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배상 차원을 넘어 국민에 대한 국가의 신뢰의무는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최근 수원지법 민사1부는 14년 전 군에서 자살한 손모 이병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이번 소송은 ‘선임병들의 인격모독’ ‘부적절한 부대배치’ 등이 손 이병 자살의 원인이 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지난해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진상규명위)가 국가배상 결정을 내리면서 촉발됐다.
국방부측은 진상위 결정에 대해 “법률상 국가배상 시효가 지나 청구권이 없다”며 보상금 지급을 거절하자 유족들이 법의 심판에 맡겼고 법원은 국가의 잘못을 꾸짖었다.
국가배상법상 손 이병 자살 당시로부터 5년이 지나 시효소멸이 완성됐다는 국방부의 주장에 대해 지난해 7월 ‘진상규명위 결정’을 시효 발생시점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소송을 진행한 장영하 변호사(법무법인 디지탈)는 “이번 사건은 예산을 투입해 구성한 전문가집단의 결정을 스스로 거스르며 신의의 원칙에 반하는 행태에 경종을 울린 데 더 큰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소송은 국가가 스스로의 신뢰를 깨는 모순을 드러냈기 때문에 승소를 자신했다고 말했다.
장 변호사는 “그동안 군 의문사는 군의 자체조사에 의존하다 보니 자살자의 경우 본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측면이 있었다”며 “이번 판결은 사법부가 진상위의 결정을 존중하고 그동안 군 의문사 사각지대라 할 수 있었던 자살자에 대해 적극적인 국가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다른 군 자살사건 소송이 진행 중이거나 다툼이 발생할 경우 이들 사건의 국가배상 여부를 판가름하는 데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cgapc@fnnews.com 최갑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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