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간 전쟁은 현실”(강정원 국민은행장), “사활을 건 대회전”(신상훈 신한은행장), “제2의 빅뱅이 불어닥친다”(강권석 기업은행장).
금융전쟁에 참전하는 총사령관들의 출사표다. 섬뜻하다 싶을 정도의 강한 표현으로 위기의식을 고취하는 은행장들에서 국내은행들이 처한 현실을 읽을 수 있다.
세계 1위 금융그룹인 씨티은행에 이어 2위인 HSBC마저 국내금융시장에 본격 진출하려는 시점에서 은행장들은 치밀하고 긴축적인 경영으로 은행간 전쟁에서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특히 내년에는 국내은행간, 또는 국내-외국계 은행간에 리딩뱅크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펼쳐져 현재의 ‘빅4’체제가 급속히 붕괴될 것으로 전망된다. 리딩뱅크 경쟁에서 탈락할 경우 곧바로 생존마저 보장할 수 없게 돼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대회전은 내년 은행경영의 화두로 떠올랐다.
◇내부정비-도덕성 등 강조=강정원 국민은행장은 1일 월례 조회에서 은행간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조직문화 정립과 직원간 단합과 결속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하고 내부정비를 강조했다. 그는 “경쟁은행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는 의지가 약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신한은행이 오는 2008년 1위 은행을 선언했는데 국민은행 직원들이 대응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특히 “본점이 영업점에 군림해서는 안된다”고 말해 영업위주 정책을 펼 것임을 시사했다.
신상훈 신한은행장은 어려울 때일수록 자산건전성에 대한 고삐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며 정도경영을 강조했다. 그는 “기업부도율 상승으로 10월에만 대손충당금이 328억원 늘었다”며 직원들의 분발을 촉구한 뒤 “도덕적 해이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며 도덕성과 윤리성을 강조했다.
강권석 기업은행장은 금융계의 대변혁으로 국책은행이 정부의 두꺼운 외투에 안주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직원의 의식개혁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내년은 리딩뱅크 본격경쟁 원년=사실상 비상체제를 선언한 은행장들이 내년 경영전략에서 유독 강조하는 것은 리딩뱅크 경쟁. 은행 등 금융그룹들은 금융대전을 이기기 위해 제2금융사 인수를 통해 비은행 부문을 급속히 잠식하며 약진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우리금융지주는 이날 ‘2005년 금융권역별 전망 및 금융 10대 트렌드’ 보고서를 통해 이같은 금융권의 분위기를 전했다. 우리금융은 내년도 국내 금융권은 금융기관간 경쟁이 심화되고 경제상황 악화에 따른 자금시장 불안과 중소기업 등 리스크 요인이 증가하면서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한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국내와 외국계간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금융 전략기획팀 유용주 부장은 “은행중심의 금융그룹들이 증권, 투신, 보험 등 제 2금융권뿐만 아니라 리스, 캐피털 등에도 진출을 모색, 리딩 금융그룹을 향한 본격적인 레이스를 펼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은행권과 보험권을 중심으로 외국계와의 ‘진검승부’ 펼쳐져 현재의 빅4체제가 와해되면서 대형 은행간 차별화가 본격 진행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국내 프라이빗뱅킹(PB)시장이 국내외 금융기관들의 주요 타깃이 될 것으로 지적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계 금융기관들이 자국 내에서도 수익성을 높이며 리스크를 낮추기 위해 PB분야를 강화하는 추세다. 축적된 노하우와 선진기법으로 국내시장 공략에 적극 나설 경우 수백조원의 자금 유치가 가능해져 단번에 리딩뱅크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시중자금이 방향성을 상실, 단기부동화 현상이 심화돼 자산운용 부문에서 강점을 지닌 금융기관들이 부각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경기 침체와 환율 급락으로 중소기업의 경영이 악화돼 특히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중소기업 문제가 ‘복병’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기관들은 이밖에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 비이자 수입 확대, 복합상품 개발, 조직문화 혁신 등을 통해 돌파구를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리금융은 분석했다.
한편, 내년도 금융권역별로는 은행권의 경우 금리의 하향압력으로 수신은 올해에 이어 부진하고 여신도 리스크 관리 강화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소폭 상회하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은행의 수익성은 투자상품에 대한 수요증가로 비이자수익 부문의 수익이 큰 폭으로 증가하지만 비용증가로 인해 올해보다는 다소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증권업은 내년에도 수익성이 크게 개선되기 어려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보험도 GDP 성장률 수준의 성장에 머물 것으로 관측했다.
또 가계부실 문제가 표면적으로 일단락되는 대신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한 중소기업 부실문제가 심화될 것으로 예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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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han@fnnews.com 한민정 고은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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