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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로봇’으로 암세포 잡는다



수만개의 ‘나노로봇’이 암 환자의 혈관 속으로 주입됐다. 로봇은 온몸을 힘차게 흐르는 혈관을 타고 몸 곳곳을 돌면서 암세포를 추적해 파괴한다. 메모리 카드 하나에 해상도 사진 3만6000장 또는 영화 40편을 저장하거나 전 세계 5대양 6대주 대륙·해양 정보를 담는다. 생물체를 인공합성해 새로운 먹거리를 만든다. 이러한 꿈같은 일들이 현실세계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극미세 구조를 다루는 나노기술(Nano Technology) 덕분이다.

■21세기의 연금술 나노

물질을 잘게 나누면 어디까지 나눌 수 있을까. 이 질문이 나노를 탄생시켰다. 그리스어로 난장이를 뜻하는 ‘나노스(Nanos)’에서 유래한 나노는 이제 생활속에서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모든 물질은 원자들로 구성돼 있고 원자는 전자와 핵으로 쪼개진다. 핵 또한 더욱 잘게 나눌 수 있는데 이를 ‘쿼크’라고 한다. 물질의 성질은 핵 주위의 전자의 개수와 그 분포에 따라 결정된다. 원자들이 모여 간단한 구조를 가진 물분자로부터 복잡한 구조를 가진 단백질 분자까지를 형성한다. 또한 1023개 이상의 원자 또는 분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돼 고체를 형성한다.

따라서 나노는 개개의 분자, 원자 또는 분자군을 원하는대로 옮기고 조합시켜 다양한 물성을 지닌 물질이나 소재, 장치를 만들어내는 기술을 말한다.

1981년 스위스의 과학자 비닉과 로러는 양자역학적 터널링 효과(전자가 자신이 가지는 에너지보다 높은 에너지벽이 있어도 전자는 이 에너지벽을 뚫고 지나갈 수 있는 확률이 있다는 개념)를 이용해 새로운 현미경을 만들었다. 이어 세상에 나온 주사형 검침현미경은 미세한 부분까지의 관찰을 가능하게 해 나노기술의 발전을 가져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나노 과학을 크게 보면 나노 크기의 물질로 이뤄진 미세한 재료나 기계를 만드는 기술, 나노 크기의 영역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물리 현상을 응용해 장비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기술 그리고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미세한 영역의 자연현상을 측정하고 예측하는 기술로 나눠볼 수 있다.

크기의 관점에서 나노과학은 100나노미터(㎚) 이하 크기의 현상을 연구하는 분야다. 1㎚(10억분의 1m)는 머리카락 1개를 1만번 자른 크기. 원자 3∼4개가 모인 정도다. 물리적인 세계에서 보면 나노 세계는 곧 원자의 세계다.

과학자들은 나노가 20세기에 실리콘이 가져온 변화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기술적·과학적 혁신을 인류에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우리나라 NT 기술력은

현재 논문 편수, 특허로 본다면 우리나라는 세계 4위권이다. 그러나 원천기술이 부족하고 특히 산업화 척도로 봐서는 아직은 취약하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2002년 ‘나노기술개발촉진법 시행령’을 만들어 매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삼성전자 등 기업의 연구개발(R&D)도 활발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반도체, 정보기술(IT)에 강점을 살려 차세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소자 등에 나노 기술을 적용시켜 산업화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은 △양자 칩을 이용한 디옥시리보핵산(DNA) 분석(5∼10년 후) △돌아다니며 혈관 수술을 하는 나노 로봇 개발(30∼50년 후) △장기가 손상된 냉동인간 소생(50년 후) 등을 예측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지난해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40나노 32기가 D램을 ‘올해의 10대 과학기술 뉴스 1위’로 선정했다. 삼성전자는 신개념 CTF(Charge Trap Flash) 기술을 적용한 40나노급 32기가 바이트 낸드플래시 메모리 개발로 이 분야 선두주자의 입지를 확고하게 굳힐 수 있게 됐다.

연세대 의대 영상의학과 서진석 교수와 같은 대학 화학과 천진우 교수는 지난해 말 나노 기술을 이용해 암세포 포착 기술 개발에 성공해 의학계와 과학계를 놀라게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10㎚ 나노 입자를 유방암과 난소암이 있는 실험용 쥐에게 주입한 뒤 2㎜로 자란 초기 암세포를 자기공명영상장치(MRI)로 선명하게 촬영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서울대 홍승훈 교수팀은 탄소 나노 튜브와 각종 나노선을 이용한 초고집적도의 분자·양자 소자를 기존 반도체 시설로 대량 생산,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는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통해 암 환자가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스스로 진단할 수 있는 ‘자가 진단’ 의료용 초소형 센서, 수질 검사, 공기 오염 등 유해 물질을 진단하는 환경 센서 등 바이오 센서의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 2005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최양규 교수팀과 나노종합팹센터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크기의 ‘나노 전자 소자’를 개발했다. 테라급 차세대 반도체 소자에 적용이 가능한 새로운 구조의 3차원 3㎚급 ‘나노전자소자(FinFET)’를 공동 개발했다. 이번에 개발한 나노전자소자는 게이트가 채널의 전면을 감싸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3차원 구조를 고안한 것으로 기존의 실리콘 반도체 기술의 한계를 한 단계 진전시킨 의미있는 연구결과로 평가받고 있다.

■독성없는 나노입자를 만들어라

나노기술의 부작용 중 하나는 나노 물질이 중금속처럼 쌓인다는 점이다.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몸 안에 들어온 나노 물질의 98%는 48시간 안에 배출되지만 나머지 2%는 몸의 각 기관에 쌓이게 된다. 이중 독성이 있는 나노 입자가 치명적이다. 나노 입자는 너무 작아 인체의 면역세포가 제거하지 못할 수도 있다.

최근 나노 기술을 이용하여 시중에 쏟아지고 있는 많은 화장품과 의약품 등에 대한 안전성 여부가 미국에서 도마 위에 올랐다.
엄청나게 미세한 물질로 설계된 나노 기술은 원래 크기로 된 물질의 성상, 즉 통상적인 강도나 전기 전도 능력 등에서 원래 물질과 완전히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안전성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

현재 나노 기술이 질병 치료 의약품, 화장품, 식품 등 광범위한 영역에 활용되어 시중에 판매되고 있으나 정부 보건당국은 이들의 이용이나 안전성 여부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불평했다.

전문가들은 나노물질이 비록 해롭다는 사실이 문서화되어 있지 않지만 초미세 물질은 그 효과와 영향이 예측하기 어렵고 인간의 몸이나 환경에 예측할 수 없는 영양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독성없는 나노 입자 개발에 더욱 주력하고 있다.

/sejkim@fnnews.com 김승중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