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폴트 위기에 내몰린 기술신용보증기금 사태가 갈수록 꼬여가고 있다. 정부 당국은 기술신보에 ‘선 구조 조정, 후 자금 투입’을 강조하며 20%의 인력 감원을 종용하고 있다. 기술신보 노동조합은 이에 반발해 지난 14일부터 서울 여의도 본사 사옥에서 노조 간부 등 10여명이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노조측은 10%의 감원은 감수하겠다는 입장이다. 기술신보 전체 직원 수가 1132명이므로 약 110여명의 희생은 각오하고 있는 것이다.
노조의 한 간부는 “DJ 정부 시절 프라이머리 회사채 담보부증권(P-CBO) 발행을 무리하게 확대한 것이 오늘의 위기를 불렀다”며 “기술신보는 정부가 하라는대로 충실히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해 정부 정책의 희생양이라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겼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당시 정부는 벤처 육성이라는 미명 아래 마구잡이식으로 금융 지원을 실시했다.
곪은 것은 언젠가 터지게 마련. 결국 P-CBO 만기가 돌아오면서 여기저기 부실이 발생했고 기업 대신 대지급에 나선 기술신보가 경영 위기를 맞이했으니까 말이다.
과연 모든 책임이 정부에 있을까. 일선 창구에서 누구보다도 P-CBO의 부실 위험을 잘 알고 있었던 기술신보였다. 그러나 당시 보증 규모가 확대될수록 조직의 위상이 올라가고 일자리가 생겨나는데 굳이 정부 정책에 제동을 걸며 경보벨을 울릴 이유가 없다는 상황 인식이 작용했다는 지적이 많다.
당시 기술신보 일부에서는 ‘이대로는 안된다’며 P-CBO 정책의 위험성을 지적하기도 했지만 ‘결자해지(結者解之)’ 논리를 펴며 정부가 알아서 해결책을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하는 안일한 시각이 우세해 부실을 키운 측면도 없지 않다. 일정 부분 기술신보에도 책임이 있으니 정부가 제시한 20%의 인력 감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은 결코 아니다. 다만 이 위기 상황을 돌파해 나가는데 있어서 정부와 기술신보 양자가 책임 공방을 벌이는 대결 구도가 아닌 협력과 이해의 장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견해다.
또한 정부는 추경예산 편성을 서둘러 기술신보에 투입해야 한다. 신용보증기금의 정부출연금(5600억원)을 기술신보에 지원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으나 이는 ‘아랫돌을 빼 윗돌을 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자칫 신용보증기금의 동반 부실을 야기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중소업체들의 보증 경색 현상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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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u@fnnews.com 홍순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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