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논란을 낳은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이 지난주 첫 출근하는 날, 나는 머리띠 두른 노조원들이 플래카드 들고 출근을 방해할 줄 알았다. 웬걸, 직원들은 황금빛 신보 본점에 들어서는 안 신임 이사장을 박수로 맞았다. 기분이 좋았던 걸까, 그는 취임사에서 이명박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신보의 역할 축소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한 안 이사장은 대통령, 경제수석, 국정기획수석을 거론하며 “누누이 말씀을 드려놓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례적으로 연단에 선 신보 노조 위원장은 “이사장님께서 기금의 위상을 높이는 일에… 대외 역량을 충분히 발휘해 주실 것을 굳게 믿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기술보증기금과의 통합 등 현안을 앞두고 새 경영진과 노조가 똘똘 뭉친 모습이다. 아니나 다를까, 금융위원회는 바로 이틀 전 국회 공기업 특위에 신보·기보 통합을 시간을 두고 결정하겠다고 보고했다. 나는 이걸 보고 공기업 민영화가 물 건너갔다는 생각을 굳혔다.
이 정부가 민영화 대신 선진화란 용어를 쓸 때 고개를 갸웃했다. 그 선진화마저 부처별로 추진키로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땐 헛웃음이 나왔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니까. 청와대에서 틀어쥐고 국정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도 될까 말까한 프로젝트를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는 건 “들을 귀 있는 자는 알아들을지어다”는 통보다. 혁신도시로 갈 공기업은 선(先) 지방이전, 후(後) 민영화 방침이 정해졌다. 공기업을 사겠다는 기업이 지방 이전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팔겠단 뜻이다.
민영화 김 빼기만큼은 당정이 착착 박자가 맞는다. 한나라당은 여야 9명씩 동수로 구성된 공기업 특위의 위원장 자리를 민주당에 흔쾌히 넘겼다. 특위가 민영화에 제동을 걸 때 그 책임을 슬쩍 야당에 떠넘기려는 꿍꿍이속이 엿보인다. 민영화가 늦어질수록 더 많은 낙천·낙선자를 구제할 수 있다는 진한 동료애도 감지된다.
이로써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했던 진정한 의미의 공기업 민영화는 용두사미로 끝날 만반의 채비를 갖췄다. 몇 차례 여론의 비판만 꿋꿋이 견디면 만사 OK다. 코드인사를 일삼던 열린우리당의 후예들이 ‘영남향우회’ 운운하며 비판하는 건 흘려들으면 그뿐이다.
돌이켜보면 공기업은 늘 전리품 신세였다. 군부독재 시대 땐 퇴역 군인들 차지였고 민주화 이후엔 정권 창출에 기여한 공신들 몫으로 돌아갔다. 현 정권은 다르겠지, 기대했던 게 잘못이다. ‘실용’의 참 뜻을 크게 오판했다.
옛날엔 창업 공신들에게 땅이나 관직을 주었다. 요즘 세상에 공신전(功臣田)을 줄 순 없다. 구청장까지 직접선거로 뽑는 마당이니 마땅한 관직도 없다. 그저 만만한 게 공기업 이사장·사장·감사 자리다. 애당초 민영화를 포기하고 경영 혁신을 구실로 코드·보은·위로 인사를 일삼던 노무현 정권은 차라리 솔직했다.
공직을 전리품으로 여기는 관행은 세계 최강국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1832년 윌리엄 마시 상원의원은 “전리품은 승자에게 속한다(To the victor belong the spoils)”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여기서 엽관제(獵官制·스포일스 시스템)란 용어가 탄생했다. 당시 정권을 쥔 앤드류 잭슨 대통령은 엽관제를 내세워 대대적인 물갈이를 단행했다.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시골 우체국장까지 줄줄이 바뀌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그러자 미 의회는 능력과 실적 위주의 메리트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렇지만 미국식 엽관제의 전통은 유구하다. 지금도 대사(大使)와 같은 정치적 임명직엔 정치자금 후원자·모집책 등을 발령내는 예가 허다하다.
공기업은 한국판 엽관제가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는 곳이다. 권력을 쥔 당·정·청이 삼위일체로 단합하고 여기에 노조까지 가세하니 천하무적이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끊어버린 알렉산더 대왕을 복제해서 데려올 수도 없고 그야말로 낙심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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