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23일 별세한 조순 전 경제부총리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이날 오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빈소에서 "조순 전 부총리는 학자로서, 공직자로서, 정치인으로서 우리나라에 큰 족적을 남긴 분이셨다"며 조 전 부총리 장남 조기송 전 강원랜드 사장 등 유족을 위로했다고 대통령실은 밝혔다. 조문 후 윤 대통령은 조 전 부총리의 제자인 정운찬 전 총리와 함께 빈소에서 고인을 추모하기도 했다. 장례식장에 조화와 조기를 보낸 윤 대통령은 당초 이날 참모진을 보내려 했으나, 오후 일정을 마친 뒤 직접 빈소로 가 조문했다. 이날 새벽 향년 94세 일기로 별세한 조 전 부총리는 1960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귀국 뒤 경제학자로 서울대 강단에 섰다. 이때 '한국 케인스'라는 별명을 얻었고, '조순학파'가 탄생했다. 고인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1988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맡아 관료로 새 길을 걸었다. 이후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조 전 부총리는 중앙은행 한은의 독립성 강화를 주장하며 정부와 갈등을 빚는 과정에 '대쪽' 이미지를 얻었다. 고인은 아태평화재단 자문위원으로 맺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1995년 민주당에 입당, 정치권에 입문했다. 이후 민선 1기 서울시장으로 당선 뒤 얻은 별명이 '서울 포청천'이다. 아스팔트 여의도를 여의도 공원으로 조성한 것은 시장으로 대표적 업적이다. 1997년에는 15대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출마해 한때 25% 안팎의 지지율을 보였다. 마침 한국을 강타한 국제 금융위기 상황에서 경제전문가 출신 후보로 부각됐다. 이후 새로 출범한 한나라당의 초대 총재를 거쳤고 2000년 민주국민당을 창당하기도 했다. 이같이 고인은 생전 교수와 관료,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만큼, 빈소에는 전·현직 대통령부터 정치 원로까지 각계 인사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발인은 25일로,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지는 강릉 구정면 학산이다. hjkim01@fnnews.com 김학재 심형준 기자
2022-06-23 22:53:54한국 경제학계의 거목이자 관료, 정치인이었던 조순 전 경제부총리(사진)가 23일 새벽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조 전 부총리는 서울대 교수 시절 '조순학파'를 탄생시킨 경제학계 대부였고, 이후 경제부총리로 활약했다. 서울시장 당선으로 정치권에 입문한 뒤에도 대선 후보, 한나라당 초대 총재 등 제2의 전성기를 누리며 정치사에 수많은 족적을 남겼다. 이날 의료계와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서울아산병원에서 노환으로 치료를 받던 중 타계했다. 1928년 강원 강릉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기고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했다. 교수 시절에는 '케인스주의' 경제학을 국내에 처음 전파한 주인공이자 정통 경제학자로 불렸다. 고인은 1960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귀국 뒤 경제학자로 서울대 강단에 섰다. 이때 '한국 케인스'라는 별명을 얻었고, '조순학파'가 탄생했다. 1974년 제자인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함께 쓴 '경제학 원론'은 케인스주의를 본격적으로 쓴 최초의 경제학 교과서로 인기를 누렸다. 고인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1988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맡아 관료로 새 길을 걸었다. 이후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조 전 부총리는 중앙은행 한은의 독립성 강화를 주장하며 정부와 갈등을 빚는 과정에 '대쪽' 이미지를 얻었다. 고인은 아태평화재단 자문위원으로 맺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1995년 민주당에 입당, 정치권에 입문했다. 이후 민선 1기 서울시장으로 당선 뒤 얻은 별명이 '서울 포청천'이다. 아스팔트 여의도를 여의도 공원으로 조성한 것은 시장으로 대표적 업적이다. 1997년에는 15대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출마해 한때 25% 안팎의 지지율을 보였다. 마침 한국을 강타한 국제 금융위기 상황에서 경제전문가 출신 후보로 부각됐다. 이후 새로 출범한 한나라당의 초대 총재를 거쳐 2000년 새로 창당한 민주국민당이 16대 총선에서 참패하며 사실상 정계은퇴를 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고인에 대한 추모 메시지를 통해 "경제학자로서는 물론이고 한은 총재와 경제부총리로 한국 경제발전에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이라고 했다. 유족은 장남 조기송 전 강원랜드 대표 등이 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지는 강릉 구정면 학산이다. cerju@fnnews.com 심형준 기자
2022-06-23 18:12:45[파이낸셜뉴스]한국 경제학계의 거목이자 관료, 정치인이었던 조순 전 경제부총리가 23일 새벽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조 전 부총리는 서울대 교수 시절 '조순 학파'를 탄생시킨 경제학계 대부였고, 이후 경제부총리로 활약했다. 서울시장 당선으로 정치권에 입문한 뒤에도 대선 후보, 한나라당 초대 총재 등 제2의 전성기를 누리며 정치사에도 수많은 족적을 남겼다. 이날 의료계와 유족들에 따르면 고인은 서울아산병원에서 노환으로 치료를 받던 중 타계했다. 1928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기고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했다. 교수 시절에는 '케인스주의' 경제학을 국내에 처음 전파시킨 장본인이자 정통 경제학자로 불렸다. 고인은 1960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귀국 뒤 경제학자로 서울대 강단에 섰다. 이때 '한국 케인스'라는 별명을 얻었고, '조순학파'가 탄생했다. 1974년 제자인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함께 쓴 '경제학 원론'은 케인즈 주의를 본격적으로 쓴 최초의 경제학 교과서로 인기를 누렸다. 고인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1988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맡아 관료로 새 길을 걸었다. 이후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조 전 부총리는 중앙은행 한은의 독립성 강화를 주장하며 정부와 갈등을 빚는 과정에 '대쪽' 이미지를 얻었다. 고인은 아태평화재단 자문 위원으로 맺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1995년 민주당에 입당, 정치권에 입문했다. 이후 민선 1기 서울시장으로 당선 뒤 얻은 별명이 '서울 포청천'이다. 아스팔트 여의도를 여의도 공원으로 조성한 것은 시장으로 대표적 업적이다. 1997년에는 15대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출마해 한때 25% 안팎의 지지율을 보였다. 마침 한국을 강타한 국제금융위기 상황에서 경제 전문가 출신 후보로 부각됐다. 이후 새로 출범한 한나라당의 초대 총재를 거쳐 2000년 새로 창당한 민주국민당이 16대 총선에서 참패하며 사실상 정계은퇴를 했다. 이창용 한은총재는 이날 고인에 대한 추모 메시지를 통해 "경제학자로서는 물론이고, 한은 총재와 경제부총리로 한국경제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이라고 했다. 유족은 장남 조기송 전 강원랜드 대표 등이 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지는 강릉 구정면 학산이다. cerju@fnnews.com 심형준 기자
2022-06-23 16:20:43[파이낸셜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조순 전 한은 총재 별세와 관련 "한국경제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기긴 분"이라고 추모했다. 이 총재는 이날 국제결제은행(BIS) 회의를 위해 스위스로 출국하면서 "공항으로 오는 길에 조순 전 총재님께서 별세하셨다는 비보를 들었다"며 "경제학자로서는 물론이고, 한은 총재와 경제부총리를 역임하시면서 한국경제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기긴 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으로는 제게 가르침을 주신 스승이시기도 하고, 지금 한국경제가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에서 고인의 주신 여러 지혜를 다시 새겨보고자 한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에게도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 싶다. 출장에서 돌아오는 대로 찾아뵐 예정"이라고 전했다. 조 전 총재는 이날 새벽 숙환으로 별세했다. 발인은 25일 오전이다. jiany@fnnews.com 연지안 기자
2022-06-23 14:44:16\r\r\r\r\r\r\r\r\r\r\r\r구본무 LG그룹 회장이 8일 서울 대학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헌조 전 LG전자 회장의 빈소에서 조문하고 있다.\r\r\r\r\r\r\r\r범 LG가(家)의 진득한 '의리'가 재계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헌조 전 LG전자 회장의 장례식장에서다.8일 이틀째를 맞는 이헌조 전 회장의 장례식장에는 정.재계 인사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이날도 조순 전 부총리,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을 비롯해 범 LG가 사장단 및 임원, 가족들의 조문이 계속됐다.특히 전날 조문을 한 구본무 LG그룹 회장, 구본준 LG 신성장사업추진단 부회장,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은 이날 연이틀 방문해 고인을 기렸다. 회사장으로 치러지는 장례식은 정도현 LG전자 사장이 장례위원장을 맡았고, LG전자 사장들이 교대로 상주 역할을 하고 있다.재계의 큰 어른이 타계한 가운데 범 LG가의 '고인을 모시는 방법'이 업계의 모범이 되고 있다.전날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오후 7시 30분께 도착해 5분 가량 뒤늦게 온 구본준 부회장과 2시간을 넘게 빈소를 지켰다. 그룹 오너가 몇시간 동안 조문한 경우는 업계에서 흔하지 않은 일이다.구본무 회장은 이날 밤 9시 30분께가 돼서야 빈소를 떠났다. 침통한 표정으로 빈소를 나온 그는 떠나면서 "(이헌조 회장은)LG전자를 일으켜 세우신 분"이라고 고인을 회상했다. 구본준 부회장도 구본무 회장보다 30분 가량 늦은 밤 10시가 조금 넘어서 귀가했다.2005년 LG그룹에서 분사한 GS그룹의 허씨 일가도 끈끈한 '의리'로 주변을 지켰다.허창수 GS그룹 회장은 전날 빈소를 가장 먼저 찾았다. 간단한 조문을 마친 뒤 허창수 회장은 이후 회사에서 업무를 보고, 오후에 다시 빈소를 방문했다. 전날 밤 허창수 회장은 귀가 차량에 오르면서 "내일도 또 올게요"라며 이헌조 전 회장과의 깊은 관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허창수 회장은 9일 발인까지 참여해 고인을 배웅할 것으로 알려졌다.LG 관계자는 "이 전 회장은 구인회 LG 창업주와 같은 세대를 공유하고, 함께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를 키우신 분"이라며 "허창수 회장은 이헌조 전 회장이 은퇴하기 직전까지 동고동락한 사이로 마치 '전우를 보내는 심정'일 것"이라고 말했다.한편 이헌조 전 LG전자 회장은 지난 7일 향년 83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경남 의령 출신인 이헌조 전 회장은 1957년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에 입사했다. 이듬해 LG전자 전신인 금성사 창립멤버로 참여, 금성사 사장과 LG전자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 전자산업의 발전을 이끈 전문 경영인이다. LG인화원장을 끝으로 1998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r
2015-12-08 17:31:45범 LG가(家)의 진득한 '의리'가 재계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헌조 전 LG전자 회장의 장례식장에서다. 8일 이틀째를 맞는 이헌조 전 회장의 장례식장에는 정·재계 인사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이날도 조순 전 부총리,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을 비롯해 범 LG가 사장단 및 임원, 가족들의 조문이 계속됐다. 특히 전날 조문을 한 구본준 신성장사업추진단 부회장,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은 이날 연이틀 방문해 고인을 기렸다. 회사장으로 치러지는 장례식은 정도현 LG전자 사장이 장례위원장을 맡았고, LG전자 사장들이 교대로 상주 역할을 하고 있다. 재계의 큰 어른이 타계한 가운데 범 LG가의 '고인을 모시는 방법'이 업계의 모범이 되고 있다. 전날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오후 7시 30분께 도착해 5분 가량 뒤늦게 온 구본준 부회장과 2시간을 넘게 빈소를 지켰다. 그룹 오너가 몇시간 동안 조문한 경우는 업계에서 흔하지 않은 일이다. 구본무 회장은 이날 밤 9시 30분께가 돼서야 빈소를 떠났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그는 빈소를 떠나면서 "(이헌조 회장은)LG전자를 일으켜 세우신 분"이라고 고인을 회상했다. 구본준 부회장도 구본무 회장보다 30분 가량 늦은 밤 10시가 조금 넘어서 귀가했다. 2005년 LG그룹에서 분사한 GS그룹의 허씨 일가도 끈끈한 '의리'로 주변을 지켰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전날 빈소를 가장 먼저 찾았다. 간단한 조문을 마친 뒤 허창수 회장은 이후 회사에서 업무를 보고, 오후에 다시 빈소를 방문했다. 전날 밤 허창수 회장은 귀가 차량에 오르면서 "내일도 또 올게요"라며 이헌조 전 회장과의 깊은 관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허창수 회장은 9일 발인까지 참여해 고인을 배웅할 것으로 알려졌다. LG 관계자는 "이 전 회장은 구인회 LG 창업주와 같은 세대를 공유하고, 함께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를 키우신 분"이라며 "허창수 회장은 이헌조 전 회장이 은퇴하기 직전까지 동고동락한 사이로 마치 '전우를 보내는 심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헌조 전 LG전자 회장은 지난 7일 향년 83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경남 의령 출신인 이헌조 전 회장은 1957년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에 입사했다. 이듬해 LG전자 전신인 금성사 창립멤버로 참여, 금성사 사장과 LG전자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 전자산업의 발전을 이끈 전문 경영인이다. LG인화원장을 끝으로 1998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km@fnnews.com 김경민 기자
2015-12-08 15:41:04지난 23일 타계한 고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은 아침부터 사회 각계각층의 조문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빈소가 마련된 삼성서울병원 빈소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조화를 보내 고인의 넋을 위로했다. 또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원기 국회의장, 이해찬 국무총리, 전윤철 감사원, 리차드 레빈 미 예일대 총장, 워런크리스토프 전 미 국무장관 등이 조화를 고인을 추모했다. 조순 전 서울시장은 오전 9시56분경 고인의 빈소를 방문했으며 이후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리빈 주한중국대사, 김수한 전 국회의장 등도 빈소를 직접 방문, 먼저 간 고인을 아쉬워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고인은 지성적인 경영인으로 재계에 지적이미지를 심어준 분이자 기업의 사회공헌에 모범을 제시한 분”이라고 추도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구본무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준용 대림그룹 회장, 황영기 우리은행장, 임대홍 대상그룹 회장 등도 조화를 보내 유족들과 슬픔을 함께 했다. 김각중 경방 회장과 이웅열 코오롱 회장 등 기업인들도 아침부터 빈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문화와 예술을 아끼고 사랑한 기업인답게 고인의 빈소에는 악기를 든 학생복 차림의 음악도과 박정자 등 예술인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 fncho@fnnews.com 조영신기자
2005-05-24 13:05:54현대그룹의 ‘비운의 후계자’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유족과 현대계열사 임직원, 국민들의 애도 속에 8일 선영이 있는 경기도 하남시 창우리에 부친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잠들어 있는 묘소곁에서 평화롭게 영면했다. 생전에 고인은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남북경협사업에 매진, 새로운 한반도시대를 개척한 선구자로 평가받았으나, 부친 정주영 명예회장의 평생 소원이었던 ‘통일조국’을 끝내 보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생을 마쳐 안타까움을 더했다. ■서울아산병원 영결식 이모저모 ○…이날 오전 8시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동관 잔디광장에서 2000여명의 조문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된 영결식은 쇼팽의 ‘장송행진곡’과 베토벤의 ‘영웅교향곡 2악장’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보고, 고인 영상물 상영, 추모사, 조전 소개, 헌화 및 분향 순으로 진행됐다. 정회장의 약력을 소개하던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은 북받치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3∼4차례 눈물과 탄식을 쏟아내 주변을 숙연하게 했다. 이어 정회장의 생전활동을 소개하는 영상물은 서울 청운동 저택에서 찍은 가족사진을 비롯해 출생에서부터 성장기를 거쳐 경영자로서, 대북사업의 후계자로서 짧은 생애를 마감하기까지 정회장의 일생을 담아냈다. 활짝 웃는 모습을 담은 고인의 영상이 멀티비전에 나타나자 유족과 지인, 현대 관계자 등이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울음을 터뜨렸고, 옆에서 지켜보던 아산병원 직원과 환자들도 너나 없이 눈시울을 붉혔다. ○…손길승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추도사를 통해 “아직도 갈 길은 멀고 하실 일이 많이 남아 있는데 왜 이렇게 홀연히 떠나셔야 했습니까. 기업인으로서 이제 한창 꽃을 피워야 할 때에 이렇게 꼭 떠나셔야 하셨습니까. 이제 누가 회장님의 빈자리를 대신 한단 말입니까”라는 구절을 읽으면서 서러움이 북받치는 듯 울먹였다. 서강대 박홍 이사장은 추모기도에서 “부친 정주영 회장님의 뜻을 따라 분단의 한을 경제협력과 화해로 풀기 위해 지난 3년간 당신은 모든 것을 바쳐 혼신의 노력을 다하여 왔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라며 고인을 회고했다. 우인(友人) 대표로 나선 김용옥씨는 “정몽헌은 하나의 추억이 아니라 슬픔이요, 꿈이었다. 정몽헌의 죽음은 결코 개인의 좌절이 아니며 역사의 좌절도 아니다. 정몽헌은 좌절했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날 영결식에는 이홍구 전 국무총리, 서영훈 대한적십자사 사장, 조순 전 서울시장, 민주당 정대철 대표, 정균환 원내총무,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 자민련 손경희의원 등 정·관계 인사와 이웅열 코오롱 회장,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 한상렬 통일연대 상임대표, 제프리 존스 주한미상공회의소 명예회장 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또 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국대사를 비롯해 레온 라포테 주한미군사령과 일본 스미토모상사의 미야하라 겐지 회장, 미쓰이물산의 오하시 노부오 회장,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조선민족경제협력연합회, 금강산국제관광총회사 등은 조전을 통해 추모의 뜻을 전했다. ○…이에앞서 오전 7시부터 서울아산병원 3층 빈소에서 상주 영선군과 미망인 현정은씨,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정몽준 의원 등 유가족들이 천구의식(관을 움직이기 전에 지내는 제사)을 가졌으며 이어 장례식장 1층 발인장에서 유족들의 흐느낌 속에 유교식으로 발인제가 진행됐다. 영결식이 끝난 뒤 대형 영정사진 차량을 선두로 운구차, 가족과 지인 등 800여 명을 태운 버스 27대 등 장례 차량들이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잠들어 있는 경기도 하남시 창우리 선영으로 향했다. ■창우리 장지 이모저모 ○… 창우리 선산에는 유족과 지인, 현대 임직원 외에도 동네 주민 200여명이 몰려 나와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운구차가 산중턱 잔디광장에 도착하자 검은 양복차림의 운구요원 20명이 운구차에서 흰천에 싸인 영구를 꺼내 가족묘지로 옮겼고 유가족이 그 뒤를 따라 일대가 검은 상복 행렬로 뒤덮였다. 고인의 영구는 애통하게 오열하는 유가족을 뒤로 하고 부친 정주영 명예회장 묘에서 산 아래쪽으로 50m 정도 떨어진 10평 크기의 묘자리 땅 밑에 내려졌다. 하관이 끝난 뒤 상주 영선군과 정세영 명예회장, 정몽구 회장 등은 눈물을 삼키며 영구 위로 흙을 뿌렸다. ○?`정몽구 회장은 반혼제를 올린 스님들은 물론 하관식을 집행해준 장례용역회사 직원들에게까지 일일이 손을 잡으며 감사하다는 표현을 했다. 또 하관식 진행도중 고 정몽헌 회장의 장남 영선군 등 유가족의 어깨를 어루만지는등 위로하는 모습도 보였다. 특히 이날 무더운 날씨라 연신 손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간간이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정회장은 주위를 둘러보며 “나무를 좀더 옮겨다 심어야겠다”며 동생을 먼저 보내는 아픈 심경을 내비쳤다. ○ ?`이날 장지에는 몸이 불편한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을 제외한 막내 삼촌인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등 대부분의 정씨 일가가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하관식을 거행할 때는 유가족에 이어 정몽구 회장, 정몽준 의원 등 친형제,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등 몽(夢)자 돌림 사촌형제, 그리고 현대차 정의선 부사장 등 선(宣)자 돌림 순으로 제를 거행해 참석자들의 눈길을 모았다.
2003-08-08 09:5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