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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스파이 천국'


소비에트 독재정권의 몰락과 함께 역사속으로 사라졌던 냉전시대의 총아 국가보안위원회(KGB)는 91년 해체와 동시에 그 규모가 현격히 축소된 연방보안국(FSB)로 명찰을 바꿔 달았다.

급격한 체제변화의 와중에서 대폭 감원된 옛소련 기관원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들이 불사조처럼 부활해 러시아에서 ‘스파이 르네상스시대’를 열고 있다는 보도가 전해져 눈길을 끈다.

러시아의 온라인 신문 ‘프리랜스 뷰로’는 정치인,기업인,언론인 등 유명인사를 포함한 150여명분의 신상정보 파일을 지난 7일 인터넷상에 공개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 사실은 최근 AP통신 보도로 알려졌다.

프리랜스 뷰로는 수천쪽에 달하는 이 개인정보 파일이 공인은 물론 일반인의 사생활에 대한 감시활동이 러시아에서 얼마나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특히 “우리가 공개한 개인파일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덧붙여 러시아 사회의 사생활 침해가 매우 심각한 수준임을 재차 알려주고 있다.

자료입수 경위에 대해 프리랜스 뷰로측은 사설정보기관들로부터 입수했다면서도 “국가기관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해 사생활 뒷조사에 국가 정보기관과 사설탐정이 모두 개입돼 있음을 시사했다.

전직 언론인들이 만드는 이 신문의 세르게이 플르즈니코프 편집인은 프리랜서 뷰로의 파일 공개를 가리켜 “이는 소비에트 붕괴 이후 그동안 모든 러시아인이 감시를 받아왔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개인정보 유출 금지는 법전에나 있는 구두선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또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에 따르면 벌써 ‘러시아 게이트’란 이름까지 붙은 이번 파동을 통해 그 신상이 공개된 사람으로는 알렉세이 2세 러시아 정교 총주교,유리 차이카 법무장관,재계 거물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조나스 번스타인 워싱턴 타임스 모스크바 특파원 등이 있다.

개인파일 가운데는 옐친 전대통령의 경호실 직원과 러시아 마피아 ‘손체보’와의 연계를 드러내는 내용도 있어 러시아 고위관료들과 기업인들간의 검은 유착관계를 짐작케 하고 있다.

자료를 공개한 프리랜스 뷰로측에 대한 의혹도 있다. 러시아 최대 일간지 이즈베티아의 미하일 코즈호킨 편집장은 “고의든 아니든 프리랜스 뷰로 역시 러시아에 만연해 있는 사생활 침해의 공범자”라고 말했다. 그역시 프리랜스 뷰로가 개인파일을 공개해 피해를 본 유명인사다.

한편 민간 정보수집 분야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거의 모든 은행이나 대기업이 자체 정보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면서 “이들은 이렇게 해서 수집한 경쟁사,정치인 관련 ‘콤프로마트(타협용 자료)’를 나중에 협박이나 치명타를 가할 때 활용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같은 현상은 러시아가 강력한 경찰국가에서 이제 스파이 천국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라고 덧붙였다.

프리랜스 뷰로의 알렉세이 체스나코프는 푸틴 대통령이 불법 스파이행위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걱정은 여전하다고 한다.“단속하면 효과가 없지는 않겠지만 오히려 이것이 국가 정보기관의 세확장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을까 걱정”이라는 것이다.


이는 결코 기우가 아니다. KGB내의 제2국(국내치안·방첩 담당)을 축소개편해 만든 FSB의 직원수는 8만명으로 미국 FBI의 2만8000명의 근 3배에 이른다. 러시아 인구가 1억4600만,미국 인구가 3억에 가깝다는 점을 고려하면 러시아의 ‘정보 인프라스트럭처’가 얼마나 방대한지 알 수 있다.

/ rock@fnnews.com 최승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