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3남을 친자식처럼 34년간 돌봤던 말레인반도 출신 ‘이방인’ 마리얌(85.한국명 김순애) 할머니가 국내 체류 60년 만에 동포가 됐으나 정작 몸이 아파 귀화증서 수여식에는 참여하지 못하게 됐다.
법무부는 오는 5일 오전 출입국.외국인정책 본부장실에서 마리얌 할머니에게 국적을 부여하는 귀화증서를 수여할 계획이었지만 지병이 악화돼 무기한 연기했다고 4일 밝혔다.
마리얌 할머니는 고혈압과 노년 백내장, 심장판막증, 만성기관지염 등을 앓아왔으며 현재 천주교 무료 의료기관인 ‘성가복지병원’에 입원 중이기 때문이다.
내년이면 미수(米壽)를 맞는 마리얌 할머니는 1921년 3월 말레이반도에서 태어나 1939년 2차 세계대전 당시 슬하에 1남 2녀를 뒀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그는 1943년 일본군에 납치돼 싱가포르 수용소에서 전쟁포로로 비행장 노역 생활을 했고 3년 뒤 수용소에서 만난 한국인 근로자 조모씨와 부산으로 입항, 이듬해 전남 함평의 한 성당에서 백년가약을 맺었다.
당시 혼인신고 없이 외국인 등록만 마쳤던 그는 10년간 조씨와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지만 1955년 남편으로부터 버림을 받자 서울로 올라가 가정부 생활을 전전했다.
지모씨의 집에 가정부로 들어간 마리얌 할머니는 1959년 지씨의 처가 숨을 거두면서 사실상 지씨의 아내로, 전처 소생인 세 아들의 의붓어머니로 34년간 함께 생활했다.
지씨의 처로부터 탁고(託孤.아이의 장래를 믿을 만한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를 유언으로 받고 막노동을 하는 남편과 아직 어린 아이들을 뒷바라지했던 것이다. 궁핍한 경제 사정으로 염생공장과 비닐하우스에서 품을 팔기도 했다.
불법체류 신분이었던 그는 국적을 되찾아 오랜 세월 찾지 못했던 고국 땅을 밟아보기 위해 주한 말레이시아 및 싱가포르 대사관을 찾았다. 의붓 아들이 분가를 하고 지씨마저 세상을 떠난 1992년의 일이다.
하지만 ‘출생 기록이 현지에 남아 있지 않아 국적을 입증할 자료가 없으므로 자국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가 신청 서류에 적은 ‘마리얌’이라는 성명은 국적 없는 이름이 됐고 한국명으로 함께 적었던 ‘김순애’만 남게 된 셈이었다.
이런 사연이 국내 한 방송사에 알려지면서 마리얌 할머니는 지난 7월 방송국 제작진과 함께 말레이시아를 방문해 어느덧 할머니.할아버지가 된 친자식 3명과 상봉하는 감격을 누리기도 했다.
법무부는 이 사실을 접수한 뒤 지난 10월 외국인 인권보호 및 권익증진협의회에 안건으로 상정, 범칙금 특별 면제와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부여했으며 국적취득 신청을 한달여 만에 받아들여 ‘한국인’ 신분을 줬다.
하지만 그토록 염원했던 귀화증서를 받는 감격스러운 자리에는 참여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국적 부여는 수여식과 상관 없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며 “어떻게 귀화증서를 전달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jjw@fnnews.com 정지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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