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해양수산부는 내년 선원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2.95%(7만3390원) 인상된 월 256만1030원으로 22일 고시했다. 이는 올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4년 일반근로자 최저임금인 월 206만740원보다 50만290원 높은 수준이다. 일반근로자 최저임금 인상률은 2.5%다. 육상 일반근로자 최저임금은 고용부 장관이, 선원 최저임금은 선원법에 따라 해수부 장관이 고시한다. 해수부는 올해와 내년 소비자 물가상승률과 해운·수산업 경기 전망, 선원의 처우 개선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부안을 마련했다. 해수부 정책자문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선원 최저임금을 결정했다. 2024년도 선원 최저임금 고시는 내년 1월1일부터 시행된다. 한편 올해 10월24일 선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선원법이 공포돼 내년 1월25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위반 행위에 대한 과태료 기준을 마련하는 선원법 시행령도 개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법률이 시행되면 선박소유자는 선내 괴롭힘 예방과 조치를 위한 대책을 수립하고 괴롭힘이 발생한 경우 신속하게 조사하고 적절한 조처를 해야 한다. honestly82@fnnews.com 김현철 기자
2023-12-22 08:49:50[파이낸셜뉴스] 정부가 선원들의 일자리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유급 휴가 일수를 국제 평균으로 늘리고 근로소득 비과세 범위도 확대한다. 이를 통해 현재 신규 인력 기준 78% 수준인 5년 내 이직률을 2030년까지 50% 이하로 낮춘다는 목표다. 해양수산부는 12일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선원 일자리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방안은 선원들의 일자리 환경을 개선해 오래 일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실제로 국적선원 수는 2000년 5만9000여명 수준에서 지난해 3만2000여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60세 이상 선원 비중이 약 44%에 달하는 등 고령화도 심각하다. 정부는 먼저 선원 처우를 개선해 청년들이 선원직에 지원할 유인을 강화할 계획이다. 특히 승선 기간을 단축하고 유급휴가 일수를 국제평균 수준으로 개선하기 위해 15년 만에 노사정 협의를 추진한다. 유럽의 경우 3개월 승선시 3개월 휴가, 일본은 4개월 승선 시 2개월 휴가를 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6개월 승선 시 2개월 휴가만 부여한다. 해수부 관계자는 "휴가 일수 등에 노사가 합의할 경우 선사들에 행정·재정·금융 지원을 하는 방식으로 인센티브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년 선원들의 장기 승선 기피 주요 원인 중 하나인 열악한 선내 인터넷 이용환경도 육상과 동일한 수준으로 개선한다. 근로기준법 등 일반 근로자에 적용되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 체불임금 수급권 등 인권 보호장치들을 선원법에도 규정한다. 근로 기준, 교육훈련, 안전보건 등 여러 내용이 혼재된 선원법을 나눠 '선원의 근로기준에 관한 법률'을 별도 제정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실질소득을 늘리기 위해 월 300만원 수준인 외항상선·원양어선 선원의 근로소득 비과세 금액을 확대하고 가칭 '해사기술인공제 제도'를 신설한다. 다만 구체적인 비과세 금액은 확정되지 않았다. 민영주택 특별공급 대상에 외항선원을 포함하고 배정물량 확보를 추진한다. 외국인 선원 관리체계도 선진화한다. 우선 노사정 협력을 통해 외국인 해기사를 국적 해기사로 대체시 임금 차액의 일부를 보전한다. 선사들은 국적선원 고용·복지 확대 등에 수반되는 비용을 선원발전기금 등을 조성해 마련할 방침이다. 해기사 경력 관리를 위해 해상, 육상 근무를 유연하게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 한편 해상과 육상 선원 인력 풀을 통합 관리한다. 또 해기사 면허 승급 소요 기간을 단축해 30대 초반에 선·기관장으로 승진할 수 있게 지원한다. 법무부와 협의를 통해 성실하게 근무한 외국인 선원의 장기체류(E-7) 선발요건을 완화하고 허용인원도 늘린다. 조승환 해수부 장관은 국적선원 고용과 외국인 선원 공급이라는 정책 방향이 상충하는 것 아니냐는 질의에 "외항상선 해기사 가용인력 목표가 2030년에 1만2000명인데 이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정책수단, 아이디어 등을 동원하되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외국인 선원을 공급해야 한다"며 "이는 이민정책과도 관련된다"고 설명했다. 선원 교육·양성체계도 다변화한다. 일반 구직자를 위해 해기사 면허 취득과 취업이 연계된 단기 집중 교육과정인 오션폴리텍을 운영하는 한편 선원직 복귀시 재승선에 필요한 교육 기간을 최대 5개월에서 1개월로 줄인다. honestly82@fnnews.com 김현철 기자
2023-07-12 09:06:03#. 외항상선 항해사로 근무하는 A씨는 4·15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마음이 편치 않다. 지난 19대 대선에서 특정 후보에 표를 던졌다가 인격적인 모욕을 받았기 때문이다. 투표 자체는 비밀리에 치러졌지만 결과를 육지에 송부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어디에 표를 던졌는지가 새나간 탓이었다. 선장은 공공연히 A씨가 뽑은 후보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며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이번 투표를 앞두고 선장의 정치성향과 맞출지를 고민하고 있다. 이역만리 먼 바다를 오가며 한국 수출입과 수산업의 기둥이 되고 있는 선원들이 참정권을 침해받고 있다. 제 뜻대로 표를 행사하지 못하고, 비밀이 지켜지지 않으며, 투표 결과로 놀림이나 괴롭힘을 받고, 심하게는 아예 투표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선원들이 2020년 한국엔 너무나도 많다. 선상투표는 부재자투표의 일환으로 개인이 신고하면 투표가 가능해야 하지만 선상에서 외부로 나가는 공식 문서가 모두 선장의 최종 결재를 거쳐야 해 사실상 선장의 허락 없이는 신고가 불가능한 구조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본지는 약 한 달에 걸쳐 선원 20명 이상을 인터뷰해 한국 선원들의 투표실태를 파악했다. ■누구 뽑았는지 확인 가능한 현실 한국의 선상투표는 선박에 설치된 팩시밀리를 통해 육상의 선거관리위원회로 투표용지를 보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사전에 선거 여부를 신고하고, 신고한 선박 선원들이 부재자투표 방식으로 개별 투표를 하는 것이다. 선관위는 비밀보장을 위해 투표용지의 기표 내용이 보이지 않도록 자동으로 봉함해 출력되는 실드(shield)팩스를 이용한다. 이를 통해 육상에서 투표용지를 받는 선관위 관계자들은 해당 선원들이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확인할 수 없다. 문제는 선박에서 투표용지를 보내기까지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규정상 투표자가 직접 팩스를 보내야 하는데 실제로 그런 경우는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항해·통신 장비를 조작할 줄 아는 특정 항해사가 투표 내역을 모아서 한꺼번에 송부하는 게 보통이다. 이때 기표 내용이 노출되는 일이 적지 않다. 앞에 언급된 A씨와 같은 사례는 그리 특별한 게 아니다. 기관사 B씨는 "선장이 어디에 투표하는지 볼 거라고 농담처럼 말했다"며 "혹시나 해서 (투표를) 선장의 정치 성향에 맞췄다"고 털어놨다. 선장이 선내에서 절대적 권한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선장의 뜻을 거스를까 우려하는 선원들의 자유로운 투표가 사실상 가로막혀 있는 것이다. 해외 선진국은 이런 문제를 막고자 공식 우편을 통한 개별 투표를 허용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독일, 스페인 등이 대표적이다. 프랑스는 국내 대리인을 지정해 자신의 투표를 대신하도록 하는 대리투표 제도도 허용한다. ■선장이 투표신고 않는 사례도 투표신청 자체를 하지 못하는 일도 심심찮게 있다. 특히 본사 차원에서 투표를 독려하지 않는 경우엔 선장의 선택에 따라 투표를 신고하지 않거나 신고한 뒤 실제 투표를 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3년차 항해사 C씨는 "밑에 사람들이 투표를 하고 싶어도 선장이 우리 배엔 투표할 사람이 없다고 e메일을 보내면 투표를 못한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10년차 항해사 D씨는 "회사에서 (신청)하라고 해도 선장이 관심이 없는 경우 신청을 안 하는 사례도 많다"며 "배 특수성을 고려해서 신고 자체를 강제로 하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원양어선은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선상투표제도 자체가 2007년 원양어선 선원들이 제기한 헌법소송으로 만들어진 것인데도 긴 항해나 고립감 등 선박문화의 특수성으로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는 어선원이 많은 것이다. 실제 지난 19대 대선 기준 선상투표에 참여한 원양어선 선원은 전체 선상투표자 가운데 4%에 불과하다. 전체 선원의 18%가 원양어선 선원이란 점을 고려하면 원양어선 선원들이 더욱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eco@fnnews.com 안태호 김성호 기자
2020-03-22 18:14:06[파이낸셜뉴스] #외항상선 항해사로 근무하는 A씨는 4.15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마음이 편치 않다. 지난 19대 대선에서 특정 후보에 표를 던졌다가 인격적인 모욕을 받았기 때문이다. 투표 자체는 비밀리에 치러졌지만 결과를 육지에 송부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어디에 표를 던졌는지가 새나간 탓이었다. 선장은 공공연히 A씨가 뽑은 후보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며 인신 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이번 투표를 앞두고 선장의 정치성향과 맞출지를 고민하고 있다. 이역만리 먼 바다를 오가며 한국 수출입과 수산업의 기둥이 되고 있는 선원들이 참정권을 침해받고 있다. 제 뜻대로 표를 행사하지 못하고, 비밀이 지켜지지 않으며, 투표결과로 놀림이나 괴롭힘을 받고, 심하게는 아예 투표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선원들이 2020년 한국엔 너무나도 많다. 선상투표는 부재자투표의 일환으로 개인이 신고하면 투표가 가능해야 하지만 선상에서 외부로 나가는 공식 문서가 모두 선장의 최종 결재를 거쳐야해 사실상 선장의 허락 없이는 신고가 불가능한 구조에 놓여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총선의 경우 사전투표로 등락이 판가름 나기도 한다. 본투표에서 뒤쳐지다가 뒤늦게 도착한 사전투표함 개표 이후 승패가 뒤집히는 역전극이 종종 벌어지는 터라 선상투표의 문제점을 간과하면 안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기사는 본지가 약 한 달여에 걸쳐 선원 20명 이상을 인터뷰해 한국 선원들의 투표 실태를 파악했다. ■누구 뽑았는지 확인 가능한 현실 한국의 선상투표는 선박에 설치된 팩시밀리를 통해 육상의 선거관리위원회로 투표용지를 보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사전에 선거를 할 것인지 여부를 신고하고 신고한 선박 선원들이 부재자 투표 방식으로 개별 투표를 하는 것이다. 선관위는 비밀보장을 위해 투표용지의 기표내용이 보이지 않도록 자동으로 봉함해 출력되는 쉴드(shield)팩스를 이용한다. 이를 통해 육상에서 투표용지를 받는 선관위 관계자들은 해당 선원들이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확인할 수 없다. 문제는 선박에서 투표용지를 보내기까지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규정 상 투표자가 직접 팩스를 보내야 하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는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항해·통신 장비를 조작할 줄 아는 특정 항해사가 투표내역을 모아서 한꺼번에 송부하는 게 보통이다. 이 때 기표 내용이 노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앞에 언급된 A씨와 같은 사례는 그리 특별한 게 아니다. 기관사 B씨는 “선장이 어디에 투표하는지 볼 거라고 농담처럼 말했다”며 “혹시나 해서 (투표를) 선장의 정치 성향에 맞췄다”고 털어놨다. 선장이 선내에서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이를 거스를까 우려하는 선원들의 자유로운 투표를 사실상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해외 선진국은 이같은 문제를 막고자 공식 우편을 통한 개별 투표를 허용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독일, 스페인 등이 대표적이다. 프랑스는 국내 대리인을 지정해 자신의 투표를 대신하도록 하는 대리투표 제도도 허용한다. #OBJECT0# ■선장 선택 따라 투표 신고 않는 사례도 투표 신청 자체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특히 본사 차원에서 투표를 독려하지 않는 경우엔 선장의 선택에 따라 투표를 신고하지 않거나 신고한 뒤 실제 투표를 진행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3년차 항해사 C씨는 “밑에 사람들이 투표를 하고 싶어도 선장이 우리 배엔 투표할 사람이 없다고 메일을 보내면 투표를 못한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10년차 항해사 D씨는 “회사에서 (신청)하라고 해도 선장이 관심이 없는 경우 신청을 안 하는 사례도 많다”며 “배 특수성을 고려해서 신고 자체를 강제로 하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원양어선의 경우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선상투표제도 자체가 2007년 원양어선 선원들이 제기한 헌법소송으로 만들어진 것임에도, 긴 항해나 고립감 등 선박문화의 특수성으로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는 어선원들이 많은 것이다. 실제 지난 19대 대선 기준 선상투표에 참여한 원양어선 선원은 전체 선상투표자 가운데 4%에 불과하다. 전체 선원의 18%가 원양어선 선원이란 점을 고려하면 원양어선 선원들이 더욱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OBJECT1# eco@fnnews.com 안태호 김성호 기자
2020-03-21 22:29:33[파이낸셜뉴스] #. “젊은 놈이 여당을 찍으니 나라가 이 꼬라지지” 외항상선 항해사로 근무하는 A씨는 4.15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고민이 많다. 지난 19대 대선에서 특정 후보에 표를 던졌다는 이유로 인격적인 모욕을 받았기 때문이다. 투표 자체는 비밀리에 치러졌지만 선거 이후 표를 취합해 팩시밀리로 보내는 과정에서 자신이 어디에 표를 던졌는지가 공개됐다. 선장은 공공연히 A씨가 투표한 결과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며 인격적인 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이번 투표를 앞두고 선장의 정치성향과 맞출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선거의 4대원칙이 있다. 보통선거와 비밀선거, 평등선거와 직접선거가 그것이다. 만18세 이상 국민 모두가 인당 1표씩 마음에 드는 후보자에게 비밀로 투표한다는 이 원칙으로부터 국민 누구도 소외돼선 안 된다. 그런데 이 원칙들로부터 소외된 존재가 있다. 이역만리 먼 바다를 오가며 한국 수출입과 수산업의 기둥이 되고 있는 선원들이다. 제 뜻대로 표를 행사하지 못하고, 비밀이 지켜지지 않으며, 투표결과로 놀림이나 괴롭힘을 받고, 심하게는 아예 투표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선원들이 2020년 한국엔 너무나도 많다. 이 기사는 본지가 약 한 달여에 걸쳐 선원 20명 이상을 인터뷰해 파악한 한국 선원들의 투표 실태를 바탕으로 쓰였다. #OBJECT0# ■23, 31, 40... 갈수록 벌어지는 투표율 격차, 이유는? 22일 선거관리위원회와 해운업계에 따르면 선상에서 투표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 한국 선원들은 매년 1만 명을 넘어선다. 이들은 대통령선거(대선)와 국회의원선거(총선)에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법에 정해진 선상투표 방식으로 투표에 참여한다. 집계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지방선거 투표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선상투표 유권자 1만 가운데 몇 명이나 실제 투표에 참여할까? 결과를 들여다보면 현행 선상투표 제도와 그 운영상의 문제가 그대로 노출된다. 선상투표제도가 도입된 뒤 처음 치러진 18대 대선에서 선상투표를 신고한 선원은 7060명이었다. 유권자 대비 신고율은 55.5%, 실제 투표율은 52.3%다. 지난 19대 대선은 4090명만이 신고했다. 신고율은 불과 40%였으며 투표율은 36.9%였다.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20대 총선은 더 낮았다. 2849명이 신고했고 신고율 28.2%, 투표율 26.8%였다. 선상투표제도가 도입된 이후 선원들의 투표율이 점차 낮아진 것이다. 이를 일반 유권자의 투표율과 비교하면 문제가 명확해진다. 일반 유권자의 18대 대선 투표율은 75.8%, 20대 총선은 58%, 19대 대선은 77.2%였다. 선상투표율과 비교하면 각 23.5%p, 31.2%p, 40.3%p 차이다. 선거를 치를수록 일반 유권자 투표율과 차이가 벌어진 것이다. 선원들이 갑자기 선거에 관심을 잃었거나 선상투표 제도 운영에 커다란 문제점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가장 많은 응답 "모아서 한 번에 보낸다" 한국의 선상투표는 선박에 설치된 팩시밀리를 통해 육상의 선거관리위원회로 투표용지를 보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사전에 선거를 할 것인지 여부를 먼저 신고하고, 신고한 선박 선원들이 부재자 투표 방식으로 개별 투표를 하는 것이다. 선관위는 비밀보장을 위해 투표용지의 기표내용이 보이지 않도록 자동으로 봉함해 출력되는 쉴드(shield)팩스를 이용한다. 이를 통해 육상에서 투표용지를 전해받는 선관위 관계자들은 해당 선원들이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확인할 수 없다. 문제는 선박에서 투표용지를 보내기까지가 약한 고리란 점에 있다. 규정상 투표자가 직접 팩스를 보내야하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는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항해·통신 장비를 조작할 줄 아는 특정 항해사가 투표내역을 모아서 한꺼번에 송부하는 게 보통이다. 당연히 투표 결과가 노출되기도 쉽다. 앞에 언급된 A씨와 같은 사례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지난 대선에서 선상투표를 했다는 기관사 B씨는 “선장이 어디에 투표하는지 볼 거라고 농담처럼 말했다”며 “혹시나 해서 (투표를) 선장의 정치 성향에 맞췄다”고 털어놨다. 선장이 선내에서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이를 거스를까 우려하는 선원들이 자유롭게 투표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물론 비밀투표가 잘 지켜진 사례도 있었다. 항해사 C씨는 “팩스를 보낼 때 항해사 한 명이 취합해 보냈지만, 익명성을 위해 투표용지를 제출한 후 순서를 무작위로 섞는 등 조치를 취했다”고 답했다. 결국 선장 개인의 의지에 달린 문제인 것이다. 해외 선진국은 이 같은 문제를 막고자 우편을 통한 개별 투표를 허용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독일, 스페인 등이 대표적이다. 프랑스는 국내 대리인을 지정해 자신의 투표를 대신하도록 하는 대리투표 제도도 허용한다. #OBJECT1# ■선장 선택 따라 투표 신고 않는 사례도 투표 신고 자체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특히 본사 차원에서 투표를 독려하지 않는 경우엔 선장의 선택에 따라 투표를 신고하지 않거나 신고한 뒤 실제 투표를 진행하지 않기도 한다. 3년차 항해사 D씨는 “밑에 사람들이 투표를 하고 싶어도 선장이 우리 배엔 투표할 사람이 없다고 메일을 보내면 투표를 못한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선상투표는 부재자투표의 일환으로 개인이 신고하면 투표가 가능해야 하지만, 선상에서 외부로 나가는 공식 문서가 모두 선장의 최종 결재를 거쳐야하기에 선장의 허락 없이는 신고가 불가능한 구조에 놓여 있다. 10년차 항해사 E씨는 “회사에서 (신청)하라고 해도 선장이 관심이 없는 경우 신청을 안 하는 사례도 많다”며 “배 특수성을 고려해서 신고 자체를 강제로 하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거과정에서도 선내 기표소를 설치하고 입회인을 선정하는 등의 과정에 선장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특정 후보에 대한 비방이나 홍보 등 불법행위를 막아야 하지만, 본인이 나서서 이런 행위를 하거나 방조 및 방치하면 제지할 방도가 마땅치 않다. 갑판장으로 근무하는 F씨는 “투표를 할 수 있게 된 거 자체가 발전이긴 한데 문제가 많다”며 “배가 원래 그런 곳이긴 하지만 구식으로 기가 센 선장이 누구 찍으라고 압박하거나 하면 선원들은 저항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어선의 경우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선상투표제도 자체가 2007년 원양어선 선원들이 제기한 헌법소송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선박 문화의 특수성 아래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는 선원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실제 지난 19대 대선 기준 선상투표를 한 원양어선 선원은 전체 선상투표자 가운데 4%에 불과하다. 전체 선원의 18%가 원양어선 선원이란 점을 고려하면 원양어선 선원들이 더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OBJECT2# ■선관위로 신고 접수는 '0건'... 제도 개선 절실 선관위는 이 같은 문제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선관위 관계자는 “일일이 배에서 일어나는 부분을 알 수는 없다고 실제 제보가 있어야 확인할 수 있다”며 “투표를 방해한다거나, 비밀투표 침해한다거나 이런 경우는 (해결할 수 있는) 관련 법이 다 있다”고 설명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장이 선거운동을 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지만 선상투표가 도입된 이후 신고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해운업계의 수직적 문화에 더해 소문이 샐까 우려하는 분위기 탓이다. 선원들은 부정을 목격하더라도 직업을 바꿀 결심이 없는 한 신고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5년차 항해사 G씨는 “선상 폭언, 폭력 등으로 참다못해 신고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다들 배타는 걸 그만둘 각오로 한다”며 “투표할 권리도 중요하긴 하지만 생계를 걸만큼은 아니다”라고 우려했다. G씨는 “투표 대상자가 탑승한 선박은 예외 없이 투표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선해야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선관위는 이번 총선부터 위성 인터넷을 통한 투표방식을 도입했다. 기존 팩시밀리를 통한 투표에서 중복 및 누락 등 문제가 다수 발생해 이를 보완한 것이다. 선박별 신청에 따라 선원들이 선내 인터넷을 통해 선상투표홈페이지에서 투표할 수 있도록 했다. 공직선거법이 선상투표 방식을 팩스를 통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전자팩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를 통하면 사실상 선원이 개별적으로 홈페이지 상에서 투표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다만 전자팩스 투표를 도입한 목적이 선박 통신환경 변화에 부응하기 위한 것으로, 선박별 신청에 한해 선택하도록 한 점엔 아쉬움이 남는다. ■파이낸셜뉴스는 일상생활에서 겪은 불합리한 관행이나 잘못된 문화·제도 등의 사례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해당 기자의 e메일로 받고 있습니다. 제보된 내용에 대해서는 실태와 문제점, 해법 등 충실한 취재를 거쳐 보도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제보와 격려를 바랍니다. pen@fnnews.com 김성호 안태호 기자
2020-03-21 21:3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