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호기심과 모욕감이 뒤섞여 있다. 먼 옛날 우리와 조상이 같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침팬지는 늘 호기심을 자극한다. 반면 흉한 털북숭이 몰골에 새끼들이 보는 앞에서 성행위를 일삼는 이따위 동물을 만물의 영장(靈長)과 비교하는 데는 수치심을 느낀다.
싫든 좋든 침팬지는 사람과 아주 가까운 동물이다. 둘 다 영장류에서 유인원(類人猿)으로 분류된다. 유인원 중에서도 사람은 고릴라?오랑우탄?보노보?침팬지와 함께 대형 유인원에 속한다.
동물행동학자 제인 구달은 오래 전 탄자니아의 곰베 국립공원에서 침팬지가 도구(나뭇가지)를 써서 개미를 잡아먹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구달은 또 침팬지들이 전쟁을 벌인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두 패로 나뉜 곰베의 침팬지들은 땅을 놓고 한쪽이 사실상 전멸할 때까지 죽고 죽이는 4년 전쟁을 치렀다.
도구를 쓰거나 집단끼리 전쟁을 벌인다는 점만을 놓고 침팬지가 사람과 다를 바 없다고 단정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듯싶다. 그러나 침팬지가 고도의 정치행위를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프란스 드 발이 쓴 ‘침팬지 폴리틱스’는 그런 점에서 인간의 존엄성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깊은 고민에 빠뜨린다.
드 발은 1970년대 중반부터 6년 동안 네덜란드 아넴에 있는 대규모 침팬지 사육장을 관찰했다. 결론은 이렇다. 침팬지들은 권력을 얻기 위해 적 또는 동료와 이합집산을 거듭한다. 때로는 피비린내나는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관찰 초기 아넴 사육장은 수놈 침팬지 이에론의 통치 아래 있었다. 다른 수놈들과 암놈들은 이에론 앞에서 ‘인사’를 잊지 않았다. 헐떡이는 것처럼 짧고 빠르게 ‘아하아하’ 소리를 내면서 연신 절을 하는 게 침팬지식 인사법이다. 상대방이 굽신거리는 동안 1인자 이에론은 거드름을 피우며 왕처럼 인사를 받는다.
이에론에게 털을 곧추세우고 도전장을 내민 건 또다른 수놈 루이트였다. 혼자가 아니라 니키(수놈)와 연합전선을 폈다. 판세를 지켜보던 암놈들도 슬슬 루이트 쪽으로 옮겨붙었다. 권력투쟁은 이에론이 루이트와 니키에게 인사함으로써 일단락됐다. 서열은 루이트-니키-이에론 순으로 바뀌었다.
권력을 쥔 루이트는 뜻밖에 니키가 아니라 앙숙이던 이에론과 손을 잡았다. 니키로서는 ‘팽’을 당한 셈이다. 그렇지만 상황은 루이트가 바라는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니키는 이에론과 반(反) 루이트 연합전선을 짰다. 결국 루이트가 손가락과 다리 한쪽에 상처를 입는 한바탕 싸움 끝에 권력은 니키에게 넘어갔다. 서열은 니키-이에론-루이트 순이 됐다.
표면상 권력은 니키가 잡았지만 교활한 이에론은 막후 실력자로 위세를 떨쳤다. 인사를 받는 빈도도 니키를 앞섰다. 드 발은 “니키는 때로 이름만 두목이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했는데, 경험 많고 교활한 이에론이 그를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침팬지 정치판에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 이에론은 암놈과 교미하는 걸 니키가 방해하자 즉각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그 틈을 비집고 루이트가 다시 1인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루이트의 재집권은 ‘10주 천하’로 막을 내렸다. 이에론과 니키가 다시 힘을 합쳐 루이트를 죽도록 두들겨팼기 때문이다. 고환까지 잘린 루이트는 결국 수술대 위에서 목숨을 잃었다.
루이트가 죽자 젊은 수놈 댄디가 두각을 나타냈다. ‘킹 메이커’ 이에론은 잽싸게 댄디와 반 니키 연합을 형성했다. 기세에 눌린 니키는 도랑으로 도망치다가 그만 물에 빠져죽고 말았다.
침팬지 정치와 휴먼 정치의 차이라면 침팬지들은 권력을 향한 ‘천박한’ 자신의 동기를 아주 뻔뻔스럽게 알린다는 점이다. 반면 인간은 자신의 의도를 은폐하는 데 달인이기 때문에 개인적 야망을 노출시키지 않으려 애쓴다.
‘천박한’ 권력욕을 뻔뻔스럽게 드러내 인간을 침팬지 수준으로 끌어내린 사람이 바로 마키아벨리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인간 존엄성을 모욕한 모사꾼으로 욕을 먹는다.
바라건대 17대 국회에는 진심으로 마키아벨리를 꾸짖는 정치인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한발 더 나아가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상생(相生)의 정치, 참된 휴먼 정치로 침팬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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