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기억, 어디까지 믿어야하는 것인가.’
영화 메멘토에서의 주인공은 정신적 충격으로 모든 일을 10분밖에는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상실증환자이다. 자신의 망각과 싸우기 위해, 모든 것을 메모하고 심지어 아내의 복수를 위해 자신의 몸에 문신까지하는 등 처절한 싸움을 한다.
이 영화의 감독은 이 신기한 기억상실증보다는 우리가 망각과 싸우기 위해 발명한 메모라는 원초적인 기술과, 즉석 카메라를 이용해 보다 효과적으로 기억을 되살리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지만 결국 기억은 믿을 수 없는 것이라는 메세지를 전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말했던 것 처럼 “인간은 보고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존재”일까. 또 인간의 눈으로 받아들여진 정보는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것이며 인간의 눈은 어느정도까지 정확하게 사물을 파악해낼 수 있을까.
영국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는 최근 인간의 시각이 얼마나 변화에 둔감하며, 얼마나 뇌의 의식에 지배당해 왜곡된 세계를 보게되는지를 소개했다.
인간의 시각이 변화에 얼마나 둔감한지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실험 하나를 소개한다.
미 하버드대 심리학과 대니얼 사이먼스 교수팀은 최근 대학 캠퍼스에서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시각 인지 능력 테스트를 했다. 실험대상인 여학생에게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 하나가 다가와 길을 물어보는 사이, 2명의 남자가 나무 문짝을 들고 여학생과 낯선 사람 사이를 지나가게 했다.
놀라운 사실은 이 짧은 사이, 처음에 여학생에게 말을 걸던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대체됐지만 여학생은 전혀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채 처음 길을 물어보던 사람이 아닌 바뀐 사람에게 계속 길을 일러주고 있었다. 실험이 끝나고 사이먼스 교수는 대상 여학생들에게 사람이 바뀐 것을 눈치챘느냐고 물었지만 50% 이상에서 ‘전혀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같은 현상을 인지과학에서는 ‘변화시각장애’로 부른다. 인간은 실제로 자신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작은 부분 밖에는 볼 수 없다는 이론이다.
사이먼스 교수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인간의 시각은 생각보다 선택적이며 실제로 어떤 물체 전체를 본다는 생각은 일종의 ‘인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즉 과거의 기억과 상상력이 조합돼 일정한 인상을 만들어낸다는 설명이다.
같은 대학의 새브리스 교수는 “인간의 시각이란 결국 일정하게 존재하는 사물과 인간의 두뇌와의 합작품인 그 어떤 것일 뿐”이라며 “인간은 기억과 상상력을 조합해 시각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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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oskny@fnnews.com 조남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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