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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되살아나는 사이비종교


신흥 종교단체인 영생교측에서 살해 암매장한 신도의 유골이 발굴되면서 사이비종교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얼마 전 TV화면에서 이 종교집단의 예배장면을 지켜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고조된 광기에 섬뜩했다고 말한다. 자로 잰듯이 줄을 맞추고 앉아 일사불란하게 빠른 장단의 손뼉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독재국가의 정치의식이나 전사들을 보내는 환송식같은 비장한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갖는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종교가 사회질서를 문란케 하고 미풍양속을 해쳐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종교는 사회가 혼탁할수록 도덕적 모범이 되어야 하고 끝없는 탐욕으로 물든 이 사회의 빛이 되어야 한다.

최고의 가르침이라는 종교가 오히려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짓밟고 살인까지 서슴지 않았다면 무엇이 인간의 삶과 사회를 위한 종교인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많은 유사종교들이 기성종교가 포용하지 못한 소외계층에게 위로가 되었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사이비종교들은 시한부 종말론을 퍼뜨린다. 종말론은 현실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떨고 있을 때 우매한 사람들에게 파고 든다.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희망이나 내일에 대한 기대가 모두 막혔을 때도 그랬다. 오늘날에는 전통사회가 붕괴되고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소외계층이 늘어나자 종말론자들이 독버섯처럼 더욱 번지고 있다.

세상이 끝날 것이라는 생각은 그 사회의 타락과 불안에서 비롯된다. 여기에 소외계층이 귀를 기울이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사이비종교는 추종자들에게 복을 주고 부자가 되게 해준다는 등 현실적 이익을 미끼로 해서 이탈하지 못하도록 집단화시킨다.

문제의 종교에 빠졌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처음에는 ‘영생한다’ ‘불치병을 고쳐준다’는 허황된 말에 솔깃했다는 것이다.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반복되는 세뇌교육에 이성적 판단을 상실하게 마련이다. 또 설사 잘못되었음을 자각하고 집단에서 탈퇴하고 싶어도 이미 재산을 다 빼앗겼기 때문에 살길이 막연하고 보복도 두려워 그냥 주저앉게 마련이라고 한다.

왜 우리사회에는 시한부 종말론이나 신도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유사종교가 견딜 수 있는가. 사회의 타락과 부조리의 만연이 첫번째 원인이다. 현실에서 소외되고 일탈한 계층은 유사종교의 환상적 현상에 유혹되기 십상이다.

기성종교가 제구실을 못하는 것도 사이비종교가 생기는 원인이 된다. 아무리 사회가 어지럽고 타락해도 기성종교가 대중의 종교적 욕구를 건전하게 충족시키면 오늘과 같은 유사종교의 폐해는 줄었을 것이다.

사이비종교가 다시 뿌리내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치열한 삶의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소외된 이웃을 감싸주는 사랑이 절실하다.

정신의학자들의 분석에 의하면 인격 형성이 미숙해 ‘정신분열병형 인격장애’라는 병을 갖고 있는 사람이 사이비종교에 잘 빠진다.

이런 환자들은 신체에 이상을 느끼면 이상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뻔한 치료법이 있는 데도 황당한 민간요법에 집착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런 사실은 정신의학자들이 정신분열병 환자의 가계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밝혀진 것이다.

정신의학자들은 유사종교 신도의 절반이 정신분열병형 인격장애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비교적 멀쩡하게 살아온 사람들이라고 설명한다.
나머지 절반의 대부분은 거듭된 실패로 삶의 좌절을 경험했거나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다.

사람들이 사이비종교에 빠져드는 것은 사랑이라는 영양분이 부족해 생기는 병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근본은 가정이고, 가정에서 모든 문제를 풀어야 한다.

/윤봉섭 정보과학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