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바이칼에서 두번째로 가고싶은 곳은 1시간반 거리의 붉은 모래(Red sands). 바이칼의 호숫가는 거의 자갈강변인데 특이하게 이곳만 보석류인 석류석모래로 이루어져 붉은 색을 띄고 있다는 정보를 보고 궁금해져서 보러 가기로 했다. 고장난 차 발견.."오, 우리가 러시아 청년 도와줄 차례" 레드 샌드로 가던 중, 길옆에 비상등을 켜고 서있는 차와 청년들이 보였다. 설까말까 망설일 새도 없이 탄이 그 앞에 차를 세웠다. 사실 우리차를 보고 한국번호판을 달고 있는 것과 캠핑카 여행자인줄 알아차리는 러시아 사람들이 와서 말을 거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일일이 친절히 응대하지는 못해도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면 무조건 돕자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딱 그런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일행 중 마침 알렉산더라는 영어를 하는 친구가 있어서 소통이 가능했다. 차를 견인해 가까운 마을의 정비소까지 이동시켜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다행히 그 친구들에게 견인줄이 있어서 까브리 뒤쪽에 줄을 매달 곳을 찾아 연결할 수 있었다. 다른 차를 달고 운전하기는 탄이도 생전 처음이라고 한다. 한국은 워낙 시스템이 잘 돼있어 이럴 일이 없지만 여기선 흔한 일인것 같다. 이들은 이르쿠츠크에 사는 4명의 친구들이었는데 함께 여행을 하려고 출발한 지 3시간 만에 차가 갑자기 멈춰버려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고 한다. 작은 차에 4명이 타고 짐까지 가득 싣고 있었다. 우리차 앞자리에는 붙어 앉으면 3명까지 탈 수가 있어서 고장차와의 소통을 위해 알렉산더가 우리차에 동승했다. 안전을 위해 40km이하로 천천히 이동해야 했다. 시간은 두배 이상 걸렸지만 도울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즐거웠다.(고장 차량분들은 아니었겠지만--;) 가는 동안 알렉산더와 왓츠앱등록도 서로하고 우리의 여행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한국에 가보고 싶다고 하길래 오게 되면 우리에게 꼭 연락하라고 하며 카우치서핑도 추천해주었다. 한참을 달려 호수 근처의 작은 마을 바이칼스크의 한 정비소에 도착했다. 정비소에서 견인해온 차의 시동을 걸어보니 고장났던 차가 다시 움직이는 듯해 모두 기뻐했다. 하지만 또 주행중 멈출 수 있으니 일단 정비를 받아야 할 것 같았다. 헤어지기 전 우리차와 같은 모터홈이 꿈이라는 네명의 친구들에게 차를 구경시켜주었다. 다들 너무 좋아했다. 친구들은 감사의 의미로 다차에서 만든 쨈을 우리에게 선물해주었다. 함께 사진을 찍고 이렇게 또 하나의 추억이 만들어졌다. 다행히 레드샌즈가 그곳에서 멀지않아 바로 찾아갔다. 들어가는 길이 울퉁불퉁했는데 어찌어찌 잘 도착했다. 호수옆에 약간의 공터가 있어 이곳에서 차박을 했어도 괜찮았겠다 싶었다. 호숫가에 가보니 역시나 붉은 모래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른 곳과 달리 약간 따뜻한 색계통의 잔 모래가 많이 있긴 했는데 보고싶던 쨍한 붉은모래는 사람들이 가져가고 파도가 쓸어가 일이년 전부터 보기 힘들다더니 정말 보통 강변같아 보인다. 환경이 더 파괴되기 전 여기저기 열심히 돌아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그런데 몇일 후 알렉산더로부터 메세지와 사진이 왔는데 우리가 레드샌드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차를 고친 후 그들도 레드 샌드를 찾아가 보았는데 발견했다는 것이다. 지도에 나온 곳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남아있었다고 했다. 보내준 사진의 붉은색 모래가 신기하고 아주 예뻤다. 직접 보지못해 좀 아쉬운 마음이 있었지만 아직 붉은 모래가 남아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알려준 알렉산더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바이칼에서 서쪽으로 두시간 거리에 이르쿠츠크가 있다. 아마도 바이칼호수를 구경오는 사람들이 도착하는 곳이 이곳일 것이다. 여기도 꽤 큰 도시라 마트에 들러 장을 볼 생각이었는데 소통의 부재로 탄이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어두워질 때쯤 길 옆 한 카페주차장에서 밤을 보냈다. 도로 바로 옆이라 차 지나가는 소리가 커서 걱정이 되었는데 탄이 준 말랑한 귀마개가 아주 효과적이었다. 처음엔 거부감이 좀 있었는데 한번 해보니 이물감도 별로 없고 소음을 꽤 잘 막아줘서 수면에 도움이 되었다. 다시 이틀길을 달려 크라스노야르스크에 도착했다. 가는 길 위에서는 인터넷이 안되서 미리 카우치 요청을 보낼 수가 없었다. 도시에 도착해서야 급히 검색해보고 바실리라는 친구에게 당일 묵어도 되는지 요청을 보내보았다. 하지만 너무 급작스러운 요청이라 무리겠지 하며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답이 없으면 대충 길가에서 일찍 자고 내일 새벽에 또 이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내를 구경하며 밥을 먹고 있었는데 웬걸 바실리에게 답이 왔다. 그는 "No problem"이라며 시원스레 주소를 알려주었다. 너무 반갑고 감사한 마음으로 찾아갔는데 그는 시내 서쪽의 좋은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었다. "No problem" 카우치서핑으로 만난 바실리 우리가 그의 아파트 앞에 도착하자 바로 내려와서 우리 까브리에 큰 관심을 보이며 차내부를 구경하고 무척 흥미로워했다. 함께 계단을 올라가며 우리 짐을 들어주는 등 무척 친절했다. 우리는 신나게 서로의 여행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도 표트르처럼 히치하이킹으로 러시아를 돌아다닌 경험이 있어 여행자의 힘듦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바실리는 20대 후반의 IT쪽 일을 하는 청년이다. 그러나 그의 원래 꿈은 야마카시, 파쿠르같은 익스트림 스포츠를 하며 촬영하고 편집하는 방송쪽 일을 하고싶어 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에게 그가 1년동안 제작한 영상과 사진들을 보여주었는데 놀라서 감탄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우리가 하루만 머무르고 가겠다고 하자 바실리는 매우 아쉬워하며 저녁에 시간이 있으면 크라스노야르스크 시내를 구경시켜주고 싶다고 한다. 사실 차박에 지쳐 쉬고자 들른 것이었지만 친구의 성의에 감사하며 저녁시간에 함께 외출을 나섰다. 차가 있는 폴이란 친구를 불러 우리를 태우고 크라스노야르스크의 야경을 볼 수 있는 "콘카"라는 곳에 올라갔다. 예니세이강과 불빛이 아름다운 다리가 보이고 도시의 불빛이 별처럼 반짝였다. 강때문인지 도시에 구름이 내려앉은듯 안개가 낀 풍경이 더욱 신비로워 보였다. 친구 덕분에 이런 풍경을 보는구나 싶어 정말 고마웠다. 다음엔 시내의 차가 다니지 않는 거리인 미라, 레닌, 마르크스 거리로 갔다. 그곳에서 바실리의 여자친구 크리스가 합류했는데 마침 광장의 커다란 무대에서 무료콘서트가 진행 중이어서 운좋게 구경할 수 있었다. 처음 듣는 음악이었지만 사람들 틈에 섞여 잠깐의 흥겨움을 느낄 수 있었다. 단 하룻밤 머물렀지만.. 아름다웠던 크라스노야르스크의 추억 걷다보니 전망대에서 봤던 불빛이 아름다운 다리에 왔다. 솜씨 좋은 바실리가 적극적으로 우리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포즈를 취하라고 열심이다. 친구들 모두 어찌나 사려깊던지 춥지않냐며 괜찮다고 해도 옷을 빌려주고 계속해서 필요한 것이 없는지 살피고 물어봐주어서 너무 고맙고 황송할 지경이었다. 멋진 밤외출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크리스의 엄마가 만드신 케이크를 같이 먹었는데 과일이 들어있어 새콤달콤 너무 맛있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웃고 떠들며 좋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바실리가 아니었으면 차타고 그저 스쳐가는 지역중 하나였을텐데 비록 단 하루였지만 그의 덕분에 크라스노야르스크는 러시아의 아름다운 도시로 기억에 강하게 남았다.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바실리는 뭘 도와줄까 물어보고 엄마의 다차에서 가져온 양파며 감자 등을 가져가라며 잔뜩 주었다. 편하게 쉬고 씻고 세탁도 할 수 있게 해주고 커다란 추억을 만들어준 바실리에게 너무너무 감사하다. 지금 생각하면 뭐 그리 급한 일이 있다고 하루만에 나왔을까, 아쉬워하는 친구와 하루라도 더 같이 보내며 여유 있게 이야기도 나누고 할걸 하는 마음이 든다. 여행 초반이라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에게 몇가지 선물을 했는데 그중 한국에서 사간 눈오리 집게가 있었다. 그런데 몇달후 겨울에 바실리는 그가 직접 만든 눈오리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잘 활용하고 있는 것같아 반갑고 기분 좋았다. 아쉬운 마음에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지만 우린 다음날 노보시비르스크를 향해 출발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osoydnMxZsg&t=375s>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4-15 10:16:30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차에서만 지내기 5일째, 러시아 카우치 서핑 친구 문코네서 겨우 샤워는 한번 했지만 제대로 된 숙소에서 건강도 회복하고 쉬고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다음 도시에서는 꼭 편히 쉴 수 있겠지 하는 희망을 품고 치타를 떠나 부랴트 공화국의 수도라는 울란우데를 향해 간다. 넓은 초원에 풀 뜯는 말들.. "여기는 몽골 같네" 울란우데가 가까와지자 도로옆을 따라 "셀렝가"라는 예쁜 강이 흐른다. 넓은 초원에 풀을 뜯는 말들도 여러마리 보인다. 도로면도 좋아져 운전하기가 한결 편해졌고 지금껏 보아온 작은 마을들과는 다르게 잘 사는 동네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울란우데에 들어서니 과연 큰 도시였다. 중심가에는 꽤 높은 빌딩도 여럿 보이고 몽골풍의 건물과 육교, 벽화 등이 무척 이국적인 분위기였다. 길에 다니는 사람들이 모두 한국인 같아보여 여기가 러시아라는 사실이 잘 안 믿겨질 정도였다. 오랜만에 도시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제대로 된 숙소를 잡아 하루이틀 푹 쉬어보기 위해 검색을 했다. 러시아에서는 에어비앤비나 구글은 제기능을 하지 못했다. 대신 슈퍼스타의 장사장님이 알려준 "오스트로복(Ostrovok)"이라는 숙박앱으로 주차가능, 와이파이, 주방이 있는 숙소를 찾았다. 러시아에서 우리끼리 숙소를 예약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앱을 통해 숙박비까지 지불하고 나니 달랑 전화번호를 하나 알려준다. "헉, 상세주소도 없이 전화번호만 나오네?" 좀 당황했지만 제발 주인이 영어를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전화를 해보니 자동응답 러시아어만 반복해서 나온다. 아마도 없는 번호라는 듯하다. 돈은 이미 지불되었는데 날린걸까, 여기서도 못쉬고 또 차에서 자야하나 낙심해서 어쩔줄 몰랐다. 한참을 고민하다 하바롭스크의 이반이 생각났다.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메신저 '왓츠앱(whats)으로 예약한 스샷과 전화번호를 보내며 "이게 어떻게 된건지 좀 알아봐달라"고 도움을 청해보았다. 고맙게도 이반이 바로 답을 보내주었다. 역시나 잘못된 번호란다. 아마도 집주인이 숙소등록을 할때 번호를 잘못 입력한게 아닐까 싶었다. 기다리라고 한 후 한참을 알아봐주더니 너무 반가운 답이 왔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인과 연락이 닿았고 예약은 잘되서 주인이 우리 문자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반의 도움으로 체크인시간보다 이른시간에 잘 안내받아 숙소에 찾아갈 수 있었다. 엘레베이터가 있는 8층 높이의 아파트였는데 생각보다 매우 좋았다. 러시아식 에어비앤비인듯 일반 아파트에 주방, 테이블, 소파, 침대, 넓은 방과 거실, 깨끗한 화장실과 욕실. 그리고 멋진 욕조까지!!! 아파트의 넓은 발코니에서는 울란우데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바로 옆에는 1965년에 지어진듯한 전차 종점이 있었는데 아직도 사용되는듯 전차들이 오가는 모습을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러시아식 에어비앤비에서 '풀충전' 새 길을 갈 힘을 얻었다 꽤 큰 욕조에 물을 받아 몸을 담그니 피로가 한순간에 날아가는듯 행복했다. 이틀간 잘 쉬고 풀충전을 하고 새 길을 갈 힘을 얻었다. 카우치 친구네집에 묵는 것이 좋은 경험과 인연을 만들 수 있어 감사하고 기쁜일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문화차이가 큰, 처음만난 사람과 함께 지낸다는 것이 서로 마냥 쉬운일은 아니다. 매사에 조심하고 배려하느라 신경쓸 일이 아주 많은 편이다. 그래서 숙소를 잡는 것은 누구 눈치볼 것 없이 우리끼리 편안하게 쉬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 이튿날 낮 12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한국식당을 찾아 오랜만에 비빔밥과 국수로 기분좋게 배를 채웠다. 무엇하나 부족함 없고 오히려 넘쳤던 울란우데에서 잘 먹고 잘 쉬고 다시 서쪽으로 이동한다. 시간변경선을 두세개 지나온 듯하다. 한참 이동하다보면 스마트폰 시간이 자동차의 시계와 다른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비행기여행과는 달리 이동하며 한시간씩 시간이 빨라지는 경험이 희안하다. 시차는 걱정할 일이 없다. 바이칼 호수가 점점 가까워 온다. 세계에서 가장 큰 호수라는 바이칼. 유명한 이름만큼 기대가 컸다. 드디어 나타난 바다같은 커다란 호수를 발견하고 "와!" 소리를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절대 호수라는 상상도 못할듯한 끝없는 수평선. 우리가 바이칼에 왔구나! 이것이 세계 최대호수 바이칼! 우리는 바이칼 호수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싶어 호수 남쪽에 있는 "바이칼 자연사 박물관"을 찾아갔다. 시간변경선 덕으로 한시간을 벌었고 꽤 늦은 7시까지 한다고 해서 여유있게 입장할 수 있었다. 이곳은 아마도 우리가 러시아를 여행중에 방문하게 될 유일한 관광지일듯 싶었다. 입장료는 인당 200루블(약 4000원). 박물관에는 바이칼에 사는 동-식물들, 구전되는 이야기들, 환경생태등에 대한 전시를 하고 있었고 특히 안쪽에 '사람들과 바이칼(People and Baikal)'이라는 전시공간에는 바이칼의 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하는 콘텐츠가 있었는데 무척 인상적이었다 안내하는 직원분이 본인 휴대폰으로 영어번역을 해가며 열심히 시범도 보이고 우리가 그곳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히 도와주셨다. 사람이 살게되면 자연은 오염될 수밖에 없는걸까? 깨끗하다고만 알고있던 바이칼이 이렇게 심각한 오염이 진행중이고 수중생물들이 위협을 받고있다니 마음이 착잡했다. 한가지 놀랐던 것은 박물관 시설이 여태껏 우리가 러시아에서 봐온 모든 것과 너무도 수준차이가 났던 것이었다. 서울이라고 해도 믿어질 정도의 최첨단 관람시설에 화장실도 고급스럽고 청결하고 휴지와 비누 등이 잘 갖춰져 있었다. 박물관 2층에 쇼파와 로비공간이 있어서 엄청난 바람에 거센 파도가 치는 바이칼호를 한동안 편하게 바라보았다. 야외에도 어린이들이 놀수있는 시설들이 공원처럼 예쁘게 조성되어 있었다. 관람을 마친 우리는 그곳의 시설수준에 반해서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에서 하루 머물 생각으로 멋진 주차장에서 차박준비를 다 하고 저녁을 먹고있는데 누가 차를 두드린다. 관리하시는 직원이 이곳에서 차박은 안된다고 하시는듯ㅠㅠ... 서둘러 먹던것을 정리하고 차를 이동하니 마지막으로 나가는 우리차 뒤에서 주차장 차단기가 내려간다. 쫓겨나 풀이 죽은 나는 여기서 멀리 도망가고 싶었는데 탄이 나가자마자 있는 호수옆 작은 공터에 차를대면 어떻겠냐고 한다. 괜찮을까 걱정했지만 차가 많이 다니는 길이 아니고 차를 세울만한 공간이 있어 그러기로 했다. 그날밤 거센 바람에 차가 흔들리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장대비와 호수의 파도소리는 귓가를 때렸고 그 와중에 또 누가 여기서도 자면 안된다며 차를 두드리는 건 아닌가 신경이 곤두서 한참을 잠을 이루지 못했다가 죽은듯 잠들었다. "일어나자마자 최고의 뷰라는게 바로 이런거구나." 다음날 깨어보니 거짓말처럼 날이 개어있었다. 바다같은 호수에 아침해가 떠서 구름사이로 몽환적인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차박의 진수를 맛보았다. 바이칼 호수위를 해리포터처럼 빗자루를 타고 날고싶은 내마음을 담아 드론을 띄웠다. 최대한 낮게 띄워달라고 탄에게 부탁했다. 대리만족이었지만 찍힌 영상을 보니 어떤 느낌일지 생생히 상상이 되어 마음이 두근두근했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바이칼호수의 두번째 목적지인 레드샌드를 향해 출발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0PgyJHksakw>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4-15 10:14:33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우리는 러시아 친구 이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러시아여행은 9월이 가장 좋다고 한다. 러시아어에 대해서도 많이 물어보고 배웠는데 발음을 따라하기가 무지무지 어려웠다. 하루는 이반이 자기 친구들이 다차에서 모여 바베큐파티를 하는데 같이 가겠냐고 물어보았다. 눈이 휘둥그래졌다. 러시아사람들의 리얼한 삶을 볼 수 있는 멋진 기회다. "그럼~ 너무너무 가고싶지!" 비가 보슬보슬 오고 있었지만 그깟 날씨가 대수랴. 우리는 이반에게 초대 받으면 빈손으로 갈수는 없다며 중간에 과일 파는 곳에 들러달라고 부탁했다. 작은 시장에서 수박과 이반이 좋아하는 처음보는 베리류를 샀다. 과일값이 한국의 반의반이다. 시내를 조금 벗어나자 금새 시골풍경이 나온다. 어떤 시골 길가에 차를 세우고 진흙탕길을 꽤 걸어들어가자 이반 친구 니콜라이의 다차가 나왔다. 나무집 옆에 텃밭 키우는 어르신들 "우리와 똑같네" 다차란 소비에트 시절 부족한 배급과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개인에게 작은 땅과 나무집을 나눠준 것을 말한다고 한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별로 없고 주로 나이드신 분들이 다차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자식들을 위해 채소와 곡식 등을 농사지어 열심히 나누어주신다고 한다. 우리네 시골 부모님들과 다를 바 없다고 느꼈다. 오래 보이는 2층 나무집이 있었고 주변에 채소들이 이것저것 자라고 있었다. 마당에는 친구들이 일찌감치 도착해 피운 모닥불과 페치카에서 바베큐가 익어가고 있었고 테이블에는 벌써 음식이 한상 가득 차려져 있었다. 근육질이지만 상냥한 빅토르, 다정한 이고르와 베카부부, 덩치 크고 산적같은 인상의 니콜라이, 그리고 많은 꼬맹이들. 다 모이니 열댓명이 다 되는 대가족이다. 너무 친절한 그들.. '러시아 사람' 선입견 확 깨는 순간 다들 처음 봤지만 너무너무 친절하게 우리를 환영해주고 마치 오랜 친구처럼 마음을 열어 대해주었다. 러시아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이 완전히 깨지는 순간이었다. 특히 릴리아라는 11살 소녀는 계속 내 주변을 맴돌며 나와 이야기를 하고싶어 했는데 번역기로 소통하기엔 한계가 있어 안타까웠다. 계속 나를 따라다니며 먹을 것과 모기약 등을 챙겨주고 흙바닥에서 덤블링을 하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를 많이 좋아해주는 것이 느껴져 내가 뭐라고 이리 잘해주나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음식도 좋고 사람들도 다 좋았는데 한가지 시로의 취약점 곤충, 특히나 질색하는 모기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릴리아가 가져다준 몸에 뿌리는 모기기피제를 온몸에 잔뜩 뿌리고 연기나는 모닥불 앞에만 딱 붙어있었지만 새로온 동양인의 피맛 소문이 쫘악 퍼졌는지 모기들은 맛집을 찾아 몰려왔다. 내가 모기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을 눈치챈 아이들이 돌아가며 열심히 연기를 퍼트리거나 해서 모기를 쫓아주려 해서 무척 고마웠다. 마당 한켠에는 도끼와 모닥불에 사용하는 나무들이 쌓여있었는데 탄이 장작을 패보겠다며 도전한다. "익!, 잇!" 기합만 잔뜩 들어가고 나무는 도끼에 박혀 콩콩 찧기만 한다. 그걸 본 빅토르가 뛰어들어 도끼를 넘겨받고 자기가 하는 것을 보라는 듯 친절하게 시범을 보인다. 두번만에 시원스레 쩍 갈라지는 나무토막. 역시 경험이 중요하다. 탄이 요령을 배운뒤 다시 도전했는데 다섯번 찍은 후에 겨우 성공했다. 괜찮아, 처음인데 그만하면 잘했어!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은 이반 밖에 없어서 주로 그가 통역해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중, 니콜라이가 "왜 이런 여행을 하기로 결심했냐?"고 물어왔다. 순간 머리속에 '한살이라도 어릴때 하려고?, 원래 여행을 좋아해서?, 배울 것이 있어서?' 등등 여러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갑자기 내 입에서 불쑥 "Why not?" 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왜 이런 여행을 하기로 결심했냐?" "Why not?" 왜 이런 여행을 하기로 결심하지 않겠어. 라는 대답이었지만 그 안에 여러 의미가 함축되있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이 여행을 하지못할 이유가 없었다. 많지 않지만 여행이 가능할 만큼의 돈이 있었고 직장과 자녀에 매어있지도 않았고 둘다 여행에 문제없을 만큼의 건강도 있었고 여러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일 마음이 있었고 매일 생길 문제들을 감당할 각오도 되어있었다. 갑작스런 질문에 즉흥적으로 한 대답이었지만 꽤나 만족스러운 답변이었고 이 말을 들은 친구들 모두 환호하며 멋지다고 말해주었다. 마음이 통한것 같았다. 저녁 늦게 깜깜해지도록 샤슬릭, 바베큐, 샐러드등 먹을 것과 보드카, 맥주등 술도 배가 터지도록 맛있게 먹었다. 어두워지자 스파클라(손에 드는 작은 불꽃놀이)를 들고 즐겁게 놀았다. 정말 돈주고 살 수 없는 너무도 따뜻하고 멋지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샤슬릭을 비롯 다양한 음식이 차려졌다. 팔뚝보다 큰 연어로 만든 요리.. 운 좋게 '카나페'까지 몇일 후 이반이 팔뚝보다 큰 연어를 한마리 사왔다. 러시아 생선요리를 맛보게 해준다고 한다. 직접 커다란 연어를 손질하는데 섬세한 정성이 느껴졌다. 연어를 얇게 잘라 해바라기씨유, 소금, 그리고 양파를 켜켜이 쌓아 냉장고에 몇시간 둔다. 일부는 식초물을 제조해서 연어살을 덩어리째 담궈둔다. 두가지 방법으로 만든 연어를 맛보고 맛을 비교해보라고 했는데 초절임도 나쁘지 않았지만 양파와 함께 먹는 것이 더 입맛에 맞았다. 운이 좋게도 연어가 암놈이어서 연어알 카나페도 만들어 먹었다. 이반의 여자친구인 아냐도 함께 요리하고 같이 식사를 즐겼다. 아냐는 영어를 못해 소통은 어려웠지만 수줍어하면서도 우리에게 예의있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이 느껴져 참 고마왔다. 남친집에 온 군식구때문에 더블침대를 못쓰고 간이침대에서 둘이 불편하게 자야하는게 불만스러울 수도 있을텐데 그런 내색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민망해서 모른척 지나가는 우리를 발견하고는 씨익 웃어주기도 했다. 집에 손님만 두고 여행 떠난 이반.. 놀랍도록 서로 믿는 '카우치서퍼'들 밀린 유튜브영상작업도 하고 잘 쉬며 일주일쯤 되었을 때 이반이 갑자기 다른 손님이 더 온다고 한다. 예전에 카우치서핑으로 알게 된 부인과 아이들이 하바롭스크에 오는데 재워달라고 요청을 해서 그러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우리가 있는 큰 방 바닥에서 자고 자기가 쓰던 공간을 그들에게 빌려준다고 하는 것이었다. 우리 상식으로 잘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이 친구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을 재워주곤 하는 것 같았다. 처음엔 잠깐 '우리에게 이만 나가라고 하는 건가?'하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런게 아니었다. 그래서 주인이 바닥에서 자는건 표트르때로 충분하다 싶어 "아니야 네가 이 집의 주인이잖아. 우리는 차에서 매트리스를 가져올테니 네가 침대를 사용해."라고 했다. 그렇게 한지붕 세가족의 희안한 동거가 이틀정도 지났을때 이반이 또 갑자기 여행을 떠난다는 이야기를 했다. 늦은 여름휴가로 블라디보스톡에 간다고 하는 것이다. "어? 그럼 우린? 우리는 그 다음날 떠날 예정이었는데?" 이반은 아무렇지 않은듯 예정대로 하라며 집에 우리와 새 손님가족만 남기고 기차를 타고 떠났다. 카우치서퍼들의 신기하리만큼 서로를 신뢰하는 일들을 예전에도 겪어본 적이 있지만 이반은 정말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를 믿어주고 여행자를 돕고 하는 모습이 그냥 살아있는 천사 같았다. 이반이 여행가는 날 까브리로 역까지 바래다주었다. 이반은 집을 낯선이들에게 맡기고 떠나는 데 마냥 해맑았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믿어주는지 고마울 따름이다. 이별의 포옹을 하고 언젠가 한국에서 꼭 다시 만나자고 하자 우리에게 "좋은 여행이 되기를, 너희가 계획한 세계의 모든 나라들을 방문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해주었다. 러시아에서 참 신기한 좋은 친구가 생겼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com/@user-hb5up3dh1o?si=4LHlTLkQKDiU4cLz>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2-28 15:54:02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항카 호숫가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6시도 안 된 이른 새벽에 눈이 떠졌다. 밥 먹고 할 게 없어 일찍 자서 그런가보다. 사방이 조용하고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만 들린다. 주변에 텐트 치고 자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 조용조용 호숫가로 걸어갔다. 날이 흐려서 하늘이고 호수고 온통 회색빛인 것이 마치 수묵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호수 위에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물 위를 날아다니는 새들이 평화롭고 운치 있어 보인다. 하바롭스크의 천사, 이반네 식객이 되다 어제 저녁 마음 졸이며 지나온 비포장 길을 다시 나와 북쪽으로 향한다. 도로 상태가 우리나라 같지 않아서 길이 갑자기 안 좋아지곤 한다. 바퀴가 빠지도록 큰, 푹 패인 포트홀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은 다반사이고 아예 비포장인 도로도 자주 만난다. 다음 목적지인 하바롭스크에서는 이반이라는 러시아친구를 카우치서핑을 통해 알게 되어 그의 집에 묵기로 했었다. 새벽길을 달려 6시반쯤 하바롭스크에 도착했다. 너무 이른시간이라 일단은 우리끼리 하바롭스크를 구경하기로 했다. 하바롭스크는 극동 러시아에서 가장 큰, 인구 130만의 대도시이다. 몇일간 집구경, 사람구경을 거의 못하다가 대도시로 들어오니 신호등과 사람들, 거리의 상점들 등 익숙한 도시의 풍경이 반가왔다. 커다란 몰과 마트를 보고 들어가보았다. 한국은 밤이건 낮이건 어디서건 차가 고장이 나거나 문제가 생기면 전화 한통으로 보험서비스가 출동하기때문에 이제는 사람들이 찾지 않아 구하기 힘들었던 자동차 자키(타이어 교체 등을 위해 차를 드는 도구)와 복스세트(타이어 교체공구)를 여기에서는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탄이 나에게 사고싶은 것들의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한다. 직원에게 물어보려고 필요하다고 한다. 11년전 우리는 스페인어권 나라들에서 자주 그림을 그려 의사소통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인터넷이 되는 스마트폰이 있는데 왜 그림이 필요한지 의아한 마음에 “구글에서 사진 검색해서 보여주면 되잖아?”라고 되물었더니 깜짝 놀라며 “아! 그러면 되는구나. 굿아이디어~”하며 머쓱해서 도망간다. 직원을 찾아 물어보았더니 다행히 그 역할을 하는 제품이 있다고 한다. 우리 까브리도 들 수 있는지 사용법은 어떤지 이것저것 스마트폰 번역기를 통해 물어보자 직원 두 분이 사용법도 직접 시연해 보이며 알려주신다. 러시아에도 친절한 사람이 있다! 필요한 도구를 기분좋게 구입한 후 중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나니 반가운 이반의 메세지가 와있었다. 이제 일어났다며 집주소를 알려주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완전 올빼미형 인간이었다. 우리는 신이나서 이반네 집으로 향했다. 스탈린 시대 지어진 저층아파트.. "옛날 생각 나네" 이반이 사는 집은 스탈린 시대에 지어진 60여년이 된 저층아파트이다. 단지가 매우 넓어서 똑같은 건물이 많은데다 우리나라처럼 건물에 번호 같은건 없어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한참을 헤메다 겨우 발견했다. 비가 오면 거대한 물웅덩이가 생기는 흙바닥이었지만 그래도 까브리를 안전하게 주차할 수 있는 공간도 있고 건물입구와 집 현관이 항상 잠겨있어 안전하게 느껴졌다. 갈색 고수머리에 흰피부의 서양인 같은 이반은 2층에 혼자 살고 있었다. 맨 안쪽방을 우리가 머물도록 해주었는데 그가 침실로 쓰던 더블베드가 있는 큰방이었다. 그리고 이반은 그 옆에 방겸 복도같은 공간에 컴퓨터와 간이침대같은 것을 놓고 잤는데 우리가 화장실을 가거나 외출하려면 그곳을 지나가야해서 프라이버시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 곳이었다. 그후 여러번 아침에 외출하다가 이반이 여자친구와 그 작은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보고 조용히 나가려다 눈이 마주쳐 어색하게 모른척한 적이 많았다. 참 미안하고 고마운 일이었다. 이반네 아파트의 특이한 점은 창이 홑창이고 층고가 매우 높았다. 겨울엔 우리나라보다도 무지무지 추울텐데 괜찮나 싶었다. 겨울에 오지 않아 다행이다. 엘레베이터가 없는 건물이었지만 다행히 2층이어서 걸어오를만 했고 방에는 에어컨도 있어 쉬며 밀린 유튜브 작업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오면서 더위에 허덕이던 우리는 더위가 한풀 꺾일 때까지 이 곳에 머물고 싶었다. 원래는 3~4일간 머무르는 예정으로 카우치 요청을 했었는데 혹시 몇 일 더 있어도 되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이반은 시원스럽게 너희 원하는 만큼 있어도 된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우리는 기뻐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반네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의 직업은 중고차 부품유통업이라고 한다. 한국음식을 좋아하며 매운 것도 잘 먹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음식이 매운 해물탕이며 가끔 시내의 한국식당에 먹으러 간다는 말에 우리는 무척 놀랬다. 매운걸 전혀 못먹을 것 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집에 함께 살며 육개장, 짜장면, 김치찌개 등 여러 가지 한국음식을 이반에게 해주었는데 다 좋아하며 잘 먹었다. 심지어 매운 것은 탄이보다 더 잘 먹었다. 몇일 지나 이반이 감기에 걸려 매우 기운이 없을 때가 있었는데 탄이랑 멀리 큰 마트에서 장을 봐와서 킹크랩과 문어, 새우, 관자 등 여러 해산물을 넣은 해물탕을 해주었다. 이반은 “내 부엌에서 해물탕이 만들어지다니 너무 신기해!”라면서 눈에 생기가 도는 모습에 매우 뿌듯했다. 탄에게 “정말 맛있어. 탄 너는 좋은 쉐프야”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러시아 여행은 9월이 가장 좋다는 팁까지.. 우리는 이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러시아 여행은 9월이 가장 좋다고 한다. 러시아어에 대해서도 많이 물어보고 배웠는데 발음을 따라하기가 무지무지 어려웠다. 이번 생에 러시아어 발음까지는 힘들 것 같아 미안해 이반... 저녁식사 중에 보드카 이야기가 나왔는데 독한 술을 싫어하는 시로가 유일하게 마실 수 있는 것이 ‘루스키 스탠다드’라는 보드카라는 이야기를 했다. 회사 출장으로 모스크바에 갔을 때 얼굴 찡그리며 한잔 억지로 마시다가 “어?”했던것이 보통 40도 넘는 독주는 목이 타들어가 듯이 불편함이 있었는데 전혀 그런 것이 없이 마시기 좋은 느낌이었던 기억이 났다. 말이 나온김에 집에 가는 길에 한병 사서 이반네 집에서 다같이 마시기로 했다. 집에 와보니 정전이다. 한국에선 열살 이후로는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지만 핸드폰 불빛을 손전등처럼 비추니 오히려 분위기 있어 좋았다. 이반이 러시아에서 보드카 마시는 법이라며 안주로 해바라기씨유에 겨자와 소금을 섞어 빵을 찍어 먹어보라고 했다. 작은 보드카 한병으로 모두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 차 타고 세계여행' 365일]은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com/@user-hb5up3dh1o?si=4LHlTLkQKDiU4cLz>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2-27 15:47:56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우리는 가능하면 블라디보스톡에서도 카우치서핑을 통해 현지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다. 카우치서핑은 17년 역사의 여행자와 현지인을 연결해주는 시스템이다. 여행자는 묵을 곳을 구할 수 있고 현지인은 여행자를 초대해 대리경험을 하며 친구를 사귈 수 있다. 공유숙박과는 달리 돈은 절대 받지 않는다. 대신 작은 선물이나 음식을 나누며 감사함을 표시하면 된다. 우리는 11년 전 여행에서 처음 이 사이트를 알게 되어 이곳을 통해 여러 외국친구들을 사귀었는데 현지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곳의 진짜 삶을 경험하고 관광객은 모르는 곳을 방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너무도 좋은 기억이 많았다. ★블라디보스톡에서도 러시아 친구를 사귈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 우리의 여행계획을 카우치서핑에 올려놨는데 이를 보고 몇몇의 친구들이 감사하게도 연락을 주었다. 쏘냐는 여행을 무척 좋아하는 친구였다. 처음엔 우리를 자기 집에 게스트로 초대했었는데 갑자기 여행계획이 생겨 취소되었지만 대신 페루 식당에서 그의 친구들 라다, 사샤와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르바트 거리에서 걸어갈 수 있는 곳에 있는 리마라는 이 식당은 엔칠라다가 매우 맛있었다. 다들 한국과 여행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러시아 청년들이어서 공통된 관심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무척 즐거웠다. 식당벽에 사진과 차키가 붙어있어 관심을 끌어서 우리 중 한명이 식당주인에게 물어보았더니 세계여행을 하고 온 영국사람이 차키를 여기 두고 간 것을 걸어놓은 것이라고 한다. 뭔가 운명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춤과 사진촬영을 좋아하는 엘레나라는 친구도 만났는데 매우 톡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마치 모델이 된듯한 기분으로 그녀의 요청에 이리저리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는데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특별히 유리는 우리가 출발 약 6개월 전에 곧 갈 수 있을 줄 알고 미리 여행계획을 올려놓은 글을 일찍 보고 메세지를 주고받던 친구였는데 자꾸 미뤄져서 미안한 마음에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친구였다. 그런데 우리가 한국을 떠나기 직전 그가 "한국에서 블라디보스톡 오는 배가 다시 다닌다고 하더라" 하는 메세지를 보내왔다. '와 그 소식을 듣고 우리를 떠올려주다니!' 고맙고 감동이었다. 우리는 바로 "맞아! 우리가 그 배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으로 갈꺼야! 곧 만나자."라고 답을 보냈다. 우리는 언덕 위의 한 카페에서 그의 두 딸 마리아, 달리아와 유리를 만났다. 영어가 서툴렀던 유리는 주로 딸들을 통해 이야기를 했다. 간접적인 소통이 답답하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에 우리와 정말 친해지고 싶고 알고싶어하는 마음이 전해져 너무도 따뜻하고 좋았다. 집이 작아서 우리를 초대하기는 힘들다며 오히려 미안해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잔뜩 주었다. 초콜렛이 씌워진 전통간식과 연유, 그리고 콰스라는 러시아 전통음료였다. 콰스는 맛을 보니 우리나라의 맥콜과 비슷한 것이 매우 마음에 들어 러시아 여행 내내 마트에서 종종 사다 마셨다. 마지막으로 밝은 미소가 멋진 에너지 킹, 표트르를 아르바트 거리에서 만났다. 아르바트 거리에는 매일 락, 발라드, 클래식 등의 음악을 바이올린, 플루트, 기타 등 다양한 뮤지션들이 버스킹을 한다. 우리와 함께 거리를 따라 걷던 표트르가 기타치며 노래하는 버스커를 보자 갑자기 옆에 걸터앉아 같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놀란 토끼눈이 된 우리는 '헉 이래도 되나? 연주자에게 무례한 행동은 아닌가?' 싶어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는 심지어 버스커보다 더 큰소리로 신나게 노래를 했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자 그 버스커는 열심히 박수치는 우리는 제쳐두고 표트르에게 무척 고마와했다. 신기한 광경이었다. 우와 이런 것이 문화의 차이인가보다. 계속해서 우리는 아래쪽 바닷가를 함께 걸었다. 해양공원과 놀이기구들이 있었는데 우리끼리였다면 긴장하고 다녀야해서 못보고 지나칠 것들을 친구와 함께다니니 마음이 편해 기발한 화장실 픽토그램 등 많은 새롭고 재미있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어릴 때부터 태권도, 쿵푸, 가라데 등을 접하며 아시아 문화를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히치하이킹으로 동러시아를 몇달간 여행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청년때 전국 무전여행을 하셨다는 나의 아버지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제 우리나라에선 생각하기 힘든 히치하이킹이 가능하다니 러시아는 아직도 50년 전의 정이 남아있는 나라인가 싶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지자 불쑥 "우리 집에 게스트로 올래?" 하고 제안해준다. 예정에 없었지만 현지친구의 집에 묵는 좋은 기회를 놓칠소냐. 우리는 짐을 가지고 그의 집으로 갔다. 그곳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6층건물 맨위층이었는데 충격적이었던 것은 주방에 싱크대가 없어 화장실에서 물을 써야했고 원룸에 접이식소파배드가 하나 있었는데 우리에게 침대를 양보하고 표트르는 바닥에서 잤다. 그가 누우면 바닥이 꽉 찰 정도로 좁았다. 덜컥 초대를 받고 왔지만 한방에서 이렇게 지낼줄은 몰랐어서 미안스럽고 당황스러우면서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보통 집이 넓고 많은 것들을 갖추어야 손님을 초대할 수 있고 제대로 대접하는 것이 라 생각하고 그렇지 못하다면 아예 누구를 초대하거나 하는 것을 피하는데 표트르는 풍족하지 않아도 가진 것을 나누고 함께하며 즐거워하였다. 그의 모습에 무언가 커다란 것을 배운 것 같았다. 그가 일하고 있는 시내에 새로 지은 39층 빌딩에 따라가 보았다. 아직 시멘트벽 상태였지만 통유리창 너머 블라디보스톡 항구와 바다를 가로지르는 대교가 보이는 상상초월의 황홀한 뷰에 말문이 막혔다. "와아! 미쳤네! 환상적이다! 내 눈앞에 펼쳐진 이 풍경이 정말 현실이라고? 말도 안돼!" 한동안 푹 빠져 창앞을 떠나지 못하던 나는 표트르에게 호기롭게 말했다. "표트르, 여기 인테리어를 퍼펙트하게 해주길 바래. 우리 여행이 끝날때쯤 유튜브로 돈 많이 벌면 이곳을 살꺼니까!" 이 집에 들어올 사람이 너무너무 부러웠다. 우리는 표트르네서 그가 해준 아크로슈카(러시아음식)도 먹고 북한식당도 같이 가보고 하며 즐겁게 이틀을 함께 보냈는데 뭔가 낌새가 좀 이상했다. 사실 우리는 차를 되찾을때까지 표트르와 함께 있을 생각으로 온건데 그는 이틀 후에 또다시 6개월이상의 무전여행을 떠난다고 하는거다. 뭔가 영어의 소통이 불충분했나보다. 하여튼 그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그의 여행 준비를 도우며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가기로 했다. 표트르는 여행을 떠나기 전 집의 음식을 없애야한다며 우리에게 병조림과 쌀 등을 잔뜩 주었다. 몇일 후 우리도 차를 되찾아 여행을 시작할테니 가다가 혹시 길에서 얻어탈 차를 찾고 있는 표트르를 만나게 되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는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여행을 축복하고 아쉬운 작별인사를 했다. 이렇게 맛난 것도 먹고 구경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며 시간을 보내던 중 드디어 러시아통관대행사로부터 우리 차가 나온다는 연락이 왔다. 차에 고추장이며 온갖 한국음식과 탄의 촬영장비 등 짐을 잔뜩 실어서 세관에서 혹 트집을 잡거나 큰 돈을 요구하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는데 예상하던 최단시일인 열흘만에 추가비용은 하나 없이 가장 좋은 상황으로 차를 되찾게 되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항구로 가서 통관세를 내고 몇가지 확인을 한 후 차를 세워둔 곳으로 갔다. 철망 문이 열리며 까브리가 나오자 달려가 와락 안고싶었다. 없어진 것 하나없이 다시 만난 까브리가 너무 반가웠고 장해보였다. 차를 찾아 제일 먼저 한 것은 주유소 가기. 러시아는 기름값이 한국의 반값이다. 기름을 빵빵하게 넣은 까브리에 앉아 운전대를 잡은 탄이 무지 신나보인다. 힘들게 걸어다녀야했던 블라디보스톡을 차타고 드라이브하니 기분이 새롭고 매우 좋았다. 그동안 많은 도움을 받고 친해진 슈퍼스타사장님께 작별인사를 했다. 이제 배가 다시 다니니까 제발 게스트하우스를 그만두지 마시라고 우리 뒤에 오실 분들을 생각해달라고 다시한번 간절히 부탁드렸고 사장님은 러시아 여행 중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감사한 이야기를 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정말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일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드디어 까브리와 정처없는 긴 여행을 시작한다고 생각하니 두근두근 가슴이 설레었다. “이제 정말 진짜 시작이구나. Go West! 내차타고 가는 세계여행 출발!”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이 기사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com/@user-hb5up3dh1o?si=4LHlTLkQKDiU4cLz>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2-15 13:47:47[파이낸셜뉴스] 지난 2월 3일, 중국 난징의 유명한 온라인 영어신문 ‘난징어’에 ‘29세 한국 여자, 상하이에서 런던까지 자전거로 239일, 8460km를 달리다.’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지난 2018년 6월 2일 상하이에서 출발한 저자는 1월 26일 런던에 도착했다. ‘시크로드’는 중국 최대 온라인 IT전문매체 ‘테크노드’의 영문기자였던 저자의 8개월짜리 프로젝트로 자전거를 타고 실크로드의 여러 나라를 찾아가 창업가들을 인터뷰하고 현지 사람들을 모아 자전거 여행 이야기를 나누며 꿈을 이루는 메시지를 전했다. 저자는 상하이에서 런던까지 동서양 문명길을 달려 사람의 향기를 찾아갔다. 저자는 중앙아시아에서는 주로 민박을 하고, 터키와 유럽에서는 ‘카우치 서핑’과 ‘웜 샤워’를 이용해 숙식을 해결하면서 동양과 서양을 잇는 세상 사람들의 깊은 인정과 다양한 향기를 체험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터키에서 만난 두 이란 자전거여행자에게서 받은 감명도 털어놓았다. 그리스 산속 작은 마을에서는 한국의 방과후교실과 같은 학교를 찾아갔는데 정부 도움 없이 순전히 그곳이 고향인 세 남매의 힘으로 운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의 작은 마을, 중세에 세워진 성안에서 약혼자와 함께 살며 저자를 초대한 셀모라는 37세 청년을 만난 것도 큰 충격이라고 했다. 힘들었던 일도 많아서 그리스에서는 오토바이를 탄 치한을 만나 위험한 순간을 만나기도 했다. 몬테네그로에서는 핸드폰이 고장 나 두 번이나 수리점을 찾았으나 고칠 수 없어서 7일 동안 핸드폰 없이 길거리 표지판에만 의존해 달려야 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는 길에 세워둔 자전거를 도난당하고 찾지 못해 중고 자전거를 사서 여행을 계속했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도와줬다. 저자가 자전거를 택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물리적 거리를 천천히 이동하면서 문화가 변해가는 과정을 하나하나 경험해보고 싶었으며 자전거를 통해서 가능하면 느린 속도로 세상을 관찰하고 싶었다고 저자는 회고했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2019-09-25 17:40:00동아대 학생이 68일간 캐나다 6300㎞를 횡단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동아대는 국제관광학과 3학년인 한승윤씨가 지난 6월 22일부터 지난달 28일까지 68일간 캐나다 밴쿠버에서 퀘벡과 토론토까지 총 6300㎞를 혼자 횡단하고 돌아왔다고 21일 밝혔다.한씨는 배낭과 식량가방 등 18㎏가량의 짐을 메고 주로 걷거나 히치하이킹으로 긴 거리를 이동했다. 잠은 텐트를 치고 노숙하거나 '카우치서핑'(현지인이 외국인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서로 문화교류를 하는 비영리 여행자 커뮤니티)으로 해결했다.'하고 싶은 대로 살자'가 좌우명이라는 한씨는 "4학년을 앞두고 다들 취업을 우선으로 스펙 쌓기에 바쁘지만, 인생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냥 저질렀다"고 설명했다.그는 "세계 각국 사람 100명 이상은 만난 것 같다"며 "잘 곳을 찾지 못해 헤매다 우연히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후 3일 밤을 재워준 노부부가 알고 보니 캐나다 최대 커피전문점 4곳을 운영하는 부자인 적도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한씨는 아무것도 모르고 노숙을 했던 곳이 곰 같은 야생동물이 나타나거나 마약딜러 등 위험한 사람이 많은 곳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고 가슴을 쓸어내린 적도 있었다고 털어놨다.카우치서핑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문화교류'인 만큼 한씨는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위안부 피해자 문제 등 한국 역사를 알렸다. 그는 "한국에서 들고 간 위안부 팔찌 40여개를 모두 나눠주고 왔다"고 전했다.여름방학을 통째로 캐나다 횡단으로 보낸 한씨는 이번 여행을 통해 가장 크게 얻은 것이 '행복'과 '용기'라고 했다.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 도와준 사람들에게 용기를 얻어 무사히 여행을 끝낸 것 같다"며 "고난 속에서 비로소 행복이 무엇인지 절실히 느꼈다. 자신이 받은 도움을 다른 사람에게 아낌없이 베풀고 싶다"고 말했다. sr52@fnnews.com 강수련 기자
2017-09-21 19:25:49동아대 학생이 68일간 캐나다 6300km를 횡단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동아대는 국제관광학과 3학년인 한승윤 학생이 지난 6월 22일부터 지난달 28일까지 68일간 캐나다 밴쿠버에서 퀘벡과 토론토까지 총 6300km를 혼자 횡단하고 돌아왔다고 21일 밝혔다. 한씨는 배낭과 식량가방 등 18kg가량의 짐을 메고 주로 걷거나 히치하이킹으로 긴 거리를 이동했다. 잠은 텐트를 치고 노숙하거나 '카우치서핑'(현지인이 외국인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서로 문화교류를 하는 비영리 여행자 커뮤니티)으로 해결했다. '하고 싶은 대로 살자'가 좌우명이라는 한씨는 “4학년을 앞두고 다들 취업을 우선으로 스펙 쌓기에 바쁘지만, 인생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냥 저질렀다”고 설명했다. 그는 "세계 각국 사람 100명 이상은 만난 것 같다"며 "잘 곳을 찾지 못해 헤매다 우연히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 후 3일 밤을 재워준 노부부가 알고 보니 캐나다 최대 커피전문점 4곳을 운영하는 부자인 적도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한씨는 아무것도 모르고 노숙을 했던 곳이 곰 같은 야생동물이 나타나거나 마약딜러 등 위험한 사람이 많은 곳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고 가슴을 쓸어내린 적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카우치서핑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문화 교류’인 만큼, 한씨는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위안부 피해자 문제 등 한국 역사를 알렸다. 그는 “한국에서 들고 간 위안부 팔찌 40여 개를 모두 나눠주고 왔다”고 전했다. 여름방학을 통째로 캐나다 횡단으로 보낸 한씨는 이번 여행을 통해 가장 크게 얻은 것이 ‘행복’과 ‘용기’라고 했다.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 도와준 사람들에게 용기를 얻어 무사히 여행을 끝낸 것 같다”며 “고난 속에서 비로소 행복이 무엇인지 절실히 느꼈다. 자신이 받은 도움을 다른 사람에게 아낌없이 베풀고 싶다"고 말했다. sr52@fnnews.com 강수련 기자
2017-09-21 10:58:40캐나다 밴쿠버에서 미국 서부 몬태나주 셀비,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이르는 약 4000km를 자전거로 횡단한 조완철 씨(동아대 3년)이 미국 중부 어느 시골마을 앞에서 개교 70주년 기념 글귀를 들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조완철씨(동아대 국제관광학과 3년)가 미국 대륙에 이어 캐나다 밴쿠버에서 미국 시카고를 자전거로 횡단하는 데 성공해 화제다. 동아대는 조씨가 지난 7월 12일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밴쿠버에서 시작해 총 38일 동안 재스퍼.벤프국립공원을 거쳐 미국 서부 몬태나주 셀비로 건너가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이르는 약 4000㎞의 자전거 횡단에 성공했다고 18일 밝혔다. 지난 2014년 4월 중순부터 6월 말까지 총 60일 동안 자전거로 미국 대륙을 횡단한 데 이은 두번째 도전이다. 그는 이번에 횡단 계획서를 동아대와 자전거 의류회사인 아덴바이크 등에 제출해 비행기 경비와 의류 등을 지원받은 뒤 자전거 정비를 위한 도구와 텐트 등을 싣고다니며 숙박 등을 직접 해결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하루150㎞씩 페달을 밟은 그가 제일 힘들어했던 구간은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던 미국 몬태나주였다고 했다. 40도에 육박하는 날씨 속에서 상점 하나 보이지 않는 외로운 길이 끊임없이 펼쳐져 두려움과 고독감이 물밀듯 밀려왔지만 하루빨리 통과하고 싶다는 생각에 쉴 수가 없었다. 그러다 식수가 부족해지고 정신이 아득해지자 지나가던 차를 급히 세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에서 그토록 찾았던 '행복'이 사실은 고난 속에 있었다"며 "벼랑 끝에 서있던 순간 누군가가 나에게 뻗어준 손길, 따뜻한 말 한마디로 나 자신조차 몰랐던 용기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행복을 발견한 건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미국 노스다코타주 파고에서였다고 한다. 한국인 친구와 인터넷 여행자 커뮤니티인 카우치서핑을 통해 일주일간 숙박하게 된 미국인 부부 집에는 입양된 백인.흑인.동양인 아들딸들이 한데 모여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부부의 넓은 마음만큼 여행자들에게도 넉넉했고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그도 솜씨를 발휘해 한국음식을 직접 해주며 타인을 배려하는 행복을 배웠다고 한다. 그는 "지금껏 타인을 배려하는 행동에는 항상 내가 무엇인가 해줬다는 자만심이 있었다"며 "하지만 미국인 부부의 베풂에는 마치 자신의 삶처럼, 타인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자연스러움과 사랑, 행복이 존재했다"고 전했다. 그는 횡단의 끝을 회고하며 "홀로 고된 여행을 하다 보면 위기 대처 능력부터 시작해 사람을 대하는 태도 등 많은 성장을 느낄 수 있다"며 "가장 큰 행복은 수많은 변수와 외부환경 속에서 '성장하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roh12340@fnnews.com 노주섭 기자
2016-09-18 17:26:33조완철 동아대 학생(국제관광학과 3학년)이 미국 대륙에 이어 캐나다 벤쿠버에서 미국 시카고를 자전거로 횡단하는데 성공해 화제다. 동아대는 조완철 학생이 지난 7월 12일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벤쿠버에서 시작해 총 38일 동안 재스퍼·벤프국립 공원을 거쳐 미국 서부 몬타나 셀비로 건너가 일리노이 시카고에 이르는 약 4000km의 자전거 횡단에 성공했다고 18일 밝혔다. 지난 2014년 4월 중순부터 6월 말까지 총 60일 동안 자전거로 미국대륙을 횡단한데 이은 두번째 도전이다. 그는 이번에 횡단 계획서를 동아대와 자전거 의류회사인 아덴바이크 등에 제출해 비행기 경비와 의류 등을 지원받은 뒤 자전거 정비를 위한 도구와 텐트 등을 싣고 다니며 숙박 등을 직접 해결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하루150km씩 페달을 밟은 그가 제일 힘들어했던 구간은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던 미국 몬테나주였다고 했다. 40도가 육박하는 날씨 속에서 상점 하나 보이지 않는 외로운 길이 끊임없이 펼쳐져 두려움과 고독감이 물밀 듯 밀려왔지만 하루 빨리 통과하고 싶다는 생각에 쉴 수가 없었다. 그러다 식수가 부족해지고 정신이 아득해지자 지나가던 차를 급히 세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에서 그토록 찾았던 '행복'이 사실은 고난 속에 있었다"며 "벼랑 끝에 서있던 순간 누군가가 나에게 뻗어준 손길, 따뜻한 말 한마디로 나 자신 조차 몰랐던 용기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행복을 발견한 건 영화촬영지로 유명한 미국 노스다코타주 파고(Fargo City)에서 였다고 한다. 한국인 친구와 인터넷 여행자 커뮤니티인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을 통해 일주일 간 숙박하게 된 미국인 부부 집에는 입양된 백인·흑인·동양인 아들, 딸들이 한 데 모여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부부의 넓은 마음만큼 여행자들에게도 넉넉했고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그도 솜씨를 발휘해 한국음식을 직접 해주며 타인을 배려하는 행복을 배웠다고 한다. 그는 "지금껏 타인을 배려하는 행동에는 항상 내가 무엇인가 해줬다는 자만심이 있었다"며 "하지만 미국인 부부의 베풂에는 마치 자신의 삶처럼, 타인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자연스러움과 사랑, 행복이 존재했었다"고 전했다. 로키 산맥에서 곰을 만난 사건, 사막지에서의 히치하이킹, 별이 쏟아질 것 같은 캐나다 산맥의 야경 등 위험하면서도 아름다운 순간들이 그의 여행을 운명적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지난 8월 18일 최종목적지인 미국 시카고에 무사히 도착했다. 지난 7월 12일에 시작해 38일 만이었다. 그는 횡단의 끝을 회고하며 "홀로 고된 여행을 하다보면 위기 대처능력부터 시작해 사람을 대하는 태도 등 많은 성장을 느낄 수 있다"며 "가장 큰 행복은 수많은 변수와 외부환경 속에서 '성장하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roh12340@fnnews.com 노주섭 기자
2016-09-18 12:4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