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기자수첩]공공성 외면하는 은행/유상욱 금융부



“중소기업 지원을 늘린다 어쩐다 하더니… 말짱 다 헛소립니다. 은행에서 돈 빌리기가 하늘의 별따기예요.” 서울에서 중소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조모씨(48). 조씨는 얼마 전 은행에 들렀다 겪은 일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조씨의 사연은 이렇다. 조씨는 최근 서울 강남에 있는 건물의 재건축 공사를 마쳤다. 공사 미지급금과 운전자금이 필요해 근처 우리은행 지점을 찾아갔다.

여러 여건을 감안할 때 대출을 받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거라 여겼다. 그러나 며칠 뒤 돌아온 은행측 답변은 “대출 불가”였다. 당황한 조씨는 은행을 찾아가 통사정을 했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우리은행측은 미분양 건물에 대해서는 대출할 수 없다는 원칙론을 들이댔다. 이 과정에서 대출 승인을 요청하는 지점장 의견서도 무시됐다.

미덥지 못한 중소업체의 리스크를 떠안기 싫다는 판단인 셈이다. 조씨는 제2금융사의 문을 두드려 볼 생각이다.

은행들이 해마다 사상 최대 이익을 내고 있다. 몇몇 대형 은행은 순이익이 1조원을 넘어선다. 기업과 가계가 부지런히 은행돈을 갖다쓰고 쌈짓돈을 맡긴 결과다.

하지만 달콤한 열매는 철저히 은행 몫이다. 특히 은행들은 풍부한 현금을 보유하면서도 자금 부족을 호소하는 중기들의 요청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대신 안전한 주택담보 대출에 치중하면서 자신들의 공적 기능을 외면해 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윤증현 금감위원장은 얼마 전 세미나에서 “은행권이 사상 최대 순이익을 올린 것은 스스로 노력한 대가라기보다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데 따른 결과”라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은행들은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돌려주는 데도 인색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 현재 8개 시중 은행의 기부총액은 514억8000억으로 순익 6조2645억원의 0.82%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고객들 덕에 번 돈을 자신들 잇속 챙기는 데만 열심이라는 비아냥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그런데도 은행들은 별 신경이 쓰이지 않는 모양이다. 오죽하면 신동혁 은행연합회장이 나서 “은행들이 이젠 이익 내는 데만 집착하지 말고 공공성 측면을 생각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을까.

/ ucool@fnnews.com 유상욱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