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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총격 참사] 특파원 보고/유인례 샌프란시스코



미 역사상 가장 큰 총격사건으로 미국은 지금 충격과 슬픔에 빠져 있다. 미 언론이 이 사건을 단순한 총격사건으로 부르지 않고 ‘대학살(massacre)’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 만으로도 이 사건의 충격을 짐작할 수 있다.

전대미문의 참사의 주범이 한국인이라는 것에 대해 미국 내 한인들은 망연자실해 하고 있으며 한인들뿐만 아니라 아시아계 미국인 사회 전체는 이 사건이 미국 내 잠재해 있는 인종적 편견에 불을 지피는 도화선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지난 16일 뉴스 미디어에서 총격사건을 처음 보도하면서 범인이 아시아계로 보인다고 했을 때 한인들은 제발 오보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런데 화요일 아침 모든 미디어들이 일제히 범인이 한국인이라고 보도했을 때, 현장의 뉴스 리포터들이 테이프 레코더처럼 ‘한국인’이란 말을 반복할 때 모든 한국인들은 그저 참담한 심정일 뿐이었다.

많은 한국 동포는 이 사건이 한국인에 대한 전체적인 이미지를 훼손하고 인종적 증오를 불러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미국의 언론보도나 여론주도층이 어떻게 생각하든 동포사회 스스로가 이런 불안감을 실제 느끼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더욱이 이같은 걱정이 기우(杞憂)가 아니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존재한다.

실제로 2001년 9·11 테러가 국가적 차원에서 중동지역 국가들과의 외교관계에도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미국 내 많은 중동지역 교민이 보복성 차별, 린치, 더 나아가 직장에서 해고되는 경우도 있었다.

미국에는 현재 약 200만명의 한국 교포가 살고 있다. 한국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한국인이 거주하는 곳이다. 이중 한국인 유학생 수는 9만3728명으로 인구 수가 비교가 안 되게 많은 중국과 인도의 유학생 수를 앞지르고 있다.

이번 사건은 황우석 스캔들, 한인 매춘 및 인신매매 사건, 그리고 북한의 핵에 대한 뉴스들로 가뜩이나 미국 내 한국인의 이미지가 추락해 있는 시점에서 터져 나온 것으로 대다수의 미국 내 한국인들의 삶에 적지 않은 파장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사건 이후 미국 내에서 한인에 대한 보복성 범죄가 물리적으로 발생했다는 공식 보도는 아직 없다. 하지만 일부 미국인들의 개인 블로그에는 이미 조승희의 이번 행동의 배경으로 그가 동양계 이민자인 외국인이라는데 초점을 맞추며 이를 부각시키고 있어서 한국인뿐 아니라 전체 동양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부추기고 있다.

이와 관련,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두고 있는 ‘아시안-아메리칸 저널리스트 연합’은 온라인 상에 등장하는 인종 차별적인 이야기들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국 내 한인들은 이 사건에 대한 미국인들의 보복성 폭력이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조심스럽게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며 희생자와 희생자 가족을 돕는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사건 다음 날 바로 미국 내 100여명이 넘는 한인 단체 관계자들이 뉴욕 영사관에 모여서 희생자 가족에 대한 위로 및 후원 절차 및 방법에 대해 논의를 했고 ‘코리안-아메리칸 단체 연합’은 이번 총격 사건에 대한 기념 기금의 모금 및 촛불 철야 기도 등을 계획하고 있다.

아울러 대다수의 한인들은 이번 주로 계획된 모임이나 회의 등을 취소 또는 연기 하고 있으며 사건이 난 버지니아주는 물론이고 동부 지역의 많은 대학생이 이미 집으로 귀향을 했거나 보다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친지들의 집에 머물고 있는 형편이다.

학교에 아예 등교하지 않는 학생도 부지기수다.
대학생뿐 아니라 중·고교생을 둔 한인들은 아이들에게 가능한 한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고 희생자에 대한 애도의 뜻 이외에는 불필요한 언급을 자제하도록 지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내 한인사회도 교민들에게 이번 사건을 인종·국가적인 사건으로 확대하지 않고 개인에 의한 사고로 대응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 정부와 교포사회가 이번 사건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체결 등으로 모처럼 상승기운을 타고 있는 국가브랜드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지 않도록 신속하면서도 신중하게 대처해야 할 것 같다.

/yirene77@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