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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읽기] ‘열하일기’ 박지원



E H Carr는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규정하였다. 그에 따르면 역사는 역사가의 해석이며 과거의 사건이나 인물은 역사가가 처한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가 그 대표적인 예다. 정조에 의해 패관기서(稗官奇書)로 낙인찍혀 불타 없어질 뻔 했던 ‘열하일기(熱河日記)’가 지금은 대표적인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열하일기’에는 시대의 지성인으로서, 당대 현실에 대한 박지원의 고민의 흔적과 조선이 나아갈 방향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열하일기(熱河日記)’는 1780년(정조 4년) 박지원이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칠순연(七旬宴)을 축하하기 위하여 사행하는 팔촌 형 박명원(朴明源)을 수행하여 청나라 고종의 피서지인 열하를 견문하면서 청나라 치하의 북중국과 남만주 일대의 문물제도를 소상하게 기록한 연행일기이다. 이 책에는 중국의 역사, 지리, 풍속에서부터 청나라의 정치, 경제, 종교, 예술, 문화 등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영역이 서술되어 있다. 특히 청나라의 농사법, 세계 여러 나라의 소식, 신식 기계 등을 소개함으로써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조선의 문물 제도를 과감히 개혁할 것을 주장하였다.

우리나라의 선비들이 진실로 오랑캐를 물리치려면 그들이 중화에 영향을 미친 부분을 모조리 배워서 먼저 우리나라의 추로(椎魯) 풍속부터 개혁시켜야 한다. 밭을 가는 법이나 누에를 치는 법, 그릇을 굽는 법이나 풀무를 부는 법에서부터 공업을 장려하고 상업을 풍성하게 하는 것까지 모두 배워야 한다. 그들이 열을 하면 우리는 백을 해야 한다. 먼저 우리 백성들을 잘 살게 하여야 한다. 그래서 우리 백성들로 하여금 몽둥이를 만들게 하여 저들의 굳은 갑옷과 예리한 병기를 충분히 매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뒤에라야,

“중국은 오랑캐의 땅이 되어 볼 만한 것이 없어.”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박지원은 스스로를 하사(下士)라 지칭하며 중국의 볼 만한 것은 ‘기와 조각’, ‘똥무더기’에도 있다고 말하면서 고루하고 편협한 성리학의 테두리에 갇혀 있는 상사(上士), 중사(中士)를 비판하고 있다. 특히 ‘차제(車制)’조에서는 중국의 수레 제도에 대해 감탄하면서 조선의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무릇 수레라는 것은 하늘이 내어 땅 위를 다니는 물건이다. 이는 물 위를 달리는 배요, 움직이는 방이다. 나라의 큰 쓰임에 수레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중략)

사방이 겨우 몇 천리밖에 안되는 나라에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이다지도 가난한 까닭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수레가 나라 안에 다니지 않는 탓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어떤 이가

‘그러면 수레는 어찌하여 다니지 못하는 거요?’

라고 묻는다면 한 마디로 대답하기를

‘사대부(士大夫)들의 허물이지요.’

라고 할 것이다.

박지원에 의하면 조선이 낙후되고 백성의 삶이 피폐하고 곤궁한 것은 공리공론(空理空論)만을 일삼고 실용적인 학문을 외면하는 사대부들에게 그 주된 원인이 있다. 사대부들은 고루하고 편협한 성리학의 울타리에 갇혀 청나라의 발달한 문물은 외면한 채 그들을 오랑캐라고 비웃고 있지만 신기술이 등장하고 실용학문이 발달하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청나라의 발달한 문물을 적극 수용해야 하며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문을 통해 나라를 부강하게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박지원의 생각이었다.


‘열하일기’에서 박지원이 소개한 중국의 성제(城制)와 벽돌 사용, 교량·도로·방호(防湖)·방하(防河)·선제(船制) 등 교통 제도 등은 모두 이용후생과 관련된 것들로서 조선이 하루 빨리 수용해야 할 선진 제도들이었다.

오늘날 ‘열하일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조선 후기의 구체적인 실상과 조선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한 지식인의 고뇌에 찬 모습뿐 만이 아니다. ‘열하일기’에서 박지원이 보여준 날카로운 시대정신은 치열하고 냉정한 국제 사회의 현실 속에서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데 시사하는 바 크다.

/이명우·㈜엘림에듀 대표 집필위원·스카에에듀 논술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