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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정신질환] 2 반사회적 인격장애

정신의학자와 범죄심리학자들은 안양 초등생 유괴·살해 사건의 피의자 정모씨(39)를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정씨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지 않고 진술을 번복하는 모습을 오랜 시간 보였기 때문이다.

반사회성 인격장애란 사회생활을 하면서 비이성적·비도덕적·충동적 행동은 물론 범죄적·죄의식이 없는 행동을 나타내는 이상성격을 말한다. 즉 사회의 정상적 규범에 맞추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러나 이들 환자를 전부 범죄인으로 규정하면 안된다.

현재 미국에선 반사회성 인격장애 유병률이 남자는 3%, 여자는 1%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도시 빈민지역에서 많이 발생하고 남자는 대가족 출신이 많았다.

■가정 환경이 중요하다

반사회성 인격장애는 혼란스러운 가정 환경에서 빈번하게 발생된다. 특히 출생 후 1년 동안 부모의 상실(사망·이혼·장기 출장)이 중요 요인으로 꼽히다. 부모상실보다 더욱 큰 문제는 일관성 있는 감정적 유대관계의 결핍이다. 변덕스럽고 충동적인 부모가 아이에게는 더 안 좋다는 얘기다.

반사회성 인격을 가진 사람은 겉보기에는 귀엽고 남의 기분을 잘 알아주는 것 같기도 하고 현명해 보이기까지 한다. 또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해서도 불안하거나 긴장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주변에서 ‘담이 큰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몇 주 또는 몇 달은 주위 사람에게 인정받으며 착실히 지내지만 주기적으로 발작적인 바사회적 행동을 반복한다. 또 자기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잘못했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부모나 윗사람이 야단치면 그 자리를 모면하기 위해 ‘잘못했다’고 시인하기도 한다. 안양 초등학생 사건 정씨의 자백을 이끌어낸 프로파일러 권일용 경위도 “정씨는 자백을 하면서 울었는데 반성의 눈물이라기보다 더 이상 자신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포기의 눈물이라고 할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또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은 자기중심적이며 의미 있는 대인관계를 형성할 능력이 없다. 타인을 위하는 체하지만 깊은 정서관계를 맺지 않는다. 하지만 자살 위협을 하기도 하나 자살을 기도하는 일은 드물다.

■어떻게 진단하나

진단은 정신상태 검사소견이 아니라 병력에 의해 내려지게 된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면담 중에는 태연하고 믿을 만하게 보인다. 하지만 내면에는 긴장, 공격성과 분노가 숨겨져 있다. 이 때문에 진단하려면 충분한 신경학적 검사가 필요하다. 때론 비정상적인 뇌파나 연성 신경학적 징후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청소년 비행, 무단결석, 규칙위반, 거짓말 등 반사회적 행동을 보였고 그 행동을 반복한다. 나이가 들어서는 직업에서의 실패, 범법행위, 가정생활에서의 무책임, 폭력행위, 성적 문란, 채무 불이행, 거짓말, 무모한 행동, 문화예술 파괴행위 등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환자들은 불안해 하거나 우울해야 할 상황에 처했음에도 전혀 불안이나 우울을 나타내지 않는 특징이 있다.

반사회성 행동은 15세 이전에 나타나 사춘기와 초기 성인기에 절정에 달한다. 하지만 사회적인 문제로 부상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도 성인인 21세가 지나면서 차차 반사회적 행동이 개선되거나 반사회적 행동 대신 우울증이나 건강염려증으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40세를 넘으면서 자연히 호전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많은 임상가의 견해이기도 하다.

■치료는 가능한가

치료방법에 공통적인 견해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아는 능력을 키우는 데 목표를 두고 치료한다.

이들은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을 모르고 등한시되어 성장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많은 사람과 동화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같은 문제를 가진 사람들과 같이 있다고 느껴질 때 치료 동기가 생길 수 있으므로 자조집단과 같은 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치료를 시작하기 앞서 확고한 한계를 설정해 환자가 자기파괴적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불안, 우울할 때 항불안제나 항우울제 등의 약물을 쓸 수 있다. 주의력결핍과 행동장애가 있을 때는 정신 자극제도 도움이 된다.

도움말=고대안암병원 정신과 강이헌 교수,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윤세창 교수,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홍진표 교수

/pompom@fnnews.com정명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