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의 자녀 교육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학부모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학부모 가이드북'을 마련한다. 교육부는 4월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4차 사회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모든 학생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학부모정책의 방향과 과제' 등 4개 안건을 상정했다. 정부는 교육 3대 주체 중 하나인 학부모가 자녀 교육을 위한 역량을 강화하고 학교와 협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번 방안을 마련했다. 학부모 지원 종합 방안이 발표되는 건 2009년 '학부모 정책 추진방향' 이후 15년 만이다. 교육부는 먼저 학부모의 자녀교육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생애주기별 학부모 교육과정을 개발하기로 했다. 자녀 성장에 따라 시기별로 학부모에게 요구되는 핵심 역량을 도출해 학부모 역량 체계를 제시하는 것이다. 또한 영·유아-초-중-고등학생 등 자녀 학교급에 따라 학부모가 알아야 할 필수적인 내용을 담은 '학부모 가이드북' 표준안 개발도 개발한다. 온라인 학부모 교육도 강화된다. 전국학부모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학부모 온라인 교육 시스템인 '학교On누리'가 온라인 학부모교육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플랫폼 기능을 개선하고 콘텐츠를 확대한다. 학부모가 자녀 교육을 위해 상담이 필요한 경우에는 대면·유선·온라인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원활한 상담이 이뤄지도록 학부모 상담 대표번호를 운영하고, 교원과의 상담 절차를 담은 학부모 가이드북도 배포한다. 대학생을 대상으로는 예비 학부모교육도 추진한다. 각 대학에서 전공·교양강좌 개설 시 참고할 수 있도록 '예비학부모교육 강의 사례집'을 제작하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일하는 부모가 자녀 학교의 행사 등을 참여할 시에는 '가족돌봄휴가'를 적극 사용할 수 있도록 참여 여건을 조성한다. 교육청과 학교는 학부모 편의를 고려해 다양한 시간대에 학부모 행사를 개최하도록 한다. 교원의 소통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는 예비·현직교원 대상으로 맞춤형 연수를 지원한다. 교·사대 교육과정에는 학부모와의 소통 역량 함양을 위한 교육 내용을 반영하고, 교장·감, 수석교사, 1급 정교사 자격연수 과정 등에도 관련 교육과정을 편성한다. 모범적인 가정교육을 실천하고 학교교육에 기여한 학부모에게는 제정하는 '대한민국 학부모상'도 검토한다. 학부모에게 부총리 상을 수여함으로써, 올바른 부모 역할과 관련한 우수사례 확산겠다는 설명이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2024-04-30 14:19:14【 대구=김장욱 기자】 "위약금을 주더라도 해임해라!" 'Mr 쓴소리'로 통하는 홍준표 대구시장(사진)이 아시안컵 4강에서 요르담에 참패한 위르겐 클린스만 국가대표 감독의 거취에 대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연일 비난하고 나섰다. 홍 시장은 8일 "위약금이라도 주고 해임해라. 다만 위약금은 잘못 계약한 축구협회장이 물어 내라"라고 주장했다. 그는 "무능과 무기력이 입증된 감독에게 차기 월드컵까지 지휘봉을 맡길 수 있겠나"라고 꼬집었다. 홍 시장은 또한 "외국인 코치라면 사죽 못쓰는 한국 축구의 사대주의는 이제 버려라"면서 "우리도 이제 세계적인 지도자가 즐비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홍 시장은 지난 7일에도 페이스북에서 "우리나라 축구 선수들이 세계수준에 올라가 있고, 박항서 감독 등 능력이 출중한 감독들이 즐비하다"면서 "그럼에도 왜 축구협회는 막대한 연봉을 지불하고 외국 감독들만 데려오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라고 밝혔다. 또 "출중한 선수 출신이더라도 감독 능력은 또 다른 영역이고, 그사람 감독시절 전적은 별로였다"면서 "한국축구가 더 망가지기 전에 정비하는게 어떠할지"라고 소신을 피력했다. 특히 "클린스만 감독은 이제 고국으로 돌려보내고 선수들과 호흡 잘 맞추는 통역이 필요 없는 국산 감독을 임명하자"면서 "(나도) 프로팀 운영하는 구단주로서 이런 말 할 자격이 있다"라고 말했다. 홍 시장은 또한 "출중한 선수 출신이더라도 감독 능력은 또 다른 영역이고, 그 사람 감독 시절 전적은 별로이던데, 한국 축구가 더 망가지기 전에 정비하는 게 어떻겠냐"며 "경남FC, 대구FC 운영해보니 감독 능력은 따로 있던데"라고 덧붙였다. 클린스만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카타르 알라이얀의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요르단과의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0-2로 완패했다. 이번 대회 6경기에서 총 10골을 내준 한국은 경기 조직력에서 문제를 보였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일부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클린스만 감독 책임론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책임론에는 '월드클래스 선수들에게 의지하는 것 말고 사령탑으로 어떤 준비를 했느냐'는 등 비판이 주를 이룬다. gimju@fnnews.com
2024-02-08 17:02:41【대구=김장욱 기자】 "위약금을 주더라도 해임해라!" 'Mr 쓴소리'로 통하는 홍준표 대구시장이 아시안컵 4강에서 요르담에 참패한 위르겐 클린스만 국가대표 감독의 거취에 대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연일 비난하고 나섰다. 홍 시장은 8일 "위약금이라도 주고 해임해라. 다만 위약금은 잘못 계약한 축구협회장이 물어 내라"라고 주장했다. 그는 "무능과 무기력이 입증된 감독에게 차기 월드컵까지 지휘봉을 맡길 수 있겠나"라고 꼬집었다. 홍 시장은 또한 "외국인 코치라면 사죽 못쓰는 한국 축구의 사대주의는 이제 버려라"면서 "우리도 이제 세계적인 지도자가 즐비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홍 시장은 지난 7일에도 페이스북에서 "우리나라 축구 선수들이 세계수준에 올라가 있고, 박항서 감독 등 능력이 출중한 감독들이 즐비하다"면서 "그럼에도 왜 축구협회는 막대한 연봉을 지불하고 외국 감독들만 데려오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라고 밝혔다. 또 "출중한 선수 출신이더라도 감독 능력은 또 다른 영역이고, 그사람 감독시절 전적은 별로였다"면서 "한국축구가 더 망가지기 전에 정비하는게 어떠할지"라고 소신을 피력했다. 특히 "클린스만 감독은 이제 고국으로 돌려보내고 선수들과 호흡 잘 맞추는 통역이 필요 없는 국산 감독을 임명하자"면서 "(나도) 프로팀 운영하는 구단주로서 이런 말 할 자격이 있다"라고 말했다. 홍 시장은 또한 "출중한 선수 출신이더라도 감독 능력은 또 다른 영역이고, 그 사람 감독 시절 전적은 별로이던데, 한국 축구가 더 망가지기 전에 정비하는 게 어떻겠냐"며 "경남FC, 대구FC 운영해보니 감독 능력은 따로 있던데"라고 덧붙였다. 클린스만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카타르 알라이얀의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요르단과의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0-2로 완패했다. 이번 대회 6경기에서 총 10골을 내준 한국은 경기 조직력에서 문제를 보였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일부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클린스만 감독 책임론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책임론에는 '월드클래스 선수들에게 의지하는 것 말고 사령탑으로 어떤 준비를 했느냐'는 등 비판이 주를 이룬다. gimju@fnnews.com gimju@fnnews.com 김장욱 기자
2024-02-08 10:43:26[파이낸셜뉴스] 침몰 일보직전에 딱 최소한의 자존심만 세웠다. 졸전이었지만, 어쨌든 지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클린스만호는 20일 요르단과의 아시안컵 예선 E조 2차전에서 시종일관 난타전을 펼친 끝에 E조 예선 2차전에서 2-2로 비겼다. 김민재가 아니었다면 대패를 했을 수도 있었던 경기였다. 한국은 이날 좌우 풀백라인도 견고하지 못했고, 공격수들은 찬스를 놓치기 일쑤였다. 사실, 이날 경기에서 진다고 16강에 진출하지 못할 가능성은 낮다. 마지막 사대인 말레이시아는 한국과 차이가 워낙 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승후보 대한민국의 자존심의 문제다. 한국은 역대 단 한번도 요르단에게 진적이 없다. 3승 2무로 압도적인 우위를 지켜왔다. 따라서 요르단에게 패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물론, 일본이 대회 직전 평가전에서 6-1로 이긴 상대에게 비긴다는 것도 자존심이 상하긴하다. 만족스럽지 않은 경기였지만 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품격은 유지한 셈이다. 이제 남아 있는 것은 16강 상대가 과연 누구냐 하는 것이다. 한국이 속한 E조는 1위를 하면 D조 2위와, 2위를 하면 F조 1위와 격돌한다. D조 2위는 일본이 유력하다. 일본은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를 꺾으면 조2위로 16강에 진출한다. 조1위 가능성은 애초에 사라졌다. 일본은 조2위를 하든 탈락을 하든 둘 중 하나다. 따라서 한국이 말레이시아를 4골차 이상으로 꺾고 요르단이 바레인에게 지거나 비기는 등 승점이나 골득실에서 앞서게 되면 16강 한일전이 펼쳐지게 된다. 하지만 승리를 하더라도 요르단이 바레인을 꺾고 골득실에서 밀려서 2승 1무 조2위로 올라가게 된다면 일본-이란과는 반대편에서 만나게 된다. 그렇게되면 일본, 이란은 결승까지는 만나지 않는다. 대신 이쪽에는 사우디와 호주가 있다. 일단, 16강 상대는 F조 1위이고, 사우디가 내일 타지키스탄을 꺾는다면 F조 1위가 유력하다. 현재까지는 사우디의 가능성이 크고, 8강은 2승으로 16강에 선착해있는 호주의 가능성이 높다. 일본-이란과 호주-사우디 라인은 어느쪽이든 부담스럽다. 하지만 한국 입장에서 좀 더 부담스러운 쪽은 단연 일본과 이란쪽이다. 특히, 라이벌 일본과의 경기에서 지고 16강에서 탈락하면 어느쪽이든 후폭풍이 상당하다. 감독직을 걸어야할 정도로 민감하고 영광의 역사든 오욕의 역사든 길이 남게 된다. 이란은 이미 8강에서 5회 연속으로 만났고, 만날때마다 힘든 상대였다. 따라서 한국입장에서는 굳이 상대를 고른다면 사우디-호주쪽이 좀 더 낫기는 하다. 하지만 골득실이라는 것은 한국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요르단이 바레인에게 비기거나 질 수도 있다. 따라서 한국은 일단 말레이시아를 이겨놓고 하늘에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 과연 한국의 16강 상대는 누구인지가 마지막 말레이시아전을 앞두고 최고의 화두가 될 전망이다. 어쩌면 한국 국민들은 그것이 말레이시아전 결과보다 더욱 궁금할 수도 있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2024-01-20 23:08:00[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중국 명나라 때 포강(浦江)이란 곳에는 대원례(戴原禮)라는 의원이 있었다. 원례는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서 <시경>과 <예기> 등을 많이 읽었고, 심성이 곧으면서 항상 남에게 베푸는 일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다. 원례는 의학에도 뜻을 두어 멀리 오양(烏陽)까지 걸어가서 주진형(朱震亨)을 스승 삼아 의학을 배웠다. 주진형은 호가 단계(丹溪)로 주단계로도 불리며 금원사대가의 최고 명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주진형은 원례가 남들에 비해서 심성이 착하고 영특하다는 것을 알고서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의술을 전수했다. 이로써 원례는 의학에 대한 식견이 넓어지고 두터워졌으며 환자들에게 처방을 하면 탁월한 효과를 봤다. 어느 날 원례의 아버지쪽의 사촌인 중장(仲章)이란 자가 음력 6월 한여름에 심한 열병이 났다. 중장은 얼굴이 붉고 헛소리를 했으며 몸에 붉은 반점이 생겼다. 이때 한 의원이 대승기탕(大承氣湯)을 투여했다. 대승기탕은 상한(傷寒)에 열이 심하게 나고 실증이면서 속이 매우 더부룩하면서 변비가 있을 때 설사를 시켜서 열을 내리는 처방이다. 그런데 오히려 열이 더욱 극심해졌다. 원례는 진맥을 해보더니 “양쪽 손의 맥이 모두 부(浮)하면서 허(虛)하고 무력(無力)하니, 이것은 진짜 열이 아니고 가짜 열입니다. 장자화(張子和)는 ‘이런 경우에 마땅히 피부를 풀어야지 속을 공격해서는 안된다’고 했는데. 바로 이 증이 그에 해당합니다.”라고 했다. 그러고서는 곧 부자(附子), 건강(乾薑), 인삼(人參), 백출(白朮) 등이 들어간 처방을 했다. 원례의 진단은 진한가열증(眞寒假熱症)으로 속은 차면서도 곁으로는 열이 나는 증을 말한다. 이때 한(寒)이 진짜이기 때문에 곁으로는 열이 나더라도 온열(溫熱)한 약을 처방해야 한다. 이것을 지켜보던 가족이나 의원들이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었다. 부자나 인삼은 열증에 사용하면 독이 되기 때문이다. 중장은 원례의 처방대로 해서 차갑게 식혀 마셨다. 뜨거운 기운의 약재를 다려서 차갑게 식혀서 마시면 자칫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중장은 땀이 많이 나더니 열이 떨어졌다. 원예는 곁에서 지켜보던 의원과 가족들에게 “이것은 바로 이열치열(以熱治熱)입니다. <내경>에서는 ‘열인열용(熱因熱用)’이라고 했는데, 열인열용은 이열치열과 같은 의미입니다. 중요한 것은 겉으로는 열이 나더라도 반드시 맥을 살펴서 속이 열(熱)한지 냉(冷)한 지를 살펴야 합니다. 만약 속이 냉한데도 불구하고 열을 식힌다고 찬 약을 쓰면 병세는 오히려 심해질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곁으로 열이 나면 보통 이한치열(以寒治熱)한다. 하지만 이열치열(以熱治熱)은 곁으로는 열이 나지만 속이 냉한 경우를 치료하는 치법으로 곁과 속이 다른 아주 특별한 경우에 해당하는 난치법이다. 따라서 이열치열을 잘못 활용하면 자칫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어느 날은 옆 마을에 사는 방씨(方氏)네 며느리가 학질을 앓았다. 그 며느리는 열이 후끈하고 나더니 이후 땀을 많이 흘려서 옷이 모두 젖었다. 그래서 하녀를 불러 옷을 갈아입으려 했다. “게 누구 없느냐? 내 새 옷을 가져오도록 하거라~!!! 게 아무도 없느냐?”라고 소리를 질렀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며느리는 심하게 노(怒)한 기색이 역력하더니 곧 혼궐(昏厥)하여 죽은 듯한 모습으로 기절했다. 일종의 히스테리 발작이었다. 다행스럽게 가족 중에 한 명이 쓰러진 며느리를 발견하고서는 집에 비상약으로 가지고 있던 소합향환(蘇合香丸)을 입에 흘려 넣어주자 깨어났다. 소합향환은 심적인 원인으로 인해 기절했을 때, 즉 기병(氣病)에 쓰는 명약이다. 중풍 응급약인 우황청심환과 대비되는 약이다. 그런데 며느리는 그 이후로 기운이 없어 하며 식은땀을 많이 흘렸다. 게다가 대청마루에 사람들의 발소리가 크게 나거나 닭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가 들리면 번번이 처음처럼 혼절(昏絶)하였다. 원례는 진맥을 해 보더니 “맥이 몹시 허(虛)하여 무겁게 누르면 흩어지니, 이는 한다망양(汗多亡陽)이라는 것으로 <내경>의 내용과 꼭 들어맞습니다. 급히 보양(補陽), 보기(補氣)를 해야 합니다.”라 하였다. 한다망양(汗多亡陽)이란 땀을 많이 흘려서 양의 기운이 부족해지는 증을 말한다. 땀을 내면 안되는 상황에서 약을 잘못 써서 땀을 내거나, 땀을 내야 하는 상황일지라도 너무 과도하게 땀을 내도 생긴다. 그렇게 되면 뒷목이 뻣뻣해지면서 눈을 치켜뜨고 각궁반장을 일으키다가 실신하기도 한다. 원례는 급하게 황기(黃芪)와 인삼(人參)으로 날마다 보(補)해 주었다. 그러자 며느리는 식은땀이 멎고 놀라는 증상이 점차 줄어들더니 열흘 정도 되자 제반 증상이 사라졌다. 한번은 마을에 주중문(朱仲文)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여름철에도 추위를 몹시 타서 항상 두툼한 솜옷을 껴입고, 음식은 반드시 뜨겁게 해야만 목구멍으로 넘어갔으며 미지근하면 구토를 하였다. 그런데 한 의원이 “씨암탉에 호초(胡椒)를 넣고 삶아 먹으면 냉이 사라질 것이요.”라고 알려주었다. 주중문은 의원이 알려준 방법대로 닭 한마리에 호초 한주먹을 넣어 끓여 하루에 세 번씩 먹었다. 그러나 병은 더욱 심해졌다. 이에 원례가 진찰을 해 보더니 “맥이 삭(數)하면서 대(大)하니 허약하지 않습니다. 고서에서도 ‘화(火)가 극심하면 이는 수(水)와 비슷하다’고 했으니 이를 두고 한 말입니다. 열이 심해지면 마치 추운 듯 오한(惡寒)이 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열이 극심한데 호초는 음경(陰經)의 화(火)를 발동시키고 닭고기는 담(痰)을 조장하므로 기혈의 순환이 막혀서 병을 심하게 만들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원례는 추워 죽겠다는 주중문에게 오히려 속 열을 치는 대승기탕(大承氣湯)을 처방했다. 그랬더니 밤낮으로 20여 차례나 심하게 설사를 하더니 곧 솜옷이 반으로 줄었다. 이에 다시 황련도담탕(黃連導痰湯)에 죽력(竹瀝)을 더하여 다려 마시게 하자 남들처럼 얇은 여름옷을 입고도 편해졌다. 주중문이 보인 병증은 곁으로 보기에는 마치 냉증과 한증으로 보이지만, 맥은 빠르면서 큰 것을 보면 속은 열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 병증은 진열가한증(眞熱假寒症)으로 속은 실제로 열(熱)한데 곁으로는 한증(寒症)이 나타난 것 뿐이다. 이때는 이한치한(以寒治寒)해야 한다. 만약 겉으로 나타나는 한증만 보고서 열약(熱藥)을 썼더라면 병세는 금세 활활 더 타올랐을 것이다. 약을 잘 쓰려면 외증(外證)보다 맥을 따라야 한다. 원례는 이처럼 <내경>과 같은 의서를 열심히 탐독해서 치료법의 원칙대로 처방을 해 왔다. 그러나 당시 일반 의원들은 방서에 나와 있는 처방만으로 써 내려갈 뿐이었다. 어느 날 한 의원이 “나는 그냥 방서에 나와 있는 처방만 써도 충분하고 남거늘 무엇하러 <내경>과 같은 경전을 공부한다는 말이요?”라고 반문했다. 원례는 탄식을 하면서 “의학에는 지극한 도(道)가 있습니다. 지금 한 의원이라도 옛날의 의도(醫道)에 능히 부합할 수 있다면 빈 골짜기의 발소리처럼 반가울 것입니다.”라고 했다. 의원이 다시 물었다. “옛날의 의에 도가 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러자 원례는 “대게 의도(醫道)는 <내경>에 근본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세속의 의원들은 의서를 읽지 않아 깊고 묘한 이치를 깊이 탐구할 줄은 전혀 모르니 안타깝습니다. 오직 방서(方書)에 나와 있는 처방만을 고집한다면 각주구검(刻舟求劍)하는 격입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의원은 “각주구검이라니요? 지금 날 보고 어리석다고 말하는 것이요?”하고 대들 듯이 물었다. 각주구검(刻舟求劍)은 옛날 초나라 사람이 강에서 배를 타고 가다가 칼을 물속에 떨어뜨렸는데, 그 위치를 뱃전에 표시해 놓고서 나중에 그 표시를 보고서 칼을 찾으려고 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배가 움직여서 위치가 달라지기 때문에 표시한 곳은 이미 칼이 떨어진 곳이 아닌 것이다. 각주구검은 어리석음을 이르는 의미로 쓰인다. 원례는 차분하게 “지금의 사람들은 태고적 살았던 사람들과는 체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때와 환경도 다르고 먹는 것이 달라졌으니 어찌 같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어찌 한 처방만 고집할 수 있겠습니까? 예전의 방서 그대로 처방을 하나 떠올리면 이미 환자는 저만치 도망가 있을 뿐입니다. 처방(處方)은 버리되 치법(治法)을 고수한다면 그 어떤 병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의원은 원례의 이야기를 듣고 깊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의자(醫者)는 의야(意也)라’하는 말을 오늘에서야 어떤 의미인 줄을 알게 되었다. 의원은 원례에게 고개를 숙이고 되돌아갔다. 원례는 후에 증치요결(証治要訣)을 지어 후세에 자신의 치료경험을 전했다. * 제목의 ○○은 ‘치법’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의부전록> 醫術名流列傳. 明. 戴思恭. 原禮生儒家, 習聞詩禮之訓, 惓惓有志於澤物, 乃徒步至烏陽, 從朱先生彥修學醫. 先生見其穎悟倍常, 傾心授之. 原禮自是識日廣, 學日篤, 出而治疾, 往往多奇驗. 予請得而詳道之. 原禮從叔仲章, 六月患大熱, 面赤口譫語, 身發紅斑, 他醫投以大承氣湯而熱愈極. 原禮脈之, 曰: 左右手皆浮虛無力, 非真熱也. 張子和云: 當解表而勿攻裏. 此證似之, 法當汗. 遂用附子, 乾薑, 人參, 白朮爲劑, 烹液冷飲之, 大汗而愈. 諸暨方氏子婦, 瘧後多汗, 呼媵人易衣不至, 怒形於色, 遂昏厥若死狀, 灌以蘇合香丸而甦. 自後聞人步之重, 鷄犬之聲, 輒厥逆如初. 原禮曰: 脈虛甚, 重取則散, 是謂汗多亡陽, 正合經意. 以黃芪, 人參日補之, 其驚漸減, 至浹旬而安. 松江朱仲文, 長夏畏寒, 身常挾重纊, 食飲必熱如火方下咽, 微溫則嘔. 他醫授以胡椒煮伏雌之法, 日啖鷄者三, 病愈亟. 原禮曰: 脈數而大, 且不弱. 劉守真云: 火極似水. 此之謂矣. 椒發陰經之火, 鷄能助痰, 只以益其病爾. 以大承氣湯下之, 晝夜行二十餘, 頓減纊之半; 復以黃連導痰湯益竹瀝飲之, 竟瘳. (의학명류열전, 명나라, 대사공 편. 원례는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시경과 예기의 가르침을 익숙히 들었으며 남에게 베푸는 뜻을 마음 깊이 간직하였다. 마침내 오양까지 걸어가서 주선생 언수에게 의학을 배웠다. 선생은 그가 남보다 배나 영특한 것을 알고 마음을 기울여 그에게 전수했다. 원례는 이때부터 식견이 날로 넓어지고 학문이 날로 두터워져, 나와서 병을 치료하면 종종 탁월한 효과를 보는 일이 많았다. 내가 상세히 이야기해 보겠다. 원례의 종숙인 중장은 6월에 심하게 열이 나서 얼굴이 붉고 입으로는 헛소리를 했으며 몸에 붉은 반점이 생겼는데, 다른 의사가 대승기탕을 투여하자 열이 더욱 극심해졌다. 원례는 진맥하더니 “양쪽 손의 맥이 모두 부허무력하니, 진열이 아닙니다. 장자화는 ‘마땅히 해표해야지, 공리해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이 증이 그것과 비슷하니 마땅히 땀을 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곧 부자, 건강, 인삼, 백출로 약을 지어, 달인 탕액을 차갑게 식혀 마시게 하자 땀이 크게 나고는 나았다. 제기의 방씨네 며느리는 학질을 앓은 후에 땀을 많이 흘려서 하녀를 불러 옷을 갈아입으려 했으나 오지 않자 노한 기색이 드러나더니, 곧 혼궐하여 죽은 듯한 모습이 되었다가, 소합향환을 입에 흘려 넣어주자 깨어났다. 그 후로 사람들의 발소리가 크거나 닭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가 들리면 번번이 처음처럼 궐역하였다. 원례는 “맥이 몹시 허하여 무겁게 누르면 흩어지니, 이는 한다망양이라는 것으로 경의 내용과 꼭 들어맞습니다.”라 하였다. 황기, 인삼으로 날마다 보하니 그 경증이 점점 줄어들고, 열흘이 되자 안정되었다. 송강의 주중문은 여름철에도 추위를 몹시 타서 몸에 항상 두툼한 솜옷을 껴입고, 음식은 반드시 불처럼 뜨거워야만 목구멍으로 넘어갔으며 미지근하면 구토를 하였다. 다른 의사가 씨암탉에 호초를 넣고 삶아 먹는 방법을 알려주어 날마다 세 번씩 닭을 먹었으나 병은 더욱 심해졌다. 원례는 “맥이 삭하면서 크니, 허약하지 않습니다. 유수진은 ‘화가 극심하면 수와 비슷하다’고 했으니 이를 두고 한 말입니다. 호초는 음경의 화를 발동시키고 닭고기는 담을 조장하므로 단지 병을 심하게 만들 뿐입니다.”라 하였다. 대승기탕으로 사하하여 밤낮으로 20여 차례나 설사를 하자 곧 솜옷이 반으로 줄었으며, 다시 황련도담탕에 죽력을 더하여 마시게 하자 완전히 나았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3-12-20 16:47:16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진행된 한미일 정상회의 성과를 놓고 여야간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국민의힘은 한미일 정상회의가 3국 협력을 한 단계 격상시키는 계기라며 '성과 띄우기'에 나선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실속없는 들러리 외교'라며 평가를 절하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2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한미일 정상회의와 관련해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글로벌 중추국으로 우뚝 서고 있다"며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종속적인 '룰 테이커'가 아니라 자주적인 '룰 메이커'로 우뚝서는 결실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전임 문재인 정부를 겨냥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말로는 '한반도 운전자'가 되겠다고 장담했지만, 막상 두껑을 열고보니 운전자는커녕 '탑승객' 대우조차 못 받던 부끄러운 일은 이제 더이상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전임 정부의 대북·대중 정책을 비꼬으며 한미일 정상회의 성과를 부각시켰다. 김 대표는 "북한의 '삶은 소대가리'라는 조롱에도 말 한마디 못하고 굴종하기에만 급급했던 종북정책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적(敵)의 시혜에 맡기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사드3불 1한을 비롯해 혼밥외교 등 대중사대주의는, 심지어 중국 외교부 국장급에 불과한 주한중국대사 앞에서 우리나라 제1야당 대표가 두 손 다소곳이 모으고 일장훈시를 듣는 모욕적 상황까지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한미일 3국 협력을 한 단계 격상시켜 우리 외교의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한 것"이라며 "3국 협력의 장은 안보뿐 아니라 경제, 과학기술, 개발도상국에 대한 개발 협력, 보건, 여성 등 모든 문제에 대해 3국이 긴밀하게 공조하기로 했다는 포괄적인 협력을 담았다"설명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한미일 정상회에 대해 윤 대통령이 들러리만 서다왔다고 주장하면서 거세게 비판했다. 박성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갖고 "이번에도 자유만 외치던 윤석열 대통령은 대중국 압박의 최전선에 서라는 숙제만 받고 국익에는 입도 뻥끗 못하고 돌아왔다"며 "누구를 위한 협력 강화인가. 대한민국은 무엇을 얻었나. 윤석열 대통령의 퍼주기 외교에 할 말을 잃는다"고 말했다.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의제로 논의되지 않았으나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해서도 여야는 엇갈린 반응을 내놨다. 윤 대통령은 3국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질문에 "3국 국민과 모든 인류의 건강과 안전이 최우선 고려돼야 한다"며 "과학에 기반한 투명한 과정을 통해서 처리돼야 한다"고 답했다. 국민의힘 강 수석대변인은 "윤 대통령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점검, 계획대로 처리되는지에 대해서는 일본, 한국을 포함해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그리고 투명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후쿠시마 오염수를 의제로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면서 오히려 일본측 방류를 사실상 허용해준 모양새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syj@fnnews.com 서영준 기자
2023-08-20 18:37:43[파이낸셜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진행된 한미일 정상회의 성과를 놓고 여야간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국민의힘은 한미일 정상회의가 3국 협력을 한 단계 격상시키는 계기라며 '성과 띄우기'에 나선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실속없는 들러리 외교'라며 평가를 절하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2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한미일 정상회의와 관련해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글로벌 중추국으로 우뚝 서고 있다"며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종속적인 '룰 테이커'가 아니라 자주적인 '룰 메이커'로 우뚝서는 결실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전임 문재인 정부를 겨냥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말로는 '한반도 운전자'가 되겠다고 장담했지만, 막상 두껑을 열고보니 운전자는커녕 '탑승객' 대우조차 못 받던 부끄러운 일은 이제 더이상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전임 정부의 대북·대중 정책을 비꼬으며 한미일 정상회의 성과를 부각시켰다. 김 대표는 "북한의 '삶은 소대가리'라는 조롱에도 말 한마디 못하고 굴종하기에만 급급했던 종북정책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적(敵)의 시혜에 맡기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사드3불 1한을 비롯해 혼밥외교 등 대중사대주의는, 심지어 중국 외교부 국장급에 불과한 주한중국대사 앞에서 우리나라 제1야당 대표가 두 손 다소곳이 모으고 일장훈시를 듣는 모욕적 상황까지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한미일 3국 협력을 한 단계 격상시켜 우리 외교의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한 것"이라며 "3국 협력의 장은 안보뿐 아니라 경제, 과학기술, 개발도상국에 대한 개발 협력, 보건, 여성 등 모든 문제에 대해 3국이 긴밀하게 공조하기로 했다는 포괄적인 협력을 담았다"설명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한미일 정상회에 대해 윤 대통령이 들러리만 서다왔다고 주장하면서 거세게 비판했다. 박성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갖고 "이번에도 자유만 외치던 윤석열 대통령은 대중국 압박의 최전선에 서라는 숙제만 받고 국익에는 입도 뻥끗 못하고 돌아왔다"며 "누구를 위한 협력 강화인가. 대한민국은 무엇을 얻었나. 윤석열 대통령의 퍼주기 외교에 할 말을 잃는다"고 말했다. 한미일 3국의 협력 범위가 북한을 넘어 우리의 경제외교 주요 파트너인 중국까지 확대된 데 따른 우려도 나왔다. 실제 한미일 정상회의 결과를 두고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다. 박 대변인은 "미국의 확장억제 정책을 맹종한 윤석열 정부의 외교로 대한민국에 돌아온 결과는, 수출 감소와 경제위기뿐"이라며 "미국을 대신해 중국 때리기에 열중하면서 대중국 수출은 회복될 기회를 찾기 어렵게게 됐다. 미국은 반도체와 배터리라는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를 빼앗아가는데 윤석열 정부가 받은 것은 전무하다"고 강조했다.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의제로 논의되지 않았으나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해서도 여야는 엇갈린 반응을 내놨다. 윤 대통령은 3국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질문에 "3국 국민과 모든 인류의 건강과 안전이 최우선 고려돼야 한다"며 "과학에 기반한 투명한 과정을 통해서 처리돼야 한다"고 답했다. 국민의힘 강 수석대변인은 "윤 대통령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점검, 계획대로 처리되는지에 대해서는 일본, 한국을 포함해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그리고 투명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후쿠시마 오염수를 의제로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면서 오히려 일본측 방류를 사실상 허용해준 모양새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syj@fnnews.com 서영준 기자
2023-08-20 15:31:40[파이낸셜뉴스]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가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나 양국 관계를 비롯한 주요 현안을 논의한 가운데, 국민의힘은 “삼전도의 굴욕마저 떠올리게 할 정도”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9일 국민의힘 강민국 수석대변인은 싱 대사가 전날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중국대사관저로 초청해 회동을 가진 것을 두고 ‘중국 사대에 빠진 이재명 대표, 대한민국 야당 대표의 자격이 있나’라는 제목의 논평을 공개했다. 논평에서 강 수석대변인은 “‘중국은 높은 봉우리, 대한민국은 낮은 골짜기’라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대주의적 중국몽(夢)에서 민주당은 5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듯하다”며 “어제 이재명 대표와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회동 장면은 마치 청나라 앞에 굴복했던 삼전도의 굴욕마저 떠올리게 할 정도”라고 이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국가안보 훈수까지 두는 중국과 日오염수 공동대응" 맹비난 강 수석대변인은 “대한민국의 제1야당 대표가 한중 관계 악화 우려의 책임을 일방적으로 한국에 돌리는 싱하이밍 대사 발언에 침묵하는 것은 물론, 일장 훈시만 듣고 있었던 것을 과연 국민께서 어떻게 보았을까 의문”이라며 “심지어 싱 대사는 ‘중국 패배를 베팅하는 이들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며 겁박에 가까운 말도 내뱉는가 하면, ‘북한 도발과 한미 훈련 동시 중단’을 이야기하며 국가안보에 훈수까지 두는 외교적 결례까지 범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이 쏟아지는데도 대한민국 제1야당 대표로서 항의는커녕,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해 공동 대응책을 강구해 봤으면 좋겠다며 정쟁과 선동의 불씨가 꺼질세라 급기야 중국에 손을 내밀기까지 했다”며 “한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는 둥, 대한민국의 공식 입장도 아닌 것을 마치 공식 입장인 것처럼 당당히 이야기하고 저자세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강 수석대변인은 이어 “게다가 이런 부끄러운 장면들을 민주당은 당 공식 유튜브를 통해 30분간 생중계까지 했으니, 민주당이 대놓고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중국의 주장을 그대로 전달할 기회를 제공한 셈”이라며 “천안함 망언에 사과 할 시간은 없으면서, 중국 대사를 찾아가 국격을 깎아내릴 시간은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국인 우선해야 할 야당대표가 국민 얼굴에 먹칠" 강 수석대변인은 “‘국익’이 최우선이어야 할 외교마저 정쟁에 이용하고, 중국에 대해 사대주의적 태도로 일관하며 대한민국의 위상과 국민 얼굴에 먹칠을 한 야당 대표를 보며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며 “국민께서는 지금 이재명 대표에게 대체 어느 나라 정당의 대표냐고 묻고 계신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강 수석대변인은 “부디 부끄러운 중국몽에서 깨어나, 무엇이 진정 국익을 위한 것인지를 생각하고 엄중한 외교 현실을 직시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역시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전원위원회 회의에 참석, 전날 회담에서 나온 싱 대사의 발언에 관해 “이는 명백한 내정 간섭일뿐더러 외교적으로도 심각한 결례”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싱하이밍 중국대사에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명한다”며 이 대표를 겨냥해선 “싱 대사가 준비한 원고를 꺼내 들고 작심한 듯 우리 대한민국 정부 비판하는데도 짝짜꿍하고 백댄서 자처했다”고 대국민 사과를 촉구했다. 김 대표는 이어 “무례한 발언에 제지하고 항의하긴커녕 교지를 받들 듯 15분 동안 고분고분 듣고만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sanghoon3197@fnnews.com 박상훈 기자
2023-06-09 14:32:31[파이낸셜뉴스] 31일 북한 대외 선전매체인 주간지 통일신보는 "다음달(8월)엔 대규모 합동군사연습인 '을지 프리덤 실드'(UFS)를 강행하려고 하고 있다"며 연례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전면 핵전쟁 연습'이라고 규정하고 사실상 무력도발을 예고했다. 통일신보는 얼마 전 미 특수전부대와 함께 '참수작전' 훈련을 벌인 남조선(남한) 군사깡패들은 연이어 경기도 오산 공군기지에서 한미화학공격대응훈련에 광분"했고 "미국과 윤석열 역적패당의 이런 전쟁 불장난이야 말로 공화국(북한)에 대한 공공연한 도발,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안정을 바라는 겨레의 지향과 염원에 대한 용납 못할 도전"이라며 한미훈련은 "변함없는 대조선(대북) 적대시 정책, 동족대결 정책의 직접적 발로"라고 맹비난했다. 신보는 특히 내달 한미훈련이 "새로운 북침 작전계획에 따라 감행되는 북침전쟁 시연회"라며 "최근 미국과 윤석열 열적패당은 '장·단기 대북군사대비태세 조정'에 대해 떠들며 새로운 북침 작전계획을 작성하려 하고 있다. 이런 북침기도와 전쟁계획에 따라 해마다 공화국을 겨냥한 침략전쟁 연습들이 강도 높게 감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보는 "지금 윤석열 역적패당은 역대 그 어느 보수정권도 능가하는 극악무도한 동족 대결정책과 사대 매국행위에 매달려 조선반도 정세를 전쟁접경으로 끌어가고 있다"며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을 '주적'으로 지목하고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했다고 거론했다. 신보는 8월 시작될 "합동군사연습은 위험천만한 전면 핵전쟁 도발행위"라며 "규모의 방대성과 훈련의 강도, 실행방식의 무모성과 포악성에서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전면 핵전쟁 연습"이라고 통박했다. 신보는 "공화국은 이미 어떤 세력이든 공화국과의 군사적 대결을 기도한다면 그들은 소멸될 것이라는 데 대해 천명했다"며 "계속 무모한 군사적 도전을 일삼는다면 죄 많은 역사가 어떻게 끝장나고 동족대결에 환장이 된 자들의 추악한 잔명이 어떻게 종말을 고하는가를 제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 무덤으로 갈 것"이라고 거칠게 경고했다. 김 총비서는 앞서 연설에서 한미가 대규모 합동군사연습으로 북한과의 관계를 '한계'로 몰고 가고 있다며 '핵전쟁 억제력'까지 언급한 바 있다. 한편, 한·미 양국은 내달 군사연습과 정부연습을 통합한 '을지 자유의 방패(UFS)' 훈련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훈련에선 한미 양국 군의 야외 실기동훈련(FTX)도 병행할 예정이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2-07-31 15:51:11[파이낸셜뉴스] 김재규 " 나라가 잘못되면 다 죽는다. 각오는 돼 있겠지?" 박선호 "예. 각오가 돼 있습니다." 김재규 "지금 여기에 육군참모총장과 중앙정보부 제2차장보도 와 있다. 거사가 끝나면 참모총장을 데리고 남산으로 가서 군을 장악한다." 박선호 "각하도 포함됩니까?" 김재규 "그래. 오늘 해치운다." 박선호 "오늘은 경호원들이 너무 많습니다. 다음으로 미루시죠." 김재규 "안 돼. 보안이 샌다. 똑똑한 놈으로 두세 명만 준비시켜." 1979년. 유신체제(維新體制)가 지속되던 그해 10월 26일에 베일에 가려져 있던 궁정동이라는 장소에서 여러 발의 총성이 울렸다. 이 총성으로 인해 오랜 기간 권좌(權座)에 있었던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이 사망했다. 총성을 가한 당사자는 놀랍게도 박정희 정권의 한 축을 담당했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었다. 이에 따라 18년 동안 장기집권해 왔던 박정희 정권의 운명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10.26 사태'였다. 10.26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암시하는 파열음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대내적으로는 민주화 운동과 야당의 투쟁이 절정에 이르렀고, 대외적으로는 전통적인 우방이었던 미국과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다. 또한 과거에 정권의 핵심에 있었던 인물이 등을 돌려 공격하면서 박정희 정권은 국제적으로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지기도 했고, 중앙정보부와 경호실 양대 권력 기관 수장 간 갈등이 위험 수준으로 치달았다. 이 모든 파열음 안에서 배태(胚胎)되기 시작한 10.26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은 5.16 쿠데타 만큼이나 크게 엇갈린다. 한 편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남다른 의식을 갖고 있던 김재규가 장기간 지속된 독재를 비로소 종식시킨 민주화 '의거'(義擧)라고 높이 평가한다. 반면, 다른 한 편에서는 경호실장 차지철과의 내부 권력다툼에서 밀린 중정부장 김재규가 우발적, 충동적으로 일으킨 내란 목적성 범행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한다. 이 같은 10.26 사태의 원인 해석과 가치평가 논란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역사를 크게 뒤흔든 궁정동에서의 총성, 10.26 사태 전말을 되돌아봤다. ■정권 말기 현상 : 김영삼 제명과 부마 항쟁 1979년 8월, 가발 수출회사인 YH무역에서 근로조건 및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던 여성 노동자 187명이 신민당 당사로 모여들었다. 한없이 약자였던 여성 노동자들은 야당의 정치적 도움 및 여론의 도움을 얻으려 했다. 자칫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표적인 민주화 운동가이자 야권 지도자였던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이들과 면담을 갖고 신민당 당사 안에서 함께 투쟁할 것을 약속했다. 이 때 김영삼은 여성 노동자들에게 "성경에 나옵니다. '너희는 결코 두려워 말라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희를 붙들리라.' 걱정 마세요. 대한민국 역사에서 공권력이 야당 당사를 습격한 적이 없습니다. 나도 있고 국회의원 30명이 여기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은 대규모 경찰 병력을 투입해 여성 노동자들의 신민당 농성을 무력으로 진압하려 했다. 이에 김영삼과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 및 당직자들은 스크럼을 짜서 경찰의 당사 진입을 기필코 막아내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내비쳤다. 더욱이 김영삼은 신민당 당사 주변에서 경찰청 정보과, 보안과 형사들을 발견하면 멱살을 잡고 뺨을 때렸고, 심지어 진압 작전을 지휘하는 마포경찰서장을 만나서도 "너희들이 저 여공들을 다 죽일 셈이냐"라고 외치며 뺨을 때렸다. 가히 '김영삼다운' 행동이었다. 그러나 농성 3일 째 되는 새벽 2시에 2000여명에 달하는 경찰 병력이 진압 작전을 개시, 신민당 당사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이들은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며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을 강제연행했다. 이 와중에 건물 옥상에서 여성 노동자 김경숙이 추락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경찰은 김경숙이 투신 자살했다는 거짓 발표를 했다. 뒤늦게 김경숙 사망 소식을 접한 김영삼은 "이 암흑적인 정치, 살인정치를 자행한 이 정권은 머지않아 반드시 무너질 것이다. 무너지는 방식도 비참하게 무너질 것이라고 내 예언해두는 바이다"라고 포효했다. 더 나아가 김영삼은 YH무역 사건 직후 미국 '뉴욕타임즈'와 기자회견도 갖는다. 그는 이 회견에서 박정희 정권에 대한 미국의 직접적인 제어와 지지 철회를 강하게 요구했다. 회견의 파급력은 상당했다. 하지만 이는 김영삼을 제거하는데 혈안이 된 박정희 정권에게 유용한 빌미를 제공했다. 박정희 정권과 여당인 민주공화당, 유신정우회는 김영삼의 기자회견 발언을 '사대주의'로 규정했고, 국회에서 김영삼에 대한 징계동의안 제출 및 국회의원직 제명을 추진했다. 신민당 의원들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했지만, 여당은 경찰력을 동원해 김영삼 제명안을 단독으로 날치기 처리했다. 신민당과 민주통일당 의원들은 의원직 총사퇴를 결의했고, 김영삼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 및 마산에서도 거센 반발 움직임이 나타났다. 결국 해당 지역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부마항쟁'이 일어났다. 시위에 참가한 대학생 및 일반 시민들은 김영삼에 대한 탄압 중단과 유신독재 타도를 외쳤다. 날이 갈수록 시위 규모는 겉잡을 수 없이 확대됐고, 일부 지역에서는 치안 부재 상태가 나타나기도 했다. 현지에 급파된 중앙정보부 요원들을 통해 시위의 심각성을 전해 들은 박정희 정권은 고심 끝에 강경진압에 나섰다. 부산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뒤 공수부대를 투입, 1058명을 연행하고 66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했으며, 마산 및 창원 일원에는 위수령을 발동해 505명을 연행하고 59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했다. 비록 강경진압으로 인해 부마항쟁은 누그러지는 듯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박정희 정권 몰락의 결정적 단초가 됐다. ■정권 말기 현상 : 韓-美 갈등 1977년, 미국의 제 39대 대통령으로 지미 카터가 취임했다. '도덕 정치'와 '인권 외교'를 표방한 카터 행정부는 이전 행정부와 달리 박정희 정권 18년 장기집권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유신헌법의 전면적인 수정과 한국의 민주화를 요구하며 박정희 정권에 대한 압박 강도를 갈수록 높여갔다. 반면 카터 행정부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한국의 학생 운동 및 김영삼 등 야당 지도자들에 대해서는 직간접적인 지지를 표명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은 유신독재 체제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고, 되레 민주화 운동에 대한 탄압의 수위를 높여갈 뿐이었다. 더 나아가 카터 행정부는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본격적으로 꺼내 들기도 했다. 북한의 침략에 맞설 수 있는 든든한 뒷배였던 주한미군을 철수시킨다는 것은 박정희 정권의 가장 민감한 부위를 대놓고 건드리는 것이었다. 카터 행정부가 실제로 주한미군 철수를 의도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이 카드를 통해 박정희 정권의 근본적인 노선 변화를 유도하려 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도 박정희 정권은 쉽사리 물러서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이라는 초강경 카드를 검토해 나갔다. 이후 1979년에 카터가 한국을 직접 방문하는 일이 있었다. 기실 이 방한(訪韓)은 미군 철수 문제와는 별도로 카터가 한미연합사 창설 때 한미 양국의 협력 방안을 함께 모색하고 싶다는 뜻을 박정희에게 전달해 성사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 때 두 사람 및 한·미 행정부 간 갈등이 얼마나 심각한 지가 여실히 드러났다. 우선 카터는 박정희 정권이 제공한 영빈관 숙소를 거부하고 김포공항에 내리자마자 미 해병대 헬기를 타고 동두천의 미군 기지로 이동해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 다음날 카터는 국회 연설에서 '인권,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여러 번 강조하며 옆 좌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박정희의 심기를 대놓고 자극했다. 직후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이 열렸다. 그런데 이 때는 박정희가 반격하는 모양새를 나타냈다. 박정희는 사전에 미국으로부터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거론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철수의 부당성을 강조하는 연설을 무려 45분간이나 했다. 세계 최강 미국 대통령 앞에서 한국 대통령이 '안보 강연'을 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 연설이 진행되는 내내 카터의 표정은 '노기'(怒氣)로 가득했고, 회담장 분위기는 급격히 냉각되며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다고 전해진다. 추후 카터는 사석에서 이 당시 정상회담을 "그동안 동맹국 지도자들과 가진 회담 가운데 가장 불쾌한 회담"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처럼 박정희 정권 말기에는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악화 일로를 걸었다. ■정권 말기 현상 : 김형욱 사건 김형욱은 역대 중앙정보부장들 가운데 최장수 부장이었다. 1963년부터 69년까지 무려 6년 이상을 중정부장으로 있으면서 민주화 운동 및 정치적 반대파들을 극심하게 탄압했고, '남산돈까스'라는 악명을 떨쳤다. 심각한 국제 문제로까지 비화됐던 '동백림 간첩단 사건'과 3선 개헌 반대파들을 숙청할 목적으로 일으킨 '국민복지회 사건', 그리고 사상초유의 '사법살인'으로 불리는 '인민혁명당 사건'은 김형욱이 주도한 대표적인 탄압 사례였다. 민주화를 열망했던 사람들에게 김형욱은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었지만, 대체로 강경책을 선호했던 박정희에게 김형욱은 효과적인 쓰임새를 갖고 있는 '심복'(心腹)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박정희의 신임을 한 몸에 받는 것처럼 보였던 김형욱은 1969년을 기점으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당시 박정희가 원했던 '3선 개헌안' 찬성의 선행 조건으로서, 김형욱에 대한 중정부장 해임 요구가 여당인 민주공화당에서 강하게 제기됐다. 과격한 언행으로 인해 김형욱은 여야 가릴 것 없이 도처에 적이 많았던 만큼 시간이 갈수록 불리해졌고, 결국 박정희는 김형욱을 중정부장에서 해임하기에 이른다. 이후 김형욱은 잠시 민주공화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했지만, 1972년 유신 선포 후에는 의원직마저 박탈당하게 된다. 일련의 사건으로 권력의 중심부에서 완전히 멀어지면서, 김형욱은 자신이 사실상 '토사구팽'(兎死狗烹)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박정희에 대한 충성과 정권 유지를 위해 궂은 일을 도맡아 했는데, 결국 비참한 말로를 맞게 됐다고 느낀 것이다. 이렇게 박정희에 대한 원망을 쌓아가던 김형욱은 중정부장 시절 최측근이었던 문학림과 함께 타이완으로 출국, 이후 미국 뉴욕에 머무르게 된다. 사실상의 '도피'였다. 박정희는 김형욱을 돌아오게 하기 위해 김종필, 정일권 등 고위급 인사들을 보내 설득을 이어갔지만, 모두 허사였다. 그런데 문제는 1977년에 발생했다. 미국 정가를 발칵 뒤집어 놓은 '박동선 코리아 게이트 사건'이 터진 후 김형욱은 미국 프레이저 청문회에 출석해 박정희 정권의 부정부패와 비리 등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여기에 더해 박정희의 은밀한 사생활을 담은 회고록을 일본에서 출간하기도 했다. 일종의 '복수'였던 셈이다. 이에 따라 박정희 정권은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며 궁지에 몰렸고, 김형욱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됐다. 초조해진 박정희 정권은 급기야 김형욱 제거 작전에 돌입했다. 제거에 나선 주체가 김재규의 중정인지 아니면 차지철의 경호실인지 논란이 분분한 가운데 1979년 10월 김형욱은 한국에서 급파된 정체불명의 공작원들에 의해 프랑스 파리에서 납치된 뒤 행방이 묘연해졌다. 현재까지도 김형욱이 언제 어디서 최후를 맞았는지 확인된 바는 없고, 표본적 미제(未濟) 사건 가운데 하나로 남아있다. ■중정-경호실, 김재규-차지철 갈등 민주화 이후 정부들에서 대표적인 권력 기관이라고 하면 대개 검찰과 경찰을 꼽는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하에서 대표적인 권력 기관을 꼽으라면 중앙정보부와 청와대 경호실을 들 수 있다. 당시 검찰과 경찰도 표면적으로 권력 기관으로 존재했지만, 사실상 중정과 경호실이 최고 권력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이들 기관은 박정희 정권 장기 집권의 든든한 버팀목으로서 기능했다. 그런데 양대 권력 기관이다 보니 중정과 경호실 수장 간에 갈등 및 신경전도 극심했다. 과거 이후락 중정부장과 박종규 경호실장 간 숨은 알력도 있었지만, 박정희 정권 말기 김재규 중정부장과 차지철 경호실장 간의 갈등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김재규는 육군 중장 출신으로 보안사령관, 건설부 장관, 중정부장 등 박정희 정권 시절 요직을 두루 거쳤다. 차지철은 육군 중령 출신으로 국회의원으로 적지 않게 활동하다 경호실장까지 지내게 된다. 이 두 사람은 박정희 정권 말기 각종 사안에 있어 사사건건 대립했다. 민주화 운동 및 야당 대응, 김형욱 사건 대응 등에 있어서 두 사람은 항상 노선이 엇갈렸던 것이다. 김재규는 대체로 온건파에 속했지만, 차지철은 언제나 강경파에 속했다. 그리고 김재규는 사안 해결방안을 논할 때 박정희의 심기에 거슬리는 말도 곧잘 했지만, 차지철은 박정희의 심기에 부합하는 말만 했다. 초반 김재규의 말을 귀담아 듣는 듯했던 박정희는 후반으로 갈수록 김재규를 멀리하고 차지철에게 힘을 실었다. 그러면서 박정희 정권의 노선은 더욱 강경한 방향으로 흘러갔고, 김재규는 권력 구도에서 점차 소외됐다. 김재규와 차지철의 극심한 갈등은 두 사람의 근본적인 신념 및 기질 차이, 그리고 양대 권력 기관 수장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10.26 사태라는 '파국'을 초래하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10.26 사태 1979년 10월 26일의 그날은 비교적 맑았다. 박정희는 KBS 당진 송신소 개소식과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한 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차지철 경호실장, 김계원 비서실장을 궁정동 안가로 불러 연회를 할 예정이었다. 행사장으로 이동하는 헬기에 자리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두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김재규는 박선호 의전과장 등을 통해 연회를 준비했다. 가수 심수봉과 모델 심재순이 연회에 섭외됐다. 그런데, 이들 외에 김재규는 뜻밖의 인물들도 섭외했다. 바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과 김정섭 중앙정보부 제2차장보였다. 추후 김재규는 법정에서 국가의 실병력을 장악하고 있는 정승화 총장의 힘을 사전에 포섭해 놓기 위해 궁정동으로 불렀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정승화와 김정섭은 궁정동 '가'동으로 들어가 식사하며 김재규를 기다렸다. 그들 역시 곧 불어닥칠 역사의 소용돌이를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 오후 6시, 박정희와 차지철, 김재규와 김계원은 연회장이 마련된 궁정동 '나'동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곧 전통 한국식 만찬 교자상 앞에서 술을 겸한 저녁 식사를 했다. 국가의 최고 권력자들이 모여있는 식사 자리인 만큼, 정치 현안과 관련된 얘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초반에 다소 양호했던 분위기는 금세 어두워졌다. 특히 박정희는 김재규의 중정이 부마항쟁 등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과 야당의 투쟁에 강경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여기에 차지철까지 나서 김재규와 중정의 온건한 대처 방식을 공격했다. 급기야 박정희는 시민들에 대한 '발포' 가능성도 언급했고, 차지철은 캄보디아를 반면교사로 삼아 "반항하는 자들은 탱크로 눌러버려야 한다"는 험악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박정희와 차지철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았던 김재규는 끓어오르는 반감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다. 저녁 7시 30분경, 그는 잠시 밖으로 나가 중정부장 수행비서 박흥주 대령과 박선호 의전과장을 호출했다. 그러고 나서 박정희, 차지철에 대한 암살과 경호원 제거 계획을 알렸다. 박흥주와 박선호는 처음에는 당황했고 만류하려 했지만, 오랜 기간 따랐던 상관 김재규의 계획과 지시를 끝내 거부하지 못했다. 김재규는 이것을 '혁명'이라고 강조했다. 이 때 부하들에게 주어진 준비 시간은 상당히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거사 준비는 신속하고 은밀하게 진행됐다. 이후 김재규는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왔다. 심각한 상태의 김재규와 달리 박정희와 차지철, 김계원 등은 조만간 벌어질 엄청난 일들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그저 연회를 만끽하고 있었다. 7시 41분경, 심재순이 한창 노래를 부르는 와중에 김재규는 별안간 박정희에게 "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이내 권총을 뽑아 "버러지같은 놈"이라고 외치며 차지철에게 총탄을 발사했다. 김재규가 쏜 총탄은 차지철의 오른쪽 손목을 관통했다. 연회장은 아수라장이 됐고 박정희는 김재규에게 "뭐 하는 짓이야"라고 소리쳤다. 김재규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박정희의 가슴을 향해 두 번째 총탄을 발사했다. 박정희는 많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는데, 이 때 입은 상처는 박정희의 직접적인 사인(死因)이 됐다. 김재규는 차지철에게 추가적인 총격을 가해 완전히 제거하려 했지만, 갑자기 궁정동 전체의 불이 꺼져 버렸고 이 틈을 타 차지철은 연회장 옆 화장실로 도망쳤다. 한편, 김재규가 총을 쏜 직후 궁정동 나동 식당 앞 승용차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박흥주와 그 부하들인 유성옥, 이기주 등은 식당으로 달려가 청와대 경호원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같은 시각 박선호는 궁정동 나동 대기실에서 정인형 청와대 경호처장과 안재송 경호부처장에게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정인형과 해병대 동기로서 절친한 사이였던 박선호는 "다 같이 살자"고 호소했지만, 안재송이 저항하려 하자 두 사람 모두에게 방아쇠를 당기고 말았다. 이로써 김재규의 중정 요원들은 차지철의 경호원들을 모두 제압하는데 성공했다. 불이 꺼져 연회장 밖으로 나왔던 김재규는 급히 새로운 총을 찾았고, 박선호는 김재규에게 달려가 권총을 전달했다. 김재규는 이를 받아 들고 다시 연회장으로 달려 들어가 숨어있던 차지철과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박정희를 사살했다. 이 때만 해도 김재규의 거사는 기대한 것 이상으로 대성공을 거둔 셈이었다. 김재규는 거사 직후 정승화 총장을 데리고 남산의 중앙정보부로 향했다. 그는 남산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정승화에게 엄지손가락으로 박정희의 죽음을 알렸다. 그런데 차가 중정으로 향하던 도중 김재규는 정승화의 의견을 수용해 육군본부로 방향을 틀었다. 김재규에게 있어 중정이 후속 조치를 취하기 용이한 장소였던 만큼, 그가 갑자기 육본으로 '운명의 유턴'을 한 것은 아직까지도 의문으로 남아있다. 이후 육본에서 열린 긴급 국무회의에서 김재규는 대통령의 유고(有故)를 발표했고, 최규하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에게 즉각적인 계엄령 선포를 요구하며 주도권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김재규가 간과하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사건 현장에 함께 있었던 비서실장 김계원이었다. 김계원은 김재규와 중정 요원들의 눈을 피해 정승화를 몰래 찾아가 사건 당시 김재규의 행동을 밀고(密告)했다. 비로소 사태의 전모를 알게 된 정승화는 휘하 군인들을 급파해 김재규를 긴급 체포했다. 체포된 김재규는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끌려가 혹독한 고문과 수사를 받게 된다. 김재규의 거사가 결국 실패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사태 이후 10.26 사태 이후 우리나라에는 일정 부분 변화가 찾아왔다. 최규하 과도정부가 수립된 후 유신헌법이 폐기됐고, 억압적이었던 사회 분위기도 다소 완화되는 모습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 사태로 완전한 민주화가 도래하지는 않았다. 10.26 사태로 인해 대통령, 중정부장, 경호실장이라는 최고 권력자들이 일제히 사라지자 권력 공백 상황이 발생했고, 이 틈을 타 전두환 등이 중심이 된 신군부가 '12.12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았다. 군부 권위주의 체제가 연장된 것이다. 한편, 10.26 사태의 주모자인 김재규는 추후 법정에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박정희)에 총을 쐈다고 주장했다. 그가 사형 판결 직전 법정에서 행한 최후 진술은 이 같은 주장이 그저 허언(虛言)이 아니라는 핵심 근거로 부각되곤 했다. 이에 따라 일부 시민사회 단체를 중심으로 10.26 사태를 민주화 의거로, 김재규를 민주화 투사로 인정하자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10.26 사태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 아니었던 만큼, 김재규가 차지철과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 우발적, 충동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아울러 박정희 정권과 갈등을 겪던 미국이 김재규에게 박정희 암살을 암암리에 사주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김재규는 내란 목적 살인죄와 내란 수괴 미수, 내란중요임무 종사 미수죄 등이 적용돼 교수형을 선고 받은 후 10.26사태가 발생한 다음 해인 1980년 5월 24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kschoi@fnnews.com 최경식 기자
2021-10-16 10:3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