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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서 드러난 DJ정부 국정원 충격적 도청 실태



국정원장 재임 기간에 도청은 결코 없었다는 임동원, 신건 씨의 주장과 달리 두 사람의 구속영장에서 드러난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의 도청 실태는 충격적이다.

전직 두 원장은 불법 감청을 금지하고 있는 통신비밀보호법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조직적 도청을 지휘하면서 때때로 도청 내용을 갖고 국내 정치에 개입한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상시 도청 대상에 오른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 등 주요 인사 1800여명은 애초 알려진 규모를 훨씬 능가한다.

또 R-2 개발 초기에 유력 인사들 외에 일반 국민의 전화 통화 내역까지 무차별감청했다는 것은 전세계 전화, 휴대전화, 팩스, 컴퓨터 통신을 엿들을 수 있다는 통신 첩보망 ‘에셜론’에 맞먹는 감시시스템이 국내에도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광범위한 정치사찰

DJ 정부 국정원은 국민의 혈세로 개발한 감청 장비를엉뚱하게도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했다.실제로 당시 국정원은 DJ정부 햇볕정책을 비판한 군사전문가 지만원씨와 안풍사건에 연루됐던 한나라당 강삼재 의원, 한국논단 이도형 발행인 등 정권과 불편한관계에 있던 인사들을 도청했다.

언론사 세무조사에 항의해 단식 농성을 했던 한나라당 박종웅 의원과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 건의안으로 여당과 갈등 관계였던 자민련 의원 등 야당은 도청의 집중적인 표적이 됐다.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됐던 이희호 여사의 조카 이형택씨 등 대통령 친인척의 전화 통화를 엿들으며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한 사실도 확인됐다.

정권의 실세로 통했던 박지원 전 대통령 정책기획수석비서관도 윤태식 게이트와 관련, 도청의 그물에 걸려들었다.

뿐만 아니라 2000년 4월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도 도청 대상이었고, 현대그룹의 ‘왕자의 난’, 의약분업 사태 등 정치권과 무관하지만 사회적으로 민감한 현안에 연루됐던 인사들도 감시 대상이 됐다.

더욱이 국정원은 정부의 햇볕정책 아래 추진되던 현대아산의 대북사업과 관련,당시 정몽헌(작고) 현대아산 회장과 김윤규 사장의 휴대전화를 상시적으로 엿들었고 통일부 박재규 장관과 공무원들의 대북지원 관련 통화 내용도 도청하는 등 정부 정책에까지 깊숙이 개입했다.

검찰에 따르면 국정원은 대북 정책에 개인적인 관심을 갖고 있던 임 전 원장의 지시로 통일부 공무원들의 대화를 엿들은 것으로 드러났다.

여당과 정부에 비판적인 글을 쓴 언론인 조모씨, 김모 씨를 비롯해 최모씨, 박모씨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경제인들도 도청 리스트에 올랐다.

영장에서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상시 도청 대상에는 노동계, 시민단체도 포함된것으로 전해져 사실상 정치적, 사회적으로 주목받을 만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마다도청이라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으리라는 짐작도 가능하다.

■도청 정보 어떻게 활용됐을까

김은성 전 국정원 2차장(구속)이 임 전 원장지시로 도청 대상이었던 당시 민주당 장성민 의원과 주진우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비서실장 등을 만나 협조를 요청했다고 진술한 것을 볼 때 무차별적인 도청에 의해 얻은 정보가 어떤 식으로든 ‘활용’됐을 가능성이 높다.

검찰에 따르면 임 전 원장은 국정원장 부임 후 매일 출근 직후, 퇴근 직전 8국 R-2 수집팀 감청 내용 중 중요 사항을 대화체로 요약한 A4용지 반쪽 크기의 보고서를 받아봤다.

매일 6∼10건의 A급 정보가 보고됐고, 여기에는 도청 시간이 분단위까지 표시돼 있었다.임 전 원장은 주요 현안 발생시 관련 내용에 관심을 표명하거나 직접 첩보 수집을 독려하며 직ㆍ간접적으로 국정원 직원들에게 도청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신 전 원장 역시 부임 후 임 전원장과 마찬가지로 하루 2차례 관련 정보를 보고받았고, 직원들의 정보 수집을 독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이 두 전직 원장 재직 기간에 저질러진 국정원의 광범위한 도청 실태를 확인한 만큼, 향후 수사는 도청 정보의 외부 유출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청와대 보고 여부에 관심이 쏠리자 민감한 사안이라는 점을 의식한 듯 말을 아끼면서도 “해야 할 것은 다 한다”며 광범위한 수사 방침을 시사했다.

검찰이 “두 전직 원장은 대통령의 지시를 어기고 불법 감청을 저질렀다”고 언급한 만큼 수사의 파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까지 미칠 가능성은 작지만, 국가기관의 도청 정보가 어떻게 활용됐는지가 확인될 경우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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