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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기술 유출,국가경제 무너진다] ⑧ 기술보안의식 낙후



기업의 핵심기술과 영업비밀은 비밀로 유지·관리되고 있는 동안 재산적 가치를 인정하고 보호해 주는 것이므로 이를 유지하는 것은 기업의 생명이다.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 설립 등 범정부 차원의 노력으로 국내 산업보완 환경은 이전에 비해 다소 개선돼 있다는 평가.

그러나 아직까지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곤 대부분 국내 기업들은 반도체, 휴대폰,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등 첨단산업에서부터 전통제조업에 이르기까지 '돈이 되는' 기술은 무차별적인 유출이 시도되고 있어도 크게 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전국 500개 산업체 및 연구소 임직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산업보안의식 설문조사' 결과 전체 예산 대비 보안비용 수준이 1.8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안비용이 1% 이하라는 업체도 47.6%에 달해 2001년 조사 때 30.9%에 비해 오히려 퇴보했으며 피해 기업의 절반가량(48.6%)이 피해 사실을 파악하고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진흥공단이 2005년 5월 외국불법기술유출 및 지적재산권을 침해당한 경험이 있는 이노비즈(INNO-BIZ), 벤처기업, 수출중소기업 40개 업체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체 중 77%인 29개 기업이 아직 관련 전담부서가 없었으며 기술유출 피해 심각성도 인식하지 못해 침해사실을 자체 조사를 통해 알게 된 경우는 11건(33%)에 그쳤다. 나머지는 현지 바이어나 현지 대리점, 현지 법인이 발견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기술개발에만 집중한 나머지 보호에는 그만큼 소홀했기 때문"이라며 "보안은 경영자만의 몫이 아니라 근로자 모두가 하나의 문화로 생각하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대 기술유출을 막아 '경제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각 기업 특성에 맞는 유연한 조화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즉 기업 내에서 보호 대상 기밀은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정보 취급요령 등을 담은 정보 보안정책이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는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소송에서도 중대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예컨대 A전자에서 신분증 인식 후 출입이 가능한 게이트와 X레이 검색대를 설치, 데이터를 담을 수 있는 메모리카드 등의 유출을 막는다든지 B반도체 장비업체처럼 사내에서 아예 휴대용 저장장치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 좋은 사례로 꼽힌다.

또 보호대상, 비밀 관리체계 등 비밀관리에 관한 명문화한 규정을 제정해 정보를 개발 또는 발견했을 경우 기밀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지 객관적 판단 지표로 삼아야 한다.

아울러 산업기밀 및 영업비밀 유출 주체로 전현직 직원이 지적되는 경우가 전체의 83.8%에 이르고 있다는 최근 통계를 감안하면 인적관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를 위해 최소한 입사 시 비밀부설금지 서약서를 제출하고 재직 동안 주기적인 보안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또 퇴사할 경우 자유나 근로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동종업체 취업 및 경업금지 의무를 부과토록 하는 것도 '소를 잃지 않기 위한' 방법이다.

검찰 관계자는 "기술을 개발하는 전문 인력들은 자신들이 한 일이 위법한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원천기술은 부족한 반면 제조기술이 발달한 국내 산업특성상 모방에 대한 죄의식이 없다.
이 때문에 기술 유출도 별다른 '경각심'을 느끼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홍국선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는 잘 만드는 기술, 즉 제조기술이 발달했다"며 "역사가 이렇다 보니 지적 재산물인 영화·음악 등을 불법 다운로드해도 위법성을 느끼지 못하게 됐다"고 피력했다.

그는 "유출 예방을 위해서는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도 무조건 법적인 제재보다 이러한 의식을 깨울 수 있는 교육·홍보·문서지원에 나서야 하며 개발한 기술을 권리화·특허화하는 문화적인 변화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jjw@fnnews.com정지우기자

<도움말=국가정보원.서울중앙지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