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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구멍난 금융권 윤리의식/유상욱기자



“그 사람이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번 850억원대 양도성예금증서(CD) 횡령사고의 당사자인 조흥은행 면목남지점의 김 모 차장. 평소 꼼꼼한 일처리와 깔끔한 사생활로 주변 선후배들의 칭찬이 자자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이번 사건을 접하는 주변사람들의 반응은 ‘충격’ 그 자체다.

김차장의 부인도 조흥 가족으로 남다른 부부애를 과시해 직장 동료들의 부러움을 샀다. 안정된 직장에 적지 않은 보수, 단란한 가정 등 남부럽지 않은 조건을 갖춘 그다. 그래서 이번 사건을 선뜻 이해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일부에서는 CD 발행·유통상의 문제점과 내부 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사고의 근본 원인은 은행원들의 윤리의식 결여다.

해당 업무를 꿰고 있는 은행원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일을 저지를 수 있는 환경에 노출돼 있다. 그런 만큼 돈을 돈으로 보지 않는 엄격한 도덕성과 자기 통제가 요구된다.

그러나 어느샌가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에 순간의 유혹에 빠져 지켜야 할 본분을 쉽게 내팽개치는 풍토가 자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라는 비아냥까지 들릴 정도다.

지난 5월 400억원대 횡령사고를 일으킨 시중은행 김 모 대리의 경우 ‘뱅커’들의 도덕성이 얼마나 훼손됐는지를 뚜렷이 보여준 사례다.

당시 김대리는 고객 돈을 교묘히 빼돌려 5개월 동안 파생상품에 투자, 대부분을 날리고도 뉘우치는 기색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시간이 좀 더 있으면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는 식으로 얘기해 주변사람들을 아연실색케 했다는 후문이다.

우리사회 대표적인 ‘화이트 칼라’인 은행원들이 이렇게까지 타락한 데는 은행들의 책임이 크다.

은행들은 외환위기 이후 덩치 키우기와 돈벌이에만 매달렸지 행원들의 윤리의식은 안중에도 없었다.
행원들의 도덕성과 소명의식이 희미해지는 순간 은행의 신뢰는 추락한다.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은행들은 내부통제 시스템을 확고히 재정립하는 ‘환골탈태‘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