는데 뭔가 낌새가 좀 이상했다. 사실 우리는 차를 되찾을때까지 표트르와 함께 있을 생각으로 온건데 그는 이틀 후에 또다시 6개월이상의 무전여행을 떠난다고 하는거다. 뭔가 영어의 소통이 불충분했나보다. 하여튼 그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그의 여행 준비를 도우며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가기로 했다. 표트르는 여행을 떠나기 전 집의 음식을 없애야한다며 우리에게 병조림과 쌀 등을 잔뜩 주었다. 몇일 후 우리도 차를 되찾아 여행을 시작할테니 가다가 혹시 길에서 얻어탈 차를 찾고 있는 표트르를 만나게 되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는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여행을 축복하고 아쉬운 작별인사를 했다. 이렇게 맛난 것도 먹고 구경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며 시간을 보내던 중 드디어 러시아통관대행사로부터 우리 차가 나온다는 연락이 왔다. 차에 고추장이며 온갖 한국음식과 탄의 촬영장비 등 짐을 잔뜩 실어서 세관에서 혹 트집을 잡거나 큰 돈을 요구하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는데 예상하던 최단시일인 열흘만에 추가비용은 하나 없이 가장 좋은 상황으로 차를 되찾게 되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항구로 가서 통관세를 내고 몇가지 확인을 한 후 차를 세워둔 곳으로 갔다. 철망 문이 열리며 까브리가 나오자 달려가 와락 안고싶었다. 없어진 것 하나없이 다시 만난 까브리가 너무 반가웠고 장해보였다. 차를 찾아 제일 먼저 한 것은 주유소 가기. 러시아는 기름값이 한국의 반값이다. 기름을 빵빵하게 넣은 까브리에 앉아 운전대를 잡은 탄이 무지 신나보인다. 힘들게 걸어다녀야했던 블라디보스톡을 차타고 드라이브하니 기분이 새롭고 매우 좋았다. 그동안 많은 도움을 받고 친해진 슈퍼스타사장님께 작별인사를 했다. 이제 배가 다시 다니니까 제발 게스트하우스를 그만두지 마시라고 우리 뒤에 오실 분들을 생각해달라고 다시한번 간절히 부탁드렸고 사장님은 러시아 여행 중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감사한 이야기를 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정말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일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드디어 까브리와 정처없는 긴 여행을 시작한다고 생각하니 두근두근 가슴이 설레었다. “이제 정말 진짜 시작이구나. Go West! 내차타고 가는 세계여행 출발!”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이 기사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com/@user-hb5up3dh1o?si=4LHlTLkQKDiU4cLz>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2-15 13:47:47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까브리'와 함께 동해에서의 마지막 밤 동해시의 오래된 모텔에서 한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야 했다. 비는 억수같이 내리는데 탄이는 차의 짐을 다시 정리하고 싶다며 동네를 돌다가 어떤 상가건물의 지붕이 있는 주차장을 찾아 밤늦게까지 차안의 짐들을 정리했다. 마지막까지 신경 쓸 것이 너무너무 많았다. 차를 배에 싣기 전 차안의 짐들을 세관에 거쳐야 하니 출항시간보다 몇시간 일찍 가야했다. 나는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탄이 차를 몰고 세관에 들어갔다. 금지품목이며 이런저런 신경을 많이 써서 싸기는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차에 실은 물건에 문제가 되는 것이 있지는 않을까 기다리는 내내 걱정이 됐다. 한참 지나자 탄이 온다. 별다른 문제 없이 우리 까브리를 잘 접수했다고 한다. 다행이다.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해서 우리차를 찾을때까지 짧게는 열흘, 많이는 보름 이상도 걸린다고 한다. 그 동안 필요한 짐들을 따로 싼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한참 떨어진 승객용 동해항 국제여객터미널로 걸어갔다. 해외에 갈때는 항상 공항에서 비행기를 탔었는데 항구에서 출국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다. 우리를 블라디보스톡으로 데려다줄 배의 이름은 “이스턴 드림호” 그토록 꿈꾸었던 내차타고 세계여행의 시작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이제 이 배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 동쪽에서 서쪽끝까지 달려가는 거야~!" 긴 계단을 지나 배에 오르는데 캐리어가 무거워보였는지 외국인 선원인듯한 분이 내 캐리어를 번쩍 들어 위까지 옮겨주신다. 너무 고마워 감사인사를 하고싶었는데 짐을 받고 정신을 차리자 벌써 사라지고 없다. 조건 없는 친절에 마음이 따스해진다. “부웅~” 뱃고동 소리가 출항을 알렸다. 갑판에서 동해항구를 내려다보니 비로소 ’아, 진짜 드디어 떠나는구나‘ 실감이 났다. 어제까지 장대비를 퍼붓던 하늘은 구름사이로 찬란하게 햇살이 빛난다. 몇 달간 계속 여행을 영영 못하게 되는게 아닐까 걱정하고 쫄아들었던 마음이 확 날아가는듯 했다. 불안과 긴장이 기대와 설레임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스턴 드림호의 24시간 무척 큰 배였다. 배 여기저기를 탐험하는데에도 꽤 걸렸다. 계단으로 배의 여러층을 오르내릴 수 있었는데 우리 선실은 아래쪽에 있었다. 배위 갑판에는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면세점과 상점도 있었는데 상점은 물건이 거의 없었고 운영시간도 잠깐씩이어서 뭘 사기가 힘들었고 면세점은 아예 닫혀있었다. 코로나 전에는 운영했던 듯. 동해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는 24시간이 걸린다. 배 가운데 층에 넓게 의자들이 줄지어있는 객실도 있지만 승객 한명당 침상이 하나씩 주어진다. 내 침상 건너편의 러시아 아저씨는 키가 커서 침상이 불편하다고 툴툴대는 듯하다. 배가 오래되어 아주 깔끔하지는 않았지만 에어컨 빵빵하게 잘 나오고 선실마다 쓸만한 화장실도 딸려있어 필요한 시설은 웬만큼 잘 갖추어진 듯 했다. 지내기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파도 넘실대는 망망대해에서의 한끼, 그리고 '살구' 식당에서 한끼를 사먹었는데 음식은 가격에 비해 그저 그랬지만 햇빛이 반짝이는 푸른 바다에 파도가 넘실대는 풍경을 보며 식사를 하다니 세상의 어느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보기 힘든 멋진 뷰라는 생각에 매우 행복했다. 배가 매우 커서 흔들림이 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약간은 울렁대는 느낌이 있었는데 나는 오히려 좋았다. 자려고 눈을 감고 누우니 마치 테마파크의 놀이기구를 탄듯한 느낌에 ’아이 재미있어~‘하며 잘 잤다. 아침에 눈을 뜨니 탄이 노란 살구를 불쑥 내민다. “오다 줏었어? 귀한 살구가 어디서 났대?” 탄이 어제밤 잠이 안와 배를 돌아다니다가 아주머니 두어분을 만났는데 그분들의 선실이 너무 더워 잠을 못주무신다고 힘들어하시길래 우리 선실에 빈 침상이 있다고 오시라고 알려드렸더니 고맙다고 주셨단다. 이 사람 곁에 있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 참 남 돕기에 열심인 사람이다. 망망대해 바다밖에 안보이다가 점점 육지가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웅성댄다. 우리도 배위로 올라갔다. “오 저게 러시아 땅인가!” 그토록 오고싶었던 블라디보스톡. 드디어 왔다. 너무너무 반갑고 마냥 좋았다. 하지만 너무 일찍 좋아해버렸다. 배가 항구에 닿으려는 것을 보고 우리는 급히 선실로 돌아가서 짐을 챙겨 바로 내릴 준비를 했다. 외부계단으로 나가는 통로에 사람들이 짐과 함께 한가득 줄을 섰다. 배가 항구에 도착했으니 바로 내릴 거라 생각했었는데 선원들이 분주하게 왔다갔다만하며 승객들을 내려줄 기색이 없다. 10분, 20분.. 30분, 시간은 계속 흘러가는데 안내방송조차 없다. 사람들은 점점 인내심의 바닥을 드러내며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것이 코로나 때문에 한국에 발이 묶여 몇 년간 가족을 못본 러시아분들이 꽤 계셨고 우리도 마중나온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걱정되어 빨리 나가야 하는데 하며 어쩔줄을 몰랐다. ★따귀소리 '짝~'.. 러시아 남자들의 다툼 한시간, 두시간이 지나도록 도통 내려줄 기미가 보이지 않자 급기야 내 앞에서 러시아 남자들이 말다툼을 시작한다. 그러다 결국 눈 앞에서 “짝~!”하는 엄청난 소리와 함께 따귀를 갈기는 장면을 보고 얼어버렸다. 평소 러시아 사람들은 매우 공격적이라는 선입견이 있어서 이제 무슨 큰 일이 벌어지겠구나 끔찍한 상상을 하며 조마조마해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맞은 사람이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사태가 진정되었다. 주변에 러시아어를 하시는 아주머니가 맞은 사람이 취해서 주정하는 것을 형님인 듯한 사람이 때리고 조용히 시킨거라고 얘기해주신다. 아직 충격이 가시지는 않았지만 좀 안심이 되었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불만을 이야기하고 웅성대기를 계속하다 거의 3시간이 지나서야 드디어 가로막이 열리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무지 느린 속도로 나가기 시작했다. 무거운 짐을 낑낑대며 배에서 내려서 한참 걸어가 세관을 통과하던 중 우리짐도 많은데 그 와중에 탄은 또 다른 분의 엄청난 짐을 도와드리느라 고생이다. 드디어 러시아에 입국을 했다. 우리가 예약한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은 장장 3시간여를 캄캄한 항구에서 기다려주셨다. 죄송해서 어쩔줄을 몰랐는데 웃는 얼굴로 그저 반겨주셔서 너무 고마웠다. 우리가 코로나 이후 첫 손님이라고 한다. 몇 년을 다니지 않던 배가 다시 들어오니 세관이며 이쪽 행정 일하는 쪽에서도 무언가 문제가 많았나보다. 감사한 사장님 덕에 늦은 밤 택시를 타고 안전하게 숙소에 갈 수 있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이 기사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com/@user-hb5up3dh1o?si=4LHlTLkQKDiU4cLz>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1-12 00:22:15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돈은 어쩌고?"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시로가 하자고 하는것, 하고 싶다는 것에 거의 100% "오! 그거 좋겠는데?" 하며 가능한 방법을 열심히 찾는다. 10년전 첫 세계여행을 시작할 때도 "우리 퇴사하고 세계여행을 다니며 살 곳을 찾아볼까?"라는 시로의 말을 농담으로 흘려 듣지 않고 "응 그러자" 하며 함께 했고, 나고 자란 서울을 떠나 춘천으로 이사올때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살고싶다"는 시로의 말에 탄은 바로 부동산에 찾아가 "강이 보이는 집이 있나" 물었고, 그렇게 2년전부터 춘천에서 살게 됐다. ★‘드리머’ 시로 시점 시로와 탄은 어떻게 장기 세계여행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끝이 안보이는 코로나 시국으로 전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을 무렵, 10년 전 우리의 첫 세계여행이 문득 떠올랐다. 삼성전자 디자인센터를 퇴사하고 ‘남을 도우며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을 찾겠다’는 꿈으로 시작했던 여행이었다. 캐나다 토론토를 시작으로 미국, 멕시코를 거쳐 아르헨티나 남쪽 끝까지 가려했었다. 그러나 여행 6개월쯤 온두라스를 지나던 중 미국에서 중고로 구입한 밴이 테구시갈파에서 고장으로 멈춰버렸다. 두달이상 차를 고쳐보려고 고생하다 끝내 여행을 중단하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직도 커다란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두 번째 장기 세계 여행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갑작스레 찾아 온 병으로 몇시간이 걸리는 수술을 받은 후다. 죽을 고비를 몇차례 넘기고 회복하던 중 ‘이왕 사는거 하고싶은 것 하고 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포토그래퍼 탄과 디자이너인 시로의 두 번째 세계여행이 시작됐다. ★“다시 세계여행을 해보자. 이번엔 내가 만든 내차를 타고 세계를 누벼보자!” 여행을 위해 필요한 것을 준비하자 캠핑카가 필요했다. 어떤 차가 좋을까부터가 고민이었다. 수많은 차들을 비교해 결국 우리가 선택한 것은 현대 포터 시티밴. 택배에 주로 이용되는 탑차이다. 운전석에서 차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중간문을 통해 캐빈에 갈 수 있고 캐빈에서 서있을 수 있으며 캐빈창문마다 철봉이 있어 창문을 깨더라도 안으로 들어올 수 없어 안심이 되었다. 또, 현대 포터는 중고차 수출이 많은 차종이어서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부품 구하기는 어렵지 않을 듯 했다. 연료는 디젤이었지만 요소수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2016년 모델이었고 4륜구동이 안되어 험로는 되도록 피해다니기로 했다. 차가 구해지자 이제 차를 우리가 원하는 대로 세팅할 일이 남았다. 내부 인테리어 디자인은 탄의 의견을 참고해가며 시로가 맡았다. 캠핑카 꾸미기에는 보통 나무로 내부 인테리어를 많이 하지만 우리는 미관을 포기하고 가볍고 튼튼하고 조립성 좋은 알루미늄 프로파일로 골격을 세우기로 했다. 바닥에 2층으로 수납장을 만들고 그 위를 침상으로 하고, 한쪽 구석에는 20리터 청수와 오수통이 있는 싱크대를 두었다. 침상 반쪽은 넓은 나무판을 자동으로 올리고 내려 컴퓨터 등의 작업시엔 책상으로 쓸 수 있게 했고 상부벽면에는 인터넷에서 주문한 투명수납장 12개를 달아놓았는데 안에 무엇이 있는지 쉽게 볼 수 있어 수납성이 매우 좋았다. 차 지붕에 태양광 패널과 캐빈에서 사용할 전기를 위한 배터리를 달고 수납공간에 조명을 설치하는 등의 어려운 전기작업과 일부 목공작업은 전문가에게 의뢰해서 해결했다.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물이었다. 차에서 샤워가 가능하려면 100리터 넘는 물통을 실어야 한다. 여행 중 그 많은 양의 물을 계속해서 구하기도 절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차에서 씻는 것은 과감히 포기하고 대신 중간중간 숙소를 잡아 샤워와 세탁을 해결하기로 했다. 이렇게 완성된 우리 캠핑카는 캠핑의 낭만보다는 실용성과 수납에 최적화된, 우리에게 딱 맞는 여행동료가 되었다. 우리 여행을 함께할 차의 이름을 스페인어로 ‘하얀 집’이라는 ‘까사블랑카’ 라고 지었다. 우리가 목적지로 생각하던 곳 중 하나가 아프리카 모로코의 까사블랑카였어서 매우 적절한 이름이다 싶었다. 차를 구하고 내부 세팅하기를 마치는데 거의 일년이 걸렸다. 두달 간 PT(퍼스널 트레이닝)도 받았다. 이렇게 우리의 준비는 거진 다 되어갔어도 코로나시국에 차를 가지고 출국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 팬데믹이 풀리나 싶다가도 다시 2차, 3차 유행이 오르락내리락 했고 러시아 전쟁까지 터져 출국이 되네 안되네 소문이 흉흉했다. 그러던 중 2020년부터 운항이 중단 된 동해와 블라디보스톡을 정기적으로 오가는 페리가 다시 운행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페리를 예약하고도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살고있는 전세집을 빼고 이삿짐을 보관할 곳을 찾아야 했고 차량용도변경 신청을 해야했다. 출국전 이틀간은 그야말로 전쟁같았다. 뭐 하나라도 잘못된다면 그토록 기다리고 바래왔던 여행이 막힐 수도 있는 상황이 많았다. 가지고 있는 짐을 창고에 넣을 이삿짐, 차에 실을 여행에 필요한 짐, 블라디보스톡에서 차를 찾기 전까지 사용할 들고갈 짐으로 나누어 싸야했다. 또한, 출국 24시간 전 PCR검사와 음성이라는 증서를 받아야해서 하루 전날 동해에 와서 보건소를 찾아 검사를 받고 다음날 새벽에 음성증서를 받아 당일에 배를 타야했는데 그 사이 감염돼 양성으로 나온다면 역시나 출국이 금지되는 것이다. 차를 배에 싣는 수속을 할때도 ‘차안의 짐을 문제삼거나 한다면 어떻하지’ 하는 불안감에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배를 타기 전 막판까지 까딱하면 못갈 수도 있다는 각오로 초긴장 속에 진행하게 되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이 기사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com/@user-hb5up3dh1o?si=4LHlTLkQKDiU4cLz>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1-04 20:5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